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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담톡 상황톡 공지사항 팬픽 만화 단편/조각 고르기
몬스타엑스 이준혁 온앤오프 김남길 샤이니
1323 전체글 (정상)ll조회 1906l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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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븐틴/민규] OFF ON OFF _ 어떤 걸로 드릴까요? | 인스티즈

야, 그렇게 쳐다보면 어떡해. 심장 떨리게.




















캠퍼스에 눈이 내린다. 계절 학기 시즌이었다. 학점을 보아하니 방학이고 나발이고 작년과 다를 바 없이 글공부에 매진할 서러운 팔자였다. 분명 지난 계절에 이딴 식으로 살지 않겠다 술집에서 고추장 혈서까지 썼건만. 역시 사람은 고쳐 쓰는 게 아니다. 하찮은 나 새끼! 네가 이러고도 인간이냐? 과제를 술 처먹고 내는 게 아니었는데! 카페 테이블에 머리를 처박고 쥐어뜯으며 지난 날을 회개한다. 불현듯 뭣 같은 원흉을 상기했다. 과제 할 때 술 처먹으면 엔돌핀이 돌아 아이디어가 콩나물처럼 쑥쑥 자란다는 지식인 답변을 믿은 게 잘못이었다. 그때가 제출 전날이었는데, 주량이 약한 나는 제출 당일 새벽에 눈을 떴고, 결국 사십 프로에 달하는 비율을 통으로 날려버렸다. 억울함에 다시 찾은 답변은, 곧 내가 아는 사람의 아이디였으며, 지금쯤 상위권에 앉아 여행 계획이나 짜고 있을 윤정한의 것이었다.




— 알쓰 하이.

— 네가 그러고도 태양신이냐? 태.앙.신. 아님?

— 야아-, 아직도 화났다고?

— 한강 말고 재수강 한번 빠져 볼래?

— 으응, 여행 갔다 와서 생각해 볼게.




윤정한은 능글맞은 얼굴로 슬쩍 넘기며 목에 감긴 머플러를 풀었다. 이윽고 빼곡한 스케줄이 담긴 다이어리를 곁눈질하던 녀석이 대뜸 펜 대를 건드린다. 황금 같은 주말, 침대에 누워 프라하로 가는 티켓이나 끊고 있어야 할 녀석이 학교 앞 카페까지 찾아온 이유는 듣지 않아도 알만했다.




— 소개 한 번만 받아보라니까? 진짜 괜찮은 애야.

— 그렇게 괜찮으면 네가 사귀던가.

— 이야, 정말 실망이다. 김여주, 내가 아무나 소개해 주는 사람이야? 말해 봐, 내가 그동안 너한테 얼마나…….

— 또 사람 홀린다.




말빨로 당해 낼 재간이 없어 서둘러 두 귀를 막았다. 정신 똑바로 차려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당장 내일이라도 소개팅 자리에 앉아 파스타를 우물거리고 있을 테니까. 저 망할 입담꾼에게 말리지 말자. 홀리지 말자. 거칠어져 가는 눈발을 바라보며 윤정한을 피하던 시선이 한순간 같은 곳에 머문다. 카페 문을 열고 들어오는 커플들 사이에서 머리칼과 회색 코트에 묻은 눈을 털어내는 남자에게. 카운터를 향해 걸어가는 남다른 피사체에 정신을 놓는다. 완벽하다. 마들이다. 어느 집 아들내미일까. 나와 잘 어울릴 것 같아.




— 어? 왔다. 쟤가 김민…….

— 말하지 마. 집중해야 해.

— 뭔 말이야. 너랑…….

— 말하지 말라고. 조용히 해.




카운터 앞에 서 있던 남자는 곧 내부로 들어가 앞치마를 맸다. 이 남자가 한 달 전부터 수업보다 카페에 출석을 찍도록 만든 이유였다. 처음엔 버벅거리더니 이젠 제법 바리스타 폼이 난다. 도무지 생각해도 나와 잘 어울릴 것 같아. 윤정한아, 말해 봐. 웃는 얼굴을 가까스로 참는 녀석은 묘한 눈짓으로 나와 저 남자를 번갈아 보았다. 대답 강요에 마지 못해 고개를 끄덕인 녀석이 외투를 챙겨 든다. 눈치껏 빠져주는 거니? 그런 거니?




