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답하라 2007 :: Prolouge
w.서화
2017년 5월. 이제 6을 7로 고치는 실수는 하지 않는다.
2017이라는 숫자가 익숙해질 즈음, 내 스물아홉 번째 여름은 성큼 다가오고 있었다. 춥다며 꽁꽁 싸매고 다니던 사람들의 옷차림은 팔을 훤히 드러낸 가벼운 차림으로 바뀌었으며 겨울 내내 창고에 묵혀있던 선풍기 또한 제 모습을 드러냈다. 병원이라고 별 다를 바는 없었다. 면역력이 약한 환자들 때문에 에어컨을 빵빵하게 틀진 못했지만 의료진들이 모인 데스크의 선풍기는 항상 강풍으로 24시간 내내 돌아갔다. 그리고 어느새 5년차 간호사인 나는 선풍기와 꽤 가까운 자리를 차지한 채 남은 차트를 정리해 나가고 있는 중이었다.
온갖 의학 용어들로 가득한 차트를 써내려가기도 한 시간 쯤 지났나, 멍하니 시선을 돌려 마주한 달력엔 얼마 남지 않은 5월이 펄럭이고 있었다. 그리고 빨간 색으로 동그라미가 쳐진 26일, 바로 오늘이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인생에서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한, 그리고 앞으로도 함께할 사람들과의 만남. 바로 디데이인데, 정작 중요한 사람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늦는단 소린 없었는데..나는 제 기능을 충실히 해내고 있지 못하는 휴대폰만 괜히 만지작거렸다.
"선배, 누가 찾으시는데-"
"응?"
"저기요. "
후배 간호사의 장난기 가득한 목소리에 고개를 들자 씩 웃으며 손을 흔들어 보이는 한 남자가 있었다. 아무래도 양반은 못 되나 보다. 나는 그저 해맑은 그를 바라보다 고개를 내저으며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저 먼저 가보겠습니다! 수고하세요-"
같이 근무하던 의사, 간호사 선생님들께 인사를 남긴 후 몸을 틀자 안기라는 듯 팔을 활짝 벌린 그가 보였고, 난 잠시의 망설임도 없이 그 품으로 달렸다.
"왔어?"
"어. 좀 늦었지."
"괜찮아, 얼른 가자. 늦겠다."
왔다. 내 남편.
응답하라 2007
2007년 5월. 부산.
덥다. 분명 5월 밖에 안됐는데 햇빛은 왜 이리 내리 쬐는지. 체감온도로 30도는 거뜬히 넘긴 듯한 더위에 내 몸뚱아리는 이십 분 째 운동장을 맴돌고 있었다. 운동이라면 질색을 하던 내가 왜 운동장을 돌고 있냐 하면 이유는 단 한 가지 뿐 이었다. 지각. 분명 알람도 세 개나 맞춰놓았고 불알친구라는 놈도 날 깨웠다는데 어째 아무 기억이 없는 건 지. 결국 잠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던 나는 7시 10분에 겨우 눈을 떴다. 등교시간이 7시 30분까지인데.
전속력으로 달려보았지만 소용은 없었다. 선도부에 걸린 학생들을 혼내고 있는 학주를 피해 살금살금 들어가려다 보기 좋게 뒷덜미를 잡혔고 학주는 지각에 도망가려 했던 것까지 합쳐 총 운동장 5바퀴를 뛰라는 명령만 내린 채 홀연히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또 어디 담배나 태우러 갔겠지.
아, 그래. 어찌됐든 지각은 내 잘못이니까 벌 받는 거에 대해 별 불만은 없다. 힘들긴 하지만 할 말은 없었다. 그런데, 그늘이 진 벤치에 앉아 땀을 삐질 삐질 흘리고 있는 나를 보며 낄낄대고 있는 저 새끼들은 엄청나게 불만이다.
강다니엘. 2007년 기준 19살. 타의 100퍼센트로 19년 째 함께하고 있는 불알친구이자 분명 나를 깨웠다고 주장하는 장본인이다. 우기는 게 특징이라 날 깨웠다는 것이 사실인지 확인은 안 되지만 지금 내가 제일 때리고 싶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었다. 도대체 저 얄미운 놈이 후배들에게 왜 그리 인기가 많은지. 볼 거 못 볼 거 다보고 자란 나로썬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저거 봐라, 지 친구는 이 땡볕에 운동장을 활보하는데 자기는 빠삐코를 입에 문 채 낄낄거리며 부추기기 바쁘다. 이것만 다 뛰어봐라. 진짜 저 새끼 정강이부터 깐다.
"누나, 두 바퀴 남았어요."
박지훈. 2007년 기준 18살. 같은 동아리 후배로 표준어와 사투리를 섞어 썼다. 작년 입학식 날, 급하게 전학을 와 서울에서 진학 예정이던 고등학교의 노랑노랑한 교복을 입고 등교한 지훈은 엄청난 이슈감이었다. 하지만 그가 이슈가 된 데에는 단지 튀는 교복만은 아니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웬만한 여자보다 훨씬 예쁜 외모와 조곤조곤 나오는 표준어에 여러 여학생들이 잠 못 이루는 밤을 보냈다고 하지만 내겐 그저 패션 감각이 아주 특이한, 챙겨줘야 마음이 편한 후배일 뿐이었다.
"..."
