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였을까, 이 똑같은 하루가 일상처럼 반복 되는 게 지겹다고 생각했을 즈음, 우연히 너를 만났다. 처음엔 아무런 표정도 없는 네가 그저 신기해 빤히 쳐다봤고, 그 다음은 그 표정 속 너의 생각이 궁금해져 너를 빤히 쳐다봤다. 그러다 너와 눈이 마주치길 여러 번. ‘들키지 않았을거야’ 하고 애써 너의 시선을 피했지만 아니나 다를까 그동안 널 훔쳐본 걸 들키고 말았다. 처음엔 살짝 찌푸린 미간 때문에 기분이 나쁜건가 싶어 흠쳐본 걸 후회 했는데 곧바로 너의 입가에 퍼지는 미소에 기분이 나쁘진 않은가봐 하고 안심이 됐다. 그런 너의 환한 미소에 답이라도 하듯 내 입가에도 서서히 미소가 퍼지자 너의 시선이 내게서 서서히 떨어져갔다. “아쉽다.” 조금이라도 너와 눈을 마주치고 있고 싶었던 탓에 자연스레 내 입에선 아쉽다는 소리가 세어 나왔다. 이마 너는 못 들었을 거야. 그 누구도 듣지 못 하게 아주 작은 소리로 내뱉었으니까. 이건 나만 아는 그런 비밀이니까. 너 또한 아쉬워 했길. * 좀 처럼 너와 가까워지는 게 힘들어 지쳐 갈 때 즈음, 불쑥 내 앞에 나타난 너, 에게서 아주 좋은 비누향이 났다. 그 비누향응 맡고 있자니 저절로 행복해지는 기분이었다. 그런데 너는 나를 못 알아보는 듯 그냥 스쳐 지나가 버렸고, 멀뚱히 혼자 남겨진 나는 코 끝에 아린 너의 비누향 때문에 서글퍼지기 시작했다. “다음엔 내가 알아볼게.” 두 번째 만남이 지나고, 세 번째 너와 마주친다면... 그 땐 내가 알아보겠거니 다짐하게 된 하루였다. 이렇게 혼자 마음 속 깊이 열 수 없는, 말 할 수 없는 마음을 키워내는 게 지쳤기 때문이였을까? 내 행동은 점점 대담해져갔다. 아무리봐도 넌 너무 빛이 나거든. “우연인가, 아님 인연인가.” 드디어 세 번째 마주쳤다. 넌 날 알아보지 못 할 거리에서 난 널 알아 봤고, 멀리서 걸어오는 너의 모습에 내 양 볼은 빨갛게 달아 오르기 시작했다. 이러다간 또 그냥 지나치고 말겠어. 정신을 차리기 위해 두 눈을 질끔 감으며 양 손으로 빨갛게 달아오른 볼을 살짝 때리자 코 끝으로 익숙한 비누 향이 스쳐 지나가고 있었다. 이건 아마도 너의 향기라는 생각에 대뜸 눈을 치켜 뜨고 천천히 지나가는 너의 팔을 붙잡아 버렸다. 양 귀에 이어폰을 끼고 있던 너, 다소 놀란 듯한 얼굴을 하며 천천히 한 쪽 이어폰을 빼기 시작한다. “좀 놔주실래요?” “...아, 아 죄송해요!” 안 돼. 이러다간 다시 널 놓치고 말거야. 언제 다시 만날지 모르는 너를 이렇게 세 번이나 마주쳤다는 건 조금은 대담 해져도 된다는 뜻이겠지? “저... 저...!” 드디어 너를 불러 세우는 데 성공했다. 좋아, 이제 자연스럽게 말을 이어나가면 돼. 그러면 되는데... 뭐 부터 이야기 해야 할까? ‘번호 좀 주실래요?!’ 미친x 취급 받기 딱 좋은 문장이다. ‘세 번째 본 거거든요. 처음 봤을 때 부터 반해서...’ 이건 더 미친x 취급 받기 딱 좋고. 머릿 속이 도무지 정리가 되지 않자 내 마음은 더욱 다급해져갔다. “무슨 할 얘기라도...” 아무 말 못 하고 있는 내게 먼저 말을 건네오는 너. 천천히 고개를 들자 다시 한 번 너의 모습이 두 눈에 또렷이 들어왔다. 훤칠한 키, 길게 늘어진 베이직한 롱 코트, 그와 어울리는 화사한 색상의 폴라 니트. 가장 중요한 건... 바람에 날려 엉망이 된 헤어 스타일. 그것 마저도 내 눈엔 빛이 나보였다. “보고싶었어요.” “...네?” 나도 모르게 세어 나온 말에 너는 당황한 듯한 기색을 내비쳤다. 당연하지, 나도 당황했으니까. 내가 내뱉은 말에 나조차 당황해 어쩔 줄 몰라하자 순간 너의 웃음 소리가 크게 들려왔다. “저도 보고싶었어요.” “네...? 저... 그니까...” “요 며칠 근처에서 자주 마주쳤잖아요. 맞죠?” 나를 기억하고 있다. 그 사실을 인지하자 창피함이 몰려와 내 양 볼이 아까보다 더 빨갛게 달아 오르기 시작했다. 네가 나를 기억하고 있다니. 나만 기억한 게 아니었다니. “그 쪽 보려고 맨날 이 길 지나갔는데 세 번 밖에 못 마주쳤네요.” 행복해서일까, 당황해서일까, 그것도 아니면 그저 크게 놀라서일까. 내 입은 굳게 닫혀 떨어질 생각조차 하지 않았기에 그의 입가에 베어난 미소는 사라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아무런 말도 하지 못 하고 있자 내게로 서서히 다가오는 그의 모습에 심장은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그가 계속해서 가까워지자 기분 좋은 비누향 또한 진하게 다가오고 있었다. “다음에 만나면 내가 먼저 알아 볼게요. 또 봐요, 원영씨.” 내 이름을 알고 있다는 것에 놀라 두 눈을 크게 뜨며 쳐다 보자 뭐가 우스운지 그는 아까보다 더 크게 웃으며 내 목 쪽을 손으로 가르키곤 등을 돌려 서서히 걸어갔다. 그제서야 내려다 본 내 목엔 사원증이 걸려 있었다. 이런 건망증. “아, 제 이름은 정국입니다. 전정국.” 그게 전정국과 나의 첫만남이었다. 그 땐, 적어도 그 땐 우리가 이렇게 틀어질거라곤 생각도 못 한 채 마냥 행복하기만 했었지. 어쩌면 우린, 달라질 수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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