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맑은 날' 과 이어지는 외전 입니다. ]
종석은 침대에 누워 멀뚱하니 눈만 깜빡이며 천장만 올려다봤다. 심심해. 심심한데 대본 봐야해. 근데 대본만 보기엔 너무 심심해. 도저히 집중이 되질 않아 입을 쭉 내밀고 투덜거리던 종석은 하릴없이 다시 대본을 쥐고 열심히 읽기 시작했고, 그렇게 한참을 대본을 읽으며 대사를 해보다가 끝내는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앉은 채 짜증스럽게 머리를 흩뜨렸다.
“아우, 이렇게 집중 못하면 안 되는데….”
정신 차려라 종석아…. 저도 답답한지 제 머리를 콩콩 쥐어박던 종석은 한숨을 푹 내쉬며 창밖을 바라봤다. 거센 바람 소리를 품에 안은 채 이리저리 바삐 움직이고 있는 잿빛 구름은 종석의 머릿속마저 이리저리 헤집고 있었고, 더불어 우수수 쏟아져 내리는 장대비는 창문을 계속해서 두드리며 신경을 날카롭게 만들고 있었다. 날씨… 좋네. 아주 좋아 죽겠네. 우중충한 날씨를 그렇게 망연히 바라보고 있을 때쯤,
「 딩동- 」
갑자기 초인종이 울렸다. 그 소리에 움찔- 하며 몸을 들썩인 종석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현관으로 향했다. 오늘은 스케줄이 없는 날이라 올 사람이 없을 텐데 누가 자신의 집 초인종을 누르는 걸까. 고개를 돌려 인터폰을 바라본 종석은 그곳으로 보이는 누군가를 발견하고는 깜짝 놀라며 빠르게 문을 열었다.
“야, 니가 왜 여기에 있….”
“이야기는 나중에 하고. 나 얼어 죽겠다. 들어갈게.”
“어? 어, 담요… 아니, 아니지. 이불 가져다줄까?”
“일단 급한 불부터 끄게 좀 와봐.”
추위에 오들오들 떨며 팔을 쓸어내리던 우빈은 종석을 향해 이리오라며 손짓했고, 그 손짓에 당황한 종석이 멈칫거리자 보다 못한 우빈이 빠르게 신발을 벗어던지고 종석에게로 다가갔다.
“지금 뭐하는… 억-”
“아, 이제 좀 살 것 같네.”
종석을 강하게 끌어당겨 품에 안은 우빈은 푸스스 웃으며 저보다 따뜻한 종석의 온기로 차게 식은 제 몸을 녹였고, 너무 강하게 끌어안은 탓에 가슴을 세게 부딪힌 종석은 끙끙거리며 제 가슴을 부여잡고는 마른기침을 뱉었다.
“괜찮냐?”
“아우으… 아파 죽겠네… 몸이 돌이야 무슨.”
“미안.”
“됐고, 니가 왜 여기에 있는건지나 좀 설명해 봐.”
“나?” 하며 종석을 놓아준 우빈은 그저 사람 좋은 미소만 지으며 종석을 내려다 봤고, 그런 우빈을 바라보는 종석의 눈은 조금 날카로워져 있었다. 웃어넘길 생각이면 한 대 칠 것이라는 종석의 무언의 협박이었다. 그 눈빛을 읽어낸 우빈은 헛기침을 하며 머리를 긁적이며 작게 말했다.
“놀러왔어."
“집 주인이 초대를 안 했는데?"
“음…."
“너 이게 뭐하는…."
“종석아. 나 맥주 사왔다?”
“뭐? 맥주?”
나 술 못 마시는거 뻔히 알면서 낮술을 하시겠다? 맘에 들지 않는 듯한 눈빛으로 우빈을 올려다보는 종석은 금방이라도 화를 낼 듯한 분위기를 풍겼고, 그런 종석을 눈치챈 우빈은 잔뜩 불쌍한 표정을 지으면서 작게 말했다.
“요즘 좀 마음이 답답해서 그래. 이야기 좀 들어주라.”
“…뭐가 그렇게 답답한데?”
“일단 앉아서 이야기하자.”
**
우빈과 종석은 거실 테이블에 소소한 안주 몇 개와 맥주 캔을 올려놓고 마주보고 앉았고, 우빈은 젖은 외투를 벗어 옆에 던져놓고는 맥주를 한 모금 시원하게 들이켰다.
“너 그렇게 술 마셔도 돼?”
“응? 아… 이 정도는 괜찮아.”
