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당고모할머니 (1929~2024)
친할아버지의 사촌누나, 사범대 재학 중 6.25전쟁이 터지자 여자의용군으로 전쟁에 참전했고 휴전 이후 복학해서 사범대를 졸업한 다음 초등학교 교사로 근무하며 교감, 교장까지 역임 후 정년퇴직을 하셨음.
결혼을 안한 미혼으로 사귀던 남자친구가 6.25전쟁에 나갔다가 전사한 이후 평생 그 남자친구의 극락왕생을 기원하며 독신으로 사셨던 분임.
90대 중반에 노환으로 돌아가셨는데 돌아가시기 한달전까지 건강하시다가 갑자기 쇠약해지셔서 요양병원에서 치료 중 돌아가심. 교사가 된 이후 평생 광주광역시에서만 사셨음.
〈2> 당이모할머니 (1930~)
친할머니의 사촌언니, 양장점 재단사로 60대 후반까지 양장점을 운영하셨음. 이북 출신으로 평양에 있는 대학을 다니다가 6.25전쟁이 발발하면서 남하했고 이후 생계를 위해 재단일을 배워서 재단사가 되심.
집안의 장녀라 동생들의 학업, 부양을 위해 결혼을 하지 않고 일평생 가족들을 위해서만 살았음. 재단실력이 당시 손꼽힐정도로 뛰어나서 정계, 재계 사모님들도 남편 양복을 살 때 할머니네 점포에서 손질을 부탁했다고 함.
이런 실력탓에 꽤 큰 재산을 일궜고 현재 서울 부촌에 단독주택을 짓고 거기서 운전기사, 가정부까지 두고 생활하고 계심.
〈3> 외당고모할머니 (1934~)
외할아버지의 사촌여동생, 6.25 전쟁 당시 여자의용군으로 참전했고 휴전 후 전역했음. 당시 군대를 다녀온 여자에 대한 편견이 강했고 본인 스스로 자립해야 하는 가정환경이였기에 다방 종업원으로 일을 시작함.
당시 부산 다방에서 커피,음료제조법을 배워서 작은 점포로 시작하여 꽤 큰 규모의 커피매장을 차려서 직접 사업을 하며 생계를 일궈 나가심.
평생 부산에서 사셨고 70대에 점포를 폐업 후 은퇴하신 후에도 부산에서 살고 계심. 연세가 많으셔서 거의 하루의 대부분을 자택에서 요양하시는걸로 알고 있음.
〈4> 외당이모할머니 (1936~)
외할머니의 사촌언니, 간호사 출신으로 인천에 있는 큰 병원 수간호사까지 역임했던 분으로 알고 있음. 본인의 생모가 후처였기에 적모(아버지의 본처)와 갈등이 있었던 환경 때문에 결혼을 안하심.
간호사로 정년퇴직하신 이후에도 병원상담실 직원으로 일하셨고 70세가 다되서 아예 직업 자체를 내려놓고 은퇴하셨음. 원래 인천 중심가에서 사셨는데 아예 은퇴하시고 전원생활을 위해 강화도로 이사를 가셨다고 함.
〈5> 이모할머니 (1938~2026)
친할머니의 이복여동생, 증조할아버지가 3번째 첩과 사이에서 낳았다고 들었음. 집안의 반대에도 똑똑해서 대학까지 보낸걸로 알고 있고 대학 졸업 후 은행원이 되어서 지점장까지 역임 후 은퇴를 하심.
지금은 불법이지만 당시 내부거래로 꽤 큰 금액의 비자금을 번것으로 알고 있고 주식, 토지, 부동산매입으로 수백억대 재산을 가진 부자가 되셨음.
말년에는 수원에서 알아주는 부자할머니로 불리었다는데 건강하게 사시다가 갑작스러운 뇌졸증으로 돌아가셨고 많은 조카들이 각각 nn억원을 상속받을정도로 자산규모가 컸다고 함.
