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출 예약
호출 내역
추천 내역
신고
1주일 보지 않기
카카오톡 공유
주소 복사
모바일 (밤모드 이용시)
댓글
Caligo_94 전체글ll조회 3624l 1


야아, 일어나. 침대에서 뒹굴던 것에서 일어나 느릿하게 네 몸을 끌어안았다. 원래는 내가 안으면 품에 곧바로 들어왔는데. 분명히 어릴적엔 저보다 작았는데 어느새부턴가 저보다 큰 제 동생이 참 잘 자랐구나 싶었다. 너를 끌어안은 채 이리저리 흔들며 너를 깨웠다. 칼릭스, 칼릭스. 봄이 왔어. 아이가 미소지었다. 이른 아침부터 너를 깨운 걸 보아하니 내가 퍽이나 기분이 들떴나보다. 벌써부터 봄이야, 나 정말루 믿은 적 없는데 말이지! 열아홉이나 먹어놓고는 잘도 어린애처럼 웃어보인다. 아직, 맑다. 흰 것을 넘어서서, 투명한 듯이 맑다. 까맣지 않다.


제 동생이 몸을 일으키자 아이는 급히 옆으로 물러섰다. 열아홉의 너는, 아직도 제게는 어린아이같았다. 남들 눈에 비춰지는 너와 나는 정반대였다. 속 역시 정반대라고, 적어도 자신은 생각했다. 문을 나가는 네 뒷모습을 바라보는 얼굴에 옅은 웃음이 번졌다. 나는 왜 곧 스무살인 너를, 나와 몇 분 채 차이나지 않는 너를 그리 여린 아이로 보는걸까. 이미 부모든 형이든 손을 탈 나이는 훌쩍 넘었는데, 너혼자 설 수 있는 너였는데. 아직도 꼭 제가 지켜줘야만 할. 제가 품에 안아야 할 어린아이같았다. 형들 마음은 다 이러려나 싶어 픽 웃음이 흘렀다. 그러니, 네게 무엇이든 힘든 것은 알리지 않겠다 생각했다. … 설령 그것이 너와 관련된 일일지라도.


간단히 아침만 차리고 네가 나오길 기다렸다. 네 익숙한 목소리가 귓가에 울렸다. 제 동생이 좋아하는 것들이랍시고 아이가 유난히 신경쓴 날이었다. 어떻게 자신은, 부모보다도 더 너를 잘 아는 듯 싶었다. 아침인지라 입맛이 없어 가끔 그걸 넘기는 것은 너나 나나 매한가지였다만, 오늘이어서. 봄이 찾아오는 오늘이어서 그렇게 들떴다고 할 수 있겠다. 안 먹으면 형 너랑 얼굴도 마주 안볼거구, 얘기도 안할거야. 하는 투정도 부려보면서. 아이가 그저 본인 숟가락을 드는 제 동생을 바라보았다. 금방이라도 가서 네 머리칼을 헤집어주려던 손길이 이내 허공에서 멈추었다. 식사를 멈춘 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타이밍의 어긋남은 항상 제게 무안함을 가져다주었다. 순전히 무의식적인 행동이긴 했지만.


그릇을 전부 치우고 나니 문득 그제서야 배가 고프단 생각이 들었다만, 밥을 먹는 데에 시간을 허비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대신에 소파에 앉아있는 네게로 다가가 장난스레 너를 끌어안았다. 가만히 너를 끌어안고 있는 것도 기분이 좋았다. 어쩌면 나는 다른 이들에게도 나누어 주던 정을 오로지 너 하나에게만 마음편히 쏟아붓고 있을지도 몰랐다. 이유라 하면, 모든 게 끝났으니까. 마지막 시험도 끝났고, 앞으로 학교에 다시 갈 일도 없다. 적어도 제게 하루의 여유시간은 있었다. 칼릭 대학 잘 붙었을까, 잘 붙어야 하는데. 아마도, 제 이기심이었다. 그것에 제가 아프기를 피하는 건지, 아니면 오로지 그를 위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칼릭스. 하고 불러보았다. 왜냐고 불어오는 목소리가 존재했다. 그저 푸스스 웃음을 터트리며 너를 응시했다. 칼릭스, 칼릭스.


