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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혁 몬스타엑스 샤이니 온앤오프
500ER 전체글ll조회 584l 5


제목이 없어여


그리고 쓰다 말았죠




 Q. 한국에 온다는 소식에 많은 사람들이 놀랐다. 다시는 오지 않을 거라 예상했었다. 나 또한 그들 중 한 명이고.

A. 나도 내가 그곳에 다시 가게 될 줄은 몰랐다. 3년 전에 잠깐, 아주 잠깐 들렀던 적이 있는데 그 땐 뭘 할 틈도 없이 바로 일본으로 다시 건너갔었다. 이번엔 감회가 조금 새롭다.

Q. 이번 공연으로 마련된 수익은 전액 보육 시설에 기부된다고 들었다.

A. 그럴 생각이다. 입양아들을 위한 후원금으로도 사용할 예정이다.

Q. 그렇게 생각한 데에 특별한 이유가 있는가?

A. 아무래도 나 또한 입양아이기 때문이지 않을까. 동병상련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나는 그 아이들이 정말 좋은 가정으로 보내졌으면 한다.

Q. 사람들이 마지막 곡의 정체에 대해서 굉장히 궁금해 한다. 의미라든가 징크스라든가. 그런 게 있는가?

A. 사실 이 말을 할까 말까 많이 고민했다. 나에게는 형제가 한 명 있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아서 따지고 보면 남이기는 한데, 그래도 우린 서로 형제라고 생각했다. 내가 미국으로 가게 되었을 때가 열한 살이던 해인데, 그 때 그 아이와도 헤어졌다. 서로 참 많이 의지했었기 때문에 정말 많이 힘들었다. 그 곡은 그 앨 위한 곡이다. 자라면서 가장 힘들었던 날마다 걜 생각하면서 조금 조금씩 써 내려가던 것이 어느새 하나의 곡으로 탄생한 거다. 어찌 보면 내 고통이 고스란히 담겨 있기도 하고, 또 다르게 생각하면 그 곡을 쓰면서 아픈 걸 잠시나마 잊었다. 마지막에 그걸 연주하는 이유는, 혹시라도 그 애가 공연장을 찾을까 봐. 너무 일찍 연주해버리면 혹시라도 늦게 올지 모르는 그 애가 듣지 못할 것이 아닌가. 그게 이유다.

Q. 생각도 못했던 굉장한 의미가 담겨 있는 것 같다. 그럼 혹시라도 볼지 모르는 형제에게 짧게 한 마디 한다면?

A. 그냥. 많이 보고 싶다고. 그렇게만 말해주고 싶다. 그게 내가 그 애와 떨어져 있는 동안 느낀 감정의 모든 것이니까.

 

 

=이 편이 처음이자 마지막

 

 

 

 

 

게이트에서 나오자마자 인공적인 빛이 쏟아졌다. 섬광에 가까운 그것들은 번쩍번쩍 명멸하며 피사체를 열심히 쫓았다. 주변에 몰려든 사람들은 두 갈래로 나뉘었다. 한 쪽은 내가 한국에 온단 소식을 듣고 꽤 늦은 시각임에도 공항까지 찾아온 사람들, 나머지는 내가 누구인지는 모르겠으나 카메라가 쫓아다니니 일단 구경이나 해 보려는 사람들. 그들의 부조화를 보며 나는 아주 잠깐 동안 한국에 온 것을 후회했다. 그러나 재빠른 매니저는 앞을 휘적거리며 길을 텄고, 내가 더 깊은 후회에 빠지기 전에 걸을 만한 자리를 만들었다. 나는 쏟아지는 질문 공세를 무시하며 공항 바깥으로 계속 걸었다. 한국에 온 것은 3년 만의 일이다. 그러나 그 때와 지금의 간극엔 달라진 것이 하나도 없다. 기껏해야 사람들 옷차림이나 달라졌을까.

