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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용의 월드코리안 14] 도쿄 법정서 "조선 독립 만세" 외친 일본 여인 가네코 후미코

[정보/소식] 사형선고 전 옥중 결혼...일본 내각 총사퇴 부른 사진 한 장 | 인스티즈


일제강점기 일본 도쿄의 법정에서 "조선 독립 만세"를 외쳐 판검사 등 재판 관계자들을 대경실색하게 만든 일본 여인이 있었다. 천황 부자 암살을 기도한 대역죄 범인 가네코 후미코(金子文子)였다.


같은 혐의로 기소된 동지이자 남편 박열도 판사를 꾸짖고 조롱했지만 당시 그런 불령선인(不逞鮮人)은 수두룩했다. 그러나 충직한 황국신민(皇國臣民)인 일본인이, 그것도 '순종적이어야 할' 여성이 뭇사람이 보는 앞에서 조선의 독립을 주장하고 천황제를 비판한 것은 처음이었다. 방청석에서는 '배신자' 소리가 터져 나오고 곳곳에서 한숨과 탄식이 들려왔다.


1926년 2월 26일 도쿄지방재판소에서 열린 이들 부부의 첫 공판은 전에 볼 수 없었던 풍경이었다. 피고인 박열은 조선 왕조 관복 차림으로 법정에 등장했다. 가네코 후미코는 흰 저고리에 검은 치마를 입었다. 판사가 이름을 묻자 박열은 상대를 조롱하듯 일본어 욕설 '바가야로'와 비슷한 '바쿠야루(박열)'라고 답했고, 가네코는 한국식 발음으로 남편 성을 따서 '박문자'라고 당당히 말했다.


가네코는 "내가 실패한 일에 대해 후회하지 않는다"면서도 "다만 그 실패가 나 자신의 의지에 근거한 실패가 아니었다는 점을 수치스럽게 생각한다"고 심경을 토로했다. "하고 싶은 일을 했다는 기쁨 하나만으로도 나의 모든 손실을 보상받았다고 생각한다. 나는 너희와 싸워 승리를 거둔 것이다"라고 말한 박열과는 사뭇 입장이 달랐으나 일제에 대한 적개심과 하늘을 찌를 듯한 기개는 어금버금했다.


가네코란 일본 여인은 어떻게 식민지 청년과 의기투합해 조선 독립 투쟁에 몸을 던지게 됐을까. 더욱이 자신의 동족이 하늘처럼 떠받드는 천황 일가를 암살할 계획에까지 가담하게 됐을까.


청주 고모집에서 살면서 조선인에 연민 느껴

[정보/소식] 사형선고 전 옥중 결혼...일본 내각 총사퇴 부른 사진 한 장 | 인스티즈

가네코는 1903년 1월 25일 일본 도쿄 근교인 가나가와현 요코하마에서 태어났다. 부모가 정식 결혼을 하지 않은 데다 둘 다 사생활이 문란해 어린 시절을 힘겹게 보냈다. 아버지와 어머니 양쪽 집과 외가 등을 전전하며 천덕꾸러기로 자랐고 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했다.


1912년 가을부터 7년간 충북 청주(현 세종시 부강면)의 고모 집에 맡겨져 하녀나 다름없는 생활을 했다. 그곳에서 일제의 폭정에 신음하던 조선인에게 동질감과 연민을 느꼈다. 1919년 3월에 터진 만세 운동을 보고는 자유를 향한 조선인의 열망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1919년 4월 귀국해 외가에서 지내다가 1년 뒤 독립을 선언했다. 도쿄에서 신문 가판원, 노점상과 행상, 식모살이, 오뎅집 점원 등 닥치는 대로 일하며 세이소쿠(正則)영어학교 등에 다녔다. 당초 온갖 고생을 무릅쓰면서도 고학을 한 목적은 출세를 위해서였으나 책을 읽고 사람들과 사귀면서 생각이 달라졌다.


처음에는 구세군을 통해 기독교를 접했다가 종교는 사람을 속이는 마취제에 지나지 않는다고 여겨 발길을 끊었다. 사회주의에도 관심을 품었지만 변혁이 도래했다 해도 권력 구조가 바뀌지 않는다면 민중은 여전히 권력의 노예가 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 아나키즘에 빠져들었다. 그는 통치 체제나 권력 기구를 불신했고, 일평생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 편에 서서 싸우기로 결심했다. 그는 옥중 수기 '무엇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는가'에서 이렇게 술회했다.


