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백]카운트다운(COUNTDOWN)
W. 초승달
본 편은 prologue 와 이어지므로 읽고 오시는걸 추천해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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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상 백업이라고는 했지만 마스터와는 거의 더블캐스팅 수준이었다. 왜냐하면 마스터가 백현의 뒤를 힘들게 쫒아 다닐 위인이 아니었고 백현 역시 실력자였기 때문이다. 백현은 사격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천천한 걸음으로 가서 사격연습용 총을 하나 쥐어 든 백현은 사람 모양의 표적에 총구를 겨누고는 가차없이 총알을 날렸다. 한 방은 심장, 한 방은 머리. 그것은 불문율이었다. 거래가 성사되지 못한다면, 만에 하나 표적이 살게 된다면. 그 어느 누구도 안전할 수 없기 때문에 확인사살이 반드시 필요했다.
그것이 왼쪽 가슴에 정확히 박혔을지라도.
총알이 완벽하게 박힌 표적에 한참동안 눈을 두고 있던 백현은 문득 들리는 인기척에 놀라 뒤를 돌았다.
짝짝짝-
"야- 역시 B는 못 당하겠네."
"새벽의 사슴이니 뭐니, 다들 예찬 하던데. L이 할 말은 아니지 않나?"
"어우, L은 무슨. 징그럽게, 이름이나 불러."
"여기서 이러다가는 우리만 까딱하다 골로 가는 수가 있습니다, L."
백현의 말에 루한이 호탕하게 웃었다. 한바탕 웃고 난 루한은 귀엽다는 듯이 백현을 바라보며 말했다.
"우리 백현이는 역시 귀여워. 오빠를 즐겁게 할 줄 아네. 지금 이 건물 안에 우리밖에 없는데, 계속 B라고 해줘?"
"진작 말을 하지 씨발, 방금 마스터랑 만나고 오는 길이라서 그랬지."
"마스터 나가는거 보고 너 찾아 들어왔다. 근데 여긴 왠 일이래. 요새 잘 안 오더니? 의뢰?"
"아. 의뢰 성사한거 보고하러 왔더니 새 의뢰 던져주고 가더라."
"마스터는 정이 없어, 정이. 어린애들 불러다가 기껏 총질이나 시켜놓고."
열일곱의 루한과 열일곱의 변백현.
마스터는 고아원에서 자라며 국가대표의 꿈을 가지고 사격을 하던 두 소년을 청명회로 들였다. 결코 총구가 사람에게 겨눠지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루한과 백현이 죽어라 연습을 하던 후줄근한 사격연습장에 붙어있던 규칙 제 1항이었다. 애석하게도 둘의 총구는 사람에게서 떨어질 줄을 몰랐다. 그것이 마스터가 둘을 데려온 이유였다. 어린 백현과 루한은 하지 않으려 했다. 하지만 현실은 차갑고 냉정한 것이었다. 이렇게 큰 돈이 들어올 방법은 둘에게 아무것도 없었다. 결국 돈을 좇아 소년들은 타락했다.
살인을 한다는 것, 그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루한, 나 이번 의뢰.. 성사금이 2억이야. 이번 일만 성공하면.. 너랑 나랑 손 씻자. 그러고 우리 아무도 방해 못하는 곳에서 같이 살자. 다신 총 따위 잡지 말자. 돈을 다 쓰더라도, 만약 그렇게 된다 해도 총은 잡지 말자. 막노동이라도 하면 되겠지."
".....백현아."
소년들이 총을 잡은 목적은 단지 그것이었다. 우리도, 이제 행복해 질 권리가 있다고.
태어날 때부터 불운하게 태어나 단 한 번도 진정으로 행복해 본 적이 없었다. 다른 일에 비해 비정상적으로 수입이 높은 이 일을 택한 것은 단지 그것이었다.
열일곱의 백현과 루한은 그렇게 총을 잡았다.
***
마스터가 백업을 하던 말던 백현은 박찬열의 집에 답사를 먼저 가 보기로 했다. 사실 처음에는 그저 그 뿐이었다. 찬열의 집에 다다라 정원을 둘러보며 총을 빙빙 돌리던 백현은 뒤에서 누군가 자신을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알아챘다. 비교적 늦게. 아, 씨발. 낮게 읊조린 백현은 뒤에 선 사람의 동태를 느끼고 있었다. 다른 스나이퍼였다면 벌써 저는 왼쪽 가슴이나 관자놀이가 뚫린 채로 발견되었을 것이었다. 다행히도 백현을 죽이려거나 하는 움직임은 없었다. 뒤에 황망히 서 있던 사람이 한 발을 떼려고 할 때, 백현이 느릿이 뒤돌았다.