〈6> 외당이모할머니 (1939~)
외할머니의 사촌여동생, 대전에서 40년 가까이 공무원으로 일하시다가 정년퇴직을 했다고 들었음. 평생 비혼으로 사셨는데 당시 인기없고 박봉으로 유명한 직장(공무원)이였지만 가정주부로 사는게 본인 적성에 도저히 맞을꺼 같지 않아 비혼을 선택했다고 함.
은퇴 이후에도 공무원 연금이 나오고 어느정도 재산을 모았을때 일찌감치 자가로 자택을 마련해놔서 혼자 생활하는게 노화로 가끔 힘들때도 있지만 큰 후회없이 생활하고 계신다고 들었음.
〈7> 외당고모할머니 (1939~)
외할아버지의 사촌여동생, 중학교 졸업 후 바로 시장에서 유통상점을 창업해야 했을정도로 집안환경이 넉넉하지 못했다고 들었음. 동생들을 부양하기 위해 아예 결혼을 포기하고 한평생 장사만 하면서 사셨다고 함.
울산에서 사시고 계시는데 80대 초반에 뇌출혈로 쓰러질때까지 60년간 생필품 판매마트를 운영하셨다고 들었음. 뇌출혈로 쓰러지신 후 오른쪽 팔.다리에 마비가 와서 장사를 접었고 현재 실버타운에서 생활하고 계신다고 함.
〈8> 당고모할머니 (1939~2024)
할아버지의 사촌여동생, 보험외판원으로 60대까지 일을 하셨던분으로 용인에서 사셨음. 부친의 여성편력으로 어머니가 고통받는 모습을 보고 일찌감치 고교 졸업 후 독립하며 비혼을 선택하심.
화장품, 보험 외판원으로 일하면서 생계를 이어나갔는데 수완이 꽤나 좋아서 혼자서도 충분히 생활할 수 있을정도로 수입이 높았다고 함. 올해의 보험왕 이런걸로 상을 받기도 했다고 들었음.
20대부터 계속 흡연을 하셨는데 그 여파 때문인지 몰라도 돌아가시기 1년전에 폐암진단을 받고 투병하시다가 돌아가셨음.
〈9> 당이모할머니 (1942~)
친할머니의 사촌어동생, 전문직(약사) 출신으로 70대까지 서울에서 약국을 운영하며 생활하셨음. 결혼을 아예 안한 이유는 본인 직업에 대한 자존심도 높았고 당시에는 결혼하면 여자는 전업주부가 의문시 되는 시대라 결혼을 안했다고 함.
평생 경기도 위성도시인 고양시에서 사셨는데 20대부터 직접 운전을 하셔서 현재 80대임에도 직접 운전을 하며 생활하심. 이분 어머니(친할머니 숙모)가 100세가 넘었는데 직접 운전을 하고 다니며 어머니를 자주 뵙는다고 들었음.
〈10> 외당이모할머니 (1944~)
외할머니의 사촌여동생, 유치원 교사로 일하다가 본인이 직접 유치원을 창립하여 유치원 원장을 역임한걸로 알고 있음. 결혼을 안하셨는데 어릴때부터 몸이 약하고 신체적으로 건강이 좋지 않아 비자발적 비혼이 되셨다고 얼추 듣긴함.
화성시에서 유치원을 경영하다가 2000년대 중반쯤에 유치원을 아끼는 직원교사한테 넘기고 은퇴했음. 현재에도 화성시에서 살고 계신다고 들었음.
〈 11 > 외당고모할머니 (1944~)
외할아버지의 사촌여동생, 서울에서 사시는데 일평생 학원강사로 살다가 은퇴하셨던걸로 파악됨. 결혼을 한번도 안했던 분인데 본인 의사로 비혼주의자가 되셨다고 들었음.
학원강사로써 실력이 좋아서 당시 서울에서도 몇 안되는 여성 스타강사였다고 함. 교사가 되지 않은 이유는 교사는 공무원이다 보니 안정적이긴 하지만 박봉이라 끌리지 않았다고 했음.
