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슬레이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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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긴쿠로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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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데이사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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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모마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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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호장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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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사야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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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더시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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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타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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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쥬알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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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네이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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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이우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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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시오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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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팬텀메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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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s시미야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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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츠하나] |
노래 Amanda Seyfried - Thank you for the music 노래는 그냥 닝들들으라구! 짱예 아만다 언니가 부름ㅎㅅㅎ 일단 와타시의 마츠하나 그림은 나루토 짤방을 트레이싱 한 것임일 밝힙니다. 음 솔직히 짤방 트레이싱 한 건 정말 많았는데 막상 스캔해보고 나니 살아남은 건 얘밖에 없어서..^^ 닝들.. 스캔은 정말 적나라한 거야(상처) 스캔한테 상처받음 일단 진짴ㅋㅋ 내가 무슨 자신감으로 합작 신청했는지 아직도 의문이고ㅋㅋㅋㅋ 글이라도 클릭해 주신 녀러분께 그저 감사드려요.. 괜찮아 내가 금손닝들을 더욱 빛나게 해준거닌까☆ 내가 타블렛이 없어서ㅠㅠㅠ 다음 합작은 꼭 타블렛 사가지고 신청해야겠다 그래도 나름대로 정성을 다해 그림판으로 세이죠 유니폼 색칠했엌ㅋㅋㅋㅋ흠ㅁ흠 그리고 총대 매준 닝 정말 고맙고 수고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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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수연화] |
밑은 민수연화 제출해준 닝이 그냥 끝내기 뭐해서 함께 제출해준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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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립] 너의 꽃만이 나의 세계를 넓혀주었다 |
청립/아오카사 - 너의 꽃만이 나의 세계를 넓혀주었다 ZE au (언령사와 카미) 제가 연성해온 ZE 세계관은 원작과는 많이 다르기 때문에 본문 들어가기 전에 조금 간추려놓았습니다 일 점막접촉이 너무 야해서 단순한 입맞춤으로도 상처가 치료 되도록 쓰고 있습니다. 이 언령사는 언령사의 기를 타고있는 집안에서만 가끔씩 태어나는 존재입니다 하지만 언령사의 기는 기본적으로 저주이기 때문에 아이를 품은 어머니께서는 저주를 이기시지 못하고 아이를 낳으신 후 돌아가십니다. 때문에 아무리 언령사의 집안이라도 언령사를 꺼리게 됩니다 그래서 언령사로 태어난 아이는 집안사람들의 비난과 힐난을 품고 인형사의 집으로 직행합니다. 언령사로 태어난 아이는 아버지가 아닌 어머니의 성을 물려받습니다. 세간에서의 언령사를 향한 시선은 곱지만은 않습니다. 삼 언령사는 성인이 된 후 자신의 존재 의의를 알게 됩니다. 의뢰를 받고 다른 이들에게 저주를 내리는 것이 존재 의의입니다 그 전 까지는 학교에 가지 않고 인형사의 넓은 터 안에서만 생활합니다. 개인 취향 가득 담아 터가 전통가옥이라면 참 좋습니다. 사 인형사의 역할은 카미를 만드는 것과 언령사의 교육과 언령사에게 적절한 카미를 붙여주는 것입니다 또한 인형사는 영생합니다. 카미는 자신의 언령사가 태어났을 때부터 그 곁에서 언령사의 교육을 돕습니다. 단순하게 얘기하면 자신의 언령사와 정을 붙이기 위함이에요 사 카미는 인형사인 니지무라에 의해 만들어집니다. 니지무라가 가장 처음 만든 카미는 총 네 개(하이자키, 하나미야, 카사마츠, 후리하타)가 있습니다(하이자키는 타고난 성격때문에 언령사가 있었던 적이 없어요). 처음 만들어졌을 때는 종이상태입니다 후에 인형사가 자신의 집에 온 아기인 언령사를 보고 그 언령사에게 적합한 카미의 봉인을 해제키십니다. 인간의 형태가 된 카미는 자신의 언령사 곁에서 그를 보좌합니다. 개인적으로 카미가 우는 날은 카미가 죽는 날이라는 설정을 좋아합니다. 오 인형사인 니지무라가 받아들인 최초의 언령사(키요시, 키세, 레오)들이 아주 가끔 나오는 데요 모두 고인입니다 몇 백 년 전 사람들이에요 언령사가 있는 카미 혹은 최초의 카미 외에 다른 카미들은 모두 얌전히 종이에 봉인되어 있습니다. 육 청립이지만 황립과 청앵의 요소도 있습니다. 카사마츠가 보수적이고 나쁜 포지션입니다 불쾌한 것이 있으시다면 정말 죄송합니다 칠 장르가 장르이다 보니 이 세계관에선 남자들끼리의 사랑 사귐이 자연스러울걸..요...? **** 나른한 햇살이 창문 틈새 사이로 들어와 너의 얼굴에 물결친다 잠든 너의 모습은 아름다웠고 너와 어울리는 산뜻한 날에 너는 나의 곁을 떠났다 **** 1월의 여린 끝자락, 날씨와 어울리지 않는 어색한 비가 기와지붕을 타고 풀 섞인 마당에 소리 없이 쏟아진다. 떨어지는 비의 뿌리에서 눈을 떼지 못하던 니지무라가 카사마츠에게 조심스레 묻는다. [아오미네는 여전해?] 그의 질문에 정갈하게 손질된 잔디가 한낱 잡초로 보이는 듯하다. [여전해] 여전하다 아오미네는 여전히 카사마츠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니지무라는 허공에 눈동자를 굴리다 카사마츠의 처진 어깨를 두드리며 언짢은 말을 던졌다 [자신의 존재를 안 언령사가 카미를 배척하는 건 흔한 얘기니까 너무 마음 쓰지마 아오미네는 아직 어리니까] 카사마츠가 니지무라에 의해 만들어지고(근래의 카미들은 태어난다는 말을 자주 쓴다고 한다) 약 400년간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가장 처음 만들어진 4개의 카미들과 니지무라는 꽤나 돈독한 사이가 되었다. 오랜 친우의 호의는 무척 고맙다만 니지무라 또한 여전히 힘 조절을 못하기에 카사마츠는 그가 아프게 쳐대던 어깨를 감싸 안으며 피신하다시피 일어났다. [얘기라도 고마워 할 일 많잖아 이제 그만 쉬고 가서 일이나 해] 카사마츠는 니지무라에게 인사 아닌 핀잔을 남기고 그에게서 발걸음을 돌린다. 가장 꽃다운 나이인 20살 생각도 몸도 거의 완성된 나이에 청소년이었던 아이들은 교복에 묻은 때를 털어내고 사회로 나아간다. 경험을 쌓아가며 대인관계를 넓히고 복잡한 사회에 물들어 갈 즈음 이 곳에 있는 언령사의 피를 타고난 아이들은 성인이 되기 전까지 이 좁은 곳에서 갇혀 지내다 생각도 몸도 거의 완성된 나이부터 타인에게 저주를 내리는 법을 배운다. 카미는 언령사를 위해 태어난 존재이다 그렇기 때문에 어리기만 하던 아이가 자신이 언령사임을 알게 된 후 슬럼프를 겪을 때 가장 가까운 곳에서 그들을 다독이는 것 역시 카미의 일이다 하지만 카사마츠는 그런 것에 대해 영 서툴렀다 그는 오래 전 자신의 첫 연령사인 키세 료타를 떠나보낸 후 약 400년간 다른 언령사를 거부해왔다 최초로 만들어진 네 개의 카미 중 400년이라는 긴 시간동안 여러 언령사를 거쳐 온 카미는 후리하타 뿐이다 또 자신들 이 후 만들어진 카미들 역시 적지 않은 삶을 언령사들과 살아왔기 때문에 이러한 일로 언령사에게 어려움을 겪는 것은 자신뿐이리라 키세 또한 그가 성인이 되어 자신의 삶을 인정하고 의뢰를 받아들인 후 만났기 때문에 현재의 상황은 당황스럽고 이해하기 어려우며 슬프기 마련이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걷다 도착한 곳은 아오미네의 방문 앞 이었다 20년을 하루도 빠짐없이 다니다보니 늘 습관처럼 찾게 된 곳 이었다 [아오미네, 나야 들어갈게] 노크도 필요 없이 문을 조금 열어 모습만 보여도 반겨주던 아오미네는 지난 2주간 소리도 없이 나타나면 쌀쌀한 태도를 감추지 않았다 [무슨 일이냐] [언제는 용건이 있다고 찾아왔어?] 차갑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찌르는 질문에 최대한 다정한 목소리로 답해본다 [뭐 또 언령사니 뭐라니 하라는 거겠지 다 필요 없으니까 꺼져] 말 한마디 한마디가 가슴을 저리게 만든다. 하지만 다른 친구들이 먼저 앞서나간 길에 아오미네만 홀로 남겨둘 수는 없다 [운명은 어쩔 수 없는 거야 언제까지 그렇게 피할 생각이야? 현실을 직시해] 떨리는 목소리를 최대한 감추며 말로써 뜻을 전한다. 카사마츠의 말을 가만히 듣던 아오미네는 삐딱하게 앉아있던 자리에서 일어나 카사마츠의 손목을 잡아 비틀었다 [뭐하는 짓이야? 이거 안 놔?!] 그대로 손목을 잡고 카사마츠가 겨우 따라갈 정도의 빠른 속도로 걸어가 방문을 거칠게 연다. [걸어봐] 비가 세차게 내리는 바깥을 가리키며 여전히 차가운 어조로 말한다. [저기서 걸어보라고] 두려움에 가슴이 크게 뛰기 시작했다 [운명은 어쩔 수 없으니 현실을 직시하라며] 물에 노출되면 나는, [종이 주제에 가르치려 들지 마] 아오미네는 카사마츠의 손목을 밀쳐내듯이 놓고 다시 방 안으로 들어갔다 허무한 마음을 숨기기 위해 아무도 없는 복도에서 소리죽여 웃어보고 뒤를 돌아 걸어간다. 조금이라도 더 밝은 곳에 느릿느릿한 걸음으로 향한다. 지난 20년 간 매일 아침 아오미네를 만날 생각에 늘 가슴이 벅차오르는 것 또한 습관이 되었다 오늘도 결국 아오미네가 이토록 모질게 굴 줄 알아도 그 마음만은 변할 줄 몰랐다 400년 간 모든 이를 배척하던 카사마츠가 처음으로 마음을 연 상대이고 어리던 아오미네는 카사마츠의 쓸쓸한 마음을 채워준 자신의 언령사이다 아오미네를 위해서라면 찢어져도 될 만큼 그를 아끼며 사랑한다. 카미에게 언령사란 그런 존재이다 아오미네가 계속해서 언령사임을 부정한다면 카사마츠 역시 쓸모없는 존재가 된다. 종이로 돌아가는 것보다 그에게 필요 없는 존재가 되는 것이 더 두려웠다 어차피 니지무라라면 카사마츠를 다시 종이로 돌려보내진 않겠지만 처진 기분에 발을 질질 끌며 걷던 카사마츠는 밝은 목소리에 뒤를 돌아본다 [카사마츠 씨!] 카사마츠를 돌아보게 한 이는 이번 년도에 성인이 되어 언령사에 관련된 교육을 받고 있는 미도리마와 그의 카미인 타카오였다. [타카오 근처에 니지무라가 있어 조용히 하는 게 좋아] [혼나지 않도록 조용히 해야겠네요! 카사마츠 씨는 왜 이렇게 기운 없으세요? 혹시 아오미네 그 자식이 또 뭐라고 했나요?!] 무척이나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묻는다. 티가 날 정도로 처져있었구나 자신의 감정조차 제대로 제어하지 못하는 주제에 한창 혼란스러운 시기를 거치고 있는 이에게 함부로 말을 해버렸다 [무례하다는 것이다 타카오 웃어른에게 함부로 말씀을 올리면 안 된다는 것이다] [죄송합니다!] 아오미네와 내가 여전한 것처럼 둘 역시 여전하다 [아냐 나를 어른으로 생각할 필요 없어 딱히 나이를 먹는 것도 아니니깐 그보다 미도리마 요즘 너무 늦게까지 공부하던데 배우려는 의지는 좋지만 건강에 이상 끼치지 않도록 조심해] [이번에는 반드시 언령사로써 아카시에게 패배를 가르쳐 줄 것입니다. 이 정도는 아직 시작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신쨩이 아프면 내가 치료해줄 거니까요~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저 이래 뵈도 좋은 카미거든요!] 미도리마와 타카오는 언령사가 성인이 되고 난 후에 보이는 가장 좋은 케이스이다 언령사인 미도리마의 자신에 대한 빠른 이해과 타고난 재능, 카미인 타카오가 언령사에 가지는 깊은 신뢰와 인내심으로 인해 이번 년도에 성인이 된 언령사들 중 가장 먼저 교육을 받기 시작했다 물론 그 다음으로 교육을 받기 시작한 아카시가 미도리마의 진도와 성적을 동시에 앞질렀지만 [그렇게까지 말한다면야 어쩔 수 없네. 다음 평가 결과 기대할게] 오늘도 다정해 보이는 둘의 뒷모습을 쳐다보며 올 해 성인이 된 언령사들의 태도를 생각해본다. 다른 이들은 몰라도 미도리마와 타카오에 대한 생각은 늘 똑같다 '가장 이상적인 언령사와 카미의 관계' 400년 전의 키세와 카사마츠의 관계였다 누구보다 서로를 믿었으며 서로를 사랑했고 서로를 위하였다 그 시절 키세는 카사마츠라는 좁은 세상에 가득 찬 이였다 아니 그야말로 카사마츠의 세계였지 않을까 비록 30년 이라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보다 더 행복할 수는 없었다고 현재에 와서도 그런 생각을 하지만 --- 뭐하는 짓일까 나 진짜 더럽잖아 다른 언령사를 받아들이기로 결심해놓고 아직까지 400년 전 사람에게 얽매여있는 자신이 한심해진다 400년간의 괴로움을 빚어주듯 아오미네를 만난 후에 마주치게 된 행복한 일상은 감히 헤아릴 수가 없었다. 처음 이 곳에 겨우 눈을 뜬 아오미네가 왔을 때 니지무라는 카사마츠의 품에 아오미네를 안겨주며 때가 되었다고 말했다 [너는 내가 만든 카미 중 아마 가장 훌륭한 카미가 아닐까 싶어 강한 기를 가진 언령사에게는 그에 걸맞은 카미가 함께 해주었으면 해] 그리고 이제 슬슬 일어설 때가 되었잖아 마지막 말이 머릿속에서 뱅뱅 돈다. 나는 여태까지 여느 어린 아이들처럼 주저앉아 울고 있었을 뿐이었나 [이름은?] 니지무라는 순순히 아이를 받아들이는 카사마츠의 태도에 의외라는 듯 입술을 삐죽이더니 곧 작게 웃으며 대답해주었다 [다이키] 카사마츠를 누구보다 눈부시게 비춰주길 바라면서 아주 조금 마음을 열었을 뿐인데도 아오미네는 카사마츠에게 늘 소소한 행복을 가져다주었다 가장 먼저 입에 담은 말은 [유키]였고 이른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가장 먼저 찾는 것 또한 카사마츠였다 걸을 수 있을 나이가 됐을 때 그의 목적지는 늘 카사마츠가 있는 곳이었고 뛰어놀 나이가 됐을 때는 카사마츠와 손 잡고 간 니지무라 소유의 뒷산에 펼쳐진 들판이 마음에 들었는지 하루 종일 그 곳에서 뒹굴거렸다 그리고 그리운 그 날, 카사마츠는 아오미네에게 처음으로 선물을 받았다 [유키쨩, 꽃!] 어린 아이의 팔팔함에 따라가지 못해 가만히 나무 그늘 밑에 앉아있으니 곧 자랑스러운 얼굴로 이름도 모를 야생화를 꺾어와 내민다. 카사마츠는 서서 자신에게 꽃을 내미는 아오미네의 얼굴을 마주보기 위해 고개를 드니 그의 작은 어깨 뒤로 파란 하늘이 펼쳐져 있는 것이 보였다 오후의 아름다운 하늘에 너무나도 푸르른 하늘에 그보다 더 사랑스런 아오미네의 눈동자와 그 머리칼에 너무나 빛나는 그의 모습에 벅차올라 아오미네가 손수 꽃을 쥐어줄 때까지 조금도 움직이지 못하였다 그 날의 감동을 살아평생 잊지 못하리라 비가 그쳐 맑아진 하늘을 올려다보며 오래 전 보았던, 아직까지도 기억하는 잔잔하던 하늘을 떠올려본다 과거의 감동에 젖어 행복에 물들어갈 즈음 익숙한 목소리에 퍼뜩 정신이 돌아온다. [몇 백 년 전 상상이라도 하는 거야? 굉장히 웃긴 표정인데] 하나미야 마코토, 니지무라가 만든 최초의 카미 중 하나이고 400년 전 카사마츠와 마찬가지로 처음 언령사를 만나 서툰 관계를 피워가던 카미이다 [상상은 무슨, 누구처럼 과거에 사로잡혀있진 않아] 과거에 사로잡혀있지 않다. 20년 전까지만 해도 한 사람만을 찾던 내게 어울리는 말은 분명 아니었다. [너 말이야 키세가 죽은 후에 따라 죽을 것처럼 굴더니 결국 다른 언령사에게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잖아?] 하지만 그 이상 과거에 찢어져 있기엔 삶과 같은 것을 가져다준 이에게 걱정만 끼칠 뿐 이었다 [니지무라를 위해 카미가 할 수 있는 건 우리를 필요로 하는 언령사의 카미가 되는 것 밖에 없어 너도 잘 알고 있을 텐데 하나미야] [..지조가 없어 카사마츠] 하나미야는 카사마츠를 마주보던 시선을 거두고 뒤로 돌아서서, 아마 키요시의 묘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지금도 너를 필요로 하는 언령사 따윈 없잖아] 그 말만을 남기고 **** 지금 머릿속에 생각나는 단어는 욕 밖에 없다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 아오미네는 멀쩡한 침대를 놔두고 괜히 딱딱한 맨바닥에 누워 몇 번째일지 모를 후회 가득한 한숨만을 내쉬고 있다. 속으로는 끝없이 욕을 되뇌면서 현실을 직시하라는 카사마츠의 말이 마치 자신의 감정을 버리라는 말 같아 흥분해버렸다. 결국 그에게 큰 상처를 주고 말았다 어디 그 뿐 이었나 지난 며칠간을 조금만 돌이켜보아도 카사마츠가 지금 당장 자신을 놓아도 충분할 행동을 여러 번 반복해왔다 하지만 10년을 넘게 짝사랑 해 온 이가 그저 종이이고 자신은 그와 함께 타인에게 저주를 내리며 살아야 한다니 성인이 되자마자 카사마츠와 함께 이 좁은 곳에서 독립할 생각으로 가득 차 있던 아오미네에겐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었다. 어쩐지 카사마츠의 얼굴이 기억나는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변한 점이라곤 조금도 없었다. 생긴 건 10대 중후반 같아 동안인 줄로만 알고 있었는데.. 사랑에 나이 차이는 상관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10살 차이든 20살 차이든 무조건 밀어붙이고 볼 심산이었다. 하지만 알고 보니 자신과는 400살은 넘게 차이난다 아니 어떻게 보면 살아있는 것조차 아니다 아오미네에게 있어 카사마츠는 자신이 태어날 적엔 부모였고 뛰놀던 시절엔 친구였고 앞으로도 늘 기대고 싶은, 기대 주었으면 하는 이였다. 그런데 언령사는 의뢰를 받아 지나가는 것들에게 저주를 내리는 일이 주업 이란다 참나 저주의 대가는 저주의 크기에 따른 크고 작은 상처와 출혈 카미는 언령사와의 접촉으로 그 상처를 치료해준다 자신은 카사마츠와 의무적인 애정표현을 하고 싶은 것이 아니었다. 아니 의무적이라면 애정표현조차 아니다! 무엇보다 자신이 언령사임을 알게 된 날 우울한 마음으로 방으로 돌아가던 중 우연히 하이자키와 후리하타의 대화를 듣게 된 것이 아오미네가 요 며칠간 카사마츠에게 떨떠름해진 이유였다. [아오미네는 그렇다 쳐도 카사마츠 씨는 괜찮을까요?] [괜찮고 말고가 어딨어 언령사가 생겼는데 안 기쁜 카미가 있겠냐. 나 빼고] [하지만.. 은연중에 아오미네와 키세 씨를 비교하기도 한 것 같고.. 카사마츠 씨가 키세 씨보다 아니 그만큼 좋아할 만한 사람도 없을 거 같기도 하고..] 꿈꾸던 세계가 발끝부터 무너진다. 갑작스레 느껴지는 울렁거림에 몸이 부유하는 듯 하는 느낌도 든다. [그렇긴 하지 근데 니 앞가림이나 잘해라 아카시 그 새끼 어릴 적부터 자기 마음대로 안 되면 애들 앞머리 자르고 다녔잖아 그 때 마다 겨우 말리긴 했지만 이젠 성인이니까 너도 힘들 수 있어] [하하 그래서 저는 미리 자를까 생각 중이에요] 들려오는 시답잖은 수다들을 뒤로 하고 도망치듯이 뛰었다 먹먹해진 마음을 가라앉히려 노력조차 안하고 그대로 방으로 들어가 침대에 누워 베개에 얼굴을 묻고 다시는 흘리지 않을 눈물을 조금 흘려본다 그 때 사랑하지만 지금은 보고 싶지 않은 당신이 평소보다 훨씬 조심스럽게 방문을 열고 들어온다. 별 같지도 않은 소리를 듣고 온 후에 해주는 최대한의 배려겠지 [저 아오미네? 나야 들어갈게] 여전히 다정한 목소리에 꽉 막혀 나갈 곳 없던 먹물이 나가는 느낌이다 하지만 곧 가슴이 아려온다 [얘기는 들었어? 괜찮아?] 아오미네는 카사마츠를 쳐다보지 않고 여전히 베게에 얼굴을 짓누른 채 일부러 퉁명스레 대했다 [앞으로 다른 새끼들한테 엿 먹여야 되니 교육 받으라는 말? 잘 듣고 왔지 니가 보기엔 괜찮아 보이냐?] 말을 뱉고 나서 바로 후회했다 화풀이할 대상이 당신이어서는 안 되는데 카사마츠는 한참을 뜸들이다 침대에 몸을 뉜 아오미네에게 다가가며 겨우 입을 열었다 [앞으로 해야 할 일들에 대해 실망했을 수도 있어 남들과는 전혀 다른 삶이니까 많이 화가 날거야 알고 있어 누구나 그래 많이 슬플 거야] 카사마츠는 침대 가에 걸터앉아 아오미네의 머리를 살살 쓰다듬으며 조금 망설이다가 말을 이었다 [나는 네 카미니까] 그 뒤로 계속 얘기가 이어졌지만 들리지 않았다 귀가 막히는 느낌이었다. 나의 카미 다른 이를 사랑하는 당신이 진정 나의 카미란 말인가 그런 생각을 하고나니 주체할 수 없이 화가 나기 시작했다 애초에 당신과 나의 관계가 언령사와 카미의 관계 밖에 되지 않는다고 선을 긋는 것만 같았다 [..테니까 앞으로] [있지 카사마츠 씨] [어?] [자고 싶어서 그런데 나가줘 피곤해] 곧 머리에 올려져있던 손이 떨어지고 잘 자라는 말과 함께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그 날을 기점으로 누구보다 가까웠던 우리는 서서히 멀어지기 시작했다 아마 나는 그 날을 후회하고 있고 지금 당장도 자신을, 당신을 비난하고 있다 기억도 안 나는 어린 시절, 부모에게서 버림받았을 때의 느낌을 아마 지금 받고 있을까 여전히 맨바닥에 누운 채 한숨을 쉬고 있으니 누군가 문을 부술 기세로 열어 재낀다. 문을 연 쪽을 눈동자만 굴려 보니 하이자키가 불만 가득한 표정으로 서있다 [망할 간구로, 니지무라 씨 호출] 저것은 늘 나를 보면 무슨 상종하기 싫은 인간을 본 것처럼 제 방에 굴러다니는 휴지조각마냥 얼굴이 구겨져있다 하이자키는 지지 않겠다는 듯이 야려오던 눈을 거두고 문을 거칠게 닫는다. 저것은 늘 관심이 부족한가보다 머리가 아파오기 시작했지만 니지무라의 호출을 거부하기라도 한다면 알몸신세로 쫓겨날 수도 있기 때문에 차가운 바닥을 딛고 일어나 큰 소리를 내며 닫혔던 문을 연다. 축축하게 내리던 비는 그치고 말간 날씨만이 아오미네를 반겨준다 불어오는 차가운 바람과는 반대되는 따뜻한 햇볕은 카사마츠와의 추억을 되새겨 주는 듯하였다 당신의 말마따나 어리광은 그만 부려야겠지 잠깐의 어른 같은 생각만으로 추슬러지기 시작한 감정은 차차 정리 될 것이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니지무라의 호출로 그의 방에 도착한 아오미네는 그의 기에 눌려 사랑하는 카사마츠를 아주 잠시 잊을 정도로 겁에 질렸다 --- ..맞는다! 오늘은 꼭 맞는다! 분명 때릴 거야 떨리는 손을 감추기 위해 애쓰며 니지무라의 앞에 마련된 아오미네를 위한 방석에 조심스레 앉았다 [요즘 사는 게 많이 행복한가봐?] 대답을 해야 한다 안하면 맞는다! [그럴리] [아오미네님! 너 새끼가 20년간 쳐 잡숴 오신 밥값이 얼마나 된다고 생각해? 하루 빨리 나가서 돈 벌어 와야 되지 않겠냐? 언령사로 태어난 주제에 카미를 거부해? 의뢰로 일정 금액 이상 납부 할 생각 없으면 넌 평생 여기서 노동이나 할 줄 알아] [..이제 수업 받을 생각이었어요] [형편 참 좋구나 당장 가서 유키쨩이나 위로해줘 너 때문에 스트레스 몇 백 년 치는 몰아 받았을 거다] [유키쨩 어디 있는데요?] 지나치게 쎈 니지무라의 주먹이 아오미네의 단단한 머리에 꽂힌다. 몇 년을 맞아도 적응이 안 되는 강도다 [다 큰 새끼가 건방지게 이름으로 부르고 있어 니가 알아서 찾아봐 건방진 새끼야] 띵한 머리를 손으로 감싸고 니지무라의 방을 나선다. 카사마츠가 있을 만한 곳. 카사마츠는 예전부터 이름도 모를 야생화를 좋아하였다 아오미네의 몸이 크고 나서도 종종 함께 꽃이 피어있는 곳을 찾아 함께 들판의 곳곳을 돌아다니기도 했다 니지무라의 뒷산에 위치한 들판은 무척이나 넓지만 무성한 풀 외의 꽃은 찾기가 영 힘들었다. 때문에 카사마츠가 좋아하는 야생화를 보는 것은 무척이나 어려웠다. 혹여 시든 꽃이라도 발견했다 하더라면 카사마츠는 곧장 아오미네에게 이렇게 말하곤 했다. [꽃이 갖고 싶어] 카사마츠에게 시들시들해진 꽃이라도 꺾어다주면 그의 표정이 그렇게 환할 수가 없다 아오미네는 카사마츠가 그 때 가지는 감정을 사랑하였다 때문에 아오미네는 예전부터 이름도 모를 야생화를 좋아하였다 자신이 사랑하는 얼굴을 보고 싶어 열심히 들판 이곳저곳을 돌아다닌다. 아름다운 야생화를 발견하게 된다면 그것만큼 큰 행복은 아오미네에겐 없었다. 카사마츠가 있어주었으면 하는 곳. 당신은 지금쯤 그 곳에 있을까 **** 아오미네가 나간 후, 니지무라는 카미가 잠들어 있는 종이를 매만지며 올해 성인이 된 아이들과 카미들의 관계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하야마가 자주 맞긴 하지만 미야지와 하야마는 나름 궁합이 좋다. 미야지가 서투른 하야마를 잘 이끌어 줄 것이다. 물론 폭력으로 무라사키바라는 또 생각 없이 말을 뱉었다가 히무로한테 맞지나 않을까 걱정된다. 이번 년도의 언령사는 꽤나 안쓰럽다 모모이와 아이다는 둘 다 배려심이 넘치기에 걱정되는 부분이 없다. 부모가 된 기분에 니지무라의 입가에 미소가 그려지기 시작했다 카가미와 쿠로코도 몇 년 전부터 카가미가 쿠로코를 눈으로 찾을 수 있게 되었으니까 딱히 걱정되는 것은 없다. 아카시와 후리하타는.. 후리하타만 잘 한다면 의뢰를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을 것이다. 애초에 아카시는 가장 가망 있는 언령사이니까 미간에 주름을 직접 새겨줄 정도로 걱정 끼치는 녀석들은 아오미네와 카사마츠 뿐이다. 아오미네의 마음은 어느 정도 이해가 간다. 여태까지의 생을 함께한 사람에게 정은 물론이고 애틋한 감정 역시 있을 거라 생각한다. 이해되지 않는 것은 카사마츠의 태도이다. 카미는 언령사를 위해 만들어진 것,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자신의 언령사를 깊이 사랑하게 되어있다. 카사마츠에게서 그러한 모습이 보이지 않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그에게는 타인이 알아서는 안 되는 감정이 섞여있다. 차차 그 감정이 사라져 현재에는 많이 비춰지지 않는 듯하지만 20년 전 그에게 아오미네를 맡겼을 때부터 느껴온 것이다. 아오미네가 이렇게까지 카사마츠를 거부하는 경우, 아마 카사마츠가 그러한 감정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일 가능성도 없잖아 있다. 타인이 알아서는 안 되는 감정, 예전에 그것을 깨달았을 때 경악을 금치 못하였다. 은연중에 자신의 그리운 언령사를 찾는 그의 슬픈 감정 다른 언령사를 받아들이기로 결심하였으면서 작은 각오를 하지 못한 어리석은 카미들이 가지는 감정이었다. 지조가 없는 것은 다른 언령사를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카사마츠 같은 경우를 말하는 것이다 카미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의 언령사를 지키는 것 그것은 카미들의 통념이며 기본이 되는 마음가짐이다. 과거에 사랑하던 언령사를 잊으란 것이 아니다. 언령사를 위해 온 가짐을 다 할 것, 현실에, 현재에 충실할 것, 그것이 카미들의 지조이다. 그러한 카미가 현재의 언령사에게 과거의 언령사를 비추다니 니지무라는 카사마츠만은 그런 어리석은 짓만은 더 이상 하지 않았으면, 부디 잡념이 사라졌으면 하는 마음에 달을 따라 기도해본다. **** 낮에는 내리쬐는 햇볕에 때때로 불어오는 바람에도 견딜 만 하였지만 해가 지고 나니 쌀쌀해 지는 것이 역시 겨울이다. 카사마츠는 찬 공기를 가르며 약속 장소를 향해 걸어갔다. 굉장히 오랜만에 바깥으로 나오는 것 같다. 세상 물정을 부디 알고 살아달라는 친우의 말이 떠오른다. 때문에 오늘 자신을 바깥에 있는 술집에 부른 것이겠지 애초에 전통적인 기모노에 하오리까지 걸친 카사마츠가 바깥으로 가면 주위 사람들의 이목만 끌 터이다 사람들의 시선을 싫어하기 때문에 간만에 만나자는 친우, 모리야마의 말을 거절하고 싶었지만 사람들의 왕래가 적은 편인데도 좋은 집을 안다며 바깥 공기나 좀 마시고 살라는 말까지 더해 겨우 카사마츠를 끌어냈다. 잡생각을 하며 걷다보니 어느새 목적지가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낙진관, 최근부터 모리야마와 이즈키가 즐겨가는 곳이라고 한다. 어색하게 문을 열고 들어가니 30대 중반 정도 되는 수수한 여인이 카사마츠를 맞이해준다. 여자를 보니 긴장이 되기 시작했다. 대충 모리야마의 이름을 대고 그녀가 안내해 준 방에 들어간다. [오랜만이야 카사마츠! 얼굴 빨개진 거 보니 여전히 여자에 약하구나 좀 밖에 좀 나다녀봐!] [오랜만입니다 카사마츠 씨] 모리야마와 이즈키가 니지무라의 터에서 나와 의뢰를 받기 시작한지 어느새 14년이 지났다. 가장 최근에 본 것이 2년 전이니 꽤나 오랜만에 보는 얼굴들이다. 서로가 반가워 정처 없는 대화를 나누다 분위기가 무르익어갈 즈음 모리야마가 오늘의 만남의 목적을 꺼내기 시작했다. [슈조한테서 어쩌다 들은 건데 아오미네랑 잘 풀리지 않고 있다며?] 술자리에 초대됐을 때부터 느꼈지만 불만을 가지고 있는 것은 니지무라 뿐만이 아니었던 것 같다 [좋지 않아 카사마츠] [..! 그를 쫓지 않는 것이 좋지 않아] [그만둬 이즈키] [그 만두를 주면 그만둘게요] 만나자마자 여자 얘기를 하여 이즈키에게 맞은 모리야마와 말장난을 열심히 필기하는 이즈키 역시 여전하였지만 둘의 안타까운 점은 조금 변하는 것이 좋을 거라고 카사마츠는 생각해본다. [하지만 언령사가 거부하는 것에 대해 카미인 내가 손 쓸 방법 따윈 없어] 카사마츠는 이즈키에게 만두를 건네주며 모리야마의 의견에 반박한다. [될지 안 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거라구? 애초에 아오미네가 너한테 보이는 행동들은 단순한 것들이야 거부 같은 엄청난 게 아니라고 눈치 없는 새끼야] [맞아요 카사마츠 씨, 아오미네도 이제 성인이지만 아직 애 같은 면이 분명 있어요. 그와 가장 가까운 당신의 눈에 그러한 행동거지가 많이 밟히는 뿐일 겁니다] 누가 파트너 아니랄까 봐 서로의 의견에 공감하며 닭살 돋는 행동을 서슴없이 한다. 어서 이 게이들에게서 도망치고 싶다 [아오미네가 투정부리고 있다는 것쯤은 알고 있어 하지만 과거의 얘기를 들려주는 걸 어떻게 봐야 좋은 개선 방법이라고 할 수 있는 거야?] 고작 한 잔 마셨을 뿐인데 벌써 취하는 기분이다. 니지무라는 우리를 너무 섬세하게 만들었다 [도박이야 아오미네가 니가 아직도 키세한테서 미련을 가지고 있다는 걸 알고 있다면 어떡할 건데?] [미련 같은 건 이제 없어 무엇보다 아오미네한테는 키세에 대한 얘기를 한 적도 없어 그리고 확실하지 않은 도박 따윈 하고 싶지 않아 더 악화될 수도 있잖아] [세상에 우연은 정말 많단다! 유키쨩 그리고 얘기를 들을 곳도 참 많단다 유키쨩!] [징그럽게 이름으로 부르지 마 모리야마] 저것은 30살이 넘어가고도 이런 상황만 되면 징그럽게 이름으로 부르며 엉겨온다. 이 쯤 되면 그의 카미인 이즈키가 불쌍해질 지경이었다. [그럼 이거라도 인정해 망할 유키쨩 애초에 미련을 갖고 언령사를 대한 적이 있다면 그건 정말 아오미네에게 무릎 꿇고 사죄해도 모자를 정도의 잘못이라고] [알고 있어] [소극적인 태도도 좋지 않아요, 카사마츠 씨. 깊은 신뢰도 좋지만 이 이상 멀어진다면 분명 둘 사이에는 큰 균열이 생길 것이고 그것에 대한 전반적인 책임은 저는 카사마츠 씨에게 있다고 생각 되요] [알고 있어] [이제 막 성인이 된 녀석을 그렇게 방치하기만 하고, 넌 진짜 카미로서 실격이야] [알고 있어] [과거를 그리워하는 것은 좋지만 현재의 언령사에게 늘 진심을 다하는 것이 우리들의 신념이잖아요 언령사가 가진 조금의 걱정을 떨쳐내게 하는 것도 카미의 일입니다 대부분의 카미는 예전의 언령사가 있었기 마련이고 아오미네도 아마 그 부분에서 토라진 것일 수 있어요 언령사들은 소유욕이 강하니까요 짜증나게] [잠깐 이즈] [알고 있어] [아니 이즈키 잠] [모리야마는 지금은 당신뿐이라고 말만 해줘도 헤벌레 웃으니까 정말 바보 같다는 생각도 들어요 아오미네도 때때로 무척 현명하지만 굉장히 멍청한 면도 많잖아요 그저 아이의 투정이고 당신은 그의 부모일 뿐입니다 지금은요] [잠깐 기다려 봐 이즈키 지금 뭐라] [알고 있어 정말 뼈저리게 느끼고 있고, 나 이제 슬슬 가볼게 너무 늦으면 니지무라가 뭐라고 하니까] [카사마츠? 야 잠깐 아직 12시도 안 지났는데! 너네 둘다 오늘 왜 이러는 거야] 자신을 부르는 이들을 뒤로 하고 도망치듯 낙진관에서 빠져나온다. 목적지 없이 무작정 걷기만 한다. --- 나는, 나는, 나는 너에게 있어 나는, 무엇이지 나는 무엇일까 ‘나’라는 말보다 불결한 말이 있긴 할까 현재의 카사마츠와 아오미네의 관계는 무엇일까 단순히 관계라 한다면 대부분의 언령사와 카미는 자신들을 연인이라고 부른다. 대를 이을 수 없는 언령사에게 인생의 동반자라 할 수 있는 카미란 아마 언령사에게 있어 둘도 없는 행운이다 카미에게는 언령사의 슬픈 생을 함께 할 수 있다는 소중한 권리가 있다. 언령사를 위해 태어난 우리들에게는 무척이나 소중한 권리겠지 진정한 언령사와 카미의 관계를 보고 나니 아픈 감정이 한 발자국 더 다가왔다 --- 모든 것은 나의 책임이다 카사마츠는 아오미네를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받아들였다. 괜찮다면 다시 한 번만 자신을 비춰줄 빛을 만나고 싶었다. 그것은 너무나 과한 욕심이었다. 이 얼마나 건방진 자세인가 자신을 사랑해주는 이에게 바라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모리야마와 이즈키는 아마 지쳐 보이는 자신을 위해 나름대로 위로와 대처의 따뜻한 말을 건네준 것이다 하지만 가만히 그들의 말을 듣기엔 카사마츠가 지난 시간 가지고 있던 감정은 너무 탁하고 더러운 것이다 자신이 그의 부모가 될 자격이 있을까 자신이 그의 친구가 될 자격이 있을까 --- 내가 너의 카미가 될 자격 같은 게 있을까 아오미네가 넓혀준 세계가 발끝부터 무너지기 시작하였다 그들의 말이 맞다 나는 카미로서 완전히 실격이다 나는 네가 주는 소중한 마음을 지켜본 적이 없는 것인가 나가있던 시간이 길었던 모양인지 가옥의 대문을 지났을 때의 시침은 새벽을 지나 아침을 향하고 있었다. 생각에 취해 무거워진 다리가 움직이는 대로 향한 곳은 아마 2주 전까지만 해도 틈만 나면 아오미네와 함께 오던 외로운 들판이었다. 텅 빈 들판 위에서 하늘을 바라보니 저 멀리서 해의 끝머리가 보이는 듯하다 쌀쌀한 바람만이 카사마츠의 귓가를 지나간다. 이 곳엔 아무도 없을까 무언가 기묘한 기분에 태양이 떠있었더라면 그늘이 생겼을 나무에 기대 앉아 회상하듯 눈을 감는다. 그 날의 너는 참 아름다웠지 그 날의 너는 너무나 빛났지 그 날의 너는 너무나 사랑스러웠지 그래도 나는 아마 아름다운 그를 잊지 못할 것이다 카미에게 있어 죽은 언령사를 잊지 못하는 것은 죄가 아니다 하지만 카사마츠가 아오미네에 지은 죄 아닌 죄를 죄가 아니라 하기엔 그동안 카사마츠의 욕심은 너무나 과하기만 하여 마음이 여린 이를 감싸지 못하였다 모든 것이 어리석은 이의 망설임으로 인해 끝나버렸다. 그의 일련하지 못한 눈물은 여린 이를 위한 사죄일 뿐이다 **** 차가운 햇살이 당신의 얼굴에 물결친다 잠에 빠져드는 당신은 쓸쓸한 들판에 어울리지 않는 편안한 모습이었고 당신의 눈물과 어울리는 아린 날에 낡은 종이는 사랑스러운 태양의 곁을 떠났다 **** [료, 넌 카미가 죽는 걸 본 적 있냐] 24살의 어두운 새벽을 지나는 도중 아오미네는 자신의 카미에게 갑작스런 질문을 던졌다 [본 적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제가 지금 당장 죽어버릴게요 죄송합니다 아오미네 씨] [아니 그럴 필요는 없고. 본 적 없구나?] 여전히 말 한 마디만 툭 던져도 90도의 훌륭한 인사와 함께 이상한 말들이 날아온다. [난 본 적 있어. 카미가 죽는 거. 종이로 돌아가는 거 말고 진짜로 죽는 거] [..어떠셨나요?] [오 꽃이다] [죄송합니다!] 바위 사이에 아름다운 야생화가 한 송이 피어있다 [여전히 야생화 좋아 하시네요 ..죄송합니다! 취향 연구해서 죄송합니다!] [됐어 료 그만해 이거나 받아] 이것은 아오미네의 버릇이다. 그는 언령사가 되어 카미를 받아들인 후 늘 야생화를 발견하기만 하면 소중하게 꺾어서 자신의 카미인 사쿠라이에게 건네준다. 그 행위가 아오미네가 과거 사랑하던 이와 함께하던 것이란 걸 사쿠라이는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일까 씁쓸함을 감출 수 없는 것은 야생화를 손에 쥐고 속상함을 온 몸으로 표현하니 그가 곧 아무렇지 않게 말해온다 [귀찮게 아무한테나 줄려고 열심히 찾는 건줄 알아? 너 줄려고 허리까지 숙인 거니까 고맙게 받아] 아니다 아무렇지 않은 척 말하는 것이다 아오미네는 아마 지금 사쿠라이에게 미안해하고 있다 [고마워요 다이키 정말 마음에 들어요 ......죄송합니다] 용기를 내서 감사의 말을 전하면 그는 곧 쑥스러운 얼굴을 내비춘다 아오미네가 창피함에 괜한 험한 말을 늘어놓는 걸 가만히 보다 야생화에 밀린 주제를 다시 꺼내본다. [카미가 죽는 경우는 정말 흔치 않은 경운데 어쩌다 보게 되신 건가요? ...죄송합니다] [사과 하지 않아도 돼 료 그냥 어쩌다 보게 된 거야] [그렇군요] 사쿠라이는 더 이상 주제를 끌지 않고 의뢰를 수행하기 위해 아오미네의 뒤를 따라간다. 아마 아오미네가 말하는 카미의 죽음은 그의 과거 사랑하던 이의 죽음일 것이다 사쿠라이의 봉인이 처음으로 해제되기 전, 니지무라의 터에서는 최초의 카미가 죽음으로써 종이로 돌아가는 사태가 일어난 적이 있다고 한다. 좋게 말하면 종이로 돌아가는 것, 실제는 카미의 완전한 죽음이다. 인간의 형태였던 카미는 온 몸이 조각조각 나뉘다 결국 흰 종이가 되어 니지무라의 터 전체에 흩날렸다고 한다. 그 날 카미의 죽음을 목격한 이들의 대답은 하나같이 똑같다 살아 태어나 그보다 아름다운 광경을 본 적이 없다고 **** 가만히 들판 위에 앉아 카사마츠를 기다리던 아오미네는 드디어 들리는 그의 발자국 소리에 피곤한 몸이 먼저 반응하게 되었다. 바로 그 앞까지 달려가 지쳐 보이는 카사마츠를 안아주고 싶었지만 그러기엔 당신의 얼굴이 본 적 없는 만큼 어둡다. 자신의 탓인 것만 같아 마음이 아파온다 카사마츠가 커다란 나무 밑에 앉아 눈을 감는 것까지 본 아오미네는 이 추운 곳에서 잠들 것만 같은 카사마츠에게 다가가려고 하였지만 그의 피곤한 피부에 흐르는 눈물을 본 순간 온 몸이 마비되는 듯하였다 카사마츠가 우는 것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알 수 없는 긴장감이 온 몸을 덮치는 듯하였다 이제 막 뜨는 태양의 빛을 받고 있는 카사마츠를 쳐다보고 있으니 그의 손끝부터 하얗게 변하여 공허한 하늘을 흩트리기 시작하였다 그리 멀지않은 거리에서 당신의 서글픈 마지막이 두 눈에 새겨지고 있다 처음보는, 감히 그 무엇에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운 광경에 아오미네의 몸은 불편함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경직되어 있었다 그 날의 아픔을 살아평생 잊지 못하리라 카사마츠가 완전히 흩날려 사라질 때까지 아오미네는 가만히 앉아있을 수밖에 없었다. 절망적인 얼굴의 아오미네를 위로하듯 갈기갈기 찢어진 낡은 종이들의 그의 그을린 피부를 부드럽게 스쳐 지나간다. 그 날의 감동 또한 살아평생 잊지 못하리라 **** [후기] 급전개라 느껴질 수 있는 이상한 소설이었습니다 우선 사과부터 올립니다 죄송합니다 가장 처음 시작한 부분에 있는 나른한 햇살이 창문 틈새 사이로 들어와 너의 얼굴에 물결친다 잠든 너의 모습은 아름다웠고 너와 어울리는 산뜻한 날에 너는 나의 곁을 떠났다 이 부분과 거의 끝부분에 있는 차가운 햇살이 당신의 얼굴에 물결치친다 잠에 빠져드는 당신은 쓸쓸한 들판에 어울리지 않는 편안한 모습이었고 당신의 눈물과 어울리는 아린 날에 낡은 종이는 사랑스러운 태양의 곁을 떠났다 이 부분은 각각 키세와 카사마츠의 죽음을 묘사한 것입니다 첫 부분은 카사마츠가 죽어가는 키세를 보고 느낀 감상이구요 그 다음 부분은 아오미네가 죽어가는 카사마츠를 보고 느낀 감상입니다 야생화는 두 사람의 유일한 공통점입니다 종이 혹은 낡은 종이는 카사마츠이고 태양은 아오미네입니다 결말은 자신이 아오미네에게 가진 감정의 무게와 지난 진실과 그럼에도 키세에게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는 미안함에 미쳐버린 카사마츠가 결국 마지막까지 자신을 위해 죽음을 선택한 것입니다 카사마츠가 나쁜 포지션에 있는 아무도 보답 받지 못한 얘기였습니다 공이 나쁜 소설이 대부분이기에 수가 나쁜 소설도 써보고 싶었습니다 결과는 이런거네요 청립 맞습니다 황립 아니에요 황립 기반이긴 하지만 부족한 점이 많은 소설이었습니다 소설이라 하기에도 많이 부끄럽네요 지루한 소설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