— 너 진짜 소개팅 안 나가?

— 지금 폴링럽 한 거 안 보여?

— 원래 젊어서는 사서 고생한다고 하는데, 그게 너였나?

— 어엉, 여행 잘하고.




대강 손 인사로 윤정한을 보내고 쥐어뜯어 헝클어진 머리를 다듬었다. 나와 어울릴 것 같다는 당당함은 세뇌였을 뿐, 정작 카운터로 걸어가는 다리가 후들거린다. 명치부터 아랫배까지 꿀렁거리는 느낌이 꼭 번지 점프 직전 같다. 바로 앞에서 포스기를 만지는 남자의 이목구비를 훑다, 눈이 마주치자 즉각 땅으로 처박은 연약한 자존감. 아니야, 난 할 수 있어. 계절 학기 똥을 맞았는데도 이렇게 살아 있잖아? 그 정신과 마음가짐으로 당당히 말을…….




— 아이스 아메리칸! 따뜻한 걸로 주세요!

— 아메리칸이요?

— 네? 아, 아뇨! 그…….

— 따뜻한 아메리카노 드리면 될까요?




오늘은 기적이 이루어지는 크리스마스도, 촛불 앞에서 빈 소원을 들어준다는 생일도 아니었다. 되풀이된 학점에 쓰라려 하는날이었고, 소개팅에 친구를 팔아버리려 한 윤정한에 입씨름하는 날이었다. 다른 사람들처럼 애인은 없어도 좋으니 마음에 드는 사람 하나만 내려 달라, 제발 신 따위가 있다면 이 세상에서 재미 좀 붙일 수 있게 해 달라 소원했는데…….










[세븐틴/민규] OFF ON OFF _ 어떤 걸로 드릴까요? | 인스티즈

— 오케이, 아메리칸 접수.















왓더뻑, 신 따위가 진짜 있었구나?















OFF ON OFF
; 어떤 걸로 드릴까요?
















어떠한 타깃을 얻으려면 주변부터 파악해야 한다. 가령, 가게 개업에도 반경 1km 이내 동종 업계 파악과 근처 시설과 아파트 단지 등등 조사가 필요하듯이 사람 또한 마찬가지다. 타깃이 출몰하는 카페는 이미 적들로 포화 상태였다. 전방 4시에 여자 둘, 6시에 여자 하나, 11시에 여자 남자 하나. 저긴 남자가 반했나 보군. 바에서 우유를 스팀 하며 손님과 안부를 묻는 존나 잘생겨서 뒤질 것 같은 알바생에게 무수히 쏟아지는 관심들.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남자는 카운터에 서성이는 내게 말하며 음료를 마무리했다. 이내 카운터로 돌아와 포스기를 두드렸다. 저기요, 혹시 제 마음을 두드리시는 건가요? 이건 마치 ¾박자, 마디마다 포르테가 있군요? 제 마음에 영원히 끝나지 않는 도돌이표가 되어주시겠어요?

결제 기기에 카드를 꽂는 둥 마는 둥, 적들과 똑같이 적나라한 관심을 보였다. 부담스럽다면 지금부터 웃지 않을 계획이다. 사적인 말 한마디도 붙이지 못했으면서 말이다. 남자는 터질 듯한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는 내게 결제 기기를 가리켰다. 기기에서 카드를 빼 건네는 순간 손등이 닿는다. 뜨겁다. 남자가 웃는다.











[세븐틴/민규] OFF ON OFF _ 어떤 걸로 드릴까요? | 인스티즈

 잔액 부족인데요.

— ……네?

— 결제 가능한 다른 카드 있으세요?




