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 위로 종이가 떨어졌다.
우열을 가리자는 도전장인가 싶어 책상과 한 몸처럼 붙이고 있었던 상체를 일으켜 세웠다. 전날 밤새도록 게임을 한 탓에 자꾸만 감기려 드는 눈을 억지로 떠가며 빈 A4 용지를 들고 뭐냐는 듯이 앞자리 친구를 바라보았다. 담임이 뒤로 넘기래. 아하.
그렇게 시선은 다시 교탁으로.
탕탕–
청록색 칠판을 위협적으로 두들기던 담임과 눈이 마주쳤다. 그 짧은 찰나 발치로 떨어졌다 튀어 오른 동공에 저도 모르게 움찔하여 굽혔던 등을 바로 했다. 바르게 앉으라는 무언의 압박이었다. 가끔은 말로 하지 않아도 눈치껏 알아들어야 할 때가 있었다. 그리고 지금이 바로 그 때였다.
"내일 조회 시간 전까지 희망하는 직업이랑 사유 적어와."
아니나 다를까 야유가 빗발쳤다. 우우. 하기 싫어요. 안 그래도 할 짓거리들이 많은 게 고등학생이었다. 인증은 안 되지만 본인 피셜 축구부 에이스라던 놈이 오른손을 번쩍 들고 말했다. 쌔앰– 없으면 없다고 적어도 돼요–?
"없는 게 자랑이냐. 인마, 헛소리 말고 똑바로 써서 내."
"그러면 유튜버라고 써도 돼요?"
"야, 우리 딸 꿈도 그거야. 안 그래도 치열한데 너까지 끼어들 거냐."
"왜요? 자신 없으세요?"
"기대도 안 되는데 자신은 무슨. 그럼 조회 끝."
그렇게 앞문으로 나간 담임이 다시 뒷문으로 들어왔다. 반 전체를 싹 훑어보더니 한쪽 입꼬리를 당겨 웃었다. 저러면 꼭 불안하던데.
"두 번은 얘기 안 한다."
맨 위에다가 번호랑 이름 적는 것도 잊지 마라. 가만 보면 니들은 나를 너무 초능력자로 보는 것 같아. 필체만 보고 누군지 어떻게 아냐. 특히 저번 3모 때 학년 빼먹은 사람은 꼭 학년까지 적어라.
그래. 너.
너요.
모두의 이목이 너에게 쏠렸다. 결국 한숨과 함께 펜을 드는 건 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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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아직 필명을 정하지 못한 익명의... 그냥 익명이라고 하겠습니다. 예상했던 것보다 더 어색하네요. 그러니까 인사는 여기서 끝내겠습니다. 일단은 학년이 정해지는 대로 이야기를 시작할 예정입니다. 외형은 따로 정해두지 않아 자유롭게 상상해 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또한 성격적인 부분도 달려주실 닝들이랑 상황에 따라 달라질 듯합니다. 그리고 성별도... 이쯤이면 정해진 게 아무것도 없군요... 그래도 결말은 정해두었지만... 언제나 변수는 생기기 마련이고... 시뮬레이션이라는 특성상 진 엔딩은 있을 수가 없을 것 같더라고요. 분명 있었는데요! 짜잔! 사라졌습니다! 〈〈 이럴 것 같아서... 그래서 미리 말하려고요. 결말을 보기까지 오래 걸릴 것 같습니다... 그것도 아주 아주 오래... 그래도 괜찮으시다면 당신의 학년에게 한 표 부탁드려요. 🚫 그리고 마지막에 반말은 제가 아니라 담임 선생님이 하신 거니까 오해 없으시길 바랍니다. 저 그렇게 무례한 사람 아니에요. 그럼... 다음에 뵙겠습니다...ヽ(´o`;)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