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뽐재 관계의 정의 4 

 

 

 

 

 

 

 

 

 

 

집안 상태는 온통 냉전 중이었고, 형은 날이 갈수록 험악해졌다. 형의 차를 타고 등교하는 건 형이 억지로 끌어내 태워 줄 때 뿐이었고, 그마저도 별 얘기도 않고 학교까지 정말 '태워 주기만' 했다. 그럴 때 말고는 보통 저쪽 앞 골목에서 박진영을 만나 같이 등교했다. 가끔은 김유겸도 만나서 같이 갔고. 그 이후로 조하영이 우리 집에 오는 일은 없었다. 형의 배려인가 싶었지만 그건 아닌 것 같았다. 

 

그리고 섹스는, 전보다 더 자주 했다. 그냥 형이 입을 맞추면 입을 맞추는 대로 따랐고 반항은 해 보지도 못 했다. 박진영은 그런 나를 답답해 했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물론 박진영이 이해 못 할 일은 맞았지만, 내 입장이 된다면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다는 걸 박진영이 몰라 준다는 게 나로서는 짜증났다. 그냥 임재범도 박진영도 다 싫었다. 

 

제일 짜증나는 건 그렇게 섹스하면서, 잘못한 건 형인데 도리어 내가 잘못한 사람인 것처럼 몰아가는 분위기였다. 차라리 형이랑 안 살았더라면. 하지만 예쁜ㅡ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ㅡ아들 내놓은 엄마와 하나뿐인 동생 멀리 보낸 형이 걱정할까봐 섣불리 행동을 할 수도 없었다. 결국 나는 임재범의 굴레에 갇혀 있을 수밖에 없었다. 

 

김유겸은 아무것도 모르니까 그렇다 쳐도 박진영에게 모든 걸 털어놓은 게 불안했다. 가끔 박진영이 형이랑은 어때? 같은 질문을 할 땐 대답을 해 줘야 할 지도 고민했다. 박진영에게 홧김에 울며 형과의 관계를 털어놓았던 내가 후회됐다. 하지만 그냥 그렇게 없던 일처럼 형과 섹스하고 조용히 있는 듯 없는 듯 살면서 남은 이 년 쯤을 보내면 될 줄 알았다. 

 

그 때가 조하영의 횡포의 시작이었다. 처음엔 임재범이 전화번호를 알려 준 건지 뭔지, 문자를 보냈다. 안녕? 나 알지? 재범이 여자친구야. 뭘 알고 보낸 건지 뭔지는 몰라도 확실히 '재범이 여자친구'라는 말에는 많은 게 담겨 있었다. 어쩌면 여자의 촉이란 건 생각보다도 더 무서운 것일 지도 몰랐다. 

 

 

"저녁 나가서 먹을까?" 

 

 

임재범은 아무것도 모르겠지. 괜히 짜증이 났지만 오랜만의 기회 아닌 기회를 놓칠 수는 없었다. 고개를 끄덕이자 임재범이 차 키를 집어들었다. 생각이 부쩍 많아진 요즘, 형도 나도 말수가 적어졌다. 사실 할 말이 없는 거에 더 가까울 지도 몰랐지만. 

 

 

"뭐 먹을래?" 

"아무거나요." 

"먹고 싶은 거 말해. 오랜만에 나가는 건데." 

"아, 고기요." 

"그럼 먹으러 가자." 

 

 

형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형을 뒤따라 현관으로 나가는데 불길한 예감ㅡ조하영을 마주친다던가 하는 일들ㅡ이 들었다. 그게 완전히 틀린 적이 없었다는 게 문제라면 문제였고.  

 

 

 

 

 

밥을 먹으러 나가서는 조하영을 만날 줄 알았는데, 의외로 박진영을 만났다. 어색하게 내게 손을 흔들어 보이더니 금세 형의 존재를 알아채곤 힘내라는 손짓을 해 줬다. 박진영에게 손 인사를 해 줬더니 형이 친구야? 하고 물었다. 고개를 끄덕이자 형이 웃었다. 그나저나 쟨 누구랑 온 거지. 