 

마지막 공항 문을 완전히 통과하고 바로 앞에 세워진 차에 곧장 올라탔다. 안이라도 찍으려 카메라를 들이미는 기자들을 보고 있으니 대단한 톱스타라도 된 기분이 들었다. 사람들은 웅성거리며 덩달아 차를 훑고 지나간다. 안에 대단한 톱스타가 아닌 피아니스트나 앉아 있어 좀 미안해졌다.

 

“올 때마다 힘들지?”

“힘들다 그러면 저것들 다 떼어내 줄 수 있나?”

“차라리 피아노를 칠게.”

 

농담 식으로 가볍게 받아친 매니저가 엑셀을 밟았다. 차체가 앞으로 전진하고, 동시에 차에 달라붙어 있던 사람들이 순식간에 떨어져나갔다. 룸미러로 보이는 뒤쪽엔 카메라 데이터를 빠르게 돌리며 확인하는 기자들 모습이 점점 까마득해져가고 있었다. 나는 그들이 소실점이 되어 사라지기 시작할 때쯤 눈을 감았다. 차 안의 인공적인 냄새를 싫어하는 나를 알고 미리 창문을 열어둔 매니저의 배려 덕분에, 3월에만 부는 한국의 바람을 완연하게 느낄 수 있었다.

 

 

 

 

“우선 오늘은 쉬고 내일부터 빠듯해질 테니까 일찍 준비하고 있어.”

 

카드키를 테이블에 올려둔 매니저는 부엌에 가서 뭘 좀 뒤적거리더니 이내 룸을 나갔다. 미국에서 오전 열 시쯤 출발했는데 서울에 도착하니 이제 곧 자정이었다. 한국은 시간이 한참이나 빨랐다. 그래도 시차 같은 건 무난하게 적응하는 편이다. 나보다도 더 골골대는 매니저가 문제였지만.

 

13시간의 어마어마한 차이를 건너뛴 담백한 몸뚱이를 이끌고 테라스로 향했다. 둥글게 난간이 쳐진 테라스엔 중간 크기의 테이블과 의자 두 개만 달랑 있었다. 나는 의자 하나를 나머지 의자 끝에 거꾸로 붙이고 그 위에 앉았다. 다리를 쭉 뻗고 편하게 몸을 뉘이니 금세 노곤해졌다. 누가 올려둔 것인지 작은 바구니에 비스킷이며 간단한 군것질 거리가 가득했다. 장시간 비행으로 배가 고프긴 했지만 굳이 먹을 생각은 없었기에 그냥 두었다.

 

한국의 밤은 미국의 그 시간보다도 솔직했다. 온갖 탁한 것들에 둘러싸여있다가도, 이 시간 즈음이 되면 장막이 걷히고 말끔해진 모습이다. 특히나 선선하게 부는 바람은 오롯이 한국에서만 느낄 수 있는 것이다. 미국을 제하고도 많은 곳을 다녔지만, 그 어디에도 이 같은 정취는 없었다. 유일하게 이 나라에서만 부는 바람. 탁해졌던 존재로 하여금 솔직해지기를 종용한다. 나는 또 슬그머니 속에서 그 애 생각을 끄집어냈다.

 

 

우리가 처음 만난 것은 나와 그 아이 모두 여섯 살이던 해였다. 나는 그 때에 엄마와 단 둘이 살고 있었고, 엄마는 미용실을 전전하며 아르바이트를 했다. 배운 것도 기술도 없어 여기저기 옮겨 다니며 일을 하는 탓에 바빠서 집에 잘 들어오지도 못하는 엄마는, 내게 늘 옆집에 가 있으라며 옆집 열쇠를 주머니에 넣어 주곤 했다. 그러나 나는 그곳에 가지 않았다. 옆집은 엄마가 매번 쌀을 얻어 오던 여자의 집이었다. 그녀는 엄마를 싫어했다. 나는 엄마를 싫어하는 그녀가 싫었다. 그곳에 있을 바에야 바람도 채 막아주지 못해 벌벌 떠는 한이 있어도 내 집에 있는 것이 나았다.

