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 제 간 택 (皇帝揀擇) 01
: 현명한 여인을 태자빈으로 삼아, 태자빈으로 하여 태자를 정하도록 한다.
내 어린 시절을 추억해 보라고 한다면 글쎄, 황후궁과 황후궁 뒤의 작은 전각이 내 활동 범위의 다였다.
언제부터인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나는 황후마마의 손에서 길러졌고, 내가 만날 수 있는 이는 황후마마와 황후궁의 상궁들, 몸종 향단이와 스승님들 뿐이었다.
그것을 이상하다 여긴 적은 없었다.
그저, 황후마마께서 날 아껴주시고, 친자식처럼 키워주시니 그 은혜라 생각하고 황후마마께서 배우라는 것은 모두 배우고, 깨칠 뿐이었다.
지(智)와 덕(德),예(藝)는 물론이고, 검무와 궁술까지 배우지 않은 것이 없었다.
그렇게 15년을 살았다.
작은 공간에서 한정된 사람들과만 생활했다고 해서 내가 외로움을 느끼거나, 우울함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황후마마는 내게 곧 어머니셨고, 스승님들은 내 아버지셨으며, 향단이는 곧 내 친구였다.
낮이면 스승님들과 배움의 길을 걸었고, 밤이면 황후궁에서 황후마마와 수를 놓거나 그림과 악기를 배웠다.
그리고 내가 19살이 되던 해 봄, 황후마마께서 처음으로 나를 낮에 부르셨다.
낮이면 항상 높은 담 안에 갇힌 채, 하늘 밖에 보지 못했던 내게 황후궁의 낮은 담 너머로 보이는 모습들은 내 눈길을 끌었다.
밤에는 어두워 볼 수 없었던 건물들이 내 걸음을 멈추게 했다.
하지만 곧 나를 재촉하는 박상궁에 의해 서둘러 황후궁 안으로 들어갔다.
"마마- 아씨께서 오셨습니다."
"그래, 어서 들라 하여라."
문이 열리면 언제나 자애로우신 모습을 하고 계시는 황후마마께서 나를 맞이해 주셨다.
"부르셨나이까- 소녀 황후마마께 인사 드리옵니다."
"그래, 잠은 잘 잤느냐?"
"예-마마께선 평안하셨나이까?"
"물론이다, 내 너를 이리 낮에 부르는 것은 처음인 것 같구나. 네 올해 나이가 얼마나 되었느냐?"
"올해로 열아홉이옵니다."
"벌써, 열아홉이라- 곧 바깥 세상으로 나가, 그동안 배우고 익힌 것을 행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을 가져가 읽고, 내일 이 시간, 내 다시 너를 부르겠다."
"바깥이라 하면,혹 담 너머로 나갈 수 있단 말씀이십니까?"
언제나 높은 담 너머의 세상을 꿈꿔왔던 나에게는 꿈만 같은 일이었다.
황후마마께 책을 받고 다시 전각으로 돌아와 책을 펼쳐보기 시작했다.
책 안에는, 내가 그동안 많은 책들을 읽었지만, 처음보는, 내가 여기에 있는 이유와 내가 접하게 될 바깥 세상의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우리 황국에서는, 다른 나라와는 다른 특별한 황태자 선출법이 존재한다.
황후는, 총명한 4-5세의 여자 아이를 데려와 십수년간 황후궁 뒤 비밀리에 현명한 여인으로 성장시켜야 할 의무를 가진다.
친어미와 같은 마음으로 아이를 아끼고 사랑하여, 아이가 19세 되는 봄, 아이를 바깥으로 내보인다.
아이는 아후, 황자들과 함께 춘현궁(春賢宮)에서 한 해동안 생활하면서 황태자를 택하게 된다.
현명한 여인이라면 현명한 황자를 은애하게 될 터이니, 그를 황태자로 삼고, 여인을 황태자빈으로 삼아, 황국의 전통을 이어나가게 된다.]
이 책에 따르면 나는, 이제 곧 바깥으로 나가게 된다.
지금까지 어버이와 같은 은혜로 나를 아껴주신 황후마마를 위해서라도, 현명한 여인으로서의 책무를 다 할 것이다.
황태자라-.내가 이 전각을 떠나 처음 만나는 사내들이 될 것이다.
그리고, 그 중에는 내가 보살피고, 따라야 할 지아비도 계실 터이니.
이런 생각들을 하니, 나도 열아홉을 맞은 소녀인지라 얼굴이 붉어지고, 설레는 가슴을 부여 잡고 말았다.
다음날, 어제와 같은 시간이 되자, 박상궁께서 나를 다시 데리러 오셨다.
"아씨, 향단이가 몸단장을 도울 것이니, 이 옷으로 갈아입으시고, 황후궁으로 오십시오."
박상궁께서 주신 옷은 황가의 상징인 금빛 용이 수놓아져 있었다.
황가의 옷이라니, 내가 이 옷을 입게 되는 날이 올 줄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할 일이었다.
향단이의 도움을 받아 옷을 갈아입고, 분을 바르니 향단이가 나를 이끌고 황후궁으로 향했다.
황후궁의 문을 통과할 때, 평소와는 다르게 사람들이 많았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마주하는 것은 내 생애 처음인 일이라, 발걸음을 멈추고 주위를 둘러볼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남들보다 조금 높은 돌계단 위에서 형형색색 다른 색의 옷을 입고 서있는 네 명의 남자들을 보았을 때, 나는 알 수있었다.
그들이, 내가 한 해동안 함께해야 할 황자들이란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