공대 훈남 下
"세훈아, 전에 얼굴값한다는 말 사과할게."
"....."
"내 진심은 그게 아니였어. 내 사과 받아줄래?"
손에 든 붉디 붉은 사과를 내 앞에 홀연하게 서있는 오세훈에게 건네줬다. 두근두근 수줍게 사과를 내밀며 오세훈이 사과를 받아주기를 기다리는데 사과한번, 날 한번 쳐다보던 오세훈은 차갑게 고개를 돌린다. 그리고나서는 아예 내 반대편으로 등을 돌려버린다. 그에 멍해진 날 두고, 못들을걸 들었다는듯 귀를 후비적거리는 제스쳐를 취하며 천천히 저어 반대편으로 사라진다. 아..안돼...사람이 사과까지 주면서 진심을 담아 사과를 하면 받아줘야지. 어딜가는거야.. 차분하게 가라앉은 갈색 머리가 저 너머 사라져갈 때즈음, 나는 절규하듯 소리질렀다.
야!!!가지마!
가지마아!!!
가지말라니깐!!!!
...
"..가지마..흐어....가지마아....."
"...큭큭.."
헛,
귀를 간지럽히는 듯한 오세훈의 웃음소리에 화들짝 놀라 퉁퉁 부운 눈을 억지로 떠냈다. 그렇다면 아까 그건 꿈인가, 생시인가. 상황파악도 못한채 일어나자마자 상체를 들어올려 눈꼽을 떼려 손등으로 눈을 부비는데, 오세훈은 내가 누워 있는 침대 옆에 서가지곤 뭐가 그리 웃긴지 손등으로 입을 막고 끅끅대며 웃고 있다. 뭐야 뭐가 그렇게 웃긴거야. 눈비비는걸 멈추고, 이상한 눈으로 오세훈을 쳐다보자 끅끅, 더 웃어댄다. 숨넘어가겠네, 숨넘어가겠어. 그렇게 웃어대면서도 '가즈마..가즤마아..', 하고 얄밉게도 아까 내가 한듯한 잠꼬대를 이상한 표정을 섞어가며 따라하는데...정말 아침부터 맞고 싶나. 부들부들 떨려오는 주먹을 애써 다독이며 오세훈을 무시하듯 주위를 둘러보았다. 어제밤엔 술에 취해서, 또 술집에서 나오고 난 뒤 오세훈이 날 다독여주자 더 서러워져 후폭풍으로 하염없이 우느라 정말 정신이 없었던 탓에 제대로 못봤던 방안 풍경이 제대로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깔끔한 흰 벽지와 블랙으로 인테리어 되어있는 복층형 오피스텔이었다. 또, 남자 혼자 사는 곳인데도 정리는 꽤나 잘되어있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싱크대쪽을 쳐다보니, 설거지할 꺼리없이 일렬로 꽂아져 있는 하얀 도기그릇들만 보일뿐이었다. 얼굴만 깔끔하게 잘생긴줄 알았는데, 되게 깔끔한 성격인가보네.
'일어났으면 씻지 그래.'하며 아까까지의 한창 웃음을 그치고, 기분좋은 미소만 옅게 띈채 내게 말하는 오세훈에게 고개를 끄덕여보였다.
아까 꿈은 개꿈이었나.
어쩌다 그런 불상사에서 날 도와줌으로써 불편했던 우리 사이가 전보다 원만해지긴 했지만, 이 사이를 유지하기 위해선 제대로된 사과가 필요하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알고 있다. 그러니 정신이 반쯤 나가 오세훈의 한숨 섞인 부축을 받으며 들어간 걔 자취방에서도 그런 꿈을 꿨지. 손톱을 잘근잘근 씹으며 한 쪽 손으로 에이드를 들어 한모금 쭈욱 들이켰다. 얼음이 동동 띄워진 자몽에이드의 시큼한 맛과 동시에 올라오는 차가운 느낌. 머리가 띵하다. 어떻게 사과를 해야 사과를 잘했다고 소문이 나려나. 지옥같던 종강파티 이후 일주일이 지난 지금에도, 혼자 집 앞 카페에 와 에이드 한잔 시켜놓고 노트북을 하다 문득 든 오세훈에 대한 생각에 이렇게 골머리를 썩힌다. 종강파티 다음날 오세훈네 자취방에서 눈을 뜨게 되서 말은 하는 사이가 되긴했지만, 전처럼 연락하는 사이는 못되는건 사실이다. 노트북 옆에 놓여진 내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내 손에 너무나 간단하게 들려 있는 핸드폰, 이 안에는 오세훈의 번호가 있다. 연락, 해볼까...
