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흐음…….”
달이 뜬 지 한참이 지났다. 꽤 시간이 늦은 밤이었음에도 요의 침소에는 불이 환했다. 무슨 일인가 들여다 보니, 책상 앞에 앉아 웬 종이 한 장을 들고 빤히 바라 보고 있는 것이었다.
그 종이가 무엇인고 하니, 한참 전 아침에 해수가 요에게 준 종이였다. 황자님! 그 지저귀는 듯한 목소리로 저를 부르며 헐레벌떡 달려와 숨을 몰아쉬던 해수가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발그레 떠오른 복숭아빛 볼이 그리도 어여뻐 매만져주고팠다. 그 모습을 떠올리던 요의 입가가 슬몃 올라갔다.
무슨 일이냐. 그 물음에 해수는 그제야 숨을 고르다 말고 헤헤 웃으며 요의 손에 이상한 모양새로 접혀진 종이를 쥐여주었다. 그것이 '쪽지'의 형태라는 것을, 요는 아마도 영영 모를 것이다.
“이것이 무었이냐.”
“황자님한테 주는 거에요!”
그리고는 폴짝 뛰어 종종걸음을 치며 달려가는 것이었다. 그 모습이 귀여워 지켜보던 요는 손으로 입가를 가리고는 낮게 웃음을 흘렸다.
문제는, 겨우내 펴본 그 종이의 내용이 무언지 영 모르겠다는 것이다. 종이에는 단 한 글자만이 적혀 있었다. 아니, 요로서는 이것이 '글자'인지도 의아할 따름이었다. 복숭아를 뒤집어 놓은 듯한 모양새.
「♡」
이리 기우뚱, 저리 기우뚱. 종이를 뒤집어 보기도 하고, 고개를 기울여 보기도 하고. 궁금증에 못 이겨 슬쩍 다른 황자들에게 비슷한 모양을 그려 물어봤지만 모두들 모른다는 말 이외에는 나오질 않았다.
“누구에게 받은 것이길래 이리 신경을 쓰십니까?”
“…… 해수에게 받았다.”
“해수요? 그럼 저번에 여덟째 형님에게 주었던 것과 비슷한 것이 아닐까요?”
은의 말에 일리가 있다 생각했지만 그러면 무엇 할까, 해석할 수가 없는 것을. 그 의미불명의 답시를 해석했던 소조차도 모르는 눈치이니 더욱 답답할 따름이었다. 황자들끼리 돌려보고 또 돌려보았으나 끝내 답은 나오지를 않았다.
그리하여 지금, 이 늦은 시간까지 그 종이만 빤히 들여다보고 있는 것이었다. 결국, 요는 그 의미불명의 글자를 해석하지 못 한 채 잠자리에 들고 말았다.
*
날이 밝자마자 요가 한 일은 지몽을 찾아가는 것이었다. 이런저런 잡다한 지식을 알고 있는 지몽이라면 이 의미불명의 글자를 알지도 모르리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조급함을 숨기려 했지만 빨라지는 걸음은 어쩔 수가 없었다. 천문대로 가는 길, 마침 그 쪽에서 오던 지몽에 요의 눈빛에 반가움이 스쳤다.
“어이쿠, 황자님 아니십니까! 천문대로 가는 길이셨습니까?”
“아니, 그저 지나가던 길이었다. ……아, 마침, 물어 볼 것이 있다.”
“예? 물어볼 것이요? 그것이 무엇입니까?”
“이 글자가 무엇인지 알겠느냐.”
종이를 받아 펼쳐 본 지몽의 얼굴빛이 미묘하게 변했다. 그 미세한 변화를 감지한 요의 마음속에 묘한 기대감이 일었다.
“이거, 누구에게 받으셨습니까?”
“…우연히, 얻은 것이다.”
지몽의 표정이 예사롭지 않았다. 제 대답에 지몽은 오호, 하고 슬몃 입꼬리를 끌어 올리며 저를 바라보는 것이었다. 그 눈빛에 내심 움찔한 요였으나, 이내 무뚝뚝한 표정을 유지했다. 무슨 뜻이기에 그러느냐.
“글쎄요, 저는 잘 모르겠군요.”
이어져 오는 대답에 실망을 감출 수 없었는지, 요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허나 모른다는데 어쩌겠는가. 아쉬움을 숨긴 채 애매한 웃음을 짓고 있는 지몽을 뒤로했다.
*
해수를 만난 것은 점심 때 즈음이었다. 연꽃이 가득 핀 연못 위의 다리를 총총 걸어가는 해수의 뒷모습을 본 요의 얼굴에 옅은 미소가 번졌다. 그것도 잠시, 이내 고개를 흔들어 미소를 떨쳐낸 요가 천천히 그녀의 뒤를 쫓았다.
“어? 황자님?”
저를 발견한 해수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내 저를 보고 활짝 웃는 얼굴에 요의 마음 한켠이 설레어왔다. 뒷짐을 진 채 그녀 앞에 선 요가 간단한 안부를 물었다. 지난 밤, 잠은 잘 잤느냐. 몸은 괜찮으냐. 의례적인 대화가 오가고 잠깐의 정적이 찾아왔다. 정적에 어쩔 줄을 몰라하며 뺨을 긁적이는 해수를 바라보며 머뭇거리던 요가 품 속에서 곱게 접힌 종이를 꺼내 들었다.
“이거,”
“엇.”
“아무리 봐도 무슨 뜻인지 모르겠더구나.”
'뜻을 알려달라'는 말을 돌려 말하는 것임을, 해수도 모를 리가 없었다. 둘 사이에 의미심장한 기류가 흘렀다. 곧이어 해수의 얼굴이 발갛게 달아올랐다. 저, 음, 그게…. 말꼬리를 흐리는 해수를, 요는 느긋하게 기다렸다. 어쩔 줄을 몰라하는 표정. 그만큼 이 글자의 뜻이 부끄러운 것일까, 하는 생각이 스쳤다. 두 손을 꼼지락거리며 한참이나 머뭇거리던 해수가 슬쩍 요를 올려다보며 손짓했다.
“가까이 와 보세요.”
그 말에 고개를 기울이면서도 묵묵히 허리를 숙여 귀를 가져다대는 요였다. 이내 무언가를 속삭인 해수는 그대로 의미 모를 짧은 비명을 지르며 토도도 달아났다. 치맛자락을 꼭 쥐고 달려가는 해수의 뒷모습에 요가 웃음을 터뜨렸다. 그녀를 바라보는 눈빛이 한없이 달았다.
「그게요…….」
「?」
「……사랑한다는 뜻이에요!」
***
소재제공해준 뾰 고마워!!
아까 와서 소해 망상글 쪘던 뾰 죽지도 않고 요해로 왔네..ㅇ<-<
밤중에 퇴고도 없이 써서 얼마나 엉망진창에 급전개일지 감이 안 잡힌다ㅇ▽ㅠ
다들 망상글 많이많이 쪄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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