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mes Honor - The Portrait

1912년, 첫 항해에서 빙산과 충돌해 침몰한 비운의 배
가장 유명한 침몰선. 2012년 4월 15일로 침몰한지 딱 100년째
선적: 영국
모항: 리버풀(Liverpool)
선박 특성
총 톤수: 46,328 GRT
배수량: 52,310t
전체 길이: 269.1m
전체 폭: 28m
최대 속도: 23노트 (43km/h)
굴뚝 수: 4 (단, 끝의 하나는 장식 및 환기용)
마스트 수: 2
통신 시스템: 밤에는 3200km까지 연락 범위 확대.
재질: 강철
기관: 스카치식 보일러 24기, 보조 5기, 레시프로 4기, 통 엔진 2기, 증기터빈 1기, 혼성 3축, 프로펠러 3기
출력:46,000HP (설계) – 59,000HP (최대출력)
최대 탑승가능 인원: 3547명 (승선객, 승무원 모두 포함)
선실수
1st-class(1등실) 416
2nd-class(2등실) 162
3rd-class(3등실) 262
cabin area(전용실, 갑판실 등) 40
20세기 초에 조선업에 큰 영향력을 갖고 있던 하란드 월프 사의 회장인 피리 경이,
런던메이 페어의 저녁식사 모임에서 화이트 스타 라인사의 이즈메이 사장에게 3척의 대형 여객선의
건조 계획을 말한 것이 타이타닉 호 건조의 발단. 설계는 토머스 앤드류스가 맡음
화이트 스타 라인 사는 "블루 리본"으로 불렸던 북대서양 여객선들의
속도 경쟁에는 별로 관심을 나타내지 않고, 느긋하고 쾌적한 여행에 중점을 두는 회사
하지만 타이타닉은 속도부터 설비의 호화로움까지 모든 것에 중점을 두어 설계되고 있었음.
안전에도 신경을 써 설계에 방수구획을 도입
선체는 방수 격벽에 의해 16개의 구획으로 구분되었고,
그 중의 2구획(뱃머리의 경우 4구획)이 침수해도 침몰에 이르지 않는 구조였음
게다가 격벽은 제어실의 원격 조작으로 즉시 폐쇄할 수 있었음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방수대책의 도입으로 타이타닉호는 "불침선"의 명성을 얻고 있었는데
실제로 설계상의 구조는 지금 기준으로도 안전한 편
그러나 갑판 아래 선체가 전부 방수구획으로 설계되어 있었던 것은 아니고,
주 갑판을 통해 구획 모두가 연결되어 있어서 선체에 큰 손실이 발생하여 다량의 해수가 유입될 경우
도미노처럼 다른 구획까지 차례차례로 침수될 수도 있는 구조였으며 실제로 첫 항해 때 이런 일이 벌어짐
타이타닉 호는 올림픽 호와 거의 동시에 건조가 개시되어 대계단이나 식당의 장식,
식사의 메뉴나 객실의 서비스 등 외관에서나 내장 면에서 거의 동일했다고 함
영화 타이타닉에서는 마치 타이타닉 호가 전무후무한 초대형 선박인 냥 연출했지만 실제로는 올림픽 호가
클래스의 대표 선박으로, 타이타닉 호와 브리타닉 호라고 하는 2척의 자매선과 함께 올림픽 클래스라고 불리고 있었음
타이타닉 호의 사진으로도 종종 올림픽 호 사진이 사용됨
여담으로 말하자면, 타이타닉호와 자매선들은 최초로 배 안에 수영장을 설치해 놓은 여객선들이었다고 함

오른쪽이 타이타닉 호, 왼쪽은 자매함이자 1번함 올림픽 호.
