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도 '기승전 반좌파'였습니다.]
제 글이 길어서인지 자꾸 "일베 폐쇄해봤자 어차피 다른 곳으로 옮겨간다", "일베 탓만 하지 말자"라는 식의 반응이 보이네요.
어제 자세히 글을 남겼지만 각론으로 들어가면 지금 나오는 이야기들 대부분이 다 맞다고 봅니다.
다만 저는 그중에서도 특히 '정보 환경과 또래 문화' 차원에서 이야기하는 겁니다.
저는 모든 원인을 "청년 정책 부족"만으로 설명하는 건 온라인 현실을 지나치게 단순화하는 접근이라고 봅니다.
거듭 말씀드리지만 정책은 중요합니다.
하지만 정책 디테일만큼 중요한 건 그 정책이 유권자들에게 어떤 정보 환경을 거쳐 전달되는가입니다.
정책을 세세하게 읽고 판단하기 전에 먼저 '어떤 정보 환경 속에 놓여 있는지, 어떤 콘텐츠를 반복적으로 접하는지, 어떤 글과 댓글에 좋아요가 많이 달리는지, 어떤 준거집단에 속해 있는지'를 통해 영향을 받는 사람들도 상당히 많습니다.
"나는 영향 안 받는데?"라고 말하면서도 좋아요와 공감을 원하고, 조회수와 댓글에 반응하는 인간의 특성에 대해서는 굳이 길게 설명하지 않겠습니다.
당장 저 역시 10대~20대 중반까지 "반민주당(반좌파)" 정서에 빠져 있으면서도 스스로는 '중도'라고 말하고 다녔습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제가 매일 접하던 '게임 커뮤니티와 인터넷 방송 문화'의 영향이 매우 컸습니다.
상당수의 커뮤 글들은 처음엔 일상, 유머, 게임, 연예계 이야기로 시작하지만 결국에는 "이래서 좌파가 문제다"라는 결론으로 귀결되곤 했습니다.
이런 거에 왜 넘어가나 싶을 수 있습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매일같이 접하는 콘텐츠가 "민주당은 무능하다", "내로남불 정당이다", "위선보다 솔직한 게 쿨하다", "좌파는 퍼주기하면서 표를 구걸한다", "친중 종북 친페미 친노조 586 꼰대 OUT" 같은 메시지라면 어떨까요.
물론 "그래도 나는 영향 안 받는다"라고 말은 하겠지요.
저도 과거에는 그렇게 생각했니까요.
어떤 인물이든, 정책이든, 정당이든 사후적으로 비난할 명분은 얼마든지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저 역시 그런 명분들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외우다시피 했습니다.
그러다가 누군가와의 대화에서 팩트와 논리로 밀린다 싶으면 "너무 진지한 거 아니냐", "웃자고 한 말에 죽자고 달려든다", "진영 논리 극혐이다" 같은 말로 수습하며 넘어가곤 했습니다.
스스로 합리적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이미 특정 정보 환경의 영향을 받고 있었다는 사실을 한참 뒤에야 깨달았습니다.
당연히 저 역시 그 시절에는 정책, 공약, 인물에 아예 관심이 없었고요.
어떤 공약이 나오기도 전에, 어떤 정치인의 말을 들어보기도 전에 이미 '인식' 자체가 형성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지난 수년간 정책 경쟁과 함께 '정보 환경' 문제를 이야기해 온 겁니다.
제가 리박스쿨 같은 여론 공작, 허위조작정보, 플랫폼 책임 문제를 계속 강조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여전히 이러한 문제를 단순히 "일베 폐쇄" 정도로 이해합니다. 하지만 제가 주장하는 건 사이트 하나의 문제가 아닙니다.
당연히 일베가 사라진다고 해서 문제가 자동으로 해결되지는 않을 겁니다. 빠르게 다른 플랫폼으로 이동하겠지요.
그렇다고 해서 지금까지 어떤 플랫폼도 제대로 책임지지 않고, 문제를 방치하면서 막대한 이익을 누려온 현실까지 외면해야 하는 건 아니라고 봅니다.
그래서 저는 "일베를 없애면 끝난다"가 아니라 "왜 이런 문화와 인식이 반복적으로 재생산되는가"를 보자는 겁니다.
정책은 정책대로 발굴해야 합니다.
동시에 그 정책이 유통되는 과정에서 어떻게 왜곡되고 오염되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허위조작정보 유포, 댓글공작, 불법 선동 등 법을 위반하며 선을 넘는 행위가 있다면 반드시 거기에 맞는 책임 역시 물어야 합니다.
결국 제가 이야기하는 문제의 핵심은 특정 사이트 하나가 아닙니다.
'정책과 정보 환경' 문제를 함께 봐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동안 정책 논의에 비해 '정보 환경과 디지털 공론장' 문제는 늘 후순위였습니다. 이런 상황에 AI까지 결합한 시대입니다.
'저비용+고효율'로 허위조작정보와 선동 콘텐츠를 대량 생산하고 확산시킬 수 있게 됐습니다.
이게 제가 이야기하는 '인지전' 시대의 핵심입니다.
과거에는 수십 명, 수백 명이 해야 했던 작업을 이제는 소수의 인원만으로도 충분히 수행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의 인식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어떤 정보 환경 속에서 강화되는지를 보지 못한다면 같은 문제는 앞으로도 계속 반복될 겁니다.
실제로 해외 여러 국가들은 이러한 문제를 단순한 정치 논쟁이나 인터넷 문화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 안보와 민주주의의 지속가능성' 차원에서 다루고 있습니다.
많이 늦었지만 우리 사회 역시 이제는 정책만이 아니라, 그 정책이 전달되고 소비되는 정보 환경까지 함께 고민해야 할 시점이라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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