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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집 그 녀석
02







숙제는 자고로 미뤄야 제 맛 이라고, 나는 영어 숙제의 분량이 1페이지 인 것을 확인하고 학교에 가서 아침 자습시간에 하겠다고 다짐했다. 책을 펼치자 마자 바로 덮고서는 침대 위로 몸을 던져 그대로 잠에 빠져 들었던 것 같다. 여러모로 피곤한 첫 날이였다. 정말 여러모로.


-



생각보다 눈이 일찍 떠졌다. 누워서 한 참을 뒤척이다가 이 시간에 차라리 영어 숙제를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비몽사몽간에 숙제를 하기 시작했다. 손가락 사이에 두터운 졸음이 마구 뒤엉켰지만 개의치 않고 슥슥 적어 내려갔다. 고3 숙제 치고는 다소 간단한 이름, 학교, 출신 등 간단한 자기소개를 영어로 기제하는 것 이였다. 대충 슥삭슥삭 쓰고 책을 덮었다. 내꺼 하고, 민윤기꺼 하고. 두 권 적은 후 가방에 집어넣고 머리를 감고 돌아와 교복을 챙겨 입으니 딱 시간이 맞았다. 매일 50분에 집에서 출발하는데, 현재 시각은 45분 이였다. 아침밥을 먹기엔 애매한 시간이라 그냥 가방을 매고 일어나는데 왠일로 일찍 기상한 재수생 사촌언니가 나에게 손인사를 해주며 배를 긁었다.


"지금 가니?"


"응, 열공해."


"엉 너도. 올 때 메로나."



드립 같겠지만 진짜다. 대한 민국의 3월. 아직은 존나 추운 날씨인데도 당당하게 메로나를 요구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집을 나섰다. 한 발자국 내밀자 마자 '아 패딩입을걸.' 이라는 생각이 바람 다음으로 나를 치고 지나갔다. 거하게 치인 나는 그 자리에 굳어서 잠시 고민하는데, 마당 벽 울타리 옆으로 잠깐 머리가 하나 나왔다가 다시 쏙 들어갔다. 누군가가 집 앞에 서있었다. 설마 대낮부터 이상한 사람은 아니겠지. 

근데 어쩐지 익숙한 뒷통수 같기도 하고.


"…민윤기?"


살짝 고개를 내빼고 이름을 부르자, 남자가 휙 돌아보았다. 역시나 민윤기였다.


[방탄소년단/민윤기] 옆집 그 녀석 02 | 인스티즈

"성이름 지금 나오냐? 맨날 일찍가는거 같더니, 그렇게 일찍 나오지도 않네."


민윤기는 손목에 찬 시계를 인상 팍 쓰고 노려보더니 나에게 그렇게 말했다. 거의 집에서 점심밥 먹고 등교하는 민윤기의 등교시간에 비하면 내가 등교하는 시간은 이른 시간인 건 맞는 것 같은데. 나는 입만 끔뻑거렸다. 그 사이 작은 입김이 세상에 터져나왔다가 빠르게 소멸됐다.

"나 기다렸어? …아냐 일단 가자."

안에 있는 사촌언니가 민윤기를 볼 세라 나는 걸음을 빨리 해 집 앞을 벗어났다. 사촌언니는 좀 반반한 남자만 보면 펄쩍 뛰면서 번호를 딸까 말까 난리를 치는 지병이 있는데,작년에 동네에서 민윤기 지나가는 모습을 멀리서 보더니 째 뭐야 대체 뉵우야~!~! 하며 한 달 동안 동네를 들쑤시고 다녔던 적이 있었다. 멀리서 봤었지만 사촌언니가 찾는 사람이 민윤기라는 걸 나는 바로 알았다. 그의 이름도, 나이도, 심지어 학교까지 알았지만 사촌 언니에게는 입도 뻥끗 하기 싫었다. 그런데 이렇게 민윤기와 얘기하고 있는 걸 들킨다면 사촌언니의 난리는 또 나에게 돌아올 것이 뻔했다.

속으로 작년에 있었던 다소 끔찍한 기억을 재생하고 있는데 민윤기는 그걸 어색한 침묵 이라고 생각 했는지 대뜸 말을 꺼냈다.


"너 숙제 했어?"

"영어숙제? 했지."


