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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CT/정재현] 나의 모든 순간 A | 인스티즈


나의 모든 순간

A










1.



독감이네요.”

앞으로 적어도 일주일 동안은 집에서 쉬도록 하세요.”


차디찬 청진기 헤드가 여주의 온몸 구석구석을 살폈다. 그걸로 모자라 체온을 재봐야겠다며 귓불을 마구 잡아당겼다. 파란색 전자 체온계가 양쪽 귓구멍을 번갈아 왔다 갔다 하고 나서야, 선생님이 귀에 꽂혀있던 청진기를 빼내 목에 걸었다.

열이 38도라고 했다. 여주는 아마 죽었다 깨어나도 이해 못할 영어 의학 용어를 분홍색 차트 종이 위에다 휘갈기던 선생님이 돌연 고개를 치켜들었다. 무테안경을 조용히 추켜올리다 말했다.


심한 건 아닌데 혹 나빠지면 바로 병원으로 오세요.”

소화 잘 되는 음식 위주로 드시고


충분한 휴식이 중요합니다. 선생님이 덧붙이기까지 했다. 독감이라면서 왜 이렇게 폼을 다 잡고 말하는 거야. 여주는 뒷머리를 긁적이며 형식적으로 고개를 주억였다.

건성으로 네네 거리는 여주와는 달리 정재현 그의 표정은 아까부터 내내 심각했다. 진료실에 들어온 순간부터 지금까지, 의자에 앉아 있는 여주의 곁에 바짝 붙어 서있던 정재현의 눈에는 불끈 힘이 들어가 있었다. 그 낯이 진지함으로 점점 물들어 가는 동안 정작 여주는 당분간 치킨, 피자는 못 먹겠네 하는 별 시답잖은 생각이나 하고 있었다.


우리 여주진짜 괜찮은 거 맞나요? 괜찮은 거죠?”

저기

심각한 거 아니죠, 선생님?!”


기다란 두 팔로 선생님의 책상까지 짚어내며 묻는 그의 목소리가 퍽 격했다. 이거 어디서 많이 본 장면인데. 맞아, 본 적이 있었다. 암으로 시한부 선고 받고 애꿎은 의사 선생님 멱살 잡고 엉엉 울던 드라마 속 장면.

정신이 번쩍 든 여주는 정재현 녀석의 팔을 잡아끌었다. 고작 독감 하나 갖고 이러고 있는 걸 본다면 다들 손가락질 할지도 모를 일이었다.


오버 좀 하지마, 독감이라잖아. 책상을 받치고 있던 두 팔에 어찌나 잔뜩 힘이 들어가 있던지 붙잡으려 해도 꿈쩍도 안 했다. 언성을 눅이지 않고 연거푸 물어대는 정재현을 가만히 지켜보던 선생님이 서서히 운을 뗐다.



괜찮을 겁니다.”


그의 말끝이 늘어지다 금세 제자리를 찾았다. 금방이라도 울 거 같은 얼굴의 정재현을 보던 선생님이 그저 싱긋 웃었다. 열 내려가는 주사를 줄 테니 맞고 가라 덧붙였다.


, 감사합니다. 여주는 황급히 고개를 조아리곤 정재현 그를 잡아 당겼다. 더 있다간 선생님이 때 아닌 진땀을 쏟을 건 시간문제 일 것 같았던 까닭이었다. 울상이 다 된 얼굴로 입을 비죽거리고 서있는 정재현을 간신히 끌고 나왔다. 아픈 건 여주인데 사색이 다 된 낯의 주인공은 어째 정재현이었다.


왜 아프고 그래, 진짜.”

독감이라잖아.”

그래도


얼음장 같은 재현의 손등이 여주의 이마에 얹어졌다. 그 손이 여주의 두 뺨까지 보드랍게 매만졌다. 아직 열 많이 나네. 물에 빠진 생쥐 같은 표정으로 정재현은 말했다. 한 대발은 불쑥 튀어나온 그의 입을 쳐다보다 그만 웃음이 났다.