그러나 앞서 항로에 투입된 올림픽 호에서 발생한 문제점을
타이타닉 호의 설계에 반영한 결과, 몇 군데 달라진 부분은 있었음
예를 들면 A 갑판의 1등실 전용 산책용 갑판(Promenade) 앞부분에 유리창이 설치되었는데,
이는 북대서양의 추운 바람으로부터 승객을 보호하기 위해서 였다고
이 점은 외관상으로 두 개의 자매선을 구분하는 요소 중 하나. 위 사진은 전술한 유리창이 설치되기 전의 모습
그 밖에도 올림픽호는 B 갑판의 창가 전체에도 산책용 갑판이 설치되어 있었지만 타이타닉호의 설계도에서는
산책용 갑판 대신에 창가 전체에 1등 선실을 새롭게 마련하도록 변경됨
그 결과, 1등실의 수가 올림픽호보다 더 많아졌고 전용 산책용 갑판에 면한 스위트룸이 도입되었음
자매선이니만큼 애초의 중량은 거의 비슷하게 설계되었지만 이상의 이유로 타이타닉의 객실 수가 증가,
최종적으로 타이타닉 호의 총톤수는 올림픽 호의 45,324톤보다 1,004톤 커진 46,328톤으로 늘어남
타이타닉호가 올림픽호를 넘어 당시 세계 최대의 여객선이었다는 것은 확실한 사실
그러나 타이타닉 호가 지금까지도 유명세를 타고 있는 것은 그 크기 때문이 아니라 어두운 바다 속으로 가라앉은 탓
수에즈 운하에 이 배가 너무 커서 안들어가 수에즈 운하가 확장 공사를 해야 했다는 말도 있지만 이 말은 확실한 과장
수에즈 운하의 확장은 당시 선박의 대형화 추세 때문이지 타이타닉호 한 척의 통행 때문은 아님
총 11층으로 이루어짐
*보트 갑판 - 최상층으로, 구명보트들은 모두 여기에 나열되어 있었음. 맨 앞쪽에는 선교와 조타실이 있었으며 선장 & 간부(항해사) 숙소와 바로 연결되어 있음. 그리고 그 뒤에는 중앙계단의 최상층과 체육관이 연결되어 있음. 넓은 산책로를 가지고 있으며, 1등실, 2등실, 항해사, 기관사 저마다 산책로의 영역이 정해져 있었음. 1등실 산책로의 경우 외관을 잘 볼 수 있게 하기 위해 구명보트가 설치되어 있지 않았는데, 이때문에 참사의 원인 중 하나가 되었음
*A 갑판 - 산책 갑판이라고도 불림. 거의 모든 영역이 1등실 전용이었고, 1등실 객실들과 라운지, 흡연실, 독서실, 그리고 야자수 코트가 놓여져 있었음. 산책 갑판이라는 이름답게 승객들은 기나긴 산책로가 놓여져 있었는데, 앞에서도 말했듯이 앞쪽의 산책로에는 유리창이 설치되 있음
*B 갑판 - 선교루 갑판이라고도 불림. 객실은 1등실이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었으며, 어떤 객실들은 개인 산책로를 보유하고 있었음. 레스토랑과 카페도 있었음. 이 갑판에는 선두와 선미 위쪽도 포함되어 있는데, 선미는 3등실 산책로로 쓰였지만 선두는 당연히 안전문제상 선원 외 출입금지. 그러니까 97년판 영화에서 "나는 세상의 왕이다!" 하는 장면과 "날고 있어!" 장면은 페이크..다만 실제로 가봤다는 생존자의 이야기도 있음.
*C 갑판 - 배에서 선두,선미와 분리되는 지점이자 하얗게 칠한 곳이 시작하는 지점으로, 3등실의 산책로로 쓰이고 선두와 선미로 각각 이어지는 요갑판과 이어져 있음. 선두는 주로 선원들의 숙소로 쓰였고, 선미는 3등실 전용 휴게실과 흡연실이 있음. 그 사이엔 1등실 객실들과 2등실 도서관이 있었음.
*D 갑판 - 3개의 넓은 공공시설이 상당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는데, 1등실 대합실, 1등실 식당과 2등실 식당이 있었음. 3등실을 위한 오픈 스페이스도 있어 밤만 되면 신나는 연회가 열렸음. 1등실, 2등실, 3등실 객실들과 화부들의 숙소가 있던 곳. 방수격벽이 위치해있던 가장 높은 갑판이기도 함
*E 갑판 - 주로 1등실, 2등실, 3등실 모두의 객실들과 선원들의 숙소가 차지하고 있었음. "스코틀랜드 로드"라고 불리던 아주 긴 복도가 있어 선원들과 승객들이 오고 갈 수 있었음
*F 갑판 - 객실은 3등실이 대부분이었지만, 2등실 객실과 선원들의 숙소도 있었음. 3등실 식당은 여기. 또, 1등실 승객들을 위한 수영장과 터키탕도 있었음.