| [카네토우] 100년 뒤의 너에게 |
몸이 무겁다 팔 하나 들지도 못 할 정도로. 무거운 무언가가 내 몸 전체를 짓누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눈을 뜨고 싶어도 뜨지 못 했다. 몸에 힘이 들어가지가 않아서. 아니, 힘은 계속해서 주고 있었다. 그런데 어째선지 몸이 내 말을 듣지 않았다. 마치, 나 자신이 죽어버린 것 같았다. 이곳이 어디인지, 몸에 느껴지는 이 감촉이 아프면서도 나른한 이 기분이 의미하는 게 도대체 무엇일까. 숨은, 쉬고 있는 걸까? ―………. ―………. ―카네키.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차갑지만 따뜻한 목소리. 계속 듣고 싶었던 목소리. 그런데 모르겠다. 누가 날 부르는 건지. 앞이 깜깜해 보이지가 않았다. 고작할 수 있는 거라곤 손가락 몇 개를 까딱이는 것 정도였다. 문득 갑자기 손바닥 위로 따뜻한 온기가 느껴졌다. 곧 기분 좋은 향기가 코를 자극했다. 아아, 좋은 향기. 입가로 웃음이 번졌다. 왜 웃는 건진 나도 잘 몰랐다. 눈 옆으로 따뜻한 무언가도 흘러내렸다. 귀를 적시고 떨어진 그것은 내 목덜미를 시리게 만들었다. 하지만 어째선지 그것은 도통 멈출 기미가 보이지가 않았다. 점점 무거웠던 몸이 가벼워졌다. 나른했던 기분도, 들어올려지지 않던 팔도 모두 다 정상적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느껴지는 극심한 고통. ―어서 와. 너의 세계에. 귓가에 속삭이는 목소리와 함께 눈이 뜨여졌다. 꽃이 가득한 들판이었다. 카네키 켄 X 키리시마 토우카 카네토우. 여기가. 어디지? 멍하니 주위만 둘러보았다. 푸른 잡초와 풀들. 형형색색의 바람에 흩날리는 꽃들. 서늘한 바람이 머리칼을 흩뜨리고 달아났다. 아무도 없는 조용한 들판 위에 그대로 드러누웠다. 푸른 하늘을 가로질러가며 흘러가는 구름이 마냥 예뻐 보였다. 가끔씩 지저귀는 샛소리와 풀이 흔들려 나는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제외하면 한없이 조용한 공간이었다. 두 팔을 앞으로 쭉 뻗었다. 몸에 이상이 있는 부분은 없었다. 살아있는 게 맞을 텐데. 등 뒤로 느껴지는 불안감에 괜스레 기분이 나빠졌다. “카네키. 오랜만이네.” “…토우카?” 언제 나타난 건지 내 옆에 나란히 앉은 토우카가 날 쳐다보며 살짝 웃었다. 그옷은 뭐야? 카페 직원복을 그대로 입고 있는 토우카의 모습이 귀여워 나도 모르게 웃어버렸다. 얼굴이 빨개진 채 날 노려보던 토우카가 내 앞으로 막 내린듯한 커피를 불쑥 내밀었다. 김이 모락모락나는 적당히 맛있어 보이는 커피였다. 조용히 커피잔을 받아들고 상체를 일으켰다. 여전히 커피의 향이 좋았다. …여전히. 라니? 갑자기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파왔다. 그대로 커피잔은 바닥으로 떨어져 산산조각이 났다. 토우카는 그저 묵묵히 슬픈 눈빛으로 내게 손수건을 내밀었다. 깨진 커피잔의 파편에 손을 살짝 베인 모양인지 베인 틈 사이로 피가 고이고 있었다. “…아파?” “……….” “괴로워?” “…아아,” “…힘들어?” “…토우카…….” 토우카의 목소리가 들려올수록 머리에 느껴져오는 두통의 세기가 더욱 커졌다. 참을 수 없는 고통에 머리를 감싸고 엎드렸다. 너무 아파 견딜 수가 없었다. 카네키. 얼굴 옆으로 날카로운 무언가가 떨어졌다. 붉고 아름다운. 카구네를 펼친 토우카가 슬픈 눈으로 날 바라보고 있었다. 한 손으로 머리를 쥐어잡고 뒤로 돌았다. 한껏 날이 서있는 듯한 그 모습에 나도 모르게 점점 뒷걸음질을 쳤다. 내가 뒤로 갈수록 토우카는 내게로 손을 뻗었다. 아파. 싫어. 괴로워. 토우카가 중얼였다. 머리가 깨질 것 같았다. “네가 행복하다면.” “…윽,” “잊어줘. 우리를.” “……….” 강한 바람이 휘몰아쳤다. 흔들리는 옷깃을 꽉 붙잡고 한참을 눈을 감은 채 바람이 지나가기만을 기다렸다. 어두웠다. 아무것도 보이지가 않았다. 무서웠다. 또다시 반복되는 상황. 아까 전과 똑같았다. 아무것도 들리지가 않았다. 어째서? 토우카? …토우카? 또다시 무언가가 커다란 게 몸을 짓눌러왔다. 손가락 하나도 움직일 수가 없었다. ―다음 생에선, “…토우카?” ―우리 둘 다…, 행복하자. 커다란 무언가가 배를 찔러왔다. 날카로운 칼이었다. 크게 비명을 내질렀다. 나를 찌르고 있는 건 다름 아닌 토우카였다. 눈물을 흘려가며 몇 번이고, 몇 번이고 칼로 내 몸을 찔렀다. 뚫릴 리가 없는데, 상처가 날 리가 없는 데, 나는 구울인데? 머릿속으로 갖은 생각이 지나갔다. 토우카가 찌를 때마다 공중으로 비명소리가 흘러갔다. 내 몸 위로 흐르는 게 피인지, 토우카의 눈물인지 모를 만큼 토우카는 지나치게 많이 울었다. 왜, 토우카가 슬퍼하는 거야…? 왜…? “미안해. 미안해. 카네키.” “…토우, 카…….” “이렇게 할 수 밖에 없었어.” “……….” “다음생에선,” “……….” “우리 둘 다,” 행복하자. 고요한 울림과 함께 조용히 눈이 감겨졌다. “어이. 카네키. 야. 카네키?” “아아…,” “잠 좀 그만 자지?” “…토우카. 너. 머리가 짧아진 것 같아….” “…무슨 소리야? 아직 잠이 덜 깬 거야?” “…그러게.” “그보다 너,” 왜 울어? 토우카의 말에 서둘러 소매로 눈가를 비볐다. 눈물이 잔뜩 나오고 있었다. 아. 아무것도 아니야! 너, 아무한테도 말하지 마라?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섰다. 배가 얼얼한 게 왠지 모르게 아팠다. 벗어둔 교복 마이를 토우카를 향해 아무렇게 던졌다. 정확히 얼굴에 마이를 맞은 토우카가 주먹을 꽉 쥐며 내게로 뛰어왔다. 그런 토우카의 모습이 귀여워 가던 길을 멈추고 팔을 쫙 펼쳤다. 달려오던 토우카가 제 속력을 이기지 못 하고 내 품에 안겼다. 얼굴이 붉어진 채 서둘러 피하려는 토우카를 더 꽉 끌어안았다. 이마. 코. 볼. 차례대로 예쁜 얼굴에 입맞춤을 했다. 그리고 마지막은, 입술. 분홍색의 혀가 서로 얽혀가며 한참을 떨어질 줄을 몰랐다. 타액이 길게 늘어지며 토우카가 붉어진 얼굴로 서둘러 등을 돌린 채 달려갔다. 바뀐 상황에 속으로 웃으며 토우카를 따라갔다. 평화로운 오후. 이제야 말해서 미안해. 100년 전부터 널 사랑했었어. 토우카. & 약간 해석하자면.. 검은 공간은 카네키 현재 상황이에요. 무리하게 싸우다 결국은.. 죽어가는 카네키ㅠ_ㅠ 그 속에서 환상으로 토우카를 만나고, 토우카는 토우카를 억지로 죽여 행복하게 해주려고 하죠ㅠ_ㅠ 마지막 장면 바로 위에 또다시 검은 장면이 나타나는 데 여기가 바로 현실 ㅠ_ㅠ 토우카가 억지로 마구마구 카네키를 죽여요ㅠㅠㅠㅠㅠㅠ 그리고 마지막 장면은 진격의 거인 스토리를 조금 따왔습니다ㅠ_ㅠ 조금이라도 행복하게 해주고 싶어서.. 2000년 뒤를 100년 뒤로 살짝 수정하고 동급생의 평범한 고등학생으로 그려봤습니다 ㅠㅠ 마음에 드셨을지 모르겠네요 ㅠㅠ 내용도 왔다 갔다.. 토우카는 뜬금없이 카네키를 죽이고.. 마지막엔 타임 루프까지...☆ |
| [리에쿠로] Dark Paradise |
Dark Paradise 리에쿠로 종언의 시간이 찾아왔다.복도에 깔린 고급스런 붉은 카페트에 천천히 구두굽을 올렸다.반짝이며 빛나는 샹들리에와 귓가에 울리는 샹송.사치스러운 화려함에 나는 벌벌 떨 수 밖에 없었다.왁스로 굳은 앞머리를 매만지며 기나긴 복도를 걸어나갔다.목을 죄이는 비뚤어진 보타이를 만지며 복도 끝에 위치한 방 앞에 섰다.문밖으로 터져나오는 웃음소리와 코끝을 찌르는 약냄새.작게 심호흡을 한뒤 문고리를 잡아당겼다. 도박판은 이미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분주하게 움직이는 손과 쌓여있는 포커칩.흡사 카지노에서 운영되는 고위계층들을 위한 이벤트같았다.다만,불 필요한 대마초와 그들의 입에 물려있는 마리화나.모두 법에 위배되는 물질이다.카지노 딜러로 잠복한지 어연 6개월.이제 그 종지부에 마침표를 찍어야할 차례가 왔다. 태연하게 방으로 들어선 나는 손에 와인병을 들고 빈잔에 와인을 따르기 시작했다.찰랑이는 붉은 액체.그리고 잔을 든 하얀 손.서둘러 빈 와인병을 치우고 룸 문앞으로 다가갔다.낄낄거리는 웃음소리와 떠드는 소리.서둘러 문을 잠궜다.다리 뒤로 숨겨둔 총구를 확인한 뒤,룰렛의 정중앙에 앉아있는 그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묘한 은발의 머리카락.흔치않는 적녹색의 홍채.그는 일본 야쿠자와 긴밀하게 연관된 인물로 소지해서는 안되는 마약과 총기류들을 갖고 있으며 정부의 눈을 피해 제 신분을 소말시켰다. “여기 잔이 비었는데.” “아.” 옆에 있던 딜러가 와인을 내놓자,그는 고개를 저었다.그리고 거만한 얼굴로 제 손짓을 했다.나를 향해.당혹함을 숨기고 와인을 내놓자,내게 팁을 건냈다. “처음보는 얼굴인데.” “이 방은 처음입니다.” 아-그렇군.그는 겉눈질을 하며 내게 시선을 견주었다.손에 든 다섯장의 카드.웬퍼어.승산이 없는 게임이다.그럼에도 상대편은 계속해서 배팅을 했다.약에 취해서 풀린 동공과 술에 취한듯 헛소리들을 해대는 목소리.그들과는 다르게 그는 올곧은 시선으로 룰렛판에 눈을 떼지않았다. “로얄 스트레이트 플러시.” 완벽하게 같은 무늬인 10,J,Q,K,A.벙찐 상대편을 비웃는듯 그는 제 입에 담배를 꼬나물었다.나는 태연하게 주머니춤에 라이터를 꺼내 그 필터 끝에 불을 붙였다.볼이 홀쭉하게 담배를 빨아들인뒤,흩뿌연 연기가 룰렛위로 흩어졌다.배팅된 포커칩을 잃은 남자는 제 옆에 요태를 부리는 를 밀쳐냈다.바닥으로 나뒹구는 여자의 비명소리와 함께 룰렛판이 뒤집어졌다.이런.그는 혀를 끌끌차며 잔뜩 흥분한 남자를 노려봤다.조심스레 뒤로 걸어가 문에 기댔다. 상황이 긴박하게 흘러간다.일이 커지기전에 저 남자를 쏴죽여야한다.그리고 손을 다리에 가져가댈 그때.총성이 귓가를 때렸다.맙소사.뺨에 핏물이 튀었다.멀쩡하게 서있던 남자가 앞으로 꼬꾸라졌다.이마에 구멍이 뚫린 그는 리에프가 날린 총탄에 의해 죽어버렸다.아아악-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는 힘에 풀린 다리를 질질 끌며 방을 빠져나가기 위해 혈흔이 낭자한 카페트 위를 기어갔다.즐거운 시간을 보내던 이들은 경악에 물든 얼굴을 한 채 방 밖 으로 뛰쳐나갔다.무언가에 홀린듯 나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서둘러 총구를 꺼내들었다. “총내려놔.” 단호한 어투에 손에 힘이 들어갔다.적막감이 맴도는 방안.질척한 남자의 피가 제 발밑을 향해 돌진한다.미간을 찌푸린채,그를 향해 총구을 조준했다.피 비린내.잇새를 다물었다.입을 열면 시체가 쏟아질것 같았다.구역질이 식도를 타고,폐부 깊숙이 누군가 난도질을 하는 느낌이 들었다.부패된 시체와 여자의 비명.짙은 약 냄새에 코가 마비됬다.아.정신차리자.큰 장신의 남자가 제쪽으로 걸어온다.그가 움직임과 동시에 총을 쐈다. 이런. 헛발이다.제 손은 다른 딜러들에게 잡혔다.다 한 통속이였군.엉덩이를 치켜올린 수치스러운 자세로 나는 마구 몸부림을 쳤다.제 옆으로 탄환이 없는 총구가 떨궈졌다. “너에 관한 정보는 다 알고 있어.” 국제정부.인터폴 정예요원.아찔해지는 머리를 부여잡은채 제 팔을 짓누른 남자들을 향해 발길질을 했다.상처 하나 없이 말끔한 얼굴로 그는 제 입에 물린 담배를 카페트에 지졌다.탄내와 함께 이상한 기운이 제 몸을 서서히 덮쳤다. “아..” “이제야 반응하나보네.” 무슨 소리야.반응이라니.아.간과하고 있었다.이곳에서 일을 하며,각별히 친하게 지낸 동생에게 받은 초콜릿이 문제였다.망할.점점 가빠지는 숨에 헐떡이며 고개를 퍼뜩 들었다.매우 추한 자세로 카페트에 엎어진 나는 제 멋대로 부풀어오는 아랫도리를 감추기 위해 허벅지를 비틀었다. “초콜릿에 돼지발정제를 넣었지.” 입밖으로 욕짓거리들이 쏟아져나왔다.별 다른 자극을 주지않아도 몸은 열투성이였다.뜨거워진 몸은 큰 자극을 원했다.들뜬 숨소리와 함께 몸이 물먹은 솜처럼 가라앉았다.그는 제 몸을 붙잡고 있는 남자들을 향해 고개짓을 했다.제 몸을 짓누르고 있던 남자들이 방으로 나가고,방 안은 짙은 피냄새와 약에 취한 남자의 들뜬 소리가 맴돌았다. “어떄?돼지 발정제 맛은?꽤 독한걸로 준비했는데.” “꺼져.” “이 맛은 어떨까.” 턱을 잡고 얼굴을 치켜올린 뒤 총구를 입안으로 들이밀었다.목구멍을 찌르는 총구에 의해 타액이 질질 턱선을 타고 흘렀다.수치스럽다.붙잡힌 턱이 아려온다.나는 제 몸을 가누지 못하는 발정난 와 다름없었다. “흐..읏!” 입에서 빠져나온 총구는 제 몸을 훑었다.빠르게 풀어 헤쳐진 하얀셔츠 위로 서늘한 총구가 천천히 맨살을 비집고 들어온다.아.거긴.붉어진 얼굴과 제 뇌리를 지배하는 약의 기운에 그에게 매달렸다.아.안되.더 이상.흔들리는 머리와 함께 유두를 건드는 총구에 의해 계집애마냥 교성을 질렀다.하..으!아..안돼.. “좋아죽네.그럼 여긴?” 허벅지에 힘을 주자,금세 벌어진 다리 틈에 자리를 잡고 그는 총구로 제 바지춤을 비비적거렸다.부푼 성기에 나오는 액으로 인해 아랫도리가 흥건히 젖어버렸다.치욕스럽다.고개를 푹 숙인채,시선을 제 아래를 뭉근한 손길로 찌르는 총구를 바라보았다. “아.이거에 욕정을 하는거야?” “흐으...” 길들여지지 않은 새끼고양이같다.리에프는 한쪽 입꼬리를 올린채,손에 들린 총구를 제 뒤로 던졌다.제 아래에서 흥분에 못이겨 우는 고양이는 야살스러웠다.사실 아직 동정을 떼지못한 처녀의 은밀한 곳을 정복하는 일은 식은 죽먹기다.하지만,제게 관심이 가는 성은 자기와 같은 남자였다.그것도 경험이 없는 아주 큰 자극에 홀랑 넘어가버리는. 카라를 타고 흘러내린 보타이를 그 손목에 묶었다.그리고 벌어진 허벅지틈으로 천천히 허리짓을 했다.아.그..그만..휘몰아치는 격한 흥분에 고양이는 제 풀이 죽은 성기를 제 멋대로 세우기 시작했다.제 함정에 걸려든 가엾은 고양이.잿빛으로 탁해진 눈은 갈피를 잃었다.제 팔을 붙든 손.열에 오른 얼굴.잔뜩 흐트러진 몸.발정제에 취한 몸은 앞으로 계속 약을 갈구할것이다.은연 중 약을 먹고,넌 발톱을 숨긴채,아양을 떨겠지.꽤 재밌는 놀잇감이 생겼다.그는 계속해서 허리를 쳐올렸다.제 밑에서 욕정의 늪에 빠진 고양이를 쉴새없이 탐하며. fin. |
| [릭마틴] Later, Letter |
사이퍼즈 릭 톰슨 X 마틴 챌피 Later, Letter. ˝챌피, 나와 함께 하겠소?˝ 젠틀한 미소를 띤 얼굴이 불안감에 가득 차 있다. 공간 이동의 능력을 가졌기에 한 자리에 오래 머물지도, 많은 사람과의 관계를 만들 수도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이렇게나 안타까운 얼굴을 하는 이 사람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은 그저 제자리에서 기다리고 있는 것 뿐. 아쉬움에 찡그려진 눈을 부드럽게 매만지며 웃었다. 옅게 불어오는 바람에 사르르 날리는 머리칼을 정리해주던 그는 따뜻한 온기로 가득한 두 손으로 내 볼을 감싸 쥐고 살짝이 입술을 찍어 내린다. 다정한 뉘앙스에 눈을 감았다 뜨면 여전히 불안한 얼굴이 눈앞에. ˝왜 그렇게 불안 해 하세요?˝ ˝내가 없는 동안, 그대를 잃을까봐서.˝ ˝저 도망 안 가요.˝ ˝그래도 그대는… 역시 나와 함께 하지 않겠어?˝ ˝전 언제나 제자리에 있는 걸요, 제가 떠나면 남아있는 분들이 곤란해져요.˝ ˝챌피…… 꼭 돌아오겠소, 기다려 주시오.˝ ˝당연한걸요. 다녀오세요, 릭.˝ 팔목을 가득 채운 손목시계들이 각자 바쁘게 째깍거리며 그를 재촉했다. 후웅, 바람이 빨려 들어가며 열린 공간 이동의 입구가 그의 팔을 천천히 빨아들이고 점점 멀어지는 그를 애써 잡지 않으려 등을 돌리고 섰다. 나의 챌피, 끝까지 다정한 목소리로 이름을 부르다니…… 치사한 사람. 이대로 가버리면 한 동안은 따뜻하게 웃는 얼굴도, 내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도, 그 누구보다 꼭 안아주던 온기도, 없다. 마음만큼은 가지 말라고 떼를 쓰고 매달렸지만 그것을 티낼 수는 없다. 아까처럼 그렇게 안타까운 얼굴을 하고 슬퍼하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은 걸. 이제는 정말로 갔겠지, 하고 허망한 마음에 눈물을 뚝뚝 떨구었다. 언제쯤 돌아올까, 내 사람. 턱을 타고 흐르는 눈물을 닦을 새도 없이 소리를 죽여 울고 있을 즈음, ˝아아, 역시…… 울고 있을 줄 알았소. 챌피.˝ 늘 그렇듯 따사로운 목소리가. 온기를 담은 손바닥이 눈앞을 가렸다. 깜짝 놀라 그 손을 쥐면 팔목으로 느껴지는 손목시계들이 릭이라는 것을 알려주듯 째깍대고 있다. 돌아오면 안 된다고 그렇게나 말 했는데. 일이 끝나기 전까지는 미련 남기지 말고 떠나라고 그렇게나 부탁했는데, 당신은 어째서. 그런 마음보다는 역시 떠나지 말았으면 하는 마음이 더 컸기에 등 뒤로 느껴지는 온기에 기대었다. 아주 잠시만이라도 조금만 더, 안기고 싶어. 내 마음을 읽기라도 했는지 곁으로 다가와 파르르 떨리는 몸을 꼭 껴안아준다. ˝이…… 치사한 남자.˝ ˝그래도 이렇게 돌아왔잖소, 나더러 돌아오면 안 된다고 호통 치던 사람이 이리도 여린 모습으로 울고 있는데… 어느 남자가 돌아오지 않고 베긴 단 말이오.˝ ˝당신은 정말이지……˝ ˝이런 모습을 봐버렸으니 다음부터는 더 오래 머물다 가겠소.˝ ˝그러지 않아도 된다고 했잖…!˝ ˝그럼, 아까처럼 또 울고만 있지 않겠어? 그대가 우는 것은 모두 내 잘못이오.˝ 어린 아이 다루듯 살살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 손길에 가만히 머리를 대주다가도 약속 시간에 늦어버린 사실을 알아챈 나는 서둘러 그의 등을 떠밀었다. 내가 우는 것은 단지 떠나는 것이 아쉬운 것, 하지만 그가 나 때문에 약속시간에 늦었다가 혼나기라도 하거나 혹은 일이 엉망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온 몸에 소름이 끼쳤다. 나 때문에 그럴 순 없어. 그를 밀어내며 말했다. ˝어서 가요.˝ ˝하지만 챌피……˝ ˝나는 괜찮으니까, 돌아와서 또 안아주면 되잖아요?˝ ˝미안하오.˝ ˝늦기 전에 지금이라도 서둘러 가요.˝ ˝되도록 빨리 돌아오겠소, 그때까지 울지 말고…˝ ˝알았어요, 릭. 이러다 늦겠어요.˝ ˝Be my lover, Blondie.˝ 멀어지는 손을 잡지 않았다. 이번에야말로 붙잡으면 영영 떠나지 않을 사람이니 주먹을 불끈 쥐며 참아냈다. 한 달, 어쩌면 언제 돌아올지도 모르는 그를 나는 또 하염없이 기다리겠지. 그를 보낼 때면 어쩐지 힘이 다 빠지는 기분이라 침대 위로 털썩 몸을 눕혔다. 내일부터는 꽃 한 송이를 내밀며 좋은 아침, 인사를 하는 그도 볼 수 없구나. 책상 위에 올려진 꽃병 속 제각기의 꽃들을 하나하나 훑어보았다. 그가 돌아오기 전까지 저 꽃들이 시들지 않고 있을 수 있을까. 그가 없을 때면 아침마다 전해주던 꽃들을 바라보곤 했는데 왠지 길어질듯 한 여행에 한 순간 표정이 암울해졌다. 꽃병의 꽃들이 시들기 전까지는 울지 말자, 그렇게 생각하며 눈을 감았다. 그가 떠난 지 보름이 지났다. 어찌된 일인지 그가 떠나고부터 나 역시 해야 할 일이 많아져 제대로 쉴 틈조차 없었다. 겨우 일을 끝내고 바람이 잘 부는 곳에 앉아 쉬고 있는데 저 멀리 우체부가 자전거를 타고 달려와 편지를 건네었다. ˝마틴 씨에게 온 편지에요!˝ ˝저한테요?˝ ˝네, 마틴 씨 찾느라 고생 했다구요.˝ ˝미안해요, 쉬느라…˝ ˝연애편지 인가 봐요? 꽃이 비춰져요. 그럼 전 가볼게요!˝ 서둘러 자전거 페달을 밟는 우체부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편지의 발신인을 확인했다. 릭 톰슨. 우체부의 말처럼 희미하게 보이는 꽃에 웃음이 났다. 봉투를 조심스럽게 뜯어 손바닥 위로 꽃을 꺼내자 예쁘게 잘 말린 노오란 꽃이 햇빛을 받아 반짝였다. 혹시라도 바람에 날아갈까 다시금 봉투에 넣어둔 나는 편지를 꺼내 펼쳤다. 그와 어울리는 단정한 글씨. 오랜만에 보는 나의 챌피라는 말에 기분이 좋아졌다. 「 나의 챌피, 사랑스러운 나의 블론디. 여기는 중국이오. 편지가 도착하려면 한참이나 기다려야 할 것이오. 이 곳의 사람들은 너무나도 바쁜 생활을 해서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겠소. 마침 일을 하다 옷을 파는 상점에 들렀었는데, 챌피와 잘 어울리는 금색 치파오를 봤소. 안 된다고 말리는데도 챌피에게 꼭 입혀보고 싶어서 샀는데 부끄럽다고 거부하는 건 아닌가 모르겠네만. 챌피. 하루 빨리 그대를 보고 싶소. 이 곳의 일이 끝나는 대로 내 무조건 돌아가리다. 사랑하는 나의 블론디, 그때까지 울지 말고 기다려 주시오. 치사한 남자 릭 톰슨이. Later, Letter. 」 이 편지를 쓸 동안 얼마나 많은 종이들을 버렸을까 생각하니 입꼬리가 저절로 올라갔다. 그의 표정까지 눈앞에 아른거렸다. 어서 돌아와 외로웠던 이 몸을 안아주길. 시원하게 부는 바람을 느끼며 편지를 다시 넣은 봉투를 품 안에 넣었다. 돌아오면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까? 신나서 이야기보따리를 펼칠 그를 떠올리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돌아가는 길에 그가 떠나며 했던 말을 되새겼다. 끝까지 다정한 어투. 정말로 치사한 남자. Be my lover, Rick. |
| [미쿠라] Touch-cheetah |
섹스 피스톨즈의 세계관으로 쓰여진 글입니다. 다이아몬드 에이스 미유키 카즈야 X 쿠라모치 요이치 Touch-cheetah 흔히 그들을 먹이사슬의 최강자라고 불렀다. 호랑이, 늑대, 사자, 표범, 코끼리 등등… 그랬기에 중종 타이틀이란 어마어마한 네임드라는거다. 지나가기만 해도 웃고있던 입꼬리 가 자동적으로 내려가는, 주변에 나타나기만 해도 온 몸에 소름이 끼치는 그런 존재가 중종이었다. 한 마디로 중종이란 굴복 할 수밖에 없는 권력을 쥔 막강한 존재인거다. 그리고 나는 그딴거 신경 안 쓰는 애매한 종속이랄까. 중종에 들어가기에는 그다지 강한 편이 아니고 그렇다고 마냥 약한 존재도 아니다. 그렇다면 그저 여기저기를 왔다갔다 하면서 즐기는게 제일 좋은 방법이잖아? 나는 막 뽑은 탄산 음료를 곧장 따서 마셨다. 크하… 중종이니 경종이니 하나도 관심 없다고, 섹스만 하면 되는거 아냐? 점심시간이 끝나면 꿀같은 낮잠시간이 찾아온다. 굳이 수업을 안 들어도 야구부 트레이닝에 다녀왔다고 하면 되니까, 그럼 자볼까! 마침 햇살도 따사롭게 내리는게 타이밍마저 완벽하다. 바닥에 깔린 담요 위로 둥그렇게 몸을 말고 누워서 천천히 눈을 감았다. 꿈뻑꿈뻑 잠에 빠져드려는 때에 몸 위로 뜨거운 온기가 느껴졌다. 조금 덥긴 해도 따뜻해서 기분 좋은데……가 아니잖아! 누구야! 벌떡 일어나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았다. 짜증스레 시선을 옮기자 능글맞은 얼굴을 하고서 나를 올려다보고 있는 미유키가 있었다. ˝너 인마, 왜 벗고 있는데.˝ ˝더워서.˝ ˝근데 왜 달라붙고 난리야, 나도 덥다고! 막 자려고 했는데!˝ ˝글쎄다, 안아보고 싶었어.˝ ˝뭘 안아, 안기는.˝ ˝응, 너 지금 엄청 섹시하거든.˝ ˝무슨 소리……˝ 혹시나 싶어 머리 위에 손을 얹자 보슬보슬한 귀가 만져졌다. 힉! 숨을 들이켰다가도 생각했다. 섹스 안 한지가 오래 됐나? 갑자기 혼현이 들어날리가 없는데. 골똘히 생각중인 내 얼굴을 알아챈 미유키가 다시금 허벅지 사이로 손을 집어 넣었다. 이 자식은 늑대 주제에 왜 이렇게 손길이 뱀같아! 종아리를 앙 깨물어오는 미유키의 어깨를 발로 퍽 차내었다. ˝자제 좀 해라, 여기 학교야. 인마.˝ ˝이거 해결 안 하면 곤란한건 너잖아.˝ ˝그래도 싫어.˝ 미유키와 투닥대는 사이에도 햇살은 따뜻했다. 언제 더웠냐는듯 다시 나른해지기 시작해서 드러난 꼬리가 기분에 따라 살랑살랑 움직였다. 좀 더 자고 싶었는데. 짧은 숨을 뱉어내고는 아무렇게나 구겨진 담요를 주워들었다. 먼지가 묻은것을 탈탈 털어내는데 가만히 있던 미유키가 꼬리를 덥석 잡아왔다. 읏! 움찔 몸을 떨며 뒤돌아보자 의사의 변화가 없다는 듯 씨익 웃어보인다. 그리고는 자신의 입술을 혀로 할짝대더니 곧장 나를 끌어내려 입술을 부딪혀왔다. 뭐, 떠벌리고 다닐 놈도 아니고 미유키니까 섹스정도야 상관없나? 그렇게 생각한 난 톡톡 두드려지는 입술을 벌렸다. ˝으음, 응……˝ 입 속을 파고들어와 입천장을 핥아올린다. 소소로운 느낌에 몸을 바르르 떨자 뒤통수를 끌어당겨 더욱 깊이 입술을 먹으려 든다. 하읍, 숨을 쉬려다가 그대로 먹혀들어가는 바람에 호흡이 거칠어졌다. 벌어진 입술 사이로 미묘하게 섞여드는 혀들이 질척이는 소리를 냈다. 미처 입술 안으로 들어가지 못한 침이 입술 근처에 묻어 번들거렸다. 기우뚱하더니 포근한 느낌이 들어 정신을 차렸을때는 담요 위로 눕혀진 뒤였다. 와이셔츠는 언제 다 끌러내었는지 반팔 안으로 들어온 손이 유두를 유린하기 바쁘다. ˝하으, 나, 여자 아냐… 윽, 흐…˝ ˝감도는 좋은데.˝ ˝멍,청아…… 으읏.˝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진짜 여자 다루듯이 가슴을 주물럭 대는게 기분이 이상했다. 정확히 말하면 기분이 나쁘다기보다는 의외로 찌릿해서 이상 한 거였다. 친구한테 만져지는 주제에 고작 이정도로 느낀다는게 자존심이 상했다. 요즘 섹스를 안 해서 그래, 그래서 그런거야. 마음으로 위로해보았지만 한쪽 유두를 입에 물고 자연스럽게 사타구니를 파고드는 손길에 결국 인정해버렸다. 이 자식이 테크닉이 좋았던 걸 잊고 있었어. 미유키가 안경을 벗어 등 뒤로 아무렇게나 던지고는 으르르 목구멍을 긁어 울었다. 은색 눈동자, 머리 위로 솟은 검은 귀가 내 숨소리에 맞춰 쫑긋거렸다. 날 완전히 죽일 셈인가, 혼현까지 드러내고. 질 수 없다는 생각에 바지 위로 손을 갖다댔다. ˝보채지 말지?˝ ˝누가 보챈다고.˝ ˝난 손보다 입이 좋은데.˝ ˝그럴 참이었어.˝ 미유키를 뒤로 밀어 넘어뜨리고는 바지 지퍼를 내렸다. 이미 불끈거리고 있는 상태라 굳이 만져줄 필요가 없을 것 같아서 드로즈 위로 한껏 빨아올렸다. 쫍쫍 소리가 날 정도로 핥는 와중에 완전히 커져버려 드로즈 위로 귀두가 튀어나와 질척이고 있었다. 흐응…… 입꼬리를 올려 웃자 뭘 웃냐며 타박 해 온다. 무어라 더 말을 하기 전에 입 안 깊숙히 페니스를 담았다. 얼마나 참고 있었는지 기둥 위로 핏줄이 툭툭 불거져있었다. 혀로 핏줄을 꾹 누르자 아… 하는 낮은 탄성이 들려왔다. 그 반응이 너무나도 재밌어서 끝을 조심스럽게 물었다가도 손가락으로 핏줄을 꾹꾹 눌렀다. 이에 장난치지마, 하고 으르릉 엄포를 둔다. 입 밖으로 튀어나온 혀가 바쁘게 움직였다. 그런 내 머리를 꾹 누르며 바르작대던 미유키가 이쪽도 가만히 있을 순 없지 하더니 골반에 걸쳐져있던 내 바지를 벗기고 꼬리 끝단을 꾹 눌러왔다. ˝히으…!˝ ˝너, 꼬리 약하지? 전부터 느꼈던건데,˝ ˝흐, 앗… 하지, 마아……˝ ˝꼬리 만져지면 표정 야해지더라.˝ ˝손, 대지 마… 아, 안 해도 되니까……˝ 꼬리가 약점인 것을 여태까지 숨겨왔더니 이런식으로 당할 줄은 몰랐다. 꼬리를 주물럭거리면서 자위행위라도 하듯 위아래로 흔드는 탓에 몸을 바들바들 떨며 미유키의 허벅지에 얼굴을 부볐다. 어라아? 입이 너무 놀고 있는거 아니야? 즐거운듯 뜨거운 숨을 뱉어내며 웃는 미유키가 얄미웠다. 흥분감에 꼬리가 빳빳하게 굳어가고 있었다. 꼬리를 지분거리던 손이 그대로 엉덩이를 타고 내려가 구멍을 톡톡 두드렸다. 가차없이 들어오는 두 개의 손가락이 일말의 자비도 없이 움직였다. ˝하윽, 응! 자, 잠깐만… 흐, 아아, 잠깐, 미, 미유키, 읏…!˝ ˝못 기다린다고, 나는. 지금도 힘들어.˝ ˝아, 안돼…! 아… 윽, 후으, 천천히… 천, 으응…˝ ˝너 지금 페로몬 뿜어대고 있는 거 알고는 있어?˝ ˝몰라, 흐, 모르니까… 그,만… 아하으, 응! 미유키이… 하, 우응, 그마안…˝ 내벽 안을 부드럽게 쓸면서 빠져나가서는 급격하게 빨라지는 피스톤 질에 정신을 못 차렸다. 언제 늘어났는지도 모를 손가락들이 안에서 꿈틀거리며 자극해왔다. 미유키의 허벅지를 꽉 쥐고 한아름 울어대는데 순식간에 빠져나간 손가락에 열린 구멍 사이로 찬 기운이 들어와 소름이 끼쳤다. 겨우 숨을 쉴 틈이 생겼다 싶어 힘겹게 호흡을 하는데 몸을 일으켜 세운 미유키가 쉬는 시간 없다ㅡ 하며 목덜미를 내리눌렀다. 담요를 손에 꾹 말아 쥐고 슬쩍 고개를 들었을 때에는 미유키는 온데 간데 없었다. 당황해서 미유키의 이름을 부르려는데, ˝뒤에 있어, 나.˝ ˝어? 아…… 잠깐, 왜?˝ ˝왜긴, 해야지.˝ ˝뭐, 뭘!˝ ˝섹스.˝ ˝급한 거 아니잖아! 나 아직 덜 풀었고, 또… 아무튼 아픈 건 싫어!˝ ˝아… 정말이지, 분위기 깨지 말라니까.˝ ˝그게 문제가 아니잖아! 멍청아!˝ ˝기분 좋게 해줄게, 그러니까 잠자코 있어라.˝ 악력으로 목덜미를 내리 누르는 게 꼭 지배당하는 느낌이라 기분이 나빴다. 으득 이를 갈며 눈을 꼭 감았다. 평소에도 아픈 걸 싫어했는데 풀리지도 않은 뒤로 어마어마한 굵기의 페니스가 들어올 걸 생각하니 벌써부터 정신이 아찔했다. 입구에 뭉글한 끝이 닿는 것이 느껴져 허리를 빳빳하게 굳히자 피식 웃는 소리가 들렸다. 으으… 두려움에 바들바들 떨자 엉덩이를 강하게 내려쳐온다. 아! 벌어진 입 안으로 손가락을 집어넣은 미유키가 크게 숨을 들이키더니 단번에 뿌리 끝까지 박아 넣어 왔다. ˝흐윽…!˝ ˝하아, 봐, 들어갔지?˝ ˝윽, 으, 으…… 흐, 하아……˝ 갑작스럽게 벌어진 구멍이 아려왔다. 감았던 눈이 번뜩 뜨일 정도로 놀라서 눈에 눈물까지 맺혔다. 평소에 그렇게까지 지켜봤으면 이런 걸 무서워 할 거란 것도 알 터인데 괘씸한 마음에 손가락을 콱 깨물자 어쭈? 하더니 길게 빠져나갔다가 또다시 쿵 박아 넣으며 말했다. 네가 아무리 그래도 늑대랑 치타는 다르다는 거 알잖아? 낑낑대며 몸을 바로잡지 못 하자 안쪽으로 말려들어간 내 귀 위로 쪽 입을 맞추더니 천천히 허리를 움직였다. 세게 깨물었는지 입 안으로 피가 퍼져들었다. 제대로 소리도 내지 못 하고 미유키의 손목을 붙잡은 채 피가 나는 손가락을 핥았다. ˝치타가 겁, 먹는 것도 나름, 하… 귀엽네.˝ ˝응, …으, 읏, 흐아, 으……˝ ˝고양이 과여서 그런가?˝ 말은 그렇게 해도 처음을 제외하고는 계속해서 참고 있었다. 다른 놈들이라면 분명 자기 멋대로 허리를 흔들어 댔을 거다. 그런데도 미유키는 놀리는 의도가 아니라면 끝까지 배려해주고 있었다. 그게 오히려 몸을 더욱 뜨겁게 만들었다. 귓가에 내려앉는 다정한 목소리에 귀가 셀 수 없이 쫑긋거렸다. 입 안에 있는 손가락에 피가 멎을 때까지 핥은 나는 간질거리는 기분에 몸을 바르작댔다. 그것을 단번에 알아차린 미유키가 입 안에서 손가락을 빼내고는 프리컴으로 젖은 내 페니스를 부드럽게 쥐었다. ˝으, 미유키…… 읏, 하…˝ ˝이제 움직인다?˝ ˝처, 천천히… 해, 아픈거 싫…으니까…˝ 정말 부탁한대로 천천히 아프지 않게 허릿짓을 시작한 미유키가 떨리는 등 위로 쪽쪽 입을 맞춰왔다. 목덜미를 시작으로 아프지 않게 깨물며 빨아들여 자국을 만드는가 하면 긴장을 풀어주기 위해 머리를 쓰다듬어주기도 했다. 덕분에 힘이 조금씩 빠지기 시작하고 아플정도로 굳어있던 꼬리도 다시금 살랑거리며 미유키의 배를 간질였다. 어느정도 괜찮을 것 같다고 생각했는지 아까보다는 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속을 꽉 채우는 이물감이 낯설었지만 기분은 좋았다. 담요를 쥔 손 위로 자신의 손을 겹쳐 잡은 미유키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귓가에 속삭였다. ˝좋아해.˝ ˝아, 으, 뭐, 뭐…… 윽, 우으, 응……˝ ˝좋,아한다고… 읏, 쿠라,모치.˝ ˝응, 응… 후윽, 아… 나, 나는…… 하, 아!˝ ˝하, 좀만 더… 힘 빼.˝ 서로 맞댄 몸이 뜨거웠다. 미유키는 계속해서 좋아한다는 말을 속삭이고 있었고 그 탓인지 흥분은 더욱 더 커져만 갔다. 허릿짓이 빨라지면 빨라질수록 입 밖으로 튀어나오는 소리는 커졌고 미유키의 이름을 부르는 횟수도 늘어났다. 잡고 있던 손에 힘이 들어가는 순간 동시에 파정하며 바닥에 몸을 기댔다. 배 안이 꿀럭이고 있어. 내 말에 미유키가 분위기 깬다며 어깨를 앙 물었다. 하아, 하아, 엎드려 있는 등 위로 미유키의 호흡이 느껴졌다. 바람에 뜨거웠던 몸이 식어가고 조금 추워 질 때 즈음 미유키가 내 안에서 빠져나갔다. 힘이 다 빠져서 축 처져있는 나를 일으켜 세운 미유키는 손수 옷까지 입혀주고는 이마에 쪽쪽쪽 입을 맞췄다. ˝아, 뭐해……˝ ˝너 아까 내가 한 말 제대로 들었어?.˝ ˝어.˝ ˝무슨 반응이 그래.˝ ˝…뭐라고 반응해야 하는데.˝ ˝싫다는 말은 안 하네, 그럼 오늘 너희 집 들렀다 갈게.˝ ˝왜.˝ ˝말씀 드려야지, 너랑 나랑 섹스했다고.˝ ˝뭐? 야.˝ ˝우리 집안은 한 번 섹스하면 그 사람이랑 결혼 해.˝ ˝야, 잠깐, 뭐야? 그거 알면서 나랑 했어?˝ ˝좋아한다니까?˝ ˝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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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루코미] 메이트, 메이트, 메이트 하이큐 사루쿠이 야마토x 코미 하루키 1. 클래스메이트 코미 하루키는 새우튀김을 좋아한다. 사루쿠이는 그르렁거리는 소리를 내며 자고 있는 코미의 책상에 팔을 올리고는 그의 앞에서 몸을 숙였다. 그리고 그의 볼을 손가락으로 쿡 찔렀다. 아직은 애띈 볼이 말랑말랑했다. 사루쿠이는 살짝 웃음을 터트리며 코미를 불렀다. 코미, 점심시간. 코미는 누군가가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머리를 흔들었다. 코미는 고개를 천천히 들어 자신의 앞에 있는 사루쿠이의 눈을 멍하니 응시하였다. 사루쿠이는 코미의 눈을 빤히 바라보다가 시계를 한 번 보고는 코미에게 말했다. 밥 먹자. 코미는 입가에 흘러내린 침을 황급히 닦아내고는 이내 고개를 들어올렸다. 코미는 눈을 감고는 기지개를 켰다. 몇 시간동안 계속 엎드려 있어서 그런 것인지 어깨가 걸렸다. 사루쿠이는 자리에서 일어나 코미의 자리의 앞에 있는 의자를 돌렸다. 그리고 자신의 도시락통을 코미의 책상 위에 올렸다. 코미는 사루쿠이의 도시락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이내 허리를 숙여서 자신의 가방을 열었다. 가방을 한참 동안 뒤지던 코미는 노란색의 도시락에는 꺼내 자신의 책상 위에 올리고는 뚜껑을 열었다. 그리고 젓가락을 들어 언제나 비슷한 반찬을 집어 입에 넣었다. 입안이 텁텁했지만 다시 가방 속에 손을 집어넣어 물을 꺼내기가 귀찮았다. 밥알을 대충대충 씹어넘기던 코미는 사루쿠이의 도시락 위에 있는 새우튀김을 보고는 눈을 빛냈다. 사루쿠이는 그런 코미를 보고는 웃음을 터트리며 자신의 밥 위에 올려져있는 새우튀김을 들어 코미의 도시락 위에 올려두었다. 코미는 눈을 반짝이며 사루쿠이가 건낸 새우튀김을 젓가락으로 짚었다. 왠 새우튀김이야. 사루쿠이는 고개를 살짝 가로젓고는 젓가락을 내려두었다. 부모님이 며칠 집 비운다고 너한테 잘부탁한다는 뇌물이래. 코미는 시원스럽게 웃었다. 네가 엄청 못미덥나보네. 잘 먹겠다고 전해드려. 코미는 입을 벌려 살이 통통한 새우튀김을 입에 넣었다. * 마지막 교시가 끝났음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려퍼졌다. 사루쿠이는 금새 가방까지 다 챙겨놓은 코미를 보고는 그의 등을 손가락으로 툭툭 쳤다. 코미는 뒤를 살짝 돌아보고는 할 말이 있으면 하라는 듯이 어깨를 들썩였다. 사루쿠이는 자신의 가방을 챙기며 코미에게 말했다. 오늘 당번이니까. 먼저 가 있어. 코미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가방을 뒤로 멨다. 그리고 인사가 끝나기 무섭게 체육관이 있는 방향으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사루쿠이는 자리에서 일어나 천천히 가방을 챙기기 시작했다. 같이 당번인 아이와 공책을 나르고 부활동을 하러가면 분명 코미는 진지한 얼굴로 코노하의 서브를 받아내고 있을 것이다. 기대가 됐다. 나른하게 잠에 빠져있는 코미의 얼굴도 좋았지만, 진중한 태도로 미간를 살짝 찌푸리고 있는 것도 좋았다. 사루쿠이는 가방을 메고는 교탁 위에 있는 공책을 들어올렸다. 같이 당번을 맞게 된 여학생도 교실 문을 잠그고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사루쿠이와 발 맞추어걸었다. 사루쿠이군은 하루키랑 정말 친하네. 어릴 때부터 알던 사이야? 사루쿠이는 자연스럽게 이름을 부르는 그녀에 어깨를 살짝 떨고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그녀에게 말했다. 아니, 고교에 입학하고 처음 알았어. 근데 이름 저기. 그녀는 자신의 입을 살짝 가리고는 꺄르르 웃었다. 코미는 작으니까, 귀엽잖아. 동생 같아. 여자애들끼리 놀린다고 종종 그렇게 부르는데. 역시 사루쿠이군한테는 조금 거슬렸구나. 미안해. 거슬려, 거슬려, 거슬려. 머리 속에 짜증이 피어올랐다. 자신은 3년 동안 옆에서 멤돌아도 쉽사리 내뱉지 못하는 말을 겨우 몇 개월 만난 여자들이 함부러 한다는 것에 불쾌함이 밀려왔다. 사루쿠이는 가장 밑에 있는 공책의 끝을 손가락으로 살짝 긁었다.
