좁은 욕조안에서 서로에게 고개를 파묻은채 한참을 있었더니 어느새 물이 미지근해졌음을 느꼈다. 윤기가 먼저 고개를 들어 태형의 곱슬곱슬한 노란머리칼을 바라보았다.
" 물 식었다. 나가자. "
태형이 고개를 끄덕거리더니 몸을 일으켰다. 미지근한 욕조안의 물이 작은 파도를 만들어내며 출렁였다. 잠이 오는지 물기를 털어내다시피 대충 닦아내고는 속옷만 입고 침대에 벌러덩 눕는모습이 거듭 대형견같다는 생각이 들게했다. 배수구 뚜껑을 열어 욕조위에 올려놓자 미지근한 물이 작은 소용돌이를 일으키며 빠져나갔다. 물이 빠져나감과 동시에 살짝 한기를 느낀 윤기의 몸에 소름이 오소소 돋는다. 그대로 큰 티셔츠하나만을 꿰어입은채로 태형에게 안겨들자 태형이 윤기를 꼭 안아 머리를 쓰다듬는다. 따뜻해, 윤기가 생각했다.
" 골든리트리버, "
" 뭐? "
" 너 같아. "
전부터 말해주고싶었어, 윤기가 태형을보며 웃는다. 태형은 영문도 모르고 따라웃는다. 휘어지는 태형의 눈꼬리가 무거운지 느리게 꿈뻑였다. 이제 자도 되, 윤기가 속삭이자 태형이 고개를 살짝 끄덕이더니 금새 새근새근소리를 낸다. 살짝 젖은 태형의 머리가 곱슬곱슬 곡선을 그리는것에 비해 직모로 예쁘게 뻗은 속눈썹이 움찔움찔거렸다. 평안한 태형의 자는모습을 보고있자니 다시 잠이왔다. 다시금 무거워진 눈꺼풀은 윤기를 편안한 꿈속으로 인도했다. 꿈속에서, 윤기는 흰 나비였다. 우아한 날갯짓을하며 붉은 노을빛을 날개에 한껏 담아 노오란 갈대밭을 유영했다. 아무도 없고 들리는 소리라곤 노란 갈대가 서로에게 몸을 부대끼며 나는 바스락소리, 간간히 들리는 가을바람소리였다. 평화로움을 만끽하며 꽃을 찾아 헤맨다. 저 멀리 노을빛에 붉게물든 하얀 꽃이보인다. 윤기를 닮아 하얀꽃은 흐드러지게 웃으며 윤기에게 손짓한다. 윤기가 곧 가겠노라며 날갯짓을하자 하얀꽃이 가을바람에 고개를 끄덕이며 은은한 향내를 풍겼다. 그 은은하고 묘한향에 이끌려 힘찬 날갯짓을한다. 좀처럼 가까워지지 않는 꽃, 개의치않고 계속 날갯짓을한다.
" …흐윽! "
다시 찾아오는 복통과함께 윤기의 날개가 잘게 찢어진다. 윤기는 벌거벗은 몸이되어 갈대밭속으로 떨어진다. 그래도 하얀 꽃밭이라서 다행이다 하고 생각하는 순간, 자신이 떨어진곳은 하얀 꽃밭이아니라 역겨운 털투성이의 커다란 거미의 하얀 거미줄이라는것을 깨닫는다. 거미줄에 전해진 작은 충격에 이끌려 털투성이의 다리로 윤기에게 다가오는 그 모습에 토가 치민다. 눈이 뜨이질않는다, 토가 목젖까지 치밀어오르는데 그 상태로 역류하지도 내려가지도 않은채 윤기의 호흡을 방해했다. 하얀 윤기의 피부가 시체같은 창백함을 띄었다. 그리고 환청, 좋지? 이제 만족하나? 윤기가 처음 강간을 당했을때 강간범에게 들은 말이다. 겁에 질린채로 고개를 끄덕이는 윤기의 네, 네, 하는 목소리. 정적, 외딴호텔, 끊어질듯한 허리, 몸의 붉은자국들. 모든 기억들이 파노라마처럼 눈앞에 펼쳐진다. 키득거리는 비웃음과 하얀 가루들이 윤기의 몸을 휘감는다. 넌 절대 날 벗어날수없어, 하얀가루들이 몸을 기어오르며 속삭인다. 이 모든게 역겨워 토악질이 나왔지만 막힌 목은 꿈쩍도 하지않은채 역겨움을 유지한다.