 우리, 꽃구경 가자.


나는, 네가 나를 거절하지 못할 걸 알고있었다.


한국에서 맞는 봄은 색달랐다. 벚꽃이 폈다. 허옇고 연하고 분홍빛 벚꽃이 내렸다. 미국에서도 이랬었나. 벚꽃은 동양에밖에 피지 않는걸까. 조금 싸늘함에 벚꽃이 내리는 것을 보니 어쩐지 제 조국임에도 불구하고 낯선 감이 존재했다. 가만 벚꽃을 쓸어보았다. 제 손에 힘없이 떨어져내릴 것 같으면서도 잘도 서로 붙어있는다. 가만히 벚꽃을 내버려두고 너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네 표정을 읽을 수 있었다. 네가 좋아하든, 싫어하든. 그만큼 네가 내게 쉬운 사람이 되어준 걸지도 모르겠지만. 밖에서 손을 잡거나 끌어안거나 할 수는 없기에 그저 너를 바라보는 것으로 만족했다. 무슨 짝사랑하는 열일곱의 소녀도 아니고. 사실 맞을 지도 모르겠다. 온 애정을 전부 너에게만 쏟아부어서. 그럼으로, 나는 행복해졌고 또 불행했다.

가만 네 얼굴을 바라보았다. 저와는 다르게 생겼으면서도 또 풍기는 분위기가 비슷하다. 외관 자체는 자신은 어머니를 더 닮았고, 그는 아버지를 닮았다. 지금 네 이름 부르면 네가 싫어할까 싶었다. … 어떻게 매일 보구있어도 보구싶지, 넌. 가족을 향한 정이 이리 클 수 있다는 걸 너로인해 느꼈다. 너를 지켜야 한다는 무언의 의무감. 부모님한테서 비롯된 것이 아닌, 형제애에서 비롯된. 그 성난 발길질에 채일때마저 나는 너를 생각하며 참아냈다. 바보같다 욕해도 네가 좋았다. 내 고통으로 네가 행복하다면 기꺼이 불행해질 생각이었다. 잠시 물끄러미 너를 올려다보았다. 부모님 없이도 잘 자랐다, 너는. 내가 없어도 될 정도로. 꼭 떠나는 작별인사같은 뉘앙스에 픽 웃음만 나왔다. 널 떠나고 싶지 않다. 앞으로 더 시간이 지나도 말이다. 네가 성가시다 할 지도 모르겠지만. ㅡ 어찌됐든, 그런 너를 나는 깊이 아꼈다.


꼬마애가 벚나무를 찬 모양이었다. 하얗고 옅은 벚꽃잎이 우수수 떨어졌다. 짧게나마 네 얼굴이 내 시야에서 사라졌다. 그 순간, 그 적은 순간에 저도 모르게 놀라서. 같은 공간에 있어도 서로 볼 수 없음에 소스라치게 놀라서. 그래서 그상태로 굳은 채 네가 있는 쪽을 바라보았다. 벚잎들 사이로 서서히 네가 보였다. 네 옷에 붙은 그것들을 털어내는 너. 평소와 같은 모습인데, 왜 네 모습은. 너는 그리 이질적일까. 왜 닿을 것 같으면서도, 닿지 않는거지. 꼭 둘이 다른 곳에 있는 것 같이도. 멍하니 네 얼굴을 바라보자 왜그러냐며 물어오는 네가 있었다. 순간 저도모르게 눈물이 한방울 흘렀다. 그대로 울어버릴 것 같아 고개를 숙였다. 네가 그리웠다. 너와 헤어지는 게 두려웠다. 나는 내 미래를 보았다. 나는 결국에 너를 놓아주지 못한다. 그래서 나를 놓지 않는다.