2.팀메이트 코미는 답이 하나로 정해져있는 과목들을 좋아하지 않았다. 어째서 싫어하냐고 물어보면 자리에 잠시 멈춰서서 팔을 벌리고는 아주 단순한 답을 하고는 했다. 왜, 항상 답은 하나만 있어야 해? 어떤 사람은 A라고 대답할 수도 있는거고, 또 다른 사람은 B라고 대답할 수도 있는거잖아.
코미는 자신의 머리를 헝크려트리고는 책상에 머리를 박았다. 어째서 이 시간에 이런 좁아터진 교실에서 보충을 하고 있는지 자신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놈의 쪽지시험. 그러게 사루쿠이가 공책을 빌려준다고 했을 때 제대로 봤었어야 했다. 사루쿠이는 부스스한 코미의 뒷모습을 보고 작게 웃음을 터트리고는 가방을 열어 공책을 열었다. 그리고 자리에 주저앉아 문 틈 사이로 드문드문 보이는 문제들을 보고는 천천히 풀어내려가기 시작했다. 마지막 점까지 찍는 것을 마친 사루쿠이는 공책을 찢어 사각형으로 접었다. 그리고 코미와 가장 가까운 쪽에 있는 창문을 선생님이 알아차리지 못하게 열었다. 사루쿠이는 고민 없이 종이를 창문틈으로 밀어넣었다. 나풀거리는 종이가 코미의 머리 위로 떨어진 것을 확인한 사루쿠이는 몸을 숙였다. 그리고 바닥에 펼쳐져 있는 공책을 다시 접었다. 코미는 자신의 머리 위에 떨어진 종이에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코미는 창문가에 기대어 있는 사루쿠이를 발견하고는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사루쿠이는 자신을 향하여 웃고 있는 코미를 발견하고는 손을 들어 그에게 흔들었다. 그리고 검지 손가락을 들어 칠판을 가르켰다. 코미는 칠판에 적혀 있는 문제를 확인하고는 사루쿠이가 넣어준 종이를 소리가 나지 않게 펼쳤다. 새하얀 종이에 여백 없이 깔끔한 풀이들이 적혀 있었다. 코미는 종이를 책상 서랍에 밀어넣고는 힐끔 거리며 자신의 종이 위에 옮겨적기 시작했다. 줄이 없는 하얀 백지 임에도 불구하고 사루쿠이의 글자는 좀처럼 흐트러지는 법이 없었다. 글자들끼리 서로 약속이라도 한 것 마냥 각각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고 옹기종기 모여있었다. 재빠르게 사루쿠이의 풀이를 옮겨쓴 코미는 자리에서 일어나 일을 보시고 계시는 선생님에게 종이를 내밀었다. 선생님은 생각보다 빨리 내밀어진 종이에 고개를 들었다. 코미는 선생님에게 재촉이라도 하듯이 눈을 부릅 뜨고는 그의 눈 앞에서 종이를 팔랑팔랑 흔들었다. 선생님, 부활 가야해요. 빨리 검사해주세요. 코미는 가방을 둘러메고는 문을 열고 교실을 나섰다. 창문 아래에서 무릎을 세우고 있던 사루쿠이는 문을 나서는 코미와 눈을 맞추었다. 코미는 어느새 자신의 시선이 올라가버린 사루쿠이에 안타깝다는 듯이 혀를 찼다. 어쩌면 자신이 계속 해서 보충할 거리를 만드는 이유는 잠시나마 사루쿠이를 내려다볼 수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 코미는 얼굴을 붉혔다. 초등학생이나 생각할 법한 유치한 이유였다. 괴롭히는 것도 아니고, 고작 5초 정도 내려다보는게 좋다고 귀찮게 여기까지 데리러 오게 한다니. 이런 생각이 들킬까 부끄러워졌다. * 원터치! 코미! 연습형식으로 하던 게임은 B팀의 승리로 끝났다. 오늘은 보쿠토가 컨디션이 좋은 편이였는지 이기는 것이 아주 수월했다. 코미는 오늘 범했던 리시브 실수를 떠올리고는 코노하에게 말했다. 코노하, 리시브 연습 좀 도와줘. 코노하는 땅에 떨어진 공을 주워올리며 고개를 들어 코미에게 말했다. 그럼 대신 마치고 오늘 튀김 사줘. 코미는 잠시 눈을 깜빡이며 코노하에게 거절의 의사를 표하였다. 오늘 사루쿠이 집에서 같이 비디오 보기로 했는데. 코노하는 질렸다는 듯이 고개를 설레 설레 저으며 코미에게 공을 던졌다. 또 사루쿠이냐, 너네는 질리지도 안나보다. 그러니까 네가 연애를 못하지. 둘의 대화를 지켜보던 아카아시는 바닥에 있는 물통을 들어올리고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다가 코미에게 물었다. 사루쿠이씨랑은 저번 주말에도 만났다고 하지 않으셨나요? 그때는 그럼 뭐 했어요? 그냥 같이 영화보고, 밥 먹고, 이야기 좀 하다가 집에 갔어. 아카아시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코미에게 물었다. 그건 연인끼리 하는 데이트 아닌가요? 친구라면 조금 더 뭐랄까. 같이 비디오 게임을 한다거나, 만화책을 빌려본다거나 이런 일상적인 것들을 하지 않나요? 코미는 잠시 고민하는 듯이 눈을 질끈 감았다. 확실히 이야기를 듣고 생각해보니, 전부다 사루쿠이와 함께하는 것들이였다. 이상하다. 여지껏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이질감이 바닥에서 다리를 타고 스멀스멀 올라왔다. 코미는 손으로 공을 꽉 쥐고는 아카아시에게 되물었다. 꼭 그렇게 이름을 붙여야만 할 수 있는 것들인가? 3.데이트메이트 사루쿠이는 애매함을 별로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다. 애초부터 알고 있는 사실이였다. 그저 지금 이런 일상이 너무 좋아서 모른 척 했을 뿐이였다. 사루쿠이는 실실 웃는 눈을 하고서는 자신에게 언제나 묘한 압박을 가했다. 말도 안되는 어리광이라는 것 쯤은 이미 잘 알고 있었지만 팽팽하게 당겨진 줄을 당기고 싶지도 끊어내고 싶지도 않았다. 이런 묘한 고민이라니 자신 답지 않았다. 코미는 기지개를 한 번 켜고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도쿄의 밤은 환하다. 칠흑같은 어둠이 번득여야할 밤은 어둡지 않았다. 어지러운 불빛들이 주변을 가득채웠다. 코미는 코노하에게 손을 흔들어주고는 져지 지퍼를 올렸다. 어느새 코미의 옆에 다가온 사루쿠이는 자연스럽게 코미와 발을 맞추어걸었다. 한참동안이나 말 없이 걸어가던 코미는 입을 열었다. 사루쿠이. 사루쿠이는 언제나 그렇듯이 다정한 눈길로 코미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왜? 코미는 어색하게 웃으며 연습 중에 아카아시에게 들었던 말들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너랑 나랑은 친구 같지가 않데. 사루쿠이는 어색하게 웃으며 코미에게 되물었다. 그럼 뭐라고 불러야 할까. 몰라, 주말에 만나서 영화보고 그러는 건 연인끼리 하는거래. * 코미는 콜라캔을 사루쿠이에게 내밀고는 그의 다리 사이에 앉았다. 사루쿠이는 코미의 허리에 팔을 두르고는 재생되기 시작하는 비디오를 바라보았다. 코미는 콜라를 홀짝이며 비디오에 집중하였다. 사루쿠이는 잔뜩 집중하여 비디오를 보고 있는 코미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코미는 딱 이정도가 괜찮은 거지? 비디오에 집중하던 코미는 머리에 울리는 사루쿠이의 목소리에 말 없이 바닥을 내려다보았다. 아슬아슬, 팽팽하던 줄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가슴이 뛰었다. 드디어 사루쿠이가 끈을 당길 방법을 알아냈다. 머리에 피가 몰렸다. 이렇게 가다가는 끌려가는 것은 멀지 않은 이야기 일 것 이다. 딱 떨어지는 것은 싫다. 그렇지만 이렇게 여러가지의 수를 모두 잃어버리는 것은 더더욱 싫었다. 사루쿠이는 코미의 입에서 나올 답에 대하여 고민하였다. 뻔했다. 코미는 이 선을 넘어버린 물음을 다시 잘라버릴 것이 분명하다. 모순이다. 답이 하나 인 것은 정말 싫어하면서 어째서 자신의 앞에 하얀 선을 그어버리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사루쿠이는 문득 코미의 입에서 나올 긍정의 말이 듣기가 싫어졌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붉은색 캔에 담겨있던 콜라가 사루쿠이의 발에 걸려 바닥에 쏟아졌다. 코미의 짧은 바지가 콜라에 젖어들어갔다. 옷, 더러워지겠다. 갈아입을 거 가져올게. 코미는 고개를 가로젓고는 사루쿠이의 옷자락을 손이 떨려올 정도로 세게 쥐었다. 자신의 옷자락을 잡고 있는 코미의 손을 바라보다가 눈꼬리를 살짝 접었다. 왜 그래. 코미는 가방 안에 들어 있는 전화기를 들어서는 익숙하게 자신의 집으로 전화를 걸었다. 몇 번의 신호음 이후에 수화기 넘어에서는 익숙한 가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코미는 숨을 한 번 들이마시고는 전화기에 대고 나긋하게 말했다. 엄마, 오늘 사루쿠이네 집에서 자고 갈게. 오늘 혼자 있어야한다고 해서. 응, 알았어. 코미는 전화기를 내리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천천히 사루쿠이에게 다가갔다. 코미는 사루쿠이의 뒤로 손을 뻗어 전등을 껐다. 나는 여기까지만 할게. 이제 네 차례야. 어둠 속에서 코미의 눈이 반짝였다. 줄을 당기면 그대로 끌려가면 되는 것이였다. 이렇게 자리에 서서 망설일 필요는 없었다. 친구고 연인이고 전부다 자신이 옆에서 해주면 된다. 이렇게 조금만 떠밀면 마지못해 당겨줄 걸 왜 그렇게 고민 해왔는지, 지나간 시간들이 아까웠다. 코미는 몸을 돌려 다시 자신이 일어났던 자리에 앉았다. 사루쿠이는 한참동안이나 코미의 눈을 응시하다가 문을 살짝 닫았다. 사루쿠이는 문고리를 잡고는 손가락으로 꾹 눌렀다. 문에서 철컹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코미는 어느새 끈적끈적해진 콜라에서 손을 뗐다. 그리고 가늘게 숨을 내쉬며 눈을 감았다. Fin 급하게 쓴게 티가 확확 나네요. 금손 많은 익만에 똥 하나 싸고 가서 죄송합니다. |
| [쿠로히나] 후에(明戀)(미완) |
*따뜻할 후, 그리워할 연 어머니의 손을 잡고 걸을 때면, 그것이 마냥 좋아 어린 소년은 해맑게 웃어 보이며 어머니의 손을 꽉 잡아쥐었다. 평소라면 저를 무시했을 어머니가 먼저 손을 건네준 건 이번이 처음이었기에, 어딜 가는 지 영문도 모른 채 그렇게 어린 소년은 어둑한 밤길을 어머니의 손을 잡은 채 걸어나갔다. 귀가에 울리는 자명종 소리에 쇼요는 인상을 잔뜩 찡그리며 자명종을 끄곤 이불 속으로 파고들었다. 겨우 방을 얻어 산, 월세 30만 원의 지하 단칸방. 난방을 틀 엄두도 안 나 이불 몇 겹으로 생을 연맹한 지 어언 3년. 고등학교 졸업도 못 한 쇼요에게 돈을 벌 수단이라곤 편의점 아르바이트뿐이었다. 몇 년 동안 저축했던 돈은 방을 빌려 사느라 탕진한 지 오래였고, 손을 뻗어줄 친구, 가족조차 없었다. 기억 속에 남아있던 어머니의 미소는 흐릿해졌으며 따뜻했던 손의 온기는 이미 잊힌 지 오래다. 쇼요가 8살이 되던 해. 어머니의 따뜻한 손을 잡고 따라갔던 까만 밤. 눈을 떴을 땐 외딴 동네에 홀로 남아 버린 어린 소년은 그렇게 스스로 살아가는 법을 터득해나갔다. 쇼요의 두 번째 집은 자기 또래의 아이들이 많은 고아원이었다. 도시 한곳 판에 울고 있던 아이가 걱정되었는지 손을 뻗어준 아저씨께서 데리고 온 곳이다. 처음 발을 들였을 때 사방에서 쏟아진 시선이 부끄러워 쇼요는 고개를 푹 숙였다. 하지만 점점 시간이 지나면서 늘어나는 아이들과 몇몇 어른들의 품 안에 안겨 고아원을 나가는 아이들의 모습에 의문을 가진 쇼요는 선생님의 옷깃을 잡아 물었다. 선생님, 얘들은 어디 가는 거예요? 선생님은 쇼요에 물음에 머뭇거리다 새로운 가족을 만나는 거야. 라며 쇼요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쇼요는 여전히 의문을 가진 채 입을 열었다. 그러면 저희 엄마는요? 쇼요의 말에 선생님은 두 무릎을 굽히곤 쇼요를 꽉 껴안았다. 귓가에 울먹이는 흐느낌도 들린듯하였다. 느릿하니 제 등을 토닥이는 따듯한 손에, 쇼요도 따라 고사리 같은 손으로 어설프게 선생님을 토닥여주었다. 14살. 중학교라는 곳에 입학하게 된 고아원 아이들과 쇼요는 설레는 마음을 가지고 자신보다 큰 교복을 입었다. 중학교를 졸업한 학생들이 고아원 아이들에게 물려주라고 전해주었던 교복은 이리 해지고 저리 해져있었지만, 그런대로 못 걸칠만하진 않았다. 바지 길이가 너무 길다 싶으면 선생님이 바늘과 실을 가져와 재단을 해주었다. 쇼요와 아이들은 그때만 해도 함박웃음을 띤 채 기뻐하였다. 사춘기의 아이들이 모인 중학교에 첫발을 내딛고 얼마 안 가 고아라는 말은 입소문을 타고 퍼져나갔다. 몇몇 아이들과는 주먹다짐을 할 때도 있었다. 그때마다 들리는 어른들의 말은 짜고 치기라도 했듯이 똑같았다. 이래서 부모 없는 것들이라곤. 쇼요는 주위에 쏟아지는 시선에 곧잘 위축되어 선생님의 등에 숨으면 선생님은 언제나처럼 히나타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우리가 잘못한 게 아니에요. 말을 하고 싶어도 푹 수그리는 선생님의 허리에 쇼요는 따라 허리를 숙였다. 주위의 시선으로 인해, 중학교를 버티지 못하고 나가는 아이들은 날이 갈수록 늘어났다. 그런 아이들은 대게 고아원의 일을 도와 시간을 죽이던가, 나이를 속여 아르바이트 따위를 하였다. 쇼요 역시 몇 번이고 포기할까 고민을 했다. 곁에 있던 친구들은 서서히 사라져 가 자신 혼자 이 사회에 남게 되는 게 싫었기에. 하지만 포기하기엔 진 빚이 너무나도 많았다. 선생님의 굽은 허리와 사라져 가는 아이들의 미소를 자신의 힘으로는 지켜낼 수가 없어, 쇼요는 중학교를 졸업하는 것으로 그들의 걱정을 한 풀 꺾어주고 싶었다. 억지로 버티고 버티며 맞이한 중학교 졸업 날, 고아원 아이들은 쇼요를 포함한 다섯 명이 전부였다. 그토록 기다리던 졸업식 날에, 쇼요는 꽃다발을 들고 오열을 하였다. 자신이 대견했기에, 그리고 몸을 무겁게 억누르던 짐을 덜 수가 있었기에. 쇼요는 중학교 졸업 후 며칠은 선생님의 일을 도왔다. 고등학교는 의무도 아니면서, 정부가 지원해준다 한들 그곳에 들어가는 학비는 만만치 않았다. 그것을 알고 있기에, 쇼요는 선생님에게 더는 폐를 끼칠 수없어, 스스로 아르바이트를 하며 고아원에 보탬이 되어줬다. 그 날도 어김없이 아르바이트를하러 옷을 여미고 밖에 나갈 준비를 하고 있을 때였다. 선생님은 갑자기 다급하게 쇼요를 향해 손짓을 해 보였다. 쇼요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다가간 곳에는 인자하게 보이는 50대의 노부부가 서 있었다. 쇼요가 멍하니 노부부를 쳐다보자 선생님은 웃음기 머금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쇼요, 너의 새로운 부모님이란다. 목재 소재로 지은 집안은 따뜻했다. 쇼요가 노부부를 불편해하면 노부부는 따뜻한 손길로 쇼요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어주었다. 이제부터 여기가 우리들의 집이란다. 쇼요가 처음 집에 발을 들이고 들은 말이었다. 우리들, 이라고 하였다. 저를 키워주었던 어머니에게 나는 '우리'였을까. 쇼요가 혼란스러워하는 표정을 짓자 노부부는 소파를 툭툭 쳤다. 쇼요는 머뭇거리다 노부부 맞은편 소파에 엉덩이를 앉혔다. 여성은 쭈글쭈글한 손을 뻗어 불안한 듯 무릎을 탁탁 쳐가는 쇼요의 손등을 그러쥐었다. 카와세 쇼요, 이제부터 너의 새로운 이름은 '히나타 쇼요'란다. 부드럽게 지어진 호선은 절로 쇼요의 마음을 한풀 풀어주었다. 맞은편에 있던 남자는 쇼요에게 종이 한 장을 건네주며 손가락으로 어딘가를 가리켰다. 여기 보이니, '히나타 쇼요'라는 이름이. 쇼요는 떨리는 손으로 종이를 잡았다. 낯선 이름들 사이로 쓰여 있는 이름은 자신의 이름이었다. 저를 버린 어머니가 지어주었던 이름, 카와세 쇼요가 아닌 '히나타 쇼요'말이다. 뚝뚝, 볼을 타고 흐르는 눈물은 종이를 적시며, 시야가 흐릿해지자 쇼요는 손등으로 눈가를 비볐다. 따뜻한 미소를 머금은 여성은 쇼요를 끌어당겨 안으며 등을 토닥이고, 투박하지만 듬직한 손을 가진 남자는 쇼요의 부스스한 주황빛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쇼요는 학교 종이 마치는 소리가 들리자 재빨리 가방을 쌌다. 새로운 부모님은 쇼요에게 고등학교에 다녀보는 건 어떻겠냐고 물었다. 쇼요는 그들에게 폐를 끼치는 게 싫어 한사코 거절하였지만 부드러웠던 노부부는 그때만큼은 강압적이었다. 쇼요가 풀이 잔뜩 죽은 채 그러하겠다고 말을하자 여성은 따뜻한 품 안으로 쇼요를 끌어당겼다. 쇼요가 친구를 많이 사귀었으면 좋겠구나. 그것이 자신을 그토록 고등학교에 입학시키려는 이유였을까. 노부부의 맘을 전해듣자 뭉클한 맘에 쇼요는 눈가를 붉혔다. 그렇게 하여 다닌 고등학교는 생각보다 재미있었다. 새로운 친구와 새로운 교복, 새로운 환경. 모든 게 새로웠다. 따뜻한 품과 손길, 그리고 미소. 자신은 누릴 수 없다 여겼던 것들이 한 번에 찾아왔다. 쇼요는 만연 입가에 웃음을 띄운 채, 언제나처럼 집으로 달려갔다. 집에 도착하기 몇 미터 남짓한 거리에서 쇼요는 발걸음을 멈췄다. 사람들은 어딘가에 시선을 두고는 저들끼리 웅성대기 시작했다. 빨간 차는 긴 호수에서 물을 뿌려대고 있었다. 하늘로 승천하는 연기는 누군가의 염원인 양 하늘거리며 날아갔다. 쇼요의 머리털 색과 같은 붉은색의 무언가가, 쇼요와 노부부의 안식처를 빠르게 갉아먹었다. 정신을 차렸을 땐 까만 옷을 입는 저가 있었다. 정면에 보여지는 것은 노부부의 행복한 듯이 웃고 있는 사진이었다. 쇼요는 인지할 수 없는 상황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곳은 어딜까. 왜 자신이 이곳에 있는 걸까. 사람들은 왜 모두 울고 있는가. 머리 속에서 떠다니는 의문들은 넘치고 넘쳤다. 그때 혼란스러운 쇼요에게 다가온 것은 본 적 없는 얼굴이었다. 노부부의 여성과 똑 닮은 얼굴의 여자는 쇼요에게 다가와 이모라고 말하였다. 눈을 끔뻑이며 보고만 있자, 자신을 이모라 말한 여자는 반지가 곳곳이 끼워져있는 손으로 쇼요의 손을 잡았다. 부드럽게 쇼요의 손등을 쓰다듬으며 저를 바라보는 여자의 눈엔 탐욕만이 가득했다. 여자는 그렇게 한차례 자신을 각인시키듯 쇼요의 손을 잡다, 급한 일이 있다며 자리를 떴다. 곧이어 들어온 험악하게 생긴 남자는 저를 따뜻한 손으로 쓰다듬어주었던 남자와 닮아있었다. 남자는 쇼요를 쳐다보자 똑바로 걸어오며 손을 뻗었다. 쇼요의 어깨를 툭툭 치던 손길에는 무거운 감각이 실려있었다. 안타깝게 됐구나. 말하는 당사자는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았다. 쇼요는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얼른 남자가 가길 바랬다. 하늘은 쇼요의 소망을 들어줬는지 남자는 몇 초 후 쇼요를 힐끔 이며 쳐다보다 등을 보였다. 쇼요는 힘이 풀려버린 다리에 그대로 풀썩, 바닥에 주저앉았다. 3일은 순식간이었다. 노부부를 찾아오는 사람들을 맞이하면, 사람들은 오묘한 표정으로 쇼요를 보다, 곧 소년의 어깨를 토닥여주었다. 3일째 되는 날에는 관에 고이 모셔두었던 노부부의 시체를 화장했다. 활활 타오르는 불길과 굴뚝에 솟은 연기는 춤을 추듯이 일렁거렸다. 마치, 쇼요에게 인사를 하듯이 말이다. 덜컹대는 버스에 몸을 기대며 노부부의 뼛가루가 들어있는 상자를 꼭 껴안았다. 그들에게 어울리는 마지막 인사를 하고 싶었다. 자유롭고 인자했던, 그리고 따뜻했던 그들에게 대한 보답을 말이다. 창 너머엔 파란 강물이 흘러가고 있었다. 따뜻하진 않더라도, 가는 길을 편안하게 해주고 싶었다. 아버지라고 불리는 자의 고향이며, 어머니라고 불리는 자가 좋아하는 이 강에서. 삐걱대며 바퀴 굴러가는 소리가 멈추자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은 줄줄이 버스에서 내렸다. 그중 제일 앞에 서 있던 쇼요는 강에 천천히 다가갔다. 숨을 크게 들이마시다 상자 뚜껑을 열어 고운 하얀 가루를 어루 만지었다. 한 번도 아버지, 어머니라고 불러본 적이 없었다. 노부부는 천천히 불러도 된다고 쇼요를 토닥였지만 내심 실망한 기색이 눈에 띄었다. 하지만 그때의 쇼요에겐 그것을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었다. 그것이 이토록 후회될지 몰랐다. 지난 몇 개월 뿐이었지만 저에게 온 정성을 준 그들에게 말이다. 쇼요는 하얀 장갑을 낀 손으로 가루를 한 움큼 집어 강에 뿌렸다. 일렁이는 강은 노부부를 잡아 삼키듯 출렁거렸다. 뚝, 뚝 떨어지는 눈물에 시야가 흐릿해지자 쇼요는 눈을 꾹 감았다. 집은 타버리고 노부부는 이 세상에 없었다. 소요에게 돌아갈 곳도 사라졌다. 그때 쇼요에게 손을 뻗어준 사람은 자신을 이모라고 칭했던 여자였다. 여자는 흐느끼며 쇼요를 부퉁켜안은 채 말하였다. 같이 살자, 라고-. 여자의 집은 온갖 비싼 사치품으로 가득했다. 투박하였던 노부부의 집과는 정반대였다. 여자는 편히 지내라고 말하였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여태 저가 살았던 환경과는 너무나도 달랐기 때문에, 며칠 동안은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였다. 음식을 먹다 몇 번 체한 적 또한 있었다. 그럴 때마다 여자는 지극정성으로 쇼요를 돌봤다. 마치 제 배 아파 낳은 자식처럼. 한 달 즈음이 되자 서서히 적응해나가던 쇼요에게 여자는 글자가 빼곡히 적힌 종이를 내보였다. 쇼요가 가리키며 물어봐도, 여자는 그저 사인만 하면 된다고 얼버무렸다. 쇼요는 이것으로 여자에게 폐를 끼친 모든 게 없어진다면 사인하나 뭐가 대수냐고 생각하며 생전 써본 적 없는 사인이란 것을 해보았다. 서걱이는 소리에 여자는 만연 입가에 미소를 띠고는 쇼요를 안았다. 쇼요 역시 이모라 자칭하였던 여자를 안으며 기분 좋은 미소를 띠었다. 여자의 따뜻함은 모두 거짓인 마냥 그 날 이후로 여자는 달라졌다. 저를 대하는 여자의 얼굴에 미소는 사라지고 혐오감만이 가득 차있는 듯했다. 얹혀사는 주제에 염치없는것 이 아니냐는 듯이. 쇼요는 여자가 그런 얼굴로 저를 맞이할수록 더욱 노력하며 여자의 얼굴에 미소를 짓게 만들고 싶었다. 하지만 쇼요가 아무리 노력하여도 여자는 쇼요를 눈엣가시처럼 여겼다. 그제야 쇼요는 모든 노력이 필요 없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여자는 이미 저를 싫어하니까. 저를 낳아준 어머니처럼. 쇼요는 밤늦게 몇 없는 짐을 싸 집을 나섰다. 갈 곳은 없었다. 돈도 없는 것이 당연했다.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다 이제 추워진 겨울이란 계절을 만끽하며 천천히 어두운 골목으로 발을 뻗었다. 쇼요는 꾸벅꾸벅 졸다 데스크에 머리를 박았다. 몇 번 아린 이마를 손바닥으로 문지르고는 고개를 붕붕 저었다. 오랜만에 꾼 꿈에서는 저의 어릴 적 모습이 나타났었다. 어머니에게 버려진 사실도 몰랐던 그 어린 날의 저와, 이미 훌쩍 커버려 사회를 일찍이 겪은 자신. 버려졌다는 사실을 인지했을 때는 죽도록 어머니를 미워하였다. 자신을 이럴 거면 왜 낳았느냐고 만나서 따지고 싶었다. 하지만 점점 차는 나이는 쇼요의 칭얼거림을 막아버렸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어머니의 따뜻한 손길이 좋아서 따라 나갔던 그 밤부터? 어머니가 저를 혐오했을 때부터? 아니면 처음부터? 생각만 해봐야 두통이 서린 질문에 쇼요는 머리를 감싸 안았다. 정적만이 가득한 공간에 딸랑이는 명쾌한 소리가 들리고 얼마 안 가 카운터엔 박카스 하나가 얹어있었다. 쇼요는 고개를 들어 손님을 쳐다보았다. 잠시 멍하니 손님만을 노골적으로 쳐다보던 쇼요는 자신의 행동에 당황해 허둥지둥 바코드를 찍었다. 쇼요는 창피함에 귀 끝을 붉히며 잠시 헛기침을 하다, 가격을 덧붙여 말하였다. 흑발같이 까만 머리의 손님은 쇼요의 행동에 작게 소리 내 웃어 보였다. 부끄러워 고개를 푹 숙이자, 손님은 카운터에 동전 몇 개를 두었다. 딸랑이는 소리에 쇼요가 고개를 막 들었을 때, 손님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 지 오래였다. 안녕히 가세요. 라는 웅얼거림은 쇼요의 입안에 돌고 돌았다. 쇼요는 곧 한숨을 쉬고는 문 너머를 바라보았다. 포근하게 내리는 하얀 꽃들이 옹기종기 펴있었다. 꿈같은 풍경에 쇼요는 입을 벌리며 감탄사를 내뱉었다. 쇼요의 손이 가지런히 놓인 카운터는 꿈이 아니라는 것을 일깨워 주듯이 몇 개의 동전과 박카스 한 병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 날 보았던 따뜻한 미소를 잊을 수 없었다. 까만 머리의 손님은 한 겨울날의 신기루였던 건지 그 후로는 모습을 비치지 않았다. 쇼요는 매일 새벽 출근 도장을 찍었으며 그 사람을 기다렸다. 언제 올 지모를 기나긴 기다림이라도 좋았다. 다시 한 번 그 미소를 보고 싶었으니까. 날카로웠던 바람은 어느새 하늘거리며 꽃 내를 풍겼다. 그리고 그 사람이 모습을 감춘 지 벌써 한 계절이 지났다. 의미 없는 기다림이었다. 매일 새벽에 나와 까만 머리의 손님이 들어오면 유심히 지켜보았다. 기다렸던 사람이 아니자 실망한 건 수십 번이었다. 혹여나 제가 맡지 않는 시간에 오면 어쩌지 하고 전전긍긍도 하였다. 그런 것들이 정말 의미 없는 기다림이었을까. 쇼요는 고개를 푹 숙이며 차가운 카운터에 이마를 기댔다. 따뜻함이란 건 저에게 어울리지 않았다. 손을 뻗은 사람들은 언제나 없어졌다. 그렇게 조금씩 조금씩, 따뜻함이란 말은 쇼요를 갉아먹고 있었다. 한참을 고개를 숙이고 있자 맑은 종소리가 귓가를 울렸다. 쇼요는 천천히 고개를 들고 진열대에 가려 머리카락만 겨우 보이는 손님을 바라보았다. 까만 머리였다. 그 사람과 같은. 한번 밖에 보지 못하였지만 개구쟁이 같던 미소에는 따뜻함이 묻어있었다. 자신은 그것이 그토록 좋았던 것일까. 한숨을 쉬며 히나타는 고개를 수그렸다. 분명 사장님이 보면 혼날 터였지만, 지금은 아무것도 신경 쓰고 싶지 않았다. 카운터에 둔탁한 무언가가 올려지자 손을 뻗어 바코드를 찍었다. 손님을 볼 엄두는 나지 않았다. 또 실망하긴 싫었으니까. 쇼요는 쥐었던 물건을 다시 카운터에 두곤 가격을 말하였다. 손님은 우뚝하니 서서 쇼요를 바라보았다. 쇼요는 돈을 내지 않는 손님에 의아해 손바닥을 뻗었다. 그럼에도 손님의 검은 그림자는 미동조차 보이지 않았다. 쇼요는 손님의 이상행동에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제야 손님은 쇼요의 손바닥에 돈을 쥐여주며 입을 열었다. "오늘도 기분이 안 좋아보이네. 꼬맹아?" |
| [쿠로히나] 후에(明戀) 뒷 이야기(스포) |
*스포주의* 이건 혹시나 내용을 궁금해할 닝들을 위해 적었다!!! 원래 더 써야하는데 내가 빈둥거리다 오늘 포ㅓㄱ!! 쓸려니가 약속도있고.. 허튼 다 제 잘못입니다..ㅠ 쇼요가 쿠로오 만나는 지점에서 끊기는데 그 후로 어.떻.게! 되냐면! 쇼요는 쿠로오에 따뜻한 미소가 좋아 쿠로오가 좋아집니다(금사빠)그러면서도 또 버려지면 어쩔까하고 안절부절해있죠. 쿠로오는 그 날이후로 쇼요를 잘 찾아오고 둘이 밖에사 같이 놀기도하고 꽁냥됍니다. 그러다가 쿠로오가 쇼요에게 "꼬맹아, 나에게 처음 알리고 싶었어." 하면서 쑥스러운듯 뒷마릴 글적입니다. 쿠로오가 준 분홍색 카드엔 두 남녀가 뽀뽀하는 그림이 그려져있었습니다. 그리고 결정타"나 결혼해. 꼬맹아" 그리고 헤실헤실. 쇼요 충격. 허튼 그렇게 쿠로오 결혼식에도 갑니다. 그리고 행복해하는 쿠로오에 쇼요는 상처받습니다. 그 후 편의점에 쿠로오의 자취는 없어졌죠. 1.어머니에게 버려짐 2.노부부가 이 세상에 사라짐 3.이모에게 버림받음 4.쿠로오에게 잊혀짐 이렇게 쓰고싶었는데.. 다 제 불찰..☆ |
| [긴나츠긴] 반딧불이의 추억속으로 |
나츠메(나츠메 우인장) x 긴 (반딧불이의 숲으로) 둘다 예쁜이들이라서 엮어보고 싶었다. 나츠메 우인장에서 우인장을 뺀 나츠메와 반딧불이의 숲으로 긴을 엮은 이야기다. 나는 어릴적부터 이상한 것을 보곤했다. 그 이상한 것은 흔히 말하는 요괴인데, 다른 곳에서 살 때는 보이기만 하던 것들이 이곳으로 이사오고 나서 부터 나를 쫓아온다.쓰잘데기 없이 호의적이라고 해야하나. "저기 젊은이 나 좀 업어줘." 말을 고쳐야 겠다. 호의적인게 아니라 악의적인것같다. 요괴들은 자신을 알아본 인간을 보면 꼭 장난을 치거나 말을 걸고 싶어한다.나는 그런 요괴들이 너무 귀찮다. 그래서 웬만하면 신사로 도망치는데,길을 잘못들어 오히려 요괴들이 모여드는 야마가미 숲으로 들어온것같다. 아까부터 나를 쫓아오는 요괴는 야만바 인것같다. 어렸을 적에 할머니가 얘기해준적이 있다. 산 속에 이상한 노파가 나무껍질을 두르고 있거나, 초라한 옷차림을 하고선 나무 위에서 히죽거리거나 업어달라고 하면 무조건 도망가라고. 야만바는 업어달라고 부탁한다음 긴머리카락으로 목을 졸라 죽인다고 할머니는 웃으면서 말씀하셨는데, .. 그게 웃을일인지 의문이 든다. 그렇게 야만바를 피해 도망친 결과 야마가미 숲의 오래된 토리이를 조금 지나쳐서, 뒤를 돌아보자 야만바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겨우 바닥에 앉아서 숨을 고르려고 하자, 머리 위로 그림자가 졌다. "안녕?" 요괴인지 사람인지 모를 녀석은 탈을 쓰고서 나를 내려다 보고 있었다. 오래 요괴를 봐온 나로써는 바로 요괴인줄 알아봤지만 말이다. 경계를 하자 녀석은 조금 거리를 두었다. 다른 요괴들과는 다르게 나에게 덤비지 않는 녀석은 뭔가 안정감이 들었다. "뭐냐, 또 요괴냐." 그래도 허탈한 마음이 드는건 어쩔수 없었다. 모습은 완벽하게 인간인 놈이 요괴라니. 자리를 털고 일어나 녀석을 바라보자, 녀석은 고개를 살짝 숙이더니 뭔가 생각하는듯 머리를 한손으로 짚다가 나를 가리켰다. "혹시 미아?" 생각했던 대답과 다르게 너무 바보같았다. 요괴중에서도 조금 덜 떨어진 놈인것같았다. 대답할 필요없겠지.라고 생각한 나는 무시하고 길을 돌아가려 했다. ..생각보다 꽤 산 속 깊숙히 들어온것같았다. 낭패다. 어떻게든 돌아다녀 볼까 하는 생각으로 자리를 옮기려 하자, 녀석은 나뭇가지로 내 뒷통수를 찔렀다. "역시 미아지? 내가 도와줄까?" 가면에 가려져서 얼굴은 보이지 않지만, 꽤 웃는 얼굴을 하고 있을것같았다. 그렇다고 요괴를 따라가는 건 미친짓이다. 어릴때 할머니가 알려준 걸로 치면 요괴는 믿기엔 좀 치졸한 구석이 있다고 했으니, 난 당연히 거절했다. "너 같은 요괴녀석을 따라가봤자, 오히려 소굴로 들어가는거나 마찬가지일텐데 내가 왜 니녀석을 따라가야하지?" 요괴를 조금 기분 나쁘게 할 말도 포함해서 말이다. 그러자. 녀석은 잠자코 있다가 말문을 뗐다. "내가 요괴인지 바로 알아채다니 니가 그 유명한 나츠메군?" 녀석은 약간 기쁜듯 말하다 다시 톤을 낮춘 후 자신의 이름을 소개했다. "아, 난 긴이야. 요괴가 말 거는건 불쾌할지 몰라도 나는 오히려 인간한테 몸을 사리는 요괴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돼." 신기하게도 긴이 그 말을 하고 나서 나는 편안한 기분이 들어 그만 알았다고 수락해버렸다. 긴은 나와 조금 떨어져서 길을 걸어갔다. 가면으로 가려진 녀석의 얼굴은 보이질 않아서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 순간에 난 내가 소굴로 걸어들어가는건 아닌지 몸을 사리고 있었다. "여기를 똑바로 걸어가면 길이 나와. 그럼 잘 가" 긴은 정직하게 길을 알려주었다. 내가 한 걱정들이 무색할 정도로 담담하게 저 말을 뱉었다. 난 왠지 그것이 기분 나빠 지키지도 못할 약속따위를 말했다. "고마워. 다음에 또 올게." 이렇게 말한 건 한순간이였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자기 비하를 한 것도 한순간이였다. "여긴 야마가미숲이야. 야마가미님과 요괴들이 사는 숲이라 들어오면 마음이 흐려져." 긴은 오지말라는 소리를 돌려서 했다. 왠지 오기가 들었다. 요괴를 상대로 이렇게 열받은 건 처음이었다. "어차피 요괴따위 질리도록 봐서 상관없어. 다음에도 올 테니까 길 안내 잘 부탁한다고." 대뜸 이렇게 말을 한 나는 뒤돌아보지 않고 길을 쭉 따라갔다. 가는 길에는 뒤에서 요괴인듯 한 개가 쫓아왔다. 눈치챈 걸 들키면 덤벼들것같아 요괴의 이름을 떠올려보려고 노력하는데, 할머니가 한 말이 생각났다. '오쿠리이누라고 밤중에 길을 걷는 이의 뒤를 쫓는 요괴인데, 그냥 집에 도착했을때 주먹밥이나 짚신주면 돌아가는 요괴니까 무서워하지만 않으면 된단다.' 어릴때 할머니 말을 잘 들어놓은 보람이 있다고 생각하며, 발길을 재촉했다. 집에 도착하고 주먹밥을 건네주자, 오쿠리이누는 나를 한번 쓱 쳐다보더니 주먹밥을 입에 물고 사라졌다. '길 안내 잘 부탁한다고' 라니 아무리 생각해도 아까전의 나는 미친것같았다. 무슨 바람으로 그런 소리를 한거야. 머리를 쥐뜯으며 아까의 말을 무를수는 없겠지 생각하자 더욱 미칠것같았다. 만약에 녀석이 기다리면 어떡하지. 몹쓸 인간이잖아. 나 . 결국 와버렸다. 오는길에 또 요괴를 만날뻔 했지만, 토리이 근처로 오니까 이제 보이지도 않고 괜찮겠지. 근데 걱정한 것과 달리 녀석은 털끝도 보이지 않았다. 별 생각없이 들은건가. "또 왔네 나츠메. 위험하다고 했는데." 긴은 나무 위에 올라앉아 있었다. 나를 내려다 보다가 조금 답답한지 나무에서 뛰어내려 착지하고선 가면을 살짝 들어서 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그래도 반가워." 생각했던것보다 긴의 외모는 인간과 많이 닮아있었다. 말하기 조금 부끄럽지만 아름답다.고 느꼈다. "왜 가면을 쓰냐고 물어보고 싶은것같은데" "요괴인데 가면이라도 안 쓰면 인간과 구분이 안 될것같아서. 라고 대답해줄게" 그렇게 말한 긴은 다시 가면을 쓰고 나에게 따라오라는 듯 손짓했다. "여기는 더우니까 장소를 옮길까." 내가 별 말을 하지않아도 긴은 다 안다는듯 내가 원하는 대답을 해줬다. 그러면 난 군말없이 앞서 나가는 긴의 뒤를 쫓았다. 긴은 숲속에 연못으로 날 데려갔다. 가는 길에 긴은 아는 요괴들과 인사를 했다. 그리고 요괴들이 나에게 관심을 보이자, 별말없이 이렇게 관심을 돌려줬다. "쟤는 내 친구야. 건들지마" 그 말은 나를 안심하게 했다. 연못에서 발을 담구고 말없이 있다가 바람이 불자 볼 주변에 생채기가 났다. 뭐지 하는 순간 발을 담구고 기분좋다는 듯 있던 긴이 일어나는걸 보았다. "카마이탓치야." 조금 화가 난듯 바람부는 곳에 긴은 뭐라고 하고 있었다. 그러자, 바람에서 족제비 3마리가 나타났다. 카마이타치들은 나에게 다가와서 미안하다고 고개를 숙이다가 긴을 만지면 용서하지 않겠다며 으름장을 놓았다.만질 생각도 없다 요괴들아. 그 날 돌아가기 전에 역시 긴에게 뭔가를 해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너 혼자 있을때 뭐하냐." 긴은 혼자 있을때 숲속을 돌아다니거나 예상치 못한 장소를 찾는것을 좋아한다고 그랬다. 때때로는 들판에 누워서 쉬는것도 좋아한다고 그랬다. 하긴 시골에서 할 수 있는건 적지. 다음에 찾아올때 긴이 읽을만한 책을 가져오기로 하고 난 집으로 돌아왔다. 이불위에 눕자, 오늘 낮에 본 긴의 얼굴이 생각났다. 눈이 참 예뻤는데, 말을 하지 못한 제가 원망스러우면서도 어차피 요괴인데. 하고 생각을 끝마치곤 했다. 다음날 책을 들고 토리이로 가자, 긴은 기다리다가 지친듯 토리이에 기대서 자고 있는듯 했다. "자고 있는건가." 어제 본 얼굴이 아침에 일어났을 때도 떠올라서 나는 긴의 얼굴을 다시 확인해보고 싶었다. 설마 요괴가 그런. 자고 있는듯한 긴의 얼굴에서 가면을 조심스럽게 내 손과 긴의 피부가 닿지않게 들어내자, 어제 보았던 그 얼굴이 있었다. 순간적으로 나는 얼굴에 손을 내밀뻔했다. 그리고 긴이 깨어났다. "나츠메, 혹시 내 얼굴에 흥미있어?" 놀란 내가 긴에게 가면을 세게 씌운 후 긴은 얼굴을 부여잡다가 웃는 낯으로 나에게 물어봤다. "그럴리가. 미쳤냐 호모도 아니고." 나는 왠지 마음 한 구석이 뜨끔했다. 그리고 내가 한 말을 다시 마음에 새겼다. 호모도 아닌데 내가 왜 저녀석의 얼굴을. 더 생각하다가 긴에게 가져온 책을 던져줬다. 긴은 책을 받더니 " 오늘은 들판에 갈까." 라고 말했다. 들판으로 가자, 긴은 편하게 자세를 잡더니 그냥 평범하게 재밌는 책을 뭐가 그리 신기한지 계속해서 되풀이해서 읽었다. 그리고 잘 이해가 되지 않으면 나에게 물어봤다. 나는 그런 긴이 조금 귀엽다고 생각했다. 징그럽게 여름이 끝나갈 때쯤, 나는 방학이 끝나서 당분간 오지 못한다고 긴에게 너무 오래 기다리지 말라고 하고 뒤돌아 섰다. 뒤돌아서는 순간에 난 긴의 얼굴을 한번만 더 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번에는 얼굴에 대한 호기심이라기 보단 녀석의 감정이 어떻게 드러났을까 궁금해서. 학교 수업을 듣는 와중에도 나는 무의식적으로 창문밖을 바라봤다. 야마가미 숲 속 어딘가에서 돌아다니고 있을 나를 기다릴지도 모르는 길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선생님에게도 요즘 자주 정신을 빼놓고 다닌다며 혼이 났다. '그래, 요괴일뿐인데 너무 깊게 생각하는거야.' 나는 조금 마음을 비우기로 생각했다. 하지만 계절이 가고 겨울이 다가왔다. 겨울방학을 하자, 긴을 볼 시간이 늘어났다. 아직도 나를 기다릴까. 없을수도 있겠지 하는 마음 반으로 야마가미숲으로 달려갔다. 긴은 그 자리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옷차림은 조금 바뀌었지만. 긴은 가면과 발개진 얼굴 틈 사이로 차가운 숨을 내뱉고 있었다. "긴!" 너무 반가웠다. 생각하지 말자고 했지만 생각보다 나는 긴을 더 많이 생각했다. 숲에는 생각보다 긴을 좋아하는 요괴가 많은것같았다. 긴과 다닐때는 내가 요괴를 본다고 해도 요괴들이 나에게 다가와서 괴롭히지도 않았다. 그러고 보니 긴을 만나고 나서 요괴들이 괴롭히는 횟수가 늘었다. 심지어 학교에 다녀서 긴을 만나지 못했을때도. 긴은 만나지 않아도 나와 관련이 되었다. 내가 잠자코 있자, 긴은 눈뭉치를 던졌다. "뭐하는 짓이야!!" 눈싸움을 했다. 옷속에 눈이 들어가도 재밌었다. 눈싸움을 하다가 긴은 추운듯 손에 입김을 불었다. 다음날 나는 긴에게 목도리와 장갑을 건네줬다. 긴은 받고 기쁜듯 목도리를 매면서 고맙다고 했다. 그리고 눈싸움을 맹렬히 할수 있었다. 결국 감기에 걸려버린 나는 하루를 빼먹게 됐다.기다리고 있으려나. 약을 먹고서 잠들기전에도 난 긴을 떠올렸다. 목도리를 한 채 나를 기다릴 긴이 생각났다. 추워서 벌벌 떨고 있을지도. 아니다 오히려 김을 내뿜으며 요괴들이랑 놀수도 있으려나. 그런 잡생각을 하다가 잠이 들었다. 이튿날 아침에 몸이 말끔히 나아서 긴을 찾아갔다. 언제나 나를 기다리고 있던 긴이 없었다. 왠지 모르게 서글픈 기분이 들었다. 하긴 요괴와 인간 사이에 우정같은게 생기겠어.라고 생각한 난 뒤돌아서 가려고 했다. 그러자 뒤에서 나뭇가지로 누가 내등을 찔렀다. 긴이였다. 긴은 두손을 모으라고 하더니, 산수유 열매를 손에 떨어뜨려줬다. "너라면 아파서 못 오는것 같았어." 긴 주제에 건방졌다. 겨울방학이 그렇게 가고 나는 다시 여름이 오기를 손꼽아 기다렸다. 여름방학때 다시 긴을 만나러갔다. 긴은 이 조용한 시골에서 재미난 장소를 많이 알고 있었다. 나도 이곳에 꽤나 오래 있었다고 자부했지만 역시 요괴와 인간은 비교도 되지않는건가. "나츠메, 다음에는 연날리기라도 할까."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나는 즐거웠다. 우리는 서로에게 별 말은 없었지만 그것만으로도 교감은 충분했다. 다음날 익숙한 들판에서 연날리기를 했다. 긴이 연을 잡고 내가 달리자, 연은 하늘에 걸려서 떨어질줄 몰라싿. 당연한거였지만 뭐가 그리 재밌는지 우리는 웃었다. "너도 해봐" 실과 대를 긴한테 내밀었다. 긴은 조금 망설이다가 내 손과 조금 거리를 두고 실과 대를 받았다. 그 순간 난 실없는 생각을 떠올렸다. '손끝이라도 닿으면 사라지는 걸까' "어이 긴, 너랑 나랑 닿으면 넌 어떻게 되는거야" 그러자 긴은 약간 오래된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난 사실 요괴같은건 아니지만, 아주 어렸을때 이 야마가미숲에 버려졌어.내가 아기일때 자신을 버리고 간 부모님을 부르듯 울음을 멈추지 않았는데, 그런 나에게 요괴들은 가면을 씌워줬는데, 신기하게도 울음이 멎은거지. 그 후로 나는 야마가미님에게 은혜를 입어 요술로 살게 되었지.하지만 요술로 만들어진 몸은 너무 약해서 인간과 닿아버리면 사라져버려." 가면으로 가려진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슬픈 표정일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 내가 해줄수 있는말은 없었다. 그저 다음에도 놀러올게. 이정도밖에 안됐다. 그런데, 오늘 긴은 그렇게 말하고 가려는 나에게 한마디를 했다. "나츠메, 더 이상 찾아오지 않아도 돼." 그렇게 말하는 긴이 나는 기분이 나빴다. "내가 숲에 오는건 내 마음이다. 그리고 난 꽤 너랑 노는게 재밌으니까 말이야. 다음에도 올테니까 그렇게 알아." 내가 내뱉은 말은 상당히 제멋대로 였음에도 불구하고 긴은 아무말하지않고 다음에 찾아오면 또 그 자리에서 날 맞이했다. "나츠메, 보고싶었어." 어떤날은 긴이 이렇게 말했다. 그리고 쑥스러운듯 몸을 돌려 다른곳으로 가볼까하고 다시 평소처럼 말했다. 난 그렇게 행동하는 긴이 귀엽다고 생각했다. "나츠메, 오늘밤에 나올수 있어?" 약간 어색한 말투로 긴이 나에게 물어왔다. 그 말에 나는 뭔가 속에서 이상한게 올라오는 기분이 들어서 응이라고 말하곤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오늘 칠석이기도 하니까 같이 은하수라도 보려고." 변명처럼 뒤에 긴은 말을 덧붙혔다. 그렇게 말하는 긴의 귀는 빨개져 있었다. 나도 빨개지는 기분이였다. 밤에 항상 보는 장소에 도착하자, 긴은 평소와 다르게 유카타를 입고 있었다. 괜히 평범하게 입고 왔나. 저쪽에서 그러니까 부끄러운데 라고 생각한 나는 긴에게 투덜거릴수 밖에 없었다. "뭐냐, 유카타나 입고 이럴거면 나도 갈아입고 오는건데." 그러자 긴은 " 넌 그대로도 보기 좋아" 라고 징그러운 말을 했다. 숲으로 들어가는데 반딧불이들이 파다했다. 별을 보러 위로 올라가는 도중에도 반딧불이들이 길을 안내해주듯 희미한 빛들이 가득했다. 은하수는 아름다웠다. 별빛들과 반딧불이들이 휘황찬란하게 비추는 가운데 긴은 말을 꺼내기 시작했다. " 나츠메 나는 여름과 겨울이 올때마다 계절이 가는걸 못 기다려. 떨어져 있으면 나츠메가 인파속에 있더라도 그 속을 헤쳐서라도 너에게 달려가고 싶어져" 그렇게 말한 긴은 나에게 가면을 씌워주고 입주변에 입술을 맞추었다. 그리고 우리는 아무말도 하지않고 보던 광경을 내팽겨치고 길을 돌아갔다. 돌아가는 도중에 나는 이것이 마지막일것이라 예상했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이별이 다가올 줄은 몰랐다. 돌아가던중 긴과 나는 넘어질뻔한 아이를 잡아주었는데, 아무래도 인간 아이였나보다. 반딧불이에 홀려서 올라왔다가 은하수를 보고 돌아가던중이겠지. "긴!!!!" "나츠메, 이제서야 너를 만질수 있어" 긴은 웃으면서 나에게 팔을 벌렸다. 난 호모가 아니지만 그 순간에 긴과 안지않을 수 없었다. 긴을 끌어안자, 생각했던 요괴의 특유의 차가움이라던가 긴의 마음을 느낄수 있었다. 긴의 몸은 서서히 빛이 퍼지더니 나중에 반딧불이로 사라졌다. "나츠메, 이제 널 만질수 있어." 사실 난 그 말을 들은 순간 나는 행복하면서도 마음안쪽부터 뜨거운 무언가가 올라올것만 같았다. 나와 키가 확연히 차이나던 긴은 나와 만난 기간동안 나와 서서히 비슷해졌고, 난 그 순간들을 추억속으로 서서히 남겨둘거다. 긴이 두고 간 가면을 끌어안고 나면 아직은 뜨거운 무언가를 참아낼수있을것같았다. 뜨거운 무언가가 흘러내린다. 반딧불이 한마리가 공중으로 날아갔다. 차가운 감촉은 사라지고 긴이 서있던 자리에는 옷가지와 가면만이 남아있었다. 시야가 흐려지는것같았다. 긴의 너무나도 밝은 빛에 난 시야가 멀어버린 기분이였다. 그 날 집으로 어떻게 돌아왔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긴이 떠난 이후 요괴들은 더이상 나를 괴롭히지 않았고, 숲으로 가자, 나를 놀리던 카마이타치들은 나의 내면의 상처를 겉으로 들어내려는듯 울면서 상처를 내고 다시 연고를 바르는 무의미한 동작들을 반복했다. 상처가 너무 쓰라려서 눈물이 났다.눈물을 쏟아내자, 카마이타치들은 어쩔줄 몰라하며 아팠느냐며 나에게 다급하게 물어왔다. 주변에 있던 요괴들도 몰려와서 나에게 괜찮느냐며 물어왔다. "괜찮지 않아." 사실대로 말하면 "반딧불이가 너무 많아서 눈이 흐려져서 그래서 눈물이 난거야." 반딧불이들이 더 늘어날까봐 나는 거짓말을 했다. 사실 난 긴이 없어져서 괜찮지 않았다. |
| [긴잔] 무제 |
... 그 녀석은 언제나 갑자기 나타나선 어느 순간 홀연히 사라지곤 했다. 이곳의 복장과는 전혀 다른 복장을 한 그 녀석은 알 수 없는 말을 했다.
