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엄마가 참 가여운 결혼생활을 보냈어
남들이 다 뜯어말린 결혼 아빠한테 그렇게 목매듯이 다 퍼주고 결혼했다더니 불행한 신혼생활을 보냈고 아빠는 알콜중독자에 엄마를 그다지 사랑하지 않았거든 그냥 가정을 사랑하지 않았어 나랑도 어색하고 잘 안 봐
아빠는 엄마가 별로 좋지 않은데 근데도 엄만 여전히 아빠만 봤어 내가 태어나고 자랄 때까지 아빠만 보느라 나는 보진 못했어 나는 초등학교 때부터 혼자 거실 구석에서 자주 울었고 내색하지 않았고 밖에서는 나름 씩씩해보이게 컸어 아빠는 나를 아예 등한시했지만, 엄마는 그래도 매일 날 붙잡고 아빠얘길 해줬고 눈길 한번이라도 줬으니까 엄마를 위로해주면 집안일을 하면 착하다고 말해줬으니까 좋았어 모두가 애어른이라며 잘 컸다며 기특하다며 칭찬해주면 좋았어
그러다 내가 더 커서 고3때였지 뭐 챙겨주는 건 바라지도 않았는데 엄마가 어느날부터 자주 자정 넘겨서 들어오고 외박이 잦았고 알고보니 일터를 바꾸고는 새로운 남자를 만났더라 과장이래 거기
우연히 엄마랑 사진첩 보다가 같이 찍은 사진을 봐가지고 엄마가 실토했는데 너무 당황스러웠는데 눈치보는 엄마 가여운 엄마 보면서 그냥 웃어줬어 너무 잘 어울린다고
그 뒤로 엄마가 나한테 그사람 얘기를 자주해 서로 싸운 얘기 고민, 얼마나 사랑하는지, 이혼하고 싶다는 것까지도
어느날은 엄마 폰으로 인증문자 확인하느라 켰다가 나도 모르게 그사람과 나눈 대화를 봤는데 애아빠도 버리고 애도 버리고 몰래 도망나와서 그냥 당신한테 갈까 하는 내용이 바로 뜨더라고
내가 평생 참고 살아왔던 모든게 너무 억울해서 펑펑 울었는데 그냥 엄마 씻고 나왔을 땐 안 운척하고 아무렇지 않게 웃었어 그런 고삼생활을 보냈어 내가 어디 대학을 쓰는지도 어디에 합격 했는지도 모른채 엄마는 오직 그남자 얘기만 했어 그렇게 이해하며 살아왔는데
엊그제 갑자기 내 프사에 예쁜 셀카 좀 가져간다더라 그래서 의아했고 몇시간 있다가 엄마 프사가 내사진이길래 좋았어 사실 너무 좋았어 뿌듯했어 엄마의 딸이 된 것 같아서
근데 오늘 나한테 그러는 거야 그남자랑 다퉈서 거리 두고 있었는데 자기가 생전 가족사진 안 올리다가 보란듯이 너사진 딸이라고 올리니까
그남자가 불안해하면서 연락오더라고 엄마가 아예 가정으로 돌아설까봐 걱정했나보더라 이제 그러니까 너사진 내리겠다고. 안 웃긴데 웃기다고 웃었어 엄마도 기분 좋아서 웃으며 뭐가 그리 웃기냐 했는데 그냥 웃기다고 웃었어 아무말도 못하겠어서 웃었다 나 그리고 방금 화장실에서 다 울고 나왔어 드디어 어른이 되었다 했는데 무뎌졌다 했는데 아닌가봐 나는 다시 태어나면 엄마로 태어나서 아빠도 아니고 그남자도 아니고 나를 사랑해줘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