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랑. 어서오세요-. 문 열리는 소리에 반사적으로 인사를 한 현민이 고개를 들어 익숙한 얼굴과 마주했다. 또 그 아저씨다.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됐나, 싶어 시계를 봤더니 아니나 다를까. 시계 바늘이 10 을 가리키고 있다. 열 시. 벌써 이 주째, 이 아저씨는 어디서 나타나는 건지 열 시만 되면 편의점에 들러 이것저것 뭘 사가지고 간다. 사가는 것들은 그때그때 조금씩 달랐다. 술일 때도 있고, 쥐포나 마른 오징어 같은 안주일 때도 있고, 라면 같은 걸 사갈 때도 있고. 오늘은 과자를 사 간다. 자갈치. 너무나도 아저씨스러운 취향에 현민이 웃음을 참지 못하고 풉 웃자 동민이 고개를 들었다. 현민은 얼른 표정관리를 했다 아, 죄송합니다.
웃어? 손님을 보고, 어? 웃어?
아뇨, 아. 죄송합니다. 죄송해요, 진짜. 1300 원입니다.
요즘 젊은 것들은 이래서 안 돼요. 으른에 대한 공경이 없잖아, 공경이. 뭐라고 궁시렁거리면서도 이천 원 짜리를 내미는 동민을 보며 현민은 얼른 거스름돈을 칠백 원 꺼내면서 흘낏 동민을 바라보았다. 매번 같은 양복 차림이다. 저번에는 셔츠 위에 조끼 같은 걸 입고 왔는데, 요새는 날이 추워져서 그런지 정장을 걸친다. 각이 딱 잡힌 그의 인상착의로 미루어 볼 때 회사원이 분명하다고 현민은 생각했다. 여기, 칠백 원이요. 공손하게 거스름 돈을 내밀었는데 동민은 칠백 원엔 눈길도 안 주고는 계산대를 쭉 둘러본다. 그러다가 대뜸 사탕을 가리켰다. 야, 꼬맹이. 이건 얼마냐.
네?
이거 사탕, 얼마냐고.
추파춥스요? 아, 그거 하나에 이백 원이요.
추파……, 뭐? 추파춥스요. 인상을 구기는 동민을 보며 현민이 추,파,춥,스, 하고 또박또박 말을 해 줬으나 동민은 귀찮다는 듯 손을 휘휘 내저었다. 됐고, 이거 세 개 골라서 줘. 네? 아, 사탕 세 개 고르라고. 육백 원 어치. 현민의 손에서 백 원만 쏙 가져간 동민이 사탕을 고르라는 듯 턱짓을 했다. 아직 상황 파악이 다 되진 않았지만 일단 고르라고 하니까 고갤 갸웃거리며 사탕을 고르는 현민이다. 가만 보자, 어른들은 무슨 맛 좋아하지.
저기, 무슨 맛 좋아하세요? 여기 맛 되게 많거든요. 딸기도 있고, 포도, 초코, 사과…….
예상치 못한 질문에 동민이 하, 하고 웃었다. 난 사탕 안 먹어.
네? 근데… 방금 세 개 사셨잖아요.
아니, 하. 야이씨, 내가 그걸 나 먹으려고 샀겠냐. 이 진짜. 쪼끄만 게. 생각을 좀 해라.
너 먹어. 네? 너 먹으라고! 확 그냥. 주먹을 작게 말아 쥐고 쥐어박는 시늉을 한 동민은 고갤 절레절레 저었다. 수고하고, 간다. 그 말을 마지막으로 동민은 계산대에서 과자만 휙 들고는 그대로 편의점을 나가 버렸다. 고심 끝에 고른 사탕 세 개를 손에 쥔 현민은 동민의 뒷모습을 가만히 보다가 머리를 긁적였다. 어안이 벙벙했다. 그래도 오늘은 말 많이 했네, 사탕도 받고. 조금 전 일을 곱씹어 보다가 현민은 기분 좋은 듯 헤헤, 웃곤 사탕을 하나 까서 입에 넣었다. 맛있다, 달고.
