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도저 이민형
가담항설
첫사랑은 봄과 함께 찾아왔다.
평범하고 평화로운 삶에 이민형이라는 폭탄이 던져진 것은 새학기가 시작된 3월. 새내기의 태를 벗고 2학년이 된 나는 오랜만의 학교에 적응하느라 몹시 지쳐 있었다. 조그마한 얼굴에 예쁘게 자리한 눈 코 입은 이민형이 과탑 소리를 들으며 우리 과 사람은 물론이고 타과 학생들의 관심까지 받기에 충분했다. 남에게 관심 없는 나조차도 이민형의 이름을 알 정도였으니 그 인기가 어느 정도였는지 알만 했다. 그리고 그 이민형이 나를 좋아하게 된 것은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나는 정말로 평범한 사람이다. 이민형과 나란히 서기에는 너무나도 부족하고 보잘 것 없는 사람이었다. 시끄러운 과 행사를 좋아하지 않지만 참여해 달라는 학생회의 부탁에 거절도 못하는 소심한 인간이었고 겨우 과행사에 참여해서도 아무것도 못 하고 구석에 박혀 있는 재미없는 인간이었다. 새내기들이 어색하게 웃으며 인사해 왔지만 그것도 잠시 어느새 다들 시끄럽고 재미있는 테이블로 다 가버린 후였다. 덕분에 모두들 꺼리는 고학번 선배 옆에 묶인 채 억지로 술을 들이켜야 했고 오랜만에 취기가 올라 정신이 없었다. 선배가 담배를 피우러 자리를 비운 틈을 타 짐을 대충 챙겨 도망가려 했지만 그마저도 동기에게 걸려 다시 자리에 앉게 되었다. 멀리서 보기만 했던 그 시끌벅적하던 테이블, 중심에는 새내기스러운 상큼함을 온몸으로 뿜어내는 사람이 있었다. 몇마디 하지 않고 그저 웃음만 지어도 그 애는 이미 사람들의 중심에 있었다.
절로 감탄이 나오는 외모에 잠시 정신을 빼앗겼다가 말을 걸어오는 동기에 다시 시선을 옮겼다. 수려한 외모에 당연하게도 그 주변에는 사람이 바글바글했다. 이민형. 직접 소개하지 않았는데도 그의 이름을 알 수 있었다. 이민형 이민형 이민형. 잠시동안의 시간이었음에도 그의 이름을 열 번을 넘게 들었던 것 같다. 정신이 없음에도 뇌에 이민형이라는 석 자가 둥둥 떠다니는 듯했다. 이민형이 잠시 자리를 비우자 테이블에 모여 있던 인원들도 다른 테이블을 찾아 떠나고 어느새 파하는 분위기가 되고 있었다. 얼른 자리를 떠야겠다는 생각에 짐을 챙겨 급하게 일어서 인적이 드문 뒷문으로 향했다.
“ 엄마야! ”
문을 엶과 동시에 누가 들어왔고 급하게 나가던 나는 속도를 줄이지 못하고 그 사람과 부딪쳤다.
“ 괜찮으세요? ”
이민형이었다.
괜찮다고 말하며 두 발로 서고 싶었지만 취기가 오른 몸은 멋대로 움직였고 이민형은 제 몸에 기댄 나의 어깨를 조심스럽게 잡으며 일으켰다. 죄송한데 잠시 어깨 좀…, 하며 나를 벽에 기대게 해 주었고 바닥에 떨어진 내 짐까지 주워서 나를 내려다 보고 있었다. 이민형 어디 갔어? 술집 안에 울리는 동기의 목소리에 이민형에게 얼른 가보라는 뜻으로 내 가방을 받으려 했으나 이민형은 고민하는 얼굴로 여전히 나를 내려다 보고 있었다.
“ …저 가방 좀 주실래요? ”
“ 아, 아… 네네. 제가 가방 가지고 가려는 게 아니라……. ”
“ ……? ”
“ 취하신 것 같아서요. 집에 갈 수 있어요? ”
취기가 오른 상태였지만 낯가림 심하고 소심한 성격 탓에 남에게 도움을 받기 불편해 하는 나는 괜찮다며 가방을 받으려 했지만 손에 힘이 풀려 또 한 번 가방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취기에 부끄러움에 얼굴이 더 불타고 있었다. 아 진짜 왜 이러지……. 주정뱅이가 된 느낌에 쥐구멍에 숨고 싶었다. 이민형은 어색하게 웃으며 내 가방을 주워들고서 먼저 문 밖으로 나갔다.
