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도 모르는 신부와 혼례를 올렸다. 평생 소작농일 줄 알았던 그는 새마을 운동 이후 동네 이장이 되었다. 단지 성실함밖에 모르던 천성을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그의 특기는 보일러 보수 공사였다. 아들딸은 아직도 새벽에 트럭에 실려 근처 군부대의 보일러를 수리하러 가던 그의 뒷모습을 기억한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자식은 모두 분가하고 텃밭 하나를 끼고 살게 되었다. 가장 인정머리가 많던 막내딸이 어느새 딸을 낳고 찾아왔다. 아비를 잃은 어린 손녀가 그의 뒤를 따랐다. 텃밭에는 도라지 꽃이 피어있었다. 그는 개미 한 마리를 집어 도라지 꽃에 넣고는 손녀를 불렀다. 보라빛 꽃이파리가 진분홍색으로 물들었다. 무뚝뚝한 그가 손녀에게 처음으로 대화를 시도했던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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