"나를 부유한 가정에 태어나지 않게 하고 가는 곳마다 생활의 모든 범위에서 괴롭힐 만큼 괴롭혀준 나의 모든 운명에 감사한다. 아무런 어려움 없이 컸다면 아마 나는 내가 그렇게도 미워하고 경멸하는 그런 사람들의 사상이나 성격이나 생활을 그대로 받아들여 결국 나 자신을 찾지 못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사상적 동지들을 찾아 교류하다가 조선인 유학생들과도 어울리게 됐다. 1922년 2월 정우영의 하숙방에 들렀다가 조선인 유학생 잡지 '청년조선'의 교정지를 보게 됐다. 그 가운데 ''라는 독특한 제목의 글이 눈에 들어왔다. 당시 허무주의 사상에 사로잡혀 있던 박열의 시였다.


"나는 로소이다/하늘을 보고 짖는/달을 보고 짖는/보잘것없는 나는 로소이다//높은 양반의 가랑이에서/뜨거운 것이 쏟아져 내가 목욕을 할 때/나도 그의 다리에다 뜨거운 줄기를 뿜어대는/나는 로소이다"


가네코는 "가슴의 피가 들끓고 생명이 살아 숨쉬는 황홀경에 빠졌다"고 털어놓을 만큼 격한 끌림을 받았다. 정우영에게 그를 소개해 달라고 졸랐다. 만나자마자 박열의 풍모에 흠뻑 빠졌다. 친구들에게도 "만일 조선에 박열과 같은 열렬한 투사가 30명만 있다면 조선 독립은 당장 이룰 뿐 아니라 조선 민족은 정말로 전 세계를 제패할 수 있을 것"이라고 치켜세웠다.


박열에게 서약서 받은 뒤 계약 동거


[정보/소식] 사형선고 전 옥중 결혼...일본 내각 총사퇴 부른 사진 한 장 | 인스티즈

가네코보다 한 해 먼저 경북 문경에서 태어난 박열은 지방 명문가 후예로 경성고등보통학교(경기고 전신) 재학 시절 3·1운동에 가담했다가 퇴학당하고 일본에 유학해 세이소쿠영어학교를 다닌 엘리트였다. 그러나 가네코를 만날 당시에는 집안이 망해 인력거꾼, 날품팔이 등으로 생계비와 학비를 벌어야 하는 식민지 출신 고학생이어서 가네코보다 처지가 나을 것도 없었다.


가네코는 박열에게 사랑을 고백하고 박열도 화답해 연인 겸 동지가 됐다. 박열에게 "첫째 우린 동지로서 동거한다, 둘째 운동 활동에서는 가네코가 여성이라는 생각을 갖지 않는다, 셋째 한쪽 사상이 타락해 권력자와 손잡는 일이 생기면 공동생활을 끝낸다"라고 적힌 서약서에 서명하게 한 뒤 동거에 들어갔다. 1929년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사르트르와 보부아르의 계약 결혼보다 7년이나 앞섰다.


가네코는 박열과 함께 사회주의자 모임 흑도회(黑濤會)에 가입했다가 흑도회가 노선 투쟁으로 분열되자 이듬해 4월 아나키스트들을 모아 불령사(不逞社)를 조직한 뒤 의열 투쟁을 준비했다. 1923년 11월 황태자 히로히토의 결혼식 때 천황 가족을 폭살할 계획이었다.


박열은 중국에서 파견된 의열단 관계자에게 폭탄을 구해 달라고 부탁하는 한편 천황이 사는 궁성의 우편배달부로 위장 취업해 천황 일가의 동정과 이동 경로를 살폈다. 당시 천황은 요시히토였으나 건강이 나빠져 히로히토가 섭정하고 있었다.


1923년 9월 1일 간토(關東)대지진이 일어나자 조선인이 일본인을 습격하고 우물에 독약을 풀고 다닌다는 괴소문이 퍼져 무고한 조선인이 대거 학살됐다. 일제는 이를 빌미 삼아 조선인, 아나키스트, 사회주의자들을 대거 잡아들였다. 국민의 불만을 다른 곳으로 돌리고 저항 세력을 없애려는 속셈이었다.



박열과 가네코도 불령사 회원들과 함께 9월 3일 체포됐다가 신문 과정에서 폭탄 구입 계획이 드러나 대역죄로 기소됐다. 당시 일본 형법은 천황, 황후, 황태자 등에게 위해를 가하거나 가하려 한 자는 사형에 처하며 1심에서 끝나도록 규정하고 있었다.


일본 정가 뒤흔든 옥중 결혼식 사진


[정보/소식] 사형선고 전 옥중 결혼...일본 내각 총사퇴 부른 사진 한 장 | 인스티즈

박열과 가네코는 당당한 자세로 취조와 재판에 임했다. 천황제의 허구성과 문제점을 폭로하고 조선 독립의 당위성을 주장해 법정 관계자들을 당혹스럽게 만들었다. 두 사람은 사형 선고가 있기 전인 1926년 3월 1일 옥중 결혼을 하고 혼인신고까지 마쳤다.