[방탄소년단/민윤기] 옆집 그 녀석 02 | 인스티즈


"아… 진짜?"



어째 부쩍 아쉬워하는 얼굴이다.




"학교가면 줄게."

"아, 그럼 되는구나."

"너 설마 영어 숙제 받으려고 나 기다렸어?"

"…어, …뭐."

그렇지. 뭐.. 민윤기는 눈을 끔뻑이며 궁시렁 댔다. 어쩐지 입술이 툭 튀어나와 있는 것 같았다.

그 이후로는 시시껄렁한 대화의 연속이였다. 오늘 날씨가 춥다느니, 첫 날인데 숙제가 너무 많다느니, 고삼이니까 공부 얘기라도 해야할 것 같은데, 민윤기는 공부랑은 별로 친해보이지 않아서 딱히 물어볼 말도 없었다. 결국 몇 마디 주고 받고서는 그냥 입다물고 조용히 왔다. 나와 민윤기, 아무도 사이의 침묵을 깨려고 시도하지 않았다. 걸어서 대략 8분거리의 학교에 도착했지만 민윤기는 멀리 보이는 학교 정문에 멈칫한다.

"어, 나 넥타이."

그 말에 옆을 돌아보자 민윤기가 자기 목을 무표정한 얼굴로 짚고 있었다. 복장 관리나 벌점에 전혀 신경을 쓸 것 같지 않은데, 의외라고 생각했다.

"고 3은 복장 안잡아."

"그러다 나 벌점 먹으면 책임 질거야?"

"……글쎄? 아니 복장 안잡는다니까…? 안잡을 걸…? 작년엔 안잡았잖아."

점점 내 목소리가 기어들어가자 민윤기가 나를 게슴츠레한 눈으로 바라봤다. 결국 잘 모르겠다는 식으로 어깨를 한 번 으쓱했다. 내 반응에 민윤기는 대뜸 제가 입고있던 패딩 단추를 후두두 풀어내렸다.


"벗어."
 
"뭘?"

잘못 들은 건가 싶어 얼굴을 찌푸리자 단추를 풀으려 고개를 숙였던 민윤기가 고개를 퍼뜩 들었다. 그리고는 제가 말 실수 한 건지 잠깐 생각하는 것 같더니 또 투덜대는 말투로 말했다.



"너 그 후드집업 벗으라고."

"왜?"

"내 패딩이랑 바꿔입자. 내 패딩 단추 위에 부분이 고장나서 안닫혀. 니 후드집업은 지퍼니까 목 끝까지 올리면 되잖아."



어느새 제 패딩을 다 벗은 민윤기가 나에게 윗쪽 단추가 고장나서 잘 닫히지 않는다는 자신의 패딩을 내밀었다.

"내 후드집업 지퍼 끝까지 올려서 넥타이 안 맨거 가리려고?"


"응."


"아, 난 또."



후드집업 지퍼를 내리는데 민윤기가 말했다.







[방탄소년단/민윤기] 옆집 그 녀석 02 | 인스티즈

"왜,"

"아쉬워?"



그 말에 고개를 들어 민윤기를 바라보았다. 장난인가, 장난이겠지? 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하하 뭐래, 하고 대답해줬다. 그리고 제빠르게 옷을 벗어 민윤기에게 건네고 민윤기의 패딩을 휘둘러 입었다. 민윤기의 온기를 품고있던 패딩이 내 몸에 언제 그랬냐는 듯 철썩 들러 붙었다. 약간 담배냄새가 베어있는 것 같았지만 이모부의 실내 담배에 익숙해져 있어서 이정도는 괜찮았다. 민윤기도 내 후드집업을 끼어 입었다. 편하게 입으려고 남녀공용 M 사이즈로 산 후드집업이였는데 민윤기에게는 딱 맞았다. 오히려 조금 작아 보였다. 엄청 마르기만 한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크네.

민윤기는 후드집업을 입자마자 먼저 앞장서 나갔다.


'왜.'

'아쉬워?'

민윤기의 장난 섞인 말이 다시 떠올랐다. 저 앞서가는 민윤기는 지퍼를 목 끝까지 올리고 있었다. 곧 민윤기의 귀 끝에 눈이 닿았다. 물감으로 칠해둔 것 마냥 시뻘겋게 달아오른 귀를. 쿵 하고 가슴이 내려 앉았다. 비슷한 방향을 가진 오만가지 생각이 나를 스치고 달아났지만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괜히 김칫국 마시지 말자. 도끼병이야 뭐야.

