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야. 너는 가을이다. 너무 더운 여름이 아닌, 그렇다고 너무 추운 겨울도 아닌. 너는 가을이다. 찝찝한 내 마음을 식혀주는 너는 가을이다. 너는 그런 나의 가을이다. 사랑한다고 말했다. 너는 많이 놀란듯 보였지. 그도 그럴것이 여자와 여자는 사랑할 수 없으니까. 사랑하면 안되니까. 어쩌면 니 반응이 옳았는지도 모른다. 세상은 이기적이다. 물론 그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도 이기적이야. 너와 나도 이기적이겠지. 너와 나의 사랑을 세상이 인정해주길 바라지 않는다. 다만, 이해해주기를. 차라리 무시해주길. 그날은 유독 선선한 바람이 불었다. 8월 27일. 아마 난 잊지 못할거야. 너를 처음만났거든. 8월의 끝자락에서 마주한 가을과 같은 존재. 너는 내게 그랬다. "저기... 여기 엄청나게 큰 병원이 하나 있다던데.." "...세브란스..?" "네!! 혹시 위치 아세요...?" "아... 마침 그쪽 가던 참인데 같이 가자. 따라와" 물론 내 길은 그곳이 아니었다. 나도 모르게 너를 보니. 놓치기 싫었다. 너를 어떻게든 잡아야했어. "여기야. 근데 여긴 왜...?" "아... 아는 분이 여기 계셔서요. 병문안" "그렇구나...저..근데 몇살....?" "19살이요. 언니는요?" "어? 아.. 난 23살" "그렇구나... 길 알려주셔서 감사해요. 그럼.." "엇 저기..! 고마우면... 나중에 차라도 한 잔 사는게 어때...?" "네? 아 그럴게요! 번호 알려주시겠어요?" 난 얼토당토 않은 말들로 대화를 이끌었고, 착한 너는 일일히 다 대응해줬지. 유난히 마른 몸이었던 너는 살짝 선선해진 바람에도 부러질듯한 약한 나뭇가지 같았다. "여보세요" "어..저 김태연 언니 핸드폰 맞나요?" "아...네 그런데요...누구...?" "저 지난번에 길 알려주신.. 그 세브란스!" "아아- 세브란스! 잘지냈어?" "네 덕분에요-" 니가 왜 덕분에 잘 지냈다고 했는지... 왜 난 그때 알아채지 못한걸까. "제가 차 사기로 했잖아요. 우리 언제 만날까요?" "어...난 월요일 빼고 다 괜찮아. 아아 금요일도 빼고" "음 그럼 수요일 어때요? 다음주 수요일" "응. 그러자 그럼. 수요일에... 어디서 만날까?" "언니 시간 괜찮으면 세브란스 앞에서 만나요" "세브란스..? 음 그래 그러자. 내가 그리로 가서 전화할게" "네 그럼 그때 봬요-" 너무도 무더운 여름에 시원한 바람같았던 너는 지금 어디에 있니. 수연아... 수연아.... 수백번을 더 불러도 아플 그 이름 수연아. "어!! 여기요! 언니! 여기!!" "어? 어 그래! 거기 있어! 내가 그리로 갈게!" "왔어요? 덥죠?" "응 좀 덥네. 그래도 괜찮아. 이제 곧 가을이니까" "사실 저도 가을이라는 생각으로 버텨요 흐흐" "그래도 더운건 마찬가지네. 빙수 좋아하니?" "네. 당연히요" "그럼 빙수먹자 빙수. 으어 덥다아아아" "언니 이렇게 보니까 완전 애기같네요. 피부도 하얗고 잡티하나 없다" "너도 마찬가지네요- 너도 피부 좋아" "언니 무슨 빙수 좋아해요? 난 다 좋아하는데" "딸기빙수 먹을래?" "오오 좋아요!!" 너와 함께한 모든 날의 기억들이 난 아프다. 아직도. (사실 수연이 말투는 윤아랑 더 어울리는데... 그냥 써본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