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금 틀어주세요!
멜론이나 음원있으신분들은 반복재생!
* 민윤기 시점
언제나 그렇듯 알람시간보다 조금 먼저 눈이 뜨여 무거운 눈꺼풀을 부벼댄다. 살짝 부은듯한 눈두덩이를 지긋이 감았다가 뜨고서는 몸을 일으켜 가장 일상적인 일과를 시작한다. 침대와 멀지않은 창가에 걸어가 커튼을 거둬내니 잿빛하늘에서 떨어진 작은 물방울들이 창문에 다닥다닥 붙어 눈물자욱을 찍어냈다. 아침치고는 제법 어둑한 하늘덕분인지 마음이 축 가라앉아 텁텁한 입맛을 다시고나니 보이는건 작은 아내의 발, 뒤척임이 심한편이라 이불을 가슴팍까지 꼭꼭 덮어줘도 아침만 되면 허리부터 종아리까지만 아슬아슬하게 걸쳐져있는 바람에 감기를 늘 달고산다. 다시 침대로 다가가 헝클어진 머릿결을 귀 뒤로 넘겨 정리해주고 이마에 쪽, 짧은 키스, 아슬아슬하게 걸쳐져있는 이불을 끌어올려 덮어주고서 욕실로 향하려는데 알람이 울린다. 딸 아이가 태어난탓에 알람은 꼭 진동으로 해놓았는데, 어젯밤 장모님께 밤 늦게 안부전화를 하고 골아떨어져버려서 아내의 머리맡 옆 협탁에서 부르르하는 진동소리가 제법 커 어깨를 들썩이고서는 알람을 끈다. 다행히 딸 아이는 깨지않은 모양이라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 오늘 어디 가? "
" 깼어? "
" 오늘, 어, 대학교 친구보러. "
" 칠석때만 되면 나가네. "
" 그랬던가? 글쎄, 이 친구랑은 자꾸 그렇게 되네. "
" 오늘 일찍 들어와, 나 자기가 만든 김치찌개 먹고싶다. "
" 알았어, 짧게 만나고 들어올께. "
" 으응… "
다시 골아떨어져버린 아내, 낮잠이 없는 아침형인간 타입임에 불구하고 다시 골아떨어진것을 보니 아마 새벽에 딸 아이가 깨서 칭얼거렸나보다- 하고 어림짐작 해보았다. 잠귀가 그렇게 어두운편은 아닌데, 어느순간부터 잘때 베개에 고개를 잔뜩 파뭍고 귀를 틀어막는 포즈로 잠드는 습관이 생겨버려서 애꿎은 아내만 고생이었다.
" …하 "
샤워부스에 들어가 샤워기에서 쏟아지는 뜨끈한 물을 맞고있자니 절로 한숨이 나왔다. 칠석, 전 애인 태형을 만나는날, 어쩌면 불륜, 또는 바람이라고 생각할수있겠지만 불륜, 바람은 내가 상대방에게 마음이 있을때 성립되는것이기 때문에 아니라고 딱 잘라 말할 수 있다. 남들이 그렇게 본다면 할 말은 없지만, 남자끼리 불륜관계라고는 한국에선 일반적으로 보여지지 않는것이기에 별로 신경쓰지않는다. 그리고 그마저도 자의가 아닌, 그저 상대방측이 미련이남아서 제발 하루만 만나달라고 부탁한것이니 스킨쉽도 별 다른 의미도 감정도없이, 그저 담담하게 얼굴만 내비칠뿐이다.
" 다녀올게. "
샤워를 마친후 머리를 적당히 털어말리고, 편한 검정슬랙스와 얇은 와이셔츠를 꺼내입는다. 딸 아이가 감깃기운이 살짝 있어서 습도 조절을 한답시고 빨리 마르는 빨랫거리들을 몇몇개 가져다 놓았더니 와이셔츠에 아기 분내가 그득히 배겼다. 나름대로 보송보송하고 달달한 그 향이 나쁘지않아 향수도 뿌리지 않은 채 집을 나선다. 집을 나서기 전 딸 아이의 얼굴을 한번 보고싶었지만, 누굴 닮았는지 귀가 예민해 조금만 달그락거려도 잠에서 깨 울음을 터뜨릴것이 뻔했기때문에 외출에서 다녀온 후를 기약한다. 문 닫히는 소리가 크지않게 조심히 닫은 후, 엘레베이터를 탄다. 5,4,3,2,1,땡. 거울을 보며 혼자 초를 세며 웅얼거리는데 다크서클이 생긴것같아 좀 신경쓰이기도하고. 어차피 미련있는 상대를 만나는 것도 아니었기에 단념하고 머리를 쓸어넘긴다. 문이, 열립니다. 하는 기계적인 여자의 목소리가 들리고 주머니안의 자동차 키를 달그락거린다.
