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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하는 게 아름다운 건,

우리의 매 귀갓길에 보이던 달로도 충분할 것 같은데.



[Trigger warning]



거시 절망 巨視絶望



[하이큐/드림/좀아포] 거시 절망 2 | 인스티즈

Q. ...그래서, 넌 지금 어디있어?

A. 세상이 끝나도 네 곁에.





東口



- 졸려. 

- 그렇게 하루종일 자 놓고.

- 잠은 자면 잘수록 피곤한거랬어.

- 그럼 안 자면 되는걸...

- 그냥 넘어가라.

- 워, 알겠어. 진정해 닝.


  여느때와 다름 없이 늘어지고 익숙한 경치의 연속. 몇번이고 봐왔던 그 장면 속의 네 미소를 그렇게나 지독히 그리워하며 앓게 될 줄이야. 지금 생각해보면 참 웃겨. 아직도 이렇게 선명하잖아, 도대체 언제까지 무뎌져야 이것도 흐려지고 앞만 보게 될까. 너무나도 게으르게 시간을 쌓아온 우리를 벌하려는 걸까. 왜 내 앞에는 만신창이인 우리 뿐이야. 아무리 생각해 봐도 안 어울려. 어느새 진득하게 달라 붙은 피 냄새도. 알았어, 코우시. 그만 울게. 가자, 가자. 일어나자. 


가야지.


일어나,

닝.


정신을 차려.


- 고맙다, 코우시. 오늘도 데려다줘서.

- 너 같은 철부지를 두고 내가 맘이 놓여야 말이지. 

- 뭐어? 무슨. 네가 내 엄마야?

- 다 날 카라스노의 엄마라고들 하긴 하던데. 

- 네네. 어머니 오늘도 수고 많~으셨네요.

- 그래. 지하철 시간 또 놓치지 말고.


  그래, 인정하기로 했어. 나는 그냥 네 그 바람빠진 웃음이 좋았던거야. 유독 세상을 집어삼킬 듯이 빨갛게 물든 노을에 번진 빛 때문이 아니었던거지. 어쩌면 이 생각을 평생 네게 전할 일은 없으리라 섣불리 맘먹은 내가 얼마나 오만했던가. 한번도 굽혀진 적 없던 내 철저하고도 무던한 일상이 너로부터 단단히 지켜져 왔단 걸 지금에서야.


깨달음만이 밀려 들어오는구나.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이 난장판을 고개 빳빳이 들고 마주할 수 있게 될 수 있을지, 아니면 온몸의 생존욕에 들끓어 쉴새 없이 달리는 다리짝이 쉼을 맞이할 수 있을런지. 이것조차 당장에 알 수 없음에도 말이다. 다시금 마른침을 겨우 삼켜내고서야 해이해진 정신이 기민해 진다. 그래봤자지금에야 다 쓸모가 없잖니. 아는데, 아는데......


- 닝.

- 조용히 해.

- 이러다 너까지...

- 다친게 나였으면,

- ...

- 넌 아마 내가 제발 놓고 가라고 울고 매달려도 질질 끌고 갔을텐데 말이지.


  두 눈 똑바로 노려보며 느슨히 조인 말투로 날카롭게 쏘아 붙이자 고개를 떨구는 스가와라 코우시가 보인다. 정신 나간 소리하지 마. 넌 지금 나를 핑계로 가장 비겁한 도망을 치려는 것 뿐이잖아. 그러니까, 제발. 


  웅웅대는 머리에 어금니를 꽉 물어 포탄을 직격으로 맞은 듯한 얼얼함을 겨우 가라앉힘과 동시에 온몸이 후들거렸다. 몸집 차이가 나는 한창의 남고생을 오래 끌며 버티고 있기란 생전 해본 적도 없던 일이었지만 이 아수라장에 절대 스가와라를 두고 갈 수는 없는 터라. 

  숨이 턱 끝까지 차올랐다. 더구나 불안한 중심에다 덧대인 무게까지 너무나도 버거운 탓에 눈물이 절로 비집고 나왔다. 마르고 흐르길 반복해 이제는 빨갛게 부어 오른 눈가가 따가웠다. 그럼에도, 억눌린 모든 것들을 토해낼수가 없었다.




[하이큐/드림/좀아포] 거시 절망 2 | 인스티즈




- 키아악... 


 아마도 이 극한에 치다른 공포를 입밖으로 낸다면, 절망의 냄새를 맡고 산송장들이 몰려올지라. 썩고 물어뜯겨 온전한 산것의 형태를 잃어버린 그것들이 살아 있는 것들을 보고 달려드는 꼴이 모순적이었다. 어쩌면 규칙의 틀 조차도 무너진 지 좀 오래라 당연하다고 생각이 들면서도 말이다. 굳이 이런 죽은 것들의 출현이 아니더라도 충분히 받아 들이고 있던 자명한 사실이었다. 살기 위해서는 끝없이 달리고 희생 당해야만 한다고. 