 

그 날도 언제나처럼 얇은 여름용 이불을 꽁꽁 둘러 구석에서 몸을 녹이는 중이었다. 아무리 여며도 들어오는 바람에 팔뚝을 부비고 있었는데 밖에서 철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엄마가 돌아올 시간이 아닌 것은 알고 있었다. 혹, 나쁜 사람은 아닐까 걱정을 하면서도 나는 은근한 호기심에 발을 떼었다. 손잡이를 상실한 문을 팔뚝으로 밀고 마침내 먼지 쌓인 마당으로 나갔을 때, 나는 이름 모를 남자와 그를 닮은 그 앨 마주했다. 어리둥절한 채 사방을 관찰하는 나와는 다르게, 그들은 무척이나 태연했다. 네가 경수구나. 남자가 네게 묻는 것도 인사를 하는 것도 아닌 말투로 말했다. 나는 대답하지 않고 곧장 다시 방으로 들어갔다.

 

하루 종일 배를 곯아 뱃가죽에서 기괴한 소리가 났다. 끔찍하게 조용한 공간에 짐승의 울음소리처럼 부자연스러운 음계가 양산됐다. 남자는 가방을 끌어 그 속에서 소보루빵 몇 개를 꺼내 내게 밀었다. 동네 빵집에서 대충 구워낸 모양새가 볼품없었다. 나는 주저했다. 복지관에서 주는 급식을 마다하고 집으로 돌아왔기 때문에 나는 무척이나 그것이 먹고 싶었다. 부담스러운 것은 그 애의 시선이었다. 아니, 시선이라 할 것이 없었다. 나를 보고 있지만 의식은 없었고 감정도 채색도 없는 불편한 눈동자였다. 나는 조금 더 망설이다가 빵을 집어 허겁지겁 먹기 시작했다. 거지처럼 입에 밀가루 덩어리를 우겨넣는 내 모습을 보며 남자는 좁은 집이 떠나갈듯 웃었다. 그 웃음이 불쾌했지만 꾸역꾸역 빵으로 눌러 넘겼다.

 

일을 마치고 돌아온 엄마는 내게 남자를 ‘아빠’라 소개했다. 나는 자동적으로 날 불편하게 보던 그 애가 내 형제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내가 두 번째로 그 앨 쳐다보았을 때에도 그 앤 날 무의미한 홍채로 담담히 직조했다. 머쓱해진 나는 엄마의 뒤로 가 숨었다. 엄마는 내 손을 부비며 온기를 제공했다.

 

뜻밖에도 별다를 것 없는 날들의 연속이었다. 마치 아주 오래전부터 그래왔던 사람들인 양 살았다. 아침에 일어나면 4인 가족의 식사를 했고 엄마와 남자는 일을 나갔다. 그 애와 나는 잠시 집에서 시간을 보내다 복지관 차가 오면 그것을 타고 복지관으로 갔다. 늦은 오후가 되면 집으로 돌아와 빵이나 과자로 끼니를 때우고 엄마와 남자를 기다렸다. 여섯 살의 어린 애들은 무서운 속도로 새로운 일상에 적응했다.

 

그러나 가난한 자들에게 행복은 사치스러운 것에 지나지 않았다. 4인 가족의 단란한 가정은 6개월이 지나지 않아서 붕괴되었다. 일을 마치고 돌아오던 엄마는 오토바이에 치였다. 그리고 그 오토바이를 몬 것은 ‘아빠’였다. 엄마는 그 자리에서 죽었고 그는 경찰에 체포되어 수감 생활을 시작했다. 빠르게 진행되는 일련의 순간들 앞에서 여섯 살배기 어린 애들은 순간의 발치에도 채 다다르지 못했다. 나와 그 앤 일주일 쯤 지나서 보육원으로 옮겨졌다. 차에서 내려 바로 보이는 팻말에 적힌 단어가 음산했다. 고아원. 우리는 고아였다.

