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날씨가 참 지독하게도 맑네. 조용한 방 안, 조신한 모습으로 곤히 누워있는 플로리아의 모습은 마치 모양이 정해져 있는 딱딱한 목각 인형 같았다. 이내 곤히 감았던 눈을 떠 제 방 창문 틈 사이로 새어나오는 햇빛을 향해 손을 뻗으며 중얼거렸다. … 아침인가? 무슨 이유에선지, 학교에서 내 준 숙제를 끝내고 침대에 누운 지 한 시간도 안 되었는데도 졸리지가 않았다. 그러나, 지금 이 자리에서 일어나고 싶은 것도 아니었다. 자신의 눈 위로 쏟아지는 햇살을 무릅쓰고 조금이나마 이 시간을 제대로 보내고 싶어 조용히 눈을 감았다. 이렇게 계속 있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대로 시간이 멈춰버린다면.. 말도 안 되는 일이겠지.
플로리아, 학교 가야지. 어서 일어나. 저를 부르는 어머니의 목소리에 또 다시 눈을 떴을 땐 시계의 바늘이 어느새 일곱 시를 가리키고 있었고, 어느 때와 같이 곧 나간다고 짤막히 대답하며 제 침대 옆에 가지런히 놓여진 분홍색 슬리퍼를 대충 구겨신으며 화장실로 달려갔다. 매일 매일이 반복되었다. 더 이상 자신이 그렇게도 좋아하는 피아노를 치는 것도 즐겁지 않았고, 마치 매일 아침마다 같은 비디오 테잎을 넣어 돌리는 것처럼, 매일 매일이 같았다. 다녀오겠습니다 … ! 제 말에 대답해 주는 어머니의 목소리가 플로리아를 배웅해 주었고, 버스를 타려 발걸음을 옮긴 순간 자신의 집 우체통에 무언가가 들어있는 게 보였다.
붉은 인장이 찍힌 편지에는 런던, 2층 다락방의 … 그리고 자신의 이름. 플로리아 이브 홀리스 양에게. 라고 적혀 있었다. 내게 온 편지? 대체 무슨 일이길래 그런 거지? 무심코 고개를 들어 주위를 둘러보던 중, 부엉이가 반대편 집의 울타리에 앉아서 자신의 깃털을 쪼고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부엉이? 이 대낮에 웬 부엉이지? 플로리아는 계속해서 샘솟는 궁금증을 뒤로 하고 편지 봉투를 뜯어 그 안에 든 양피지 두루마리를 펴 읽기 시작하였다.
그들은 그 후로 행복하게 살았다. 어릴 적, 부모님께서 읽어주셨던 동화 책들의 끝 마무리는 항상 같았다. 따뜻한 벽난로 옆에 있는 소파에 기대어 그 때의 기억을 회상하며 책의 마지막 소절을 조용히 읇조렸다. 행복하게 살았다고? 어째서 그래야만 하는 걸까? 문득 머릿속을 스쳐간 생각이었다. 왜 모든 동화들의 끝은 행복이지?
소파에서 몸을 일으켜 책을 손에 들고 책장으로 걸어갔다. 나쁘게 끝나면 안 되는 이유라도 있는 걸까? 플로리아는 제 자리에 책을 꽂으며 계속해서 생각하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풀리지 않는 의문에 답답해지기 시작한 그녀는 이제 과제를 하면서까지도 계속 끙끙대었다. 그들은 과연 정말 행복했을까. 제 방 책상에 턱을 괴고 곰곰히 생각하였다. 그 동안 동화에 나오는 악당들은 주인공들처럼 행복한 결말을 맞지 않않다. 그저 나쁜 짓을 하였다는 이유로 ㅡ . 행복하게 살았다는 건 거짓말이야.
그들이 그 후로 행복하게 산 게 아니라, 몇몇 소수의 주인공들만 행복하게 살았던 거겠지. 그 누구도 악당들을 용서해 주지 않았어. 그것도 겉으로는 정의, 정의를 그렇게도 중요시하는 주인공이. 플로리아는 이 말을 계속해서 머리에 되새기며 제 방 침대에 몸을 던졌다. 동화 책은 전부 거짓말이야. 삶은 그렇게 쉽지 않은 걸? 누군가에겐 해피 엔딩인가 하면, 누군가에겐 배드 엔딩이겠지. 우리 모두가 행복할 순 없어. 그들은 행복하지 않았어. 플로리아는 이 생각을 끝으로 천천히 눈을 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