" 욱! "
눈이 번쩍 뜨였다. 꿈, 꿈이었다. 깨끗하게 씻겨나갔던 몸이 다시 식은땀으로 끈적거렸다. 악몽때문에 쏟아지지 못했던 토가 식도를타고 솓구쳤다. 화장실로향해 달음박치는 윤기의 발바닥이 땀에 바닥과 달라붙어 쩍쩍소리를 낸다. 먹은것도 없는데 또 다시 몸안의 모든것을 토해낸다. 이러다 정말 장기까지 나오는것이 아닌가 싶을정도로 끝없는 구역질이 윤기를 괴롭혔다. 이제 더 이상 토해낼것도없는지 헛구역질만 웩웩해댄다. 시큰해진 코끝과 따가운목이 서러워 눈물만 흐른다. 눈물로 흐려진 시야안에는 희묽은 물토가 섞인 변깃물이 검정색 털복숭이 거미들로 변해 윤기를 비웃고있었다. 소름이 돋아 몸을 뒤로하자 거미들이 윤기의 발끝을 타고 스멀스멀 올라온다, 소름이끼쳐 발작하며 소리를 질러댔지만 히익 하는 쇳소리밖에 나오지않아 옆에 살짝 벌어진 타일조각을 짧은손톱으로 들어내어 거미들을 힘껏 찍어댔다. 죽어, 사라져!
" 미쳤어?! "
거미를 마구 찍어대는 윤기의 손목을 잡아낸것은 태형의 손이었다. 윤기의 손이 부들부들 떨리며 타일조각을 떨궈냈다. 그제서야 눈앞에 들어온것은 자신에의해 마음껏 후벼파인 자신의 피투성이가 된 다리.
" ㄱ, 거미가… "
덜덜 떨리는 몸, 태형의 복잡한듯한 눈빛, 피투성이된 다리, 덜덜 떨리는 몸, 태형의 복잡한듯한 눈빛, 피투성이된 다리, 피투성이된 다리, 피투성이된 다리, 사라진 거미들.
" 이제 환각까지 보이는거지. 환장할 노릇이군. "
" 흐윽, 진짜, 거, 거미가, 거미가…!"
" 알았어, 이제 거미는 없어. "
태형이 팔을벌려 윤기를 안아 한손으로 윤기의 등을 토닥인다. 그제서야 다리에서 느껴지는 고통, 아이처럼 목놓아 엉엉우는 윤기. 흐려지는 눈앞에 사라졌던 거미가 잠시 모습을 나타내더니 대뜸 킬킬 웃어댄다. 윤기가 몸을 발작하자 태형의 괜찮아, 괜찮아 하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 태형아, 나, 아, 파, 흑, 흐윽… "
" 알아, 알아, 괜찮아. 치료해줄게. "
침착한 목소리로 대답하면서도 대뜸 답이 서질않는다. 슬럼가에 멀쩡한 병원이란 있을리가 없고, 갱과 마약에 어지간하면 연관되는걸 싫어하는 병원측에서 딱 봐도 마약중독자처럼 보이는 윤기를 순순히 치료해줄리 없었다. 태형이 한숨을 푹 내쉬며 품속에서 호흡이 안정된 윤기를 확인하고는 미간을 찌푸렸다.