 

그곳에서 우리는 열한 살이 될 때까지 지냈다. 열아홉이 되면 자발적으로 나가게 되었지만, 그 전에 입양이 된다면 더 빨리 나갈 수도 있었다. 우리는 후자였다. 학교를 마치고 돌아왔을 때, 원장은 내게 미국인 부부를 소개했다. 금발의 머리를 하고 피부가 비정상적으로 하얗던 그들이 나는 무서웠다. 내 옆에 선 그 애의 손을 움켜쥐며 그것을 그 애에게 피력했다. 그 앤 엄마가 내게 그랬던 것처럼, 내 손등을 부비며 나를 안심시켰다. 나는 거짓말처럼 마음이 가라앉았다.

 

원장과 미국인 부부가 무어라 알 수 없는 문장을 주고받으며 웃기도 하고 고개를 끄덕이기도 했다. 그들의 뒤편에 앉은 우리를 종종 가리키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그 애의 옆으로 더 붙어 앉았다. 자꾸만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대화가 끝난 것인지 어른들은 어른의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미국인 부부가 내게 다가왔다. 내 뺨을 어루만지며 무의미한 언어를 발설했다. 그러더니 내 손을 덥썩 잡았다. 나는 그들의 손에 이끌려 순식간에 보육원 밖으로 나왔다. 갑자기 눈물이 쏟아졌다. 나를 따라 밖으로 걸어 나온 그 애의 모습이 자꾸만 형태를 잃었다. 선이 흐려지고 몸뚱이가 흐물거렸다. 발악을 하며 그들에게서 떨어지려 했지만, 나는 이내 차에 태워졌다. 창문을 두드리며 내려달라 떼를 썼다. 어느새 차에 가까이 다가온 그 애가 창문에 손바닥을 펼쳐 보였다. 나는 뭐에 홀린 것 마냥 두꺼운 유리에 내 손바닥을 가져다 대었다. 그 앤 나와 손바닥을 마주하고 특유의 미소로 웃었다. 뭐라 말을 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들을 수 없었다. 막을 수 없이 흐르는 그것 때문에 나는 그 애의 얼굴을 제대로 볼 수 없었다. 미국인 부부가 잠시 원장과 인사를 하려 앞좌석의 창문을 열었을 때, 나는 의자 사이로 몸을 내밀고 그 애의 이름을 부르짖었다. 어린 음성은 채 그 애에게 닿지도 못해 공중에서 맴돌고, 차는 출발했다. 그게 나와 그 애의 마지막이었다. 살아온 생애의 가장 선명한 기억을 점령한 그 애. 나는 서울의 밤하늘을 보면 어김없이 그 앨 떠올린다.

 

 

 

 

-

 

 

 

 

공연을 앞둔 며칠 동안은 눈 코 뜰 새 없이 바쁘다. 차에서 대충 끼니를 해결하고 도착한 홀에는 여기저기서 고용된 인력들이 이미 이른 시간부터 움직이고 있었다. 공연 준비가 바쁜 것은 당연했지만, 이번 공연은 유난히 더 그랬다. 고국에서의 첫 연주. 나는 애처럼 들떠 실없이 웃고 말았다. 혼자 웃는 날 보며 매니저가 이상한 표정을 지으며 곁을 스쳤다. 괜히 헛기침을 하며 무대 위로 올랐다. 넓고 둥글게 펼쳐진 청중의 자리. 하나하나를 채울 이들을 생각하며 눈을 감았다. 그 인간군상 틈에 네가 있기를. 나는 조금 부질없는 기도를 하다 이내 뒷머리를 털며 무대에서 가뿐하게 내려왔다.

 

“오늘따라 알바가 많은 거 같네.”

“특별히 신경 써달란 피아니스트 부탁이 있어서.”

“아아, 그 얼굴까지 잘생겼단 사람?”

“그렇데? 나는 영 별로던데.”