결국 꽃구경도 제대로 하지 못하구 집에 왔다. 집으로 가는 버스 안에는 잠든 양복차림의 직장인 외엔 아무도 없었다. 그탓에 죽은듯 조용했고. 버스 창가에 기대어 멍하니 밖을 바라보았다. 밖은 벌써 어두워져있었다. 덜컹거리는 버스에 머리가 아렸다. 내 옆에서 너는 가만히 입만 다문 채 시선을 회피했다. 네 나름의 배려인 것을, 나는 알고있었다. 사실 나로서는 네가 왜 우냐고 캐묻지 못한 것만으로도 네가 적지않게 당황했다는 걸 알고있었다. 기분좋게 너와 놀려구 나와서는, 이게 뭐야. 저도모르게 헛웃음이 흘렀다. 이럴거면 그냥 집에 있을걸. 집에서 하루종일 네 얼굴이나 쳐다볼걸. 지금은 네 얼굴을 볼 용기조차 나지 않아서. 사실, 더 보면 네가 정말로 사라져버릴까. 네가 사라질 리가 없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아는 나인데, 왜 나는 이리도 두려워할까.


이내 버스가 멈추었다. 버스문이 느릿하게 열렸다. 고요한 거리가 눈 앞에 자리했다. 가로등들이 군데군데 켜져있었다만 전부를 밝히기엔 역부족이었다. 집까지는 십분가량 더 걸어가야 하는 거리였다. 아무말 없이 그의 옆에 서서 느릿하게 걸어갔다. 제 옆에서 걷는 이는 나보다 키가 크고, 쌍꺼풀이 없고, 선하며, 나와 다르지만 비슷하고 내 동생이다. 죽어도 기억해야 했다. 어쩐지 기억해야만 할 것 같았다. 문득 해보인 생각이었다. 너는 내 동생으로 태어나지 않았다면, 행복했을까. 여기가 아닌, 다른 가정에서. 부모가 미치지 않은 가정에서. 돈많지 않고 평범한 집안에서 태어났다면. 그랬다면 훨씬 더 행복했을텐데. 가만 너를 내 품에 안고 토닥이고 싶었다. 내가 본 미래는 내가 너를 놓지 못하는 미래는 ㅡ 아마, 정반대였다.


… 한영아. 발걸음이 잠깐 멈추고 그 뒤에 나즈막한 목소리가 있었다. 네가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제 공허한 시선이 네게 꽂혔다. 너를 보려 살짝 올라가는 고개의 각도조차도 그 각도의 변화조차도 나는 항시 잊지 못했다. 네 눈과 드디어, 드디어 마주할 수 있었다. 네 눈이 생각보다 깊다는 걸, 생각보다 많은 이야기를 많은 감정들을 담고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더불어, 네가 더이상 어린아이가 아니라는 것 또한. 더이상 내게 보호받는, 내가 몸바쳐 끌어안을 아이가 절대 아니라는 것. 너 홀로도 어떤 슬픔이든 전부 이겨내고 살 수 있는, 성인이 되가고 있다는 것. 제 시선이 오로지 너만을 담아냈다. 네게 뻗으려던 손이 허공에 맴돌았다. 그리고, 잘게 떨려왔다. 지금 너와 닿으면 너는, 아니 나는 사라지지 않을까. 영원히 널 보지 못하지 않을까. 그래서 나는, 두려운가.


자신은 시계가 곧 열두 시를 가르킬 것이라는 걸 알고있었다. 제게 선택권이란 없었다. 그대로 제 동생을, 제가 아끼는 동생을, 제 영원을 끌어안았다. 네가 놀라서 밀어낸다면 밀려나줄 심산이었다. 그전에, 그전에. 나는 할 말이 있었다. 아직 미처 마치지 못한 말이 있었다. 울음젖은 발간 입술이 느릿하게 열리더니, 이내 너에게 읊어냈다.