멍한 눈을 깜빡인다. 샛길로 새는 백 년 만의 로맨스. 지갑을 확인했지만 교통 카드 한 장, 지폐는 한참이나 모자르다. 계절 학기가 시작된 이후로 하루도 거르지 않고 카페에 출석을 해댔으니 잔액이 부족할 수밖에. 심지어 과외도 줄였으니 아주 빈털터리 되시겠다. 귀부터 시뻘게지는 그라데이션 수치심. 남자 앞치마에 ‘김민규’ 이름이 쓰인 명찰이 눈에 박힌다. 다행이다. 이름이라도 알고 전사해서. 다신 못 오겠지. 오늘이 마지막일까. 이럴 줄 알았다면 어제 번호라도 물어보는 건데. 억지로 올리는 입꼬리가 부들거린다. 안녕히 계세요. 나의 이상형. 고개를 꾸벅 숙이고 지갑을 챙긴다. 뒤를 돌아 패배자의 걸음으로 걷는 나를 불러 세운 건, 다름 아닌 유독 긴 다리만큼이나 긴 속눈썹이 예쁜 남자였다.










[세븐틴/민규] OFF ON OFF _ 어떤 걸로 드릴까요? | 인스티즈

— 라떼, 맞으시죠?

— …….

— 자주 오시잖아요. 다음에 결제해 주셔도 돼요.




남자를 쳐다보던 사람들의 시선이 내게 집중된다. 죄를 짓지 않았는데도 자백을 해야 할 것만 같다. 부담스럽다. 저 남자도 이런 마음이었을테지. 문 앞에 멀뚱히 서 있는 내게, 남자는 눈짓하며 자연스레 에스프레소 샷을 내렸다. 괜찮아요. 오늘은 사장님 안 계셔서. 잠긴 창고 문을 일부러 슬쩍 확인하며 검지로 입술을 막는다. 오늘 일은 비밀이에요. 소곤거리는 목소리로 둘만의 비밀을 만든 남자를 핑계로 본격적인 질문을 해댔다. 하루에 두 번 이상 찾아와도 물어보지 못한 것들을. 평소 내가 궁금해했던 건 바로 이런 거다.




— 새로 오셨어요? 여기 자주 오는데 못 봤던 얼굴이라서.

— 제대한 지 얼마 안 됐어요. 내년에 복학하는데 잠깐 알바 중이에요.

— 학교 다니세요?

— 여기 앞에.

— D 대요? 저도 거기 다녀요!




바 테이블에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남자를 경청한다. 재무관리 수업을 이렇게 들었다면 재수강도, 계절 학기의 영광도 없었겠지. 과제를 술 처먹고 하는 게 아니었는데. 윤정한, 이 태.앙.신……! 꼬리를 문 생각들에 얼굴을 구기자, 남자는 머그컵을 내밀며 안색을 살폈다. 라떼 안에는 하트 두 개. 태.앙.신. 따위는 무력하게 만드는 마법의 하트.




— 무슨 그림인지 잘 모르겠죠? 라떼 아트 연습 중인데 잘 안 되네요.

— 하트 아니에요? 완전 황금 비율인데?

— 그 정도까진 아닌데…….

— 이거 찍어서 배경 화면 해도 돼요?




뭐든 칭찬해 주고 싶은 병에 걸려버렸다. 핸드폰 화면에 걸린 자신의 하트를 보며 쑥스러운 듯 얼굴을 돌린다. 아아, 아름다운 사람아. 하트도 당신을 닮아서 멋있군요. 머그컵 손잡이를 만지작거리며 입술을 들썩인다. 괜히 하지도 못할 말들이 입안에 맴돈다. 남자는 카운터에서 기다리는 손님을 확인한 후, 자신의 앞치마에 달린 명찰을 가리켰다.










[세븐틴/민규] OFF ON OFF _ 어떤 걸로 드릴까요? | 인스티즈

— 김민규, 제 이름이에요.

— 아, 저는…….

— 다음에 또 봐요.




늦은 오후, 혼자 가게를 돌리는지라 바쁜 움직임이 선했다. 사장은 CCTV를 안 보는 걸까. 라인업이 이렇게 나 긴데 말이야. 혼자 일하면 힘들 텐데. 창가 자리에 앉아 홀로 전쟁을 치르는 남자를 곁눈질로 살폈다. 바쁜 와중에도 웃는 얼굴은 가시질 않는다. 서비스업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야. 프로답다. 하트를 삼키며 동선을 따라 시선을 옮기자, 남자의 시선도 잠시 내게 머물렀다.











