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치 앞도 볼수 없이 치열했던 월남전, 이때 한국의 전술로 인해 월남전에서 엄청난 성과를 이루게 된다.
처음에는 미군이 비아냥거릴 정도로 인정받지 못한 전술이었지만 이후 미군에서도 이 전술을 이용할 만큼 큰 업적을 남긴 전술로 인정받고 있다.
1개의 중대(약100여명)로 베트남 1개 연대(약1,500명)를 물리친 희대의 전술 '파이어 베이스'.
◆ 파이어 베이스 전술이란 위의 그림처럼 원형구조로 진지를 구축하여 사방을 쉽게 방어 할수록 만든 중대 전술이다.
중대간의 폭격지원이 가능하도록 거리를 두어서 진지를 구축하고, 적의 침입에 대비해 호당 2~3명이 허리만큼 파인 호에 들어간 다음 거미줄처럼 연결해 놓은 진지이다.
가장 바깥쪽에는 윤형철조망 포함한 혼합형 철조망을 설치하고 안에는 박격포, 헬기장,탄약, 식료품 등을 구비하며 마지막으로 크레모아 지뢰와 조명지뢰를 설치하여 완전한 요새를 구축하는 전술 기지이다.
이 전술은 적이 우리군을 언제든 고립시킬수 있다는 것과 공중에서 폭격할 경우 전멸을 할수 있다는 단점이 있었다.
하지만 이미 제공권을 미군이 장악하고 있었기 때문에 한국으로써는 최적의 전술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 적 1개 연대 규모의 공격에 48시간이상 방어 목적으로 펀성된 중대 전술 기지(맹호 1연대 6중대)
하지만 이 전술을 본 미군의 반응은 그렇게 좋지 않았다. 오히려 연대나 대대를 편성할것을 요구 하였으나 한국은 이 전술을 유지하였고, 1967년 2월14일~15일까지 벌어진 짜빈동 전투에서 큰 승리를 이뤄내며, 인정을 받게 된다.
이 전투에서 해병대 약 100명 정도 밖에 안되는 중대로 약 1,500명에 이르는 베트남 연대를 박살내는 성과를 이뤘고, 당시 군의 정보에 따르면 246명의 적을 사살했으며, 2명의 포로를 잡는 성과를 이뤘으며 폭격으로 인한 사망자 수는 더 컸을 것으로 보고 있다.
확인된 베트남군의 시신 중에서는 1연대 90대대장을 비롯한 다수의 장교도 포함되었던 걸로 밝혀졌다.
이 전투가 끝난뒤 현장을 찾아온 미국•한국•월남의 고위관계자들은 한결같이 "도대체 어떻게 해서 이런 승리가 가능할수 있느냐"며 믿겨지지 않는다는 반응이었다고 한다.
해외의 다양한 매체들은 이 전투의 결과를 대서특필했고 베트남의 호찌민은 한국군을 만나면 모든 작전을 취소하고 철수하라는 지시를 내렸다고 한다.
이러한 활약으로 인해 미군은 한국군의 거점 전술 교리를 배우게 되었고 이 전술들은 후에 이라크전과 아프카니스탄전 등 다양한 전투에서 활약을 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