 

매니저의 말에 내가 호탕하게 웃었다. 그는 나와 죽이 잘 맞았다. 본래 누군가와 깊게 교류하는 타입이 아닌 탓에 주변에 있는 사람이라곤 매니저와 양부모님, 둘 셋의 친구가 전부였다. 그 중에도 매니저와 가장 친근하게 지내는 것은, 아마도 그 역시 한국인이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미국으로 입양된 후부터 한국에 대한 어마어마한 향수에 빠졌다. 한국 제품을 보면 그 가격이 얼마든 몽땅 사버렸고 한국인이 지나가면 미친 것처럼 말을 걸었다. 그리고 나는 그러면서 슬그머니 고개를 쳐드는 생각에 무게를 실었다. 내가 이토록 그리워하는 것은 한국이 아닌 그 애인 것이라고.

 

미국 사람들과 나 사이엔 투명하고 두꺼운 벽이 있었다. 그것은 눈에 보이지 않아서 때때로 없는 것처럼 느껴졌으며, 허나 참으로 두꺼운 탓에 쉬이 없어지지 않았다. 다른 언어를 구사하고 다른 행동을 하며 다른 것을 먹고 다른 표정을 짓는 사람들. 내가 완벽하게 그들의 언어를 발음할 수 있을 때까지, 나는 끔찍한 외로움에 괴로워했다. 부모의 틀은 깨어졌다 다시 붙었으나 원래의 그것과 결코 같을 수 없었고, 바람이 새고 먼지가 쌓인 집은 어느새 2층짜리 멀끔한 주택으로 바뀌어 있었지만 나는 결코 편하게 잠들 수 없었다. 무엇이 나를 불편하게 만들었던 걸까. 무엇이 나를 새벽 내내 울게 했을까. ……사실 나는 그 ‘무엇’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머리가 크고 시간이 더 흐를수록, 망망했던 것이 선명하게 두드러지고 내게 이상한 기대감을 심어 주었다. 마치 엄마의 손을 잡은 것처럼 안온했던 그 애의 손아귀. 나는 언젠가 꼭 그 손을 다시 잡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생각엔 변함이 없다.

 

“경수씨, 간단하게 몇 마디 정도만 쳐 줄래요? 음향 좀 체크하게.”

 

음향을 보조하는 스텝에게 손으로 오케이 싸인을 만들어 보이고 나는 다시 무대 위에 올랐다. 널찍한 무대에 덩그러니 놓인 그랜드 피아노. 순백의 숭고한 자태를 한 채 한결같은 모습이다. 뚜껑을 열고 고르게 나열된 그것들의 위에 손가락을 얹으면 나는 세계의 어떤 흐름과도 일치하지 않고 홀로 선다. 오롯이 내 피부를 통해서만 공명하는 음계. 오롯이 내 피부만을 밟고 선 음악. 나는 그들의 중심을 유영하며 찰나에 빠져든다.

 

“아, 되도록 크게 꽝꽝 울리는 곡이면 좋겠어요. 맨 뒤에서도 잘 들리는지 봐야 하니까.”

“시끄럽다고 귀 막기 없기에요.”

 

장난스럽게 말을 던진 내가 건반 위에 열 손가락을 올렸다. 하나의 것도 빠짐이 없이 모두 희고 긴 막대 위에 자리했다. 숨을 고르고, 머릿속을 부유하는 생각들을 찬찬히 가다듬으며 손에 힘을 실었다.

 

 

 

 

“이번에 인터뷰한 거 봤어요. 형제가 있었다면서?”

 

주최 측 실장이 퍽 궁금하다는 표정으로 내게 물었다. 입국 전에 했던 인터뷰 이야길 묻는 것이었다. 구구절절 옛 얘기 늘어놓는 걸 좋아하지 않을뿐더러, 게다가 그 애의 얘기라면 아무에게나 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대충 웃으면서 주변을 둘러보는 척했다. 실장도 더는 그 얘길 꺼내려 하지 않았다.

 

“커피 마실 건데 경수씨 뭐 따로 좋아하는 게 있나?”

“아무거나요. 자판기라도 괜찮구.”

 

내 말에 실장은 휴대폰을 꺼내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르바이트에게 심부름을 시킬 모양이었다. 실장의 뒤편에 자판기가 있다. 괜찮다며 저기 가서 300원짜리 커피나 뽑아 먹을까 했지만, 주머니를 뒤적이니 300원은커녕 십 원짜리 한 개도 나오지 않아 그만두었다.