“ 저 잠시 동기한테 얘기 좀 하고 올게요. ”
“ 네? ”
이민형은 내 대답을 듣지도 않고 다시 술집 안으로 들어가버렸다. 데려다 주는 줄 알고 속으로 부담스러워 했던 내 자신에 조금은 부끄러운 기분이 들었다. 한숨을 쉬며 쪼그려 앉은 상태로 주머니에 있던 막대 사탕을 입에 물었다. 소주의 쓴 맛이 사라지고 입 안에 퍼지는 달달함에 입꼬리가 절로 말려 올라가는 듯했다. 찌뿌둥한 몸을 일으키며 기지개를 펴는데 입을 가리고 웃던 이민형과 눈이 마주쳤다.
“ …어? 왜 다시 왔어요? ”
“ 선배 가방 제가 들고 있었잖아요. ”
“ 아 맞다. 주세요. 들고 갈 수 있어요. ”
“ 큰 길까지 같이 나가요. 위험하잖아요. ”
이민형은 그렇게 말하며 멋쩍은듯 옆머리를 긁었다. 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이민형 뒤를 따랐고 이민형 어깨에 걸쳐진 내 가방 끈이 살랑살랑 흔들리고 있었다. 3월, 아직은 조금 쌀쌀한 날씨에 바람이 불었고 이민형의 앞머리가 바람에 날리며 이민형의 뺨을 스쳤다. 영화에서만 나올 것 같은 장면이 내 눈 앞에서 펼쳐지고 있음에 나도 모르게 감탄했고 내 목소리에 이민형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
“ 뭐라고 하셨어요? ”
“ 아무 말도 안 했어요…! ”
티나게 고개를 돌리며 괜히 주머니를 만지작 거렸다. 분명 사탕을 하나만 샀던 것 같은데 그게 아니었는지 체리 맛 막대 사탕이 하나 더 있었다. 어차피 두 개니까 하나는 이민형에게 줄까 싶어 고개를 들자 바로 마주치는 시선에 조금은 놀랐다. 이민형도 놀랐는지 어색하게 웃었다. 분위기가 더 어색해지기 전에 막대 사탕을 내밀었다. 이, 이거… 먹을래요? 그 한 마디가 뭐라고 말을 더듬는 나에 나조차도 답답할 지경이었다. 사회 생활은 어떻게 하려고 이러는지 정말.
“ 고마워요. ”
“ ……. ”
이민형은 고작 사탕 하나 받으면서 내게 고맙다고 말했다. 그리고는 내가 타고 갈 택시를 잡아주며 그제서야 가방을 내 손에 쥐어 주었다.
“ 조심히 가요. ”
“ ……. ”
“ 다음에 볼 때는 누나라고 해도 돼요? ”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수줍은 미소와 함께 그렇게 물어오는데 거절을 할 수가 없었다. 문을 살짝 닫고서 이민형은 술집이 있던 골목으로 다시 걸어갔다. 나를 데려다 준 걸까 하는 착각에 심장이 두근거리다가 금세 식어버렸다. 거울 속에 보이는 못난 얼굴에 열이 확 오르는 듯했다. 그냥 친절한 사람이겠지. 내게 관심이 있을 리가 없었다.
*
이민형 덕에 우리 과는 며칠에 한 번씩 대나무숲에 언급되었다. 화학공학과 18학번 과잠 입은 분 애타게 찾습니다 ㅠㅠ. 대체로 이런 글이었다. 이민형은 우리 과를 넘어서 단대의 유명인사가 되었다. 몇몇 학생회는 이민형 얼굴을 보겠다고 우리 과 강의실에 찾아온 적도 있었다. 이민형은 언제나 난감한 얼굴로 어색하게 있었고 다른 과 사람들은 감탄을 연발하며 이민형과 친해지려고 난리였다. 번호를 달라고 하는 건 너무나 익숙한 광경이었고 한 번은 학교 홍보대사 할 생각 없냐고 직접 찾아오기도 했다. 그런 이민형인데, 데려다 주었다고 착각을 했던 내 자신이 너무 부끄러웠다. 속으로만 생각한 걸 다행이라 여기며 내 주제를 알아야 한다고 몇 번이고 곱씹었다. 그런데 이민형은 자꾸만 내가 그런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 여주 누나! ”
“ 어?! ”
“ 놀랐어요? 놀라게 할 생각은 없었는데. 어디 가요? ”
“ 도…서관. ”
이민형은 동기들을 뒤로 하고 웃으며 나를 따라왔다. 덕분에 이목이 집중된 나는 머리를 만지작거리며 얼굴을 가렸다. 사람들이 꼭 다 나를 쳐다보는 것 같았다. 이민형은 도서관을 가는 나를 계속 따라왔다. 누나 오늘 치마 입었네요? 하며 어색하지도 않은지 잘도 말을 걸어왔다. 나는 그저 대답만 할 뿐이었다. 으응. 새로 사서 입어봤어. 하고 느릿하고 어색하게
“ 너도 도서관 온 거야? ”
“ 아. 저는 교양 수업 가야 돼요. ”
“ 지금? ”
“ 음… 네. 뛰어가면 시간 딱 되겠네요. ”
“ …? 교양관 아까 거기잖아. ”
“ 그러니까 뛰어야죠. ”
“ ……? ”
“ 누나 오늘도 예뻐요. ”
항상 예뻤지만.