[세븐틴/민규] OFF ON OFF _ 어떤 걸로 드릴까요? | 인스티즈

맛있어요?




말아 올라간 입꼬리와 덧니가 매력적인 남자였다. 고개를 끄덕이자 엄지를 치켜세우고 배시시 웃는다. 머그컵에 담긴, 아직 삼키지 못한 하트 한 개. 남자 한번, 하트 한번. 또 남자 한번, 하트 한번. 이러다 영원히 마시지 못하는 거 아닌가 몰라. 아깝잖아. 하트가 이렇게 나 멋진데.




















*




















계절 학기가 행복했다. 미친 소리 맞다. 실은 내 하루가 행복했다. 아침 수업이 끝나면 습관처럼 가게로 향했고, 지정석인 것처럼 창가에 앉아 눈인사를 했다. 내 음료는 언제나 라떼. 가끔 다른 것도 마시고 싶었으나, 날이 갈수록 일취월장하는 아트 실력을 보며 허튼 생각을 지웠다. 이것 봐, 오늘은 로제타야. 왼쪽에 잎사귀가 덜 나긴 했지만 그래도 괜찮아. 항상 이파리가 고르게 날 순 없잖아? 자연이란 그런 거지. 맞잖아, 내 말. 프라하 루프탑에 앉아 영상 통화로 마을을 보여주는 윤정한에게 이파리를 자랑했다. 녀석은 웃음을 참으며 소개팅 잘하고 있냐는 헛소리로 신경을 긁었다. 소개팅 못 해서 죽은 귀신이 붙었나, 프라하까지 가서 파토 난 소개팅 타령이라니. 해외까지 가서 무슨 망발이냐 화를 내면, 녀석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고개를 저었다.




— 김민규 맘에 들어?

— 나 완전 심장이……. 근데 네가 이름을 어떻게 알아?

— 어?

— 너한테 이름 얘기는 안 한 것 같은데.

— 뭐래, 저번에 네가 얘기했어.

— 언제?

— 있어, 너 술 진탕 마셨을 때.




귀찮게 하지 말고 끊어. 빠이. 윤정한은 선글라스를 장착하고 피쓰-, 자세로 영통을 끊었다. 지가 먼저 걸었으면서 귀찮다는 건 뭐야. 노트에 휘갈긴 필기를 정리하며 태.앙.신.을 지식인에서 끌어내릴 음모를 꾸미고 있을 때, 옆자리에 앉아 톡톡 팔을 건드리는 누군가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오 마이 갓 뎀. 오늘 오길 정말 잘 했어요.




— 뭐 해요?

— 그냥, 노트 정리?

— 저는 쉬는 시간.

— 아, 진짜요? 뭐 안 먹어요?

— 아까 사장님이 이것저것 주셔서 배불러요. 여주…… 씨는요?

— 네?

— 아, 여기 이름 있길래.




노트에 대빵만하게 쓴 김여주 석 자를 가리킨다. 여주 씨……. 삼만 층으로 쌓인 벽을 두고 서로 말을 거는 느낌을 썩 지울 수 없어 먼저 용기를 낸다. 이런 용기, 프레젠테이션할 때 주시면 좀 좋냐고요. 청심환 먹어도 양 목소리 나는데……. 아무튼 눈을 보고 또박또박.




— 저기, 혹시 몇 살인지 물어봐도…….

— 스물둘이요.

— ……어, 저도.

— 말, 놓을래요?

— 그래도 돼……요?

— 말 놓자.




남자는 자신이 가져온 음료를 내 머그컵에 살짝 부딪히고 한 모금 들이켰다. 와, 드디어 이름도 트고 나이도 텄다. 기어 올라가는 입꼬리를 손가락으로 꾹 누른다. 아, 잠시 잠시. 이제 민규야, 여주야 되는 거잖아. 어떡해. 존나 좋아 죽을 것 같아. 카페만 오면 열이란 열은 다 받는 얼굴이 남자 앞에서 빨개지자, 남자는…… 아니 민규는 돌린 얼굴을 따라 눈을 맞추며 장난을 걸었다.