 

“단 거 안 좋아하죠?”

 

휴대폰을 잠시 막고 그가 내게 물었다. 사실 단 걸 좋아하는데 고개는 가로 저었다. 실장은 알바생으로 추정되는 누군가에게 무어라 몇 마디 덧붙이고 이내 통화를 마쳤다. 몸이 찌뿌둥해 팔을 높게 들어 기지개를 켰다. 덜 추울까 싶어 얇은 옷만 죄다 챙겨왔더니 감기 기운이 돈다.

 

 

실장과 나는 여러 가지 화제를 돌려가며 대화를 이어갔다. 미국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하기도 했고, 3년 전 잠깐 한국에 들렀을 때의 이야기도 했다. 그러다가 실장의 인생 얘기를 좀 지루하게 듣다가, 나중에는 그의 군인 시절 이야기까지 들어야 했다. 나는 귀가 좀 뻐근해져왔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무엇보다도 인간들의 예의가 중요했다. 내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최대한 상대의 감정에 동요하는 척을 하는 것이 한국에선 우선이었다. 자의 반 타의 반 그와 눈을 맞추고 그의 얘기에 귀를 기울이는 척했다. 그러다 이제 좀 참을 수 없는 지경에까지 이르렀을 때, 운수 좋게도 그가 주문한 커피가 테이블에 내려졌다.

 

나는 재빠르게 그것을 집어 들었다. 수고했다며 그만 가보라는 실장의 말에 알바생이 고갤 푹 숙여 인사를 하곤 뒤로 돌았다. 그는 아우터 주머니에 손을 깊게 꽂고 밖으로 걸어 나갔다. 조용하고 나른하게 걷는 모양새가 꼭 누군갈 떠올리게 했다. 둥그런 뒤통수도 꽤 닮았다. 나는 커피를 입에 대었다가 그냥 다시 내려놓았다.

 

그 앤 이렇듯 내가 둔해진 틈을 타 공격했다. 천성이 느리고 나른하던 그 앤 불쑥 나를 덮칠 때에도 느리고 나른했으며 고요한 형태였다. 잠을 자려고 누워 눈을 감으면 그제야 슬그머니 모습을 드러냈고 온통 희미하게 가려진 곳에서나 선명하게 보였다. 결코 별개의 감정들이 몸집을 부풀렸을 땐 나타나지 않았다. 의식과 무의식이 모두 물러져 그것들을 구분할 수 없게 되어버리면 간극을 헤집고 고개를 들이밀었다.

 

“그만 가 봐도 되죠? 체크할 게 한두 개가 아니라서.”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니 실장도 의자를 뒤로 밀며 엉덩이를 뗐다. 다음엔 밥 한 끼 해요. 실장이 내 손을 맞잡으며 한국식 미소의 표상으로 웃었다. 나는 그의 얼굴을 쳐다보며 같은 미소를 지었다. 호탕하게 웃던 그가 이내 뒤로 돌았고 나도 그와 반대쪽을 향해 몸을 돌렸다. 모두 공연장 안에 있어 한산한 복도에 두 사람의 발걸음 소리만 정교하게 울렸다. 피아노 소리가 아닌 다른 것이라면 좀 듣기 싫은 것이 내 오랜 기질이었다. 나는 복도 중간에 놓인 정수기 위에 커피를 올려두고 귀를 막은 채 공연장으로 빠르게 걸었다.

 

 

 

 

“뭐래?”

“그냥. 도경수 피아노 열라 잘친다고.”

“실장한테 머리 맞았어?”

 

매니저가 정수리를 손바닥으로 툭툭 쳐 보이며 물었다. 나는 그의 행동에 아무렇게나 웃으면서 계단을 내려왔다.

 

“찾아 봤어?”

 

내 물음에 매니저가 계단 내려가는 것을 멈췄다. 못 찾았구나. 나는 직감했다.