주사 맞았잖아 괜찮을 거야. 몇 살 위 누나라도 되는 양 의연하게 대답하다 고개를 떨궜다. 콜록, 콜록. 간헐적인 기침이 또 시작됐다. 문득 문득 불청객처럼 찾아와 폐를 다 찢어버릴 것 같은 기침이었다. 웃는 건지 우는 건지 모르게 연신 기침을 해대는 여주를 보면서 정재현이 잔뜩 열 오른 얼굴로 화를 냈다. 이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여주는 그저 웃었다.








2.


정재현이란 사람이 나에게 주는 의미는 과연 얼만큼일까. 여주는 이따금씩 생각에 잠겼다. 그럴 때마다 생각은 결론까진 미치지 못했다. ‘크다는 말보다 더 강력한 형용사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까닭이었다. ‘거대하다‘? 그것도 약하다. ’광대하다역시 이것도.





3.



가기 싫다던 아빠, 엄마를 붙잡고 조르고 졸라 놀이동산을 갔다 돌아오는 길에 사고가 났다. 차 앞 범퍼가 형편없이 찌그러졌다.

포털사이트 메인 화면엔 대문짝만한 기사 하나가 났다.


일가족 3명 사망, 딸만 살아남아



그 때 여주의 나이가 고작 열 살이었다.

할머니도 고모도 하나 같이 여주를 손가락질 했다. 너 때문에 내 딸이 죽었다고. 내 딸 잡아먹은 년이란 빌어먹을 소리를 밥 먹듯이 들었다.


그 누구도 여주를 맡아 키울 생각이 없었다. 이모집과 고모집 심지어 일면식도 하나 없던 고모할머니 댁까지 왔다갔다 하기 바빴다. 그래봤자 모두가 자기를 불청객 취급했다. 아마 나는 태생부터가 잘못된 건 아닐까 여주는 문득문득 그딴 생각에 사로잡혔다.


하릴 없이 이 집 저 집을 전전하던 여주가 뜻하지 못한 선물을 받은 건 열일곱.

그러니까 티비 속 예쁜 아홉 소녀들이 한참 ‘cheer up’, ‘cheer up’ 응원가를 불러대던 때였다.





4.


체험학습 참가비를 내지 못한 벌로 복도 청소를 하고 있었다. 1층부터 4층까지, 그 많은 곳을 그것도 혼자서. 찍소리도 내지 못했다. 사회는 돈 없는 걸 마치 힘없는 것과 동일시 하는 경향이 있었다.


제 키보다 두 뼘은 더 되는 대걸레를 들고 복도 이 곳 저 곳을 닦았다. 밖엔 영하 10도가 다 되어갈 정도로 강추위라는데 때 아닌 땀에 이마에 맺혀 앞머리가 엉겨 붙었다. 그래도 꿋꿋이 걸레질을 했다. 음악실이 있는 3층에 다다르기 전까지는 말이다.




[NCT/정재현] 나의 모든 순간 A | 인스티즈

"안녕."





뒤쪽에서 들려오는 곧고 낮은 목소리에 여주는 고개를 돌렸다. 여주의 곁에 바짝 붙어있던 남자 애의 고개 하나가 시선에 잡혔다. 소스라치게 놀라 움찔거리는 여주를 보다 그만 그가 피식 풍선 바람 빠지는 소리를 냈다.

아는 얼굴이었다. 그것도 되게 유명한 아이. 이름은 정재현.



정재현은 평행선 같은 사람이었다. 물과 기름이 어떤 방식으로도 섞일 수가 없듯 어떻게 해도 섞일 수 없을 것만 같던 아이. 눈이 부실만큼 잘생긴 외모에 남부러울 것 없는 빵빵한 집안. 어떤 말로 그를 형용해도 여주와는 하나 같이 정반대되는 것들이었다. 그저 같은 학교 동급생인 것만으로도 그를 맘에 품기엔 여주는 그것마저 죄를 짓는 것 같았다. 겁도 없이 탐하면 안 될 것만 같은 죄책감 같은 것.