— 왜에-, 뭐가아-.

— 아니야…….

— 왜 눈 안 마주쳐.




집요하게 시선을 맞추려는 짓궂은 장난을 피해 창밖을 바라보면, 어느새 또 눈이 건물과 길거리를 새하얗게…….




— 집에 어떻게 가지.

— 집에 어떻게 가냐.




……동시에 말해 버렸다. 놀란 눈으로 서로를 보다 튀어나온 웃음에 고개를 숙인다. 순간 부딪힌 머리에도 웃음을 참지 못해 질끈 눈을 감았다. 이젠 얼굴만 봐도 입꼬리가 올라간다.

쉬는 시간은 단 30분. 우리가 나눈 대화도 30분. 민규는 사진학과. 저번에 라이카를 사서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음. 날 좋을 때 풍경 사진을 찍는 걸 좋아하지만, 주로 인물 사진을 더 마음에 들어 함. 좋아하는 음료는 아메리카노. 스트레스 받으면 캬라멜로 듬뿍 잠긴 라떼. 요즘 관심사는 라떼 아트. 이유는 그림이 바보 같아도 좋아해 주는 사람이 있어서.











[세븐틴/민규] OFF ON OFF _ 어떤 걸로 드릴까요? | 인스티즈

— 저번 주에 너 오는 시간 맞춰서 라떼 만들고 있었는데 안 오더라.

— …….

— 그거 내가 다 마셨어. 완전 잘 그렸는데.




하트 세 개가 담긴 머그컵을 들고 울고 있는 사진. 보내 달라는 말에 자연스레 번호 교환까지 마쳤다. 다시 일로 복귀하려 자리에서 일어난 민규는 핸드폰을 흔들었다. 끝나면 연락할게. 마음을 싱송생송 만드는 말을 남기고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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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규는 애교가 많았다. 하루 종일 카톡을 해도 귀여움의 농도는 일정했다. 맛있는 걸 먹으면 행복한 곰돌이 이모지를, 만나기 전날 잘 자라는 문자 뒤에 초승달을 안고 잠드는 강아지 이모지나 실시간으로 찍은 자신의 사진을 보냈다. ‘내 꿈 꾸라고 말하진 않겠지만 꿨으면 좋겠어’라는 문장과 함께. 모델 뺨치는 기럭지와 수려한 얼굴로 부려 대는, 반전미 가득한 애교는 직접 겪어봐야 안다. 심장이 떨린다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었으니까.

연락한 지는 이제 막 일주일이 지났다. 풀타임으로 뛰는 아르바이트라 자주 만나지는 못했지만, 수업이 끝나면 카페에 앉아 잠시 얼굴을 보고 가거나, 아르바이트가 없는 날이면 민규가 학교 앞에서 날 기다렸다. 높은 학교 언덕만 생각하면 내년 복학이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장난스레 말을 던진 민규는, 시간만 맞으면 학식 같이 먹자는 내 말에 언덕 그깟 거 아무것도 아니라며 말을 바꿨다.




— 오늘 입은 코트 나랑 비슷하다.

— 나 따라 하지 마.

— 내 단추는 더블이야.

— 좋겠다. 하나만 떼 줘.




지하철 플랫폼 벽에 걸린 거울에 나란히 서서 서로 코트를 시기한다. 내 키는 민규의 가슴팍쯤, 물끄러미 내 얼굴을 쳐다보던 민규는 손으로 내 머리를 살포시 눌렀다. 너랑 나랑 키 차이 잘 어울리나. 얼떨결에 안긴 꼴이 된 나는 망부석이 됐다. 코트에 찔러 넣은 손에 땀이 차고 고장 난 침샘에 여러 번 목 넘김을 할 즈음, 역으로 달려오는 지하철 소리에 시끄러운지 민규는 내 귓가에 소곤거리며 긴장을 풀었다.




— 우리 좀 커플 같나?

— ……어?

— 사람들이 다 쳐다봐.