뭐라고 하는지 전혀 못 알아듣겠어. 알아듣지 못해도 돼. 역시 뭐라고 하는 건지 모르겠어. 작게 한숨을 쉬며 털썩 눕는 나를 보고 그 녀석은 여태껏 본 적 없는 작은 웃음을 지어 보였다. 뭐랄까, 가슴이 간질거리면서 기분 좋은 고동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얼굴 빨개. 노을 때문인가? ...어, 노을 때문이야. 내 대답에 그 녀석은 다시 작게 웃어버리더니 다시 고갤 돌려 붉게 이글거리는 노을을 바라보았다. 노을 빛을 받는 그 녀석을 보고 있자니 금방이라도 사라져버릴 것만 같아서 나도 모르게 그 녀석의 손을 잡았다. 예상대로 놀란 반응에 조금 골려 줄까 생각하기도 했다. 벌레. ...거짓말. 진짜야. 벌레가 있었다고 엄청 큰. 내가 쫓아준 거니까 고맙게 생각하라고. ...그래, 고마워. 내 말에 입가에 작게 미소만 띠던 그 녀석은 조용히 내 손을 놓더니 이내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 이제 가야 할 시간이구나. 잘 가 긴토키. 오냐. 간단한 인사를 마친 우린 서로 등을 돌려 반대편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뒤를 돌아보니 그 녀석은 흔적도 없이 벌써 사라져 있었다. ...그 녀석을 만나는 게 꽤 즐거웠다. 모르는 얘기들도 많고 점점 얘기도 통하게 되니까 정말로 친구가 생긴 기분이었다. 여름밤엔 쇼요 선생님이나 타카 슬기와 지라와 함께 어울려 놀기도 했다. 유카타를 입어본다거나 불꽃놀이를 한다던가. 나나 그 녀석에겐 모든 게 새로웠다.비가 오는 날엔 서로 비를 맞고 흠뻑 젖어 서로의 모습을 보고 웃기도 하고, 먹을 것을 나누어먹고, 우린 점점 더 가까워졌다. 어찌 보면 둘 다 버림받은 신세였으니 그만큼 서로를 더 잘 이해했을지도 모른다. 그 녀석은 가끔 자기가 쓰던 말을 알려주기도 했다. 어려워서 하루 만에 다 까먹어버렸지만. 열심히 설명해주는 얼굴이 계속 보고 싶어서 매일 배우곤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녀석은 아마 헤어지기 전 자기가 그전에 했던 말이 무엇이었는지 알려주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더욱 열심히 나에게 글을 알려주고 잊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한걸 지도. 다른 건 다 잊어버렸지만 딱 하나 기억하는 건 있다. 그 녀석이 처음 나랑 만났을 때 알 수 없는 말로 내 머릴 보고 말했던 것. 마치 별빛이 내린 것 같잖아. 내 머릴 보고 처음 그 녀석이 했던 말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겁도 없지. 처음 본 녀석 앞에서 저런 말을 한 놈이나 가만히 듣고 있던 나나. 둘 다 제정신이 아니었던 걸지도. 나름 기분 좋은 말이라 아직까지 기억하는 모양이다. 내 머리에 대해선 부정적인 시선들 밖에 없었으니까. 귀신이니 도깨비니 이상한 헛소리들만 잔뜩. 지금 생각하면 참 어린애 같은 생각이다. 별빛이 내린 것 같다 라니. 누군가에게 말하면 비웃음 살지도. 처음 그 뜻을 알았을 때 사실 너무 기뻐서 바로 쇼요 선생님한테 얘기해버렸지만. 지금은 입 밖으로 꺼내기엔 옛날 얘기기도 하고 무엇보다 오글거리고. 이젠 그 녀석도 없고. 그 녀석이 마지막으로 왔던 날. 뛸 듯이 기뻐하던 얼굴이 떠올랐다. 자기 아버지를 찾았다나. 어머니랑 같이 더 이상 길에서 나뒹굴지 않아도 된다고 순수하게 기뻐하던 얼굴. 그럼 못 만나는 거야? ... 내 말에 그 녀석은 놀란 듯 잠시 멍해지더니 이내 곤란한 듯 웃었다. 아무래도 내 예상이 맞은 모양이었다. 하긴 그런 부잣집이라면 당연히 나 같은 출신도 모르는 녀석이랑 만나게 할리가 없지. 가끔씩이라도 놀러 와. 응, 꼭 놀러 올게. 그렇게 새끼손가락을 걸며 한 약속. 단 한 번도 지키지 않았다. 그날 이후로 그 녀석은 더 이상 나타나지 않았다. 마치 원래부터 없었던 것처럼. 그 녀석의 흔적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아마도 이런 시골 동네가 아닌 도시에서 올라온 부자였던 모양이다. 그래도 한 번쯤은 다시 와 줄줄 알았는데. 아마 그 이후로 얼마 지나지 않아서 쇼요 선생님이 잡혀가셨고, 양이 전쟁이 일어났었지. 결국 다들 뿔뿔이 흩어져버렸고. 그 녀석은 잘 도망쳤을까. 전쟁 중에 죽은 건 아니겠지. 아직은 여유가 있었는지 나보다 그 녀석이 더 먼저 떠올랐다. 아직까지 그 녀석을 잊지 못한 내가 우스워 웃음이 나올 정도였다. 신파치와 카구라를 만나고, 해결사를 차리고,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그 녀석은 머릿속에서 잊혀갔다. 그저 어릴 때의 철없는 첫사랑 같은 거였다. 사랑 같은 게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그냥 단순히 정말 친하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 녀석은. 뭔가 비참해졌다. 그 녀석은 날 좋은 친구로 만 생각한 걸까 하는 생각에 왠지 씁쓸했다. 만약에 정말 그렇게 생각 했었더라도 난. 나는 정말 좋아했으니까. 네가 해준 한마디 한마디가 나에겐 정말 큰 의미였다고, 고맙다고, 다시 만나게 된다면 술이라도 한잔하면서 장난처럼 웃어넘기면서 얘기할 수 있게. 그렇게 됐으면 좋겠다. |
| [루로우] 마지막 쪽지 |
[루피X로우] 마지막 쪽지 로우는 제 손에 들린 쪽지들을 보더니 살짝 웃음 지었다. 행복하다기보단 쓸쓸해 보인다는 것이 더 맞는 듯한 로우의 모습에 휠체어를 끌어주는 펭귄의 마음 또한 편치 못했다. -나에겐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어, 나 때문에 무기와라야의 일상이 망가지는 건 싫어, 그러니까 펭귄 네가 좀 도와줘. 이동 시간이 꽤 길었던 탓에 꾸벅꾸벅 졸던 로우는 다 왔다는 펭귄의 목소리에 잠에서 깨어났다. 눈을 뜨니 보이는 것은 익숙하면서도 사람의 온기가 없어 낯설기도 한, 로우와 로우의 연인 루피의 집이었다. 우선 침실로 가자. 로우의 말에 펭귄은 조금씩 휠체어를 침실로 옮겼다. 문을 열자 저를 반겨주는 루피의 모습에 로우가 놀란 것도 잠시, 눈을 감았다가 뜨니 역시 제 연인의 모습은 없고 두 개의 베개와 커다란 이불만이 있을 뿐이었다. 로우는 루피의 베개를 집었다. 늘 맡던 지독한 병원 냄새 대신 그토록 맡고 싶었던 익숙한 냄새가 코끝으로 퍼지자 괜히 눈시울이 붉어져 얼른 자신의 베개를 들고 루피의 베개를 침대의 한가운데에 놓고는 자신의 베개를 커다란 봉지에 담았다. 로우는 멍하니 침대를 바라보았다. 한 개의 베개만 덩그러니 존재하는 침대가 얼마나 낯선 느낌을 주는지 로우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펭귄이 침대 옆에 있는 옷장의 문을 열자 옷가지들이 우수수 떨어져 내렸다. 또 무기와라야가 어질러 놓았구먼. 로우의 중얼거림에 펭귄은 아무 말 없이 묵묵히 가지런히 옷걸이에 걸려 있는 로우의 옷가지들을 꺼내곤 베개를 넣었던 커다란 봉지에 넣었다. 로우 또한 바닥에 흩어져 있는 루피의 옷들을 가지런히 접어 옷장 속 서랍에 차곡차곡 넣어두었다. 그렇게 한참동안 정리하고 나니 침실엔 오직 루피의 물건들만 있었다. 로우는 만족스러운 듯 웃음 짓곤 제가 가져온 수많은 쪽지 중 세 개를 루피의 베개 위, 옷장 손잡이, 옷장 서랍에 붙여놓았다. 미련없이 방을 나서는 로우의 뒷모습을 보던 펭귄도 방을 한 번 둘러보고는 다음 장소로 향했다. 부엌. 로우는 식탁에 놓여 있던 밀짚모자가 그려진 머그잔을 가만히 보더니 하얀 털모자가 그려진 자신의 머그잔을 바닥에 떨어뜨렸다. 컵이 요란스러운 소리를 내며 깨지자 펭귄이 다급하게 떨어진 파편들을 주웠다. 미안해, 나 때문에 네가 고생이 많지. 너도 이젠 예쁜 여자 만나서 어서 장가도 가야지, 가서 너랑 예쁜 색시 닮은 자식도 낳고. 비록 내가 보지는 못하지만…. 로우의 말에 눈물을 참고 있는 듯 눈에 힘을 주고 있던 펭귄의 어깨가 들썩거렸다. 바보야 왜 울어. 네가 그렇게 울면 내 마음도 편치 않잖아, 펭귄의 등을 토닥거리던 로우 또한 코끝이 아려와 괜히 천장만 쳐다보다 이내 소리 내 엉엉 울었다. 내가 왜 이렇게 여러 사람에게 끝까지 상처를 줘야 하냐며 여태껏 꺼내지 못했던, 마음속에 담아뒀던 말을 입 밖으로 내고 나니 더 서러워졌다. 그렇게 한참 애처럼 울고 나니 로우는 속이 한결 편해진 것 같았다. 펭귄이 제가 쓰던 수저, 접시를 치우면 그 자리에 로우가 쪽지들을 붙였다. 그렇게 집 곳곳 자신의 흔적을 지우고 비어있는 허전한 자리에 간결하게 써내린 쪽지들을 붙이기를 반복하니 쪽지는 단 한 장만이 로우의 손에 힘없이 들려있을 뿐이었다. 남은 한 장은 어디에 붙일 거냐는 펭귄의 물음에 로우는 살며시 미소 지으며 방구석, 보통의 사람이라면 잘 보지 않을 법한 자리를 가리켰다. 하나는 숨겨놓으려고 그러는가 잠시 생각하던 펭귄은 이윽고 로우가 가리켰던 자리에 로우의 쪽지를 살짝 붙여두었다. 이제 다 끝난 거지? 로우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펭귄이 휠체어를 현관 쪽으로 이끌었다. 로우는 그렇게 집에 나갈 때까지 한마디도 하지 않았고, 그렇게 그의 마지막 보금자리에서 멀어졌다. 안녕-. 차마 목 밖으로 내지 못한 인사가 로우의 가슴 속에서 메아리치듯 울려 퍼졌다. - 트랑이의 장례식이 끝났다. 관을 화장하고 푸른 바다에 뿌리는 순간까지도 애인의 죽음이 선뜻 몸으로 와닿지 않았다. 이 문을 열고 들어가면 무기와라야, 하면서 웃어줄 트랑이가 있을 듯한 착각에 빠져 올라가지 않는 입꼬리를 억지로 올리곤 문고리를 잡아당겼다. 트랑아, 나 왔어. 내 목소리가 아닌 듯 갈라진 목소리가 집 안에 울려 퍼졌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트랑아, 트랑아! 나오지 않는 목소리를 젖먹던 힘까지 쥐어짜네 보았지만 역시나 들리는 건 끔찍하게 변해버린 내 목소리뿐이었다. 트랑아, 혹시 자는 거야? 그렇지? 자는 거지? 비틀거리며 침실 문을 열었을 때 트랑이는 없었다. 어쩌면 당연한 걸지도 모르는 건가. 눈앞에 아른거리는 로우가 사라지니 보이는 건 한 쌍의 베개와 이불이 아닌 한 개의 베개와 이불이었다. 허전한 침대 위엔 하나의 쪽지가 존재했다. 손을 뻗어 쪽지를 잡아 보니 정갈한 글씨체의 제 애인이 써놓고 갔던 게 틀림없었다. -밤마다 내 생각 할까 봐 베개는 압수- 바보 같은 자식…. 쪽지를 침대 위에 던져버리곤 침대 옆에 있는 옷장 문을 열었다. 역시나 커다란 옷장 속엔 옷걸이마저도 없이 텅텅 비어 있었고 옷장의 안쪽 손잡이엔 쪽지가 하나 있었다. -내 옷은 너한텐 커서 못 입을 테니 압수. 옷장 서랍장을 열어봐- 옷장 서랍을 열어보니 내 옷들이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위에 다른 색의 쪽지가 또 한 개. -앞으로 옷은 여기다 넣어서 이렇게 정리. 넌 옷정리 잘 안 하니까 옷걸이도 압수- 눈물이 나올 것 같았는데 여기서 울어버리면 평생 못 일어날 것 같은 생각에 억지로 다리를 움직여 침실을 나갔다. 침실과 제일 가까운 부엌으로 가니 역시나 트랑이의 물건은 없고 그 자리엔 몇 개의 짧은 글이 담긴 쪽지가 존재했다. 곳곳에 붙은 쪽지들을 다 떼서는 하나하나 전부 읽어내려갔다. -넌 밀짚모자 컵만 쓰니까 하얀 털모자 컵은 압수- -수저도 두 쌍씩은 필요 없으니 한 쌍은 압수이제 빵 사 먹어도 돼너무 많이 먹고 체하면 꼭 배를 따뜻하게 해서 휴식을 가질 것하루에 한 번, 채소는 섭취할 것- 등 내가 잘 지키지 않는 부분까지 섬세하게 적어서 써놓은 로우에 또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흐르지 않게, 떨어지지 않게… …. 먹먹해지는 가슴을 세게 두드리곤 화장실로 향했다. 역시 로우의 물건 대신 몇 개의 쪽지만이 로우가 다녀갔다는 걸 보여주고 있었다. -칫솔은 3개월에 한 번씩 바꾸기양치질 하다가 내 생각 못 하게 칫솔 압수- 트랑이는 내가 양치질하면서 딴생각을 잘한다는 것까지 알고 있었나 보다. 화장실에 나와서 집안 곳곳에 붙어져 있는 쪽지들을 전부 떼어냈다. -컴퓨터 오래 하지 말기의학책은 넌 절대 안 볼 테니 압수내 일기장은 당연히 압수청소기 타고 다니면 청소기 부러진다- 하나하나, 각각의 쪽지들을 모두 읽으니 다리에 힘이 풀려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눈에 보이는 쪽지는 모두 떼어냈다. 주위를 둘러 한 번 더 쪽지가 없는 걸 확인하곤 침대 옆 구석진 곳으로 간신히 기어서 들어갔다. 트랑이도 모르는 저만의 비밀 장소. 거기서 한참 울려는 작정으로 깊숙이 들어가니 또 쪽지가 한 개 붙어있었다. 허, 알고 있었던 걸까? 나를 얼마나 더 울릴 작정이란 말일까. 그의 마지막 쪽지를 읽어내려갔다. 다 읽고 나니 거짓말처럼 눈물 말고 웃음이 피식 나왔다. 섬세한 성격의 제 연인은 아마 이 세상에서 나보다 나를 더 잘 아는 것 같았다. 트랑아, 안녕… …. 그곳에선 부디 아프지 않기를. 편안하게, 나를 기다려줘. 사랑해. -내 쪽지들 전부 다 읽고 눈물 흘리면 바보 인증. 내 편지들에 눈물 한 방울이라도 묻히기만 해봐. 늘 옆에서, 하늘에서 실컷 비웃어줄 테니까. 여기까지 읽었으면 웃어. 마지막까지 울상 짓지 말고 무기와라야- |
| [에이로우] 그 시절, 우리들의 봄 |
[에이로우] 그 시절, 우리들의 봄 누구에게나 사랑은 예고 없이 찾아온다. 흔히 첫눈에 반한다고 말하는 이 감정은 너무나도 솔직해서, 숨기려고 할수록 더 드러나는 법이다. 그것이 순수한 어린 소년에게 찾아가면 그 소년은 분명 며칠 밤을 지새우며 두근거리는 가슴을 붙잡고 끙끙 앓았을 거다. 나 또한 첫사랑에 웃고 울었던 순수했던 어린 시절 소년의 마음을 지금 이 펜으로, 이 종이에 써 내려가려 한다. 18살의 봄, 벚꽃이 두드러지게 피었던 날 나는 사랑에 빠졌었다. 윤기가 흐르는 검은 머리칼에 대조되는 새하얀 피부에 양쪽 볼에 자리했던 주근깨가 꽤 매력적인, 늘 웃고 다녀 남들에게 밝은 분위기를 전파해주었던 어떤 소년 A는 나의 첫사랑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순수하디 순수했던 두 소년의 이야기는 아마 이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사랑이었다고 감히 말해보지만 그 시절 우리는 너무나도 어리고 미숙했다. 예나 지금이나 나는 독서를 좋아했다. 친구라고 해봐야 초등학생 때부터 알고 지냈던 두세 명이 전부였고 늘 손에 문제집과 문학책을 들고 있어 대놓고 티를 내며 날 싫어했던 애들도 있었던 거로 기억한다. 난 꽤 분위기가 어두웠고 두세명의 친구들을 제외하곤 말도 거의 하지 않았던 편이었으니 말이다. 그렇게 고등학교 2학년이 되었던 해에 옆 동네에서 벚꽃축제가 열렸었다. 평소에 꽃을 좋아하는 편은 아니었지만, 친구놈들의 손에 끌려가다시피 해서 도착했던 벚꽃축제는 벚꽃축제로 유명한 동네였던 만큼 입구에서부터 사람들이 많이 찾아왔었다. - "아, 트라팔가 이 자식은 여기서도 책이나 읽고 있는 거냐?" "시끄럽다, 병스타스여. 애초에 이런 곳은 네놈이랑 루피 둘이서 오면 됐지. 싫다는 사람 억지로 끌고 오고 말이야." "시시싯 어이 키드, 로우! 우리 저기 솜사탕도 팔아! 신난다." "루피 넌 먹을 것만 눈에 들어오냐? 야, 루피! 기다려! 어이, 트라팔가. 루피녀석 가버렸는데 우리도 뛰자고." 말하다 말고 냅다 내 손목을 잡고 뛰는 유스타스 때문에 책에서 떨어진 책갈피를 주울 생각도 못 하고 그대로 달렸다. 사람들이 너무 많았던 탓에 사람들을 피해 최소의 속력으로 한참을 달리니 솜사탕 세 개를 사 들고 왜 이리 늦었냐며 웃는 루피가 보였다. 정말이지 저 자식은 아마 오늘도 먹기 위해 여기 오자고 했겠지. 마침 단 게 당기던 참이라 루피가 내미는 솜사탕을 기분 좋게 받아들고 천천히 걸었다. 하이얀 눈처럼 내리는 벚꽃을 맞으며 입안에 달콤하게 퍼지는 솜사탕은 그야말로 천국이었고 나는 이걸 하늘을 두리뭉실 떠다니는 뭉게구름이라 정의하기로 했다. 수첩을 꺼내 지금 내가 느낀 기분을 적고 있으니 유스타스는 옆 동네에서까지 문학소년 티를 낸다며 나를 타박했지만 가볍게 무시했다. 솜사탕을 다 먹었는지 대뜸 사진을 찍자는 루피의 말에 우리는 각자가 잡을 수 있는 제일 멋있는 자세를 잡기 시작했고 난 지나가던 시민에게 카메라를 맡겼다. 자, 찍습니다! 하나, 둘, 셋! 사진을 찍어준 시민에게 카메라를 돌려받고 찍힌 사진을 보니 꽤 괜찮게 나온 것 같았다. 절묘하게 떨어지는 꽃잎을 배경으로 환하게 웃고 있는 우리의 사진은 또 한 컷의 추억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한참을 돌아다녀 얻어낸 그늘에 돗자리를 깔고 누우니 흩날리는 벚꽃잎이 만들어내는 풍경은 한층 더 빛을 내는듯했다. 도시락까지 전부 다 먹고 곯아떨어진 루피와 유스타스 옆 커다란 벚나무를 등받이삼아 기대고 책을 읽으니 또 실내에서 혼자 읽을 때와는 다른 느낌에 한껏 더 책에 빠질 수 있었다. 어차피 책갈피도 잃어버렸으니 지금 전부 읽어버리겠다는 생각으로 책에 집중했다. 책의 반 정도를 읽었을 때 누군가 내 어깨를 톡톡 쳤고, 깜짝 놀라 고개를 드니 잃어버렸던 책갈피가 어떤 소년의 손에서 흔들거리고 있었다. 이거 네 것 맞지? 아까 책에 꽂혀 있던 거 얼핏 본 것 같아서 말이야. 책갈피를 들고 있지 않은 손으로 살짝 내 책을 가리키면서 소년은 싱글벙글 웃으며 내게 책갈피를 내밀었다. 고마워. 내 인사에 소년은 뭐가 재미는 것인지 개구쟁이처럼 시싯 웃으며 무슨 책을 읽는 거냐며 넌지시 물어왔고, 난 소년이 귀찮아서 책에서 눈을 떼지 않고 그의 물음에 답하였다. 그 뒤로도 소년은 몇 번 내 기준에선 쓸데없는 질문을 하더니 열심히 독서하라는 말과 함께 한마디를 던지고 사라졌다. 그리고 그 한 마디는 처음 만난 소년에게 호기심을 가지기에 충분했다. 우리의 벚꽃은 늘 그 자리에 피어있어-. 내가 읽고 있는 소설책의 주인공이 죽기 직전 사랑하는 사람에게 해주었던 말이었다. 이 대사를 알고 있다는 건 소년도 이 책을 읽었다는 걸까? 나는 소년이 지나간 자리를 한참 바라보았지만 이미 소년의 발자취는 떨어져 버린 꽃잎들에 의해 사라지고 없었다. 집에 돌아오고 난 뒤 내 머릿속에는 온통 소년 생각뿐이었다. 그 소년도 나처럼 문학책을 즐겨 읽을까? 소년은 이야기가 통할 재밌는 친구가 될 수 있을 텐데. 공부도, 책도 눈에 들어오지 않아 나는 이부자리를 펴고는 곧바로 눈을 감아버렸다. 잠들기 직전 내 상상에서 나와 소년은 이미 통성명을 끝내고 요즘 뜨는 베스트 셀러 작가의 얘기를 하며 하하 웃고 있었다. 그날따라 학교 수업도 흥미가 없었다. 그렇게 좋아하던 문학 시간마저도 책상에 엎드려 있거나 멍하니 창문만 바라보니 유스타스가 드디어 미친 거냐며 장난을 걸어왔지만, 장난에 응해줄 마음이 아니었다. 내가 가만히 있으니 유스타스도 슬슬 걱정됐던 것인지 자기 마이를 벗어 덮어주고 수업 시작 때마다 들어오시는 선생님들께 나 대신 아프다 말해줘서 난 편하게 엎드려 있을 수 있었다. 흐지부지 지나간 수업시간에서도,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오면서도, 온 가족이 모여서 식사를 하는 도중에도 머릿속에서 난 내가 만들어낸 소년과 즐겁게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다시 벚꽃축제에 가자. 한참을 앓고 나서 내린 결론이었다. 벚꽃축제가 열리는 건 총 5일, 우린 첫째 날에 갔다 왔고 오늘은 이미 하루가 지나갔으니 아직 3일이 남아있다. 그때 다시 소년을 만날 수 있을까? 불안감이 덮쳐오면서도 한편으로는 소년을 만날 거라는 확신이 더욱더 내 가슴을 뛰게 하였다. 드디어 문학을 좋아하는 좋은 말동무가 생기겠다, 소년의 이름은 무엇일까? 개구쟁이처럼 웃는 모습이 싱그러운 나무를 닮았던데. 작은 새들과 수다를 떨던 푸른 잎이 옹기종기 모여 잠시 들린 바람을 따라 이리저리 춤을 추고 있는 싱그러운 나무… …. 책상에 앉아 그다지 밝지 않은 스탠드에만 의존하여 책들 옆 구석진 곳에 자리하고 있던 일기장을 꺼내 소년을 회상하며 이것저것 써내려갔다. 순서도 뒤죽박죽 엉망이었지만 그런 건 괘념치 않았다. 일기를 다 쓰고 다시 한 번 읽는데 시싯 웃던 소년의 얼굴이 떠올랐다. 갑자기 얼굴이 화끈거려와 스탠드를 끄고 이불 속으로 들어갔다. 내가 왜 이러지? 열심히 손 부채질을 해보았지만 붉어진 얼굴은 금방 가라앉지 않았다. 어제도, 오늘도 학교를 마치자마자 옆 동네로 달려가 내가 소년을 만났던 곳에서 한참 소년을 기다렸지만, 소년은 나타나지 않았다. 일부러 다 읽은 책을 들고 몇 번씩이나 봤던 문장들을 또 읽기도 하고 슬며시 책갈피를 떨어뜨렸다 줍기도 하고 떨어지는 꽃잎을 손바닥 위에 올리곤 후- 불어 날려보기도 하면서 소년이 지나가진 않을까 눈동자를 굴렸지만, 소년의 그림자조차 찾기 어려웠다. 혹시 내가 틀린 걸까? 정말 소년과는 이대로 끝인 걸까? 이틀 내내 소년을 만나지 못했다는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더 큰 불안감이 되어 나를 덮쳐왔다. 내일이면 벚꽃축제의 마지막 날이다. 내일 만나지 못한다면 소년과는 영영 이별일지도 모른다. 괜히 펜만 들었다 놨다 하며 애써 불안한 마음을 가라앉혀봤지만 역부족이었다. 잠은 오지 않았지만 억지로 이부자리를 펴고 눕고는 눈을 감았다. 만나야 해, 꼭 그를 만나야 해…. 그를 만나야 한다고 주문처럼 중얼거리곤 이불을 머리끝까지 덮어버렸다. 잠에 빠져들기 직전까지 소년은 머릿속에서 나갈 생각을 하지 않는 듯 벚꽃이 흩날리는 거리에서 밝게 웃으며 서 있었다. 학교를 마치자마자 옆 동네에 가기 위해 버스를 탔다. 요 며칠 계속 같은 버스에서 만나는 똑같은 사람들, 저마다의 이유로 이 버스를 탔겠지. 퇴근하는 어른들, 하교하는 학생들로 북적이는 버스가 싫지 않았다. 불안함 반, 설렘 반으로 버스에서 내리니 어제도 봤던 벚꽃들이 꽃잎을 내려주며 나를 반기는 듯했다. 벚꽃축제의 마지막 날이라 그런지 사람들이 더 많아 보이는 것 같아 한숨이 절로 나왔지만, 꽤 익숙해진 지리에 소년과 내가 처음 만났던 곳으로 가는 건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오늘은 소년을 만날 수 있을까? 초조한 마음을 애써 가라앉히고 책을 펼쳤다. 글자가 눈에 들어올 리 없었지만 그래도 읽고, 또 읽었다. 글자에 시선을 뒀다가 지나가는 사람들에 시선을 뒀다가 하는 것을 쉴 새 없이 반복하니 어느덧 해는 저물어 빨간 하늘도 조금씩 사라지고 있었다. 조금 있으면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 아마 소년과는 이제 끝이구나…. 서러운 감정이 북받쳐올라 눈물이 나오려 할 때 옆에서 누군가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리니 그토록 보고 싶었던 소년이 서 있었다. 오늘도 책 읽는 거야? 그때랑 같은 책 맞지? 소년이 내가 읽고 있던 책을 기억하고 있었다는 생각에 묘하게 뛰는 가슴을 진정시키려 고개를 푹 숙이곤 고개를 끄덕였다. 벚꽃축제 오늘이 마지막이던데 이야기 좀 할 수 있을까? 아까보다 고개를 좀 더 격하게 끄덕이곤 좀 진정되는 느낌에 고개를 드니 눈이 마주친 소년은 또 시싯 웃었다. "이름이 뭐야? 난 포트거스 D. 에이스. 편하게 에이스라고 부르면 돼." "…트라팔가 로우." "로우? 멋진 이름이네. 벚꽃 좋아해?" "꽃 자체보단 분위기를 즐기는 편이지. 책도 더 잘 읽히고" "그래? 독서하는 걸 아주 좋아하나봐? 꿈이 작가야?" "언젠간 글을 써보고 싶어. 어렸을 때부터 꿈이었거든." "아, 작가 멋지다! 나는 건축가가 꿈인데…. 학교는 어디 다녀? 여기 근처 학교에선 못 본 거 같은데." "… ….이 동네 안 살아. 옆 동네에서 왔어." "그럼 옆 동네에서 여기까지 왔던 거야? 하긴, 여기 벚꽃축제가 규모가 크다 보니까 유명하긴 하지. 그럼 너 지금 집에 가야 하는 거 아냐?" "… …." "…우리 불꽃놀이 하러 갈래? 엄청나게 예쁜데." "…응." 에이스와 나는 근처 노점에서 불꽃놀이용 폭죽을 몇 개 사 와서 불을 붙였다. 폭죽이 요란한 소리와 함께 저마다의 색깔을 뽐내며 타들어 가는 게 신기해 넋을 놓고 쳐다보니 내 모습이 웃겼던 건지 그는 시싯 웃곤 손에 쥐는 폭죽을 내게 건네주었다. 끝에서부터 올라오는 금색 빛이 너무나도 예뻤다. 그야말로 별들의 축제 같았다. 한참 불꽃놀이를 끝내니 어느덧 하늘은 어두워진 지 오래인 듯 별빛이 밝아있었다. 뒷정리를 끝내고 온 에이스가 데려다주겠다며 나를 따라 공원을 나왔다. 아니, 그럴 필요는 없는…. 아냐, 내가 데려다주고 싶어서 그래, 그러면 더 오래 얘기하잖아. 킥킥. 그는 개구쟁이처럼 웃으며 같이 발걸음을 마주해왔다. 나란히 걷는다는 게 얼마나 가슴이 두근거리는지 그에게도 소리가 들릴까 노심초사했다. 그렇게 버스를 타고, 이런저런 얘기를 하며 걸으니 벌써 집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와 헤어지는 게 아쉬워 나는 걸음을 멈추고는 그에게 말을 걸었다. "저기, 에이스야." "왜 불러 로우?" "처음 만났을 때 네가 해줬던 말 말인데…. 너도 이 책 읽었어?" "응! 센 도르슨의 봄과 벚꽃과 사랑, 내가 제일 좋아하는 책이라 몇 번씩 다시 보곤 했지. 사실 그때도 우연히 지나가면서 그 책을 본 것 같아서 쭉 쳐다봤었는데 네가 책갈피를 떨어뜨리고 가길래 줍고는 한참 찾아다녔어." "아… …." "로우, 손 좀 내밀어 볼래?" 에이스는 내 손을 잡고 다짜고짜 볼펜을 꺼내 무언가를 손바닥에 적기 시작했다. 손바닥에 느껴지는 간지러운 느낌에 살짝 웃으니 그가 나를 따라 활짝 웃곤 다 됐다며 꼭 편지 달라며 소리치곤 손을 흔들며 반대편으로 뛰어갔다. 손바닥을 펼쳐보니 삐뚤빼뚤한 글씨체로 집 주소가 쓰여 있었고, 손에 쓰인 글씨에서 에이스의 모습이 보이는 것 같아 피식 웃고는 집에 들어갔다. 집에 들어가니 평소보다 늦은 아들의 귀가에 부모님은 살짝 화가 나셨지만 크게 나무라진 않으셨다. 아마 내가 독서실에서 공부하다 왔다고 생각하시는 듯했고 나 역시 굳이 해명하려는 마음이 없었다. 에이스의 글씨가 지워질까 봐 손도 씻지 않고 방에 들어와서는 일기장에 그의 주소를 옮겨 적고는 구석에 살짝 별들의 축제도 적어놨다. 로우, 공부하는 건 좋지만, 손은 씻어야지-. 방문 너머 들리는 부모님의 소리에 일기장을 덮고는 손을 최대한 가리고 화장실로 달려갔다. 물에 의해 이젠 희미해져 버린 그의 글씨를, 나는 한참 동안 멍하니 바라보았다. 우린 그 뒤로 꽤 가까워졌다. 매일 만나진 않았지만, 이틀에서 삼일 간격 주고받는 편지로 서로의 안부를 묻고, 읽고 있는 책 얘기를 하기도 하며 서로의 고민을 들어주었다. 새빨간 우체통에 편지지를 넣으면서 그에게서 올 답장을 기대하며 두근거리는 마음을 꾸욱 눌렀다. 평소엔 이렇게 편지를 주고받다가, 가끔 토요일이라든지 모의고사로 학교가 빨리 마치는 날이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의 동네의 중간 지점으로 달려가곤 했다. 유스타스나 루피는 내가 드디어 연애한다며 나를 놀리곤 했지만, 딱히 신경 쓰지 않았다. 머릿속엔 에이스를 볼 수 있다는 생각으로 가득 차 잔뜩 들떠 있었다. 비록 계절은 봄이 지나가 버렸지만 내 가슴은 여전히 벚꽃이 만개한 봄이었다. - 첫 만남은 늘 달콤하고 설렌다. 나와 A는 그렇게 사랑을 시작했다. 누가 먼저 고백하진 않았지만 서로 좋아하고 있음을 알고 더욱 서로에게 이끌렸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길었던 그 시간 동안 우리는 서로 입을 맞춘다거나 몸으로 나누는 대화가 아닌 진실한 마음과 마음으로 통하는 순수한 사랑을 했다. 시간은 폭포처럼 빠르게 흘러가 버렸지만 그 순간순간은 절대 후회하지 않는 진실하고 아름다운 사랑이었다. 하지만 시작엔 언제나 끝이 있는 법. 행복은 그리 길지 못했다. - "로우, 의대에 진학한다고 선생님께 말씀드렸겠지?" "… …." "왜 말이 없는 거니?" "…네. 말씀드렸어요." "그래, 알겠다. 가서 공부해라." 나는 의대에 가고 싶지 않다. 문예창작과나 국어교육과에 가고 싶지만 절대 부모님 앞에선 말하지 못한다. 집안 대대로 의사였으니 외동아들인 내가 의사가 되지 않는다면 그건 조상님에 대한 엄청난 불효라고 강조하시는 부모님께 내 말이 먹힐 리가 없었다. 가만히 앉아 펜을 들고 종이에 작게 '나 힘들어'라고 적고는 급하게 지웠다. 나 때문에 에이스가 걱정하는 건 죽어도 싫었기에, 안부를 묻는 문장의 답장으로는 별일 없고 잘 지낸다고 적었다. 편지를 주머니 속에 꼭꼭 숨겨 집을 나온 뒤 하얀 눈이 내린 거리 위 빨간 우체통으로 다가가는데 누군가가 내 팔을 잡았다. 옆으로 고개를 돌리니 에이스가 씩 웃으면서 내 손에 들려 있는 편지를 뺏어갔다. 어떻게 왔어 에이스야? 내 물음에 에이스는 그냥 보고 싶어서 왔다며 시싯 웃었다. 우린 눈길을 걸으면서 많은 얘기를 나눴다. 분명 최대한 웃는다고 했는데 그에게는 티가 났던 건지 무슨 일 있었냐고 물어왔다. 없다고 고개를 가로저어도 이미 속이기엔 너무 늦었다고 씨익 웃으면서 말해보라는 그에, 절로 피식 웃음이 났다. 나는 결국 다 털어놓았고, 그는 내가 하는 말을 묵묵히 듣더니 부모님께는 말씀 드려봤냐 물어왔다. 아니. 내 대답을 듣자마자 그는 말해보지도 않고 단정 지으면 어떡하냐고 오늘 말씀드려보라고 할 수 있다고 격려해주었다. 적당히 늦지 않게 그와 헤어지고 집에 들어가니 부모님께선 거실에서 차를 들고 계셨다. 오늘 잘 말해봐- 에이스의 말이 머릿속에 겹쳐지면서 우물쭈물 서 있으니 무슨 문제 있는 거냐며 부모님이 물으셨고,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방으로 들어왔다. 내가 정말 할 수 있을까? 내가 좋아하는 글을 쓰려면 지금밖에 기회가 없겠지?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방문을 열고 다시 나갔다. "어머니, 아버지. 저 말씀 드릴 게 있어요." "뭐냐 로우? 공부가 잘 안 되니?" "아니요, 저…. 의사보단 글을 쓰고 싶어요. 전부터, 글을 쓰는 걸 좋…." "네가 지금 생각이 있는 거냐, 없는 거냐! 내가 누누이 말했지? 넌 좋든 싫든 이 아비를 따라 의사가 되어야 한다고. 그러려고 공부시켰더니 뭐?" "…그래도 전 글 쓰는 게 좋아요, 한 번만 믿어주세요. 실망하게 하지 않을 자신 있어요." "그딴 소리 할 거면 집에서 나가! 꼴도 보기 싫다." 역시나…. 예상은 했지만 직접 말로 들으니 서러운 마음에 울컥해서 그대로 집을 나와버렸다. 코트도 들고 오지 않아 눈 내리는 날씨에 덜덜 떨면서 하염없이 걸었다. 돈이 있을 리가 만무했고, 그저 덜덜 떨면서 도착한 곳은 에이스의 집이었다. 초인종을 누를까 말까 고민하기를 수십 번, 결국 초인종을 누르니 금방 나가요- 라며 문을 연 에이스와 눈이 마주쳤다. "로우?! 추운데 옷도 안 입고 온 거야?" "에이스야, 추워… …. 나 들어간다, 잠시만 있다 갈게." "부모님 여행 가셔서 편한 대로 있어도 돼. 그보다 로우, 어떻게 된 거야?" "쫓겨났어. 꿈 솔직하게 말했는데 꼴도 보기 싫다면서." "… …. 내가 같이 가서 말씀드릴까?" "아냐, 됐어. 그것보다 나 씻을래, 눈 때문에 옷 다 젖었어." 에이스가 욕실로 안내해주고는 자기 옷이라며 후드티와 바지를 건네줬다. 하얀 곰돌이가 그려진 후드티가 왜인지 에이스를 닮은 것 같아 피식 웃고는 뜨거운 물에 샤워하니 기분이 한결 나아졌다. 머리를 대충 수건으로 닦고 나가니 에이스가 심각하게 거실에 앉아 있었다. "에이스야" "로우! 오늘은 늦었으니 우리 집에서 자고, 내일 나랑 같이 너희 집에 가자. 나도 같이 말해줄게!" 그가 말한다고 절대 허락해주실 부모님이 아니었지만 함께라는 즐거움이 더 컸던 탓에 고개를 끄덕이곤 에이스 옆에 앉았다. 에이스는 갑자기 옆으로 앉은 나에 놀랐던 건지 잠시 눈이 커졌다가 이내 씩 웃으면서 날 안아왔다. 포근한 느낌에 살짝 눈을 감으니 코끝에서 에이스의 비누 향이 느껴졌다. 냄새난다 에이스야. 로우 너도 나랑 같은 냄새 나는데? 장난으로 틱 던진 말에 그도 장난으로 응답해왔다. 내가 고개를 들어 그를 보면 그도 나를 보고는 씩 웃었다. 우리는 그렇게 한참을 킥킥댔다. 지금 느끼는 따스하고 포근한 기분이 계속되기를, 시간이 멈춰버리기를 하고 나는 간절히 기도했다. 띵똥-. 아침부터 올리는 초인종 소리가 꽤 요란스러웠다. 에이스가 금방 나간다며 문을 열자 문 건너편에는 잔뜩 화가 나신 부모님이 계셨다. 부모님은 뒤따라 나온 나를 보곤 표정이 더 어두워지셨고, 다짜고짜 내 팔을 잡곤 집에서 끌고 나가려 하셨다. 어렸을 때부터 엄하신 아버지였기에, 나는 아무런 저항도 할 수가 없었다. 에이스가 아버지를 말리려고 애썼지만 아랑곳하실 아버지가 아니었다. 그렇게 집으로 강제로 끌려간 후 나는 정말 죽지 않을 만큼만 맞았다. 친구 집에서 자고 온 게 그렇게 죄였던 걸까라는 생각이 들 때 즈음 내 눈앞에 에이스와 주고받던 편지들이 쏟아졌다. 공부하랬더니 사내놈이랑 사랑 타령이나 하고 있었느냐면서 아버지는 더욱 화를 내셨고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묵묵히 맞기만 하던 아들의 태도에 더 화가 나셨던 아버지는 에이스를 봐야겠다며 나갈 준비를 하셨고, 그제야 나는 너무 맞은 탓에 움직이지도 않는 몸을 이끌고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사과했다. 에이스는 아무 잘못 없고 이젠 글 같은 거 전혀 쓰지 않을 테니, 부모님 뜻대로 의사가 될 테니 나만 혼내달라 울면서 계속 사정하니 아버지도 아무 말 없이 방으로 들어가셨다. 그 뒤로 나는 집 밖으로 전혀 나갈 수 없었고 에이스와의 연락은 그렇게 끊기고 말았다. 폭풍 같았던 18살을 보내고 시간은 흘러 19살의 봄이 되었다. 벚꽃이 활짝 피었지만 쳐다보지 않았다. 누군가가 떠오를 것 같아서, 지금까지 버텼던 게 전부 무너질 것 같아서. 벚꽃 축제에 가자는 유스타스와 루피의 말을 무시하고 길을 걸었다. 일부러 영어 단어를 외우는 척 책에 눈을 고정하고 있으니 유스타스와 루피가 시시하다는 듯 자기들끼리 벚꽃을 구경하겠다며 옆 동네로 가는 버스를 타러 정류장으로 갔고 나는 혼자 집으로 걸었다. 골목길에 들어서자 갑자기 누군가 내 팔을 잡고 제 쪽으로 이끄는 바람에 힘없이 끌려간 나는 내 팔을 꽉 잡고 있는 손의 주인을 확인하자마자 눈물이 터질 것 같았다. 에이스… …. "잘 지냈어 로우?" "…응." "다행이다…. 그때 그렇게 네가 가버린 후 걱정 많이 했어. 어디 다친 덴 없지?" "없으니까 걱정하지 마. 그리고 이젠 여기 찾아오지 말아줬면 해." "무슨…말이야?" "말 그대로. 이제 나 글 같은 거 전혀 안 써. 의대에 갈 거야." "로우, 갑자기 왜 그래?" "글 같은 거, 질렸단 말이다. 애초에 난 의사가 되려고 했었지 잠시 문학에 빠져서 같잖은 꿈이나 꾸었다고. 문학 소년은 이제 없을 거니까, 너도 다른 사람 알아봐." "너 지금… ….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물을게. 진짜 나랑 아예 안 보고 살 거야?" "그렇단 소리다. 생각보다 말귀가 늦는군. 잘 가라, 포트거스여." 에이스는 내 말이 끝나자마자 표정을 굳히곤 멀리 사라져버렸다. 멀어져가는 에이스의 뒷모습에 눈물이 툭 떨어졌지만, 쓱쓱 닦았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또 무너져버릴 게 분명하기 때문에, 우리 아버지가 에이스를 어떻게 할지 모르기에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하면서 그렇게 그를 떠나보냈다. 한참 그 자리에 서 있으면서 벚나무도 따라 울듯 벚꽃잎이 흩날렸다. 우린 그렇게 헤어졌다. - 그렇게 우리는 헤어졌고, 나는 우수한 성적으로 의대에 입학했다. 잘은 모르지만, A는 자기가 원하던 건축학과에 합격했다고 들었다. 그렇게 서로의 길을 향해 달려가기를 10년,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는 11년 동안 들지 않았던 펜을 들어 종이에 이야기를 써내려갔다. 그리고 그 시작이 내 일생에서 제일 잊히지 않는 첫사랑이었고, 그 이야기가 지금 이렇게 책으로 나왔다. A에게 하고 싶었던 말을 끝으로 나는 이만 마침표를 찍으려 한다. A에게. 시간은 정말 거침없이 흘러 어느덧 10년이란 세월이 지났구나. 드디어 난 내가 하고 싶었던 글을 쓰게 됐어. 아마 난 부모님께 간섭받지 않게 된 지금에서야 비로소 어른이 된 거일지도 몰라. 창밖을 쳐다보면 여전히 벚꽃이 활짝 만개했다가 져버리고, 푸른 잎의 나무들이 제각각 빨간 옷, 노란 옷을 입다가 스르르 떨어져 버리고, 하얀 눈이 세상을 뒤덮다가 언제 있었느냐는 듯 사라져버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딱 한 번, 우리가 처음 만났던 커다란 벚나무에 찾아갔던 적이 있어. 비록 벚꽃은 져버렸지만, 아직 우리의 벚나무는 그 자리에 존재하더라. 또, 매년 예쁜 벚꽃을 피워내겠지. 나에겐 아직 네가 주었던, 휴대폰이 없던 시절 편지로만 안부를 전했던 1년이란 시간 동안 만들어진 소중한 추억들이 져버려도 매년 피어나는 벚꽃처럼, 굳건히 그 자리를 지키는 벚나무처럼 머릿속에 가득 존재하는데 너도 그러니? 그 시절, 우리들의 봄에 소중한 추억 만들어줘서 정말 고마워, 나의 첫사랑아. 그 시절, 우리들의 봄 마침. 저자- 트라팔가 로우 - "작가님, 이거 대박이에요! 신인 작가 로우의 실화, 그 시절 우리들의 봄이 베스트 셀러래요!" "아…. 네." "작가님, 이따 오후에 작가님 팬 사인회 있는 거 아시죠? 작가님 외모가 준수하다고 여성팬들이 벌써부터 난리에요!" "… …." "그럼 작가님은 일단 휴식 하시고, 이따 다시 찾아뵐게요." "네." 로우는 이 자리가 매우 불편했다. 어떻게 보면 에이스를 팔아서 만든 베스트 셀러가 찜찜했던 찰나에 단순히 제 외모로 팬 사인회를 한다는 것 자체가 몹시 불편했다. 스태프들이 나가자마자 로우는 휴대폰 검색창에 제 이름을 쳤다. 인물 검색창에 당당하게 올라가 있는 제 사진을 넘겨 책 리뷰를 열심히 읽고 있던 로우는 슬슬 출발하자며 들어온 스태프에 의해 거의 끌려가다시피 나갔다. 작가님, 잘생겼어요! 제가 사인해주는 여성팬 대부분이 로우를 보자마자 잘생겼다고 소리치면 로우는 예의상의 웃음으로 고맙다 답해주었다. 저를 좋아해 주는 건 고마웠지만 이런 식의 관심은 부담스러웠던 로우는 차라리 이 시간이 빨리 지나갔으면 하고 간절히 바랬다. 이름이 뭐예요? 들려오는 대답이 없자 로우가 이상해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로우가 제 앞에 서 있는 남자가 누군지 파악하자마자 로우의 눈이 커졌다. 로우의 앞에는 10년이란 세월 동안 단 한 번도 잊은 적 없었던 그리운 얼굴이 서 있었다. |