" 집에 전화 되? "
끄덕, 윤기의 흐리멍텅한 동공이 그렁그렁한 눈물을 달고 아슬아슬하게 떨려왔다. 태형은 윤기의 어깨를 괜찮다는듯 툭툭 두드리고선 티브이옆의 낡은 전화기의 수화기를 들었다. 뚜- 하는 신호음이 들려오자 익숙한 손놀림으로 빠르게 번호를 누른 태형이 수화기를 손을든채 손가락을 틱틱거린다.
" 여보세요. "
" 나야. "
" V? 이거 어디번호야? 어젠 왜 바에 안왔고. "
" 친구만나서 다른 바에서 한잔했어. 지금 시간있어? "
" 있는데, 무슨일이야. "
" 직접 와서봐. 여기 주소가… "
수화기 너머의 낮고 굵은 남자의 목소리는 제멋대로인 태형의 말에도 침착하게 대응했다. 윤기의 집주소를 멋대로 불러놓고선 수화기를 딸깍 내려놓은 태형이 다시 화장실로가 어깨를 떨며 무릎에 얼굴을 묻고있는 윤기를 바라보았다. 아마 윤기에게 필요한건 약이겠지, 이 전에는 중독이 되었더라도 약을 맞고나나면 몽롱하지만 어느정도의 생활이 가능했다. 하지만 이제 환각까지 보이는 지경이니 더 이상의 약 사용은 정말 위험하다는 생각이 든 태형이 얼굴을 감싸쥐었다.
" ㅌ, 태형아, 나, 약, 좀… "
윤기가 새하얘진 입술을 깨물며 작게 중얼거렸다. 태형은 협탁위의 하얀 약 봉지를 바라보고선 갈등했다.
" 미안, 약은 있는데 물이 없어 윤기야. "
윤기가 잠시 고개를 들더니 환각이 다시 보이는듯 고개를 다시 푹 숙이고선 몸을 떨어댔다. 간지러워, 하는말을 몇십번 반복하는 윤기의 모습이 조금 소름이 끼친다. 술기운에 윤기를 다시 찾지않았더라면 어떻게됐을까, 윤기는 저 뾰족한 타일조각으로 기어이 자기 다리를 잘라냈을수도 있었던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 안도감과 불안감, 상반된 두개의 감정이 동시에 태형을 엄습해왔다. 숙취에 얼마 자지도못해 머리도 깨질듯하고, 안그래도 속도 좋지않은데 저 앞에서 발작하는 마약환자를 보니 토가 치민다. 아니, 윤기가 역겹다는게 아니라 그냥 마약환자가 발작하는 모습 자체가 실로 두 눈 똑바로 뜨고 보기 힘든 광경이다. 윤기의 찢겨진 다리에서 피가 줄줄이 흘러나왔다. 하얀윤기의 피부와 붉은 피가 마치 살인현장을 목격하는듯한 효과를 자아냈다. 슬럼가에서 살인현장이야 보기 드문것은 아니었으나, 하필 그 대상이 윤기니 기분이 언짢아 속이상했다.