알 수 없는 긴장감에 침을 한번 꿀꺽 삼키고 핸드폰 홀드키를 눌렀다. 반짝하고 뜨는 잠금화면을 익숙하게 풀고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전화부에 들어가 오세훈을 찾았다. 오세훈. 핸드폰에 명확하게 또 단정하게 찍혀있는 그 이름. 그리고 핸드폰 액정 위로 진리가 우리를 몰아가며 억지로 시킨 번호교환에서, 싫은 표정을 팍팍 내던 나와 달리 재밌다는듯 환하게 웃던 오세훈이 그려진다. 또 한창 불티나게 연락해대던 그 때가 떠오르고, 곧이어 그 날 그 복도 위 나의 말실수에 굳은 표정을 보이며 차갑게 뒤돌던 오세훈이 겹쳐 오른다. 아, 어쩌면 난 밀어내고 있었던 걸지도 모른다. 내가 먼저 그 아이를. 그렇게 잘난 애가 보이는 호감에 무뚝뚝하게도, 내가 먼저 상처받을까봐. 밀어냈던것이다.
그런 생각이 미치자, 입술을 꾹 깨물고 전화아이콘에 가져다대었던 손가락을 문자아이콘 쪽으로 옮겼다. '문자보내기'
<잠깐 만날 수 있어? 저번에 도와준거 사례하고 싶은데.>
몇 번이고 지웠다 썼다를 반복해 쓴 문자. 이제 옆에 보내기만 누르면 되는데 이상하게도 떨린다. 싫다고 하면 어쩌지. 너무 딱딱해보이나, 이모티콘이나,아니면 ㅋㅋ이라도 붙였어야 했나. 온통 신경을 곤두세워 핸드폰에 집중하는 사이, 노트북의 화면이 잠금배경으로 돌아가고, 에이드 속 얼음은 녹아 또각,하는 소리와 함께 얼음 하나가 움직인다. 만반의 준비를 하고 난 뒤 가장 중요한 마지막 마음의 준비를 했다. 안그래도 말랑거려서 충격에 잘 터지는 내 쿠크다스 심장을 굳게 다지며 보내기를 꾹 눌렀다. 그리고 딱 누르자마자 홀드키를 눌러 끄고, 바로 핸드폰을 테이블 위로 엎었다. 하아하아...존나 떨려.
딱 5분뒤에 답장이 왔나 보자.. 마음 속으로 생각하고, 노트북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런데 자꾸 흘끔 흘끔 핸드폰으로 가는 내 시선. 이건 마치, 중고등학교 다닐때 수업시간에 공부해야지..하면서도 핸드폰으로 자꾸만 가던 그 때와 똑같다. 유혹, 답장이 뭔지,꼭 보고 싶다는 유혹이었다. 아직 1분도 안지났을테지만 결국 패기있게 엎어 놓았던 핸드폰을 빠르게 들었다. 마치 무인도에서 일주일동안 쫄쫄 굶은 사람이 따끈따끈 잘 구워진 양념갈비를 본 것마냥 다급하고 빠르게, 갈망하면서 말이다. 홀드키를 누르니 메세지 하나가 와 있다는 알림창이 떠있다. 제발 스팸이 아니길 기도하며 누른 메세지에는 간결한 두글자가 떠있다. 어쩌면 내가 그토록 바래왔을 그 말.