 

“너 지내던 고아원이 없어졌나 봐. 기록들도 물론. 아, 입양 센터에 가면 있을지도 모르겠는데…….”

“됐어. 만날 거였음 언제라도 만나겠지.”

 

한국에 도착하기도 전에 지인을 끌어 모으고 모아서 그 애의 행방을 수소문했다. 하지만 알아낸 것은 단 한 가지도 없었다. 어떤 가정에 입양이 되었으며 가족은 누구이고 어디서 무슨 일을 하는지 단 하나도 알 수 없었다. 내가 그 애에 대해서 아는 것은 지극히도 평범하고 하찮은 것들이었다. 기껏해야 이름과 나이, 생김새 정도가 전부. 나는 순식간에 환멸감에 빠졌다. 비록 몸은 멀지만 그 애와 누구보다도 가까운 존재라 생각했던 것이 착각이라는 걸 깨달은 순간이었다. 실은 가장 먼 사람이었던 것이다. 떼어진 그 때부터 이미 만날 수 없는 길을 걷는 중인지도.

 

“대충 다 끝난 거지?”

“어. 리허설은 내일 오후에나 할 거 같다. 들어가서 쉴래?”

“아니, 바람이나 쐬려구. 차 키 있지?”

 

매니저가 잠시 주머니를 뒤적이더니 이내 차 키를 꺼내 내게 건넸다. 나는 그것을 가볍게 받아 들고 손으로만 인사를 한 뒤 계단을 다시 올랐다. 어둡게 조명이 꺼진 탓에 발밑이 잘 보이지 않았다. 혹시라도 넘어질까 염려하여 천천히 발을 뗐다. 공기 속을 제멋대로 부유하는 기분이 들었다. 

 
 
구독료 따위 ㅇ벗어!!
는 뒤이어 쓸 생각이 없으므로.
안ㄴ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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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아니 이렇게 좋은데 다음편이 없다니ㅠㅠㅠㅠㅠㅠㅠ안대여 보고싶은데ㅠㅠㅠㅠ뒷편ㅠㅠㅠㅠ
11년 전
독자2
되게 잔잔한글인것같아요 아르바이트생? 개가 백현이인가요? 아무튼 경수가 백현이 찾았으면좋겠어요 근데 왠지 찾아도 멀리서 지켜만보고 다시 미국 갈것같아ㅠㅠ
11년 전
독자3
왜 다음편이 없죠? 네? 빨리 대답해주세요(오열) 젠장 죽을것같음 ㅇ<-<
11년 전
독자4
헐 오백 ㅠㅠㅠㅠㅠ백현이랑 만낫으면 ㅠㅠㅠㅠㅠ
11년 전
독자5
경수가 백현이를 만나지 못한것으로 일단 그렇게되네요ㅠㅠ 잠시스쳐지나갔어도 몰랐을터이고..ㅠㅠ 외로움과 그리움 특히 그리워하는 마음이 덤덤하게 말하지만 정말 가슴이 미어질거 같아요..!
11년 전
독자6
진짜 내용도 좋고 문체도 좋으시구ㅠㅠ 다음편이 보고싶어지는 글이네요ㅜㅜ 하지만 다음편 쓸 생각이 없으시다니까..ㅠㅜ(오열) 잘 읽었습니다!
11년 전
독자7
작가님 다음편 안쓰세요?(오열)
11년 전
500ER
어머 ㅋㅋㅋ급쪽지에 당황했네요 ㅋㅋㅋ ㅠㅠ뎨동 ㅠㅠ기 떨어져서 ㅠㅠㅠ
11년 전
독자8
나는!!!! 독자3!!!!! 빨리 다음편 쓰시란말이에요 젠장 비타오백으로 맞고싶지않으면...
11년 전
500ER
ㅋㅋㅋㅋㅋ이쁜 오백이들을 두고 감히 응가손을 더 놀릴 수가 엄슴다 ㅋㅋㅋㅋ 읽어주신 것만으로두 감사해여♥
11년 전
독자9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아 진짜 앓다죽을 오백이들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하.......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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