누가 봐도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건데 말이지. 민규를 흘긋거리는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내 뒤로 숨었다. 아니, 숨은 것보다 허리를 숙여 얼굴만 감춘 꼴이었다. 너 좀 귀엽다, 라는 말 대신 뭐 하냐는 투박한 물음으로 고개를 돌렸다. 닿을 듯한 거리에 있는 민규가 살짝 입을 벌린다. 당황한 눈빛. 지하철 밖으로 쏟아져 나오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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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 그렇게 쳐다보면 어떡해.

— …….

— 심장 떨리게.




내 코트를 잡고 지하철에 발을 들인 민규는 문기둥에 등을 기댄 채 창밖을 쳐다봤다. 노곤히 지는 햇살에 살짝 얼굴을 찡그리다 멍하니 자신을 쳐다보는 나를 발견하고는 눈썹을 까딱거린다. 내 신발 새 거야. 부럽지. 민규는 대뜸 신발 자랑으로 분위기를 깨며 남은 정거장을 확인했다. 어색한 게 싫어서였는지, 그 순간이 부끄러워서였는지. 어쨌거나 눈 마주치며 대화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 내릴 역을 확인한다는 핑계로 몇 분 째 같은 곳을 보고 있다는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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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우, 우리 반대로 탔다.

— ……야.

— 진짜 카카오 맵 싫다. 너도 싫지?




















*




















둥근 달이 떠 있는 밤이었다. 반대로 탄 지하철을 돌고 돌아 겨우 목적지까지 온 우리는 스케이트화 대여장 앞에서 사이즈를 골랐다. 일단 240 신어 보고 결정해. 민규는 날 의자에 앉혀 손수 스케이트화 끈을 묶었다. 어때, 괜찮아? 스케이트 젬병인 내 손을 잡아 일으키며 의사를 묻는다. 딱 맞는 크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빙판에 스케이트화는 처음이라 펜스를 잡고 뒤뚱대는 건 별일이 아니었지만, 이런 내 모습을 보며 달려오는 민규는 굉장한 별일이었다. 처음엔 스케이트는 혼자 배우는 것이라 도와줄 게 없다며 저 멀리 도망치더니, 넘어질 것 같은 나를 보고 재빨리 달려와 손을 잡아주었으니 이것은 굉장한 별일이 아닌가.

스케이트 초보자들이 안전대를 잡고 걸음마를 시작할 때, 나는 민규의 손을 잡고 처음을 함께 했다. 장갑을 뚫고 느껴지는 체온과 내게 맞추며 걷는 민규의 스케이트화까지. 드라마 주인공이 썸을 시작할 때 나오는 스케이트 장 장면이 아니꼬와 채널을 돌렸었는데, 지금은 내가 주인공이 되어 달밤 스케이트 장면을 찍는다. 역시 썸은 스케이트지. 넘어지면 잡아주고, 빨개진 코를 가리키며 웃고, 그러다 전화가 오면…….




— ……아, 지금요?

— …….

— 일단 갈게요.




카페에 대타가 필요하다는 연락이었다. 민규가 머뭇거리며 입술을 들썩인다. 나는 괜찮다고 말했다. 돌연 잠수를 타버린 스탭에 대한 분노와 민규에게 애걸복걸 부탁하는 사장의 목소리가 핸드폰을 뚫고 나올 정도였으니, 입장이 난처해지지 않으려면 데이트는 이쯤 해야 했다.




— 두 시간만 커버 치면 돼. 카페 가서 잠깐만 기다려.

— 괜찮아. 혼자 가도 돼.

— 데려다 줄게. 밤이잖아.




신발을 갈아 신고 카페로 돌아가는 와중에도 잡은 손은 놓지 않았다. 누가 먼저 빼지 않았을뿐더러 힘을 주지도 않았다. 의식했으나 의식하지 않은 느낌이 좋았고, 손을 잡아 가까워진 거리에서 풍기는 옅은 향수 냄새도 좋았다.











[세븐틴/민규] OFF ON OFF _ 어떤 걸로 드릴까요? | 인스티즈

— 왜 나 보면서 웃어?

— 아닌데.

— 방금 피식 했잖아.

— 밤이라서 표정이 굴절되나 보네.