<그래.>
문자를 받자마자 시간과 장소를 빠르게 정해 답장을 한뒤, 아까까지 죽치고 앉아있던 카페에서 바쁘게 가방을 챙겨들고 나왔다. 그리고 카페 맞은 편에 있는 마트 앞에 다른 과일들과 함께 진열되어있는 푸르스름함 반, 붉은 색 반, 딱 반 정도 익어 보이는 작은 사과 몇 개에 눈이 돌아간다. 요샌 기술이 좋아져, 여름에도 아오리 사과 말고, 빨간사과가 나오나? 이렇게 혼자 생각하며 가던 길을 가다, 다시 거꾸로 몇 발자국 뒤로 걸어 아까 마트를 봤던 그 자리로 돌아갔다. 멍하니 사과를 보며 생각했다. 꿈에서 봤던대로.. 사과를 하나 살까...? 물론 거기선 까였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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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척사과 두 개가 든 검은 봉지를 가방에 조심스레 넣어 놓고, 오세훈과 만날 약속장소로 가는 버스 안에 다소곳이 앉아 창밖을 구경하고 있는데. 옆에서 갑자기 "워!"하는 소리가 들려 화들짝 놀랐다. 놀라서 두근거리는 가슴을 부여잡고 날 놀래킨 사람 얼굴을 확인하는데 한껏 웃음기가 배인 듯한 표정으로 보는 종인이었다. 종강파티때 제대로 인사도 못하고 울며 나갔었는데, 그 때 이후로 오랜만에 보는 얼굴이다. 나는 어떻게 여기서 볼 수가 있냐며 작은 목소리로 종인이의 까맣게 그을린 단단한 팔을 장난처럼 쳐댔다. 그에 아프다는듯 장난스럽게 팔을 잡으며 반응하던 종인이가 곧이어 '너 연락도 안받구..엄청 걱정했어.' 라고 말한다. 그 말에 안좋은 기억인,종강파티 때가 생각나 씁쓸하게 웃어보였다.
"야..연락 씹은건 미안하다. 내가 다시 연락할 기분이 아니었어."
"아,뭐 괜찮아.아 근데 너 그거 아냐? 그 선배 너랑 오세훈인가 걔 같이 나가고 나서 다른 선배들이랑 그 선배 친구들한테도 엄청 까였어. 원래 좀 그런 선배였나봐. 그 선배 친구들도 그 선배 안좋게 봤었던 거 같아.아주 신명나게 까였다니깐."
그 선배가 까인게 즐거운지 웃음지으며 저렇게 신나게 얘기한다. 그에 나는 '그래?그걸 봤어야했는데.'하며 아쉬운 듯한 표정을 지으며 농담을 던졌다. 그런데 계속 웃음을 머금던 종인이가 장난스러운 내 말에 조금은 진지한 표정을 짓더니, '그 때 못도와줘서 미안했어.'라고 작게 말한다. 뒤이어 '너무 놀라서 어떻게 해야할지 몰랐어.' 덧붙이는 말도 잊지 않는다. 진심으로 미안해하는 듯한 종인이의 얼굴에 나까지 괜스레 미안해질 정도였다. 네가 미안해야할 일이 아니야. 종인이의 팔을 꼭 잡고 괜찮다는 웃음을 지어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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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음된 목소리로 울려 퍼지는 정거장의 이름.내가 내려야 할 곳이다. 이제 일어서려는데, 종인이도 뒷문쪽으로 향한다.
"너 여기서 내려?"
"응. 약속있어."
아,약속...그래서 그렇게 차려입었던건가. 김종인. 어쩐지 학교에선 볼 수 없는 정장을 입고 있었어. 정거장 앞에서 버스 문이 열리고, 종인이와 나란히 함께 내렸다. 보도블럭에 발을 내딛는데 뜨거운 열기가 올라오는 듯하다. 아까까지 버스에서 에어컨을 맞으며 올때는 몰랐는데 여기 되게 덥다. 손부채질을 하며 약속장소 쪽으로 고개를 휘휘 돌리는데 옆에서 종인이가 말을 건다.
"너 어디가는데?"
"어? 나 저기 카페."
"그래? 나도 그 쪽 지나서 가는데."
"올,그럼 같이가면 되겠다. 가는 동안 심심하진 않겠네."
얼마되지는 않는 거리지만, 오랜만에 보는 종인이와 하하호호 떠들며 아까 오세훈과 약속한 카페 쪽으로 걷고 있었다. 뭐, 김종인과 같이 걸으며 나눈 얘기는 시시콜콜한 것으로 잘 기억은 안나지만, 사촌형 친구 결혼식에 가는 길이라는것 만은 기억난다. 아무튼 그렇게 걷고 있는데, 옆 쪽 길에서 나오는 오세훈과 딱 마주쳤다. 그에 내 발길이 멈추고, 오세훈도 갑작스러운 길거리 만남에 당황했는지 눈을 크게 뜨더니, 갑자기 걸음을 멈춘 내 옆에서 '왜?왜 멈춰?'를 연발해대는 김종인에게 시선을 옮긴다. 그에 왜 당황스러워야 하는 건지는 모르겠는데 괜히 불륜현장을 들킨 사람처럼 다급해져 의문스러운 눈으로 날 보는 종인이를 떼어내며 더듬더듬 말했다.
