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아홉 일제강점기 만세 경례
1918년
학교에 가까워진 건지 보이는 헌병경찰들과 일본 정규군 그 뒤로 보이는 조선 총독부,
고개를 숙이고 길을 지나다니는 사람들과 학생들
그 모습에 화가 나서 애꿎은 돌멩이를 세게 걷어찼고
“.. 아!”
둔탁한 소리와 함께 누군가의 외마디 비명이 들려왔다,
검은색 양복과 모자에 붉고 푸른 선을 두른 교복,
당시의 신식 관복과 흡사한 것을 보니 가까운 배재학당 학생 같았다
다행히 헌병경찰은 아니라 목숨은 지킬 수 있었지만, 큰 키와작게 욕지거리가 들리는 거 보니..
큰일 났다..
고개를 푹 숙인 채 뒤통수를 쥐며 고통스러워하던 그 뒷모습에 가까이 다가가 어쩔 줄 몰라 하다가
조심스럽게 어깨를 두드리자 뭐냐는 듯 날카롭게 쏘아보는 그에 온몸이 굳어버렸다
“....."
"너냐,“
“......”
“나한테 악감정 있어?”
“.. 아, 아니요! 죄송합니다”
한숨을 쉬고 짜증 난다는 듯 머리를 털더니 그가 등을 돌려서 발걸음을 옮겼다
똑같이 한 대 맞을 줄만 알고 두려웠는데, 다행이다...
“잠깐”
긴 다리로 휘적휘적 걸어가던 그가 갑자기 발걸음을 멈춰 뒤돌아서 다시 내게 다가왔다
훅 풍겨오는 시원한 박하향에 코가 시려져 살짝 찡그리는 표정에 비해
그가 옅게 웃고 있었다
“너 나한테 잘못했지?”
“... 네”
“그럼 내가 해달란 거 3개만 해라”
-
내가 그의 “해달란 거 3개만 해라” 말에 끄덕이자마자 좋아! 하더니 갑자기 내 팔목을 잡고 어딘가로 이끌었었다
그가 첫 번째로 요구한 것은 의외로 간단했다..
“맛있어요?”
“응 완전”
첫번째 요구는, 연유맛 네모난 바 였다.
가까운 장에 가서 네모난 바를 한 개 집었고
“사줘-”
어깨를 흔들며 부리는 앙탈에 자연스레 입꼬리가 올라갔고 내 지갑도 열렸다..
그가 세상을 다 가진 듯 오물거리며 나와 나란히 걸었고 생각하다 보니 같은 교복을 입고 있는데 나 혼자만 말을 높이는 게 억울해서 살짝 눈을 세게 뜨고 올려다보았다
“근데 왜 저한테 말을 낮춰서,”
“응? 너 몇 살인데”
“저, 열여덟이요”
“어 뭐야 친구네. 너도 반말해”
“허”
나이를 얘기하다 보니 같은 나이였고 학당도 내가 예상한 대로였다.
왠지 편안해진 느낌에 그에게 이것저것 묻기 시작했고, 그가 묻는 말에도 답하며 자연스레 통성명을 했다.
자신의 가족들은 모두 경기도 향남면에 있고, 자신은 부모님의 권유로 출셋길에 오르기 위해 혼자 살며 배재학당에서 교육을 받고 있다고 한다
내 학당과 가까운 거리에 자연스레 함께 걸었고 옆을 돌아보자 보이는 모습에 숨죽이게 되었다
날카로운 눈매에 오똑한 코,옅은 분홍빛 입술 날렵한 턱 선
누가 봐도 차가운 얼굴이었지만 오물거리는 입과의 조화가 이질적인, 상반되는 모습에 웃음이 터졌다
“푸흐..”
“?”
나를 이상하다는 듯 쳐다보는 그에 고개를 젓고선 걸음을 재촉하자 마음에 안 든다는 듯 날 쳐다보던 그가 나와 같이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선 내게 보폭을 맞췄다
“나 두 번째 지금 써도 되냐”
“지금?”
“어.”
“아.. 그래- 뭔데”
“나랑 같이 할 게 있어”
내 손을 덥석 잡고 기분 좋은 듯 미소를 짓고 있는 전원우를 보자 가슴이 간질간질해졌다
“.......”
“가자 성이름”
*
“야 너 미쳤어?”
“학당 하루쯤은 빠져도 돼. 거기서 배울게 뭐 있다고”
“......”
하긴,
“네가 친일이던 뭐든 상관없이 나 도와줘. 그게 두 번째”
전원우가 데려온 곳은 자신 집 지하 비밀 통로 앞이었다
/ 끼이익- /
문을 조심스레 열고 벽면에 작은 스위치를 켜니 불이 환하게 들어왔다
낡은 책상과 그 옆에 책장, 황토색의 책들이 빼곡하게 꽂혀있었고 책상 위에는 여러 알 수없는 문서들이 쌓여있었다
벽에는 ‘국권 회복’ ‘자유 독립’ 여러 문구가 쓰여있었다, 아버지 생각난다..
“여긴 어디야?”
“우리 아버지가 만드신 곳”
“아,”
갑자기 떠오르는 아버지의 잔상에 손끝이 떨려왔다 ‥
내 떨림을 느낀 건지 전원우는 날 한참 말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그 시선을 받아내고 있었을까 책상 옆을 털고 앉은 그가 내게 앞에 앉으라는 듯 턱짓을 했고
나도 망설이다가 자리에 앉았다
내가 자리에 앉자마자 사뭇 진지하게 입을 떼는 전원우에 가만히 그의 눈을 마주했다
"너 처음 보자마자 느낀 건데, 왠지 믿을만한 것 같아서"
"……."
“.. 아버지 독립운동가 셨어.“
"……."
“11년도부터 소식이 끊기더니 돌아오지 않으셨어.
내가 누구보다 존경했고 너무 자랑스러웠던 사람이야“
“.......”
“학당에 가도 내가 어렸을 적 아버지에게 들었던 내용과 너무 달랐고,
옳지 않은 것을 강요하는 거.. 넌 괜찮아?“
그의 말에 한참을 생각했다
…
11년도에 사라진 아버지, 독립운동가.. 어딘가에 계실 아버지가 내게 유일하게 바른길에서 숨 쉴 구멍을 내어준 거구나 감사하며
그에게 '우리의 생각은 같다'는 걸 전할 수 있게 신중히 입을 뗐다
*
전원우와 서로의 생각을 나눴고, 같은 생각을 가진 서로에 무척이나 행복했다
우리는 서로를 마주한채 동시에 입을 열었다
함께하자.
우리 둘은 서로가 존경하는 아버지처럼 바른길로 가자
민족정신이 말살될지라도 우리 둘만은 다시 피어오르자
한걸음씩 너와 함께 이길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