" 의사불렀어, 조금만 참자 윤기야. "
" 나, 약, 약좀, 아파, 태형아… "
그냥 아프다고만해도 속상해 죽겠는데 끝에 저 이름을 꼭 담아내니 환장할 노릇이었다. 헤로인에는 일정량 통증완화 효과가 있다던가, 그래봤자 마약성분중에 하나겠지만 말이다. 윤기가 괴로워하는것은 보기 싫고, 약하는것도 보기싫으니 어찌할 도리가 없어 발만 동동굴렀다. 이 새끼는 왜 안와, 괜시리 자리에도 없는 방금 부른 사람한테 성질을 냈다가, 다시 약에 눈이 갔다가, 또 다시 윤기를 쳐다봤다가. 어깨를 움츠린채로 이제 배까지아픈지 배까지 움켜쥐고선 추운듯이 덜덜 몸을 떠는 윤기가 위태로워 보였다. 아 거 씨발, 결국 협탁으로 향한다. 윤기가 아프다는데 뭐 어째, 마약치료는 그렇다치고 사람이 지금 아프다는데, 저가 듣기에도 같잖은 변명을 투덜대며 기껏해야 오십미리정도 남은 생수통에 약을 털어넣고 흔들었다. 이놈의 하얀 약은 물에 넣으면 언제 있었냐는듯 자취를 감춰 투명해진다. 신경질적으로 주사기에 급하게 만들어낸 주사액을 넣어 윤기에게 다가간다. 흐느끼는 윤기의 어깨에 손을 얹자 윤기가 고개를 들어 주사기를 바라보더니 팔을 쭉 뻗는다. 젠장, 그놈의 메타돈인가 뭔가 하는 약만 구하면 이딴 헤로인따위 찾지도 못하게 다 불태워버리겠어. 물론 생계수단이니 윤기만 못찾게. 꽂고, 피스톤을 꾸욱 누른다. 어지간히도 투입했는지 이제 혈관이 꽁꽁 숨어 어디가 혈관인지도 잘 분간되지않았다. 그나마 다행인건 윤기의 피부가 하얗고 투명한편이라 핏줄색으로 대충 이쯤이겠거니 하고 찔러넣으면 그곳이 맞다는것 정도.
" 아윽, 흑! "
어쩐지 요즘들어 자주 듣게되는 마약환자의 탄성 섞인 신음. 윤기라 그나마 좀 낫긴하다만 적응되지않는 목소리. 윤기의 목 핏대가 확연하게 드러나는듯 하더니 고개를 머리위로 쳐들어 목 울대가 꿀렁인다. 마른 윤기의 손가락과 발가락이 쥐락 펴락, 뭐가 급한지 몰아치듯 쉬는 숨. 멍청하게 벌어져 뻐끔대는 입과, 벌어진 동공. 계속 보고있기가 거북한 그 모습에 등을 돌린다. 다리의 피는 괜찮을까 하는생각에 아차 싶었으나 지금 오는사람이 그닥 못믿을사람이 아니었다. 걱정은 되지만 믿으니까. 베란다로 나가 담배를 문다. 담배 안사둔거같은데 뒷주머니에 잔뜩 구겨져 꽂혀있던걸 보니 아마 존의 것 인듯했다. 모양은 찌그러져서 그닥 폼은 안나지만 폼낼려고 피는 담배가 아니니까, 불을 붙여 볼이 홀쭉해질만큼 깊게 빨았다. 윤기의 모습에 놀랐던 가슴이 안정되는 기분이 들었다. 이래서 마약을 하는건가, 하는 시덥잖은 생각 반, 윤기 걱정 반.
" V! "
" 왔네. "
담배가 반쯤 타들어갔을때 베란다 창살너머로 보인 노란택시와 남준이 보인다. 태형의 의형제, 굳이 정의 하자면 그렇다. 슬럼가 출신주제에 어느날 갑자기 공부한다더니 기어이 의사가 되고말았다. 뭐 만지기만 하면 다 부서지는 주제에 무슨 의사야 했는데 환자들은 예외였는지 잡지나 티브이에도 드문드문 얼굴을 비친다. 귓가에 남자구둣소리가 탁탁탁 들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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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님들..! 내가 왔습니다!
보고싶었습니다..! 혹여나 절 잊으신건 아닌지요ㅠㅠㅠㅠ
스토..리구성은 무슨, 하려고하니까 더 안되더랍니다. 그냥 푹 쉬다왔죠.
그래도 글을 섬세하게 쓰려고 노력중입니다!
언젠가는 ㅌ..텍파로도 풀고싶은데 이게 과연 텍파가 만들어질 글인가도싶네요..ㅋㅋㅋ
과분한 사랑 언제나 감사드립니다!
암호닉 신청은 가장 최근화에 해주세요~
늦은댓글 짧은댓글 긴댓글 모두 신경써서 읽고있습니다.
정말 정말 힘이나요!
암호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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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 기다렸죠 내님들? 달립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