*G 갑판 - 수면 위에서 가장 낮은 층으로, 선원들과 승객들의 객실이 있는 가장 낮은 갑판. 스쿼시 코트도 있었으며, 우편 저장소도 여기. 대다수의 영역이 보일러실이 있는 최하 갑판과 겹쳐 있어 선미와 후미가 각각 따로 떨어져 막혀있었음
*최하 갑판 - 주로 창고가 대부분
*탱크 톱 - 보일러실과 기관실 위치
1등실에는 총 329명의 부유한 승객들이 타고 있었으며, 급한 사정보다는 즐기려고 승선한 승객들이 많았음
객실은 최상층인 보트 갑판부터 갑판 E(상갑판)까지 설치되어 있었으며, 호화 호텔 수준이었고 개인 목욕탕이 있었음
2등실에는 총 285명의 중산층 승객들이 타고 있었음. 전체적으로 봤을 때 1등실만큼 좋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다른 배들의 1등실에 견줄 만한 많은 편리한 시설들이 설치되어 있었음
객실은 갑판 D부터 갑판 G까지 설치되어 있음. 흡연실(갑판 B), 레스토랑(갑판 B), 도서관(갑판 C), 상점 등이 설치되어 있었음
3등실에는 총 710명의 가난한 승객들이 타고 있었으며, 주로 아메리칸 드림으로 미국에서 새로운 보금자리를 얻기 위해 승선한 승객들
객실은 2등실과 마찬가지로 갑판 D부터 갑판 G까지 설치되어 있었음. 시설은 1등실과 2등실만 못하고 엔진이 가동되는 소리가 울려퍼졌으나,
다른 배들에 비해서 비교적 좋은 대우를 해주었음. 배에 탑승하기 전에는 검역을 걸쳐서 전이나 이,벼룩을 확인했고,
여자와 남자는 배의 앞머리와 뒷머리에 각각 따로 떨어져 승선했으나 가족 단위일 경우 같이 승선할 수 있었음
선원들은 총 885명이 타고 있었음. 항해사, 갑판 선원, 기관사, 화부, 승무원, 요리사, 레스토랑/카페 점원,
우편 점원, 음악 연주가, 그리고 보증으로 탑승한 관계자들 등등 여러 종류의 선원들이 타고 있었음
물론 월급과 대우도 직종에 따라 달랐음. 여성 승무원은 23명
타이타닉호의 침몰 시점은 1912년 4월 14일-15일 밤
타이타닉호의 침몰 지점은 캐나다 뉴펀들랜드 주 해안 동쪽 400마일(640km) 해상으로 추정
1912년 4월 10일, 영국의 사우샘프턴(Southampton)으로부터 타이타닉호는 첫 항해를 시작
E·J·스미스 선장과 승무원과 승객을 합쳐서 2,200명 이상이 승선하였음
배가 항구를 떠날때, 실수로 정박되있던 뉴욕 호의 정박용 밧줄을 끊어버려 둘이 충돌할 뻔했던 사건이 발생
프랑스의 셸부르(Cherbourg)과 아일랜드의 퀸즈타운에 기항한 후, 미국의 뉴욕 항구로 향했음
출항 당시 쌍안경의 열쇠가 인계되지 않아서, 배 안에 있는 쌍안경을 꺼낼 수 없었음
때문에 견시들이 쌍안경을 사용하지 못했고 육안으로 위험요소를 확인해야 했는데,
사고 초기에는 이게 큰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되었으나 나중에 사상 최악의 참사에서 실제로 동일한 환경 속에서
당시 쌍안경을 사용하여 실험한 결과 이것조차도 무용지물(실험 결과 그냥 검은 원만 보였다고...)