3반 한여주 맞지?”


이름을 알고 있었다. 놀란 두 눈이 토끼눈이 된 여주를 보다 녀석이 웃었다.

겁도 없는 건 정재현이었다. 그어 놓은 평행선을 깨부수려했다.



"청소해?"

도와줄게.”



대답할 기회도 안 주고 정재현 그는 여주 손에 들려 있던 걸레를 뺐어들었다. 연신 괜찮다고 팔을 휘적거리는데도 들은 척도 않고서 그는 복도를 닦는데 여념이 없었다. 반도 못 닦았던 복도가 어느새 물기를 머금고 가득 짙어졌다.

뭔가를 머금은 건 비단 복도 바닥 뿐만이 아니었다. 여주도 그런 그를 문득 머금고 싶어졌다. 주제 넘은 걸 알지만 그런 생각이 떠나질 않았다.




"나랑 친구 할래, 여주야?"



정재현은, 애초에 그 따위 평행선 따윈존재하지도않았을지 모른다 자꾸만 착각하게 했다.




"배고파, 여주야."

"집에 라면 밖에 없는데…"

"나 라면 제일 좋아해."




약속이라도 한듯 정재현은 학교를 마치고 항상 여주의 집에 왔다. 혼자만 있던 방이 사람 한 명 더 들어왔다고 비좁아졌다. 여주는 그 비좁음이 좋았다.살면서 흔한 인스턴트 음식 한 번 안먹어 봤을 얼굴로 라면을 제일 좋아한다던 정재현이 좋았다. 시간을 잘못 맞춰 불어 터져버린 라면을 아무렇지도 않게 먹어주는 그가 좋았다.




[NCT/정재현] 나의 모든 순간 A | 인스티즈

"내가 너 지켜 줄거야"




허울 좋은 말뿐인 약속이라도 그저 좋을 뻔 했는데,

정재현은 여주의 곁에있길 늘 자처했다.

3년이었다.


집에선 벌써 정재현을 내놓은 자식 취급했고 그럴 때마다 정재현은 꼬리를 내리긴 커녕 내 옆에 더 붙어왔다.

매순간 죄를 짓는 것 같았지만 정재현을 나 또한 거부할 수가 없었다.


그냥 서서히 물들어갔다고 할까. 정재현에게.










나의 모든 순간






5.



한참 반도체 선도국으로 이름을 떨칠 이 시기에 대한민국엔 강력한 전염병이 돌았다. N-37. 일반인들에겐 그저 생소한 병명이지만 고열, 기침, 오한, 소화장애 그리고 근육통. 흔한 독감과는 똑닮은 증상에 치사율 100프로를 자랑하는 무섭디 무서운 병이었다.


발병하고 정확히 3일 안에 죽음에 이르게 만들고마는 이병을 국가에선 철저히 비밀로 부쳤다. 백신도 치료제도 하나 없는 상황에 굳이떠벌려 국민들을 동요하게 만들필요가 없다는 게 이유였다.보건기구는더 많은 피해자가 나와괜한 잡음이 생기기전에 서둘러 백식을 만들어 보려 잔뜩 혈안이 되어 있었지만 쉽지 않았다.




"왜 더 심해져?"




여주의 입에 물려 있던 온도계를 빼주면서 정재현이 말했다. 여주는 정재현의 풀 죽은 얼굴을 보다 이불을 얼굴에다 푹 뒤집어 썼다. 옮기니까 그만 가보라고 여주가 말했다. 그 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침대에 붙어 앉은 재현이 덮혀진 이불을 걷어 주었다. 벌겋게 열에 취해 있는 여주의 얼굴이 나타났다. 정재현은 세상 슬픈 눈으로 가만히 바라보다 이내 잔뜩 닳아 오른 여주의 두 뺨을 매만졌다.옮긴다는 데 뭐하는 거냐고야단을 쳐도 소용없었다. 그저 땀으로 다 젖은 앞머리를 귀 뒤쪽으로 예쁘게 넘겨줄 뿐이었다.