| [홍재] 어느 멋진 날 |
좋아했던 사람에게서, 청첩장을 받았다. 니지무라 슈조X하이자키 쇼고 [홍재] 어느 멋진 날 여태까지 살아오면서 딱 한 번 게이였던 적이 있다. 중학생때였는데 상대는 속해있던 농구부 주장이었다. 시도때도없이 부활동을 빼먹던 나를 쥐어박으며 끌고오던 애인에대한 매너라고는 조금도 없던 남자였다. 솔직히 지금와서 생각하면 사겼던게 맞나 싶기도 하다. 딱 한 번 키스를 했던 것을 빼면, 그다지 보통의 연인 같았던 적이 없었다. 그랬는데도 불구하고 우리는 꽤나 오래 연인이라는 이름 속에 지냈다. 내가 부에서 쫓겨나고, 그가 말없이 미국으로 떠나기전까지는. 아마 연인이었다. 처음에 그가 미국으로 떠났다는 소식을 다른이에게서 전해들었을때에는 어이가 없었다. 그래서 조금 화냈다. 그가 공부하던 반, 그가 사용하던 책상과 의자에 앉아서 답지않게 엎드려누운채로 그를 험담했다. 하지만 나아지는건 없었다. 그래서 그 다음 날부터는 평소처럼 지냈다. 여자아이들에게 야한 농담을 건네고, 학교를 빼먹고, 패싸움을 하면서 하루를 보냈다. 평소처럼 그랬다. 다만 더이상 부활동을 빼먹지 말라고 화내며 때리는 사람이 없었을뿐이었다. 그가 없는 일상은 편했다. 쓸데없이 맞지 않아도 되고, 즐거운 분위기가 깨지는 일도 없었다. 물론 편했을 뿐, 크게 좋지는 않았다. 이상하게도. 고등학생이 되서는 머리스타일도 바꿨다. 농구를 다시 시작했고, 선배들에게 멋대로 굴었다. 그랬지만 아무도 나를 때리거나 나무라지 않았다. 그에게 그랬더라면 뒷통수가 남아나지 않을 정도로 맞았을텐데. 다들 막무가내인 내게 쩔쩔맬 뿐이었다. 그래서 더 그가 떠올랐다. 그리고 떠오른만큼 짜증이 났다. 시간이지나, 스무살이 넘어서는 그가 자주 떠오르지 않았다. 레게를 했던 머리도 풀었다. 사고도 더이상 치지 않았다. 그냥 이제는 그런 생활이 지겨워져서였다. 예전의 나라면 어울리지 않게 평범하게 지냈다. 딱히 좋은 곳은 아니지만 취업도 했다. 그렇게 바쁘게 지내다보니 나이는 어느새 계란 한 판을 채우고 있었다. 여자친구는 몇번 사겼지만 오래가지는 못했다. 결정적인 순간에서 그들을 봐도 흥분이 되지 않았다. 대부분의 여자들은 내게 상처받은 얼굴을하고 떠났다. 자기가 그렇게 매력이 없냐는 말을 물리도록 들은 것 같다. 그래서 남자를 사겨봤더니 별 다를건 없었다. 아니, 오히려 가슴이 없어 더 끔찍한 편이었다. 딱히 친한 사람도 없었다. 제일 많이 통화한 번호를 꼽으라면 야식집 번호 정도. 어머니와 형과도 가끔 연락하는 것 외에는 자주 만난 적이 없다. 그래서 처음 우편함에 꽂힌 하얀색의 종이를 봤을때는 청구서려니 싶었다. 아니면 학습지 전단지쯤일거라 생각하고 집어들었다. 하얗고 고급스러운 재질의 종이 위로 청첩장이라는 단어를 보기 전까지만 해도 말이다. "허? 뭐야 이거." 기억을 더듬어봐도 떠오르는 사람이 없어 잘못 도착한건가하고 생각하며 펼친 청첩장에는 정갈한 글씨들이 프린트 되어있었다. 신랑 니지무라 슈조. 순간적으로 머릿속이 새하얗게 변했다. 본능적으로 다른사람일 것이라 합리화하려 했지만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서른하나, 확실히 그는 충분히 결혼할 나이였다. 한숨을 뱉으며 마른 세수를 했다. 별로 믿고 싶지 않았다. 제게 왜 청첩장을 보냈는지조차도 이해할 수 없었다. 집으로 들어가 침대 위로 엎어져 누우면서도 마음이 착잡했다. 십년가량 마음 속에서, 그리고 머릿속에서 희미해져갔던 그가 순식간에 또렷한 영상이 되어 머릿속을 휘저었다. 서른 한살이 된 그는 얼마나 달라져 있을까, 키도 더 컸을려나. 여전히 생각할때면 윗입술을 삐죽내밀고 있으려나. 미국에서는 언제 돌아온거고, 지금은 무슨 일을 하고 있을까. 신부는 예쁘겠지. 심장이 저릿저릿했다. 내가 그를 사겼지만 게이가 아니었던것과 같이 그도 나와 사겼지만 게이가 아니었을 뿐인데도 신부라는 그 단어가 너무 아팠다. 주머니를 뒤적거려 담배곽을 꺼내들었다. 성인이 되고나서 유일하게 배운 나쁜 버릇은 담배였다. 한개피를 꺼내 불을 붙였다. 방 안으로 매캐한 담배연기가 퍼졌지만 딱히 상관하지는 않았다. 담배를 입에 문채로 청첩장을 다시 한 번 읽었다. 사랑의 결실을 맺는다, 결혼식에 참석해 축하해달라. 형식적으로 씌인 말 조차도 가시처럼 내 마음으로 박혀들어왔다. 한참 프린트 된 그의 이름을 바라보다 담배를 잿떨이에 비벼끄고는 다시 침대 위로 등을 붙였다. 눈을 감으니 턱시도를 차려입은 그의 형상이 떠올랐다. 그리고 화려하면서 깔끔한 예식장의 모습이 그 뒤로 펼쳐졌다. 그는 앞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늠름한 신랑다운 걸음걸이로 모두의 시선을 받으면서. 천천히 눈을 떴다. 입 밖으로는 욕짓거리가 튀어나왔다. 대충 몸을 일으키곤 바지와 속옷을 벗어던졌다. 꼿꼿이 일어선 그것을 잡고 흔들면서 다시 눈을 감았다. 또다시 턱시도 차림의 그가 보였다. 예식장의 모습이 펼쳐지고 그가 걸어갔다. 눈을 뜨지 않은채로 계속 내 것을 문지르며 형상화되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하얀 드레스를 입은 여자가 천천히 그에게로 다가갔다. 그는 뒤로 돌아 그 여자를 향해 웃음 짓고 있었다. 두 남녀가 옆으로 나란히 서있는 모습을 향해 나는 손을 뻗었다. 잡히기는 커녕, 그는 신부와 더욱 가까워질 뿐이었다. 두 사람의 입술이 맞닿으려는 순간 그가 나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리곤 웃음지었다. [왔구나, 하이자키.] 참았던 숨을 내뱉으며 눈을 떴다. 축축해진 손과 성기를 대충 휴지로 닦아내고는 멍하니 누워 천장을 바라보았다. 상대적인 패배감이 나를 덮쳤다. 어리석고 미련하게도 나는 아직 그를 지워내지 못했다는걸 스스로 증명해버리고 말았다. 다시 담배를 꺼내들어 입에 물었다. 라이터로 담배에 불을 붙이며 멍하니 생각에 빠졌다. 매캐한 담배 연기의 지독한 향이 났다. ***** 남의 결혼식에 가는 건 형의 결혼식 이후로는 처음이라 낯설기만 했다. 축의금도 얼마 되지는 않는 돈이지만 넣었다. 너무 일찍 도착한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신부의 얼굴이 궁금했지만 신부 대기실로 찾아갈 용기는 없었다. 그대신 신랑 대기실로 향했다. 결혼식이 시작하기 전에, 그의 얼굴이 보고 싶었다. 닫혀있는 문을 두드리자 들어와도 된다는 허락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의 목소리였다. 심장이 터져버릴 것만 같아서 문고리를 붙잡은채로 잠시 서있었다. 숨을 한 번 고르고 문을 여는 그 짧은 순간이 슬로모션처럼 진행되어보였다. "… 하이자키?" 그와 마주하는 순간 눈 앞이 흐려졌다. 눈물이란걸 깨달은 것은 물줄기가 볼을 타고 흘러 내렸을 때였다. 맑아졌다 흐려졌다를 반복하는 시야 앞으로 보이는 당황한 듯한 그의 모습에 그냥 무진장 쪽팔렸다. 무덤덤히 축하해주려했던 계획은 쪽팔리게도 눈물이 흐르는 바람에 망해버렸다. 묻고 싶은게 정말로 많은데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는 그런 나를 바라보다가 문고리를 잠궜다. 나는 소리조차 내지않고 끝없이 울어댔다. 눈물샘이 고장났다는 말이 이렇게까지 적절할 수 없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와줄지 몰랐어." "… 왜요, 막상 보니까 찝찝한가?" "그동안 어떻게 지냈냐." "아-주 잘 지냈겠죠. 멋대로 쥐어패는 사람도 없었는데." 하고싶은 말은 이게 아닌데. 끝까지 자존심 세우려는 내 모습이 내가봐도 우스웠다. 모든게 다 마음에 안들었다. 그와 내가 다시 만난 이 장소도, 만나게 된 이유도, 찌질한 내 모습도, 그와중에도 눈물을 닦으라며 휴지를 건네주는 그의 다정함마저도. 마음이 불편했다. 아까까지만 해도 쿵쾅거렸던 심장으로 가시가 여럿 박혀버린 기분이었다. "난 5년전에 돌아왔어." "… …." "부인은 직장동료로 만나게 된 사람이야." "왜, 말해주는건데요." "네가 궁금해하고 있는거잖아." 어깨 위로 올라온 그의 손을 쳐내려했지만 붙잡혔다. 한층 가까워진 그의 모습은 멋있었다. 턱시도는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그에게 잘 어울렸다. 그는 천천히 내 어깨를 다독였다. 위로하는 듯한 손길이라 기분이 나빴다. 물론, 쳐내지는 못했다. "너도 이젠 자리를 잡아야지." "… 무진장 기분나쁜데요, 그 말." "너와 나는 테이코때에 묻어둬라." "… …." "텔레비전에 나오는 것처럼 그땐 그랬었지 하는 추억으로만 남겨두라고, 그 감정." "… …." "나는 벌써 그래뒀으니까." 나를 바라보며 그가 웃음지었다. 하지만 그 웃음이 어딘가 쓰기만해서 기분을 나빠할 수도, 그렇다고 다르게 반응할 수도 없었다. 내 머리 위로 올라온 손이 머리칼을 잔뜩 흐트렸다. 그는 억지로 내게 장난치려 들었다. "아 진짜, 하지마요!" "너 고등학교땐 레게했었다며? 어울리지도 않을걸 왜했냐?" "아씨, 내맘이죠! 진짜 축하하러 온 사람한테 이게 할 행동인가." "고마워서 그러지 쨔사." "… 결혼, 축하해요. 니지무라 선배." "… 오냐, 고맙다." "이만 갈게요." "… 그래. … 그리고 왠만하면 담배는 끊어라. 몸에 안좋으니까." "내맘입니다." 그래서 나도 따를 수밖에 없었다. 대화를 마치고 잠겨있던 신랑대기실의 문을 열어 밖으로 나서는 발걸음은 가벼웠다. 하지만, 아무렇지 않은 척 등 뒤로 문을 닫고나자 무너져내렸다. 가슴에 뚫려버린 크기를 가늠할 수도 없는 구멍에서부터 감정이 쏟아져내렸다. 너무 큰 구멍이라 어떻게 메꿔야할지 가늠조차되지 않았다. 다급히 손바닥을 겹쳐 막으려했지만 감정은 그 손틈 새를 비집고 흘러 나왔다. 혹시 다른 사람이 볼까 두려워 도망치듯 식장을 벗어나야만 했다. 그를 만나고 나자 더욱 그의 결혼식을 볼 자신이 없어졌다. 옷 소매로 대충 눈물을 훔쳐보지만 옷의 색만 짙어져갈 뿐이었다. 결국엔 얼마가지 못하고 발걸음을 멈췄다. 흥건히 젖은 얼굴을 닦아내며 주머니를 뒤적거려 담배를 찾아 입에 물었다. 상가의 유리로 비춰지는 눈물로 범벅진 얼굴이 추하기만했다. 결혼식장 속 두 사람은 정말로 멋지고 아름다울텐데. 잿빛의 매캐한 담배연기를 뿜어내며 고개를 뒤로 젖혔다. 아까전까지만해도 부슬비가 내리던 하늘은 맑게 개여 무지개 하나를 띄우고있었다. 살랑하고 불어오는 바람마저도 소름끼치게 부드러운 멋진 날이었다. 그냥 헛웃음이 흘러나왔다. 아, 담배 끊어야하나. 아 또 멍청한 생각, 그 사람 말을 들을 필요는 없는데. 담배를 비벼끄고는 다시 걸음을 옮겼다. 행복한 척까지는 못하겠다만 불행해보이지는 않고 싶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오랜만에 어머니와 통화했다. 솔직히 먼저 연락은 걸어본 건 이번이 처음이라 어색했다. 무작정 찾아가겠다는 말에도 어머니는 흔쾌히 기뻐해주셨다. 마트에 들려 과일을 고르면서 그의 결혼식장을 떠올렸다. 나는 그가 행복하기도, 불행하기도 바라지 않는다. "어 형, 그냥 저녁에 가족끼리 식사나 하자고 연락했어. 왠일이긴, 내가 이러니까 이상해? 어머니한테는 먼저 연락했어." 그가 말했던 것처럼 나는 그의 중학시절에 담겨있을테니까. 나도 이제는 그것으로 만족할 줄 아는 어른이 되었으니까. "오늘같이 멋진 날에 혼자 찌끄러져 지낼 순 없잖아?" 오늘은 사랑했던 사람이 결혼하는 날. "고기? 좋지, 형이 사는거다?" 평범한 2월의 어느 멋진 날이다. |
| [엽궁] 나 하야마 코타로는 한달 뒤에 죽습니다 |
이상하다. 분명 방금전까지만해도 심장이 너무 아파서 눈 앞이 새하얘지는것만 같았는데, 지금은 온통 새까맣다. 내가 서있는건지, 누워있는건지 그것도 아니라면 떠있는건지조차 구분할 수 없다. 심장에 커다란 대못을 박아넣은 것만 같았던 고통도 느껴지지않았다. 그순간 깨달았다. 죽은거구나. 하지만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죽었다는 그 사실이 너무 무서웠음에도 나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다. 끝이 보이지 않는 까만 세상이 나를 집어삼킬 것만 같았다. 두려웠지만 두려움을 느끼지 못했다. 나는 드러누워 어둠을 바라보았다. 어느 곳이 위고 아래인지 구분 할 수 없었기에 나는 똑바로 서있거나 물구나무를 서듯 거꾸로 매달려있을지도 몰랐지만 대충 내 생각으론 드러누운 것 같았다. 눈 앞으로 보이는 것은 오로지 어둠이었다.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어둠, 그것만이 눈 앞에 있을 뿐이었다. 죽고 싶지 않아. 이미 죽었을테지만 그렇게 생각했다. 이제 고작 열아홉이었다. 아직은 라쿠잔고교 농구부의 스몰포워드로써 뛰어야할 경기가 많이 남아있었다. 첫 패배이후로 가지게 된 승리를 향한 갈망을 해소시켜야만했다. 아니 적어도 세상에 작별인사쯤은 제대로 해야만했다. 죽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미련을 가지게 되는 그 모든것들에 적어도 제대로 된 작별은 고해야했다. 하고싶지만 하지 못했던 것들도, 내가 좋아하던 것들도, 그리고 내 가족과 친구에게도. 이렇게 될 줄 알았더라면 욕심을 부려볼 걸 그랬다. 마음을 베풀지 말걸 그랬다. 정을 붙이지 말걸 그랬다. 물론, 그러지 못했을것이 분명하지만 그럴껄 그랬다. 죽음이 다가오자 나의 짧은 삶이 후회스러워졌다. 그와동시에 그리워졌다. 괴로웠다. 생각이 멈추질 않아서, 무진장 괴로웠다. 살고 싶다. 살고 싶다. 살고 싶다. 살고 싶다. 살고 싶다. "거 참, 시끄러워죽겠네." 누구지? "저승사자지, 누구겠냐." 아. 맞아 나 죽었구나. "그래 혈기 왕성한 나이에 심장병으로 뒤졌지. 선천적인 병도 있으면서 운동은 왜 한거냐?" 퉁명스러운 목소리가 마음을 찢어놓는 것만 같았다. 아주 갈기갈기. 아프지는 않았지만 그 느낌은 생생했다. 그러게, 선천적으로 병도 있으면서 왜 농구를 시작했을까. 목소리를 향해 물음아닌 물음을 던졌다. 대답은 느리게 돌아왔다. "왜 시작했는지는 네가 알지 내가 아냐." … 그렇지. "한달 준다." 무슨, "딱 한달이다. 그 기간동안 네가 왜 농구를 시작했는지도 좀 생각해보고," … …. "세상에 남은 미련도 버려라." 그 말의 의미를 체 인지하기도 전에, 나를 감싸고 있던 어둠이 순식간에 부셔져내렸다. 하야마 코타로X미야지 키요시 [엽궁] 나 하야마 코타로는 한달 뒤에 죽습니다. "… 어라." 두 눈을 연신 깜빡였지만 보이는 것은 낯설지만은않은 병실의 천장이었다. 주먹을 쥐었다펴보고, 발가락을 움직여도 보았다. 모든게 문제없이 움직였다. 나는 아직 살아있었다. 울컥하고 눈물이 차올랐다. 감정이 파도마냥 울렁이며 밀려왔다.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아내지도 못하고 한참을 울었다. 다 울고나서는 질나쁜 꿈을 꿨나보다,하고 생각했다. "꿈 아니면 어쩔건데 멍청아." "… 어?" "30일 남았다." 으악!! 갑작스럽게 나타난 남자에 놀라 비명이 튀어나왔다. 들어본 것 같은 목소리였지만 처음보는 얼굴에 당혹스러울 뿐이었다. 소리를 지른 탓에 병실의 문이 열리고 사람들이 들어왔다. 익숙한 얼굴들이었다. 엄마, 아빠, 누나들, 그리고 라쿠잔 맴버들. 걱정하는 얼굴로 내게 다가오는 그들은 남자가 마치 투명인간이라도 된다는 듯 인식하지 않고있었다. 이에 당황한건 나였다. 혹시 그를 알고있나 싶어 엄마에게 질문하려했지만 그가 막아섰다. 구겨진 미간을 한채로 검지손가락을 입술 위로 붙인 얼굴이 꽤나 가까워서 난감했다. "코타로, 정말 괜찮은거니? 역시 조금 더 입원해서 경과를 지켜보는게…." "아, 아뇨! 전 정말로 괜찮아요, 엄마." 왠지모르게 표정이 더 살벌해진 남자에 손사레를치자 부모님께서는 여전히 걱정스런 얼굴로 퇴원수속을 밟고 오시겠다며 병실을 나가셨다. 그제야 표정을 풀은 남자가 내게서 떨어져 벽에 기대어 삐딱하게 섰다. 온통 검은 옷을 입어서인가 남자의 창백한 피부와 노오란 머릿칼이 눈에 띄었다. 누나들에게 갈아입을 옷을 건네받고나서야 그에게서 시선을 뗄 수 있었다. 기묘한 남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얘, 코타로. 네 몸을 생각해서라도 당분간은 부활동 연습에 나오지말자. 세이짱도 감독님도 동의한거야." "… 그치만 레오누님, 나 이제 정말 괜찮은데." "고집부리지마, 코타로. 남은 방학기간동안에는 쉬도록해." "… 알았어, 아카시." 그들이 나를 걱정하고 있다는 것 쯤은 알았다. 또한 내게 조금 서운해한다는 것도 알고는 있었다. 그도 그럴것이 여태까지 그들에게 내가 가진 질병에대해 이야기하지 않는 것은 나였다. 연습 도중 갑자기 쓰러졌으니 많이 당황스러웠을거다. 그들 앞에선 한없이 건강하기만했던 나니까, 내가 질병이 있었다는걸 알게되었을때에는 적잖지않게 충격을 받았을지도 몰랐다. 사실 나도 거의 잊고지냈던 병이었다. 어릴때 한 번 죽음의 경계에 가까워졌던 적 이후로는 아무 문제없이 지내왔었다. 무리한 운동은 안된다는 진단을 받은 적은 있었지만 사실 몸에 부담이 온 적도 없었다. 옷을 갈아입어야하기에 자리를 피해준 맴버들에 여태까지 아무 말 없이 서있던 남자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남자는 나를 별로 상관쓰고있는 것 같지도 않았다. "아까 그거 꿈 아니었죠." "왜, 꿈이면 좋겠냐." "그럼 나 진짜 한달 뒤에 죽어요?" "어 죽어. 심장마비로 깔끔하게 즉사." "우왓, 그런 잔인한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하네. 진짜 저승사자 맞아요?" "그럼 진짜지 가짜겠냐. 너한테만 보이고 들리는데." "만져지기도하는데?" "잡지마, 바보녀석! 확 지금 죽여버린다?" "앗, 그건 좀 싫은데." 예민하고 거칠고, 저승사자치고는 상당히 미인이기까지하고. 나한테 무슨 일이 일어난건지도 사실 잘 모르겠다. 정말 내가 한달 동안만 더 살 수 있다면, 나는 무엇을해야할까. 내가 해보고 싶었던 일, 마무리 지어야할 일…. 그다지 길지 않는 기간 안에 마쳐야한다는 압박감때문일지는 몰라도 머릿속이 복잡했다. 일단은 옷부터 갈아입고 퇴원한 다음에 생각해봐야할까. 한숨이 나왔다. "아, 진짜…! 벗을꺼면 말부터 하라고! 사내새끼 벗은 몸보는 취미는 없거든?" "저승사자면서 부끄러운것도 많기는." "뭐 이자식아?" "아무것도 아니예요. 근데 저승사자씨, 저승사자씨는 내가 죽을때까지 내 옆에 붙어있어요? 와 사생활 침해, 싫다." "… 어이, 너만 싫은건 아니거든? 자꾸 까불면 곱게 안죽여줄 줄 알아." 우왓. 저거 엄청 진심이다. 전부터 레오누님한테 내가 너무 간이 크다는 지적을 받았었긴한데. 아니, 아무리 그래도 저 저승사자씨는 너무 다혈질이다. 옷을 마저 갈아입고 짐을 챙기면서 슬쩍 그의 눈치를 봤다. 여전히 엄청나게 화난 것 같은 얼굴. 심장마비로 죽는다는거, 저 얼굴로 놀래켜 죽인다는 말은 아니겠지. "속마음 다 들린다, 꼬맹아." "진짜? 그럼 그냥 말해야겠다. 저승사자씨 표정 엄청 무서워." "은근슬쩍 말 놓지도 말라고 정말." "네,네. 근데 저승사자씨도 이름 있어?" "그딴거 알아서 뭐하게." "뭐랄까, 역시 그냥 저승사자씨, 하고 부르는거 뭔가 꺼림칙하고." "… 나참, 너같은 놈도 처음이다. 미야지 키요시. 내 이름이다. 됐냐?" "응응 됐어, 미야지씨." 사람이 죽을때가 다가오면 겁을 상실한다고들 하던가? 대충 지금 내 상황이 그런 것 같다. 저승사자치고는 미야지씨가 너무 무섭지 않은 것도 없지 않은 이유이지만. 기왕 삼십일 더 살게 된 겸에 알차고 즐겁게 지내면 얼마나 좋지않냐는 거지. 그런 의미에서 옆에 달고다녀야하는 저승사자씨에게도 살갑게 지내는것도 나쁘지 않을거고.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코타로. "나한테 아첨떨어봤자다, 알아둬라." "응, 알았어 미야지씨. 머릿속에 새겨둘게." 아직 살아있다는것만으로도 지금은 충분히 만족하고있으니까, 아무렴 됐다. 저승사자와의 한 달이 어떨지 예상조차도 되지않지만, 긍정적으로.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 D-29 어제 밤새 내가 죽기전에 하고싶었던 일이 무엇이었는가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했다. 새하얀 수첩의 첫 페이지에 버킷리스트를 나열하는 것은 꽤나 즐거웠다. 새삼스럽게 내가 바쁘게 살아갔구나 하고 깨달음을 얻기도했다. 하지만 그 작업이 꽤나 밤 늦게까지 이어져버려서 내 주변을 어슬렁거리던 미야지씨가 조금 신경질을 부렸었다. 그래도 그것나름대로 나쁘진 않았다. 색다르게 걱정받는거라 생각하니 마음이 편했다. 이대로 아침이 밝아오면 앞으로 29일. 내게 남은 시간은 29일 이었다. "유치원생도 아니고…, 기껏 오고 싶었던 곳이 놀이공원이냐?" "재밌지 않아, 미야지씨? 사람들도 많고 시끄럽고 화려하고." 죽기전에 하고 싶었던 일, 첫번째. 놀이공원에서 실컷 놀기. 중학생때 농구를 시작하게 된 이후로였던가, 놀이공원을 자주오지 않게되었다. 그렇다고해서 그보다 더 어렸을 적에는 놀이공원에 자주 놀러오곤했던 것도 아니었다. 그냥 어느순간부턴가 놀이공원은 나와는 약간 거리감이 있는 장소였다. 사람들이 잔뜩 몰려있는 이 곳에서, 몇시간씩이나 줄을 서서 몇분되지않는 놀이기구를 타는 것보단 공원의 농구장을 뛰어다니며 드리블 연습을 하는 것이 더 내게는 어울렸다. 그래도 막상 더이상은 올 수 없는 곳이라고 생각하니, 어째서인가 있지도않는 추억에 그리워져서 꼭 한번은 오고 싶었다. 솜사탕 아저씨에게 받은 분홍빛 커다란 솜사탕을 뜯어먹으며 다음으로 탈 놀이기구를 물색하니 미야지씨는 벌써부터 질린 표정을 했다. 다행히 그 잃은 생기는 내가 놀이기구를 몇개 더 타고나서 게임장의 농구게임을 시작했을때 돌아왔다. 포지션이 스몰포워드인 만큼 그저 던지기만 하는 식의 농구게임은 그다지 즐겁지만은 않았지만 최고점을 깨지 못하는 것은 그것 나름대로 기분 나빠서 열성적이 되버렸다. 그리고 결과는 최고점 갱신. 라쿠잔의 훈련에 비교해서 이런 게임은 정말 단순한 게임에 지나지 않았지만 괜히 마음 한구석이 뿌듯해졌다. 최고점 인증샷을 찍고 레오누님의 휴대폰으로 첨부하여 메일을 전송했다. [라쿠잔의 스몰포워드, 최고점 갱신!] [코타로 쉬라고 했잖니! 그래도 대단하네 최고점. - 레오누님] 잔소리를 듣긴했지만 칭찬받아 기분은 좋았다. 내가 최고점을 깬 농구게임으로 미야지씨는 잠시간 얼굴에 생기를 띄고있는 듯 싶다가 놀이기구를 몇번 더 타자 다시 또 질린 듯한 표정으로 돌아와버렸다. 놀이기구를 질색하는건지, 농구를 유별나게 좋아하는건지는 몰랐지만 생기 넘치는 얼굴이 금새 사라져버린 것은 조금 아쉬웠다. 그렇다고해도 그 후로도 놀이기구를 몇개나 더 타고 폐장시간이 되어버려 놀이공원을 나서야만했다. D-26 죽기전에 하고 싶었던 일, 두번째. 뷔페에서 배 터질 것 같이 많이 먹기. 한 사람의 값을 지불하고 뷔페로 들어서자 보이는 엄청난 음식들에 벌써부터 입 안에 침이 고여왔다. 네부야 같이 원래 많이 먹는 사람들이 아닌 운동선수들에게는 과식이란 자칫하면 몸을 망치는 일이 되버릴 수 있다는 이유로 마음껏 먹어본 적 없었던 음식들을 죽기 전에는 한 번만이라도 배가 터질 만큼 먹어보고 싶어서 온 것이었다. 접시 하나를 들어올려 일부러 음식들을 가득가득하게 담았다. 접시에 가득 올라오는 음식들은 하나같이 맛있는 향을 풍겼다. "한 접시 먹고 쓰러지려고 그러냐." "아냐아냐, 오늘은 네부야만큼이나 먹어치울거야." "이 뷔페 주인한테 미안하지도않냐, 넌…." "미야지씨야말로 자기는 먹지 못하니까 질투라도 하는거야?" "… 뭐래, 이 바보자식이." 입 안에서 우물 거리던 음식물을 씹어 넘기고나서 미야지씨를 향해 혀를 빼꼼 내밀었다. 물론 그와동시에 그에게서 뒷통수를 세게 얻어맞았다. 살아있는 사람을 때리는 저승사자라니, 아무리 생각해도 어이가 없다. 그 후로도 몇몇 이유 때문에 그에게 얻어맞으면서 먹어치운 그릇더미가 꽤나 많아졌을때 인증샷을 찍어 네부야에게 보냈다. [근육고릴라! 나 오늘 완전 너처럼 먹었어!] [많이 먹어도 괜찮냐? 그나저나 네가 내 식사량을 따라잡으려면 저것보다 훨씬 더 많아야한다고! -근육 고릴라] 네부야의 답장에 한그릇을 더 퍼오려다가 배가 완전히 부풀어올라 터질것 같은 느낌에 그만둬야했다. 뷔페를 뒤로나고 나오면서 배웅하는 직원들의 시선이 꽤나 따가워서 조금 멋쩍게 웃었다. D-20 죽기전에 하고 싶었던 일, 세번째. 길고양이들에게 작별인사하기. 우리 집 주변에는 유난히 주인없이 떠돌이생활을 하는 길고양이들이 많았다. 내가 그런 그아이들에게 정을 붙이기 시작한건 꽤나 예전부터였다. 처음엔 우연히 빵부스러기를 나눠주다가 어느순간부터인가 사료나 통조림 같은걸 사 나눠주게되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돌보는 아이들도 늘어나게되었고, 지금은 거의 일곱마리정도가 종종 나를 찾아오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 그런 아이들에게도 작별인사를 해야할 때였다. 사료를 챙겨나가 인적이 드문 곳에서 휘파람을 불자 하나 둘씩 모습을 드러내는 아이들에게 사료를 담은 그릇을 놓아주었다. 그러자 금새 경계심없이 다가와 무릎 위로 얼굴을 부비고는 급하게 사료를 먹는 고양이들에 저절로 웃음이 피어올랐다. 언제봐도 예쁜 아이들이었다. "꽤나 의외네, 네녀석." "단지 누군가의 작은 관심이 필요한 아이들이잖아. 지금까지는 내가 그런 사람이었을 뿐이야." "겸손한 척은." "그렇게 보이나, 나 꽤나 착하고 정직한데." 하나 둘씩 배가 찼는지 그릇에서 얼굴을 드는 고양이들을 향해 손을 뻗었다. 부드러운 털 감촉을 손바닥으로 느끼면서 기억 속에 새겨넣으려고했다. 그러고보니 처음 먹을거리를 나눠줬을때보다 많이 컸구나. 이렇게나 사랑스러운 녀석들인데. "미안해, 앞으로는 오지 못할 것 같아." "냐-옹." 고양이들의 사진을 찍어서 아카시에게 메일을 보냈다. [우리 집 주변 길고양이들이다! 먹이나 간식을주면 곧잘 애교도 부려서 무진장 귀여워! 보고 싶지 아카시?] 답장은 오지 않았지만 상관하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제일 오랜기간동안 봐왔던 고양이의 머리를 쓰다듬은 후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야옹-, 거리며 배웅해주는 아이들탓에 왠지모르게 평소보다 조금 더 죽고싶지 않아졌다. ***** D-15 죽기전에 하고 싶었던 일, 네번째. 혼자서 도쿄여행다녀오기. 윈터컵 이후로 오랜만에 찾아온 도쿄는 별로 달라진게 없어보였다. 사람들도 굉장히 많았고, 시끌벅적하고. 교토와 같은 듯 다른 도시 풍경이 나는 꽤나 마음에 들었다. 조금 더 공기 좋은 시골 쪽으로 가볼걸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시선을 사로잡는 도쿄만의 독특함들에 얼마지나지않아 그런 생각들은 지워졌다. 예약해둔 호텔에 짐을 두고 도쿄시내를 구경했다. 별다를 것이 없음에도 여행이라는 의미를 두고 왔다는 것 자체탓에 기분은 좋았다. 근처 카페에서 산 버블티의 빨대를 빨며 독특한 상가들을 들리며 나름대로 선물도 구매했다. 엄마께 드릴 선물로는 연하늘색의 스카프를, 아빠께는 깔끔한 자수가 놓인 하얀 손수건을, 누나들에게는 무지개 색상이 모두 있는 머리핀을. "아, 포장할때 주황색 머리핀은 빼주세요." 한 손에는 주황색 머리핀을 쥔채로 포장된 선물들을 가지고 가게를 나오자 미야지씨가 이상하다는 눈빛을 보였다. 나는 그런 그에게 아무런 말을 하지 않고 인적이 드문 곳으로 들어섰다. "이건 미야지씨 선물이야." "뭐?" "흠…, 저승사자인데 머리핀을 꽂을 수 있으려나?" "뭐하는 짓이야, 멍청이! 이딴 머리핀 꽂을줄 알아?" "꽂을 수 있는거야? 그럼, 꽂으면 안될까?" "어이 난 여자가 아니라고, 이런 샤랄랄라한거 칙칙한 남자한테 어울릴리가…." "어울려, 엄-청!" 손을 뻗어 그의 머리카락을 조금 걷어 핀을 고정시키자 그가 기겁을 했다. 곧바로 머리핀을 떼어내버리려고 하기에 팔을 부여잡자 불쾌한 얼굴을 해왔다. 엄청 잘어울리는데, 저런 얼굴을하니 조금 서운했다. "미야지씨는 나한테만 보이는거 아니였어?" "… 네녀석한테만 보인다곤 하지만, 이건-." "나한테만 보이잖아, 응?" "아무리 그래도 이건-," "나만 볼 수 있잖아, 나만 보잖아." "젠장, 다음은 없어. … 건방진 녀석." 결국은 져주는구나. 한껏 찡그린 표정을 하고서 고개를 돌리는 모습이 꽤나 예쁘다는 생각이 들어서 흠칫했다. 곧바로 아무렇지 않은 척 했지만 속마음이 이미 읽혀진 것 같아서 꽤나 많이 부끄러웠다. 여행의 다음 날은 조금 더 번화가를 돌아다녔다. 그러다 우연치않게 방송국 앞을 지나게되버렸는데 '미유미유'라는 이름의 아이돌 가수가 프리허그 이벤트를 한다고 서있던 탓에 길이 막혀버려 난감했다. 원래부터 아이돌에는 관심을 가져본 적이 없었기에 사람들 사이를 파고들어 그 곳을 빠져나가려했었다. 미야지씨가 나를 붙잡기전까지만해도. "… 가서 너도 프리허그 하고와." "뭐야, 미야지씨. 나 아이돌엔 관심 없어." "내가 관심있으니까, 닥치고 안고오라고." "… 미야지씨 진짜 저승사자 맞아?" "따박따박 말대꾸하지 말고 가라면 좀 가라!" 솔직히 정말로 당혹스러웠다. 저승사자가 아이돌따위를 좋아한다는게 말이나되는 소리인지…. 얼떨결에 밀려 인파 속에 섞여버려서 아이돌 가수와 완전히 가까워져버렸다. 딱히 큰 키는 아니지만 일본인치곤 작은 키도 아닌 키인지라 눈에 띄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밀리고 밀리다가 어찌하지도 못하고 프리허그 차례가 되버려 결국 미유미유라는 아이돌을 한번 끌어안고는 도망치듯이 인파를 뚫고나왔다. 수줍어한다고 생각하던지 말던지 관계없고, 서늘하고 맑은 날씨에 쪄죽을뻔한게 더 중요했다. 미야지씨는 내가 인파 속에서 나오자마자 나를 끌고 어둑한 곳으로 가더니 나를 꽉 끌어안았다. 그의 온도가 꽤나 서늘해서 기분은 좋았지만 행동은 이해하기 조금 힘들었다. "… 하, 나도 진짜로 안아보고 싶다. 미유미유…." "진짜 이상한 저승사자…." "시끄러, 땀내나는 사내자식아. 미유미유는 부드러운 향이 날텐데 하아-." "미야지씨 몰랐는데 변태였구나." "미유미유 한정이거든?!" 그게 더 변태스러운걸 본인은 왜 자각하지 못하는거야. 완전 이상한 사람. 안겼을때 조금 귀엽다고 생각한 내가 바보같아. 왠지 그 후로 이어진 여행은 꽤나 별로여서, 예상보다 일찍 교토로 돌아가게되었다. ***** D-7 죽기전에 하고싶었던 일, 다섯번째. 농구에 대한 미련버리기. 어느덧 벌써 시간이 일주일밖에 남아있지 않았다. 그래서 체육복을 갖춰입고 라쿠잔의 체육관으로 향했다. 더이상 미루기에는 시간이 그것을 허용해주지 않았다. 나는 오늘, 농구를 그만둔다. 농구공이 코트 바닥으로 튀어오르는 맑은 소리를 들으면서 힘차게 체육관의 문을 열자 시선들이 나를 향했다. 연습을 하고있던 스타팅맴버가 아닌 1군들의 표정은 그다지 밝지 못했다. 