애당초 당시의 차가운 공기 때문에 시야 확보가 어려웠고, 칠흑같은 밤에 파도도 없어서 빙산을 발견하기 어려웠음
여러 악조건이 겹쳤기에 쌍안경을 사용하지 못했던 것은 그 많은 악조건 중 하나였을 뿐이었다고 볼 수 있음
출항 오전부터 빙하가 돌아다닌다는 위험한 소식이 선박 사이의 무선통신으로 경고되고 있었으며,
적어도 타이타닉 호는 4월 14일 6통의 경고를 통신으로 받았음
그러나 타이타닉 호의 통신사들은 승객들의 통신 발신 업무에 쫓기고 있었고,
이 계절의 북대서양의 항해에는 자주 있는 일이라고 여겨서 경고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다고
그러다가 화물선 캘리포니안 호가 무선을 보낼 때에는 더 이상 참지 못한 통신사 필립스가
"! 지금 그쪽이 통신을 방해하고 있다고요!"...라고 일침을 놓았고,
캘리포니안 호의 통신사 에반스는 빡쳐서 무전 스위치를 끄고 잠이 들었음(...)
문제는 타이타닉호가 침몰할 당시 가장 가까이 있었던 배가 캘리포니안 호였는데,
하나뿐인 통신사가 잠을 자고 있었기 때문에 구하러 오지 못함
이 설에 따르자면 겨우 통신사의 불친절함 때문에 1500여명이 죽어간 참사가 일어난 것이 되는데,
사실 이 주장에 대해서 사건 직후 청문회에 증인으로 불려간 통신사 에반스는
'그런 정도 문제 가지고 화를 낸 건 아니다'고 증언한 바 있음
애초에 통신장비를 갖춘 선박의 통신사는 24시간 근무를 하도록 되어 있었고,
당연히 혼자서 24시간 근무가 가능할 리가 없었기 때문에
통신사를 1인만 탑승시킨 캘리포니안 호가 규정을 위반하고 있었던 것
다만 당시의 해운 관행상 이런 경우는 흔했기 때문에 캘리포니안 호만 특별한 것도 아니었음
이때 억울하게 캘리포니안 호의 선장만 비난받기도 함
당시 에반스는 빡쳐서 무전을 끄고 잔 게 아니라 그냥 고된 근무로 피곤해서 잠이 들었던 것
그리하여 운명의 밤 11시 40분, 레지날드 리와 함께 견시를 보던 갑판선원 프레드릭 플리트가
전방 450미터에 높이 20미터 미만의 빙산을 육안으로 발견
출항할 때 쌍안경을 사용할 수 없었고 빙산의 10분의 1은 숨어 있었기 때문에 빙산을 발견했을 때에는 이미 늦은 뒤
플리트가 빙산을 발견하고 급히 선교에 전화로 보고했고, 6등 항해사 제임스 무디가 조타실에서
그것을 받고 윌리엄 맥매스터 머독 1등 항해사에게 보고
보고를 받은 그는 바로 조타수 로버트 히친스에게 우현 전타를 명령하고
(그런데 2010년쯤에 2등 항해서 찰스 라이톨러의 손녀(소설가)의 말에 따르면
갑작스러운 상황에 당황한 조타수가 하필이면 실수로 키를 그대로 오른쪽으로 돌리고 말았다고 함)
당시에는 오른쪽으로 돌려면 왼쪽으로 돌려야 했으므로 명백한 삽질
물론 잠깐 후에 자신의 실수를 깨닫고 제대로 왼쪽으로 돌렸지만
결국에는 배가 빙산에 부딪혀 침몰하게 된 원인 중 하나가 되어버리고 말았다고...