이민형은 그런 말을 던져 놓고서는 가버렸다. 나는 놀라서 그대로 몇 분 동안 굳어 있었다. 동기가 뭐하냐고 내 어깨를 치지 않았으면 몇 시간이고 그대로 서 있었을 정도로 당황스러웠다. 우리 과를 넘어서 다른 과에서도 잘생겼다고 불리는 이민형이 내게 그런 말을 했다는 게 너무 당황스러운 일이었다. 예의상 하는 말이라고 멋대로 뛰는 심장을 누르려고 해도 눌러지지가 않았다.
*
이민형 너 여주 선배 좋아해?
엉망이던 과방을 치우고나자 공강에 할 게 없는 새내기들이 과방을 차지했다. 사물함에 가기 위해서는 과방을 지나쳐야 했고 들으려고 했던 건 아니지만 과방에서 새어나오는 그 소리를 나는 들어버렸다. 관심을 가지지 않으려 해도 그럴 수 없는 주제에 나는 거기에 묶인 것 마냥 문 앞에 서 있었다. 잠시 정적이 흐르는데 그 시간이 얼마나 길게 느껴졌는지 모른다.
“ …티나? ”
“ ……진짜야? ”
“ 괜히 누나 곤란하게 만드는 것 같은데…. ”
“ 너 엄청 티내서 우리 동기는 다 아는데 뭐. ”
“ 진짜로 여주 선배 좋아해? ”
그럴 줄 알았다는 반응과 의아하다는 반응이 섞여서 과방 안에 가득 찼다. 더이상 그곳에 있으면 안 될 것 같아 급히 발걸음을 옮기다가 과방을 빠져 나온 후배와 마주쳤다. 붉어진 얼굴과 심통난 얼굴이 나를 향했다. …안녕. 느린 내 인사가 끝나기도 전에 그 애는 나를 지나쳐 가버렸다. 당황해서 인사를 해버렸는데 그게 과방에도 들린 건지 복도에 정적이 흘렀다.
“ 아 헐. ”
“ ……. ”
“ 진짜 오바…. ”
불도저 이민형
가담항설
첫사랑은 봄과 함께 찾아왔다.
평범하고 평화로운 삶에 이민형이라는 폭탄이 던져진 것은 새학기가 시작된 3월. 새내기의 태를 벗고 2학년이 된 나는 오랜만의 학교에 적응하느라 몹시 지쳐 있었다. 조그마한 얼굴에 예쁘게 자리한 눈 코 입은 이민형이 과탑 소리를 들으며 우리 과 사람은 물론이고 타과 학생들의 관심까지 받기에 충분했다. 남에게 관심 없는 나조차도 이민형의 이름을 알 정도였으니 그 인기가 어느 정도였는지 알만 했다. 그리고 그 이민형이 나를 좋아하게 된 것은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나는 정말로 평범한 사람이다. 이민형과 나란히 서기에는 너무나도 부족하고 보잘 것 없는 사람이었다. 시끄러운 과 행사를 좋아하지 않지만 참여해 달라는 학생회의 부탁에 거절도 못하는 소심한 인간이었고 겨우 과행사에 참여해서도 아무것도 못 하고 구석에 박혀 있는 재미없는 인간이었다. 새내기들이 어색하게 웃으며 인사해 왔지만 그것도 잠시 어느새 다들 시끄럽고 재미있는 테이블로 다 가버린 후였다. 덕분에 모두들 꺼리는 고학번 선배 옆에 묶인 채 억지로 술을 들이켜야 했고 오랜만에 취기가 올라 정신이 없었다. 선배가 담배를 피우러 자리를 비운 틈을 타 짐을 대충 챙겨 도망가려 했지만 그마저도 동기에게 걸려 다시 자리에 앉게 되었다. 멀리서 보기만 했던 그 시끌벅적하던 테이블, 중심에는 새내기스러운 상큼함을 온몸으로 뿜어내는 사람이 있었다. 몇마디 하지 않고 그저 웃음만 지어도 그 애는 이미 사람들의 중심에 있었다.
