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남자의 사정 ( 부제: 오래 된 연인 번외 )
좋았냐? 단조롭게 내뱉은 제 말에 그저 고개를 끄덕이다 나에게 넌? 이라고 묻는 말에 입에 담배를 물었어, 7년이란 시간 동안 우린 한결 같았고, 변하지 않을 것 같은 우리였는데 매번 똑같은 관계와, 똑같은 우리에 먼저 손을 놓은 건 나였다. 집 안에 너를 두고 나와 밖에서 다시 담배를 입에 물었다. 후, 하고 퍼지는 연기처럼 내 마음도 점점 멀어져갔다. 집 안에서 들리는 울음 소리에 그저 고개를 숙이다 발을 옮겼다. 질린다, 제 뒤에서 몰래 우는 너와 그걸 애써 무시하는 나도 질린다. 비상구에 적힌 순영♡여주 글자에 괜히 담배를 비볐다. 검게 그을린 너의 이름을 그냥 지나쳤다.
오늘 무슨 날인지 알지?
알지. 너의 카톡에 답장을 할려다 그냥 화면을 꺼버렸어. 7주년,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동안 너와 난 같은 길을 보며 걸었다면, 지금은 서로 원하는 바가 달라 다른 길을 걷는다고 생각했다. 알림이 울릴 때 마다 보이는 배경화면 속 웃고 있는 니 사진을 보다 그냥 전원을 꺼버렸어. 마냥 착한 너도 질려.
" 권순영. 오늘 여친이랑 7주년 아니냐? 맨날 이 날짜엔 약속 다 빼놨잖아. "
" 뭐 맨날 보는데 "
" 뭐냐. 권태기? "
포장마차 안에서 혼자 술을 마시다 부른 친구놈은 우리 사이를 잘 알고 있는 친한 친구였다. 권태기냐고 묻는 친구에게 부정 못하고 그냥 술잔을 입에 털어 넣었어. 후회 하지말고 잘해줘라. 라는 친구의 말은 귀에 들어 오지 않았다. 그냥 지금 이 순간 너라는 세상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우리라는 말이 지금은 제 목을 조여 올 뿐, 너가 답답해 넥타이를 풀었어. 이렇게 해도, 날 이해해 줄 너란 걸 아니까 새벽이 다 된 시간이 되서 집에 들어가니, 부엌에서 무릎을 감싸 안고 자는 너가 너무 미련해 보여서 짜증나고 보기 싫어 맞은 편에 앉아 깨울려고 흔드는데, 싫어 라며 제 손을 잡고 우는 너에게, 모진 말을 할 수 없어 또 난 이 상황을 피하기 위해 그냥 너에게 겉옷을 벗어 덮어줬지.
그래, 참아보자. 그냥 한 순간의 감정의 물타기라고 믿고 조금만 참자.
제 등을 감싸 안는 너의 행동에 걸음을 멈췄어. 울지마, 제발. 제 등을 적시는 눈물과 젖은 너의 목소리에 화가 났어. 하지만 제 벨트를 잡는 너는, 비참했지. 잠자리를 하는 동안에도 너는 나에게 매달렸어. 그 매달림이 나를 지치게 한다는 걸 넌 왜 몰라. 샤워 하고 나온 너는 내가 준 약을 쥐고 물었지
" 나 사랑해? "
" 안 좋았으면 너랑 했겠냐? "
" 단지 그것 뿐이야? "
그런 말이 나를 더 숨 막히게 하는 걸, 넌 왜 몰라. 자리에서 일어나 방으로 들어 와 문 앞에 서 있었어. 물건을 챙기는 소리에 너가 나간다는 걸 느꼈지만, 잡을 용기가 없어서 그냥 멍하게 서 있다 문을 열었어, 운 듯한 빨간 너의 눈이, 제일 먼저 보였지만 시선을 내려 너의 신발만 쳐다 봤지 가냐? 제 말에 응이라고 말하는 너의 목소리는 갈라졌지. 조심해서 가라. 대답 없이 밖을 나서는 너를 보곤 방으로 들어 왔어. 7년이란 시간이 너와 나의 발목을 잡을 줄 몰랐어. 방 안에 가득한 너와의 추억이 나를 찌를 듯, 무섭게 다가 와 그냥 불을 꺼버렸어, 억지로 눈을 감아도 잠은 오지 않았어, 그 대신 빗소리만 가득 채워,.. 비?