텔레모터(원격 조정 장치)를 "전속 후진"로 돌려놓아 엔진 역추진을 시도
그러고 나서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보일러실에 방수 격벽이 닫힐것을 알리는 알람을 울렸음
"속력을 떨어뜨리지 않고 있으면 빙산과의 충돌은 회피할 수 있었다."라는 설도 있지만, 어디까지나 결과론일 뿐
실제로 충돌시에 상당한 속력이라 키와의 상관은 없었던 것 같음
뱃머리 부분은 회피했지만 배 우현은 빙산 쪽으로 서서히 접근해 결국에는 충돌하게 됨
아랫쪽 승객들은 큰 충격을 느끼고 잠에서 깨어났음. 윗쪽 승객들은 약간의 흔들림을 느꼈으나
잠에서 깨어날 정도는 아니였다고. 하지만 몇몇은 흔들림을 느끼고 깨어남
하지만 6번과 5번 보일러실에서는 사정이 달랐음. 물이 폭포처럼 쏟아져 내리고 있었던것
화부들은 물을 피해 도망. 1등 항해사 윌리엄 머독은 방수 격벽의 스위치를 내렸음
조타실과 망루에서는 빙산의 피해가 그렇게 크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음
충격을 느끼고 올라온 사람들이나 갑판 위에 있었던 승객들은 오히려 즐거운 분위기
3등실 승객들은 올라나와 얼음조각으로 축구(...)를 했으며,
1등실도 다른건 아닌지라 어떤 사람들은 기념으로 위스키에 쓸 얼음으로 가져갔다고..
하지만 우현에는 수면 아래로 약 90미터에 걸쳐서 손상이 생김
(배와 빙산은 최대한 10초간 정도 밖에 접촉하고 있지 않았던 것이고 선체의 흠집은 겨우 수 인치 정도로,
손상폭을 합계해도 1m란 것이 후에 해저 탐사에서 밝혀짐.)
이 과정에서 5구획에 걸쳐서 엄청난 해수가 배 안으로 들어옴
4번째 방수구역까지만 물이 들어왔으면 타이타닉호가 침몰하지 않고
버틸 수 있었겠지만 5번째 방수구역에 물이 차면 그 한계를 넘은 것
애초에 격벽이 윗 갑판과 연결된 구조라, 해수는 격벽을 넘어서 차례차례로 다른 구역으로 흘러 들어감
뱃머리에 실린 물로 배는 서서히 앞으로 기울고, 뱃머리가 해수면 아래로 점점 들어갔음
게다가 횡단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던 화이트 스타 라인 사의 회장이자 배의 이사 브루스 이스메이가
그대로 전진할 것을 지시하고 선원들은 이를 그대로 따르는 병크를 저질렀기 때문에 침몰이 가중됨
바로 멈췄다면 침몰 시간이 줄어들었을지도 모름
침몰에 이를 정도의 손상을 받은 원인으로 "정면이 아닌 측면에 빙산이 충돌해 피해가 가중되었다."라고 하는 설도 있음
만약 타이타닉 호가 빙산에 정면에서 충돌했으면 침수한 방수 구획은
일부의 좁은 범위(타이타닉 호의 방수 구역 내)에 머무르는 것으로 끝나고,
침몰을 면할 가능성도 있음. 결과적으로는 충돌을 회피하려고,
키를 돌려 어중간하게 방향을 바꾸었던 것이 피해를 가중시킴
당시의 낮은 제강 기술로 인해 당시 최고급 강철판을 사용했던 선체의 강철에 불순물인 황과 인이 많이 섞여 있었는데,
많은 인 성분은 균열을 만들고, 황은 이러한 균열을 더 확산시키고,
낮은 망간 비율은 강철의 탄력성을 낮추어 메진 성질을 더 크게 함
참고로 현대의 질 좋은 강철은 망간과 황의 비율이 200:1이지만,
타이타닉 호의 선체에 사용된 고급 강철은 겨우 6.8:1 수준
황과 인은 각각 4배, 2배 더 많았다는 게 밝혀졌음
게다가 선체를 접합하는 데 사용했던 이음못(리벳)이 생각보다 훨씬 더 약했다는 것도 문제
타이타닉 호의 잔해에서 채취한 이음못 48개를 분석한 결과, 이음못에 유리 성분의
슬러그가 높은 비율로 섞여 있었고 이로 인해 이음못이 메진 성질을 가져 쉽게 금이 간 것
사상 최악의 참사에서는 이쪽을 밀고 있는데, 사상 최악의 참사에서의 내용에 따르면 선수 부분은
곡선이다 보니 리벳 머신으로 박을 수 없어서 강철 리벳 대신에
인력으로 때려박을 수 있는 연철 리벳을 사용하였다고 함
헌데 테스트용으로 만든 연철 리벳은 10,000psi의 압력을 견딜 수 없었고
(타이타닉이 충돌할 당시의 충격에 의한 압력은 14,000psi로 추정하였음)
실제 타이타닉의 선수 부분의 리벳은 테스트용보다 훨씬 약한 수준이었고 그 때문에
충격으로 리벳이 박살나면서 생겨난 틈으로 침수가 되었다고 함
타이타닉 선장 스미스는 해수의 배수를 시도하려고 했지만
그로 그럴게 균열이 너무 컸으므로 배수속도보다 물 들어오는 속도가 빠르니 당연한 결과
4월 15일 0시 15분 조난 신호 CQD를 발신, 인근 선박에 구조를 요청
불과 20km 정도의 거리에 정박중인 화물선 캘리포니안 호가 있었지만
1명 밖에 없는 통신사가 취침중이라 연락을 받지 못함
대략 90km 떨어져 있던 여객선 카르파티아 호가 응답해 전속으로 구조로 향했지만
배의 최대 속도가 17노트(약 34km)밖에 안 되는 카르파티아 호가 현장에 도착한 시간은 오전 4시.....