얼굴을 숨기는 내게 장난을 거는 민규를 피해 일부러 앞장 서서 카페에 들어서자, 사장은 대뜸 민규를 끌어안고 등을 토닥였다. 보고 싶었다며 넉살 좋게 인사한 민규는 가게를 나서는 사장에게 손을 흔들고 스태프 룸으로 향했다. 구석에 앉아 뻑뻑한 렌즈에 누액을 넣고 눈물을 흘릴 때쯤, 대형 캐리어를 질질 끌며 가게 안으로 들어온 윤정한이 격정적인 손가락질로 나를 반겼다. 촉촉한 눈으로 민규와 알콩달콩 썸 좀 타보려고 했더니 방해꾼은 여기서도 나타나는구나. 넌 밤에 여길 왜 오는데. 태.앙.신. 너는 일생에 도움에 안 돼.




— 너 만나러 온 거 아니거든.

— 어쩌라고.

— 민규는?

— 네가 걔를 왜 찾아?




때마침 명찰을 걸고 내부로 들어오던 민규가 반갑게 손을 흔든다. 내가 아니라 윤정한에게. 꼬리를 흔들며 폴짝 안겨 어화둥둥 내 사랑아 어쩌고 노래를 부르는 윤정한을 밀어내며 신경질을 부리면서도 다정히 안부를 묻는다. 인생의 궁금증이 여기 다 모였다. 나는 누구이고 여긴 어디인가. 윤정한은 뭐고 김민규 너는 또 무엇인가.

윤정한은 캐리어에서 프라하 전통 차 세트를 꺼내다 정신 못 차리는 나를 발견하고 무엇을 깨달은 듯 크게 아-, 탄성을 질렀다. 발뒤꿈치를 들어 민규와 대등한 어깨동무로 친분을 과시한 윤정한은 씨익 웃으며 내게 소개했다.




— 인사가 늦었네. 이쪽은 김민규. 나랑 친구.

— 친구라고?

— 너랑 소개팅하려고 했던 사람.

— ……뭐라고?

— 네가 뺀찌 논 소개팅. 상대방이 얘라고.
















— 어? 왔다. 쟤가 김민…….

— 말하지 마. 집중해야 해.

— 뭔 말이야. 너랑…….

— 말하지 말라고. 조용히 해.










— 너 진짜 소개팅 안 나가?

— 지금 폴링럽 한 거 안 보여?

— 원래 젊어서는 사서 고생한다고 하는데, 그게 너였나?

— 어엉, 여행 잘하고.










— 김민규 맘에 들어?

— 야, 나 완전 심장이……. 근데 네가 이름을 어떻게 알아?

— 어?















— 설마 사서 한다는 고생이…….

— 소개해 주려고 했는데 집중해야 한다고 말하지 말라고오- 말라고오-.

— 그럼 일부러?

— 말하지 말라며. 난 입이 없어요.




입에 자크를 채우고 민규 뒤에 숨어든 녀석이 빼꼼 고개를 내민다. 그리고 곧바로 격렬한 전투가 시작됐다. 얄밉게 피해 다니는 윤정한을 잡으려 손을 뻗자 둘 사이에 애매하게 낀 민규가 고통을 수반했고, 손님이 옴으로써 윤정한의 볼때기를 움켜쥔 나는 진실의 테이블에 앉아 심문을 시작했다.




— 나는 솔직히 잘못한 게 없지. 이어주려고 한 건데 네가 뺀 거잖아.

— 소개팅에 나올 사람이 김민규라고 말이라도 해줬으면……!

— 내가 그랬잖아. 어? 왔다 쟤가 김민…….

— 그래서 뭐!

— 네가 말을 끊었어, 안 끊었어? 그것도 두 번이나? 지금 이 시점에서 네가 내 탓을 해야 할까?

— 아악! 말하지 마!

— 봐, 지금도.




말빨로 이겨보려 겁대가리 없이 등판한 내가 등신이지. 팔짱을 낀 채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대 여행의 피곤함을 풀던 윤정한은 주문받느라 정신없는 민규를 쳐다보며 말을 이었다. 아주 비밀스러운 목소리로.




— 고백을 어떻게 해야 제대로 먹히는 줄 알아?