..그리고 그 옆에서 조용히 졸고 있는 쟤는 김용국. 마찬가지로 2007년 기준 19살이다. 도대체 밤에 뭘 하길래 맨날 조는 건지. 수업시간은 물론 면학실에서도 계속 졸아 그냥 엎드려서 자라고 부추기면 고개를 마구 내저으며 다시 샤프를 잡기 마련이었다. 미련한건 지 멍청한 건 지. 심지어 이과생 주제에 교내외 백일장이란 백일장은 다 휩쓸고 다녔다. 정말이지 몇 년 째 알고지낸 사이지만 도통 그 속을 알 수 없는 친구였다.
남은 2바퀴를 겨우 다 돌고 벤치로 향하자 지훈은 제 손에 들려있던 이온음료를 내게 건넸다. 포카리스웨트. 음료수도 꼭 자기 같은 걸 사왔네. 나는 싱긋 미소를 지으며 음료수를 받아들었다. 캔을 따자 경쾌하게 울리는 소리가 벌써 바짝 마른 내 목을 축인 듯 했다.
"고마워-"
"안되겠다, 니 내랑 같이 체대가자."
뭐가 그리도 신나는지 연신 낄낄거리는 다니엘의 목소리는 시원하게 까버린 정강이 덕에 금방 잦아들고 말았다. 대신 비명소리가 그 틈을 가득 메꿔 고막이 고생하는 것은 별 다를 바 없었다.
"아오, 씨, 아프다고 가시나야!"
"아프라고 때린기다. 몰랐나."
나는 여전히 제 정강이를 부여잡은 채 끙끙거리는 다니엘을 무시하곤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려냈다. 용국이. 빽빽 소리를 지르며 다투는데도 한 번의 미동도 없이 잠에 취해있는 것이 대단하기도 신기하기도 했다. 언제까지 자나 시험이라도 해보고 싶었지만 1교시 시작이 얼마 남지 않은 터라 호기심은 잠시 접어두었다. 조심스레 그의 어깨를 잡아 흔들자 절대 열리지 않을 것 같은 눈꺼풀이 스르르 올라가 나를 맞이했다.
"..어, 뭐고. 다 돌았나."
"응. 니 또 늦게 잤나."
"아니. 어젠 일찍 잤는데."
"몇 시."
"5시."
용국이 말 하는 5시는 오후 5시가 아니라 오전 5시임이 분명했다. 다른 친구들이 듣는다면 왜 이렇게 늦게 잤냐며 타박할 것이 뻔했지만 몇 년을 알아온 우린 그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밤 안 새고 온 게 어디야. 저 정도면 꽤 기특했다. 나는 나름 칭찬의 의미로 용국이의 부스스한 머리칼을 살짝 쓰다듬었다. 내 손길이 닿자 그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번졌다.
"아, 맞다. 오늘 민현이 형 온다 캤다."
좀 세게 찼는지 아직까지도 정강이를 부여잡고 있는 다니엘이 한 마디 툭 던졌다. 이에 용국의 머리칼 위에서 놀던 내 손은 잠시 그 작동을 멈추곤 되물었다.
"헐, 진짜?"
"엉. 연락 못 받았나."
"연락? 모르겠다. 폰 두고 와서."
"아아, 맞다. 니 기벡 숙제는."
"..기벡?"
아, 어쩐지 쎄 하더니만 이유가 있었다. 숙제 안 해오면 때리기로 유명한 기벡 숙제를 새까맣게 잊고 있었던 것이다. 지각에, 회초리에. 오늘은 진짜 날이 아닌 건가. 나는 설마 하는 마음에 두 눈을 반짝여 보았지만 돌아오는 것은 다니엘의 찰진 욕뿐이었다.
"..오늘까지가."
"병신."
"ㅇㅇㅇ, 다 뛰었으면 들어 와야지 노닥거리고 있노! 한 바퀴 더 뛰고 들어온나!"
아오, 학생부실 창문이 열려있던 걸 깜빡했다. 혹여나 내가 못 들을까봐 학교가 떠나가도록 호통을 치는 학주에 나는 입술을 쭉 내밀곤 도로 운동장으로 향했다. 터덜터덜 걷자 내 발길이 닿는 곳 마다 옅은 모래바람이 일었다.
다리 힘이 풀리려는 걸 겨우 참고 5층까지 올라오자 우리 반은 다들 기벡 숙제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하지만 이미 반포기 상태인 난 그저 가방도 벗지 못한 채로 사물함에 기대어 숨을 고를 뿐이었다. 숨이 넘어갈 것 같은 느낌도 가셨을 쯤, 뒤를 돌아본 친구가 내게 말을 건넸다.
"가시나 니 숙제 다 했대."
"나? 안 했는데?"
"어? 너 책상에 기벡 공책 올려져 있던데. 숙제 해온 거 아이가."
금시초문이었다. 방금 숙제의 존재를 깨달은 내가 숙제를 해왔다니.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내 자리로 향했다. 그리고 시야에 들어온 것은 책상 위에 가지런히 놓여있는 파란색의 기벡 공책. 31201. 삐뚤빼뚤하게 쓰여진 글씨에 스르르 미소가 번졌다. 때마침 불어온 시원한 바람이 내 입가를 간지럽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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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성균관은 안 들고오고 이상한 거나 들고왔냐 물으신다면 제 대답은 주말 동안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응칠 미친듯이 돌려보고 삘 받은 저의 불찰이라고 말씀드릴 수 밖에 없네요하핳...성균관 양아치도 조만간 들고 올게요!! 그리고 이 글은 연재 될지 안 될 지 저도 잘 몰라여헿 막 적었거등요..만약 연재된다면 민현이는 다음화 부터 나올겁니당!!! 과연 남편은 누가 될까요 두구두구두굳구ㅜ 그럼 독자님들 굿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