아마도 내가 온전히 괜찮아져 다시 연습에 들어간다면 자신들이 스타팅맴버로 경기에 나가게될 학률이 낮아진다는걸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그들에겐 다행스럽게도 나는 일주일 뒤면 그러지도 못하게되지만, 그들은 그 사실을 모르니까. 마음이 태평양만큼 넓직한 내가 이해하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연습을 잠시 멈추고 내게로 다가온 아카시와 레오누님, 그리고 네부야의 시선들이 꽤나 날카로워서 조금 긴장해버렸다. 아무래도 셋은 내가 푹 쉬라는 말을 듣지 않은 것이 영 걱정스러운 듯 싶었다. "농구가 너무 하고 싶어서 못참겠어서 와버렸어!" "… 코타로, 글쎄 적어도 한달은 푹 쉬어야한다니까." "그럼 오늘 딱 하루만 여기서 같이 연습하고, 농구할 수 있게해줘." "뭐?" "아카시! 딱 오늘 하루만이면 돼. 그 후에는 아카시랑 레오누님 말대로 푹 쉴게." 오늘이 아니면 더이상 너희와 이곳에서 농구를 할 수 없어. 목 끝까지 말이 솟아올랐지만 꾸역꾸역 삼켜내었다. 아카시는 한동안 말 없이 나를 바라보고만 있다가 허락의 말을 뱉었다. 어쩌면 아카시가 내 마음 속을 읽어버린 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카시의 허락이 떨어지자 나는 망설임 없이 탈의실로 들어가 농구복으로 갈아입고 나왔다. 가볍게 워밍업을 하고 스트레칭을 하자 레오누님이 다가와 스트레칭을 도와주었다. 완전히 몸이 풀리고나서야 나는 교체선수로 연습경기에 들어갔다. 공이 내게로 패스되고 나만의 특기인 빠른 드리블을 시작했다. 쿵- 쿵-. 하고 체육관으로 울려퍼지는 커다란 드리블 소음에 온 몸에 전율이 일어나는 것만 같았다. 미칠 것 같이 기분이 좋았다. 내 앞을 막아서고있는 1군 맴버를 드리블하여 제치고는 골대로 달려갔다. 곧바로 다른팀이던 네부야가 공을 막기위해 뛰어올랐지만 가볍게 몸을 틀어서 다른 궤도로 공을 던져넣었다. 골망이 흔들리고, 2점이 득점되었다. "어이 하야마 너 정말 쉰거 맞냐? 전보다 훨씬 가볍잖아 몸놀림이!" "네가 너무 먹어서 느려진건 아니고?" "뭐 내가 좀 잘먹지. 어찌됬건 건강해보여서 안심이네!" "엇, 때리지는 마! 피 토해버린다?" 재빠르게 네부야의 스매싱을 피하고는 다시 재개된 경기에 집중했다. 달려나가는 상대편 1군의 공을 빼앗고 곧바로 레오누님에게 패스하자 레오누님은 평소에도 잘 안사용하는 기술을쓰며 3점 슛을 던졌다. 농구공이 깔끔하게 골망을 흔들며 떨어짐과 동시에 삐이-하고 레오누님을 마크하고있던 상대팀 1군에게 파울이 선언되었다. 그렇게 한번 더 공을 던져넣어 총 4점을 득점한 레오누님을 향해 엄지손가락을 들어올렸다. 언제봐도 대단한 슛이었다. 후반 부터는 아카시마저 시합에 합세했다. 아카시의 플레이역시도 여전히 굉장했다. 그러다가 순간적으로 다른 팀이라는 사실을 잊고 그에게 패스를 돌리는 바람에 레오누님에게 한바탕 잔소리를 들어야만했다. 시합은 후반에 아카시가 합세했던 네부야네 팀의 승리로 끝이났지만 점수차이가 아슬아슬했던 편이라 아쉬움이 컸다. 시합이 끝나자 그것을 기다리고있던 1학년들은 코트장을 대걸레질하느라 정신이 없어보였다. 체육관 바닥에 주저앉아 스포츠 음료를 마시며 숨을 골랐다. 신경쓰지 않고있어서 몰랐는데 미야지씨가 어느새 옆에 와있었다. "네 꼴보니까 농구를 버릴 얼굴은 아닌건 같은데." "버리진 않아." "… 그러냐." "후- 하! 엄청 힘들다! 그래도 재밌어, 시합은!" "무리하는건 안돼, 코타로." "알고있어, 알고있어! 괜찮다니까." 건네받은 수건으로 땀을 훔쳤다. 오랜만에 하는 라쿠잔의 격한 연습은 온 몸의 세포들이 날뛰는 것 같을 정도로 상쾌한 기분이었다. 비록 힘들어서 숨이 턱끝까지 차오르고, 땀이 흥건하게나 기분은 그다지 좋지 않을지라도. 농구는 여전히 재밌었다. 눈물나게도, 나는 농구를 너무 좋아하고있었다. 라쿠잔의 연습은 그 후에도 두번정도 연습게임이 이루워지고 난 다음에 스트레칭으로 몸을 푸는 것으로 끝이났다. 땀에 젖은 몸을 샤워하고 본래 입고온 옷으로 갈아입자, 내가 이곳에 오는 것이 오늘로써 마지막이라는 사실이 불현듯 떠올랐다. 슬펐지만, 추억이 담긴 이 곳을 기억에 남겨두고 싶어 천천히 부실을 눈에 담았다. 1학년들이 깨끗하게 대걸레질해서 다시 깔끔해진 농구코트도, 골대도, 공을 잔뜩 쌓아둔 창고도 체육관을 나서자 왠지모르게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아서 대충 인사하고는 고개를 숙인채로 잰걸음질을 했다. 두 손에 쥔 농구공의 까칠한 표면감촉이 나를 조금 비참하게했다. "집으로 안가냐." "… 미야지씨, 나 한가지는 알았어." "뭐를." "내가 농구를 왜 시작했었는지. 그걸 방금 알았어." "… 그래서, 뭐였는데." "재능, 때문이었어. 중학생때 체육시간에 농구수업을 했는데 내가 드리블에 재능이 있다는걸 알게되었어. 선생님은 내가 농구부에 들기 권유했고, 그래서 시작했어." "그러냐." "처음에는 내가 잘해서 농구를 해주는거라고 생각했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나보다 대단한 사람도 많다는걸 알게됬어. 나는 재능은 있었지만 농구를 잘하지는 못했었어. 그리고 그걸 깨달았을때는 농구가 좋아져버린 후였어." 주마등처럼 중학생때의 기억이 눈 앞을 스쳐지나갔다. 무관의 오장, 뇌수라는 별명이 붙고, 인터뷰도 몇번했었다. 하지만 그 후로 등장한 다섯명의 천재들에게 나의 빛이 묻혀지자 깨달았다. 아, 나는 재능이 있던거지, 농구를 잘하고있던 것은 아니었구나하고. 기적의 세대에 패배하고나서는 농구를 그만둘까하고 생각했었다. 근데 그걸 몸이 따라주지 않았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농구가 너무 좋아져버려서, 그래서 그만 둘 수 없어졌을 만큼. 그래서 그때부터는 노력을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기적의 세대를 뛰어넘지 못한채로 고등학교에 진학해야했었다. 드리블을 하는 것이 좋았다. 고교농구로 들어서서는 다시 나의 능력이 빛을 받기 시작했다. 그 기적의세대가 아직 중학생이었기때문에 가능한 일이라는것 쯔음은 알았지만 행복했다. 행복했었다. 기적의 세대가 고등학생이되어 우리와 다시 겨루게되었을때도, 든든한 팀원들이 있어 농구가 즐거웠다. "어이, 나는 사내자식이 내 앞에서 눈물 흘리면서 추한 꼴 보이는걸 정말 싫어하긴 하지만." "… …." "울고 싶을때 제대로 안울고 애매한 표정 짓고있는걸 보는 쪽을 더 싫어한다." "… …." "답답해 죽겠네, 그냥 울고 싶으면 울라고! 달래는 줄테니까." 툭- 하고 손에 쥐고있던 농구공이 떨어져 굴러갔다. 눈물이 울컥하고 차오르더니 조절하지도 못하는채로 왈칵 쏟아져내렸다. 오열은 한 것은 아니었다. 그냥 아무 말 없이 눈물만 계속해서 흘러내렸다. 닦아내고, 또 닦아내도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미야지씨는 말없이 등을 토닥여주었다. 눈물이 가져온 감정의 파도는 금방 쏟아져와 바다를 이룰 것만 같았다. 그야말로 정신없이 울고 또 울었다. 내가 살아가면서 가장 큰 사건이 되어주었던 농구를 떠나보내면서 나는 평생 울었던 것 보다 더 많이 눈물을 쏟아냈다. ***** D-1 죽기전에 하고 싶었던 일, 여섯번째. 부모님과 누나들, 친구들에게 편지쓰기. 그리고 일곱째, 가족들과 마지막 밤을 함께하기. 문구점에서 난생처음으로 귀여운 모양의 편짓지를 구매했다. 막상 이렇게 마지막 편지를 남기려고하니 마음 한켠이 이상했다. 내가 이제 몇시간 뒤면 죽게된다는게 솔직히 아직까지 믿어지지않았다. 처음의 편지는 네부야에게 썼다. 그동안 하고싶었지만 하지 못했던 얘기나 재밌었던 일, 고마웠던 일에대해 적다보니 편짓지는 금세 가득해져버렸다. 두번째는 레오누님에게 썼다. 레오누님에게도 그동안 고마웠던 점이 한두가지가 아니였던터라 편짓지가 금세 빼곡한 글씨들로 메꿔졌다. 그다음은 아카시였다. 일년이라는 짧은 기간동안 함께한 팀메이트였지만 그에게 고마운 점도 손에 다 꼽을 수 없을 정도로 다양했다. 아카시를 다 쓰고나서는 누나들이었다. 왠지모르게 누나들에게, 라고 쓰는 첫 시작부터 글씨가 조금 흔들려버렸다. 애써 마음을 진정하면서 하나하나 써내려갔다. 그리고 다 쓴 편지에는 함께 주황색 머리핀만 없는 무지개색깔들의 머리핀을 뒀다. 주황색 머리핀은 꼭 주고싶은 사람이 있었다고 써버렸다. 그리고 부모님께 편지를 써가면서는 왠지모르게 눈물이 났다. 편짓지에 흉한 눈물얼룩을 남기기 싫어 몇번이나 고개를 돌려 눈물을 닦아내야만했다. 부모님 각각에게 드리는 선물까지 다쓴 편지와 함께두고는 방문을 닫고 거실로나갔다. 가족들은 평소처럼 모여서 과일을 먹고있었다. 마지막이 될 모습이었다. 용기를 내어 부모님께 다가가 사랑한다고 말하며 끌어안아드렸다. 누나들에게도 처음으로 사랑한다는 말을 하면서 포옹했다. 왜 안하던 짓을 하냐면서 장난스럽게 구셨지만 내심 기분은 좋은 듯 싶어보여서 다행이었다. 그래서 나도 아무렇지않은 척 과일을 받아먹었다. 시간은 미야지씨는 말 없이 내 곁에 서있었다. "안녕히 주무세요!" "그래 코타로, 잘자라." 그 다정한 말을 듣는 순간 눈물이 날 것 같아서 도망치듯 방안으로 들어와 문을 닫았다. 미야지씨는 어느새 방 안에서 나를 바라보고있었다. 깊게 내리앉은 밤, 밤하늘에 빛나는 달의 영롱한 빛이 아름다운 날이었다. 시곗바늘은 멈추지 않고 움직였다. 그리고 마침내, "… 한달 지났다." "응." "내 손 잡고 따라와." "… 응, 미야지씨." 미야지씨의 손을 마주잡자 몸이 가벼워진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나는 그의 손을 잡은채로 창문 밖으로 날아올랐다. 뒤를 돌아보자 내 방안이 보였다. 내 육체는 바르게 누운채로 움직이지 않고있었다. 죽은것이다. "뒤돌아보지마라." "있지, 고마워 미야지씨." "뒤돌아보지말래도." "…응, 미안해 미야지씨. 앞에 볼게." 몸이 너무나도 가벼웠다. 아름다운 밤하늘을 날으는 기분도 상쾌하지 그지없었다. "미야지씨, 좋아해." "… 뭐야 그 무드 없는 고백은." "그냥. 말해야할 것 같은 기분이었어." "그런 고백 당연히- 받아들인다." "에, 정말?" "글쎄, 네녀석하는 것 봐서." 달빛 아래에서 마주한 환하게 웃음짓는 미야지씨의 얼굴은, 넋을 잃어버릴 것만 같이 아름다워서 나도 따라 힘껏 웃음지었다. "미야지씨, 내가 준 머리핀 아직 하고있네?" "이건… 그냥," "엄청 잘어울려, 예뻐." 나 하야마 코타로는, 오늘. 죽었습니다.
= 후일담을 적어보자면 레오누님은 하야마가 신기록을 세웠던 그 놀이공원 게임장을 찾아 하야마의 신기록을 깼으며, 네부야는 하야마가 갔던 뷔페에서 양껏먹다가 쫓겨났고, 하야마가 보살폈던 길고양이들은 아카시가 대신 보살펴주고있다고 합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 [수원연화] 윤회 |
"수원!!!" 머릿속에서 어떤 소녀가 날향해 울부짖는다. 절대로 용서하지 않는다고. "수원?" 붉은 머리칼을 휘날리며 새빨갛게 타오르던 소녀는 차갑게 날 노려보고선 한번도 뒤돌아 보지않고 떠나간다. 붙잡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나는 그저 슬픈 미소를 지으며 뒷모습을 바라볼 뿐이였다.그런 나의 손에 쥐여져 있던건 피묻은 장도였다. "수원!!" 무슨.. 그리고 눈을 뜨니 나를 걱정스럽게 바라보는 소녀가 울음을 삼키며 한글자씩 말해온다. 눈을 뜨지 않으셔서..어딘가 아프셔서 돌아가시는..줄로 만 알았어요. 말을 끝낸 소녀는 소매를 눈물을 닦더니 맑은 미소를 지으며, 정말 다행이라며 말해왔다. 그제야 난 정신을 차리고, 소녀를 안심하게 해줄 말을 할 수 있었다. "난 괜찮아요, 연화. 그보다 아녀자가 이렇게 쉽게 눈물을 지으면 어쩌냔 말입니까." 목구멍부터 타오르는 감정을 쉬이 가라앉힌채 웃으며 말하자,연화가 분한듯 고개를 숙였다. "수원도 참, 일어났으면 말을 했어야지!!!" 그렇게 말하곤 돌아서는 연화 뒷모습에서는 어째서 꿈에서 본 소녀의 모습과 같아보여 감정을 가라앉히려 노력할 수 밖에 없었다. "수원, 낮에 연화랑 또 가까이 지냈다죠? 어미가 입이 닳도록 말했건만. 아무리 남매라도 피는 다르니 너무 정을 두지 말라고" 낮에 잠을 청하다 숨이 넘어갈 듯 했다는 종들의 말을 들었던 어머니는 나의 건강을 걱정하기 보다 집안의 명예를 중요시 했다. "그 아이를 또 혼내야 멀리 두실겁니까. 제발 어미의 말을 들으세요." "헌데 말입니다. 수원이랑 친한 송가의 자제와 연화를 혼인시킬 생각인데 어떻게 생각하나요. 수원" 연화는 내가 어렸을 때, 집안이 몰락하여 어쩔수 없이 신분을 팔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천민까지는 아닌 상민이지만, 신분을 판 양반에게 돌아오는 차가운 시선과 핍박밖에 없었는데, 연화는 어머니가 연화를 수양딸로 들여 이렇게 지낼수 있는거라며, 언제나 어머님께 감사하고 있다고 늘 말해왔다. "자라면서 어릴때부터 같이 지내왔으니 연화나 수원도 안심이지 않습니까. 무엇보다 연화를 꽤나 오래 연모해왔다고 하더라고요." 학과 연화와 나는 어린 시절부터 함께 해와서 학이 그런마음을 품은것쯤이야 당연히 알고 있었는데, 순간적으로 마음 한구석이 시려오는것같았다. 누이를 잃은 슬픔이겠지. "그렇습니까. 학은 좋은 낭군이 되어줄겁니다." 감정은 숨기고 웃는것이 어머니가 안심할 구멍을 만들어 두는거니까 나는 어머니가 바라는 답과 웃음을 지었다. "수원!" 어머니와 담소를 마치고 마당에서 바람을 쐬고 있자, 연화가 멀리서 치마를 두손으로 잡은채 달려왔다. "괜찮으세요? 어머니께 또 혼난거 아닙니까?" 어머니의 처소와 가까이 있을때면 연화는 어울리지 않게 높임말을 해왔다. "연화, 걱정하지 마세요. 헌데 높임말을 오랜만에 들으니 기분이 좋네요." 뒷말을 귀에다 대고 속삭이자, 연화는 머리카락을 자신의 얼굴을 가리며 "치사합니다." 라고 말한 연화의 귀는 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그 순간 차가운 바람불어, 흐드러지게 핀 꽃들이 날려 아름다운 광경을 자아냈다. 연화의 어깨를 두드리며, " 연화야 저것 좀 보거라. 오늘 진풍경을 보겠구나."라고 말하자, 얼굴을 가리고 있던 연화는 고개를 들어 주변을 보더니 꽃보다 더 아름답게 웃었다. "이리 아름다운 광경은 오랜만입니다." 하고 말하며 나를 바라보는 연화에게서는 꽃내음이 물씬 나는것같았다. 잠시후 바람탓에 연화의 붉은 머리칼에 꽃잎들이 매달려 있어 연화는 곤란한 듯 처소로 돌아가려했다.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돌아가려는 연화를 붙잡아 가까이 다가갔다. '연화를 꽤나 오래 연모해왔다고 하더라고요.' 내가 가까이 다가갈수록 연화의 얼굴은 발갛게 물들었다.무슨 바람이였는지, 꽃잎이 날려서 연화의 입술 언저리에 달라붙었다. "연화." 나비가 꽃향기에 홀린것처럼 연화의 얼굴을 쓸며 꽃잎을 만지작 거리다, 이렇게 말하곤 웃었던것 같다.
"아녀자가 칠칠치 못합니다." 내 말을 들은 연화는 붉게 물든 얼굴을 가리면서 화를 냈다. "수원도 참 너무해!!" 그러고는 자신의 치맛자락을 잡고 자신의 처소로 뛰어갔다. 해처럼 붉은 연화의 머리카락이 흔들렸다. 연화가 가고 난 후 나는 한참동안 연화의 입술 언저리에 있던 꽃잎을 만지작거리다 몰래 입을 맞추어보았다. 다음날, 연화는 치장을 한 채 나에게 달려왔다. "수원 어때?" 붉은 연화의 머리카락과 걸맞게 약간 벚꽃색과 같은 옷으로 갖춰입은 뒤 내가 예전에 준 비녀를 하고 있는 연화는 꽤나 많이 사랑스러웠다. 나를 끌어당기는 손이 너무 따뜻해서 웃음이 절로 나왔다. "헌데 연화, 이렇게 꾸미고 어딜 가십니까" 연화는 신으로 바닥을 슥슥 밀면서 망설이더니 학을 만나러 간다고 했다. 어머니께서 송가와 할 얘기가 있다고 하셨는데 연화를 동반해서 가나보다 싶었던 나는 그럼 잘다녀오세요. 라고 별 생각없이 연화의 등을 밀었다. 유시쯤이 되어서야 어머니와 연화는 집으로 돌아왔다. 돌아온 연화의 표정은 뭔가 혼란스러운듯 어두워 보였다. 연화가 걱정되어 따라가려고 하자, 어머니는 나를 붙드셨다. "송가의 자제와 혼인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수원. 이제 당분간 연화와는 가까이 지내지 않도록 하세요. 좀 있으면 낭군님도 생길참이니 말입니다." 일이 이렇게 빨리 진행될줄은 몰랐다.어머니가 바라는 대답과 웃음은 역시 내가 당한건가.그렇다면 난 다시 또 똑같은 대답과 웃음으로 대답할수 밖에. 어머니는 그런걸 원하시니 "그렇다면..알겠습니다. 당분간 연화와는 보지 않도록 하죠." 저도 원하는걸 받아야겠습니다. "학과 연화와 저 셋이서 보는건 괜찮겠지요? 오래된 친우니 말입니다." 이러면 어머니께서도 물러서시겠죠. 시간이 흐르고 며칠후 학이 찾아와서 약간 쑥스러운듯 머리를 긁적이며 말을 했다. "어쩌다보니 그렇게됐네요." 이런 학이라면 연화를 맡겨도 괜찮겠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기둥뒤에 붉은 머리칼이 흩날린다. 연화는 들켰다는 걸 모르고 머리카락으로 얼굴을 가리며 도망치려고 했다.학이 붙잡아서 이미 걸렸지만. "학!! 이거 놔!" 발버둥치는 연화를 두팔로 뒤에서 감싸듯 잡은 학은 별일 없었다는 듯 그래서 말이죠 이야기를 이어가려고 했다. 그런데 계속 그 모습을 보니 기분이 묘했다. "학, 제 누이를 풀어주시지요." 내 말을 들은 학은 얼굴이 새빨개져서 도망가는 연화를 보며 아쉽다는 표정을 짓다가 누이라고 그렇게 아끼시니 옆에 있는 약혼자는 마음이 묘하네요 "제가 너무 아끼는 누이라서 그렇지요." 나도 모르게 조금 날이 선 말투를 하자 학은 흥미가 오른 표정으로 웃었다. "그렇게 경계하지 않으셔도 돼요. 전 진심으로 연모하는거니까요. 너무 걱정마시지요" 나에게 말해오는 학은 오히려 자신이 날 경계하는거같다는걸 모를까. "학, 전 연화의 오라버니라고요. 그렇게 경계하지말아주세요." 예의의 웃음을 띄며 말하자, 학은 살짝 웃더니 그건 당신이야 그렇게 말하겠지.라고 말하더니 아 재미없어졌다. 돌아갈게. 학의 말이 신경쓰였으나, 학이 없는 지금 연화에게 가기에는 어머니가 신경쓰인다. 처소로 돌아가려고 발길을 돌리니 처소앞에서 연화가 기다렸다는듯 내 앞에 나타났다. "수원!! 어째서 근래에 보이지않은거야" 약간 화가 난 듯 다가오는 연화의 얼굴은 아직도 빨갰다. 아까전에 학이 안고 있어서 그런가. "약혼자도 있는데 아무리 남매라도 너무 친하게 지내면 좋지않아요 연화." 내가 말하면서도 이 말은 꽤 다리가 후들거리게 만들었다. 내 말을 들은 연화는 고개를 푹 숙이더니 "오라버니 저 학과 혼인하는거 어머니께 괜찮다고 말씀하셨다고 다 들었사옵니다" 다시 고개를 든 연화의 표정은 눈물이 고여있었지만 웃고 있었다. "저 오라버니가 바란대로 혼인해서 행복하게 살게요. 그 편이 오라버니에게도 좋겠지요" 나에게 그렇게 말하고 처소로 돌아가는 연화의 뒷모습을 보자 마음이 찢어지는 것만 같았다. 이게 아닌데. 손안에 쥐고 있던 마지막 벚꽃잎이 떨어졌다. 시간이 흐르고 혼례식 날짜가 다가왔다.혼례를 치르고 나서 수줍게 연지곤지를 한 연화와 쑥스러운듯 머리를 긁적이는 학은 신방으로 가고, 집에 어머니와 나만이 남자, 조용한 기운만이 감돌았다. "혹시 누이의 혼인을 축하해야할 터인데 기분이 나쁜건 아니겠지요 수원." 어머니께서는 모든걸 꿰뚫어 보시고 나에게 말을 하기 시작했다. "근데 누이가 먼저 혼인을 하다니 수원도 알맞은 처자를 찾아봐야겠군요." 그래 그 편이 쓸모없는 마음을 지워버리는데 도움이 되겠지 싶어. 알았다고 말하려는 찰나, 연화의 몸종인 단이가 달려들어왔다. "신방에 불이 났습니다!!!!!!!! 구하러 들어가려고 해도 진입로가 막혀서 인지 문에 누가 걸쇠를 건듯하옵니다!!!!!!" 우리 아가씨 어떡해.하고 울음을 터트리는 단이를 뒤로 하고 신방으로 곧장 달려갔다. 문을 부수려는 하인들과 발만 동동구르는 몸종들이 보였다. 다가가서 도우려고 하자, 도련님이 이렇게 힘쓰는 일은.. "잔말말고 비키거라" 문을 부순 작은틈새로 보이는 것은 학의 품에 안겨서 불타는 집안에서 정신을 잃은 연화와 간신히 붙들고 있는 학의 옷에 불이 붙어서 어쩔줄 모르는 모습이 보였다. 정신을 잃었던 연화도 불이 붙은것을 보고 눈물만을 뚝뚝 흘리다가 구멍사이로 나와 눈이 마주쳤다. 그리고 입모양으로 뭐라고 말하곤 신방의 천장이 무너졌다. '수원. 연모했어.' 머리가 핑 도는것만 같았다. 나는 그 자리에서 정신을 잃고 말았다. 그리고 깨고 나서야 저번의 꿈을 기억해낼수 있었다. 난 전생에서도 연화를 행복하게 해주지 못했고, 현세에서도 연화의 머리칼처럼 붉게 타오르는 연화를 구해내지 못했다. 문을 부수다가 손에 꽤 큰 상처가 생겼던 모양이다. 아물어가는 것처럼 보이나 큰 흉터가 남을것같다. 이건 절대 지울수 없고, 죽을때까지 잊을수 없는 상처다. "수원." 하고 따뜻하게 불러주는 소녀를 잃었으니 말이다. 그러니 칼자루에서 칼을 꺼내들었다. 소녀를 잊지못할바에 가슴 깊숙이 박는 수밖에 "연화, 나도 많이 연모했어요." 벚꽃잎들이 날아서 몸을 덮는다. 아아, 이제 당신이 보이네요. 연화 |
| [청립] 단편 |
전부 아오미네 시점이에요 둘은 고1 고3 때부터 사귀어서 현재 20년차 된 호모들이에요 불이 꺼진 분수대 앞에서 당신이 오기만을 기다린다 같은 집에 살면서 어색하게 약속 장소를 정하는 것이 지금의 우리다 예전이었다면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건넜을 횡단보도를 요즘은 홀로 건넌다 지루하게 핸드폰을 만지다 적막한 공원에 울리는 당신의 발소리에 고개를 든다 어디 가게라도 들어가자는 당신의 제안에 움직이고 싶지 않은 다리로 억지로 걷는다 소란스러운 번화가와 어울리지 않는 우리는 인적이 드문 골목에 있는 작은 카페로 들어갔다 형식적인 대화가 오고간다 잘 지냈는지 밥은 잘 먹었는지 요새 무리해서 일 하는 것은 아닌지 동거하는 사람과 할 대화는 아니었다 하고싶은 얘기가 있어보이는 당신은 그저 망설이고만 있다 당신이 무슨 얘기를 할지 알고있다 당신 또한 내가 알고있다는 것을 안다 나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에 당신과 시선을 맞춘다 예상하고 있던 잔혹한 내용이 당신의 입에서 흘러나온다 대답을 하지 않고 눈 앞에 놓인 커피의 진동만을 쳐다보고 있으니 당신이 다시금 나의 이름을 불러온다 당신이 헤어지자고 하는 이유를 알고있다 하지만 이유를 듣고싶다 알고있음에도 듣고싶다는 것은 나는 아직 당신에게 미련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현실의 벽은 너무나 높디높다 우리들의 관계는 결코 사회가 바라는 이상적인 관계는 아닐 것이다 당신은 보수적인 집안에서 강한 압박을 받아왔다는 것을 알고있다 그 때마다 당신과 나는 사랑을 속삭이며 서로에게 상기시켜주듯이 말해주었다 너만 있으면 된다고 너만이 나의 삶에 속해있어준다면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고 우리는 헤어지기엔 서로가 너무나 소중해져버렸다 하지만 이젠 우리라고 할 수 조차 없겠지 다시 한 번 당신과 시선을 맞추니 당신은 그대로 눈을 감아버린다 나와 만난 지난 20년간이 너무나 행복했다고 부디 다음에 만나는 여자는 자신보다 더 사랑해달라는 말을 끝으로 당신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당신이 나간 후 몇 분간을 멍하니 앉아 방금까지만 해도 맞은 편에 있던 당신의 자리를 본다 나의 20년은 현실을 직시해버린 당신 뿐이었는데 당신은 여자라는 말을 입에 담고 나를 떠난다 이럴 수 밖에 없는 당신을 이해한다 집안의 장남이 대를 잇지 않으려 하니 집안에서의 반발은 곧은 당신이 더 이상 버티지 못할 정도의 공포심마저 가져다주었다 분노같은 감정은 느껴지지 않는다 당신이 친가에 자주 내려가고 몸이 말라가기 시작하면서부터 이렇게 될 거란 걸 알고 있었다 당신 외에 내 하루를 궁금해해줄 사람이 있을까 이제는 입에 담지 못할 당신의 이름을 마지막으로 불러보며 굳어있던 몸을 풀고 힘겹게 자리에서 일어난다 우리는 끝이 났지만 당신의 사랑은 끝난게 아니다 슬픈 이별이 당신만은 아프게 하지 말아주길 다시 돌아와주길 바라지만 너무나 소중한 당신이 이제는 진정한 행복을 찾기를 바란다 더 이상 같은 층에서 내리지 못할 엘레베이터를 타고 올라가 굳게 닫힌 현관문을 연다 숨소리조차 어색해질 정도로 적막한 복도를 지나간다 어두운 밤 아무도 없는 고요한 거실에 홀로 앉아 오지 않을 당신을 기다린다 |
| [우카타케] 우리, 서른, 현실적, 로맨틱. |
하이큐!! 우카이 케이신X타케다 잇테츠 우리, 서른, 현실적, 로맨틱. 서른. 남자는 30대라는 말이 있다. 누가 말한 건지 나로서는 전혀 공감할 수가 없었다. 이제는 결혼할 때가 되지 않았냐며 여기저기서 들어오는 선 자리며 인사치레들이 짜증나고 성가셨다. 무엇보다 나는 만나는 사람이 있다고 당당하게 말하지 못하는 내 자신이 가장 그랬다. “우카이 군.” 복잡한 내 마음이라도 아는지, 질척하게 내리는 비 사이로 온화한 얼굴이 서 있었다. 얼마 전에 관계를 갖다 급한 마음에 안경을 부러뜨려버려 새 안경은 낀 채였다. 습관적으로 내 손에 들린 담배를 보며 한 번 미간을 찌푸린 그가 다가와 손에서 담배를 빼앗았다. 안 피기로 약속했잖아요. 그랬나, 그랬었지. 생각에 지치고 현실에 치여 그에게조차 온전히 집중할 수가 없었다. 나사가 하나 빠진 듯한 나를 지나쳐 그가 가게 안으로 들어섰다. 그를 닮은 연두색 장우산을 접어 물기를 탁탁 터는 손길이 정갈했다. 습한 날씨에 구불거리는 머리는 한층 힘을 더했다. 사랑스러웠다. 전 같으면 앞뒤 안 가리고 팔목을 잡았을 타이밍이었다. 선뜻 손이 나가지 않았다. 무서웠다. “우카이 군, 오늘 상태가 안 좋은 것 같아요.” “…아니야. 괜찮아.” “괜찮은 얼굴이 아닌데요?” 걱정스러운 목소리지만 얼굴은 평온했다. 아니, 그 표정은 그렇지 못했지만 내가 그의 얼굴에서 느끼는 감정이 평온했다. 자그맣고, 어쩌면 내가 코치를 봐주고 있는 학생들보다 더 소년 같은 얼굴에 담긴 얕지만은 않은 세월과 감정이 나를 에워쌌다. 내가 그에게 반한 이유였다. 분명 나와 같은 또래인 주제에, 어떤 면에서는 더 어린 아이 같고 덜렁대기 일쑤고, 남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젬병이면서 때때로 나를 보는 눈이 더 형 같고, 어른 같고, 기대고 싶게 만드는 사람이었다. “선생.” “네.” “오늘 선생 네 집, 가도 될까.” 나와 그는 사귀는 사이다. ‘연애’라는 것을 하는 사이다. 하지만 우리는 서로 이름을 부르지 않는다. 사귀기 전과 같은 호칭으로, 사귀기 전과 같은 눈빛으로 서로를 마주한다. 전에 선생은 ‘그저 똑같지만은 않다’고 말했지만 적어도 내가 느끼기에는 그랬다. 짧게 고개를 끄덕이는 얼굴을 뒤로 하고 가게를 정리했다. 구석에 자리한 콘돔도 두어개 챙겼다. 관계를 가진 직후의 선생은 매우 야하다. 생긴 게 전혀 색기라곤 없게 순수하게 생겨먹어서는 아래에서는 어찌나 야한지 아마 선생 자신도 모를 거다. 뒷정리도 하지 않고 누워있자 선생은 허리가 아픈지 이불을 둘둘 감고 웅크려서는 손만 뻗어 내 앞머리를 매만졌다. “우카이 군 머리 내리는 것도 괜찮은데.” “…귀찮아.” “그래서 뭐 때문에 꽁했어요?”“안 꽁했어.” “운전이 거칠던걸. 어머니께서 선이라도 보래요?” 선생은 괜히 선생이 아니었던 건지 금세 진로 상담을 받는 아이를 앞에 둔 얼굴이 되었다. 대답하지 않자 선생은 몸을 바싹 당겨 얼굴을 들이밀었다. 딱 쓰여 있는데요. 복잡하다고. 내 두 볼을 콕콕 찌르는 흰 손을 움켜잡았다. 선생이 희미하게 웃는 게 느껴졌다. 누가 봐도 내가 더 강한 인상이고, 당신은 그렇게 여린데, 왜 항상 위로를 받는 것은 나인지, 사실 나보다 더 큰 것은 왜 당신인지. 흰 손이 넓게 펼쳐졌다. 내 것보다 한참 작은 손이 참 컸다. 손이 두 눈 위로 올라왔다. 자연스레 감긴 눈에 눈물인지 모를 것이 차올랐다. 선생이 나를 이불 안으로 끌어당겼다. 맨살이 닿고 체온이 닿는 위로를, 이 사람만이 해줄 수 있는 위로가 어느 샌가 감사해졌다. 축축해진 흰 손이 눈에서 멀어지고 안경을 벗은 그의 어린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내 배를 토닥이는 다른 손길에 팔뚝을 휙 잡아 내 몸 쪽으로 끌어당기자 눈에 띄게 얼굴이 붉어졌다. 다시 입술이 닿았다. 콘돔을 두 개 챙겨오길 잘한 것 같았다. 그에게 물었던 적이 있다. ‘왜 나를 받아주었냐’고. 사실 순서를 따지자면 나에게 먼저 고백을 해온 것은 그였다. 그는 매우 시적이고 서정적이어서 (내 기준에) 오글거리는 말을 곧잘 내뱉곤 했는데, 내게 고백해오던 날도 그랬다. 우카이 군이 아니면 안 돼요… 였나. 사실 그가 하려던 말은 ‘좋아해요’ 혹은 ‘연애해요’의 의미가 아니었지만 당시에 하얗고 빨간 얼굴의 수줍어하는 그에게 그 말을 들은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그런 식의 고백으로 받아들였을 것이다. 결국 그가 말한 의도는 카라스노 배구부의 코치가 되어 달라는 말이었지만 그 순간 하얗고 빨갰던 그 얼굴이 정확히 뇌리에 꽂혔던 것은 아직도 잊을 수가 없었다. 진짜 ‘좋아해요’, ‘연애해요’의 말은 내가 먼저였다. 그렇게 뇌리에 꽂힌 그는 충분히 예뻤고, 그 뒤로도 코치와 고문 선생으로서 함께하는 시간이 그렇지 않은 시간보다 훨씬 많았다. 배구에 대해 하나도 모른다면서 모든 것을 맡긴다고 말한 그는 가끔 나도 생각해내지 못한 답안을 내놓을 때도 있었고, 나도 추스르지 못한 학생들을 다시 세워놓을 때가 있었다. 작은 체구에서 선생이라는 것이 확 느껴졌다. 어디에서 매력을 느낀 건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그에게서 안정을 얻었고 그것은 사랑으로 발전했다. 나이 서른이 되어가며 느낀 서툰 감정이 어색했지만 내 감정에 속을 만큼 나는 바보가 아니었다. 문제가 있다면 그 문제 또한 ‘내가 바보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차라리 바보였다면 주변 사람들이나 내 위치, 그의 위치, 아무 것도 신경 쓰지 않고 그에게 다가갈 텐데, 나와 그는 가장 가까웠지만 가장 멀기도 했다. “후회하고 싶지 않았어요.” 왜 나를 받아주었냐는 말에 비교적 간단히 떨어진 그의 대답은 그랬다. ‘후회하고 싶지 않았다’고. 나는 반박했었다. 나를 만나서 후회할 일이 더 많아질 지도 모른다고. 당신의 직업, 위치, 모든 것을 나로 인해 잃어버릴 지도 모른다고. “우카이 군은 내가 그걸 잃어도 괜찮을 만큼만 나를 좋아하는 건가요?” “선생, 그런 말이 아니잖아.” “우카이 군도 분명 생각하고 생각해서 꺼낸 말이잖아요? 나를 좋아한다는 거.” “…….” “우카이 군은 왜 내게 고백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나의 대답 또한 ‘후회하고 싶지 않아서’다. 마음을 전하기 전에 끝나버리는 사랑이 너무 불쌍하다는 그런 거창하고 낯간지러운 이유가 아니라, 단지 정말 후회하고 싶지 않아서. 모든 게 파토나도 전하고 싶을 만큼 타케다 잇테츠라는 남자가 좋아서 그랬다. 내가 입을 다물자 선생은 이해한다는 듯이 빙글 웃었다. 눈매가 접히는 선이 고왔다. 얇은 호선을 그리는 입술에 내 입술을 맞댔다. 다 늙어가는 서른들의 사랑의 시작이었다. “우카이 군은 서른이 되면 뭘 하고 싶었어요?” “뭘 하고 싶었긴.” “난 아직도 내가 서른이란 게 안 믿겨요.” “말을 똑바로 해야지, 서른이 아니라 벌써 서른다섯이잖아?” “그러고 보니 우카이 군은 나한테 말을 놓네요.” 그렇다. 나는 서른하나, 선생은 서른다섯으로 궁합도 안보는 4살 차이다. 하지만 나는 그를 좋아한다고 깨달았을 때부터 말을 놓았고, 정갈한 그는 당연히 내게도 존댓말을 사용했다. 내가 어쩌라고, 하는 눈빛으로 눈썹을 한번 들썩이자 선생은 작게 살포시 웃었다. 선생이 웃을 때 접히는 애굣살이 예뻤다. 손을 뻗어 애굣살을 매만지자 선생은 웃음기를 지우지 않은 채 나를 살짝 올려다봤다. 나란히 누워있기 때문에 서있을 때처럼 확 올려다보지는 않지만 은근한 시선이 나를 끌어당겼다. “말을 높였으면 좋겠어?” “아니요.” “선생은 말 내리지 마.” “그건 좀 불공평한 것 같은데요.” 그러면서도 끝까지 말을 놓지 않는 그가 귀여웠다. 정사가 이뤄진 다음날 아침에만 볼 수 있는 안경을 벗은 그의 얼굴은 정말 어렸다. 마냥 얇지만은 않은 안경이 그의 어린 얼굴을 그나마 성인의 것으로 보이게 했다. 처음 안경을 벗은 선생을 봤을 때, 수수하면서도 묘하게 끌어당기는 그의 얼굴에 매료되어 몇 번이고 안경을 벗으라는 제안을 했었다. 하지만 이내 그의 위치(교사라는 것)와 독점욕 때문에 수긍하고 말았다. 눈가에 살짝 입맞추자 자연스럽게 눈을 감아왔다. 코를 타고 내려와 인중, 그리고 입술에 도착했다. 육안으로 보이진 않았지만 어제 꽤 집요하게 빨아댄 탓에 살짝 부어있는 게 혀로 전해졌다. 봐줄 생각은 없었다. 두 개밖에 가져 오지 않은 콘돔은 어제 밤에 다 써버렸고,-그 마저도 부족해서 하나에다 몇 번을 쌌지만 말이다.- 분명 선생의 뒤는 마찰로 인해 보통은 아닌 상태일 게 분명했지만 말이다. 팔목을 붙잡고 저돌적으로 밀어붙이자 선생이 밀어내는 손길이 느껴졌다. 잡힌 입술에서 웅웅거리는 소리가 새어나왔다. 왠지 내용을 알 것 같기도 했다. ‘내일 출근해야 돼요!’겠지. 하지만 지금은 일요일 오전, 너무나도 한가한 시간이자 월요일이 되기까지는 아직 충분한 시간이 남은 때였다. “한참 남았는데 아쉽게.”“그래도오 어제도 했잖아요….” “그래서 더 잘 들어갈 거야. 어제 오랜만이어서 처음에 아파했잖아.” “우카이 군!!!!” 막무가내였다. 어제의 질펀한 정사로 몸에 제대로 힘조차 들어가지 않는 선생이 솜주먹으로 나를 떼어낸다는 자체가 말이 안 됐다. 정말로 강간을 당한다는 상황이면 모를까, 나는 그의 애인이다. 그리고 선생은 나를 좋아하고, 나를 밀어내긴 해도 제일 아래쪽에는 나와 하나가 되고 싶어 하는 욕구가 잠재되어 있기 때문이다. 선생은 나에게 잡아먹힐 운명이었다. 조금씩 핥아가며 잠식해가자 선생은 그릉거리는 목소리를 내뱉으며 눈을 질끈 감았다. 자연스럽게 목에 둘러오는 팔이 희고 몽글몽글해 보였다. 나중에 데리고 운동이라도 시켜야겠다 싶었다. 정사 후에 바로 잠이 든 거라 선생도 나도 옷은 입고 있지 않았다. 벗겨낼 천 쪼가리 없이 다이렉트로 그곳에 다다르자 선생이 숨을 삼켰다. 섹스가 몇 번 짼데, 늘 할 때마다 수줍고 순진한 처녀처럼 구는지, 아 물론 그것은 내 아래를 더 빳빳이 세우는 기폭제 역할을 했지만 말이다. 손가락을 뒤로 두 개 집어넣자, 역시나 어제의 정사 덕에 무리 없이 빨려 들어감을 느꼈다. 콘돔은 이미 쓰고 없으니 그냥 생으로 귀두를 입구에 갖다 대자 선생이 앓는 소리를 냈다. 콘돔… 콘돔은? 없다는 내 말에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지만 나는 절대 관둘 생각이 없었다. “어차피 우리는 애도 안 생기잖…아.” 느릿하게 허릿짓을 시작하며 말하자 선생은 주먹 쥔 작은 손으로 입을 가리며 안 된다고 몇 번이나 반복했다. 