" 아, 긁혔네 이거. "
삐빅, 잠금이 풀린 차를 타려고 손잡이를 잡는데, 범퍼에 살짝 긁힌 자국이 보여 눈살을 찌푸렸다. 괜찮아, 이제 새 차도 아닌걸 뭐. 금방 잊고 차에 몸을 구겨넣고선 시동을 건다. 그나저나, 오늘은 꼭 말해야지. 살짝 벌린 입에서 씁쓸한 맛이 났다.
" 뭐라 말해, 아 진짜. "
계속 되는 혼잣말, 그냥 그만만나자. 몇 글자만 내뱉으면 될것을 그 짧은 한마디를 못해 몇년째 계속되어버린 관계였다. 이제 가정도있고, 딸도있고, 엄연한 아빠인데. 늘 만나던 그 카페에 운전해 가는 길이 마치 내 마음을 대변해주는듯 답답하리만치 막힌다. 주말인데 비까지 와서 그런것이겠지. 이 긴 차선에 선 다른 사람들도, 잊지못한, 또는 잊어버린 사람을 만나러 가는것일까.
" …늦겠네. "
약속한 오전 10시. 카페까지 가려면 20분은 넘짓 남았는데 벌써부터 길이 꽉 막혀 이도저도 못하는 상황이었다. 늦는다고 문자를 한통 보낼까, 하다가 괜한 여지를 남기나 싶어 그만둔다. 기다리다 그냥 가버리면… 가는거지뭐. 핸들을 꼭 잡은 손가락을 쥐락펴락, 검지손가락을 틱틱거린다.
" 그만만나자. "
" 그만하자? "
" 만나지말자? "
" 헤어지자? "
" …이미 헤어졌는데 무슨, "
길이 막히니까 별 짓을 다해본다. 핸들에 머리를 몇번 콱콱 박고있는데 뒤에서 클락션소리가 들려온다. 화들짝 놀래 앞을 봤더니 길이 뚫리기 시작했다. 앞 차를 따라 느릿느릿하게 도로를 달리는데 교통사고의 잔해들이 널부러져 있었다. 교통사고때문에 막힌거구나, 별 생각없이 속도를 낸다. 옛날엔 이런 사고만 봐도 신고는 했는지 아픈사람은 없는지 꼭꼭 확인을 했는데, 꽤 무심해진것을 보니 나도 이제 아저씨가 다 되어가나보다. 동심을 잃었어.
" 어, 인테리어 바꿨나? "
이런저런 잡생각을 하다보니 어느새 카페 앞이었다. 카페 옆 아직 문을 열지않은 술집 앞에 차를 대충 세우고, 시계를 확인했다. 10시 17분, 갔으려나.
" 왔어? "
" 많이 기다렸지, 차가막혀서… "
태형이 앉아있었다. 여전히 동그란 하트입술에, 가무잡잡한 피부. 괜시리 가슴이 먹먹해지는 기분이들어 머쓱하게 고개를 숙였다. 의자를 소리나지않게 조심히 끌어 앉는데, 태형의 시선이 노골적으로 따라옴을 느껴졌다.
" 첫째 낳았다며, 아들이야? "
" 딸이야, 어떻게 알았어? "
" 얼마전에 동창회 갔다가 들었어. "
" 아, 벌써 그렇게 소문이났구나. 다행히 아내닮았더라고, 되게예뻐. 코도 오똑하고, 입술은 오밀조밀한게 엄청 예뻐. 나 닮았으면 큰일날뻔했지."
" … "
말이 너무 많았나? 갑자기 침묵하는 태형의 모습에 적지않게 당황해 입술을 달싹인다. 나, 말실수한건가. 하긴, 못잊은 전 애인이 결혼하고 애까지 낳은걸 직접 듣는다 생각하니 어느정도 수긍이되네. 신경쓰지않는다. 난 널 잊었고, 사실 조금은 미워하기까지하니까. 지금 널 잊어 사랑하는 아내를만나 사랑하는 아내와 나를 반반씩 닮은 딸 아이를 낳고 행복하게 살고있다는걸 보여주고싶다. 가슴 한켠이 차가운 돌을 얹은듯 아려왔지만 이제는 말을 해야한다. 내가 지금 사랑하는건, 네가 아닌 집에있는 나의 아내와 딸이니까.
" …래서 말인데, "
" 어? "
살짝 뜸을 들인다. 너무 상처받으면 어쩌지, 네가 밉지만 상처주기는 싫은데, 나에게 상처를 줬던 너지만 그걸 갚고싶지는 않은데.
" 그만 만나. "
부디 한번에 알아들어주길, 하는 염원을 담은 문장이 입밖으로 새어나갔다. 생각보다 단호한 어투에 살짝 당황스러웠지만 애써 담담한척 태형을 똑바로 바라본다.