" 야 김여주! 우산... "
우산 없을텐데, 아까 옷도 얇았는데. 급히 문을 열었던 그 곳엔 넌 없었다. 지금이라도 뛰어 가면 너가 있을까 싶어도, 택시 타고 갔겠지. 라는 생각에 그냥 문을 닫곤 니가 놓고 간 블라우스를 정리하다 립스틱이 바닥에 떨어졌어. 이거 내가 선물 해준거네, 다 닳아 없어진 걸 끝까지 파서 쓰는 너를 보며 참 미련하다고 느꼈어. 블라우스를 세탁기에 넣곤 침대에 누워 너의 립스틱을 보던 중, 립스틱 바닥에 순영이가 준♡ 이라고 적힌 견출지에 웃음이 나왔어, 낡고 낡은 견출지에 너가 얼마나 소중히 들고 다녔는 지, 알 것 같아서 웃는데 자꾸 눈 주위가 화끈 거렸어. 넌 그대론데, 나만 변했네.
너의 퇴근 시간에 맞춰 급하게 화장품 가게로 들어 갔어. 여직원이 웃으면서 다가와 뭘 찾냐고 물어보자 어제 너가 떨어트린 립스틱을 보여주자 똑같은 걸로 하나 받곤 너의 회사로 찾아 갔어. 변한 나를 돌리기 위해, 지친 너를 위해 내가 변할려고 너에게 다가 갔지만 너는 점차 멀어 지고 있단 걸, 난 너무 늦게 알았었다. 어색해진 표정으로 제 말에 날 세운 말투로 대답하는 너는 네게 보이지 않는 벽을 보였어.
" 너 어제는 뭐 했는데? "
" 어제? 친구 생일이라서 바빴어. "
" 약속 있어. "
" 취소 하면 되잖아. "
" 싫어. "
" 너 혹시 무슨 일 있냐? "
" 여주씨 누구에요? "
너의 손을 잡는 그 남자의 행동에 어쩌면 너의 표정은 당혹감이 아닌, 안도감이 보였어. 왜? 더욱 굳어지는 얼굴과 립스틱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갔어. 비꼬는 제 말에 지지 않겠다는 남자에 싸울려는 제 태도를 말리는 건 너였어. 이 상황에서 너는 내 편이 아닌, 저 남자의 편을 들었고 제 손에 든 립스틱을 들고 가더니 남자에게 사과하는 너의 태도에 더 화가 나 널 데리고 나올려는데 남자가 더 빨랐어. 안됩니다. 라고 말하는 그 남자는 단호 했고, 넌 나를 돌아 보지도 않고 나갔어.
그때, 알겠더라고 너의 기분을. 어제 이랬어? 이렇게 사람이 비참해 지는구나.
손이 하얗게 되도록 주먹을 꽉 쥐어도 제 옆엔 아무도 없었고, 혼자가 된 기분이 이런가 싶어서 화가 났어. 그대로 니가 여기로 다시 올 것 같아서 가만히 서서 기다렸어. 한 시간이 지나도 오지 않는 너에 진짜 끝인가 싶었지. 잠시 흔들린 내가 병신 같아 보였어. 머리를 거칠게 흐트리다가 집으로 걸어 가던 중, 너에게 전화가 왔어. 전화를 받아도 아무 말이 없는 너에게 어디냐고 묻자 회사 앞 사거리라고 하는 너에게 웃었어. 그 쪽으로 갈게, 끊긴 전활 보다 고개를 들었지. 여기가 회사 앞 사거린데, 이제 김여주도 나한테 거짓말을 하네.
급하게 뛰어 오는 너를 쳐다 보다가 천천히 다가 갔어. 빨개진 눈을 크게 떠 놀란 표정을 짓는 너의 손을 잡았어. 차가운 너의 손을 맞잡았어. 제 손을 더 꽉 잡는 너의 손을 쥐고 카페로 들어 갔어. 항상 추울 때마다 달달하고 포근한 게 좋다던 너의 말이 생각나서 고구마 라떼를 시켰다. 자리로 앉는 너의 맞은 편에 앉으니 고개를 푹 숙이는 너에게 무심하게 말했지. 사실은 그게 아닌데, 자존심 때문에 자꾸 마음과 다르게 먼저 나가는 말이 미웠어.
" 사귀는 사람이야? "
" 아니. "
" 그럼 멈췄어야지. 그 손을 뿌리쳤어야지 "
" 넌? "
" 뭐? "
" 그럼 넌? 어제 무슨 날이였는 줄 알아? "
니 말에 턱 하고 말문이 막혔어. 말 하나 떼는데 뭐가 그렇게 오래 걸리는 지, 알아. 라고 말하자 마자 너는 충격 받은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나서 소리쳤어. 아는데! 그걸 아는 넌데! 나한테 왜 그랬어? 나를 그렇게 기다리게 하면 안됐잖아! 너의 소리침에 모든 사람들이 쳐다봤어, 난 고개를 돌릴 뿐, 너를 안아 줄 수 없었어. 너의 눈물에 몸이 굳었어. 일어나서 닦아줘야 하는데, 제 몸이 말을 듣지 않았어. 자존심이 제 몸을 줄로 묶은 듯, 움직 일 수가 없었어.
