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니가모르게감아
1.이진욱
야자가 끝난 후의 늦었다면 늦은 밤 11시의 엘리베이터를 타는 두 사람이 있다
한 명은 나, 그리고 그 다른 한 명은 잘생긴 옆 집 아저씨
처음엔 우연이라고 생각했지만, 매일 같이 반복되는 그와의 만남에 우리는 이제 인사하는 사이까지 되었다
“이 시간에 집에 오나봐?”
하굣길에 우연히 보았던 반달 같은 눈웃음을 나에게 지어보이는 저 아저씨는 나에게 왜 저런 걸 묻는걸까
“아, 오해하지마 그냥 학생 걱정 돼서”
“아, 네”
건조하게 내뱉는 나의 말에 머쓱한 듯 허허-.하고 웃는 아저씨도 이 때 즈음 퇴근하는 듯 보였다
그리고 다음날, 그 다음날도 아저씨는 나에게 사소한 안부를 물어주며
우리는 1층에서 15층까지의 짧은 시간 동안이지만 많은 공감을 나누었다
“오늘은 별일 없었어? ”
시험이 끝나 우울한 오늘은 아저씨에게 모든 것을 털어 놓았다
열심히 했는데, 점수가 잘 안나온다고 열심히는 하는 것 같은데 불안하다고, 힘들다고
그리고 어느 새 15층에 도착한 엘리베이터는 그와의 이별을 알리는 자명종인 듯 띵동- 하고 울렸다
오늘 따라 아쉬운 건 기분 탓일거야.
왜인지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지 않고, 망설이는 모습의 아저씨는 무심히 내리려던 나의 손을 덥썩 잡아버리고,
때 맞춰 닫히는 문과 고용한 엘리베이터 안 새삼스레 둘 만 있다는 사실에 나는 긴장이 된다.
적당히 찬 공기가 서려있는 엘리베이터에서는 아저씨의 향수 냄새가 배어있는 정갈한 숨소리가 들려와 나를 위로해 준다
“힘들면 나한테 조금만 기대”
아저씨는 잡고 있던 나의 손을 당겨 그의 품안에 나를 쉬이 넣었고,
나를 기분 좋게 하는 그의 향기와 목소리는 나로 하여금 그의 허리를 감싸게 했다
“엄마한텐 비밀”
나는 그의 품속에서 고개를 몇번이고 끄덕거린다
고개를 끄덕거릴 때마다 느껴지는 그의 향이나는 자켓과 감촉은 너무나 따뜻했고,
그의 포옹 역시 그 어느 위로의 말보다 나를 포근히 해주었다
2.박해진
언니와 자취를 시작한지도 벌써 세 달에 하루가 지나갔고,
여느 날과 같이 현관에서 들려오는 언니의 뾰족구두 소리와 더불어 들리는 낯선 남자 구두 소리
누구지-.
“안녕하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아, 언니와 매일 밤 통화하던 언니 남자친구인가보다
전화기 너머로 들리던 목소리와 비슷한 목소리에 나는 고개 숙여 인사한 뒤, 고개를 돌려 언니를 째려본다
그러자 언니는 나에게 미안하다는 눈짓을 보내며 그를 집 안으로 안내한다
우리 자매에겐 높기만 하던 천장은 꽤나 장신인 그에게 무척이나 낮아보였고,
조심스럽지만 당돌한 그의 걸음은 우리를 긴장시키기 충분했다
한참 동안 방을 둘러본 뒤, 우리는 조촐히 앉아 저녁식사를 했고, 그와 언니는 내 염장이라도 지르는 듯 깨가 쏟아지는 듯 보였다
그러면서도 그의 날카로운 눈은 어색한 내 눈과 계속 마주치기를 멈추지 않았고,
나를 꿰뚫는 듯한 그의 눈빛에 나는 결국 압도당하고 말았다
“반말해도 되지?”
휘어지는 눈웃음을 지으며 묻는 그에게 나는 어 고개를 끄덕이며 네-.라고 대답했고,
그는 오늘 밤 우리집에서 하룻밤을 지내고 갈 예정이라고 했다 아, 물론 언니 방 에서 언니와 함께였지만
언니가 설거지를 하는 동안 소파에 앉은 우리는 서로의 숨소리가 들릴 정도로 꽤나 가까웠고,
오갈 데 없이 소파를 헤매던 나의 손에 살짝 그의 손이 닿는 것이 느껴졌다
그리고 불편히 겹쳐진 손을 고의인지 실수인지 떼지 않는 그
“하룻밤만 신세 질게 미안해.”