  희생양. 이제 와서야 그게 누구든 상관 없었다. 내 전부만 숨죽이고 꿇으며 엎드려 기어가 연명하는 삶이면 충분했다. ...이것 또한 예전이나 마찬가지다. 사실상 이 모든게 붕괴가 아니었다는 게 느껴진다. 항상 그래왔듯. 더이상 어린 시절의 구석에서 처박혀 있으면 안돼. 내것을 지켜야만 했다. 원죄이자 내게 주어진 단 하나의 목표.


 스가와라의 몸이 조금씩 차가워 지는 것이 그를 붙든 손에서 느껴졌다. 방법을 찾을게. 여태 그래왔듯. 코우시, 네가 말했잖아. 난 뭐든 해낼 수 있다고. 그 말이 맞아야만 할거야. 내가 증명해낼테니.


- 코우시. 문 제대로 잠구고 절대 나오지 마. 최대한 빨리 올거야.

- ... ...


 스가와라가 달뜬 숨을 천천히 고르며 고개를 끄덕였다. 내 고집을 감당할 힘도 남아있지 않은 모양이었다. 스가와라를 작은 가게 안의 의자에 거의 눕히듯 앉혀 놓곤 재빠르게 블라인드를 걷어 내렸다. 내내 팔목을 걷어 붙이고 있던 져지를 벗어 피를 대충 문질러 닦아내 그에게 덮어주자, 동시에 손목이 붙잡혔다. 꽤나 억세면서도 단단한 폼이, 내가 줄곧 알고 지내던 그 굳은살 가득한 손의 주인인 그에게. 


- 코우시.

- 다치면 안 돼. 위험하다 싶으면 그냥 도망쳐.

- ......

- 제발.


  그의 울상으로 일그러진 표정을 일순 가만 쳐다볼 수 밖에 없었다. 너도 온 힘을 다해 의연한 척 했던거지. 가슴을 후벼파는 애처로움에도 위로를 건네는 것이 아니라 한발 물러서야 하는 이 상황에 진절머리가 나기 시작했다. 쓴웃음을 삼키며 그에게 애써 웃어보였다. 그러면서도 차가운 양철 손잡이를 쥔 손은 놓지 않았다.


- 너한테 처음 듣네.

- ...닝.

- 도망치라는 거 말이야.


  문이 열렸다. 조심스럽던 그 작은 소리 조차도 죽은 자들의 눈을 뜨이게 했고, 다시 닫히는 틈으로 흘끗 바라본 네 얼굴은 보이질 않았다. 아마 그 푹 숙인 고개 너머에는 울음을 참아온 엉망인 소년이 있을테지.





[하이큐/드림/좀아포] 거시 절망 2 | 인스티즈



北口


  스가와라를 내려 놓고 빠르게 나와 옆 출구 쪽 복도로 향했다. 불과 몇분 전만 했어도 온갖 비명소리와 무너진 물건들로 아수라장인 광경이 눈 앞에 바로 있었는데, 아무리 사람들이 무작위로 흩어졌다 해도 아직도 이런 난장판인 곳에 아무도 없다는 것이. 이 끔찍하리만큼 고요한 공기가 더욱 긴장감으로 가슴께를 조여온다. 타는 목마름에도 섣불리 침을 삼켜기가 버거웠다. 손바닥에 땀이 배여 자꾸만 손에 쥔 철판이 미끄러졌다.


- ...-해서, 현 D구역 입니다.

- 처리는 잘 했겠지.

- 비감염자들은 아직 더 찾는 중입니다.

- 빨리 움직여야 할거다.


  인기척이 느껴지자, 잠시 기둥에 몸을 숨겨서 다가오고 있는 이들을 조심스레 살펴보니 군인들이 무리지어 있었다. 뭔가 그들에게 얻어낼 게 있지는 않을까. 스가와라도 다행히 물린 건 아니고, 유리에 베인 상처니 간단한 구급조치는 도와주지 않을까? 앞으로 나가 마주할 생각으로 조심스레 발을 내딛자,



- 쉿.


누군가 손목을 뒤로 낚아채며 입을 틀어 막아왔다. 






* 전국 베스트 세터 상까지 받았던 전 배구 유망주 닝... 공부 쪽으로 잘돼서 연구원의 길을 물려 받길 바라며 배구선수가 되는 걸 강경하게 반대하시던 부모님의 의견에도 불구하고 더 잘 보이기 위해서 매일 배구에만 전념하고 배구에 미쳐 살았는데, 대회에서 모종의 이유로 무릎이 아작나서 살 희망을 잃고 있다가 스가와라를 만나 카라스노 매니저가 되었다는 뒷배경이 있습니다. 나중에 외전으로 다시 풀 예정! 이라네요!


*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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