후세 다쓰지 변호사의 간청도 한몫하긴 했으나 두 사람이 고분고분한 태도를 보이지 않자 재판부가 회유하려고 특별히 허락한 것이다. 가네코가 박열의 품에 안겨 책을 읽는 사진까지 찍었다. 이 사진을 야당인 정우회가 입수해 1926년 8월 언론 등에 공개함으로써 헌정회 내각이 총사퇴하고 판사도 옷을 벗는 등 일본 정국을 뒤흔들었다.


1926년 3월 25일 선고된 사형은 4월 5일 무기로 감형됐다. 일본 검찰이 은사(恩赦)를 신청해 받아들여진 것이다. 가네코는 기만 술책에 항의하며 감형 통지서를 찢어버렸다. 그로부터 석 달여 만인 7월 23일 가네코는 의문의 죽음을 맞았다. 형무소는 그가 창살에 목을 매 자살했다고 발표했으나 타살 의혹이 제기됐다.


형무소 측은 서둘러 시신을 인근 들판에 가매장했다. 후세 변호사가 흑우회 동지들과 함께 시신을 확인했으나 사인을 밝혀내지는 못했다. 화장한 뒤 유골을 박열 고향인 경북 문경시 문경읍 팔영리 주흘산 기슭에 안장했다. 2018년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됐다. 일본인이 독립유공자로 인정된 것은 후세 변호사에 이어 두 번째다.


박열은 22년 2개월간 복역하다가 1945년 10월 27일 석방됐다. 2차대전 이전 단일 사건으로는 일본 최장의 수감 기록이다. 김구의 요청에 따라 윤봉길·이봉창·백정기 삼의사(三義士) 유해 봉환에 앞장서고 재일본조선인거류민단(재일본대한민국민단 전신) 초대 단장을 맡았다. 1949년 영구 귀국했으나 6·25 때 납북된 뒤 1974년 북한에서 별세해 평양 애국열사릉에 묻혔다. 1989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됐다.


100주기 맞아 한일 양국서 재조명 붐


[정보/소식] 사형선고 전 옥중 결혼...일본 내각 총사퇴 부른 사진 한 장 | 인스티즈

박열의사기념사업회는 문경시와 함께 2002년부터 마성면 오천리의 박열 생가 주변을 박열의사기념공원으로 조성했다. 2003년 가네코 묘소를 이곳으로 이장했고 박열 탄생 100주년을 맞는 2012년에 박열의사기념관도 문을 열었다. 2025년에는 부강면에 가네코 후미코 다실(茶室)이 문을 열었다.


그간 이들 부부의 이야기를 담은 소설 '열애', 박열을 중심으로 그린 영화 '박열'과 뮤지컬 '박열' '22년 2개월', 연극 '식민지에서 온 아나키스트', 가네코 전기 만화 '나비' 등이 대중과 만났다. 올해는 가네코 후미코 서거 100주년이다. 지난 2월 28일 일본 도쿄를 비롯한 일본 전역에서 하마노 사치 감독의 영화 '가네코 후미코: 무엇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는가'가 개봉됐다. 같은 이름의 옥중 수기를 토대로 사형 판결에서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 121일간에 초점을 맞췄다


박열의사기념사업회는 가네코후미코선양사업회와 함께 오는 7월 23일 문경문화원에서 가네코 후미코 서거 100주기 기념행사를 개최한다. 기념식과 한일학술회의에 이어 영화 '가네코 후미코'를 상영하며 하마노 감독과의 대화 순서도 마련한다. 이에 앞서 세종시와 문경시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박열-가네코 부부의 항일 정신을 알리는 '나라 사랑 역사 탐방 교실'을 운영하고 있다.


한일 양국의 더블케이엔터테인면트는 2021년 초연된 뮤지컬 '박열'을 6월 10일부터 9월 6일까지 서울 대학로 링크아트센터 드림4관에서 공연하고 있다. 일본 야마나시현, 한국 세종시와 문경시 등을 찾아 가네코의 발자취를 더듬어보는 한일 양국인의 발길도 이어지고 있다.


[정보/소식] 사형선고 전 옥중 결혼...일본 내각 총사퇴 부른 사진 한 장 | 인스티즈

덧붙이는 글 | 참고문헌 : 〈무엇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는가 – 가네코 후미코 옥중 수기> 〈박열 , 불온한 조선인 혁명가> 〈국가보훈부 독립유공자 공훈록>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이희용


https://n.news.naver.com/article/047/0002520790?sid=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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