스미스 선장은 탈출 명령을 내림. 우선 모든 승객들과 선원들에게 구명조끼를 나누어주기 시작했으며
좌현에서는 2등 항해사 찰스 라이톨러가, 우현에서는 1등 항해사 윌리엄 머독이 구명보트를 하선하기 시작했음
처음에는 승객 대부분은 배가 침몰한다는 것을 믿지 못하고 구명보트에 탈 생각조차 안했는데,
나무로 만든 조그만한 보트보다는 차라리 260미터의 강철로 만들어진 여객선이 훨씬 안전해 보이는 건 어쩌면 당연할 듯
게다가 날씨 때문에 귀찮아했던 사람들도 매우 많았다고..
배에서 가장 부자였던 존 제이콥 아스터도 아내에게 "여기가 저 조그만한 보트보다 안전해"라고 말했다고 함
2등 항해사 라이톨러는 선장에게 여자와 어린이를 먼저 태울 것을 건의하고, 선장은 승인
1등 항해사 머독은 더 이상 여성과 아이들이 보이지 않으면
남자를 태우는 것을 허용하는 등 비교적 남성에게도 관대한 대응을 했지만,
2등 항해사 라이톨러는 "여자와 어린이 먼저"를 "여자와 어린이만"으로 받아들여
혼란을 막기 위해 여성과 어린이 우선의 관습을 철저히 실시
타이타닉호가 참사가 된 원인 중 하나는 구명보트의 부족 때문이었는데,
당시의 영국 상무성의 규정을 보면 여객선은 여객 정원만큼 구명보트를 갖출 필요가 없었음
당시 규정에서는 978명, 그나마도 배의 배수톤수 기준
또한, 미관, 비용 등의 이유로 인해 화이트 스타 라인사는 최종적으로 타이타닉 호에
1,178명 정도가 탈 수 있는 보트만 준비하는 실수를 저질렀지만 그나마도 제대로 채워지지 않았음
맨 처음 구명보트를 하선할 때에는 많은 승객들이 탈 수 있어도 타지 않음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유언비어가 승무원 사이에 떠돔
정원 65인승의 보트에 70명을 태우는 실험을 했는데 배는 뜰 수 있었지만 추진과 균형 잡기가 불안정하다는 것
배에 타고 있던 배의 건축가를 포함해 관련자들은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어찌할 도리가 없었음
또한 급작스런 사고에 당황한 승무원들은 정원을 다 채우지 못하고 황급히 구명보트를 하선
게다가 그 누구도 배가 침몰할 거라고 생각을 못했기에 갑작스런 상황에 선원들도 정원이 얼마인지 헛갈렸고,
사전에 계획되어 있던 안전 교육도 (아마도) 예배 때문에 취소되어 전혀 하지 않았음
정원을 초과해도 모자를 판에 많은 보트들이 정원을 채우지 않은 채로 바다에 내려짐...
만약 정원이 완전히 채워졌다면 반이라도 살 수 있었을 것...
