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자기 삶의 고단함을 털어놓게 만들고,
지나온 시간을 잠깐 돌아보게 하는 노래들이 있다.
크게 위로하지도,
해답을 제시하지도 않는다.
다만 “여기까지 오느라 수고했다”는 말을
조용히 건네는 곡들이다.
이런 노래 앞에서 사람들은
대개 자기 이야기를 한다.
오늘 하루가 어땠는지,
어떤 마음으로 버텼는지,
지금 어떤 상태인지.
그 감상들은 과장되지도, 공격적이지도 않다.
그저 자기 삶에 대한 짧은 기록일 뿐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런 곡들의 댓글창에는
유독 반복되는 장면이 있다.
감상에 대한 감상이 아니라,
감상 자체에 초를 치는 말들이 답글로 끼어든다.
“오글거린다.”
“이런 감성 이해 안 됨.”
이 말들은 곡을 분석하지도 않고,
감정을 해석하지도 않는다.
이미 형성된 감정의 흐름에
옆에서 한 번 끼어들어
온도를 낮출 뿐이다.
문제는 이 태도가
솔직함이나 취향 표현처럼 포장된다는 점이다.
‘오글거린다’는 말은 취향일 수 있다.
하지만 감상글 한가운데에서의 “오글거린다”는
취향 표현이 아니라 개입이다.
아무도 요구하지 않은 평가를
굳이 들이밀며
그 감정 자체를 민망한 것으로 만들어버린다.
공감을 못 하겠다면
그 자체로 아무 문제가 없다.
모든 노래가 모두에게 닿을 필요도 없다.
그렇다면 질문은 하나다.
왜 굳이 말하는가.
이런 댓글은
대화를 열기 위해 쓰이지 않는다.
의견을 나누기 위해서도 아니다.
그저 “나는 저런 감정에 안 속한다”는 태도를
확인받고 싶을 뿐이다.
특히 ‘현실주의’ 같은 말과 결합될 때,
‘오글거린다’는 표현은
사고의 결과가 아니라
사고를 생략하기 위한 조롱이 된다.
맥락을 볼 필요도,
사람의 이야기를 들을 필요도 없어진다.
뒤에 붙는 웃음은 더 분명하다.
가벼움이 아니라 책임 회피다.
말은 던졌지만,
그 말이 남긴 여운에 대해서는
아무 책임도 지지 않겠다는 표시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댓글들이야말로
가장 감정적인 반응이라는 것이다.
노래에 기대 자기 삶을 잠깐 돌아보는 사람들보다,
그 장면을 못 견디고 굳이 끼어드는 쪽이 더 집요하다.
이건 냉정함도 아니고,
쿨함도 아니다.
타인의 감정이 드러나는 순간을
견디지 못하는 태도다.
감상은 토론이 아니다.
자기 삶을 정리하는 짧은 호흡이다.
오글거린다면 지나가도 된다.
공감하지 않아도 된다.
침묵 역시 충분한 선택이다.
그럼에도 굳이
“오글거린다”는 말을 던지는 순간,
그건 솔직함이 아니라 방해다.
그리고 이런 장면이 반복된다는 사실 자체가
왜 사람들이 여전히
이런 노래를 필요로 하는지를 잘 설명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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