 

 

"앉아 있어. 형 화장실 좀." 

"알았어요." 

 

 

형이 잠깐 화장실을 간 동안 박진영이 같이 온 사람에게 뭐라고 말하더니 내 맞은편으로 와 앉았다. 이런 데서 다 보네. 인사 대신 건네는 말에 그러게, 하면서 웃자 박진영이 티슈를 만지작거렸다. 좀 어색하긴 했다. 잠깐 인사를 나누고 갈 줄 알았던 박진영은 자세를 잡고 앉아 내게 묻기 시작했다. 

 

 

"그 형이랑 왔어?" 

"응. 너는?" 

"나, 그 헤어졌다던 여자친구. 다시 사귈 수 있을 것 같기도 하고……." 

"아, 진짜? 근데 그 땐 뭐 때문에 깨진 거였어?" 

"누나가 다른 남자 만나서. 아, 내가 문자할게. 학교에서 봐!" 

 

 

엉, 알았어. 후다닥 제자리로 돌아가는 박진영의 뒷모습에 느적느적 손을 휘저어 주다 말았다. 형이 화장실에서 돌아오는 길에 박진영의 쪽을 유심히 쳐다봤다. 내 친구라고 신경 쓰는 건가? 속으로 몇 가지 상상을 하고 있는데 임재범이 다짜고짜 그 테이블에다 대고 시비조로 말을 걸었다. 명백한 화가 났을 때의 목소리였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박진영이 먼저 어떤 짓을 했을 리도 없을 것 같았고, 혹시 여자 쪽에서 시비를 건 걸까? 어쩐지 가능성이 있는 얘기였다. 형이 욱 하면 눈 돌아가서 정신 못 차린다는 걸 전에 몇 번 겪어 봤기 때문에 형을 말리려고 일어섰지만, 나는 그저 앉아 있을 수밖에 없단 것을 깨달았다. 

 

불길한 예감은 틀린 적이 없다. 그것도 완전히. 

 

박진영은 어떡해야 할 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 앞에 앉아 있는 여자는 박진영의 전ㅡ인지 현인지 잘 모르겠으나ㅡ여자친구이자 형의 현 여자친구인 조하영이었고, 형의 눈동자는 이미 독을 품고 있었다. 박진영에게 무어라 쏘아붙이던 형이 내쪽을 쳐다보더니 성큼성큼 걸어왔다. 제대로 서지도 앉지도 못하고 어정쩡하게 있던 내 손목을 잡은 형이 나를 끌어 조하영네 테이블 앞에 놓았다. 

 

 

"너 얘랑 친구 아냐? 머리에 피도 안 마른 놈이 왜 여자를 꼬시고 다녀?" 

"……." 

"하영이 넌 나 따라 나와. 너희 둘은 거기 앉아 있고." 

 

 

아직 상황 파악도 덜 끝낸 상태에서 형은 조하영을 일으켜 나가버렸다. 이도 저도 아닌 입장이 돼 버린 터라 그저 발끝만 바라보고 있는데, 박진영이 나를 끌어다 옆에 앉혔다. 형이 화 난 이유는 조하영 때문인데 불똥이 내게 튄 이유는 뭘까? 이미 망친 데다가 형이 재까지 뿌린, 기분 좋았던 오후였다. 박진영이 한숨을 내쉬고 물었다. 

 

 

"혹시 내가 생각하는 그거 아니지?" 

"네가 생각하고 있는 그거야." 

"너희 형 불륜 상대가 우리 누나라고?" 

"응. 잘 정리했네." 

"넌 전혀 몰랐던 거고?" 

"네가 누구라고 말 안 했으니까 나도 몰랐지." 

 

 

내 말에 박진영의 얼굴이 처참하게 일그러졌다. 한두 번 당하는 것도 아니고 새삼 놀랄 것도 없었지만, 박진영의 입장에선 그럴 일이 아니겠지. 한참 말이 없던 박진영이 다시 한 번 한숨을 내쉬었다. 

 

 

"네가 지금까지 참은 게 신기하다." 

"안 참으면 안 되니까." 

