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현우에게
당신은 내가 수술을 받을 동안 이걸 읽고 있겠지?
만에 하나 내가 깨어나지 못한다면
이게 유언장이 될 수도 있겠네
옛날처럼 3년상까진 안 바랄게
대신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 정돈
날 그리워해주고 술 먹고 내 이름도 불러줘
근데 그 다음부턴 다 잊고 행복하게 잘 살아
멋진 연애도 하고 결혼도 하고 좋은 가정을 이뤄
나 약 올라 하지 않을게
그리고 내 몫의 재산은 당신이 잘 처분해서 좋은 곳에 써줘
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까 마음이 다급해지네
급하게 착한 일을 해도 천국에 갈 수 있나?
그래야 나중에 당신 다시 만날 텐데..
이런 생각만으로도 나 좀 슬프다
그런데 내가 수술 잘 받고 살아서
당신을 다 잊어버리게 된다면
낯선 사람 취급한다면
그것도 부족해서 못되게 군다면
그래서 당신이 참다 참다 나한테 질려버리면 어떻게 하지?
그래도 나한테 질리지 말아 주라
지치지 말고 계속 사랑해 줘
난 어차피 소나무 취향이라 당신을 다시 사랑하게 될 거야
그때까지만 버텨줘
그리고 내가 당신 내가 알아보면 그때
나한테 새장가 와라
그리고 홍해인
이걸 보고 있다는 건 수술이 성공했고
넌 아무것도 기억을 못 하고 있다는 얘기겠지?
그럼 이 남자는 내가 소개를 할게
백현우는 이것저것 뚝딱뚝딱 잘 고쳐
근데 잔소리가 심한 편이고 속이기 좀 쉬운 편이야
술 마시면 사람 설레게 하는 필살기가 있으니
주의해야 하고
울면 모성애를 자극하니까 웬만하면 울리지 말고
소매 걷으면 헉 소리 나니까 전완근 단속 잘 하고
아직도 잘 모르겠으면 그냥 외워
그 남잔 내가 기억을 잃고 싶지 않았던 이유고
또 내가 기억을 잃더라도
결국엔 살고 싶었던 유일한 이유야
백현우는 마지막까지 내가 잊고 싶지 않은 이름이야
난 이번 생에서 그 사람과 함께해서 행복했어
이제 시작될 너의 생에서도
그 사람이 네 곁에 있길 간절히 기도할게
+
야 홍해인
후회하기 싫으면 뭔 짓을 해서라도
백현우 반드시 잡아라
아무 짓도 안했지만 이미 잡혔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