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해서 줄줄 흐르던 코피가 그제야 멈췄다.
손에 들고 있던 휴지가 빨갛게 물들었다. 피로 물든 휴지를 쓰레기통에 버리고 화장실에서 나왔다.
수업시간이라서 그런지 복도에 아무도 없었다. 이 학교에 나 혼자만 있는 것 같았다. 교실에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끔찍하니까.
남우현이 또 어떤 눈빛으로 나를 쳐다볼지. 또 그 웃음을 지으며 나에게 무슨 말을 할지. 어떤 꼬투리를 잡아 나를 죽도록 팰 지.
옥상에 가기 위해 계단을 올랐다. 우리 학교는 다른학교와 달리 옥상문을 잠궈놓지 않았다. 그래서 소위 일진이라 불리는 아이들이
자주 올라가 담배를 피곤 한다.
초록색의 옥상 바닥에 많은 담배꽁초들이 널부러져 있었다. 그 중 남우현이 핀 담배꽁초도 있겠지.
아, 무의식적으로 남우현이 내 머릿속에 떠올랐다. 미쳤다, 김성규.
몇 십분동안 옥상을 돌아다녔다. 구석구석에는 민망한 흔적들이 많았다. 예를 들면 콘돔이라던가 피임약 같은 거?
이래서 고등학교엔 남고, 여고가 나누어져 있는 거다. 또 남녀공학의 안 좋은 점은 입이 가벼운 여자애들 덕분에
소문이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퍼진다는 것이다. 퍼지는 건 상관 없다만 그게 점점 불어나니까.
남고라면 입에 몇번 오르락 내리락 하고 금방 잊혀질텐데.
게다가 이 학교는 평범한 학교도 아니다. 전국에서 문제 좀 있다는 애들이 몰리는 학교다. 화장실엔 언제나
담배 연기가 자욱했고 수업시간에 화장은 기본이며 남자애와 여자애가 껴 안고 있는 장면은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그런 것을 보고도 아무 조치를 취하지 않는 학교라니. 정말 망해야되는 학교인 것 같다.
그런데도 우리 학교가 세상엔 좋은 학교라고 소문이 나 있는 건 아마도 이사장의 돈 뿌림 덕분일거다.
돈 먹고 입을 닫는 학부모가 이 학교엔 가득하니까.
수업 끝 종이 울렸다. 옥상임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의 발소리가 들려왔다. 남우현 패거리가 옥상에 올라오기 전에 내려가야한다.
마주치기라도 하면 또 엄청나게 맞을테니. 근데 나는 운이 없으니까, 내려갈 때 마주칠지도 모르겠네.
역시나.
내 예상이 맞았다. 딱 한 층만 더 내려가면 됐는데 남우현 패거리와 마주쳤다. 그냥 넘어간다면야 나야 좋지만 얘넨 그럴 애들이 아니니까.
남우현이 나를 또 빤히 쳐다보며 웃음을 지었다.
" 성규야. 왜 수업 안 들어왔어. "
" …미안. "
나의 대답에 남우현은 끄덕였다. 그리곤 내 귀에다 대고 속삭였다.
" 그럼 맞아야지. "
그렇게 나는 죽기 전 까지 맞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