"왜?" 

 

 

박진영의 말에 몰라도 된다고 대답하려고 했는데 다시 문이 열렸다. 안 좋은 얼굴로 나갔던 둘의 얼굴은 화색이 되어 돌아왔다. 보나마나 오빠 그건 오해야 같은 소리로 형을 풀어 줬겠지. 이럴 때면 내게 왜 젖가슴이 없는 지 분하기만 하다. 형이 성큼성큼 박진영의 앞으로 다가와 섰다. 

 

 

"앞으로 하영이랑 그만 만나라." 

 

 

청천벽력 같은 소리였다. 형은 무슨 멋있는 말이라도 한 양 뿌듯한 얼굴을 했다. 박진영도 나도 절망이었다. 조하영은 미안한 기색이 보였지만 멍청한 남자친구 탓에 말 한 번 꺼내지도 못하고 임재범의 뒤에 짜그러져 있어야만 했다. 

 

 

"정리할 시간은 줄게. 오늘 밥은 같이 먹어도 좋아." 

 

 

누구 마음대로? 조하영과 언뜻 눈이 마주친 것 같기도 했지만 바로 눈동자가 빗나가버렸다. 박진영이 한숨을 내쉬고 일어섰다. 내일 봐. 통보하듯 중얼거리는 목소리는 맥이 빠져 있었다. 형은 의기양양한 얼굴을 했다. 자기가 무슨 짓을 한지나 알까? 형의 곁에선 정상적인 사고가 불가능할 수밖에 없다는 걸 다시 한 번 온몸으로 체감했다. 그게 좋아서든, 싫어서든, 어쩔 수 없이. 

 

 

"하영이가 저럴 줄은 몰랐네. 먹던 거 계속 먹어." 

"그래서 누나가 뭐라고 했는데요?" 

"응, 네 친구랑은 정리할 거라고. 한 눈 팔고 싶지 않으니까 나보고 곁에 있어 달래. 같이 살자더라." 

 

 

이 모든 게 조하영의 치밀함 속에서 계획된 상황이라는 것을, 나와 조하영을 뺀 모두는 모르는 거였다. 분통이 터졌다. 어떻게 된 게 임재범은 잡혀 살고 난 그런 임재범한테 잡혀 사는 지 세상이 씨발스러웠다. 남자를 좋아하는 것도 힘든데 저런 남자라니. 무조건적일 수밖에 없는 사랑은 좆 같고 임재범은 더 좆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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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회원45.167
헐..저는 비회원인데 댓글 처음 남겨봐요 너무 너무너무 재밌게 읽고있어요!!
9년 전
독자1
????????재범아..? 진짜 답답해 미쳐버리겠네 조화영!!!!!아진짜 진영이도 불쌍하고 영재도 불쌍해유유유ㅠㅠㅠㅠㅠㅠㅠㅠ 항상 잘보고있어요 작가님!ㅠㅠㅠ
9년 전
독자2
조하영이 뭐라고ㅠㅠㅠㅠㅠㅠㅠㅠ아오ㅠㅠㅠㅠㅠㅠㅠ 화난다ㅠㅠㅠㅠㅠㅠㅠ 영재 불쌍해 죽겠어요ㅠㅠㅠㅠ 빨리 잘 해결돼서 행쇼했으며뉴ㅠㅠㅠㅠㅠㅠㅠ 글 써주셔서 감사해요...♡
9년 전
독자3
아 화나 우아 와 임재범 우우ㅏ!!!!!!!! 우리 영재 어떡하니ㅠㅠㅠㅠ 작가님 글 정말 재미있게 보고있어요!!!
8년 전
독자4
너무 화나서 댓남겨요...임재범...ㅂㄷㅂㄷㅠㅠㅠㅠ작가님 글 너무 잘쓰셔서 진심 화나요ㅜㅜㅜㅜㅜㅠㅠㅠㅠㅠ엉엉 마치 제가 진짜 영재가 된 느낌ㅠㅠㅠㅠㅜ이 재밌는걸 왜 이제서야 알게됐을가ㅠㅜㅜ
8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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