민윤기는 정문 선도부를 무사 통과 했다. 그러고보니 민윤기는 처음부터 슬리퍼를 신고 있었다. 넥타이가 안잡혔어도 슬리퍼로 잡힐 운명이였는데 보내준 것을 보니 역시 고삼은 안 잡는게 확실했다.

"봐봐 너 안걸렸지?"

"너 그거 계속 입고 있어라."

"엉?"

막 패딩을 벗으려던 손을 멈칫했다. 나에게 그렇게 말한 민윤기는 먼저 학교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역시 날 좋아하는 건 아닌 것 같았다. 보통 이렇게 먼저 가버리는 건가? 물론 꼭 좋아한다고 기다려줘야 하는건 아니지만, 교문 무사 통과 하자마자 이렇게 가버릴리가 없겠지? 민윤기는 집 앞에서 10번을 마주치면 그 중에 2번은 꼭 여자친구랑 같이 있었으니 여자에 대해서 아직 파악조차 안된 사람은 아님은 확실했다. 나는 싱숭생숭한 마음만 다지며 교실을 향해 올라갔다.





-




남자화장실, 칸 안에서 한 참 멍하니 시간을 보낸 윤기가 손목에 찬 시계를 내려다 보았다. 손목에 시계를 차본 적이 많지 않아 왠지 어색했다. 곧 조례를 알리는 종이 칠 시간이 된 것을 보고 윤기는 칸에서 나와 세면대로 향했다. 뜨거운 물은 나오지 않았지만 생각을 식혀야 할 것만 같아서 물을 틀고 찬물로 손을 흠뻑 적셨다. 그때 마침 남준이 화장실로 들어왔다. 그리고 윤기를 보더니 고개를 꾸벅 숙여 인사했다. 윤기는 보는 둥 마는 둥 손만 적실 뿐 이였다.

"왠일로 정시 등교 하셨네요."

"……."

"이왕 일찍 온거 조례시간에도 늦지 마요."

남준은 윤기보다 한 학년 아래의 선도부 였다. 윤기가 2학년이 됐을 때 1학년으로 입학한 남준은 선도부원 이였고, 아침마다 선도부는 커녕 선도감독 선생님도 안건드리던 윤기를 건드린 유일한 남자였다. 학번하고 이름이요, 라고 남준이 물어보면 윤기는 어떨때는 고분고분 얘기해주기도, 또 귀찮거나 기분이 안 좋을 때는 쌩 까고 지나가기도 했다. 그러나 남준은 윤기의 벌점을 꼬박꼬박 쌓아 주었다. 학교에 올 때마다 거의 복장 불량으로 오는 윤기였지만 윤기는 항상 선도부가 들어간지 한참이 지난 시간에 등교를 하기 때문에 실상은 그렇게 많이 마주치지는 못했다.

"닥쳐라 꼬마야."

"형 그 여자선배 누구예요?"

민윤기가 멈칫했다. 남준은 똑똑한 사람이였다. 그렇지만 영악하지는 않았다. 남준의 성적은 분명 전교권이였고, 사교성 역시 좋았다. 그래서 친구가 많았지만, 윤기에게도 꼬박꼬박 아는 채를 하며 인사를 했다. 남준이 똑똑한 이유는 하나 더, 남들은 말 한 번 붙히기도 힘든 민윤기를 잘 알고 있다는 점.

"형 그 선배 좋아하죠."

"뭐가."

"옷 벗어 줬잖아요, 그 선배 추워보이니까."

"아냐."

"말이면 다 인줄 아세요?"

"애초에 선도부 새끼들이 복장 불량으로 잡으니까 그런거 아냐."

"선배 알잖아요, 3학년은 선도 안잡는 다는 거."

"……."

"그리고 그 여자선배가 다시 옷 벗어줄 것 같으니까 그냥 계속 입고 있으라고 자리 피한거잖아요 그쵸."

"…야, 사람 가지고 탐정놀이 좀 하지마. 넌 재밌겠지만 당하는 사람 기분은 좆같거든?"

"별로 추리해낼 것도 없는데요, 눈에 빠안-히 보여서."



