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열은 아직은 낯설기만 한 사무실로 돌아왔다. 처음 의식을 찾았을 때는 22살의 박찬열이 전날 클럽에서 진탕 놀다가 잠든 다음 날 이었다. 자신의 오피스텔에서 쓰린 속과 아픈 머리를 부여잡고 일어나야 할 22살의 박찬열은 29살의 박찬열이 되어 7년의 시간을 잃어버린 채였다. 그 이후로 7년의 공백을 채우기 위해 무던히 노력했지만 이 사무실은 낯설기만 했다. "본부장님, 지금 사모님께서 사무실로 오신다고 하십니다." "무슨 일로 오신다는 말씀은 없으셨습니까?" "네, 따로 다른 말씀은 없으셨습니다" 내가 의식을 찾은 이후로 어머니는 이때다 싶어 밖으로만 나돌던 아들을 자신의 영역에 가두려 노력하고 있었다. 기억을 잃어버린 박찬열은 자신의 7년을 기억하는 사람이기에 그런 어머니의 간섭을 무작정 피할 수는 없었다. "무슨일이세요? 저 조금있다 회의 들어가봐야 해요." "내가 꼭 용건있어야 너한테 들르니? 여차저차해서 잠시 들른거지... 근데 요즘 병원 다닌다고?" "강비서가 말했어요? 그냥 기억 찾는데 도움 될까 싶어서 다니고 있습니다." "아... 혹시 뭐 기억이 난건...있고?" "아직 저 깨어난지 세달도 안된 거 잊으셨어요? 의사도 장담못한다고 하니 아직은 다른 변화는 없습니다." 지난 세달동안 어머니는 틈틈히 내 기억이 돌아왔는지 확인하셨고 왠지 나의 회복시간이 늦어질수록 안심하는 눈치셨다. 처음엔 몰랐지만 최근들어 그런 낌새가 자주보여 의아해 하고 있었다. "그럼 내일 점심이나 같이 하자꾸나. 따로 장소랑 시간은 강비서 편으로 보낼테니 시간 빼도록해." 어머니를 배웅하고 다시 자리로 돌아온 찬열은 의자에 기대어 오늘 상담내용을 되새겨보았다. "점장님... 저 진짜 열심히 할 수 있구요. 피해안가도록 하겠습니다. 제발 한번만 도와주세요..." 백현은 컴퓨터 키보드와 펜대나 만지던 샐러리맨이었다. 대학시절에 잠시 했던 과외알바가 경력의 전부였다. 그러나 지금 당장 자신과 뱃속의 아이의 생활을 위해 일이 필요했다. "백현씨, 우리 가게가 일반 식당도 아니고 대부분 손님이 호텔 투숙객이나 교양 좀 있다는 분들이 오는 곳이에요. 괜히 경력없는 사람 썻다가 실수라도 하면 저희 레스토랑 측이 곤란해져요. 우리 입장도 이해해줘요." "저 많이 안 바래요. 주방에서 설거지라도 하게 해주세요. 부탁드려요." 백현은 머리를 연신 숙이며 말했다. 이제까지 면접을 보러간 곳에서 모두 거절당했다. 이유는 비경력자기 때문이라고는 하지만 백현의 부른배를 보고 거절했음이 틀림없었다. "하... 백현씨 지금 저희가 필요한 건 홀에서 일할 사람인데... 아무리 요즘 인식이 많이 바꼈다곤 해도 백현씨...그.. 처지 이해못하는 사람 많을거에요. 부른 배 안고 서빙할 수는 없는 노릇이잖아요. 남성 임신을 불쾌해 하는 사람이 아직 많은 터라 저희도 어쩔 수 없네요." "...잘 가리고 다닐게요. 아직 티도 안나요. 너무 급해서 그래요...점장님, 딱 세달만 써주세요. 홀에는 절대 출입하지 않고 주방일이나 허드렛일만 해도 되요. 하라는 거 다할게요..." 백현의 간절함 덕분인지 주방에서 허드레일을 한다는 조건으로 일을 얻었다. 한때 대기업 평사원으로써 말끔한 정장과 타이를 매고 다니던 백현은 일을 할 수 있다는 것 자체에 큰 행복을 느끼고 있었다. "저... 복대 하나만 주세요." 백현을 아래위로 쳐다보던 약사가 주섬주섬 복대하나를 꺼내주며 말을 건냈다. "남자 임산부이신가 봐요. 복대를 너무 오래하고 있으면 배에 무리가 가서 위험해 질 수 있어요. 조심해서 사용하시고 왠만하면 사용하지 않는 걸 권할게요." 아직 남성의 결혼과 연애도 사회적으로 좋은 시선이 많지는 않다. 남성 임신은 더욱이 쳐다보는 시선이 따갑다. 당시 아이를 가질 땐 그것에 맞설 방패가 있었다 지금은 그 방패가 없다. 자신이 이 아이의 방패가 되고 보호자가 되고 스스로 지켜야 했다. 다음날, 찬열은 어머니와의 약속장소로 들어섰다. 레스토랑 직원이 자신을 알아보고 테이블로 안내를 해주는 것을 따라가보니 룸에는 어머니가 아닌 한 여성이 가만히 앉아 찬열을 쳐다보고 있었다. "찬열씨, 오랜만이에요. 아...오랜만이 아닐려나? 소식은 들었어요. 저는 김설아라고 찬열씨 회사 창립기념 행사에서 몇번 마주친 적이 있어요." 자신을 김설아라고 소개한 여자는 딱 봐도 유복한 집안의 아가씨 느낌이났다. 아마 그녀도 집안의 요구에 이끌려 이 자리에 나왔을 것이다. "아... 그렇습니까? 이 자리에 대해서 따로 언질을 못받아서 그런지 조금 당혹스럽군요, 실례가 안된다면 잠시만 자리 비우겠습니다." 아직 자신의 기억이 회복되지도 않았는데 자신의 어머니는 뭐가 그렇게 급한지 벌써 선자리를 만들어 오다니... 적당히 잘 말해서 자신의 의사가 전혀 반영되지 못한 일임을 설명하고 돌려보내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 "저기... 여기 화장실이 어디에 있습니까?" "주방에서 왼쪽 모서리로 돌면 있습니다. 손님" 당황스러운 마음을 진정시키고자 화장실을 찾았다. 마침 화장실에서 나오던 레스토랑 직원과 마주친 찬열은 순간 머릿속에 기억이 떠올랐다. 많은 분들이 제 부족한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드려요! 연중은 절대 없을거구요. 두서없이 쓰는 글이라서 내놓기 부끄럽지만 열심히 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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