사실 처음부터 현민이 동민에게 관심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처음 동민이 편의점에 들어왔을 때, 그는 상당히 취한 상태였는데 그 모습을 보며 현민은 정말 말 그대로 ‘흠칫’했다. 술 먹고 가게에서 난동을 부릴 관상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현민은 혹시라도 그가 난동을 부리면 대처할 수 있도록 전화기를 꼭 붙잡고 있었다. 그러나 생각한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동민은 머리가 아픈지 인상을 쓰고는 곧장 냉장고로 가서 숙취 음료를 꺼내 카운터에 내려다 놓았다. 이, 이천 원입니다. 긴장을 놓지 않고 동민을 쳐다보던 현민은 이천 원을 받아 계산대에 넣으면서 곁눈질로 동민을 훔쳐봤다. 그의 목소리를 처음 들은 것은 그때였다.
수고하네, 늦었는데.
……네?
되물으며 고개를 들었을 때 동민은 이미 가게 문을 열고 나가는 중이었다. 그때도 현민은 지금처럼 그의 뒷모습을 눈으로 쫓으며 머쓱하게 뒷목을 긁적였었다. 속으로 이상한 사람 취급을 했던 게 미안해지려고 했다. 목소리가, 되게 좋네. 현민은 어깨를 으쓱했다.
그 뒤로도 동민은 계속 열 시만 되면 편의점을 찾았다. 술에 취하지 않았을 때의 동민은 흐트러진 모습을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각 잡힌 사람이었다. 게다가 그 나이대의 다른 어른들과는 다르게 한참 어린 자기에게도 예의 바르게 대해 주고, 그냥 알 수 없는 뭔가가 있는 사람인 것처럼 보여서 현민은 어느 순간부터 그를 주시하기 시작했다. 특히 안면을 튼 이후로 한마디 두마디 말을 나누게 되고, 서로의 안부를 묻게 된 다음부터는 더 그랬다. 어느새 현민은 열 시를 기다리고 있는 자기 자신을 발견했다. 이상하다, 내가 왜 이러지. 그러면서도 눈은 계속 시계를 쳐다봤다. 아홉 시, 오십오 분. 아저씨 오실 때가 됐는데…….
딸랑. 왔다! 문 여는 소리에 자리에서 일어난 현민은 동민을 알아보곤 활짝 웃었다. 아, 너무 기다린 티냈나. 시크하게 한 손을 들어 인사하는 동민을 보며 현민은 흠흠, 하고 표정을 관리한다. 오늘은 맥주를 사려는지 동민이 냉장고에 가서 작은 맥주 캔을 하나 꺼낸다. 현민은 내심 술을 마시다가 속이 상하는 건 아닐까 걱정이 됐다. 꼬맹이, 뭘 그렇게 보냐. 어느새 다가온 동민이 캔을 카운터에 올려다 놓는다. 네? 아, 아니에요.
어제 사탕은 잘 먹었냐?
네? 아, 네! 덕분에요.
기분 좋게 웃으며 고갤 든 순간 귀엽다는 듯이 웃던 동민과 눈이 딱 마주친 현민은 깜짝 놀라 다시 고개를 숙였다. 이상하게 얼굴이 화끈거렸다. 아, 그, 천 칠백 원입니다. 이천원 받았습니다. 오늘따라 쿵쿵거리는 심장이 이상하다. 이 감정은 뭐지. 현민은 심호흡을 하며 겨우 거스름 돈 삼백 원을 동민에게 건네주었다. 하지만 도저히 눈을 마주치지는 못했다. 그런 현민을 바라보던 동민은 속으로 허, 하고 웃었다. 쪼끄만 게.
간다, 오늘도 수고하고.
네, 들어가세요.
꾸벅, 인사를 하는 모습을 보고 가게 문을 나서던 동민의 발걸음이 멈칫했다. 끝까지 눈을 안 마주치겠다 이건가. 조금 괘씸한 생각이 든다. 한편 왜 문 닫히는 소리가 안 나지? 하며 고갤 들던 현민은 다시 동민과 허공에서 눈이 마주쳤다. 동민은 씩 웃었다.
꼬맹이, 내일 또 보자.
아, K.O. 완패다. 현민은 딸랑거리는 차임벨 소리를 들으며 자신이 저 말도 안 되는 아저씨에게 반했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 밑에 소재 달라고 한 쓰닌데 그 중에서 장오를 제일 먼저 가지고 왔어 왜냐면 장오 좋으니까.. ㅠ 아재 연상미 넘치니까!!! 담엔 또 뭘로 올까 고민 좀 해보겠음 연휴니까 글 달릴것 그럼 안뇽 ㅎ_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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