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하는 아빠를 보면 얼른 보내주는 게 아빠를 위한 일이겠다 싶다가도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애쓰는 모습을 보면 남은 내 수명 모조리 긁어모아 주고 싶었어. 왜 그토록 열심히 살아온 아빠를, 이제 자식들 다 키워놓고 마음 편히 돈 쓰며 쉴 시간인 아빠를 그렇게 일찍 데리고 갔을까. 평생 아빠 그늘에서 더위 한 번 안 타보고 편하게 산 나를, 그 그늘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고 말썽만 부렸던 나를 데리고 가는 게 맞지 않았을까. 난 세상에 신은 없다고 생각해. 신이 존재한다면 정말 나쁜 사람일 거야. 그렇지 않고선 아빠를 그렇게 일찍 데리고 갈 이유가 없잖아. 난 왜 아빠에게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 알면서도 난 최선을 다하지 못했을까. 왜 아빠가 떠나간 후에도 아빠 소원을 들어주지 못하는 걸까. 내 자신이 너무나 한심하고 또 한심해. 그렇게 부지런한 아빠한테 왜 이런 게으른 딸이 태어났을까. 왜 사랑만 준 아빠 가슴에 난 못만 박았을까. 후회를 하면서도 난 왜 더 나아지지 못하는 걸까. 사람이 죽으면 귀신이 된다고도 하던데 난 그게 너무 겁나. 아빠가 죽어도 정신 못차리고 이렇게 살고 있는 나를 보고 얼마나 한심하게 여길까 겁나. 그런데 있잖아. 염치없지만, 이정도밖에 안되는 딸이지만, 그래도 날 계속 기억해주면 안될까? 살 빼고 가족사진 찍고 싶다고 계속 미루다 결국 가족사진은커녕 아빠 영정사진도 못 해준 날 죽도록 원망해도 좋으니 그래도 날 기억해줬으면 하는, 끝까지 이기적인 딸이라 미안해. 많이 보고싶지만, 한 번만 나타나서 따뜻하게 안아줬으면 좋겠지만, 내 욕심이겠지. 아빠 마음에 들 만큼 대단한 딸은 못 되더라도 창피하지 않은 딸이 될게. 아빠 만나면 할 얘기가 너무 많아. 이야기 보따리 가득 담아 기쁘게 달려갈게. 조금만 기다려줘.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