— …….

— 일단 술을 먹고…… 악!




태.앙.신.의 저주가 몰려오기 전에 입을 봉쇄해 버려야 한다. 테이블 밑으로 정강이를 걷어차인 윤정한은 너무 아파 미쳐 돌아버린 건지 크게 웃으며 눈을 찡그렸다. 녀석은 민규에게 주려던 차 세트를 테이블에 놓고 걸어 둔 외투를 집는다. 네가 전해줘. 난 할 일 있어서 이만 간다. 자신의 몸만 한 캐리어와 함께 문을 나서는 뒤통수를 힘껏 째리고 나서야 이 사단의 주인공 중 한 명인 민규를 떠올렸다.

시내 한복판에 있는 카페라 줄이 길다. 밤이어도 손님이 끊이질 않았다. 두 시간의 곤욕을 치러야 하는 민규를 까치발로 훔쳐보며 차례가 되기만을 기다렸다. 어느덧 마지막 주문을 기다리는 남자. 마지막 주인공인 나. 서로 말없이 눈을 들여다 보며.

근 한 달간 삽질만 하다 어렵사리 말을 트고 번호를 묻고. 카톡을 주고받다 데이트 약속을 잡고. 라이카의 피사체가 풍경이 아닌 내가 되고. 프레임엔 어느새 하나가 아닌 둘이 되고.















[세븐틴/민규] OFF ON OFF _ 어떤 걸로 드릴까요? | 인스티즈

— 어떤 걸로 드릴까요. 아메리카노 말고 아메리칸은 있는데.



















운명이라는 게 참.




















+



[세븐틴/민규] OFF ON OFF _ 어떤 걸로 드릴까요? | 인스티즈

— 뭐야, 왜 이 시간에 전화질이야.

— 어제 나 일하고 있을 때 너랑 같이 왔던 사람 있잖아.

— 김여주? 걘 왜?

— 몇 살이야? 우리랑 동갑?

— 그렇지.

— 너랑 같은 학과?

— 엉.

— 이름이 뭐라고? 다시.

— 너 뭐냐? 냄새가 나는데?

— 당연히 도와 달라고 전화한 거지. 이 새벽에 너랑 무슨 용건이 있어서 통화 요금 아깝게 시간을 끌겠니.

— 약간 상처받는 발언인데요.

— 아니이-, 다리만 놔 달라고.

— 내 매끈한 다리?

— 그냥 자라.

— 걘 잘 웃는 사람 좋아해.

— 나 좀 잘 웃지 않냐?

— 우리 민규, 덧니를 어필해 봐. 원래 보여주려고 태어난 거잖아.

— 지랄하지 마.

— 아이구, 그래쪄요? 김여주 좋아해쪄요?

— 너는 진짜 도움이 안 돼. 내가 라이카 살 때부터 알아봤어. 매장 좀 같이 돌아 달라고 그렇게 부탁했는데 침대 축구 봐야 한다고 거절했잖아. 침대 위에서 봐야 진가를 안다면서……. 야, 내 말 듣고 있냐? 끊었어? 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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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회원12.159
기다렸어요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5년 전
독자1
작가님 필력 진짜 최고에요ㅠㅠㅠㅠㅠ 글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5년 전
독자2
작가님 기다렸어요ㅠㅠㅠㅠㅠㅠ 밍구 너무 귀여워요ㅠㅠㅠㅠ
5년 전
독자3
작가님 기다렸다긩 ㅠㅠ
5년 전
독자4
작가님 ㅠㅠㅠㅠㅠㅠ 아 진짜 작가님 글 읽으면 기분 몽글 몽글 너무 좋아요ㅠㅠㅠㅠㅠ 다음편도 기다리고 있을게요 !
5년 전
독자5
작가님 최고...
5년 전
독자6
작가님 사랑해요 ㅠㅠㅠㅠ🥰🥰🥰🥰🥰❤️❤️❤️❤️❤️❤️
5년 전
비회원106.103
작가님 보는 내내 입꼬리가ㅠㅠㅠㅠㅠ 사랑합니다ㅠㅠㅠㅠ
5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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