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백] 카운트다운(COUNTDOWN)
W. 초승달
bgm : Acoustic cafe - Last carnival
백현은 마스터의 호출을 받고 청명회에 들어와 있는 와중에도 어제의 일이 잊혀지지 않았다. 사람이 한 순간에 마음이 그렇게 변할 수 있는 지 백현은 단 한 순간도 깨달아 본 적 없었다. 생전 느껴보지 못한 생경한 감정을 느낀다는 것은 좋은 일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 감정이 내 타겟을 향해 있다면 더더욱. 백현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2억이 걸려 있고 그 2억이 있어야 백현이 목표했던 금액에 도달 할 수 있다. 그래야 루한과 내가 행복해 질 수 있다. 박찬열도 내가 그동안 죽여온 사람들 중 하나가 될 뿐이라고. 그렇게 수 없이 되뇌었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아닙니다."
"타겟은, 확인 했고?"
"... 예."
"처리는 당연히 못 했군. 예상했던 일이야."
"네, 죄송합니다."
마스터에게 찬열이 눈 앞에 있었다고, 그것도 기척도 느끼지 못하고 마주쳐 버렸다고, 얘기 할 수가 없었다. 얘기를 한다면 당장이라도 마스터에게 잘릴 것이 분명했다.
"기회는 얼마든지 있으니까 상관이 없어. 하지만, 그게 연장되서 이번 건 성사시키지 못한다면."
"......."
"어떻게 될지 나도 장담할 수가 없어."
커다란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채 말을 하는 마스터의 표정이 어떠했는 지는 모르겠지만 좋지 못한 표정이었을 것임은 분명했다. 백현은 목 주변의 털이 비죽 서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대로 마스터는 느린 걸음으로 응접실을 나섰다. 백현은 두 손에 얼굴을 박았다. 나는 왜 이제 와서, 생명의 소중함을 느껴 가는가.
**
백현은 온통 검은 옷을 휘감고 마스터마냥 검은 마스크까지 끼고 청명회를 나섰다. 주머니에 든 리볼버의 무게감이 묵직했다. 나는 절대, 흔들려서는 안 돼. 흔들려서는 안 돼는 다짐이 어느샌가 그 뿌리부터 흔들리고 있었다. 그것은 온전히 찬열 때문이었다. 그리고 도착한 곳은 어느새 어제 왔던 찬열의 집 앞이었다. 조용히 정원으로 들어서자마자 백현이 올 것을 눈치라도 챘듯이 찬열이 마주서 있었다. 그리고 백현은 찬열과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단 한 번도 어제처럼 실수해서 본연의 얼굴을 다 드러내 버린 적은 없었다. 그것도 역시 찬열이 유일했다. 다시 한 번 눈을 마주친다면 흔들릴 것이 뻔했기에 찬열의 얼굴을 보지 않으려 애를 썼다.
바닥에 고개를 처박고 있는 백현의 앞으로 찬열이 느릿이 걸어왔다.
"오지마요."
"간다면?"
"내가, 무슨 일, 하는지, 알고 있잖아요."
"오지 말라고 할 거면서 그런 표정 하고 있지 마요. 죽인다고 하면서 그런 표정 짓지 마요."
기어코 찬열이 백현의 앞에 멈춰 섰다.
단 한 번도, 이렇게 가까이서 의뢰를 실행한 적이 없었다. 지금은 리볼버를 들고 있지만 평소에는 장총을 들고 타겟을 죽일만한 다른 먼 장소에서, 타겟의 얼굴이 잘 보이지도 않는 그런 먼 곳에서 조준했을 뿐이었다. 단 한 순간도 이렇게 사람 대 사람으로 말을 해 본 적이 없었다. 언제에도 느끼지 못한 불안감이 백현을 덮쳐왔다. 마음이 완벽하게 정리되지도 않은 채 온 터라 더욱 그랬다.
"나는. 눈치 챘겠지만 이런 위협이 많이 왔어요. 대답하지 말고 들어요."
"......"
"몇 번이라고 세어 볼 수도 없었어요. 그만큼 많았으니까. 이유는 말 못하고."
"......."
"어제는 정말 죽으려고 했어요. 거기 적혀 있지 않던가, 사살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고. 근데 어제 마주치자 마자 아 나도 이제 총에 맞아 죽어야지. 했어요."
"......"
"나는, 살 마음이 없었어. 이제 지쳤거든. 근데 그런 나를 죽이지 않았던게 그쪽이잖아요. 눈이 마주치는 순간 생각했어요. 또 보고 싶은 사람이라고. 죽으려 했던 다짐을 바꿔서 살고싶을만큼 다시 보고 싶은 욕구가 생기는 사람이라고."
"나는 오늘 그 쪽 죽이러 왔어요."
"알아요. 나한테 온 목적은 딱 하나 아니겠어요?"
"나는 그쪽을 죽여야 살 수 가 있어요."
말을 끝낸 백현이 주머니에 들어있던 리볼버를 꺼내들었다. 길게 쭉 뻗은 손의 끝에 들려있는 리볼버의 총구가 찬열을 향해 있었다. 찬열이 괜찮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한테 살면서 또 보고 싶다고 말을 해 준 사람이 루한을 제외하고 있었던가. 그것은 아주 오래 된 일이었다. 나는 엄마에게조차 버림을 받았는데.. 그런 내가 자길 죽이겠다고 달려드는데도 찬열은 초연히 죽고 싶었던 마음이 나로 인해 살고 싶어졌다고 말 한다. 그것은 나를 더욱 의미 있는 사람으로 만들어 줌과 동시에,
또 다시 죽일 수 없게 만들었다.
나는 총구를 내려놓았다. 이 상태로는 절대 죽일 수 없다. 찬열의 눈이 나에게 한치도 거짓을 고하고 있지 않다는듯 진정성으로 빛났다.
"5일. 딱 5일동안 여기 올거예요, 안 죽일 생각으로. 그 후에 내 마음이 확고하다면 나는 그쪽을 죽일 거에요."
"..좋아요."
"나를, 자꾸 값어치 있는 사람으로 만들어주지 마요. 객관적으로 나는 살인자니까."
"그리고 내 생명의 은인이기도 하고"
찬열이 어느새 고개를 들고 찬열을 바라보기 시작한 백현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 했다. 생명의 은인. B라는 이름 뒤에 숨어 욕심에 가득 찬 사람들의 의뢰를 받아 돈 몇 푼에 사람의 목숨을 앗아가는 한낱 킬러가 들을 수 있는 말이 아니었다. 찬열을 바라보는 백현의 눈에 자꾸만 이상한 감정이 벅차올랐다. 백현은 그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 앞으로 있을 5일의 카운트다운 속에서 그의 미래가, 나의 미래가, 루한의 미래가 바뀔 것이었다.
하나님, 그리고 루한. 내가 왜 이 사람을 이 곳에서 만나야 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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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충 중장편으로 잡고 있긴 한데 몇 편까지 갈지는 잘 모르겠어요 ^_ㅠ
사실 이걸 쓰겠다고 결심하게 된 건 순전히 1편에서 찬열이 백현과 마주쳤을때를 조각글로 썼던 것으로 시작해서..ㅋㅋㅋㅋ
내일은 시간 많으니까 분량 조절 좀 해서 길게 올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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