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시절 이미 중2병이 강림하셨던 나는 내 또래들, 특히 남자애들은 한심하고 철없다고 생각했다. 그 사상 그대로 남자를 접할 기회가 없는 여중을 갔으니 내 머릿속 남학생들은 초등학생에서 멈춰 있을 수밖에. 널 만나면서 그간의 생각들은 남녀평등에 어긋난 잘못된 생각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넌 오빠 같았고, 다정했고, 편안했다.
아는 사람이 없는 이 곳에서 넌 내게 그나마 가까웠던 사람이었다. 소심한 내가 다가갈 수 있는 건 날 도와준 너밖에 없었다. 너는 친구가 많았는데 나랑 있어준 게 참 신기하기도 했고 고마웠다. 새 학기에 친구와 친해지는 법, 예를 들면 마이쮸를 하나 건넨다든지 인사를 밝게 한다든지 하는 요상한 방법을 너에게 시험 삼아 적용해봤다. 한심하지만 이게 아니었다면 너랑 가까워질 수 없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날부터 너를 자주 봤다. 버스에서 내리면 네가 저 멀리 학교를 가고 있었고, 학교에서는 내내 옆자리였다. 또 학원에서 집에 올 때 널 마주쳤다. 그날 어딜 가나 했더니, 나랑 같은 학원을 다니는 거였다.
나는 과학을 못했다……고 말할 수준은 아니고, 확실히 잘하진 않았다. 처음 시작은 너랑 나랑 같은 학원을 다니는 것을 알게 됐을 때였다. 문과 감성을 지닌 나는 학원에서 내주는 수학 과학 숙제가 어려워 너에게 물어봤다.
“미안한데, 이거 학원에서 내준 숙젠데……. 혹시 답 알아?”
여기서 먼 중학교에서 온 나는 학기 초까지만 해도 친한 친구가 없었다. 너는 그런 친구 없는 소심한 여학생이 안타까워 보였는지 정말 친절히 알려줬고, 눈치 없는 난 용기를 얻어 카톡으로 연락도 자주 했다. 맹세컨대 사심이 전혀 안 담긴 숙제에 대한 얘기였다. 숙제 안 해가면 혼나니까…….
그러다 보니 너랑 많이 친해졌다. 학교에서는 수업 듣다가 톡 건드리면서 장난도 치고, 쉬는 시간에는 엎드려 자고 있는 내 옆에서 나 알려줄 숙제 하고 있고.
아, 참고로 날짜가 지나면서 나도 친구들을 사귀고 잘 지내고 있었다. 걔네랑 떠들며 노는 중에도 가끔 너랑 밥도 같이 먹었다. 애들이 쟤랑 대체 뭐냐고, 같은 중학교 나왔냐며 왜 그렇게 친하냐고 했다. 나도 신기하고, 나도 모르는 걸. 어쩌다 보니 이렇게 된 건데…….
연락도 자주 했다. 학교 끝나면 뭐하냐고 물어보고, 밥은 먹었냐고 물어보고. 그러다가 한 번 숙제 알려달라고 하고. 내가 텍스트로는 도저히 이해를 못 하면 네가 전화를 걸어서 알려주기도 했다. 너는 별 생각 없이 전화 되냐고 물어본 건데, 나는 당황해서 10분 동안 읽고 답을 안 했다. 그러다 너의 그런 습관에 익숙해져 나중에는 전화도 잘 받았다.
솔직히 말하자면 가끔 아는 문제도 모르는 척 물어볼 때도 있었다. 너랑 연락하면 편안하면서도 뭔가 몽글몽글한 기분이 들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기분. 그러니 이유를 만들어서라도 연락하고 싶었다. 누가 보면 참 애쓴다 싶겠지만…….
학교에서 같이 다니는 것도, 같이 얘기하는 것도 어느 순간부터 당연한 게 됐다. 점심시간에는 밥 먹고 같이 산책도 했고 수업시간에는 떠들다가 혼난 적도 있었다.
친구들은 너랑 쟤랑 뭐 있는 거 아니냐고 캐묻기도 하고 매일 이어붙이기도 했지만, 내가 웃어넘기자 이내 사그라졌다. 그렇게 너랑 연락하고 만나는 게 내 일상의 하나로 자연스럽게 스며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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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중순쯤 됐을까. 곧 벚꽃이 만개할 시기였다. 아마 점심시간에 너랑 잠깐 산책을 하고 있었을 때일 거다. 네가 나한테 유채연, 부르자 성 붙이는 거 정 없어 보인다며 붙이지 말라고 너를 나무랐다. 난 이름 두 글자만 불러주는 게 좋다고 하니까 내 이름을 채연아, 채연아, 채연아 세 번이나 읊어주던 너.
괜히 민망해 화제를 돌리려 학교 밖으로 보이는 벚나무 한 그루를 보고 예쁘다 말했더니, 너의 친구들은 모두 다 제 여자 친구와 벚꽃을 보러 간다고 한숨 쉬었다. 그 다음에 벚꽃 보러 가고 싶다, 중얼거리는 너에게 ‘우리 벚꽃 보러 갈까?’ 얘기하고 싶었다. 그러나 왠지 그건 커플들만 행할 수 있는 행동 같아 마음을 접고 나도 벚꽃 보러 가고 싶다, 말하고 웃었다.
“우리 벚꽃 보러 갈까?”
똑같이 웃으며 자연스럽게 얘기하는 너의 말을 이해하는 데 시간이 걸렸다. 3초간 얼음땡을 한 것처럼 움직일 수 없었다. 자주 붙어있고 연락도 매일 하는 ‘친구’ 사이면 단둘이 벚꽃을 보러 간대도 그렇게 이상할 것이 없는데, 내 마음속에 흑심이 있어서 그렇게 받아들인 게 아닌가 싶다.
“싫어?”
대답을 안 하는 내게 너는 일부러 시무룩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나는 황급히 그런 건 아닌데…….라고 했지만 그 다음 말을 잇지 못했다.
“그럼 보러 가자.”
연애를 별로 안 해봤다는 네 말에 처음 의심이 갔던 순간. 그렇게 너와 나의 벚꽃놀이 약속 체결이 이뤄졌다.
아마 그때부터가 아니었을까? 너와 함께 있을 때, 너와 연락할 때 느껴진 그 ‘몽글몽글함’은 설렘이었음을 깨닫게 된 것이. 내가 너랑 함께 할 때가 좋았던 건 단지 편해서가 아니었다는 걸 눈치 채게 된 것이. 내가 너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나도 몰래 마음에 담아왔다는 걸 알게 된 것이.
많이 오글거리니..?ㅠㅠㅠㅠㅠ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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