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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블리즈

별민: 뽀얗고 청순하기만 할 것 같던 소녀들에게 비장미의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새로운 3부작을 시작하면서 가장 먼저 바꾼 것이 ‘메이저에서 마이너로’라니, 주의집중하지 않으면 아무도 알아채지 못할 것에 천착하는 이 모습은 너무나도 ‘덕후’스럽지 않은가. ‘Candy Jelly Love’와 ‘안녕’, ‘Ah-Choo’에서 보이던 설렘을 머금은 무표정과는 분명 다른 온도의 처연한 무표정을 한 멤버들은 오른쪽으로만 공전하는 화면 속에서 마치 8개의 행성처럼 필사적으로 움직인다. 그러나 이 필사적인 모습도 소녀 내면에서 일어난 변화일 뿐, 조용하고 도도한 소녀는 우울과 슬픔을 크게 과시하지 않는 법이고, 러블리즈는 이러한 ‘표현의 절제’를 미덕으로 유지한다. 어떤 사람들이 러블리즈에게서 왠지 모를 ‘답답함’을 느낀다면 바로 이 부분일 것인데, 경연류의 ‘고음 지르기’라든가, ‘2배속 댄스’ 등에서 볼 수 있는 어떤 ‘군기’ 같은 것이 러블리즈에게서는 철저히 배제되어 있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도대체 내가 뭘 잘못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눈빛으로 ‘니가 뭘 잘못했는데?’라고 말하는 여자친구를 보는 기분과 비슷할 것이다. 러블리즈가 최근 ‘군대리너스’라고 불리는 대형 남성 팬덤을 얻게 된 이유도 여기에 있지 않을까. 이로써 우리는 러블리즈가 걸그룹 트렌드를 의식해 방향을 틀어버리는 것을 상상하기 더 어렵게 되었다. 이제서야 굳어지기 시작한 자신만의 길로 첫 발걸음을 뗀 러블리즈는 그만큼 자신감에 차있길, 하지만 언제나처럼 크게 내색하지는 않아주길 기대해본다.



트와이스

미묘: 약간 멀게 들리는 샘플의 반복이 프레임레이트 안 맞는 고전 영화를 보는 듯이 코믹하게 울리는 가운데 생생한 텍스처로 은근하게 흐르는 버스(verse). 그리곤 쯔위의 파트부터 곡은 거의 일관되게 또랑또랑하다. 이후 후렴까지 모모, 정연, 지효, 나연으로 이어지는 조합은 멤버 각자의 매력을 분산해 보여준다는 전략에 충실하면서도, 오디오만큼은 선명하고 확신에 찬 목소리로 꾹꾹 눌러간다. 논점은 많지만 이런 씩씩한 기세의 미덕만큼은 도저히 부인할 수 없다.
사나의 “친구를 만나느라 Shy shy shy” 파트가 절묘한 밸런스를 이루는 것은 그래서다. 맹한 듯한 ‘모에’ 연출은 다소 안 맞는 듯한 음역, 약간의 콧소리가 섞인 자음과 얼버무린 모음으로 이뤄진다. 약간 뒤쪽으로 밀려난 사운드로 “shy”를 다시 한번 반복하는 것은 화룡점정.
이를 제외하면 분위기의 전환은 리듬의 변화를 통해 이뤄진다. 내달리는 후렴의 오히려 약간 비워낸 듯이 간결한 구성은, 환한 미소로 시원하게 뻗는 보컬과 함께 브레이크비트의 팽팽한 매력을 효과적으로 살려낸다. 장르적 요소를 가요적, 아이돌적 맥락에 활용하기 위한 고민이 높은 설득력으로 돋보이는 작품.



에이프릴

햄촤: ‘요정돌’은 1세대 아이돌 때부터 관용어처럼 쓰인 표현이지만, 이렇게나 단도직입적으로 요정 이미지를 들고 나올 줄이야. 잠시 당황스러웠지만 뮤직비디오와 함께 노래를 들으면서 설득당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이정도로 우직하게 밀어붙이면 없던 설득력도 생기게 마련이다. 에이프릴은 근래 DSP 걸그룹으로서는 이례적으로 콘셉트의 일관성을 유지하고 있다. 데뷔곡 ‘꿈사탕’의 알프스 소녀, ‘Muah!’의 걸스카우트, ‘팅커벨’의 요정에 이르기까지 ‘미숙함’과 ‘순수함’이 강조된 곡들을 그녀들이 훌륭히 소화해낼 수 있는 것은 실제로 멤버들 대부분이 아직 성인이 되지 않은 소녀들이기에, 또 많은 기획사들이 좀 더 다르고 새로운 콘셉트를 모색하는 동안 차라리 가장 원론적인 방법을 택한 DSP의 전략(?)이 그녀들의 매력과 잘 맞아떨어졌기에 가능한 일이다.
‘팅커벨’은 빈틈없이 짜인 안무도, 신선한 콘셉트도 없지만 뮤직비디오와 무대를 보고 있노라면 스스로 정말 요정이라고 믿고 있는 듯한 에이프릴 특유의 천진난만함이 듣는 이에게 ‘아무렴 어때’라고 말하게끔 마음의 방어선을 무너뜨리는 힘이 있는 노래다. 카라와 레인보우를 거치며 DSP가 얻은 노하우는 이런 것일까. 다른 길로 나아가지 못하느니 차라리 원래 딛고 서있던 자리를 철저히 지키며 때를 기다리는 듯한 모습이다. 만화 슬램덩크〉의 능남고교 유명호 감독의 대사를 인용해 비유하자면, 에이프릴과 ‘팅커벨’은 “반드시 다시 한 번 우리 쪽으로 흐름이 온다!”는 DSP의 신념이 빚어낸 결과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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