우리 헤어지자. 잘 지내, 나도 잘 지낼게.
저를 지나쳐 앞으로 걸어가는 너를 보다가 그대로 고개를 숙여 책상에 얼굴을 박고 울었어. 자존심이 뭐라고, 7년 여자친구한테 자존심이 뭐라고 가는 뒷모습만 보고 잡질 못해, 잘 할 거라며. 제 잘못의 모든 화살이 너였는데, 이제 나로 바껴 제 심장을 후벼팠어. 자리에서 일어나 급하게 너를 따라 뛰어 갔어. 하지만 꽤 걷다보니 마주 보고 앉아 있는 너와 석민을 보고 그 자리에 멈춰 섰어.
나밖에 없을 줄 알았는데, 니 옆엔 이미 다른 사람이 있구나. 난 이미 너무 늦었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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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와 헤어진지 벌써 한달이 지났다. 나 없이 다른 남자와 잘 지낼 거란 생각에 혼자 술을 먹고 너희 집 주위를 서성여도 매번 바래다 주는 남자의 모습에 그냥 돌아 선지도 몇일이 지났어, 나 역시도 잘 지내야 하는데, 누가 그랬지? 여자는 이별의 후폭풍이 먼저 오고 남자는 늦게 온다고, 딱 들어 맞네. 처음엔 그냥 헤어져서, 이제 자유라는 생각에 친구를 만나고 놀다가 집에 들어 오면 너의 추억에, 다시 그 자리에 멍하게 서 있어. 너라는 공간이 나를 집어 삼켜 또 다시 혼자가 되었어.
혼자 집에서 비디오나 볼까 싶어서 밖에 나왔어. 길을 걸어가는데 낯익은 얼굴이 보여 다가가면 그저 죄인처럼 고개를 푹 숙이고 걸어가는 너였지. 여전히 넌 예뻤어. 뒷 모습마저 예뻤어. 달려가서 안아주고 싶지만 자존심에 바라 보기만 했지, 괜찮아. 이제 혼자라도 괜찮아. 너도 괜찮겠지? 고개를 푹 숙인 너의 옆에 같이 걸었어. 추운 겨울에, 우리의 공기는 따듯했어. 같이 걷는 동안 여전히 넌 날 보지 못했지만 난 널 봤어. 얇게 입은 옷 소매로 보이는 작은 손은 여전히 하얗고 말랑해보였고, 추워서 빨갛게 익은 볼은 새침하니 어예뻤어. 예전의 너는 이렇게 예쁜데, 난 왜 몰라 봤을까. 그래서 다른 남자들이 탐 낸건가봐. 그 자리에서 빙글 돌아 너의 앞으로 갔어.
" 뭐하냐 여기서. "
멍하게 나를 쳐다보는 너에게 목도리고 겉옷이며 다 걸쳐줘도 여전히 어리둥절하게 쳐다보는 너가 예뻐서 당장이라도 입을 맞추고 싶었지만 저에게 안기는 너를 어색하게 토닥였어, 제 품에 안겨 우는 너는 작고 그대로였지. 고마워, 기다려줘서 내가 이렇게 혼자 깨닫게 해줘서 너무 고마워. 저에게 떨어져 울고 있는 너의 얼굴을 쳐다보니 알겠더라고. 진짜 이게 사랑이라는 걸.
" 눈 온다. 잡을래? "
흰 눈이 너의 머리에 쌓이고 제 손을 꽉 잡는 너의 손을 더 꽉 잡았어. 고마워. 이렇게 못난 내게, 너라는 존재가 다가와줘서 너무 고마워.
" 아. 김여주랑 결혼 해야겠다. "
" 뭐? "
" 결혼 할래? "
아 뭐래! 소리 치는 너의 입술에 입을 짧게 맞췄어. 좋아. 진짜 좋아 김여주.
(+)
드디어 우리 오래 된 연인이 끝이 났어요.
오래 된 연인으로 인해 많은 독자님과 봄봄님 일공공사님 섭징어님을 만나게 되서 너무 행복해요♡
정말로 감사드립니다. 다음 작품으로 만나요.
내일 아마도 짧은 조각들을 시작으로 크리스마스때까지 많은 작품으로 찾아 뵐 것 같아요♡
혹시나 크리스마스 특집으로 보고 싶은 썰이나 주제가 있다면 살짝쿵 이야기 해주세요!
그리고 텍파는 크리스마스때 쯤, 제가 적었던 글 다 적어서 올릴게요!
읽어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