"아직 38도야."

"하루 아침에 낫는 게 어딨어."

"아무래도 이상해."




병원에 다녀온지 2틀째였다.명치를 찢어 발기는 것 같은 기침은계속 되었고열은 좀처럼 떨어질 생각을 안했다. 몸이물에 젖은 솜처럼 무거웠다. 입맛이 하나도 없는데도 자꾸만 죽을 사다 나르는 정재현 때문에 여주는 꾸역꾸역 죽을 받아 먹었다. 이러다 보면 낫겠지. 맹한 얼굴로 웃으니까 정재현이 잔뜩 흘기는눈을 했다. 입꼬리가 주욱하고 내려간 얼굴이었다.




"얼른 나아, 여주야."

"…"

"진짜재현이 힘들어."


평소 같았음 다 큰 게 무슨 3인칭 지칭이냐고 잔뜩 면박을 줬을 테지만 그냥 다 제쳐두고 여주는 웃었다.

언성을 높일 힘이 없기도 했고 재현의 그런 모습이 사뭇 귀여웠기 때문이기도 했다.








6.


병원에서 약을 타온지 정확히 3일째 되던 아침이었다. 믿을 수 없을만큼 여주의 몸이 나았다.숨을 턱 하고 붙들듯한 기침도 더이상 나오지 않았고 온몸을 다 젖게 만들던 열도 나지않았다. 눈 뜬 아침이 이상하리만치 개운했다. 연신 하품을 하며 뒷머리를 긁적이던 여주가 탁자 위에 놓여있던 온도계를 꺼내 들었다. 36.6도 정상이었다.


휴대폰을 들어 날짜를 확인했다. 진료 예약일이었다. 멀쩡한 몸이 적응이 안 될만큼 다 나은 것 같은데 굳이 가야하나 약 5초간 고민했다. 그 때 마침 휴대폰이 진동소리를 냈다. 고민중인 건 또 어떻게 안 건지진료 예약을 알리는 문자 한 통이었다. 독감 하나에 뭐가 그리 호들갑인지 '꼭' 와주셔야 한다는 멘트에 여주는 그냥 한 번 가주기로 했다.




- 여주 오늘병원 혼자 갈 수 있어? 나 학교에 일이 있어서…

"나 다 나았어. 그거 확인만 받고 오는 거야, 괜찮아."

- 마치면 꼭 전화해. 알겠지.




대답 대신 그저 웃었다. 모든 순간 함께하길원하는 재현이 그저 고마웠다.

진료가 끝나면 그동안 못먹은 치킨, 피자나 왕창 사먹여야지.여주는 그저 가벼운 마음으로 병원으로 향했다.

두 사람 모두 그 끝을 몰랐다.










**

반갑습니다...역시즉흥이란...

그럼 담편에서도 볼 수 있길!_!



첫글과 막글
· [현재글] [막글] [NCT/정재현] 나의 모든 순간 A  4  2개월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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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음
 
독자1
헐 스앵님... 여주 죽어요 ㅠㅠㅠㅠ ??? 다정한 재현이 최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둘이 행복해,,,,,,,,죽지마,,,,,
2개월 전  15:17 l 스크랩  신고   답글
비회원175.91
헉 작가님 안돼요... 여주 죽으면 안도ㅐ... 여주재현 행복해야 되는데ㅠㅠㅠㅠㅠㅠ 모바일
2개월 전  15:29 l 스크랩  신고   답글 l 수정  삭제
독자3
와 대박...ㅠㅠㅠㅠ근데
마지막이 불길한데ㅠㅠㅠㅠ아니겟죠ㅠㅠㅠㅠㅠ흐엉
모바일
2개월 전  18:47 l 스크랩  신고   답글
비회원16.106
재현여주 못 보는 건가요 ㅜㅜ 안돼 ... 모바일
2개월 전  22:55 l 스크랩  신고   답글 l 수정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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