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상대방은 전혀 모르고 끝나는 이야기가 보고 싶다 한유진은 꽤 긴 짝사랑을 했을 것 같음 유진이 다니던 학원 조교였다든가 친한친구 형이었다든가 학생 때부터 쭉 봐오던 동경의 대상 뭐 그런 거. 어리다고 무작정 애 취급하지도 않고 장난도 잘 치고 가끔 보면 자기랑 정신연령도 비슷해 보여서 나이차 같은 건 크게 느껴본 적 없을 거야 하지만 그럼에도 둘 사이 시간의 간극은 노력으로 좁혀지는 게 아니라 한유진은 항상 빨리 시간이 흐르기만을 바랐음 자기가 성인이 되고 나이를 먹으면 형과 어느 정도 비슷한 선에 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유진인 그 흔한 혼란조차 겪은 적 없을 것 같다 김지웅에 대한 마음이 사랑인지 동경인지 딱히 생각해본 적이 없어 그냥 흘러가는 대로 두는 잔잔한 물결 같은 감정이었지 밀려올 땐 막을 수 없이 덮쳐오지만 쓸려갈 땐 또 붙잡을 수 없이 멀어지는 그런 감정 김지웅은 좋은 사람이다 그러니 나도 김지웅을 좋아한다. 아주 단순한 명제였음 그래서 더 열심히 그와 비슷해지려고 노력하지만 자기 마음 하나 깨닫지 못했는데 과연 마음처럼 될까 한유진이 고등학교 다닐 때 김지웅은 본격적인 사회생활을 시작했고 한유진이 대학 들어갈 때 김지웅은 이미 회사에서 대리까지 단 상태였음 그럼 한유진이 사회에 발을 들일 그 시점에 김지웅은 어떤 상황일까? 흔하디 흔한 대한민국 청년의 삶을 생각해보면 아주 간단한 답이 하나 나오지 안정적인 생활, 평생 함께할 동반자를 찾는 지루한 듯 뜻깊은 과정. 그래 한유진이 드디어 김지웅과 나란히 섰다고 생각했을 그때 김지웅은 슬슬 결혼을 생각 중이었음 절절하게 붙잡거나 할 것도 없이 어느날 한유진 앞에 청첩장 하나가 들이밀어짐 "요즘엔 모바일 청첩장으로 한다던데..." 유진이 중얼거리면 김지웅은 멋쩍은듯 웃겠지 "난 뭐든 손에 잡혀야 실감나고 좋더라고." 손에 잡혀야... 청첩장 주겠다고 오랜만에 단둘이 만난 식사자리에서 유진은 그 한 마디를 계속해서 곱씹었음 손에 잡혀야 실감이 난다고? 실체가 없는 이상한 감정 때문에 올라가지 않는 입꼬리를 파들거리던 유진에겐 한없이 의문스러운 말이었음 그리고 그 감정을 스스로 실감하게 된 날은 김지웅의 결혼식 당일이겠지 평소보다 배는 더 멀끔하고 잘생긴 낯으로 버진로드를 걷는 김지웅. 신부와 마주보고 웃는 김지웅. 긴장한듯 조금은 뻣뻣하게 서 있는 김지웅. 한유진은 묵묵히 그 모습을 지켜봤음 그리고 식 거의 마지막쯤 혼인서약을 하는 시간이 됐을 때 스피커를 타고 식장 전체에 퍼지는 말이 귀에 박혔음 "함께한 날보다 함께할 날이 더 많음에 감사하며 변함없는 마음으로 항상 아끼고 사랑하겠습니다." 멘트가 마무리되고 사람들이 박수를 치는 평화로운 그 순간에 조명도 받지 않아 어둑한 하객석 구석에서 한유진은 눈물을 흘림 조용히 흐르는 눈물을 닦을 생각도 하지 못하고 그대로 식장을 빠져나왔음 바깥 바람에 눈물이 말라 얼굴이 건조해진 걸 느낀 그제야 한 번도 인식하지 못했던 감정을 깨닫게 됨 함께한 날도 함께할 날에 대해서도 제대로 상상 한 번 해본 적 없음을 원망하고 후회하면서 평생 묻어둘 사랑을 처음으로 인정하는 날이 되겠지...

인스티즈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