"아, 조..종인아 나 먼저 가볼게! 그...뭐냐 너 결혼식 잘가라!"
"아니 나도 이쪽으로 간다니...."
"어 나 약속 늦은거같아!!!"
"뭐?? 방금 너가 20분 일찍왔다고 투덜댔잖아!"
아나, 신발 김종인 그런 말을 크게 말하면 어떡하니...ㅎ..오세훈은 짝발을 짚은채, 작은 실랑이를 벌이는 우리 둘을 쳐다보다 뭔가 결심한듯 성큼성큼 다가와 내 손목을 잡아챈다. 김종인을 쳐다보는 눈빛이 차갑다.
"그 약속. 저랑 약속한거거든요. 여기부턴 저랑 같이 갈게요."
어이없는 표정의 종인이를 뒤로 하며 '미안 종인아..이따 연락할게..!'하고 속으로만 생각했다. 진짜 속으로만. 그리고 내 (속으로만 말한) 진심이 종인이에게 전해졌기를 빌며, 무슨 도살장에 끌려가는 돼지마냥 오세훈의 커다란 손에 이끌려 질질 카페로 끌려가고 있다. 화난 건지, 걸음은 어찌나 빠른지, 발걸음을 맞추느라 헉헉대며 뛰다시피 해서 갔다. 오세훈은 카페 앞에 다다라서야, 그 한더위에 뛰느라 한껏 얼굴이 벌개져 있을 나를 쳐다본다. 차가운 눈빛에 아까까지 더위에 헉헉 대던게 멎는 듯했다. 씨발..무섭게도 쳐다보네. 쭈구리처럼 고개를 숙이자 오세훈은 내 손목을 잡은 그대로 카페 문을 열고 들어간다. 들어가자마자 내 의사를 묻지도 않고 과일빙수를 시키고 자기 혼자서 결제하더니, 조용한 자리로 나를 이끈다.
자리에 앉기 전에서야 아까 만났던 시점에서부터 잡았던 손목을 그제서야 조심스럽게 놓는다. 나는 하도 세게 잡아 아려오는 손목을 다른 손으로 부여잡고, 그와 마주보고 앉았다. 오세훈은 아까 김종인에게 열내고 온게 민망한건지, 아니면 내 손목을 잡고 여기까지 온게 민망한건지. 큼큼대며 입술을 어쩔 줄 몰라한다. 이로 물어 뜯기도 하고 꾹 누르기도 하고, 저러다 입술 상하는데..쓸데없는 걱정을 하며 오세훈 얼굴을 빤히 바라봤다. 오세훈은 눈도 안마주치고 나를 한번 흘긋 보더니 내게 말한다.
"그 남자."
"어?"
"아까 니 옆에 걔."
"아 종인이.걔 왜?"
"걔랑 친해?"
너보다 친해,라는 말을 꾹꾹 참으며, '뭐 그냥 동기지.'라고 졸라 쏘쏘하게 대답했다. 존나 평범한 내 대답에도 오세훈은 뭐가 그리 맘에 안드는지 테이블아래를 지 발로 쿵쿵차며, 이거 왜 이렇게 흔들려! 하며 성을 낸다. 니가 차니까 흔들리지 병신아...그 와중에 진동벨이 징징 울리자, 진동벨에 자동반사적으로 나간 내 손 위로 오세훈 손이 겹쳤다. 오세훈은 여전히 뚱한 표정으로 진동벨을 내 손에서 앗아가며 '내가 갈게.'라고 말한다.
.
오세훈이 사준 빙수...아 원래 내가 사려고 했는데.이거로 사례하고 사과를..아! 사과! 옆자리에 놓여있는 가방 안에 조심스레 손을 넣어 사과가 안 눌렸는지 확인했다. 다행히도 어디 눌리진 않은 것같다. 빙수를 야금야금 퍼먹으며 어색한 기류 속에서 어떻게 사과할지 고민하고 있는데, 오세훈이 먼저 운을 띈다. 까딱까딱 긴 다리를 옆쪽으로 뻗어놓고 흔들면서 말이다.