절로 감탄이 나오는 외모에 잠시 정신을 빼앗겼다가 말을 걸어오는 동기에 다시 시선을 옮겼다. 수려한 외모에 당연하게도 그 주변에는 사람이 바글바글했다. 이민형. 직접 소개하지 않았는데도 그의 이름을 알 수 있었다. 이민형 이민형 이민형. 잠시동안의 시간이었음에도 그의 이름을 열 번을 넘게 들었던 것 같다. 정신이 없음에도 뇌에 이민형이라는 석 자가 둥둥 떠다니는 듯했다. 이민형이 잠시 자리를 비우자 테이블에 모여 있던 인원들도 다른 테이블을 찾아 떠나고 어느새 파하는 분위기가 되고 있었다. 얼른 자리를 떠야겠다는 생각에 짐을 챙겨 급하게 일어서 인적이 드문 뒷문으로 향했다.
“ 엄마야! ”
문을 엶과 동시에 누가 들어왔고 급하게 나가던 나는 속도를 줄이지 못하고 그 사람과 부딪쳤다.
“ 괜찮으세요? ”
이민형이었다.
괜찮다고 말하며 두 발로 서고 싶었지만 취기가 오른 몸은 멋대로 움직였고 이민형은 제 몸에 기댄 나의 어깨를 조심스럽게 잡으며 일으켰다. 죄송한데 잠시 어깨 좀…, 하며 나를 벽에 기대게 해 주었고 바닥에 떨어진 내 짐까지 주워서 나를 내려다 보고 있었다. 이민형 어디 갔어? 술집 안에 울리는 동기의 목소리에 이민형에게 얼른 가보라는 뜻으로 내 가방을 받으려 했으나 이민형은 고민하는 얼굴로 여전히 나를 내려다 보고 있었다.
“ …저 가방 좀 주실래요? ”
“ 아, 아… 네네. 제가 가방 가지고 가려는 게 아니라……. ”
“ ……? ”
“ 취하신 것 같아서요. 집에 갈 수 있어요? ”
취기가 오른 상태였지만 낯가림 심하고 소심한 성격 탓에 남에게 도움을 받기 불편해 하는 나는 괜찮다며 가방을 받으려 했지만 손에 힘이 풀려 또 한 번 가방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취기에 부끄러움에 얼굴이 더 불타고 있었다. 아 진짜 왜 이러지……. 주정뱅이가 된 느낌에 쥐구멍에 숨고 싶었다. 이민형은 어색하게 웃으며 내 가방을 주워들고서 먼저 문 밖으로 나갔다.
“ 저 잠시 동기한테 얘기 좀 하고 올게요. ”
“ 네? ”
이민형은 내 대답을 듣지도 않고 다시 술집 안으로 들어가버렸다. 데려다 주는 줄 알고 속으로 부담스러워 했던 내 자신에 조금은 부끄러운 기분이 들었다. 한숨을 쉬며 쪼그려 앉은 상태로 주머니에 있던 막대 사탕을 입에 물었다. 소주의 쓴 맛이 사라지고 입 안에 퍼지는 달달함에 입꼬리가 절로 말려 올라가는 듯했다. 찌뿌둥한 몸을 일으키며 기지개를 펴는데 입을 가리고 웃던 이민형과 눈이 마주쳤다.