" 나 죽이려고 온 거 맞죠. 그건 나 뚫을 때 쓰려는 총이고. "
그렇게 생각 한 사람 치고 그 목소리는 지나치게 차분했다. 그리고 백현은 깨달았다. 그 사람은 제가 의뢰를 받은 박찬열이고 의뢰를 받았음을 눈치챘을 거다.
그는 평소에도 이런 위협이 잦았는지 놀란 기색도 없었다. 사진에서 보았던 것 처럼 그는 얼굴이 지나치게 수려했다.
" 왜 그렇게 생각하는데요? "
백현이 되물었다. 이건 백현이 생각하기에도 멍청하기 짝이 없는 질문이었다. 어깨를 으쓱이며 찬열이 대답했다. 여기 나 밖에 안 사는데. 그 눈에는 장생따위 원하지 않는 그런 초연함이 보였다. 다른 어떤 죽음을 앞둔 자들과는 판연히 비교되는 얼굴표정에 백현이 미간을 찡그렸다.
" 빨리 관자놀이라던지 뱃가죽이라던지 안 쏴요? 스나이퍼인 주제에 여유롭게 총 돌리다가 그렇게 들키고, 거기다 나까지 안 죽이면 안 혼나요? 아니. 막 영화같은 데 보면 죽이기도 하던데, 안 그런가?"
" 영화를 굉장히 많이 보시네요, 박찬열씨. 이제부터 그 딴 영화 좀 그만 보세요. 못 죽였다고 뒤지진 않거든요? 내가 그렇게 허접한 인재인 줄 아나. "
" 거 봐. 내 이름도 아네. 아 그래요? 난 지금까지 오해하고 있었네. 의뢰 실패하면 다 죽는 줄 알았어요. 그건 그렇고 나는 언제 죽는데요?"
뒤에 초조해 죽겠으니까 죽일거면 빨리 해요. 하고 덧붙인 찬열은 마치 백현을 약올리고 있는 것 같았다. 맞다. 사실은 어서 찬열의 뱃가죽이라던지 관자놀이를 쏘아야 한다. 아니 지금도 이미 늦었을 지 모른다. 하지만 이렇게 죽음에 초연한 사람은 처음 보았다. 문득 죽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제가 찬열에게 말 한 대로 그렇게 한 번 나가서 못 죽였다고 해서 내가 죽고 그렇진 않으니 괜찮을 것 같았다. 이번이 아니라면 다음도 있는 거고.
그래서, 백현은.
" 다음 번에 올게요. "
" 내가 신고하면? "
" 신고 하든지, 말든지. "
" 나한테 반했어요? "
뭐요? 하고 반문한 백현은 어이가 없었다. 기껏 살 시간을 조금 더 주겠다니까 반했냐니. 맞잖아요, 나한테 첫눈에 반한 사람이 좀 많은 줄 알아요? 여자에, 남자에.. 뒷 말을 흐린 찬열은 마치 그 '남자'에 백현도 포함된다는 듯이 말했다. 남아서 인생을 좀 정리할 시간을 주겠다니까 말이 참 많다. 다시 총에 소음기를 장착하자 찬열이 웃음을 터트렸다.
" 그게 아니고, 다음 번에 한 번 더 오라구요. 내가 보고 싶어서 그래요. 그럼 그 땐 나 쏘는거죠? 나 혼자 반해봤자 소용 없겠네. "
" 뭐라구요? "
" 다음 번에도, 다다음 번에도 보고 싶어요 그쪽. 뭐 그럴 수는 없겠지만? "
여유롭게 어깨를 으쓱이며 말을 하는 찬열이 백현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이 일을 하면서 이런 경험은 또 처음이었다.
루한, 나 성사 못 하면 어떡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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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1편이 올라왔으니 2편은 내일 올라올 예정이에요! ㅠㅠ
제가 잘 쓰고 있는지나 모르겠네요 신알신 추가 감사하겠구요 댓글은 힘이 됩니다 S2
아 있으실지 모르겠는데 암호닉 신청은 @@ 사이에 넣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