" 그만 만나긴 예전에 그만 만났지, 무슨소리야? "
" …그니까, 나, 애도 생겼고, 전 애인, 그것도 남자를 계속 만나는건 좀… "
" 일년에 한번도 안돼? "
여전히 뻔뻔한 너는 모르는척 요지를 바꾼다. 당당해야할것은 난데, 손바닥에 땀이차 바지에 땀을 슥슥, 닦아낸다. 조금은, 조금은 더 단호해질수있을지도, 난 아빠니까.
" 이거 말하려고 온거야, 미안해. "
" …아니야. "
눈 앞의 태형의 동공이 흔들린다. 혼란스러워보이는 그 모습에 손을 뻗어 어깨를 툭툭, 토닥여주고 싶었지만 그래서는 안되지. 우린 헤어져야하는게 맞는거야. 이 쳇바퀴같은 굴레를 우린 벗어나 서로의 길을 걸어야해, 이 굴레가 우릴 상처입혀왔고, 앞으로도 상처를 입힐때니까.
" …이젠 진짜 끝이야. 연락도 하지말고, 동창회엔 그냥 가끔 나갈게. "
" 그럼 동창회날…! "
" 아니, 가급적이면 안봤으면해. "
" 갑자기 왜이래 윤기야, "
결혼한 후 갑자기 찾아와 애걸복걸하던 그 절박한 목소리였다. 나는 너의 절박한 목소리를 듣기싫었고, 결국 스스로 내 자신을 쳇바퀴에 끼워넣었다. 그러고서 함께 굴려오던 쳇바퀴, 애정없는 관계. 그만하자, 이제 정말 끝내자. 코 끝이 찡해져온다.
" 갑자기라니, 니 업보야. "
최대한 또박또박, 천천히 눈을 보고 단호하게 말했다. 말 끝에 살짝 서린 물기정도는 무시해주길 바라면서, 눈물이 나올것같아 고개를 홱돌린채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이제, 이제, 정말, 정말 끝이다. 태형의 숙인 고개를 마지막으로 차갑게 뒤돌아서서 밖으로 향했다. 부슬부슬내리던 비가 장대처럼 쏟아져온다. 우산도 없이 차로 터덜터덜 걸어가는데 순식간에 온몸이 젖어버렸다. 입속으로 들어온 빗물이 짭짜름해 혀를 내두르고선 차에 탔다.
" …진짜, "
병신새끼, 뒤늦게 쏟아진 눈물에 핸들을 끌어안고 목을 내어 아이처럼 울었다. 사실 널 미워하는게 아니야, 너에대한 감정은 분노도, 복수심도아닌, 단지 애증이었다. 날 사랑하던 네가 나에게 상처를 입히던 그날, 그날부터 쌓여온 애증의 감정. 난 그것을 분노나 혐오로 착각했고 금방 나를 사랑해주는 또 다른 이를 찾아 떠나버렸다. 욕해도좋아, 다 내 탓이야, 항상 그랬듯, 널 버리고 새로운 사랑을 찾아 가정까지 꾸린 나를 평생 욕해줘. 이기적이지만, 나를 욕하더라도 내 사랑하는 아내와 내 사랑하는 딸, 그리고 내가 꾸린 가정안에서의 내가 행복하길 빌어줬으면 좋겠다. 널 떠나면서도 끝까지 너와 그 여자의 행복을 바랬었던 나처럼, 그렇게 서로의 행복을 빌어줬으면 좋겠다. 네가 행복했으면 좋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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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델루젼입니다 나코틱으로 뵈어야하는데 이렇게 칠석2로 뵙게되었네요ㅠㅠ
나코틱이 정말 생각보다 잘 써지지않아요...
정체기가 온듯싶습니다. 주말내내 나코틱에 매달렸는데도 쉽게 써지질않네요.
잠시 쉬다오겠습니다ㅠㅠ! 죄송합니다.
이런 말들은 신경쓰지마시고 칠석 윤기시점 재밌게 읽어주셨으면해요!
코끝에겨울 브금으로 하고싶었는데 제가 음원이 없는 바람에..ㅠㅠ
나코틱 말고 중간에 단편이나 조각으로 생존신고하겠습니다ㅠㅠ
암호닉
호시기호시기해 융기쨔응 비리미 명치 유니크 복숭 22 독방 민트초코 태태매거진 슈가 깨끗한나라 TRG-42 에어컨 뷔뷔 스웩 자괴감 검은별 희 뷥슈가_ 강낭콩 이제봤니 칸쵸 소름 윰슙 슈가곰 뿌뿌 맥스봉 모카 애플민트 툐롱툐롱 큥큥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