“ …어? 왜 다시 왔어요? ”
“ 선배 가방 제가 들고 있었잖아요. ”
“ 아 맞다. 주세요. 들고 갈 수 있어요. ”
“ 큰 길까지 같이 나가요. 위험하잖아요. ”
이민형은 그렇게 말하며 멋쩍은듯 옆머리를 긁었다. 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이민형 뒤를 따랐고 이민형 어깨에 걸쳐진 내 가방 끈이 살랑살랑 흔들리고 있었다. 3월, 아직은 조금 쌀쌀한 날씨에 바람이 불었고 이민형의 앞머리가 바람에 날리며 이민형의 뺨을 스쳤다. 영화에서만 나올 것 같은 장면이 내 눈 앞에서 펼쳐지고 있음에 나도 모르게 감탄했고 내 목소리에 이민형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
“ 뭐라고 하셨어요? ”
“ 아무 말도 안 했어요…! ”
티나게 고개를 돌리며 괜히 주머니를 만지작 거렸다. 분명 사탕을 하나만 샀던 것 같은데 그게 아니었는지 체리 맛 막대 사탕이 하나 더 있었다. 어차피 두 개니까 하나는 이민형에게 줄까 싶어 고개를 들자 바로 마주치는 시선에 조금은 놀랐다. 이민형도 놀랐는지 어색하게 웃었다. 분위기가 더 어색해지기 전에 막대 사탕을 내밀었다. 이, 이거… 먹을래요? 그 한 마디가 뭐라고 말을 더듬는 나에 나조차도 답답할 지경이었다. 사회 생활은 어떻게 하려고 이러는지 정말.
“ 고마워요. ”
“ ……. ”
이민형은 고작 사탕 하나 받으면서 내게 고맙다고 말했다. 그리고는 내가 타고 갈 택시를 잡아주며 그제서야 가방을 내 손에 쥐어 주었다.
“ 조심히 가요. ”
“ ……. ”
“ 다음에 볼 때는 누나라고 해도 돼요? ”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수줍은 미소와 함께 그렇게 물어오는데 거절을 할 수가 없었다. 문을 살짝 닫고서 이민형은 술집이 있던 골목으로 다시 걸어갔다. 나를 데려다 준 걸까 하는 착각에 심장이 두근거리다가 금세 식어버렸다. 거울 속에 보이는 못난 얼굴에 열이 확 오르는 듯했다. 그냥 친절한 사람이겠지. 내게 관심이 있을 리가 없었다.
*
이민형 덕에 우리 과는 며칠에 한 번씩 대나무숲에 언급되었다. 화학공학과 18학번 과잠 입은 분 애타게 찾습니다 ㅠㅠ. 대체로 이런 글이었다. 이민형은 우리 과를 넘어서 단대의 유명인사가 되었다. 몇몇 학생회는 이민형 얼굴을 보겠다고 우리 과 강의실에 찾아온 적도 있었다. 이민형은 언제나 난감한 얼굴로 어색하게 있었고 다른 과 사람들은 감탄을 연발하며 이민형과 친해지려고 난리였다. 번호를 달라고 하는 건 너무나 익숙한 광경이었고 한 번은 학교 홍보대사 할 생각 없냐고 직접 찾아오기도 했다. 그런 이민형인데, 데려다 주었다고 착각을 했던 내 자신이 너무 부끄러웠다. 속으로만 생각한 걸 다행이라 여기며 내 주제를 알아야 한다고 몇 번이고 곱씹었다. 그런데 이민형은 자꾸만 내가 그런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 여주 누나! ”
“ 어?! ”
“ 놀랐어요? 놀라게 할 생각은 없었는데. 어디 가요? ”
“ 도…서관. ”
이민형은 동기들을 뒤로 하고 웃으며 나를 따라왔다. 덕분에 이목이 집중된 나는 머리를 만지작거리며 얼굴을 가렸다. 사람들이 꼭 다 나를 쳐다보는 것 같았다. 이민형은 도서관을 가는 나를 계속 따라왔다. 누나 오늘 치마 입었네요? 하며 어색하지도 않은지 잘도 말을 걸어왔다. 나는 그저 대답만 할 뿐이었다. 으응. 새로 사서 입어봤어. 하고 느릿하고 어색하게
“ 너도 도서관 온 거야? ”
“ 아. 저는 교양 수업 가야 돼요. ”
“ 지금? ”
“ 음… 네. 뛰어가면 시간 딱 되겠네요. ”
“ …? 교양관 아까 거기잖아. ”
“ 그러니까 뛰어야죠. ”
“ ……? ”
“ 누나 오늘도 예뻐요. ”
항상 예뻤지만.
이민형은 그런 말을 던져 놓고서는 가버렸다. 나는 놀라서 그대로 몇 분 동안 굳어 있었다. 동기가 뭐하냐고 내 어깨를 치지 않았으면 몇 시간이고 그대로 서 있었을 정도로 당황스러웠다. 우리 과를 넘어서 다른 과에서도 잘생겼다고 불리는 이민형이 내게 그런 말을 했다는 게 너무 당황스러운 일이었다. 예의상 하는 말이라고 멋대로 뛰는 심장을 누르려고 해도 눌러지지가 않았다.
*
이민형 너 여주 선배 좋아해?