한편, 배 밑 보일러실에서는 화부들과 기관사들이 물이 보일러에 접촉해 폭발하는 것을 막기 위해
증기와 해수를 배출하며 고군분투하고 있었음. 기관실에는 기관사들이 계속해서 동력을 공급
배수를 시작하고 얼마 후 5번 보일러실에서 첫번째 사망자들이 발생
(이건 밑에도 있는 항해중에 있었던 의문의 화재때문에 격벽이 약해져서라는 이야기도 있다.)
화부 대장이었던 프레드릭 바렛은 가까스로 살아남았음.
또 한편 우편 직원들은 침수하는 우편물 저장고에서 우편물을 물에서 구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것이 마지막으로 목격
그리고 하갑판에 남아있던 몇몇 승객들과 승무원들은 물이 복도 구석구석에 밀려오기 시작하는 것을 목격
12시 45분쯤 구명보트 7호가 28명을 태우고(정원은 65명인데...) 처음으로 내려짐
곧 이어 55분에 좌현에서 구명보트 6호가 7호와 마찬가지로 28명을 태우고 내려짐
(여기에 타고 있던 사람들 중에는 빙산에 부딪히고 있었을때 조타 당직자였던 조타수 로버트 히친스,
빙산을 처음 목격했던 견시 프레드릭 플리트,
그리고 훗날 "Unsinkable"이라는 별명을 갖게 된 마가렛 몰리 브라운도 있었음)
구명보트는 좌현과 우현 양쪽에서 하나둘씩 내려지기 시작
허나 앞서 말했듯이 대부분 정원을 제대로 채우지 않고 내려짐
구명보트 5호는 41명이 탔고, 3호는 32명이, 8호는 39명이 탔고, 1호는 겨우 12명(정원 40명)밖에 타고 있지 않았음
혼란이 점점 가속화되기 시작했고, 그에 따라 사고도 약간씩 일어나기 시작
어떤 여성은 구명보트 10호와 배 사이에 떨어져 끼었다가 구조되었음
어떤 승객들은 구명보트에 타기 위해 줄을 타거나 뛰어들기도 하였다고..
물론 이 와중에 부상자들도 생겨남. 이제 승객들도 상황의 심각함을 어느정도 눈치채기 시작
한편 무선사 잭 필립스와 해롤드 브리드는 계속해서 모스 신호를 보내고, 하늘에는 계속해서 로켓이 발사
캘리포니안 호에서도 이것이 조그만하게 보였지만, 대수롭게 여기지 않았음
정체불명의 선박이 목격되었지만, 알아보지 못하고 수평선 너머로 사라짐
선박은 후에 포경선으로 밝혀졌으며, 해양경비대로 착각하고 도망갔다고 함
상황이 지속되고 배가 서서히 기울어짐에 따라 혼란이 훨씬 더 가중됨
이제 대다수의 승객들이 상황이 생각보다 훨씬 심각함을 깨닫고, 공황에 빠짐
아직도 최악의 상황까지는 가지 않을 거라고 희망을 거는 사람들도 약간씩 있었음
한편, 3등실에서는 일부 승무원들이 승객들이 구역 밖으로 나가는 것을 막았고
많은 구역에 철창이 쳐져있었기 때문에 3등실 승객들이 탈출에 지장을 겪었음
또한 3등실에는 영어를 잘 모르는 승객들도 꽤 많았음
이렇게 배 안에 갇히게 된 승객들은 이리저리 헤매며 어떻게든 갑판으로 올라오거나,
모여서 지시를 기다리거나, 식당이나 숙소에 남아 기도하고 있었음
물론 후에 지시가 내려지고 대부분 어떻게 해서든 빠져나갔지만 이미 대부분의 구명보트가 떠나간 상태
3등실 승객들의 사망률이 높은 건 이때문....
