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운함이 쌓이다가 폭발했다. 뭐 얼마나 더 참아야 되는 건지.
평생 이렇게 쌓이고 쌓이다 곪아버릴 감정이라면 그 감정을 담고 있는 내 마음이 썩어 문드러지기 전에 폭발해버리는 게 낫겠다 싶었다. 그래서 그랬다.
네게 화를 냈고 서운함을 토로했으며 내가 지금 얼마나 불행한지에 대해 얘기했다.
그럼 너는 언제나와 같은 얼굴로 말했다.
"미안해."
그 말이 듣고 싶었던 게 아니었다. 그래서 다시 한번 모질게 말했다.
넌 날 이해하지 못하고 있으며 나의 서운함은 그렇게 금세 풀려버릴 간단한 감정이 아니라고. 그렇게 말했다.
그러자 너는 평소와는 다른 표정으로 집을 나섰다. 한참 동안 소파에 앉아 네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렸다.
그 시간이 배가 되고 다시 또 그 배가 되자 불안이 싸늘해진 집안을 감돌기 시작했다.
손끝이 미세하게 떨려오고 귀 뒷머리서부터 정수리까지 서늘한 감각이 훑고 지났다.
화가 났을까, 내 서운함이 널 지치게 만들었을까.
내가 그때 했던 걱정은 그런 종류의 것이었다.
그리고 한 번 더 서운함이 찔끔 몰려왔다.
표현조차 못 할 서운함이었던가? 난 그걸 네게 표현하면 안 되는 거였나?
지금에 와선 절대 하지 못할 생각과 탓이었기에 그때의 내가 부럽기도, 안쓰럽기도.
넌 꽃다발을 사 들고 교차로 건널목 앞에 서 있었다고 한다.
깜빡이는 파란불을 보며 잠시 망설이는 것 같더니 멈춰 서더라고.
아마 들고 있던 꽃다발이 망가질까 싶어 다음 신호를 기다렸던 것 같다고.
네가 사고를 당한 그 블록에서 몇 걸음 떨어진 곳에 위치한 꽃집 사장님은 그렇게 말했다.
서운함을 토로하고 사과를 받았음에도 감정이 풀리지 않았던 내가 한참이나 널 기다렸던 이유는 이런 걸 받기 위해서가 아니었는데.
줄기가 눌려 잔뜩 헝클어진 꽃다발.
기어코 한 부분도 꺾이지 않은 채 유지되던 꽃다발은 내 품에 들어오고서야 아슬아슬하게 매달려 있던 꽃잎을 떨어트렸다.
바닥으로 그리고 내 품으로. 끌어안는 힘에 못 이겨 떨어진 꽃잎은 지독하게 향기로웠으며 눈이 부시게 화려했다.
난 아마도 끝끝내 네 사과를 받아주지 못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