이미 시작한 걸 말릴 수 없다는 건 아는지 혼자 ‘안 된다’고 중얼거릴 뿐 내게는 별 소리 하지 않았다. 늘 콘돔에 싸인 성기로만 내벽을 느끼다가 맨살이 되니 내벽이 더 따뜻했다. 끝부터 기둥, 뿌리까지 선생의 내벽이 나를 꼭 끌어안고 놓아주지 않는 것만 같았다. 동시에 선생이 다리를 접어 내 허리를 감쌌다. 완벽히 선생과 결합됨을 의미했다. 안 그래도 아침인데다 세상에서 제일 야한 선생의 몸에, 안에 꽂혀 있는 결코 작지 않은 물건이 그 덕에 더욱 더 부피를 키웠다. 나조차도 헉 소리가 나왔다. 최고로 부풀어 있는 성기에 구멍은 더 조여졌다. 천천히 박자를 타듯 몸을 움직이자 선생은 한껏 예민해져 있는지 제대로 눈을 못떴다. 아직 시작도 안했는데 이러면 안 되지…. 선생의 겨드랑이에 두 손을 넣어 일으켰다. 마주보고 앉은 꼴이 되자 더 민망한지 선생은 눈을 못 맞췄다. 혀와 혀를 섞자 기다렸다는 듯 눈을 감고 혀에 온 신경을 집중시켰다. 뭉근하게 비비며 아래서 쳐올리자 박힐 때마다 선생은 움찔움찔했다. 선생 몸은 야했다. 두뇌는 35살, 문학선생의 그것이면서 몸은 이제 막 쾌락을 배워서 한창 예민해진 소년의 몸이었다. 선생은 자신의 물건을 보여주는 걸 가장 부끄러워했다. 같은 걸 달린 주제에 뒤를 내주고 있는데, 그럼에도 서있는 물건이 창피하다고 했던 선생의 말이 문득 생각나 뒤를 박다 말고 그를 안고 뒤로 누웠다. “뭐… 뭐하는 거에요?” “선생 거꾸로 누워봐.” “우카이 군….” “얼른 누워봐 거꾸로.” 순진한 그는 내가 무엇을 할지 모른다. 내가 시키는 대로 내 위에 겹쳐지게 거꾸로 눕고 나서야 내 의도를 파악했는지 금세 허리를 세워 일어나려는 걸 엉덩이를 잡아버렸다. 내 입 앞에 단단히 제 존재를 뽐내는 물건을 입에 가득 물자 두 팔로 몸을 지탱하던 선생이 무너져 내 위로 쏟아졌다. “애 엇떠 하아더어.”(내 것도 핥아줘요.) 아무도 못 알아들을 심각하게 뭉개진 발음이었지만 그는 알아들을 수 있었는지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그의 귀두 끝, 작게 들어간 부분을 집요하게 혀끝을 세워 핥고 앙증맞게 달린 방울 두 개의 주름 사이사이를 핥자 선생은 자기도 모르게 허리를 움찔거렸다. “선생만 기분 좋기야?” 눈을 맞추지 않았지만 그는 분명 나를 째려봤을 거다. 이내 무게감이 조금 덜어졌고, 대신 귀엽게 선 돌기가 배 언저리에 스쳤다. 아, 상상했더니 더 묵직해졌다. 입에 넣으려고 했는지 선생은 뭐야, 더 커졌어!! 하고 소리쳤다. 내가 빨리 하라고 허리를 살짝 들었더니 선생은 겨우 기둥을 잡고 입을 겨우 가져다 댔다. 선생은 부끄럼이 많기 때문에 섹스에 있어서 서비스가 잘 없다. 내가 주도하고,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흘러가는 게 우리의 섹스였고 관계였다. 물론 그 길을 가는 데에 원인을 제공하는 것은 선생이었지만 말이다.(예를 들면 그날따라 예뻤다던가, 그날따라 목소리가 더 섹시했다던가.) 선생의 입속으로 타고 들어간 내 아들은 보드랍고 축축하고 따뜻한 내부에 환장했는지 한계도 모르고 묵직함을 더해갔다. 작은 그의 입으로는 전체를 다 빨아주는 것은 힘들 것이다. 그럼에도 선생은 애무에 열심을 다했다. 가끔 내가 집요한 애무를 하면 힘이 풀리곤 했지만 이내 다시 입술을 오므리고 혀를 굴려 내 것을 머금었다. 내가 한 것처럼 음낭을 어루만지기도 했다. 그의 귀여운 것을 빨다말고 혀를 뒷구멍으로 옮기자 내 것이 그의 입 깊은 곳으로 침투했다. 필시 놀랬으리라. 아랑곳 않고 혀를 더 세웠다. 더럽다고 생각하고 얼른 빼라고 하겠지. 그럴 생각은 없었다. 앞을 만지며 뒤를 집요하게 핥았다. 넣고 싶다. 박고 싶다. 질펀하게 허리를 돌리고 싶다. 제대로 행위에 들어가면 스위치가 바뀌어 완전히 미치고 마는 선생을 보고 싶었다. 그렇게 만들고 싶었다. 몸을 일으키자 선생은 깜짝 놀란 눈을 했다. 토끼 같았다. 이제는 내가 맹수가 될 것이다. 토끼를 옥죄어 잡아 먹을 것이다. 하나도 남김없이 먹어치울 것이다. 선생을 엎드리게 하고 바로 구멍에 물건을 가져다 대자 놀랍게도 구멍은 기다렸다는 듯이 먹어치웠다. 아까보다 감도가 더 좋아졌다. 최고였다. 진득하게 달라붙는 내벽이 미치게 좋았다. 처음부터 꽤 강하게 허리를 움직이자 짧은 머리인 그의 머리조차 흔들렸다. 머리띠로 넘기지 않은 내 긴 앞머리가 신경 쓰였다. 손을 더듬어 머리띠를 잡았다. 거추장스러운 앞머리를 넘기자 예쁜 선의 몸이 눈에 들어왔다. 잘록하진 않지만 얇은 허리에 손을 얹고 끝까지 뺐다가 빠르게, 끝까지, 쾅하고 박기를 반복했다. 그의 얼굴이 보고 싶어서 박힌 채로 몸을 돌렸다. 가누지 못하는 몸이 무거웠다. 하지만 성욕에 쩔어 있는 상태, 나는 무거운지도 모르고 그저 박아댔다. 편하게 누인 몸이 낭창하게 흔들렸다. 활짝 열린 다리가 내 움직임에 따라 덜렁거렸다. 손으로 앞까지 만지자 선생은 온몸을 비틀었다. 그러다 스팟을 찌른 건지 신음을 흘렸다. 빨개진 얼굴이 색정적이었다. 참지 못하고 그의 유두를 잡아 뜯을 듯이 거세게 빨아들이며 허리를 움직였다. 높아지던 선생의 목소리가 절정에 다다랐다. 쇳소리가 따랐다. 사정감에 속도를 죽이고 천천히, 끝까지 뺐다가 빠르게 쾅 박아 넣었다. 끝을 내벽에 뭉근히 비비자 선생의 것에서도 정액이 질질 새어 나왔다. 내 것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삽입된 것을 빼자 길을 따라 뿌연 정액이 구멍 밖으로 샜다. 야했다. 체내 사정은 처음이었다. 언뜻 선생의 얼굴에서 눈물이 비친 것도 같았다. 이제야 조금 걱정이 됐다. 평소보다 많이 거칠었는데, 이미 지쳐 있었는데. 눈을 가린 그의 두 손을 치우려 하자 선생은 말했다. 정말 뜻밖의 말이었다. “좋아해요.” “우카이 군, 좋아해요.” 나중에야 들은 얘기지만 항상 자신이 나를 위로해주는 위치처럼 보였을지 몰라도, 늘 위로받는 것은 자신이었다고 했다. 섹스가 거친 것 같다가도 같이 절정에 이를 수 있게 배려해줘서 고맙고 무엇보다 ‘좋아하는’ 나이기 때문에 좋다고 했다. 섹스든, 뭐든. 설령 자신이 아기를 가질 수 있는 몸이었다 해도 내게 몸을 맡겼을 거라고 했다. “바보 아니야? 그러다가 코 꿰이면…….” “이미 꿰였잖아요. 우카이 군이 나한테.” “무슨 소리야?” “알고 있어요.” 내가 그를 좋아한다는 것도 너무 잘 알고 있는 그는 사랑스러웠다. 하얗고 빨갛고 덤으로 축축해진 얼굴로 환하게 웃었다. 예뻤다. 맨질한 이마에 입을 맞추자 그는 내 턱에 입을 맞췄다. “좋아해.” “나도요.” 서른에게도, ‘로맨틱’은 있었다. - 어른들의 사랑+현실적을 섞어보려했으나 반반 이상하게 같이 둔거같은 느낌이네여 그냥........ 필력이 딸려서 미안하다!!! 슬프다!!!!!! 밍나 우카타케 파세요!!! |
| [츠키히나] 연애의 끝 |
철썩이는 파도소리, 불어오는 바람, 신발 사이사이로 들어오는 흙들.밤바다는 잔잔히 재잘거렸고 그 재잘거림은 내 뇌를 파고들어 온갖 것을 들춰냈다. 좋은 것들, 그저 그런 것들, 나쁜 것들. 그것들은 기억이라 할 수 있으리라. 많은 기억들은 파도 하나에 출렁이며 바람에 향내를 보내었고 내 감정의 사이사이에 끼워들어오니 그 중에는 쓸데 없는 것 또한 당연하게 들어 있었다.쓸데 없는 기억이라 함은 좋은 기억이라 할 수도, 나쁜 기억이라 할 수 있는. 아련하고도 애매한 기억. 그런것을 의미했다.그런 것은 곧 한 순간의 추억이요 첫번째 이별을 겪었던, 첫사랑을 의미했다. 영원할 것 처럼 나에게로 훅 다가왔다가 허무하고, 허탈하게 내 품의 밖으로 빠져나간 그것.빠져나간 나의 사랑은 어디로 갔을까, 어디로 흘러갔을까. 이 바다로 흘러갔을까 하늘 위로 날아갔을까. 어디로 갔던가는 이제 필요 없다.제아무리 그것의 행방을 찾을지언정 '처음의 첫사랑' 은 두번 다시 돌아 올 수 없다.-같은 시간, 같은 날씨, 같은 장소.그날은 지금 내가 서있는 오늘과 거의 똑같았다. 주말이었던 그때에 나는 갑작스레 나오라는 그에 뚱한 기분으로 옷을 주섬주섬 차려입고 있었다. 노을은 이제 어둠 속으로 사라질 채비를 하고 있는데, 지금 만나서 무엇을 하려고 불러내는 것인지.한숨을 쉬며 나간 집밖. 당연하게도 그가 서 있었다. 당연하게도 그는 키가 컸고. 그는 당연히 안경을 쓰고 왔다. 당연히. 똑같다. 익숙하다. 지루하다. 지겹다."히나타.""왜 부른거야?"츠키시마.그를 부르는 내 목소리는, 나를 부르는 그의 목소리는확실히 식어있었다.우린 확실히 차게, 차갑게, 얼어있었다.버스를 타고 도착한 바다는 이미 해가 산 너머로 넘어가 완전한 어둠이 내려앉으니 꽤나 낭만적인 분위기의 배경이었다. 그러한 곳에 동떨어져 어울리지 못하는 우리가 거슬렸는지 파도는 더욱더 거칠게 움직였고, 바람은 걷고 있던, 말이 없는 우리 둘의 사이를 신경질 적으로 지나갔다. 꼭, 우리를 갈라내려는 듯이.내 발 밑 알알히 밟히는 모래는 우리를 보며 무슨 생각을 할까. 한심할까? 슬플까? 혹은, 혐오스러워 할지도.그때의 우리는 말이 없었다. 누구 하나 입을 열지 않았고, 열려고 하지 않았다. 어떠한 것보다 아프게 짓누르는 침묵을 깬것은 나였다. 이미 이 상황을, 이 의미를 알고 있으니."바다가 참 좋네.""...""츠키시마.""왜.""말해, 그냥.""...""너 원래 막 뱉잖아. 성격 변했네."나의 마지막 말에 그는 화가 났는지 아님 다른 이유인지 걸음을 멈추어 뒤로 돌았고, 나와 마주친 눈은 무언가를 말하고 있었다. 그는 화난게 아니었다. 오히려 슬픈 눈이었다. 다른 이유도 없다. 단지 원래의 목적. 나를 이곳으로 데려온 이유. 더이상 서로를 아프지 않게, 더이상 식어가지 않게하는 그와 나를 위한 한마디.지금 이곳엔 티격대던 평소의 우리는, 없다."히나타,"헤어지자.그는, 그는, 그는. 츠키시마 그는.입을 열었다. 이별을 말했다.첫번째 여행길의 마침표를 찍었다.그의 성격을 따져보자면 많이 참았다. 누구보다 뜨거운걸 싫어하던 그가 뜨거웠고, 다른 사람들이 좋지 않은 시선으로 본다고 해도 나의 손을 놓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 손이 손을 놓았다. 사람이 사랑을 떠나갔다.그 길로 그는 뒤돌아 걸어갔고,나는 자리에 남아 울었다. 식을대로 식은터라 눈물은 나오지 않을 줄 알았지만, 계속해서 흘러나오니 막을 틈이 없었고 막지 못하니 나는 무너졌다. 그 자리서 주저 앉았다.지나간 시간들이 눈물되어 흘러갔다. 그것을 보며 나는 더욱더 슬퍼했다.그게, 우리의 끝이었다.-바다는 쓸데없이 고요하다. 때문에 생각 할 여지와 여유를 과하게 주고, 떠나게끔 한다. 어찌보면, 다시 생각해 보면 그와 나의 이별은 당연하다.해는 낮을 지키고, 달은 밤을 지킨다.둘은, 서로 불어있는게 기적이다.기적은 낮은 확률로 찾아오니 기적이다. 우린 그런 기적을 진하게 겪었고, 그걸로 됐다. 서로가 서로의 기억에 남았다면, 됐다.우리는 특별했다.누구도 크게 느끼지 않은, 어쩌면 당연한 이별.그래도 그런 우리의 이별을 슬퍼해 줬을까?그때의 파도는, 그때의 바람은, 그때의 모래는,그때의 눈물은.슬퍼해 줬을까. |
| [쿠로다이] 괴물 |
아, 비다. 다이치는 어두운 창밖을 내다봤다. 검은 하늘은 구멍이라도 뚫린 듯 폭우가 내리친다. 오늘 아침부터 날씨가 안 좋더니 결국은 이렇게 한바탕 쏟는구나. 툭, 투두둑. 비는 불일정하게 창에 붙어 소리를 내다가 그대로 물방울이 되어 또르르 떨어져간다. 다이치는 그것을 바라보며 오늘 하루는 재수가 없겠군 따위의 생각을 했다. 옛날부터 비 오는 날은 안 좋은 일이 연달아 일어났다. 그 날에도 비가 온 걸 생각하면 그 징크스는 얼추 맞는 것 같다. “어이, 다이치!” 하릴없이 비 구경을 하던 저를 복도 끝에서 누군가가 불렀다. 멀리서도 눈에 띄는 익숙한 잿빛 머리색이 보인다. 제 오랜 친우 스가다. 스가는 어느새 다이치의 옆에 앉아 다이치가 보던 창밖을 내다봤다. 어, 비네? “와, 이렇게 내려도 되는 거야? 아주 잠기겠어. 땅이.” “그러게. 이래서야 오후 훈련은 할 수 있겠는지.” “그거 안 하면 더 좋은 거 아냐? 정말 힘들다고.” “그래도 전장에 나가는 것 보단 훈련이 낫지.” 아아... 그렇지. 스가가 무릎 사이로 얼굴을 파묻더니 작은 소리로 말한다. 이 비극은 언제 끝날까. 내뱉은 소리가 잘게 떨리고 있다. 우는 걸까. 다이치는 말없이 굽은 그의 등을 토닥여줬다. 전쟁이 시작 된지도 벌써 5년 전이다. 앞도 잘 보이지 않을 만큼 폭우가 내리던 날. ‘그들’ 이 나타났다. 그들은 강했다.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었지만 사람이 아니었다. 인간의 작은 몸을 가지고서 총알은 모두 막아냈고 날카롭고 단단한 쇠붙이는 그들 몸 앞에서는 작은 유리 같이 산산조각이 났다. 보통의 사람보다 뛰어난 신체능력과 그들의 손이 닿는 것은 재가 되기도 하고 또 액체가 되기도 했다. 괴물이었다. 사람의 힘이 아니었다. 그들은 제 1국의 괴물이었다. 괴물들은 2국을 아주 손쉽게, 마치 아이가 개미를 죽이듯 없애버렸다. 그리고 미처 대처를 하지 못한 나라들도 모두 다 사라졌다. 남은 생존자들은 1국의 군인이 되어, 그들의 밑으로 넣어졌다. 총알받이인 셈이다. 이 1차 전쟁으로 세계가 바뀌었다. 거대한 전투장비와 전략으로 싸웠던 전투방식은 버리고, 얼마나 강하고 많은 그들이 있는가에 따라 전장에서의 판세가 갈렸다. 그러니 모두 괴물들을 자국으로 데려오려고 노력했다. 괴물을 데려오려고 한 나라를 손쉽게 없앴다. 괴물을 데려오려고 사람들을 손쉽게 죽였다. 그리고 우린 그들을 능력자라 부른다. ****** 이봐, 그 얘기 들었어? 무슨 얘기? 우리 쪽에 굉장한 놈이 한 명 더 오려나봐. 뭐? 괴물이 한 명 더 온다니, 그것 참... 예정대로 오후 훈련은 중지됐다. 상관은 각자의 방에서 휴식을 취하라고 했다. 스가는 그 말을 듣고 안심이 되었는지 숨을 길게 쉬었다. 그리고 낯빛이 전보다 좋아진 스가와 함께 훈련장 뒤쪽 작은 정원에 와 쉬고 있던 참이었다. 훈련장 쪽에서 작은 소리가 들렸다. 가슴에 있는 명찰표를 보니 옆 부대의 훈련병이었다. 괴물이 온다니, 어쩌니 하는 거 보니 아무래도 저번 전쟁의 성과인가 보다. 1국은 3국과의 전쟁에서 이겼다. 다이치가 참여한 첫 전쟁이었다. 전쟁은 상상보다 참혹했다. 어린이, 여자 상관없이 죽어나갔고, 동료도 적도 상관없이 죽어나갔다. 전쟁이 끝나고 나서 다이치는 심한 구토감과 죄책감에 잠을 못 이뤘다. 옆에 있는 스가를 보니 그도 저번 전쟁이 생각나는 듯 말이 없다. 저번 정쟁에서 스가는 전장에 아이가 있는 것을 보았다. 아직 걸음마도 못 뗀 아주 작은 아이였다. 어미로 보이는 여자는 이미 숨이 끊어지려 하고 있었다. 눈앞에 보이는 적군의 국민은 모두 척살. 우리의 명령이었다. 그리고 저편에서는 우리 군대가 오고 있었다. 스가는... 군이 오기 전에 아이를 죽였다. “스가, 괜찮아?” “.....” “스가?” “아, 응 괜찮아.” 그보다 새로운 사람이 온다고? 스가가 엉덩이를 털며 일어나더니 묻는다. 어. 그런 것 같네. 저의 말에 그의 미간이 잠깐 찌푸려졌다가 돌아왔다. 대체 이번 괴물은 어떤 괴물이려나... ****** 매일하는 오전 훈련은 잠이 많은 다이치에게 고역이었다. 아직 해도 뜨지 않은 새벽 4시에 일어나 분신과도 같은 총을 손보고, 체력 단련을 위한 명분으로 조식 먹기 전에 군 운동장을 뛰는 것은 굉장히 힘든 일이었다, 오늘 하루도 런닝을 끝내고 모두 벌써부터 녹초가 되어 땀을 닦거나 물을 마시며 있었다. 그때 어디선가 큰 소리가 났다. 집합!! 문을 열고 온 상관은 모두를 집합시켰고. 쉬던 동료들은 이게 웬 말이냐 하며 부랴부랴 흐트러진 자세를 바로잡았다. 모두 다 집합시키고 상관은 문 쪽에다 뭐라 뭐라 또 소리쳤다. 그리고 한 남자가 들어왔다. 그의 양 옆은 그를 지키려는 것인지 꽤나 덩치가 좋은 남자들과 함께 들어왔는데, 그도 그 사람들 못지않게 꽤나 체격이 좋았다. 상관은 그가 들어오자마자 잔뜩 긴장한 채로 허리까지 꼿꼿이 세우며 경례를 했다. 그는 그런 상관에 태도에 픽 웃기만 하고 경례를 받아주지 않았다. 그런 태도에 상관은 민망해졌는지 큼, 한 번 기침을 하고선 다시 우리 쪽을 바라보았다. 제군들 이분은 이번 3국에서 친히 와주신 쿠로오 능력자님이시다. 모두 경례! 충성! 다이치는 경례를 하며 다시 쿠로오라는 남자를 살펴보았다. 검은머리와 검은 눈, 또 그리 밝지 않은 피부톤까지. 아무래도 이번 능력자는 동양인인 것 같다. 능력자들이 갑자기 나타나고서 국적 상관없이 데려오게 되었다. 참고로 A국은 동양인보단 서양인의 비중이 높다. 또한 남자는 꽤나 독특한 머리모양을 하고 있었다. 여기저기로 뻗혀 삐죽이는 머리가 위로 째진 날카로운 눈이랑 꽤나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 “다이치, 내 말 듣고 있어?” “아. 스가, 미안. 뭐라고 했더라?” 오늘 아침부터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스가에 물음에 다이치는 곤란하다는 듯 먹던 스푸를 숟가락으로 휘휘 저었다. 아까 아침시간에 본 쿠로오라는 사람은 굉장히 갈피를 잡기 힘든 사람이었다. 그래도 꽤 높은 자리에 있는 상관을 무시하고, 그 모든 게 지루하다는 듯 부대를 소개하는 상관의 말에 하품만 해댔다. 그러다 짜증이 났는지 옆에 자신을 보좌하고 있던 남자를 죽였다. 그것도 한 순간에. 말릴 틈도 없었다. 그의 손이 남자의 얼굴에 닿는 순간 펑하고 터져버렸다. 말 그대로 터졌다. 뇌가 터져 산산조각이 나 바닥에 떨어지고, 눈알이 굴러다니고, 피가 분수처럼 터져 나왔다. 우리는 그 끔찍함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다이치는 그때 그들의 두려움을 생생하게 느꼈다. 그건 그 자리에 있던 모두가 다 같을 것이었다. 그리고 다이치는 그런 그와 눈이 마주쳤다. 착각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정말 그와 눈이 마주쳤다. 그는 다이치를 보더니 씨익 웃고서 그대로 훈련장을 나가버렸다. 그 웃음의 이유를 알 수 없어 다이치는 오늘 하루 종일 제대로 된 사고를 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계속 나사가 하나 빠져있는 듯한 다이치를 보다 못한 스가가 저녁식사 도중에 이렇게 저를 부른 것이다. 다이치, 그 남자 때문에 그래? 아니... 별로 그런 건 아냐. 다이치! 스가가 답답하다는 듯 제 이름을 불렀다. 너 거짓말하면 진짜 티 나는 거 알아? 아... 정말? 다이치가 그 말에 당황하며 얼굴을 만졌다. 바보 아냐. 그렇게 만지면 아냐. 다이치의 바보 같은 행동에 스가가 풉 하며 웃었다. 그러면 저도 머쓱해하며 같이 웃었다. 오랜만에 웃는 것 같았다. 저도, 스가도. 훈련이 끝난 뒤 다이치는 스가와 오늘 본 그 남자에 대해 이야기했다. 스가는 다이치가 정신이 없을 때 여러 얘기를 들었는지 꽤 많은 것을 이야기해줬다. 그 남자 이번 전쟁 땐 참여 안 했나봐. 아, 꽤나 포악한 남자던데. 하고 싶으면 하고, 하기 싫으면 안 하고. 변덕이 심한 남자라더라. 웬만하면 엮이지 마, 다이치. ...그래야지. 예전엔 8국에 있었다던데... 기분대로 사람을 죽여가지고 격리조치도 받았다더라. 으흠... 격리조치라... 능력자들을 최우선으로 하는 정부에서 그 정도로 할 정도면 얼마나 심한 사람인지. 다이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다이치, 아무튼 가까이 하지 마. 진짜 걱정돼서 하는 말이야. 스가가 다이치의 손 위에 자신의 손을 포개더니 진심어린 말투로 말했다. 그러면 여느 때와 같이 다이치는 스가의 굽은 등을 토닥여줬다. 올려다 본 하늘은 아직도 탁하고 어둡다. 아무래도 비가 또 다시 한바탕 내릴 것 같다. ****** 제군들 오늘 훈련은 위대하신 능력자님과 함께 하기로 했다. 모두 최선을 다하도록! 다음 날 우리 부대 훈련은 그 남자와 하게 됐다. 말이 공동훈련이지 그 남자는 소파에 앉아 지루한 듯 우리 훈련을 보다가, 주변에 여자 청소부라도 있으면 그쪽에 가서 치근덕대기 바빴다. 그런 행동에 눈살이 찌푸려졌지만 누구 하나 불평할 수가 없었다. 또 여자한테 치근덕대는 것을 본 다이치는 한숨을 쉬며 훈련을 계속 하려 몸을 돌렸다. 그때 둔탁하고 묵직한 소리가 들려 그곳으로 시선이 쏠렸다. 남자의 주먹이 올라가있었고 여자를 배를 감싸쥐며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무슨 일이 벌여졌는지 예상이 가능했다. 남자가 다시 한 번 손을 들어올렸을 때 다이치는 무의식적으로 다리를 움직였다. 둔탁한 소리가 들리고 주위가 순간 얼어붙었다. 다이치는 맞아서 빨갛게 부은 볼을 감싸며 남자를 쳐다봤다. 남자의 표정은 생각과 다르게 화난 표정도 아니고 비웃는 표정도 아니었다. 굉장히 재밌어하는 표정, 이 옳은 표현일 것 같다. “이름이?” “...네?” “이름이 뭐냐고.” “사와무라 다이치입니다.” 어이, 나 얘 잠깐 데려가도 되지? 남자가 뒤돌아서 상관에게 물었다. 질문이 아니라 통보에 가까웠다. 상관은 허리를 굽히며 네네, 되고 말구요. 말했고, 남자는 그 태도가 만족스러운 듯 아, 고마워. 하며 다이치의 손목을 끌고 훈련장을 벗어났다. 다이치는 지금 이 상황이 당황스러웠다. 자신은 그저 여자를 보호해줬고 분명 처벌이 있겠지라 생각했지만, 그는 자신을 데리고 훈련장을 벗어나더니 그의 숙소로 데려왔다. 확실히 능력자들이 쓰는 숙소는 자신의 더러운 숙소보다 훨씬 넓고 호화로웠다. 나무판자로 된 침대가 아니라 진짜 솜이 들어가 푹신푹신한 침대와 딱 봐도 비싸 보이는 엔틱풍 가구들 그리고 바닥에 깔린 고급 카펫트는 자신의 더러운 군화로 밟아도 될는지 걱정이 됐다. “안 벗고 뭐해?” 네? 다이치는 지금 자신이 잘못들은 건가 싶었다. 그래서 그를 다시 쳐다보자 그는 짜증난다는 듯 말했다. 벗으라고. 다이치가 그래도 멀뚱히 서있기만 하자 정말 짜증이 났는지 그는 자신의 머리를 손으로 헝클이더니 다이치의 혁대에 손을 갖다 댔을 때 다이치는 그제 서야 그의 손을 잡고 말렸다. “저기 뭐, 뭘 하시는...!” “모르겠어?” 아까 그 여자 있잖아. 내가 잘 박아준다니까 갑자기 싫다는 거 있지? 그래서 죽이려고 했는데 네가 딱 나타난 거야. 저번 처음 집합했을 때부터 눈 여겨 봤는데 자진해서 나타나니까 이건 뭔가 했지. 그리고 이해했어. 이건 따먹어달란 소리구나, 하고 말이야. 맞지? 그의 말이 뇌로 채 가지 못하고 튕겨져 나가는 듯하다. 이건 대체... 쿠로오는 정신이 없는 다이치의 손을 가뿐히 치우더니 혁대를 풀었다. 빈 방에 울려 퍼지는 소리가 꽤나 컸다. 다이치의 바지가 다리 밑으로 떨어지고 나서 그는 다이치의 어깨를 밀쳐 바닥에 눕혔다. 눕혀진 상태로 양다리가 붙잡혀 벌려지는 건 다이치에게 큰 수치심이 들게 만들었다. 같은 남자임에도 힘에서부터 차이가 나 벌려진 다리를 오므릴 수도 없었다. 얼굴은 이미 귀까지 빨갛게 달아오른지 오래였다. 그는 바들거리는 다이치는 무심한 눈길로 한 번 쓱 보고는 손가락 하나를 다이치의 안에다 쑥 넣었다. 한 번도 받아들인 적도 없고, 앞으로도 받아들일 줄 몰랐던 곳은 뻑뻑할게 분명한데도 굵은 손가락을 휘휘 저어 메마른 내벽을 제멋대로 긁어냈다. 그 행동에 죽어나는 건 다이치 혼자였다. 으읏, 아앗 차마 비명은 못 지르고 삼켜내고 있을 때 갑자기 안으로 손가락과는 차이가 안 되는 크고 굵직한 게 들어왔다. 끄윽, 끅 엄청난 고통에 숨도 제대로 쉬어지지 않았고 비명도 안 나와 꺽꺽대는 소리만 냈다. 여태 느끼지 못한 차원이 다른 고통에 다이치의 눈에 눈물이 고이고 떨어져 볼을 적셨다. 아, 아. 밑이 쓰라리고 아팠다. 그리고 아무래도 따뜻한 것이 찢어져서 피가 나오는 것 같았다. 다이치는 극심한 고통에 전신이 바들바들 심하게 떨렸다. 쿠로오는 그걸 보더니 꽤나 흥미롭다는 듯 다이치의 골반을 잡고 반 정도 들어간 자신의 것을 한 번에 넣었다. 그러자 자지러지듯 떨리는 다리를 보며 깔깔 웃어댔다. 처녀인가? 아니면 처녀인 척 하는 건가. 반응은 재밌네. 다이치는 그 말을 들을 여유도 없어보였다. 얼굴은 이미 엉망이었다. 벌여진 입은 가쁜 숨을 내뱉고 있었고 눈에서 나온 눈물은 턱까지 흘러 옷을 적시고 있었다. 저항을 할 기력도 없어보였다. 쿠로오가 한 번 움직이면 다이치도 똑같이, 두 번 움직이면 다이치도 두 번. 쿠로오가 움직이는 대로 움직였다. 아읏.. 으.. 그만. 배 속에서 뭔가가 움직인다는 것은 굉장히 끔찍한 일이었다. 들어갔다 나올 때 느껴지는 생생한 성기의 감촉. 그것은 구토감이 치밀기에 최상의 조건이었다. 우욱, 다이치는 쿠로오가 움직일 때마다 억눌린 심음과 함께 헛구역질이 나왔다. 쿠로오는 다이치가 그럴 때마다 좀 더 귀여운 신음은 낼 수 없어? 비아냥대며 웃어댔다. 막판에는 그가 너무 격하게 움직여서 위에 있던 탁자 다리에 계속 머리를 박았다. 그 때문인지 눈앞이 흐릿하다. 아니, 눈물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아직도 밑은 뻑뻑했다. 액이 나오지 않는 남자이니 당연했다. 근데도 남자는 즐겁다는 듯 다이치의 장기를 나오게 할 만큼 움직였다. 그리고 그가 낮게 신음하며 자신의 안에 사정했을 땐 죽이고 싶었다. 모든 괴물들이 미웠다. 증오했다. 그들만 없으면, 나도 좀 더 정상적인 삶을... 소용없는 건 알았다. 하지만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정말 자살했을지도 모른다. 그는 제게 휴지 몇 장을 던져주고는 방을 나섰다. 다이치는 그가 나가자마자 일어섰다. 이 방에 일분이라도 더 있기는 싫었다. 일어나자 피와 정액이 하나로 뭉쳐 다리사이로 흘러내렸다. 그것을 닦으며 다이치가 할 수 있는 일은 제 친우의 이름을 부르며 우는 것 밖에는 할 수가 없었다. 하늘을 보니 또 비가 내린다. 또 한바탕 내리겠구나. |
| [리에쿠로] 빛 바랜 추억 속 저 끝에 |
<1.> 시간은 빠르다고 했던가. 아무렇지도 않아 보이는 얼굴로 태연하게 그녀의 허리에 팔을 감고 익숙한 미소를 짓는 당신이 야속했다. 난 당신을 잊으려 그렇게나 발버둥 쳤었는데 행복하게만 보이는 당신이 미웠다. 여전히 당신은 빌어먹게도 아름다웠고 반짝거리던 빛은 퇴색되기는커녕 오히려 아름다워만 졌다. 당신 옆에서 행복하게 웃고 있는 그녀와 그런 그녀의 옆에서 화사하게 미소 짓는 당신의 모습이 꽤나 어울렸다. 참, 이게 무슨 궁상인지. 그런 당신을 보며 혼자 애증 어린 추억에 젖어가던 중 당신의 어여쁘기만 한 신부가 던진 부케를 받았다. 우연이라도 이런 우연이 있을까 싶은 상황에 헛웃음이 나왔지만 억지로 미소를 지었다. 눈을 마주친 당신의 표정은 웃는 듯 웃지 않는 듯 참 묘했다. 그 속을 알 수 없던 웃음도 알 수 있을 때가 있었는데, 다시 알지 못하게 되어버린 미련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당신의 표정을 마주하며 난 깨달았다. 나는 아직도 당신을 그리워한다는 것을. <2.> "참석해 주시면…" 아, 이상하잖아. 무엇이 그리 마음에 들지 않는지 리에프가 신경질적으로 머리를 헝클었다. 고등학교 때와는 달리 꽤나 긴 머리가 목덜미를 근질였다. 이 사람한테만은 보내고 싶지 않았지만 반대로 꼭 보내고 싶기도 했다. 그리고 태연하고 의연하게 보이고 싶었다. 어쩌면 유치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으나 그냥 그러고 싶었다. 어쩌면 한 줌 남은 자존심 일지도 모르지. 하,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며 리에프는 아무것도 쓰여있지 않은 하얀 종이 위에 펜을 들었다. <3.>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미지근한 바람이 리에프의 볼을 간질였다. 추억 속 저 깊은 곳에서만 자리하고 있던 모교의 모습을 바라보며 리에프는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어연 10년, 붙잡을 세 없이 훌쩍 지나가 버린 시간을 그리워할 여유도 없이 시간은 또 빠르게 지나고 있는 것이다. 허탈하다고 해야 할까, 무언가 채워져 있지만 텅 비어버린 모순된 감정의 파도가 리에프를 휩쓸었다. 현재 생활이 싫은 건 아니었다. 리에프는 여전히 밝았고, 어딘가 바보 같긴 하지만 자신감 넘치고, 또 따뜻하기도 한 그때 그대로였다. 바뀌어 버린 것이 있다면 기억 속 감정들과 돌릴 수 없는 시간들 정도일까. 어느 것 하나 바뀐 것 없는 모교를 쳐다보며 리에프는 착잡한 한숨을 내쉬었다. 손에 들린 하얀 종이에 옅게 주름이 진다. 쿠로오가 결혼 한지도 벌써 2년이 지났다. 떠나버린 사람은 돌아오지 않았고 바보같이 추억에 얽매여 미련이라는 이름의 감정에 절절매고 있었던 건 자신뿐이었다. 아직도 이해가 가지 않는 끝이 몇 년째 그를 괴롭히며 정신을 좀먹어갔다. 아니, 시간이 지나 어른이 돼가면서 알게 되는 현실을 인정하기가 싫어서 그 괴로움이 리에프를 서서히 잠식해갔다. 무엇을 해도 마음이 채워지는 거 같지 않았다. 여자를 만나도 맛있는 걸 먹어도 심지어 결혼을 앞둔 지금조차 마음 한구석에 항상 남아있는 텅 빈 공허함. 채워질 수 없는 그만의 그릇이 어딘가에 항상 존재했다. 이렇게 살아가는 게 과연 의미가 있을까 싶어도 여전히 리에프는 살아갔다. 죽고 싶다는 유치한 마음은 버린지 오래다. 불이 꺼져버린 시시한 인생이었지만 리에프는 적어도 겉으론 정상적으로 살아갈 수 있었다. 어느새 20대 후반, 찬란하고 생기 넘쳤던 학창 시절은 떠나버린지 오래 빛바랜 추억으로나마 남아있는 기억들에 의존하며 살아간다. 예전의 웃음과 예전의 행복했던 시간들을 되새기며 그렇게 위로하고, 추억에 취해 꾸역꾸역 살아가는 것이다. 그래, 그렇게 살아가거나, 아니면 살아갔겠지. 기억 속에만 남아있던 그리운 길을 걸어가며 눈앞에 보이는 빨간 우체통에 하얀 종이를 집어넣었다. 아무것도 쓰여있지 않았던 하얗기만 한 종이에 과연 몇 글자나 끄적였을 까만은. 리에프는 그렇게 하얀 종이에 추억 속 그를 담아 떠나보냈다. <4.> '안녕' 넓은 체육관 가운데 공을 든 쿠로오가 인사를 건넸다. 리에프의 기억 속 그는 너무나도 젊고 파릇했다. 배구부에 온 걸 환영해. 근데 너 외국인? 살짝 치켜올라간 고양이 같은 눈매로 리에프를 아래위로 천천히 훑던 쿠로오가 긴장해서 살짝 빳빳해진 리에프를 바로 쳐다보며 물었다. 말하면서 살짝씩 휘는 나른한 갈색 눈동자가 묘하다고 생각했다. 마치 고양이가 낯선 것을 탐색하는 것 같달까. 그렇게 한참 리에프를 이리저리 살피던 쿠로오가 파악이 끝났는지 곧 생긋 웃는 얼굴로 손을 불쑥 내밀었다. 당황한 탓인지 내밀어진 손을 멀뚱멀뚱 쳐다보기만 하던 리에프가 한번 더 움직이는 하얀 손끝에 정신을 차리고 손을 맞잡자 쿠로오가 또 생긋 웃었다. '잘해보자.' 예쁘다. 쿠로오의 웃는 얼굴을 바보같이 쳐다보던 리에프가 처음 한 생각은 쿠로오가 예쁘다는 생각이었다. 잘해 보자는 한마디가 뭐가 그리 긴장되고 벅찬지 재미있어 보여 장난 반 진심 반으로 시작했던 리에프의 배구에 생기를 불어 넣어준 한마디였다. 새로 들어온 배구부원들과 쿠로오의 설명을 들으며 멍하니 쿠로오의 얼굴만 쳐다보고 있던 리에프가 문득 '네코마의 에이스는 제가 될 겁니다.'라고 말했을 때의 그 웃는 듯 웃지 않는 듯하던 묘한 표정을 리에프는 지금도 잊지 못 했다. 당돌한 후배의 발언에 잠시 곤란한 표정을 짓던 쿠로오가 다시 씩 웃으며 그래, 어디 할 수 있으면. 하고 리에프를 쳐다봤을 때, 리에프는 생각했다. 에이스가 돼서 이 사람과 배구를 계속하고 싶다고. 생각보다 배구부 연습은 힘들지 않았다. 연습이 힘들다며 한두 명씩 빠져나가는 신입생들이 속출했지만 워낙 좋은 체격과 체력 덕분이었을까 리에프는 다른 신입생들보다 꽤나 잘 버티는 편이었고 네코마의 에이스가 되겠단 목표 덕에 흔들리지 않고 열심히 해 나갈 수 있었다. 배구는 신기한 운동이었다. 그냥 단순하게 공을 올리고 치는 것뿐일 행동들이 서로 공을 주고받고, 올려준 토스를 멋지게 치고, 어눌한 포즈로 리시브를 받아내고, 칭찬받고, 혼나고, 이런 것들을 반복하다 보면 말을 나누지 않아도 어느새 상대방의 성격이나 생각 등을 알게 되는 것이다. 그냥 그게 좋았다. 그게 좋아서 열심히 했다. 힘들지 않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만 이것저것 물어가며 많이 배워갔다. 리에프는 원채 하나에 꽂히면 열성적으로 최선을 다하는 타입이었기 때문에 배워가는 속도도 남달랐고 그만큼 신체적 조건도 받쳐줘서 나름 수월하게 해낼 수 있었다.―물론 잘한다는 얘긴 아니다.― 또 쿠로오는 능글맞고 요령이 좋을 것 같은 모습과는 달리 배구에 있어서만은 열정적이었기 때문에 배우는데 있어서는 리에프도 딱히 어려움을 느끼진 않았다. 그렇게 한 달 두 달이 지나고 시간이 꽤나 흘렀을 때 리에프는 쿠로오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게 되었고 그저 배구를 계속 같이 하고 싶다고만 생각되던 감정도 더 깊어져 감을 알게 되었다. 어쩌면 전부터 알고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리에프는 쿠로오에게 이상야릇하고 간질간질한 감정을 느끼고 있었고 단순히 배구를 같이 하고 싶은 것 이상의 무언가를 바라게 되었다. 이게 과연 뭘까? 자신이 뭘 하고 싶은 걸까. 계속 생각하고 고민하고 있던 리에프가 자신의 감정을 보다 확실히 깨닫게 된 것은 합동훈련 후 얼마 지나지 않은 일이었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주말 오후였다. 특별훈련이 끝난 후 갑자기 쏟아지는 비에 어찌해야 할까 하늘을 쳐다보고 있던 중 쿠로오의 뒷모습이 눈에 띄었다. 예쁜 사람이긴 하지만 키도 큰 편이고 몸매도 여자처럼 여리여리 하지도 않은데 도대체 이 감정은 뭘까. 무슨 풋사랑하는 어린애 마냥…. 제 머리와 똑같은 무채색의 검은 우산을 펴고 나갈 채비를 하던 쿠로오의 뒷모습을 빤히 쳐다보다가 문득 뒤를 돌아본 쿠로오와 눈이 마주쳤다. 밝지 않은 갈색 눈이 깊었다. 체육관엔 아무도 없었다. 투둑-투둑- 고요한 체육관에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울렸다. 한참을 서로 쳐다보기만 하던 중 쿠로오가 우산을 접고 들어와 리에프에게 물었다. '열성 바보. 왜 안 가고 그러고 있어?' '우산이 없어서요.' '우산? 바보, 없으면 말을 하지 왜 뒤에서 쳐다보고만 있던 거야. 까짓것 씌워 줄 수 있는데 말이야.' 우산의 물기를 탈탈 털던 쿠로오가 키득거리며 웃었다. 여전히 크게 울리는 빗소리에 취해 멍하니 있던 리에프가 벌떡 일어나 쿠로오의 우산을 낚아채 펼쳐들었다. '같이 써요.' '음…빠른데? 좋아, 대신 우산은 네가 들어.' 장난기 가득 담긴 목소리로 쿠로오가 말을 건넸다. 안 그래도 그러려고 했어요. 쿠로오가 옆으로 들어오는 걸 보고 우산을 다시 고쳐 쓰던 리에프가 대답했다. 어느 것 하나 다를 거 없는 일상인데 알 수 없는 이질감에 리에프는 당황스러워졌다. 축축한 공기에, 한쪽 어깨로 튀는 찬 물방울들. 찰박찰박 들리는 발소리와 기분이 좋은지 옅게 들려오는 쿠로오의 콧노래가 유독 낯설었다. 쿠로오가 젖는 게 신경 쓰여 자신의 한쪽 어깨가 다 젖어가도, 한쪽으로 기울인 우산에 팔이 저려와도 이상하게 싫지 않다. 분명 습하고 축축한 날씨인데도 더워진다.