"너 좀 괜찮아?"
"뭐가?"
"아니, 뭐 상처받았다거나...아..아니다.신경쓰지마."
아무래도 저팔계선배에게 당한 후 내가 신경쓸까봐 걱정을 하는 것 같았다. 괜히 얘기 꺼냈다가 내가 싫어할까봐 눈치보며 신경쓰지 말라고 덧붙이는 모습에 웃음이 났다. 픽웃음지으며 '괜찮아.너가 도와줘서 고마웠어.'라고 말하자 고개를 약간 숙인다. 부끄러운건지, 귀까지 빨개진채 '됐어.'라고 짧게 대답한 후, 아까까지 입에 대지도 않던 빙수를 겁나 퍼먹는다. 하긴 우리 둘 다 술취해서 정상적인 사고 시스템이 아닌 상태에서 한 말들과 행동이었기에 아마 민망할 수는 있겠다고 생각했다.
"사례는 어떻게 할건데."
"어?"
"사례한다고 불렀잖아."
빙수를 우물대며 사례를 어떻게 할거냔 그의 갑작스러운 말에 말문이 턱 막혔다. 원래는 커피나 빙수를 사주려고 했는데 아무래도 저녁을 사줘야할 거 같은 느낌이..오세훈의 눈치를 보며 '저녁 사줄까..?'하고 말하자, 고개를 휙 들더니 날 아무말없이 쳐다본다. 헐..방금 내가 뭐 또 말실수했나? 혼자서 막 당황하고 있는데, 오세훈에게서 '응'하는 낮은 대답소리가 웅웅 귓전에 맴돈다. 미친..먹자고 할꺼면서 왜 괜히 째려봐서 사람 쫄게 하고 그래...ㅎ..아무튼 다시 우물우물 빙수를 먹고 있는 오세훈의 정수리를 보고 있자니 사과를 빨리 해야겠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가방속 검은 봉지를 꺼내어 몰래 내 다리위에 얹어 둔 뒤 오세훈에게 말을 걸었다.
"저기.."
"...."
"예전에 내가 너한테 말실수 했잖아."
"...."
"..그...얼굴값.."
'말실수'라는 단어를 듣자마자 딱딱해지는 얼굴에 쫄았는데, '얼굴값' 이 단어가 나오자 더 차갑게 변하는 거 같다. 찬 바람이 쌩쌩부는 표정으로 날 아무말없이 쳐다본다.
"미안해..내가 말 조심했어야했는데."
"괜찮아."
"..어?..."
"괜찮다고."
의외로 가뿐하게 사과를 받아줘서 놀랐다. 근데 괜찮다는 사람이 표정은 아직도 살벌하다. 나는 이제 이걸 쓸 수 있겠구나 하는 마음에, 두근거려하며 검은 비닐봉지를 들어 테이블 위로 해서 오세훈에게 건넸다. 갑작스러운 검은봉지의 출연에 적지 않게 놀란 표정을 짓다가 어떨떨한 표정으로 받아들고 내용물을 확인하더니, 그제서야 딱딱하게 굳어있는 표정이 풀어지는 걸 보여준다. 꿈과는 달리 사과를 주는 사과가 먹힌 것 같다. 티는 안내지만 웃음을 머금고 좋아하는 듯한 모습에 나 역시 마음이 놓였다. 헤- 하며 다시 빙수를 먹는데, 오세훈의 들뜬 목소리가 내게 들린다.
"저녁 내가 살게."
"어? 안돼. 내가 사야지.사례한다니까."
"사례하는거 바꿔."
씨익 웃더니. 사례하는 걸 바꾸란다. 뭔가 불안한데,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오세훈을 바라보며 '뭔데?'라고 물었다. 그에 뭐가 그리 좋은지 눈이 휘어지게 웃으며 말한다.
"이제부터 매일매일 나랑 전화하기."
"...."
"쩔지.짱 쉽지."
이승탈출 위아원 |
그 날 이후, 여주는 세훈이랑 전화하다 사망. 사망이유 -> 심장폭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