 미안, 미안. 한영아, 칼릭, 칼릭스, 형이 미안해. 네가 무지 보고싶어서, 네가 너무 그리워서 … 그래서, 그래서 형이 처음으로 욕심 좀 부렸어. 이정도 욕심은 내게 허용되길 바랬었어. 너 한번만 더 만나게 해달라고. 우리 한영이, 얼굴 한번만 보게 해달라고. 그래서 잠시 바람처럼 네 곁에 머물다 바람처럼 사라지는 거야. 꽃처럼 추락하는 거야. 나비들처럼 날아가는 거야. 나는 어떤 형태로든 영원히 네 곁에 있을거야. 나비가 되어 네 머리칼 위에 앉을게. 바람이 되어서 널 바라볼게. 꽃으로 피어나 널 행복하게 만들게. 칼릭스, 너는. 형 가도, 너는 행복해야해. 내 몫까지 살다와. 너는 내 영원이니까, 내 유일한 영원이니까, 네가 살아있는 한 네가 영원한 한 형도 네 옆에서 머무를거야. 언제나 네 안에서 숨쉴거야. 형은 안 가고 기다릴게. 항상 같은 자리에서, 너 기다릴게. 그러니까, 마음 놓고 천천히 와. 나중에 네가 올 적에는 내가 너 마중나와서, 그때는 꼭 끌어안아줄게. 아니다, 그때는 네가 나 좀 안아주라. 그때는, 형이 한 번만 더 네 앞에서 울게. 드러낼게. 그러니까 우리 그때까지만, 잠시만 떨어져있자. 나중에 보면 더 반갑게. 나중에 꼭 다시 만나게. 한영아, 정한영, 한영아.


사랑해, 형이.


아이의 형체가 느릿하게 흩어졌다. 전부 나비들이었다. 한동안 하늘을 돌던 허연 나비들이 각자의 하늘 위로 흩어졌다. 더이상 아이는 이곳에 존재하지 않았다. 전부, 네 한여름밤의 달콤씁쓸한 꿈이었다.




설정된 작가 이미지가 없습니다

이런 글은 어떠세요?

 
로그인 후 댓글을 달아보세요
 
분류
  1 / 3   키보드
필명날짜조회
애니/2D [HQ/시뮬] 스트리머 남닝 키우기 <spin off>615 초파를조종합니..04.18 20:15882 23
애니/2D [HQ/시뮬] 대학 가자!1142 04.19 23:12614 12
애니/2D [HQ/시뮬] 인간실격 ; 1735 비포04.06 00:05476 7
애니/2D [HQ/시뮬] 센티넬들이 내게 집착한다182 moonlit04.20 23:43355 6
애니/2D [HQ/시뮬] 내가 쓴 소설에 빙의해버렸다23 북부대공04.22 21:04235 1
단편/수필 2/22 1 연필 02.22 02:33 124 0
단편/수필 차라리 여름이 난로 같았다면 예찬 08.10 10:46 315 3
단편/수필 생각보다 꽤 허무한 -이별준비 중_ 06.16 22:33 144 1
단편/수필 더 이상 기대하지 않는다 -이별준비 중_ 06.15 01:14 173 1
단편/수필 감사합니다 18 신시벨 01.24 05:00 1390 3
단편/수필 종종 쓴 단상들 불명 01.11 00:25 277 0
단편/수필 […] 4 신시벨 12.20 07:13 349 3
단편/수필 사랑의 탐구자 11.27 19:01 224 2
단편/수필 ​우리 사랑한 시간이 같은데 저물어가는 시간은 다르다니요 6 신시벨 11.01 18:01 534 3
단편/수필 소년과 어른1 핑크고구마 10.01 01:25 308 2
단편/수필 마지막 인사 밀크티 09.22 20:23 270 0
단편/수필 […] 시간의 부작용 신시벨 07.19 04:59 561 5
단편/수필 조용한 고백 2 신시벨 06.17 13:56 425 2
단편/수필 무지개 빛 바다, 너의 눈 신시벨 06.17 06:10 392 4
단편/수필 카데바 신시벨 06.04 03:59 507 4
단편/수필 안 아프게 죽기 2화 준자 05.15 15:04 728 0
단편/수필 안 아프게 죽기 준자 05.15 14:07 898 4
단편/수필 포도나무 2 신시벨 04.27 06:09 600 4
단편/수필 상실의 온도 2 신시벨 04.17 01:18 616 1
단편/수필 기억이 닿는 곳 04.12 19:14 122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