조금 그늘진 표정을 하고 있는 우빈을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바라보며 맥주를 한 번 홀짝 마신 종석은 입 안 가득히 퍼지는 술 향에 조금 미간을 찌푸렸다 펴며 과자를 집어먹었다. 언제 마셔도 익숙해질 수 없는 맛이다. 술의 쓴 맛을 과자로 누그러뜨린 종석은 테이블 위에 팔을 올려놓고 우빈의 쪽으로 몸을 기울이며 말했다.
“그럼 이제 이야기 좀 해봐.”
“응?”
“답답하다며.”
“아….”
맥주 캔을 쥔 채 깊게 한숨을 내쉰 우빈은 눈썹을 슥슥 긁으며 말했다.
“그냥 뭐… 연기도 맘대로 잘 안 되고… 몸도 힘들고….”
“….”
“솔직히 내가 잘하고 있는건지도 잘 모르겠다. 처음 겪는 환경이라 뭐가 뭔지….”
“….”
“혼자서 끙끙 앓다 보니까 되던 것도 안 되고 가슴이 답답해 죽겠더라고.”
“….”
“가끔 생각해보면 내가 이런 배역을 잘 소화해 낼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
고개를 푹 숙인 채 애꿎은 맥주 캔만 만지작거리는 우빈을 물끄러미 바라본 종석은 시선을 조금 옮겨 액션씬을 하다 다쳤는지 생채기가 난 우빈의 팔을 보다가 맥주를 한 모금 들이켰다. 왠지 아까보다 단 맛이 나는 듯한 맥주를 혀끝에서 굴리던 종석은 그것을 꿀꺽 삼키고는 한숨을 푹 내쉬며 말했다.
“그걸 왜 혼자 참냐 멍충아.”
“….”
“털어 놓을 사람이 나 밖에 없어?”
“….”
“넌 나 말고 갈 데도 없냐?”
일부러 같이 드라마를 찍을 때 흥수가 남순이 에게 한 말을 따라하며 생긋 웃은 종석은 거실 한 켠에 아직도 쌓여있는 학교 2013의 대본을 바라봤다. 그 땐 흥수가 남순이를 달래줬다면 지금은 자신이 우빈을 달래줘야 한다. 이것도 나름 남순이가 흥수에게 은혜를 갚는 거라고 생각하며 지금도 학교 2013을 찍던 학교에 가면 있을 것 같은 흥수와 남순이를 상상하던 종석은 우빈을 바라보며 말했다.
“너무 그렇게 속상해 하지마.”
“….”
“아무도 니가 못하고 있다고 생각 안 하니까.”
“진짜 그럴까?”
“나 처음 영화 찍었을 때보다 훨씬 잘하고 있는데 뭐.”
“난 완전… 어후, 대박이었어.” 하며 너스레를 떨어 보이는 종석을 바라본 우빈은 그제야 피식 웃었고, 쥐고 있던 맥주 캔을 한 번에 원샷 하고는 캬- 하는 소리를 내며 텅 빈 맥주 캔을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술이 다네. 달아.”
“나도 조금….”
“웬일이냐. 너 술 싫어하잖아.”
“그러게 말이다.”
맥주를 다시 한 모금 들이킨 종석은 맥주 몇 모금에 벌써 취기가 도는 듯 눈을 느리게 깜빡이다가 자신의 팔을 스치고 가는 찬바람을 느끼고는 몸을 떨었다. 어디 문이 열려있는가 보다. 하고 시선을 이리저리 옮기던 종석은 거실 발코니 문이 살짝 열려있는 것을 보고는 그럼 그렇지. 하며 몸을 일으켰다.
“어디가?”
“창문 닫으러.”
자리에서 일어나 휘적휘적 걸어 문을 닫은 종석은 살짝 고개를 들어 비는 그쳤지만 아직 어두운 하늘을 올려보다가 한숨을 푹 내쉬며 몸을 돌렸다. 그런데 종석이 몸을 돌리니 어느새 그 뒤에 우빈이 서있었고, 그런 우빈을 놀란 표정으로 올려다본 종석은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아, 뭐야. 놀랬잖아 인마.”
“종석아.”
“왜.”
“한 번만 더 해보면 안 되냐?”