엉망이던 과방을 치우고나자 공강에 할 게 없는 새내기들이 과방을 차지했다. 사물함에 가기 위해서는 과방을 지나쳐야 했고 들으려고 했던 건 아니지만 과방에서 새어나오는 그 소리를 나는 들어버렸다. 관심을 가지지 않으려 해도 그럴 수 없는 주제에 나는 거기에 묶인 것 마냥 문 앞에 서 있었다. 잠시 정적이 흐르는데 그 시간이 얼마나 길게 느껴졌는지 모른다.
“ …티나? ”
“ ……진짜야? ”
“ 괜히 누나 곤란하게 만드는 것 같은데…. ”
“ 너 엄청 티내서 우리 동기는 다 아는데 뭐. ”
“ 진짜로 여주 선배 좋아해? ”
그럴 줄 알았다는 반응과 의아하다는 반응이 섞여서 과방 안에 가득 찼다. 더이상 그곳에 있으면 안 될 것 같아 급히 발걸음을 옮기다가 과방을 빠져 나온 후배와 마주쳤다. 붉어진 얼굴과 심통난 얼굴이 나를 향했다. …안녕. 느린 내 인사가 끝나기도 전에 그 애는 나를 지나쳐 가버렸다. 당황해서 인사를 해버렸는데 그게 과방에도 들린 건지 복도에 정적이 흘렀다.
“ 아 헐. ”
“ ……. ”
“ 진짜 오바…. ”
불도저 이민형
가담항설
첫사랑은 봄과 함께 찾아왔다.
평범하고 평화로운 삶에 이민형이라는 폭탄이 던져진 것은 새학기가 시작된 3월. 새내기의 태를 벗고 2학년이 된 나는 오랜만의 학교에 적응하느라 몹시 지쳐 있었다. 조그마한 얼굴에 예쁘게 자리한 눈 코 입은 이민형이 과탑 소리를 들으며 우리 과 사람은 물론이고 타과 학생들의 관심까지 받기에 충분했다. 남에게 관심 없는 나조차도 이민형의 이름을 알 정도였으니 그 인기가 어느 정도였는지 알만 했다. 그리고 그 이민형이 나를 좋아하게 된 것은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나는 정말로 평범한 사람이다. 이민형과 나란히 서기에는 너무나도 부족하고 보잘 것 없는 사람이었다. 시끄러운 과 행사를 좋아하지 않지만 참여해 달라는 학생회의 부탁에 거절도 못하는 소심한 인간이었고 겨우 과행사에 참여해서도 아무것도 못 하고 구석에 박혀 있는 재미없는 인간이었다. 새내기들이 어색하게 웃으며 인사해 왔지만 그것도 잠시 어느새 다들 시끄럽고 재미있는 테이블로 다 가버린 후였다. 덕분에 모두들 꺼리는 고학번 선배 옆에 묶인 채 억지로 술을 들이켜야 했고 오랜만에 취기가 올라 정신이 없었다. 선배가 담배를 피우러 자리를 비운 틈을 타 짐을 대충 챙겨 도망가려 했지만 그마저도 동기에게 걸려 다시 자리에 앉게 되었다. 멀리서 보기만 했던 그 시끌벅적하던 테이블, 중심에는 새내기스러운 상큼함을 온몸으로 뿜어내는 사람이 있었다. 몇마디 하지 않고 그저 웃음만 지어도 그 애는 이미 사람들의 중심에 있었다.
절로 감탄이 나오는 외모에 잠시 정신을 빼앗겼다가 말을 걸어오는 동기에 다시 시선을 옮겼다. 수려한 외모에 당연하게도 그 주변에는 사람이 바글바글했다. 이민형. 직접 소개하지 않았는데도 그의 이름을 알 수 있었다. 이민형 이민형 이민형. 잠시동안의 시간이었음에도 그의 이름을 열 번을 넘게 들었던 것 같다. 정신이 없음에도 뇌에 이민형이라는 석 자가 둥둥 떠다니는 듯했다. 이민형이 잠시 자리를 비우자 테이블에 모여 있던 인원들도 다른 테이블을 찾아 떠나고 어느새 파하는 분위기가 되고 있었다. 얼른 자리를 떠야겠다는 생각에 짐을 챙겨 급하게 일어서 인적이 드문 뒷문으로 향했다.
“ 엄마야! ”
문을 엶과 동시에 누가 들어왔고 급하게 나가던 나는 속도를 줄이지 못하고 그 사람과 부딪쳤다.
“ 괜찮으세요? ”
이민형이었다.