더운 공기가 무거웠다. 리에프는 점점 머리가 복잡해졌다. 왠진 모르겠지만 점점 얼굴이 달아오르고 심장이 빨리 뛰었다. 이 감정이 뭘까 많은 날을 고민해 오며 했던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두서없이 머릿속에서 섞여 들어갔다. 옆에서 옅게 쿠로오 특유의 내음이 났다. 걷고만 있는데도 긴 거리를 전속력으로 달려온 것 마냥 심장이 점점 빨리 뛰고 숨이 가빠졌다. 머리는 점점 뜨거워지고 얼굴엔 열이 올랐다. 여전히 머리는 복잡한 채고 리에프는 자신이 어디를 걷고 있는지 무얼 하는지조차 헷갈리기 시작했다. 살아오면서 이렇게까지 혼란스러워졌던 적이 있었을까? 평범하게 나고 자라 평범하게 살아왔다. 평범하게 학교를 다녔고 평범하게 첫사랑도 했다. 첫 키스도 했고…첫 여자친구와 어른의 경험도 했다. 그때조차 이렇게까지 긴장되고 설레지 않았다. 잠깐, 이게 설레는 건가? 어디 아픈 게 아닐까? 생각의 생각을 거듭할수록 머리만 더 복잡해져 갔다. 리에프는 복잡한 게 싫었다. 머리 아프고 귀찮고 이것저것 따지며 장황하게 늘어놓는 것도 딱 질색이었다.
'좋아해요.' 그렇게나 크게 들리던 빗소리가 한순간에 멈췄다. 리에프는 놀라 눈을 크게 떴다. 제가 말하고도 무슨 말을 한 건지 알 수가 없어졌다. 머릿속의 복잡한 생각들이 회로를 거치지 않고 불쑥 입 밖으로 튀어나오는 것은 한순간의 일이었다. 그래서인지 모르겠다. 더 벙 쪄버린 건. '그래.' 멈췄던 빗소리가, 다시 들렸다. <5.> 쿠로오와 리에프가 만나기 시작한 지 삼 년이 좀 넘어간 때였다. 그 사이에 서로는 더 많은 것을 알게 됐고 더 많은 것을 나누게 되었다. 낯간지럽지만 유치하다고 챙기지 않던 기념일들도 하나하나 챙기기 시작했다. 서로의 삶에 작은 변화가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처음에는 사소한 시작이었다. 그 사소한 시작이 곧 리에프와 쿠로오라는 인간 자체에도 영향을 끼치기 시작했고 긍정적인 쪽으로 변화시켜갔다. 사랑이란 것은 참 신기한 감정이었다. 우울한 사람을 밝게 바꿔놓기도 하고 긍정적인 사람을 부정적으로 바꿔놓기도 하고 때로는 철천지원수도 죽고 못 사는 잉꼬부부로 만들어 놓기도 하니 마법이 있다면 이런 걸 마법이라고 하지 않을까 싶었다. 봄꽃들이 만개하는 기분 좋은 계절. 리에프와 쿠로오는 어느새 성인이 되어있었다. 진로에 맞춰서 대학을 진학했고 그에 맞춰서 삶을 살아갔다. 배구는 더 이상 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자주 만나지 못하거나 헤어질 일은 없었다. 리에프는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쿠로오에게 같이 살 것을 제안했고 쿠로오는 흔쾌히 수락했으니까. 그렇게 같이 살게 된 지도 벌써 일 년이 다 돼갔다. 한 손에 커다란 봉지를 가득 든 리에프가 뭐가 그리 신 나는지 콧노래까지 흥얼거리며 가는 걸음을 빨리했다. 양손에 가득 든 봉지는 쿠로오가 좋아하는 반찬거리로 오늘은 리에프가 쿠로오를 위해 요리를 해 줄 생각이었다. 이제 졸업반이 된 쿠로오는 졸업과제니 뭐니 해서 밤을 새우기 일쑤였기 때문에 점점 수척해져만 가는 얼굴이 안쓰러워 그가 좋아할 만한 것들을 준비하려고 한 것이다. 고양이 같은 눈매를 휘며 웃는 모습을 상상하니 벌써부터 실실 웃음이 흘러나왔다. 잘 했다고 해주겠지? 칭찬해 주겠지? 주인의 칭찬을 기다리는 강아지처럼 잔뜩 들뜬 리에프는 한껏 부푼 마음을 안고 집으로 향했다. 생전 요리라고는 해본 적이 없는 리에프는 재료들을 썰고 프라이팬을 올리자마자 곤란해지기 시작했다. 도대체 여기서 뭘 어떻게 하라는 건지. 분명 간단한 볶음밥인데…열심히 검색해 가며 인터넷을 뒤져도 도저히 자신에게 확신이 서질 않으니 리에프는 점점 불안해졌다. 과연 이렇게 하는 게 맞을까 싶었지만 까짓것 먹으면 다 똑같다고 그냥 재료들을 대충 썰어 넣고 소금 간을 해 볶기로 했다. 볶음밥이 볶아서 볶음밥이지 괜히 볶음밥이겠어? 하는 위안을 삼으면서 말이다. 볶은지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니 서투른 솜씨임에도 불구하고 집안에는 꽤나 고소하고 맛있는 냄새가 가득 퍼져나갔다. 시간은 밤 11시, 오늘은 빨리 들어온다고 했으니 대충 이때쯤이면 쿠로오가 돌아올 시간이었다. 나른한 고양이 같은 연상의 연인이 지어 줄 미소를 생각하니 저절로 웃음꽃이 피었다. 알맞게 노릇노릇 볶아진 볶음밥을 한 데 모아 그릇에 담고는 투박한 손으로 어울리지 않는 아기자기한 데코레이션도 했다. 귀찮은 거 작은 거 신경 많이 쓰이는 거 등등을 싫어하는 단순한 리에프에게는 대단한 정성이었다. 어느 정도 요리를 끝마치고 식탁에 잘 갖춰 차려놓으니 문을 여는 소리가 들렸다. 왔구나! 강아지처럼 밝은 표정으로 달려간 곳에는 지친 기색이 역력한 연인이 서 있었다. '오늘도 힘들었나 보네요.' '뭐…항상 그렇지.' 대답하는 목소리에 힘이 없다. 그때 당시엔 항상 그랬다. 무슨 일을 해도, 무슨 말을 해도 시큰둥하고 쉽게 피로해지는 모습. 잠이 부족하고 일이 고되서 그렇다는 것은 알았지만 리에프는 내심 서운했었다. 그러나 내색하지는 않았다. 안 그래도 힘든 쿠로오에게 자신마저 투정 아닌 투정을 부린다면 그가 더 힘들어할 것이 뻔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리에프는 과장된 밝은 얼굴로 만들어 놓은 볶음밥을 권했다. 요리라고는 해본 적이 없어서 자신은 없었지만 평소에 쿠로오가 즐겨먹기도 하고 좋아하는 음식이니 어느 정도 이상은 가겠지 하는 마음으로 쿠로오를 식탁으로 이끌었다. 붙잡힌 손목에도 힘이 없었다. 수척해진 얼굴엔 피로한 기색이 역력했다. 생각과는 다른 상황에 조금 당황한 리에프였지만 개의치 않고 쿠로오의 맞은편에 앉아 조잘조잘 떠들기 시작했다. 우리 과에 있는 어떤 여자애가…그래서 그랬는데, 이렇게 됐어요. 그리고 또 오늘은… '리에프.' 오늘따라 더 피곤해 보이는 연인이 낯설었다. 또 이상하게 불안했다. 유독 싸늘하고 축 처진 분위기가 머릿속 어딘가의 경고벨을 울렸다. 항상 둘만 있던 공간이 유달리 적막하고 어색했다. 이상할 거 하나 없고 불안할 것 하나 없는 그 여느 때의 일상인데. 도대체 뭐가? 우리의 마지막을 언젠가 생각해 본 적이 있었다. 그것은 너무나 슬펐고 또 참혹했다. 아직 어리고 미숙하던 자신을 바꿔 준 사람과의 이별이란 상상만으로도 끔찍하고 괴로운 일이었다. 하지만 리에프에게 이별이란 마치 죽음과도 같아서 저 멀리에 막연히 이름으로만 존재하는 것이었다. 언젠가 올 것이지만 영원히 오지 않을 것만 같은 아득하고 막연하기만 한 그런 시련. 심장이 쿵쾅쿵쾅 뛰었다. 머리가 복잡하고 가슴이 먹먹했다. 그의 연인이 눈으로 말을 건네고 있었다. 그 짙은 갈색 눈 속에 담긴 아직 나오지 못한 한마디는 까마득하고 흐릿하기만 한 그것에 대해 말하고 있었다. 갑자기 정신이 아뜩해지니 눈앞이 까무룩 했다. 말하지 마요, 제발. '우리, 그만할까.' <6.>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주말 오후였다. 리에프의 생활이 변화하기 시작한 지도 꽤 많은 시간이 지났다. 항상 함께 하던 일을 혼자 하고 지친 몸을 이끌고 집에 터덜터덜 들어왔을 때 반겨주는 이가 사라졌다는 것 정도가 될까. 어딘가 허전하고 삶이 지루했으나 상상하던 것보다 그렇게 많이 힘들지는 않았다. 사실은 그렇지 않은 척하고 싶은 걸지도 모르겠지만. 죽고 싶다는 생각도 여러 번 했었다. 그러나 과거의 일일뿐이었다. 리에프는 감성에 젖어 창밖에 내리는 비를 홀린 듯 쳐다보며 그 언젠가를 생각했다. 그날도 비가 오는 날이었다. 덥지도 춥지도 않은 약간 쌀쌀하다 싶은 날씨였던 걸로 기억한다. 눈앞에 그 머리를 똑 닮은 검은색의 밋밋한 우산이 보이고 곧게 잘 뻗은 다리가 시선을 사로잡았다. 리에프의 기억 속 그는 아직은 앳된 티가 나고 어딘가 미숙해 보이는 인상의 소년이었다. 소년이라… 나도 나이를 먹긴 많이 먹었나? 빗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이제 더 이상 아프지는 않았다. 이별을 하고 몇 달간은 술에 절어 깨고 술에 절어 자는 것이 일상이었지만 시간이 꽤나 흐른 지금은 그럭저럭 사람답게 살아갈 수 있었다. 여자도 만나고 있었다. 어딘가 마음속 한구석의 텅 빈 공간을 채워주지는 못했지만 리에프의 인생에 다시는 없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될 만한 좋은 여자였다. 어쩌면 결혼까지 할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드는 그런 착하고 다정한 여자. 사람들은 만남을 갖고 이별을 하며 살아간다.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이 있는 법이고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는 법이다. 이러한 사실은 어떤 일이 일어나도 변하지 않는다. 천지만물이 변하고 지구가 일억 번쯤 돌아도 아마 그럴 것이다. 그러니 어쩔 수 없는 거겠지. 멍하니 비를 쳐다보고 있던 리에프는 느릿느릿 현관으로 걸어가 다 떨어진 슬리퍼를 구겨 신고 밖으로 나갔다. 눅눅하지만 어딘가 상쾌한 비 특유의 내음이 코 끝에 스쳤다. 나쁘지 않은 날이라고 생각했다. 리에프는 괜찮았고 괜찮을 것이었다. 아니, 괜찮아야 했다. 한 손에 들린 무채색의 검은 우산이 바닥을 질질 끌며 드르륵하는 소리를 냈다. 아파트의 현관으로 나오니 올 일 없는 편지가 우체통에 빼꼼 머리를 내밀고 있었다. 하얀 종이었다. 아무것도 쓰여있지 않은 하얀 종이. 리에프는 그것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는 손안에 든 편지를 들고 검은 우산을 펴 밖으로 나갔다. 찰박찰박 들리는 물 밟는 소리가 귀를 간질였다. 하얀 종이와 까만 우산이 어딘가 어울리는 듯 어울리지 않는 묘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우산 끝에 맞고 떨어지는 물방울이 한 손에 늘어져 있는 종이 위로 한 두 방울 튀어 젖어들어갔다. 리에프는 한 손에 우산을 든 채로 다른 한 손으로 하얀 종이를 펼쳤다. 쿠로오의 청첩장이었다. 나쁘지 않은 날이었다. <7.> "또 꿈인가…." 리에프가 피로해 보이는 얼굴로 잔뜩 헝클어진 머리를 쓸어넘기며 몸을 일으켰다. 쿠로오에게 청첩장을 보낸 그날 후부터 끈질기게 이어지는 꿈의 향연이 리에프를 지치게 했다. 별거 없는 흰 종이에 담아보낸 미련이 도대체 뭐가 더 남을게 있다고 이리 끈질긴지. 착잡한 마음에 리에프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 쥐었다. 오늘은 리에프의 결혼식이었다. 삶을 살아가면서 가장 큰 행사이자 모든 이들의 축복을 받는 날을 드디어 맞이한 것이다. 그러나 리에프는 마냥 행복하지만은 않았다. 아마 영원히 채워질 일 없을 마음속 텅 빈 그릇이 항상 그를 짓눌렀기 때문일 터였다. 이것은 오늘이라고 다르지는 않을 것이다. 아직 동이 트지 않은 고요한 새벽, 리에프는 감정 없는 얼굴로 조용히 일어나 하루의 시작을 맞이했다. 하루가 정신없이 흘러간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실제로 그러하기도 했다. 끊임없이 찾아오는 하객들을 맞이하다 보니 어느새 결혼식을 올릴 시간이 10분 앞으로 훌쩍 다가왔다. 밀려드는 피로감에 관자놀이를 누르던 리에프는 소란스러운 듯 조용한 결혼식장을 천천히 둘러봤다. 온통 하얀 공간, 깨끗한 느낌을 주는 공간이 불현듯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상에 올라가 신부와 행복하게 웃고 있는 쿠로오의 모습이 리에프의 눈앞에 그려졌다. 마주치던 짙은 갈색 눈도, 그 안에 담겨있던 뜻 모르던 감정도, 날아오던 부케도. 리에프의 눈앞에 서서히 그려졌다가 느리게 흐려졌다. 멍청하게 넋을 놓고 있던 리에프는 문득 홀린 듯이 주위를 둘러보았다. 익숙한 검은 머리가 있길 바라지만 또 있지 않았으면 하는 모순된 감정이 그를 다시 휩쓸었다. 그는 보이지 않았다. 결혼식은 순차적으로 수월하게 진행됐다. 약간이나마 긴장되던 입장이 끝나고 서로 부부가 됬음을 알리며 반지를 교환했다. 손에 만져지는 차가운 금속이 왠지 모르게 지난날 하얀 종이의 버석한 감촉을 생각나게 했다. 리에프는 눈앞에 있는 그녀의 옅은 갈색 눈을 쳐다보며 그의 옛 연인을 생각했다. 이제 리에프도 부부가 되었으니 혹시라도 일어날 기적조차 이제는 불가능한 일이 되어버린 것이다. 갈피를 잡을 수 없이 아스라이 멀어지는 마음에 들리지 않는 축사가 마음에 꽂히지 못하고 저 멀리 흩어졌다. 이 와중에도 자연스레 쫓고 있는 그리운 그의 옛 연인은 당연하게도 보이지 않았다. 축사가 끝나고 곧이어 주변 지인들의 축가가 이어졌다. 다들 하나같이 훌륭한 축가였고 개중에는 우스꽝스러운 율동과 재치 있는 곡 선정으로 웃음을 자아내는 옛 배구부원들의 축가도 있었다. 오랜만에 보는 반가운 얼굴들에 자연스레 지어지는 미소로 리에프는 그들을 찬찬히 둘러봤다. 리에프의 기억에는 아직 소년티를 못 벗은 활력 넘치는 청춘들이었는데 언제 이렇게 훌쩍 어른이 되어버린 건지. 인생은 이렇게도 덧없는 것이다. 장난기 가득한 목소리로 결혼 축하한다고 외치는 그들의 목소리를 마지막으로 축가가 끝나고 결혼식의 꽃이라 할 수 있는 사진촬영이 시작됐다. 옅은 갈색 눈동자의 그녀와 나란히 가운데에 서서 리에프는 행복한 듯 미소 지었다. 수차례의 밝은 플래시가 터지고 옆에 있는 사람들도 수차례 바뀌었지만 결국 리에프가 바라던 사람은 오지 않았다. 공허해졌다. 길었던 사진촬영이 끝나고 리에프는 피로한 눈을 감았다 떴다. 이젠 마지막으로 리에프의 그녀가 부케를 던질 시간이었다. 그녀의 손에서 화려한 부케가 떠나가고 부케를 쳐다보던 수많은 시선도 함께 이동했다. 그 알 수 없는 기시감에 리에프는 몸을 떨었다. 예전에 아득한 미래를 생각해 본 적이 있었다. 리에프는 사랑하는 사람과 행복하게 웃으며 길을 걷고 있었고 맞잡은 두 손은 꼭 쥐여져 떨어질 줄을 몰랐다. 기분 좋은 봄바람에 만개한 벚꽃이 휘날리며 두 사람을 축복하듯 연분홍빛의 아리따운 길을 만들었다. 날은 밝고 햇볕은 따사로운 포근한 날에 리에프는 해사한 웃음을 띠고 있는 연인을 바라보며 눈을 천천히 감았다 떴다. 하얀 부케도 신부의 하얀 웨딩드레스도, 예식장도 전부 다 유난히 눈이 부시다고 생각했다. 하얀 그녀의 손에서 떠나간 흰 부케는 곧이어 예전보단 약간 더 짧아진듯한 검은 머리에 짙은 갈색 눈을 한 남자의 손에 쥐어졌다. 그리고 그 속을 알 수 없는 야릇한 눈동자와 마주했을 때 리에프는 불헌듯 깨달았다. '안녕' 길고 긴 풋사랑의 끝이엇다. |
| [카네츠키] 회귀 |
언젠가 공중전화 박스 안에서 울고 있는 남자를 본 기억이 있다. 두 손으로 수화기를 부여잡고, 위태롭게 깜빡거리는 전등 아래서 동전을 쑤셔 넣던 남자를. 남자의 두 볼을 타고 흐르는 눈물과 붉어진 얼굴을 나는 보았다. 훌쩍훌쩍 소리 내어 울던 그 남자의 눈물의 무게, 가느다랗게 떨리던 얇은 손가락의 그리움. 누구보다도 작아 보이는 마른 등과 약간 짧은 바지로 인해 드러나던 하얀 발목. 끝끝내 전화를 받지 않는 상대에 대한 원망으로 애꿎은 수화기만 던진 남자의 분노와 우울은 너무도 안쓰러워 누구에게나 동정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할 것 같았다. 사실은 그랬다. 남자는 정말로 불쌍했다. 바닥으로 쏟아진 동전을 줍던, 인기척에 놀라지도 않고 천천히 나를 올려다보던 젖은 그 눈. 어딘가 익숙한 느낌을 주던 그 어색한 순간은 마치 영원과도 같아서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다. 쓰레기를 뒤지던 고양이마저도 도망가버리던 그 밤을. 나와 남자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없던 그 골목에서 불어오던 차가운 영하의 바람을. 무릎을 짚고 일어나 휘청거리며 걷던 남자를 나는 본 적이 있다. *
아주 어렸을 때부터 엄마와 단둘이 살았다. 아빠에 대한 기억은 없었다. 엄마는 아빠가 누구보다도 현명한 사람이었다고 했다. 나는 그 말을 믿지는 않았다. 현명한 아빠가 남기고 간 것은 좁은 집을 더 좁게 만드는 수많은 책과 삶의 무게뿐, 그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엄마는 혼자서도 그 삶의 무게를 잘 견뎌내는 것 같았다. 엄마는 내가 자라면 자랄수록 좀 더 많은 시간을 일하는데 썼으며, 그러는 동안 엄마는 나에게 한 번도 얼굴을 보여주지 않았다. 나는 그 묵묵한 등에 얼굴을 묻으며 양을 세다가 잠들곤 했다. 어느 날이었다. 그때도 나는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엄마의 냄새를 맡으며 차가운 옷감에 얼굴을 비비고 있었다. 엄마는 곰 인형을 손에 껴안고 있느라 나를 안아주지 못했다. 엄마의 손가락이 가늘게 경련하는 것을 불빛 사이로 바라보며, 나는 감겨오는 눈을 억지로 뜨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카네키쨩, 인형 눈 좀 주워줄래. 탁자 밑에. 깊게 잠긴 엄마의 목소리가 나의 잠을 깨웠다. 나는 겨우 정신의 끈을 부여잡고 몸을 숙인 후 탁자 아래를 바라보았다. 촛불의 온기가 닿지 않는 탁자의 밑은 눈을 감은 것처럼 어둡기만 했다. 손을 휘저어가며 이리저리 더듬다 작은 눈을 발견하고 엄마를 부른 순간, 엄마의 얼굴이 말 그대로 순식간에 탁자로 내리꽂혔다. 망치로 무언가를 후려치는 것처럼 둔탁한 소리가 났다. 그 충격으로 인해 탁자에서 떨어진 눈알들이 바닥을 데굴데굴 굴러다니기 시작했다. 모든 눈이 일제히 나를 향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엄마를 부르려고 손을 뻗자 그때까지도 엄마의 품에 안겨있던, 한쪽 눈만 있는 곰 인형이 웃음을 씨익 흘렸다. 부럽지? 나는 눈알들 사이로 넘어졌고,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 다시 눈을 떴을 때, 나는 병원에 있었다. 엄마는 과로로 돌아가셨다고 어떤 간호사가 말해줬다. 이유 없이 삐져나오는 눈물을 손으로 훔치며 나는 어쩐지 이런 상황이 익숙한 것 같다고 생각했다. 내 침대 옆에는 한쪽 눈만 달린 그 곰 인형이 있었다. 누구의 배려였는지는 몰라도 별로 좋은 생각은 아니었던 것 같다. 나는 간신히 매달려있던 다른 한쪽 눈도 떼어버린 후에 그것을 침대 밑으로 굴렸다. 이제 더 이상 저 눈을 주워줄 사람도, 그리고 저 눈이 필요한 사람도 없었다. 전자는 후자를 잃었고, 후자는 목숨을 잃었으니까. 엄마의 장례식에는 우는 사람이 없었다. 별로 친하지도 않던 친척들은 자기들끼리 수군거리며 내 얘기를 했다. 아마도 주된 주제는 '누가 저 애물단지를 데려갈 것인가' 인 것 같았다. 나는 그들의 눈치를 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구석에 앉아 눈이 없는 곰 인형을 가지고 놀았다. 내 뒤에 있는 엄마의 영정사진은 아주 옛날에 찍었던 것을 확대한 것이라 군데군데가 검은색으로 보기 싫게 깨져있었다. 마치 엄마가 검은 눈물을 흘리는 것 같았다. 실밥이 더럽게 남아있는 인형의 눈언저리를 만지는데 시야에 누군가의 발이 잡혔다. 당황하지 않고 고개를 들자, 한 남자가 그렁그렁한 눈으로 나를 내려다보고 있는 것이 보였다. 남자는 10대 후반이나 20대 초반으로 보였으며, 머리색이 무척이나 탁한 보라색이었고, 그리고 붉은 눈을 가지고 있었다. 남자는 그대로 천천히 무릎을 꿇어 나와 눈높이를 맞춘 후 내 어깨를 천천히 그러쥐었다. 남자의 얼굴이 닿은 어깨가 축축하게 젖어들어 가기 시작했다. 그 눈물들 사이에서 남자는 드문드문 이런 말을 했다. 내가, 이제, ……를, 게……. 뭐라고 하는지 도저히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이었지만, 나는 그의 행동에 처음으로 어떤 감정을 느꼈다. 뭐든 처음은 중요한 것이다. 첫사랑, 첫 키스, 첫 데이트, 첫 번째, 첫눈, 첫 만남 등등. 그러나 내가 느낀 것은 그렇게 귀엽고 사랑스러운 느낌이 아니라,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끓어오르는 불쾌함이었다. 그러나 앞에서 말했던 것처럼, 뭐든 처음은 중요한 것이었다. 설령 그것이 아무리 부정적인 감정이라고 해도 말이다. 그는 손바닥으로 얼굴을 감싸며 우는 모습을 감추었다. 그러나 바닥으로 뚝뚝 떨어지는 눈물이 그의 슬픔을 대신 보여주었다. 겨우 눈물을 그친 그가 손수건으로 얼굴을 닦으며 한 말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걱정하지 마. 이제부터 나랑 살자, 그러면 돼. 아무리 그래도 친척들이 모르는 사람에게 당장 나를 내어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그의 말에 어떠한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그는 떨어진 곰 인형을 다시 내 품에 안겨주고, 이야기를 하고 있는 친척들에게 다가갔다. 친척들은 처음에는 무척이나 당황스러운 얼굴을 했다가, 그가 꺼내는 종이뭉치들과 작은 쪽지 같은 것을 보고는 서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나는 사실 지금도 그가 무엇을 보여주었는지 모른다. 도대체 뭐였길래 그 친척들의 입꼬리가 찢어질 정도로 올라가게 했던 걸까. 정확히는 모르지만, 예상은 가능했다. 아마 공식적인 무언가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니까 친척들이 아무 거리낌 없이 받아들일 수 있었겠지. 그러나 가장 큰 작용을 한 것은 따로 있었을 것이다. 그건 아마 돈이었을 것이고. 돈. 영정사진의 여자가 얻기 위해 목숨을 바쳤던 그 돈. 장례식이 모두 끝난 후, 나는 그와 손을 잡은 채 어두운 밤길을 걸었다. 나는 별로 잡고 싶지 않았으나 그가 억지로 쥐고 있어서 뺄 수가 없었다. 그는 무척 즐거워 보이기도 했고, 또 한편으로는 끊임없이 우울해 하는 것 같기도 했다. 그에게 우리 엄마를 아느냐고 묻고 싶었지만, 목소리를 듣는 것조차 불쾌했기 때문에 그냥 가만히 있기로 했다. 그는 크지도, 그렇다고 해서 작지도 않은 한 주택을 가리키며 웃었다. 저곳에서 우리가 살 거야. 그 주택은 어디선가 많이 본 것 같았다. 그렇게 생긴 집이 흔하기 때문이었을까. 내가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고 눈만 꿈뻑거리자 그는 조금 머쓱했는지 뒷머리를 긁적이며 내게 열쇠를 내밀었다. 집 열쇠야. 잃어버리면 안 돼. ……. 열쇠고리도 달아놨는데, 마음에 들어? 그가 말한 대로 열쇠의 끝에는 책을 읽고 있는 남자의 인형이 달려있었다. 솔직히 말하면 마음에 들었지만 드러내놓고 표현하지는 않았다. 그래도 감사하다는 말 정도는 해야 할 것 같아서, 짧게 고맙다고 말하자 그는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라며 갖고 싶은 게 있다면 걱정하지 말고 말하라고 했다. 사실 그 무렵에 내가 가장 갖고 싶고, 하고 싶었던 것은 탈출이었는데도. 그는 내 대답에 기분이 더 좋아졌는지, 콧노래까지 부르며 현관문을 열었다. 안에서부터 불어온 바람이 차갑게 볼을 때리고 지나갔다. 어쩐지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았다. * 그는 과도할 정도로 나에게 잘해주었다. 내가 별을 가까이에서 보고 싶다고 한다면 당장에라도 별을 따다가 바칠 기세였다. 그런 그가 너무 부담스러워서 제발 그러지 말라고 몇 번이나 말했는데도, 그는 변하지 않았다. 내가 거절하는 듯한 의사를 비치면 금세 시무룩해져 괜히 사람을 민망하게 만들기도 했다. 그에게 느끼는 불쾌함의 원천을 나는 도저히 찾을 수 없었다. 얼굴도 아니었고, 재수 없는 말투 때문도 아니었다. 굳이 말로 표현하자면 이질감이라고 해야 할까. 분명 어디선가 있었던 일을 다시 되풀이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내가 불쾌함을 아무리 숨긴다고 해도 그에게 닿지 않을 리는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언제나 나를 향해 미소를 지었다. 기분이 나빴다. 그는 나를 학교에 보냈다. 처음에는 그가 직접 차로 데려다주었으나 내가 걸어가고 싶다고 하자 순순히 허락해주었다. 대신 그는 아침마다 슬리퍼 차림으로 집 앞까지 따라 나와 조심해야 한다며 신신당부를 했다. 어떨 때는 골목 끝까지 따라 나올 때도 있었다. 14살짜리 애가 조심해야 할 게 없는 건 아니지만, 그건 분명 정도가 지나친 것이었다. 그리고 나는 알고 있었다. 그와 나에 대한 주변의 소문이 별로 좋지 않다는 것을. 점점 그가 옆에 있는 게 싫어졌다. 그리고 그럴수록 그의 행동들이 눈에 익어가기 시작했다. 커피를 마시는 손끝의 미세한 움직임, 천천히 깜빡이며 소설책을 읽는 두 눈, 접시를 닦으며 희미하게 흘리는 웃음. 어떨 때는 숨소리마저도 무서울 정도로 익숙해서 소름이 돋았다. 그 집에 살기 시작한 지 2년이 조금 넘은 때였다. 예전에 어디서 만난 적 있었나요. 누구? 너랑 나? 네. 아니. ……왜? ……. 혹시 모르지. 언젠가 마주쳤을지도 몰라. 길거리에서 어깨가 살짝 닿았을지도 모르고, 서로 전화를 잘못 걸어서 어색하게 사과를 했을지도 모르고, 네가 놀이터에서 놀고 있는 걸 내가 지나치듯 봤을 수도 있겠지. 아니면 네가 나를 봤을지도 모르고. 잘생긴 편이라 기억에 오래 남았는지도 모르지. 아니면 전생에서? ……. 정말 만났을지도 몰라. 그래요. 전생의 인연이 나중에도 이어진다는 말이 있잖아. 들어봤어? 그럼 우리는 예전에 어디선가 만났었겠네. 네, 뭐……. ……우리는 만났어야 했을까? 그는 한참 동안 입을 다문 채 손가락으로 컵을 어루만졌다. 나는 그의 말에 대답할 가치를 느끼지 못하고, 읽던 책을 천천히 덮었다. 그만 잘 시간이라고 무미건조하게 말한 후 자리에서 일어나는데, 그가 두 손으로 입을 가린 채 나를 불렀다. 카네키군. ……. 여기서 지내는 건 편해? 어때? 나는 대답하지 않고 고개를 저었다. 거실은 어두웠고, 그가 손으로 시야를 가리고 있어서 내 움직임을 봤는지는 알 수 없었다. 공기에 균열이 생긴 것 같았다. 집 전체가 얕게 흐르는 긴장으로 인해 삐그덕거리고 있었다. 그 긴장의 원인이 나라는 건 알고 있었다. 문득 집을 나가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날 새벽에는 비가 쏟아졌다. 다음 날, 학교가 끝나고 나서도 나는 집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반 친구의 집에서 일단 하루만 보내기로 약속하고 거리를 돌아다니며 아르바이트 자리를 찾아다녔다. 야간에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한다면 밤에도 머무를 곳이 생기니 괜찮을 것 같았다. 그러나 대부분의 가게는 나이가 적은 나를 받아주려고 하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돈은 포기하고 친구의 집에 가기로 마음을 먹었다. 지하철로 발걸음을 옮기는데, 주머니에서 진동이 길게 울렸다. 그의 전화였다. 전화번호부에 따로 저장해두지는 않았지만, 어쩌다 보니 외워진 그 숫자들을 내려다보다 화면을 다시 닫아버렸다. 지하철을 탈 때까지 전화는 끊이지 않고 이어졌다. 시간은 8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평소라면 내가 집에 도착하고도 남을 시간이었다. 나는 지하철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휴대폰은 아예 무음으로 돌리고 가방 구석에 넣어두기까지 했다. 아무도 나를 찾지 않는 상태에 놓이자 물처럼 피곤함이 서서히 밀려들어 왔다. 결국 꾸벅거리며 조는 바람에 내려야 할 역을 놓쳤다. 다시 지하철을 바꿔 타며 전화가 몇 번쯤 와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친구의 집 근처까지 갔을 때, 눈앞에 익숙한 차의 실루엣이 보였다. 나는 그게 내가 너무 졸려서 일어나는 착각인 줄 알았다. 그 차에 비스듬히 기대어 서 있는 그를 보고 나서야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나를 차에 태웠다. 나는 반항하지 않았다. 이미 끝이 난 일에 꼬투리를 잡고 바락바락 대들수록 상황은 좋아지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는 집에 도착할 때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도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먼저 말하면 지는 게임이라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이건 게임이 아니었다. 전화는 왜 안 받아. 휴대폰 잃어버렸어? ……. …내 번호라서 안 받았어? ……. 친구네 집에서 자고 온다고 약속을 했으면 말을 했어야지. 무슨 일이라도 있는 줄 알고 걱정했잖아. ……. 다음부터는 꼭 연락해. 피곤할 텐데 얼른 씻고 자, 이제. 그는 마른세수를 하며 소파에 쓰러지듯 몸을 기댔다. 내가 아무리 예의 없게 굴어도 그는 나한테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집주인이 그라고 해도, 현실적으로 우위는 나에게 있었다. 당신이 뭔데 내 부모 노릇을 해? 그 말에 대답할 수 없는 그의 위치를 안다. 내가 키워달라고 부탁을 한 것도 아니고 일방적으로 나에게 쏟아붓는 애정을, 굳이 책임져야 할 이유는 없지 않은가. 일방적으로 나를 데려왔다. 나의 의사는 물어보지도 않고. 고등학교 졸업하면 나갈게요. …왜? 그동안 많이 도움받았고, 이제 신세 지기는 좀 그러니까……. 한 번도 그렇게 생각한 적 없잖아. ……. 카네키군. 죄송합니다. …안 가면 안 되겠니. 그의 눈에 눈물이 맺히기 시작했다. 나는 고개를 숙여 묵례를 한 후 방으로 올라갔고, 뒤이어 그가 훌쩍훌쩍 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긴 밤이었다. * 시간은 빠르게 흘렀고, 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내 졸업식에 그는 오지 않았다. 그의 집에 있던 물건들은 하나도 가져오지 않았다. 그 모든 것들을 내가 사용하긴 했더라도 어쨌든 내 것이 아닌 그의 것이었으니까. 그 날 밤, 나는 그 집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대학과 가까운 자취방은 너무 좁아서 몸이 불편하긴 했지만, 마음만은 편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익숙하다는 느낌이 없었다. 오히려 모든 것이 새로워서 더욱 편했다. 날 모르는 곳에 온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 날, 밤늦게까지 친구들과 술을 마시다 휴대전화를 잃어버렸다. 다음 날, 나는 방을 청소하다 낡은 열쇠를 발견했다. 잔뜩 더러워진 열쇠고리를 보고 나서야 그것이 무슨 열쇠인지 알 수 있었다. 그 집의 열쇠였다. 무심코 주머니에 넣어둔 모양이었다. 이걸 돌려줘야 하나 아니면 그냥 버려야 하나 고민하다, 아무래도 버리는 건 조금 아닌 것 같아 돌려주기로 마음을 굳혔다. 그의 얼굴을 보는 건 꺼림칙했으니, 밤에 몰래 집 앞에 가져다 두는 것까지 계획했다. 어쩐지 가슴이 조금 답답했다. 나는 정확히 10시에 집을 나섰다. 지하철을 타고 가면 얼마 걸리지 않지만, 바깥 공기가 좋았기 때문에 그냥 걷기로 했다. 날씨가 아직 추워 숨을 쉴 때마다 하얀 입김이 터져 나왔다.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20분쯤 걷자 무섭도록 익숙한 골목이 나타났다. 정말로, 나는 옛날에 이곳에 와본 적이 없었나? 그의 집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 걸으면 걸을수록 섬뜩한 향수가 몸을 뒤흔들고 사라졌다. 오른쪽으로 돌면 고장 난 가로등, 계속 직진하면 붉은 지붕의 집, 거기서 오른쪽으로 또 돌면 공중전화기가 있고 공중전화기 근처에 있는 그의 집. 모든 게 생생하게 기억이 났다. 고장 난 가로등을 지나, 눈앞에 공중전화기가 보였을 때 나는 평소와는 다른 무언가를 알아차렸다. 공중전화 박스 안에 누군가 있었다. 그 누군가는, 탁한 보라색 머리를 가지고 있었고, 그리고 ……그였다. 그는 공중전화 박스 안에서 울고 있었다. 두 손으로 수화기를 부여잡고, 위태롭게 깜빡거리는 전등 아래서 동전을 쑤셔 넣으며. 그의 두 볼을 타고 흐르는 눈물과 붉어진 얼굴을 나는 보았다. 훌쩍훌쩍 소리 내어 우는 그의 눈물의 무게, 가느다랗게 떨리는 얇은 손가락의 그리움. 누구보다도 작아 보이는 마른 등과 약간 짧은 바지로 인해 드러난 하얀 발목. 끝끝내 전화를 받지 않는 상대에 대한 원망으로 애꿎은 수화기만 던진 그의 분노와 우울은 너무도 안쓰러워 누구에게나 동정심을 일으키기에 충분할 것 같았다. 사실은 그랬다. 그는 정말로 불쌍해 보였다. 바닥으로 쏟아진 동전을 줍는, 인기척에 놀라지도 않고 천천히 나를 올려다보는 젖은 그 눈. 어딘가 익숙한 느낌을 주던 그 어색한 순간에 나는 무엇인가를 깊게 깨달았다. 언제 어디선가 들었던 그 목소리. 쓰레기를 뒤지던 고양이마저도 도망가버리고, 나와 그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없는 골목에서는 차가운 영하의 바람이 흐르고 있었다. 그는 무릎을 짚고 일어나 휘청거리며 나에게 걸어왔다. 우리는 한참 동안 서로를 바라보았다. 먼저 입을 연 것은 나였다. 왜 나와 있었어요? 전화하려고. 전화기 있잖아요. 너는 나는? 내 전화번호라서, 안 받을 것 같아서……. 왜 전화했는데요 목소리가 듣고 싶어서. 그는 코를 훌쩍이며 나의 눈을 깊게 바라보았다. 그 순간 나는 확신했다. 어디선가 분명 만났었던 눈이라고. 왜요? 뭐가. 내가 뭐라고? …너는 늘 혼자서 다 해결하려고만 하지. ……. 이번에는 안 돼. 정말 못 가게 할 거야. ……. 그는 다시 눈물을 쏟으며 내 손을 부여잡았다. 언젠가 그가 중얼거렸던, 너는 전생에서 가장 멋있고 가장 외로운 사람이었을 거야. 왜냐하면 너는 특별했으니까. 그러나 나는 그 말을 정확히 이해할 수 없었다. 내가 이제 너를 지켜줄게. 그러니까 나는 이 상황도, 그도, 나도 영원히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아무리 그가 애를 쓴다고 하더라도. 내가 모르는 과거가 있다고 해도. 하지만 이해하지 않아도 괜찮을 것 같았다. 적어도 지금의 익숙함에서는. * 태어날 때부터 전생의 기억이 있었다. 하루하루가 악몽이었다. 모두를 지키기 위해서라며 떠다던 그를 말리지 못한 내 잘못이었다. 만약 내가 더 용기가 있었더라면, 아니면 내가 좀 더 강했더라면 너를 살릴 수 있었을까? 그런 생각의 악순환이 언제나 나를 괴롭혔다. 그러다 어느 날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내가 태어난 것처럼 너도 어디선가 다시 태어나지 않았을까? 그러면 이번에는 내가 너를 지켜줄 방법이 있지 않을까? 그렇게 해서 다시 만나게 된 너는 나를 무척이나 싫어했다. 딱히 무슨 이유가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너는 전생을 기억하지는 못했지만, 본능적으로 어떤 감각들은 가지고 있는 듯했다. 6번지에서 지냈던 집을 보고 눈살을 찌푸렸던 것. 나를 싫어하는 것. 커피를 유난히 좋아하는 것. 또래 아이들보다 책을 많이 읽는 것. 모두 과거의 너와 관련이 있었다. 혼자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떠나버리는 것도. 안 가면 안 되겠느냐는 나의 애원에도 결국 가버린 것도. 우리는 만났어야 했을까? 모두 똑같았지만 너는 아직 죽지 않았다. 나는 여기서까지 너를 죽게 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그러니까 이번에 만약 내 목숨을 바쳐야만 하는 상황이 오더라도, 나는 끝까지 너의 곁에 남을 것이다. 그러다 만약 내가 죽는다면, 너는 나를 위해 울어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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