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하영(1858-1919) 직업 조선 후기의 문신(통역/외교), 기업인, 친일반민족 행위자 가족관계 손자 이종찬 을사5적에는 가려져있지만 나라 팔아먹기에 헌신적이고 적극적이었던 을사 3흉중 한사람 *을사 5적 - 박제순(외부대신), 이지용(내부대신), 이근택(군부대신), 이완용(학부대신), 권중현(농상부대신) *을사 3흉 - 이재극(궁내대신), 이하영(법부대신), 민영기(탁지대신) 이하영은 몰락한 양반가로 아비가 소작에 이하영을 동자승으로 보낼만큼 가난했다. 동자승을 몇년 하다 동생과 함께 떡 행상을 하기도 했다. 그런자가 우연한 기회로 일어와 영어를 섭렵하는 행운을 얻어 한나라의 외무부장관과 법무부 장관에까지 오르는것은 물론이요 매국으로 은사공채 5만원을 얻어 조선 최고의 고무신 브랜드까지 런칭하니 필시 입지전적의 인물임엔 분명. 화려한 친일 행적* 1897년 주차일본국 특명전권대사로 일본 황태후 장례식 참석 일본정부로부터 훈1등 욱일대수장을 받음 1898년 주일전권공사, 이듬해 중추원의장이되었다 이해 다시 주일특명전권공사 겸 의정부찬정이 됨 1900년 4월 대한제국 정부로부터 훈2등태극장 1901년 8월 대황제폐하 성수오십년친경기념장 1902년 10월 대황제폐하 어극사십년친경기념장 . . . 1910년 국권이 피탈되자 조선총독부 중추원 고문에 임명 사망할때까지역임 1910년 10월7일 일본정부로부터 '한일합병'의 공로로 자작 작위를 받음 1915년 일제가 식민통치 5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개최한 '시정 5년 기념 조선물산공진회 경성협찬회'유공회원이되었고 일본도쿄에서 개최한 일본왕즉위대례식에 귀족총대로 참가한 뒤 11월 대례기념장을 받음. 1916년 '조선반도사'편찬사업 심사위원이 되어 일제의 한국사 왜국 편찬사업에 협력 1919년 조선농사개량주식회사 발기인 총대를 맡아 이토히로부미 10주년 추모제 참석 1929년 노환으로 사망하기 직후 욱일동화대수장이 추서되었고, 6월에 아들 이규원이 작위를 이어받음 살아생전 친형 이근영을 군수로, 동생 이준영은 관찰사까지 만들어 친일 행각을 함께 하기도 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