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이 먼저 나가버린 이 커다란 호텔룸 안에서, 조그만 초콜릿을 까먹는거나 티비에서 흘러나오는 웃음소리를 듣는 것 밖에는 할게 없었다.
침대에 누워 멍하니 있다 전화기를 꺼내들었다.
우울증이 서서히 목을 오기 시작해서, 누군가 옆에 있지 않으면 숨이 막혀 뒤져버릴 것만 같았다.
"난데,"
들뜬 목소리로- 어쩌면 엄청 high한 상태로- 주절주절주절, 쓸데없는 말들을 쏟아내는데, 웃고있는 입을 배신해 눈은 눈물을 흘렸다.
그것은 아주 기묘한 느낌이지만 이제는 어느정도 익숙해진 것도 같다.
"그러니까 지금 좀 보자."
제발, 하고 속삭이는 내 목소리에 어쩌면 만나주지 않으면 죽어버릴거야-라는 느낌을 받았는지도 모르겠다.
짧은 침묵 뒤에 '알았어'라고 대답이 들려왔다.
"이야 오랜만이다?"
"그러게."
"너 표정이 왜 그래? 요즘 힘드냐?"
"내가 아니라 형이 힘든거 아냐?"
"무슨 소리야~ 너 나 안보고 싶었구나, 그치! 만나자마자 구박하네~"
헛살았어, 헛살았어.
희극적인 톤으로 우는 연기를 하자 로빈이 '그만해.'라고 어두운 목소리로 말한다.
"뭐 기분 나쁜 일 있었어? 왜그래."
"....형 우는 소리 다 들렸어."
"..어?"
"요즘 진짜 많이 변했어 형. 정말 하나도 안즐거우면서 즐거운 척 하는거 다 보이는거 알아?"
아, 젠장. 젠장.
오늘은 설교나 들으려고 만난게 아닌데.
"연애가 잘 안풀린달까~ 이 형이 알다싶이 연애운이 좀 없잖냐."
"지금 사귀는 사람은 어떤데."
"어? 어. 뭐...... 잘생기고, 나한테 잘해줘. 게다가 부자라 매번 비싼 선물도 해주구,"
그리고 예쁜 아내가 있지, 라는 말은 입안으로 삼켰다. 어차피 다른 사람들은 이해 못 할걸 알기 때문이다.
얀에게는 정말 어쩌다 들켰는데, 그 뒤로는 한 일년어치의 잔소리를 듣고 있으니, 더이상 개방하는것도 못할 짓이다.
"형이 전에 나한테 남자가 좋다는 얘기를 했을 때,"
"쿨럭- 응."
"나는 이해를 완전히 해 줄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형이 싫어지거나 하지는 않았어."
"응."
"근데 지금은 진짜 별로다."
로빈....... 그 말은 하지말지.
덕분에 지금 물속에 코박고 죽고싶은 심정이야.
"더이상 할 얘기 없어? 말하면, 들어줄게."
"없....어."
"정말 없냐구."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럼 됐네.라며
로빈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가 형한테 의지가 안되는건지, 그렇게 친하다고 생각하지 않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벽을 만들어 버리면 나도 상처받아."
전화 목록을 뒤져봐도, 지금 연락을 할만한 사람이 생각나지 않는다.
정말 없었다. 허탈하게도, 정말 하나도 없었다.
무작정 밖으로 나왔다.
길거리를 술에 취한 사람처럼 비틀대며 걸었더니 사람들이 알아서 멀리로 피해간다.
미친 기분이다. 나혼자 세상에서 떨어져나간 기분.
생각해보면, 내가 이렇게 그로부터 거절 당한게 처음도 아닌데 오늘은 왜 이렇게 기분이 바닥까지 갔는지 의문이다.
관계를 정리할 때가 왔나.
계속하면 나만 손해라는 얀의 말이 옳은건가.
전에 사귀던 남자를 불러냈다.
20대 초에 사귀다 성격차이로 헤어졌었는데, 다시 만나니 얘기를 하고 싶은 생각보단 섹스를 하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다.
근처 모텔에 들어가 옷을 벗었다.
"오늘은 왜이렇게 말이 없냐?"
"말할 기분이 아니라."
"너 말하는거 좋아하잖아."
"한마디만 더 말하면 나 울어버릴거야."
그래도 이 남자는 성격이 젠틀스윗한 편이었다. 다행히 bitch처럼 구는 나를 더이상 귀찮게 하지도 않고, 다정히 볼에 키스를 해주었다.
"내가 다 잊게 해줄게."
아, 정말 그렇게 쉽게 잊혀질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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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수는 내가 연재하는거구 짝수는 다른 쓰니가 연재하는거야~
읽어줘서 고마워!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