“뭐를?”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우빈을 올려다 본 종석은 시선을 이리저리 돌리며 머뭇거리고 있는 우빈의 팔을 잡았고, 그 순간. 우빈의 양 손이 부드럽게 종석의 볼을 감싸더니 쪽- 하는 소리와 함께 입술이 닿았다 떨어졌다. 종석은 조금 놀란 눈빛으로 우빈을 올려다봤다. 한숨을 푹 내쉬며 미안하다고 중얼거리는 우빈의 손이 볼에서 떨어져 나가서야 입을 떠듬거린 종석은 몸을 돌려 걸음을 옮기려는 우빈의 팔을 더 세게 붙들고는 작게 말했다.
“야….”
“….”
“그… 왜 하다 말고 가…냐?”
“어?”
“한 번 한다고 정말 한 번 하냐?” 하며 고개를 든 종석은 당황스러움에 살짝 벌어져 있는 우빈의 입술에 짧게 입 맞췄고, 다시 쪽- 하는 소리와 함께 입술이 닿았다 떨어지자 잠시 넋을 놓고 있던 우빈이 다급하게 종석의 얇은 허리를 다부진 팔로 붙들어 자신의 쪽으로 끌어당겼다.
“진심이야?”
“아직은 잘 모르겠어… 단순한 호기심인지 진심인지.”
“….”
“근데 우빈아….”
“….”
“한 다섯 번만 더 해보면 알 것 같기도 해.”
우빈의 목 뒤로 팔을 감은 종석은 어깨를 한 번 으쓱하고는 생긋 웃어보였고, 그런 종석을 멍하니 바라보던 우빈은 푸스스 웃으며 종석의 붉은 입술에 짧게 입 맞췄다. 그렇게 한 번, 두 번, 서로 고개를 바싹 붙여가며 조금 느리게 버드 키스를 하던 둘은 다섯 번을 넘겨서도 푸스스 웃어가며 입술을 마주했다. 끊어질 듯 하면서도 계속 이어지는 그 키스를 멈춘건 종석이었다. 눈을 가볍게 감고는 우빈의 가슴을 살짝 밀어낸 종석은 고개를 숙여 제 머리를 우빈의 어깨에 가볍게 기댔고, 의아한 표정으로 종석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은 우빈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왜 그래?”
“아니… 별 건 아니고….”
“?”
“가슴 속이… 막 간질거려서… 미치겠어.”
종석은 우빈의 목 뒤로 감았던 팔을 내리고는 가볍게 떨리고 있는 손으로 가슴 부분의 옷을 꽉 쥐었고, 그런 종석을 물끄러미 내려다보던 우빈은 피식- 웃으며 종석의 볼에 짧게 입 맞췄다.
“정답 나왔네.”
“….”
“서로 진심인거.”
우빈은 자신의 품에 안겨있는 종석을 더 끌어당겨 품에 안고는 밝게 미소 지었고, 종석도 밝은 미소를 머금은 채 우빈의 탄탄한 가슴에 머리를 편히 기댔다. 종석의 귀로 가깝게 들려오는 우빈의 심장 소리는 자신의 심장 소리와 같이 빠르게 뛰고 있었고, 그것은 종석의 마음을 한결 편하게 해주었다. 서로 똑같이… 좋아한다. 이 소리인가.
“종석아.”
“응.”
“사랑해.”
“… 나도.”
“야, 너 근데 대답 앞에 묘한 텀이 있다?” 하며 우빈이 장난스럽게 말하자 종석은 푸스스 웃으며 “아니거든?” 하고 대꾸했고, 그런 종석의 입에도 쪽- 하고 입을 맞춘 우빈은 고개를 들어 창밖을 바라봤다. 장대비를 억수같이 쏟아내던 잿빛 하늘은 어느새 은연한 빛을 내며 맑게 개고 있었고, 구름 사이로 부드럽게 내리쬐는 햇빛은 종석을 비추며 그를 한결 빛나게 해주고 있었다.
“종석아.”
“왜 또.”
“나 오늘 자고가면 안 될까?”
“뭐?”
“진짜 손만 잡고 잘게.”
종석은 무언가에 홀린 듯 웅얼거리며 말하는 우빈을 벙한 눈빛으로 바라봤고, 그런 종석의 피부는 햇빛을 받아 더 희게 빛나고 있어 붉고 도톰한 종석의 입술과 대조 됐다. 왜 갑자기 자고 간다는 거지? 고개를 갸웃거리던 종석은 뭔가 미심쩍긴 했지만 고개를 끄덕였고, 밝게 웃으며 종석을 다시 한껏 끌어안은 우빈의 입꼬리는 미묘하게 올라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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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잠만 잤을까요?!!! ㅎㅎㅎㅎㅎㅎ
그건 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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