〈 12 > 당이모할머니 (1945~)
친할머니의 사촌여동생, 현재 인천에서 살고 계시는데 국내 굴지의 유통기업에서 50대까지 일하시고 은퇴하신 이력이 있음. 판매서비스직이였는데 워낙 능력이 좋아서 회장. 부회장의 아낌(?)없는 총애를 받았다고 함.
은퇴한 이후에도 마트캐서 등 계속 서비스직 아르바이트를 하셨고 최근에는 노인일자리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시면서 활발하게 생활하고 있음.
이분은 자발적인 비혼주의자로 남자보는 눈이 높아서(?) 본인은 결혼을 못했다고 말씀하셨음.
〈 13 > 당고모할머니 (1946~)
할아버지의 사촌여동생, 경남 창원에서 살고 있고 젊은 시절(20대)부터 60대까지 일반기업 사무원으로 일하다가 은퇴하신 후 국민연금으로 생활하고 계신다고 들었음.
결혼을 아예 안하셨는데 사회생활에 대한 욕심이 강했다고 함. 그런데 당시 결혼을 전제로 만나던 남자가 말도 안되는(?) 조건을 강요해서 그 남자랑 헤어지고 지금까지 독신으로 남아있는거라고 들었음.
은퇴한 후에도 편의점 아르바이트 등 계속 단기알바식으로 사회생활을 꾸준히 하는분임.
〈 14 > 외당이모할머니 (1952~)
외할머니의 사촌여동생, 그 옛날(1970년대)에 예체능을 전공하고 피아노학원 강사, 원장으로 40년 가까이 생활하신분이라고 들었음. 경기도 성남에서 살고 계시는데 특이하게도 학원은 서울에 차렸다고 함.
현재 학원은 매각했지만 가끔씩 직접 피아노를 치기 위해 일일강사로 방문할때가 있다고 들었음. 성남에 있는 단독주택에서 은퇴 후 노년생활을 하시며 생활하고 있음.
〈 15 > 외당고모할머니 (1952~)
외할아버지의 사촌여동생, 경기도 남양주에서 보육원 교사로 일하시다가 은퇴하신걸로 암. 가정환경이 좋지 않아 일찌감치 비혼을 선택했고 수녀가 되려다가 친지들의 권유로 대학에서 유아교육을 전공했다고 했음.
이후 어린이집 교사를 거쳐서 보육원에서 고아들을 돌보는 생활교사로 일하다가 원장님까지 되심. 정년퇴직 후에도 남양주시에서 살고 계신다고 들었음.
〈 16 > 당고모할머니 (1958~)
친할아버지의 사촌여동생, 대구에서 생활하고 계시는데 그 지역 섬유회사에서 사무원으로 일하시다가 60세 다되서 은퇴하시고 현재 혼자 생활하고 계신다고 들었음.
결혼을 아예 안한분인데 집안에서 워낙 귀한 딸이다 보니 사위에 대한 눈높이도 높아서 부모님 반대가 비혼의 가장 큰 이유 중 하나였다고 함.
은퇴하신 이후에도 의류쪽에 관심이 많아서 직접 의류숍을 차려보는 등 활발하게 사회생활을 이어나가고 계신걸로 암.
〈 17 > 당이모할머니 (1961~)
친할머니의 사촌여동생, 광주에서 살고 계시는데 학교 영양사로 일을 하시다가 은퇴하셨다고 함. 단 한번도 결혼을 하신적이 없음. 본인 눈높이에 맞는 남자가 한명도 없어서 결혼할 필요를 못느꼈다고 했음.
은퇴하신 이후에는 동네식당 조리사로 꾸준히 일하시면서 쉬지 않고 활발한 노년생활을 즐기고 계신다고 어른들한테 들었음.

인스티즈앱
개그맨 김대희 230억 아파트잇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