괜찮다고 말하며 두 발로 서고 싶었지만 취기가 오른 몸은 멋대로 움직였고 이민형은 제 몸에 기댄 나의 어깨를 조심스럽게 잡으며 일으켰다. 죄송한데 잠시 어깨 좀…, 하며 나를 벽에 기대게 해 주었고 바닥에 떨어진 내 짐까지 주워서 나를 내려다 보고 있었다. 이민형 어디 갔어? 술집 안에 울리는 동기의 목소리에 이민형에게 얼른 가보라는 뜻으로 내 가방을 받으려 했으나 이민형은 고민하는 얼굴로 여전히 나를 내려다 보고 있었다.
“ …저 가방 좀 주실래요? ”
“ 아, 아… 네네. 제가 가방 가지고 가려는 게 아니라……. ”
“ ……? ”
“ 취하신 것 같아서요. 집에 갈 수 있어요? ”
취기가 오른 상태였지만 낯가림 심하고 소심한 성격 탓에 남에게 도움을 받기 불편해 하는 나는 괜찮다며 가방을 받으려 했지만 손에 힘이 풀려 또 한 번 가방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취기에 부끄러움에 얼굴이 더 불타고 있었다. 아 진짜 왜 이러지……. 주정뱅이가 된 느낌에 쥐구멍에 숨고 싶었다. 이민형은 어색하게 웃으며 내 가방을 주워들고서 먼저 문 밖으로 나갔다.
“ 저 잠시 동기한테 얘기 좀 하고 올게요. ”
“ 네? ”
이민형은 내 대답을 듣지도 않고 다시 술집 안으로 들어가버렸다. 데려다 주는 줄 알고 속으로 부담스러워 했던 내 자신에 조금은 부끄러운 기분이 들었다. 한숨을 쉬며 쪼그려 앉은 상태로 주머니에 있던 막대 사탕을 입에 물었다. 소주의 쓴 맛이 사라지고 입 안에 퍼지는 달달함에 입꼬리가 절로 말려 올라가는 듯했다. 찌뿌둥한 몸을 일으키며 기지개를 펴는데 입을 가리고 웃던 이민형과 눈이 마주쳤다.
“ …어? 왜 다시 왔어요? ”
“ 선배 가방 제가 들고 있었잖아요. ”
“ 아 맞다. 주세요. 들고 갈 수 있어요. ”
“ 큰 길까지 같이 나가요. 위험하잖아요. ”
이민형은 그렇게 말하며 멋쩍은듯 옆머리를 긁었다. 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이민형 뒤를 따랐고 이민형 어깨에 걸쳐진 내 가방 끈이 살랑살랑 흔들리고 있었다. 3월, 아직은 조금 쌀쌀한 날씨에 바람이 불었고 이민형의 앞머리가 바람에 날리며 이민형의 뺨을 스쳤다. 영화에서만 나올 것 같은 장면이 내 눈 앞에서 펼쳐지고 있음에 나도 모르게 감탄했고 내 목소리에 이민형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
“ 뭐라고 하셨어요? ”
“ 아무 말도 안 했어요…! ”
티나게 고개를 돌리며 괜히 주머니를 만지작 거렸다. 분명 사탕을 하나만 샀던 것 같은데 그게 아니었는지 체리 맛 막대 사탕이 하나 더 있었다. 어차피 두 개니까 하나는 이민형에게 줄까 싶어 고개를 들자 바로 마주치는 시선에 조금은 놀랐다. 이민형도 놀랐는지 어색하게 웃었다. 분위기가 더 어색해지기 전에 막대 사탕을 내밀었다. 이, 이거… 먹을래요? 그 한 마디가 뭐라고 말을 더듬는 나에 나조차도 답답할 지경이었다. 사회 생활은 어떻게 하려고 이러는지 정말.
“ 고마워요. ”
“ ……. ”
이민형은 고작 사탕 하나 받으면서 내게 고맙다고 말했다. 그리고는 내가 타고 갈 택시를 잡아주며 그제서야 가방을 내 손에 쥐어 주었다.
“ 조심히 가요. ”
“ ……. ”
“ 다음에 볼 때는 누나라고 해도 돼요? ”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수줍은 미소와 함께 그렇게 물어오는데 거절을 할 수가 없었다. 문을 살짝 닫고서 이민형은 술집이 있던 골목으로 다시 걸어갔다. 나를 데려다 준 걸까 하는 착각에 심장이 두근거리다가 금세 식어버렸다. 거울 속에 보이는 못난 얼굴에 열이 확 오르는 듯했다. 그냥 친절한 사람이겠지. 내게 관심이 있을 리가 없었다.