그렇게 그는 언니 방에서 조용히 잠을 청하는 듯 보였다
낯선이가 집에 있어서인지 선잠을 잤던 나는 늦은 밤 깨어났고,
고요한 집 안에는 새벽 두시를 가리키는 시계소리만이 내 발걸음을 재촉하는 듯이 울렸다
타들어가는 갈증에 나는 물을 마시러 부엌으로 향했고, 그 곳엔 몽롱한 모습의 잠을 덜 깬 듯 보이는 그가 있었다
“뭐하세요?”
졸린 듯 무디게 나를 돌아보는 그는 어둠속에서 나에게 점점 다가왔다
등 뒤에서 서려오는 냉장고의 차가운 촉감이 허리에 차올랐고, 그는 살짝 나를 빗겨 냉장고에 기대어 선다
이윽고 아까처럼 다시 마주치는 그와 나의 눈동자와 불편한 관계를 알리는 침묵, 그리고 결단코 선을 넘는 듯한 그의 속삭임
“언니를 많이 닮았네”
어둠속에서 살짝 기울어지는 그의 고개는 생각보다 가까워 내 숨통을 조여왔다
모든 것이 캄캄했지만 곱게 올라가는 그의 입꼬리는 잠결에 느끼기에도 섹시했다
“그래도 눈은 너가 더 예뻐”
졸려 잠긴 듯한 그의 목소리는 갈라져갔지만, 뒤이어 어둠속에서 슬며시 내 눈에 닿는 촉촉한 감촉
그의 입술이 분명하다
3.강동원(전편과 이어짐)
나는 한 동안 성당에 가지 못했다
밤마다 내 귓가에 맴도는 그의 마지막 한마디
두렵지 않다니, 용기를 내라니
그가 내게 남긴 달콤한 한마디는 신이 나를 시험하는 선악과임이 분명하다
나는 끊어지지 않는 그에 대한 생각들과 고민들로 밤을 지새웠고, 새벽같이 성당으로 달려갔다
저 멀리서 보이는 많이 야위어 보이는 신부님
“오랜만이네요”
그의 목소리를 들으니, 막혀오던 숨통이 조금씩 트이고, 억눌렀던 감정이 벅차오르는 느낌이다
새벽의 성당은 생각보다 훨씬 조용했고, 나는 무작정 보이는 그의 품을 향해 내달린다
새벽 이슬을 먹어 약간 축축한 그의 사제복에 닿는 내 얼굴,
그리고 나를 밀어내지 않는 그는 어쩌면 조금 내가 오기만을 바랐을지도
“많이 보고싶었어요”
자꾸만 벅차오르는 감정에 나는 금방이라도 눈물이 터져나올 것 같았고,
울음이 목구멍까지 차올라, 나는 대답 대신 그의 허리를 더욱 당겨 안았다
그리고 내 머리위에 기대는 그의 턱 끝은 나를 온전히 그의 것이라고 확인 시켜주는 듯했다
아무렴, 나의 착각이어도 좋았다.
그는 나를 떼어 낸 후, 사뭇 진지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본다
벼랑 끝에 내몰린 나를 시험하는 듯 관통하는 그 어느 때보다 신중하고 농염한 그의 눈빛.
“내가 말했잖아요,”
더 가늘어진 그의 손목에서 떨어지는 묵주와 함께, 나는 나락으로 떨어질 준비가 돼있다
“더 이상 나는 두렵지 않다고”
결국 나를 탐하는 그의 입술과, 그를 반기듯 받아들이는 나의 입술은 풀 수 없는 매듭처럼 꼬여만 갔고,
텅 비어 적막만이 흐르는 성당 안에서는 서로를 탐하는 탐욕스러운 소리만이 퍼져나갔다
서로에게 취해 있는 우리는 우리 앞에 주어진 선악과를 끝끝내 거부하지 못했다
신이시여, 돌이킬 수 없이 타락해버린 그와 나를 부디 구원하소서
이제 다신 부르지 못할, 아멘.
종교적으로 불편하셨다면 죄송합니다..
망상은 망상일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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