[방탄소년단/민윤기] 옆집 그 녀석 02 | 인스티즈

"…근데도 그걸 모르는 사람이 있어요, 씨발."


민윤기는 욕을 작게 지껄이고는 화장실을 떴다. 남준은 페이퍼 타올을 빼내어 손을 닦으며 윤기가 물을 뚝뚝 떨어트리고 간 자리를 따라 시선을 옮겼다. 그래도 여자친구가 생기면 숨기지 않는 형이였는데. 자기 감정을 잘 숨기지 않는 형 이였다. 물론 존나 티나긴 한다만 왜 갑자기 저렇게 자기 감정을 부정하는 것 인지 알 수 없었다. 남준이 내일 없이 사는 양아치같은 윤기를 잘 따르는 이유였다. 끝 일 것만 같았는데, 또 한 발 자국 내 딛을 곳이 생긴다. 민윤기는. 아무리 민윤기를 걷고 걸어도, 그 끝에 다달아도 또 끝이 생긴다. 

씨발, 그런 상스러운 단어를 내 뱉으면서도 입가에는 지우지 못하는 웃음 같은 것들.



"참 매력있는데."



"누군지 궁금하네."


남준은 페이퍼타올을 구겨 쓰레기통에 넣고는 자신의 반으로 향했다.






-


02
end







*암호닉
[두부 다솜 땅위 윤맞봄 슈가맘 태태 가든천사]
감샤합니다.

3화는 개빠르게 나올 것 같아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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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작가님~~윤맞봄입니다!ㅎㅎ
윤기 그쵸 매력넘치죠
딱봐도 옷일부러 준것같아보였구~~
여주눈치어디갔져~ㅎ
담편완전기대됩니당

7년 전
비회원196.74
땅위입니다!! 탄소가 윤기의 마음을 모르는것은 아니지만 진심인지 헷갈려 하는거같아요ㅠㅠ 탄소와 윤기 둘 다 자신의 감정을 숨기지 않고 표현히면 좋겠네여!
7년 전
독자2
다솜입니다 윤기 츤데레같은 매력 너무 좋아요 ㅠㅠ
7년 전
독자3
[빡침침]으로 암호닉신청하고 가요!!!!!!:)
7년 전
비회원0.107
으아아아아야아 완전 설레ㅠㅠㅠㅠ 민윤기한테 빠지면 답도 없는데ㅠㅠㅠ 작가님 [가위바위보]로 닉 신청해도 될까요!
7년 전
독자4
[개나리]로 암호닉 신청해요 역시 윤기가 여주 좋아하는거 맞았네요 귀여워라
7년 전
독자5
두부에요 아 진짜 이거 묘하다증말 윤기 여주 좋아하네ㅜㅜㅜㅜㅜ티나 츤데레 대리설렘쩐다 ㅎㅎㅎ 남준이도 이사이게 끼게될까요? 기대되요 다음편도 ㅂ빨리보고싶고ㅠㅠㅠㅠ 오래오래봐요우리ㅠㅠㅠㅠ
7년 전
독자6
[사용불가]로 암호닉 신청해요!
흐헤 융기 귀엽네요 마냥 오구오구

7년 전
비회원181.72
[버눌잠]으로 암호닉 신청해요!
7년 전
독자7
태태입니다❤
남준이랑 윤기랑 여주랑 삼각관계가 되지 않을까 생각듭니다 윤기가 츤데레같이 행동을 하는게 너무 귀엽다고 느껴지면서 진짜 윤기가 매력이 넘치네요

7년 전
독자8
[ㄱㅎㅅ]로암호닉 신청할게요❤
7년 전
독자9
헐..... 미뉸기... 너무 귀엽잖아요ㅠㅠ 진짜 여주 좋아해서 그런행동하고 3학년 선도가 안잡는거 알고있는데도 모른척하고 옷 바꿔입고.. 넘나 사랑스럽네요..
7년 전
독자10
작가님~~아진짜느무좋습니다ㅠㅠㅠㅠㅠㅠㅡ♥♥♥♥♥윤기보고싶네..
7년 전
독자11
이제 여주 눈치만 어떻게 해결하면 되겠굼요!!! 하하!!!!!! 여주 눈치를 찾으러 가봅시다!!!!
7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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