*
이민형 덕에 우리 과는 며칠에 한 번씩 대나무숲에 언급되었다. 화학공학과 18학번 과잠 입은 분 애타게 찾습니다 ㅠㅠ. 대체로 이런 글이었다. 이민형은 우리 과를 넘어서 단대의 유명인사가 되었다. 몇몇 학생회는 이민형 얼굴을 보겠다고 우리 과 강의실에 찾아온 적도 있었다. 이민형은 언제나 난감한 얼굴로 어색하게 있었고 다른 과 사람들은 감탄을 연발하며 이민형과 친해지려고 난리였다. 번호를 달라고 하는 건 너무나 익숙한 광경이었고 한 번은 학교 홍보대사 할 생각 없냐고 직접 찾아오기도 했다. 그런 이민형인데, 데려다 주었다고 착각을 했던 내 자신이 너무 부끄러웠다. 속으로만 생각한 걸 다행이라 여기며 내 주제를 알아야 한다고 몇 번이고 곱씹었다. 그런데 이민형은 자꾸만 내가 그런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 여주 누나! ”
“ 어?! ”
“ 놀랐어요? 놀라게 할 생각은 없었는데. 어디 가요? ”
“ 도…서관. ”
이민형은 동기들을 뒤로 하고 웃으며 나를 따라왔다. 덕분에 이목이 집중된 나는 머리를 만지작거리며 얼굴을 가렸다. 사람들이 꼭 다 나를 쳐다보는 것 같았다. 이민형은 도서관을 가는 나를 계속 따라왔다. 누나 오늘 치마 입었네요? 하며 어색하지도 않은지 잘도 말을 걸어왔다. 나는 그저 대답만 할 뿐이었다. 으응. 새로 사서 입어봤어. 하고 느릿하고 어색하게
“ 너도 도서관 온 거야? ”
“ 아. 저는 교양 수업 가야 돼요. ”
“ 지금? ”
“ 음… 네. 뛰어가면 시간 딱 되겠네요. ”
“ …? 교양관 아까 거기잖아. ”
“ 그러니까 뛰어야죠. ”
“ ……? ”
“ 누나 오늘도 예뻐요. ”
항상 예뻤지만.
이민형은 그런 말을 던져 놓고서는 가버렸다. 나는 놀라서 그대로 몇 분 동안 굳어 있었다. 동기가 뭐하냐고 내 어깨를 치지 않았으면 몇 시간이고 그대로 서 있었을 정도로 당황스러웠다. 우리 과를 넘어서 다른 과에서도 잘생겼다고 불리는 이민형이 내게 그런 말을 했다는 게 너무 당황스러운 일이었다. 예의상 하는 말이라고 멋대로 뛰는 심장을 누르려고 해도 눌러지지가 않았다.
*
이민형 너 여주 선배 좋아해?
엉망이던 과방을 치우고나자 공강에 할 게 없는 새내기들이 과방을 차지했다. 사물함에 가기 위해서는 과방을 지나쳐야 했고 들으려고 했던 건 아니지만 과방에서 새어나오는 그 소리를 나는 들어버렸다. 관심을 가지지 않으려 해도 그럴 수 없는 주제에 나는 거기에 묶인 것 마냥 문 앞에 서 있었다. 잠시 정적이 흐르는데 그 시간이 얼마나 길게 느껴졌는지 모른다.
“ …티나? ”
“ ……진짜야? ”
“ 괜히 누나 곤란하게 만드는 것 같은데…. ”
“ 너 엄청 티내서 우리 동기는 다 아는데 뭐. ”
“ 진짜로 여주 선배 좋아해? ”
그럴 줄 알았다는 반응과 의아하다는 반응이 섞여서 과방 안에 가득 찼다. 더이상 그곳에 있으면 안 될 것 같아 급히 발걸음을 옮기다가 과방을 빠져 나온 후배와 마주쳤다. 붉어진 얼굴과 심통난 얼굴이 나를 향했다. …안녕. 느린 내 인사가 끝나기도 전에 그 애는 나를 지나쳐 가버렸다. 당황해서 인사를 해버렸는데 그게 과방에도 들린 건지 복도에 정적이 흘렀다.
“ 아 헐. ”
“ ……. ”
“ 진짜 오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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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불도저 아닌 조심하는 민형이...
자존감 낮은 여주 X 불도저 민형
이런 글 쓰고 싶었는데 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