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아,"
정적을 깬 건 이재환의 목소리였다.
너가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어 이재환을 바라보았다.
너의 눈빛을 살짝 피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너가 웃음이 새어나왔다.
뭔가 직감적으로 느꼈을 때 나오는 표정이었다.
"미안해, 별빛아."
별로 듣고 싶지 않은 말이였다.
몸 속 깊은 곳에서 꿀렁임이 느껴졌다.
하지만 진짜 추하게 이재환 앞에서 눈물을 보이고 싶진 않았다.
그냥,
괜히 말한 듯 싶었다 했더니 예감이 틀리지 않더라는 것.
그 뿐이었다. 너가 고개를 푹 숙였다.
너의 귀로 들리는 이재환의 말은 너무나 차가웠다.
"나를 특별하게 생각해주는 건 고마워, 그렇지만..."
말을 흐리는 이재환 모습에 너가 죄없는 손가락만 꼼지락대었다.
"...내가 널 오해하게 만든 것 같아."
오해,
오해구나,
"..그렇구나, 나는 너 행동에 오해한거구나."
"아니, 별빛아. 내 말은,"
"아냐."
이재환의 말을 끊고 깊게 숨을 들이쉬었다.
여기서 더 말을 하면 훌쩍이는 말투가 될까봐 눈에 힘을 부릅 주었다.
너가 입술을 움직이며 뜸을 들이다 간신히 입을 열었다.
"그걸로 충분히 설명된 것 같아, 재환아."
너가 눈을 질끈 감았다.
문이 드르륵 열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시끌벅적한 분위기가 느껴졌다.
차학연과 정택운이 음료수를 잔뜩 사들고 너와 이재환에게 다가갔다.
너가 벌떡 일어나 학연과 택운을 지나쳐 병실 문을 열었다.
"먼저 갈게. 몸조리 잘하고."
*
너가 핸드폰을 움켜쥐며 힘차게 걸어갔다.
오해,
지가 오해할 행동을 한건 알고 있나보네.
그래, 바보같이 혼자 설레서 별 망상 다 하고 그랬었어.
근데 너는 그렇게 헤픈 사람이었니.
도대체 왜 그렇게,
순간 감정이 벅차올라 쌓아두던 눈물이 터졌다.
차인다는 게 이런 기분일까.
너가 숨을 거칠게 몰아쉬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형용할 수 없는 배신감에 머리를 쓸어넘겼다.
아무리 생각해도 너 자신이 괜한 기대를 했다고 생각했다.
흔한 착각을 하고 다녔었다는 거다.
"별빛아!"
눈물을 흘리던 너가 팔을 붙잡혔다.
너 몸을 잡고 돌린 이재환은 헉헉 대며 너 앞에 서있었다.
두 손을 꼼짝할 수 없게 잡고 있어서 차마 눈물을 닦지도 못 했다.
"......."
"울지 마."
살짝 팔을 들어 너의 눈물을 닦아주려는 이재환에게 너가 얼굴을 돌렸다.
뒷걸음질을 치는 너를 빤히 보는 이재환이었다.
너는 감정을 추스리며 입을 열었다.
"지금 후회중이야."
"..뭘."
"내가 왜 좋아한다 말해놓곤 너 앞에서 이러고 있어야 하는 건지도 모르겠고,
너를 좋아한다 느꼈던 지난 날도 생각해보니까 난 아무것도 모른 채로...."
참았던 말을 꺼내다 숨이 텁 막혔다.
환자복을 입고 맨발에 슬리퍼만 신고 있는 이재환 모습에,
예전 한동안 집에 없었던 이재환을 매일 기다리던 너가 떠올랐다.
그 때도 그랬었다.
아무것도 모르고 그냥 너라는 이재환 자체만 기다렸었다.
너는 날 생각하지도 않았을텐데.
"...별빛아, 나는... 좋아하는 사람은 내가 지켜줘야만 한다고 생각해.
근데 지금의 나는 누군가를 지켜주기가 힘든 거, 이제 너도 알잖아.
.....그래서."
바닥에 뚝뚝 너의 눈물이 떨어졌다.
너를 바라보는 간절한 이재환의 눈빛을 너가 애써 피했다.
"나는 답을 할 수가 없어."
"...확인하려고 온거니?"
너가 곧게 이재환을 쳐다보았다.
이재환의 처진 눈동자가 너를 바라보고 잇었다.
"나는 남들처럼 같이 있어주지 못하니까, 너는 날 좋아해도 나는 그럴 수가 없다고.
나한테 그거 확실하게 말하려고 뒤따라 온거니...?"
그런 말 하지 않아도 안다고.
말하려다 더 이상 말이 안 나올 것 같아 입을 꾹 다물었다.
그래도 할 얘기는 하고 가고 싶어서 더 쏟아부었다.
"니가 무슨 병인지도 나는 몰라.
너는 그렇게 그것 말고도 비밀이 많은 애야.
그냥 내가, 그래도 널, 이해할 수 있을거라 생각했는데,"
......... 그렇게 날 밀어내려는 너 마음을 도저히 모르겠다.
그대로 휙 돌아섰다.
성큼성큼 어떻게 걷는 지도 모르고 무작정 병원 밖을 나섰다.
이렇게 화만 내고 나오니까 조금 후회스럽고 너 자신이 민망해서 거칠게 호흡을 내쉬었다.
퉁퉁 부은 눈으로 밖을 바라보자 너 마음과 같이 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빗소리에 너의 우는 소리가 묻히듯 너는 더 크게 울었다.
'저는 이재환이에요. 만나서 반가워요.'
'종이비행기 접을 줄 알아요?'
'맛있게 먹어요.'
'남자는 잘 만나고 왔나보죠? 응?'
'그 코트 입은 사내는 남자친구? 둘이 사이 좋아 보이던데.'
'이재환 좋아해?'
'...... 좋아하나 봐요.'
'.......별빛아.'
'..... 옆에 있어줘.'
띠리리리리링
너가 들고 있던 전화기가 시끄럽게 울려댔다.
너가 손으로 눈을 비빈 다음 휴대폰을 들어 전화를 보았다.
차학연이나 정택운일 줄 알았는데 예상과는 다른 사람이었다.
"상혁아."
'어디심?'
너는 휴대폰을 붙잡으며 얼굴을 찡그렸다.
"상혀그아..."
'울어?'
너가 입술을 다물었다.
우는 걸 티내고 싶지 않았다.
"안 울어....미친 놈아."
'만나서 얘기해. 어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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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벌..
저는 차일 거라고 생각 못하시겠지! 했는데 은근 차면 안된다고 말하는 댓글들이 보여서 당황..!ㅋㅋㅋㅋ
다음편에서 뵙시당 18편에서 뵈요! :)
(분량 괜찮다고 말해주셨지만 제 눈엔 짧아보여요ㅜㅜ 17편도 짧은거 같지왜ㅠ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