1시 30분쯤에는 배의 앞머리가 잠기기 시작하고, 혼란은 계속해서 가중
구명보트도 이제 정원에 어느정도 맞추기 시작.구명보트 11호는 정원을 다섯명 초과해서 내려졌고,
13호도 마찬가지로 비슷한 문제를 가까스로 피했으나, 밧줄에 문제가 생겨
옆에서 함께 내려지던 15호 바로 위에 내려져 깔리기 일보직전까지 되고 맘
다행히도 구명보트에 타고있던 프레드릭 바렛을 포함한 선원들이 아슬아슬하게 밧줄을 잘라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음
구명보트 14호가 내려지려 하자, 공황에 빠진 승객들이 필사적으로 타기 위해 우르르 몰려옴
이에 14호를 맡은 5등 항해사 로우는 혼란을 저지하기 위에 허공에 대고 총을 쏨
5분 후에는 구명보트 16호가 내려졌는데, 여기 타고 있었던 사람들 중
간호사였던 바이올렛 제솝은 후에 자매선 브리타닉이 침몰했을때도 살아남았음
구명보트가 하나둘씩 내려짐에 따라 이제 후미로 몰려가는 사람들도 많아짐
접이식 보트 C가 1시 40분에 내려지기 직전 두 사람이 몰래 탔는데, 한명은 가족을 구명보트에 미리 태운 승객이었고,
나머지 한명은 화이트 라인 사의 회장이자 배의 선주 브루스 이스메이
그는 이때문에 돌아와서 욕을 꽤 먹었으며 책임을 지고 회사에서도 사퇴함
1시 45분에는 구명보트 2호가 내려졌음.
이때 몇몇 외국인들이 타려 했지만, 2등 항해사 라이톨러가 권총으로 위협해 쫓아냄
존 제이콥 애스터는 어린 아내를 태우고 아직도 빈 공간(40명 중에 25명이 타고있었음)이
많은 것을 보고타도 되냐고 물었으나, 라이톨러에 의해 거절당함
마지막 구명보트(선교 위에 비상용으로 있었던 접이식 보트 2개는 제외)는 접이식 보트 D로, 2시 5분에 내려졌음
이 와중에 배에 남기로 한 사람들도 있었음. 뉴욕에서 유명한 메이시 백화점을 소유하고 있는스트라우스 내외는
금슬좋은 노부부였는데, 남편인 이사도라 스트라우스가 구명보트 승선을 거절하자
그의 부인도 선원의 구명보트 승선 제안을 거절하고
하녀 엘렌에게 자신의 모피 코트를 건네주고 자기 대신 구명보트에 태운 뒤 배에 남아 남편과 함께 죽음
철강업자 벤자민 구겐하임은 "백만장자인 철강업자 벤자민 구겐하임 현지처와 하인을 보트에 태우고
선원의 구명조끼를 거절하고 턱시도로 갈아입은 뒤, 자신을 따르는 하인과 함께
"우리는 가장 어울리는 복장을 입고 신사답게 갈 것이다"고 하며
마지막까지 시가와 브랜디를 즐기며 배와 함께 최후를 맞이함
2시 5분, 접이식 구명보트 2개를 제외한 마지막 구명 보트인 접이식 보트 D가 떠났음
선장은 남은 선원들에게 모두 제 살길을 찾으라고 했으며 배를 포기하겠다고 선포
남은 사람들은 신분을 가리지 않고 살기위해 발악하는 수밖에 없었음
배에 남은 사람들은 접이식 보트 2개를 기다리거나, 바다로 뛰어들거나, 선미로 달려나감
배가 기울며 프로펠러가 그 모습을 완전히 드러내기 시작
2시 10분에는 바닷물이 최상층인 보트 갑판까지 다다름
그때쯤 체육관 바깥쪽 휴식터에서 월리스 하틀리가 지휘를 맡은 악단이 구슬픈 찬송가를 마지막으로 연주하기 시작
(어떤 곡이 연주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 유력한 곡은 Nearer, My God, to Thee와 Autoume).
선장은 확성기를 쥔 채로 선교에 들어가 그대로 그곳에 남았다고 하며
배의 설계자 토마스 앤드류스는 흡연실에서 구명조끼를 벗은 채 그림을 응시하는 모습이 마지막으로 목격되었다고 함
2시 15분에서 17분사이에는 배가 보트 갑판을 본격적으로 삼키기 시작
배가 전과는 비교할 수도 없을 정도로 빠르게 가라앉기 시작
통신사 잭 필립스와 조수 해럴드 브리드는 더 이상은 무리라는 것을 깨닫고
마지막 구조 신호를 보낸 후 침수되는 통신실에서 빠져나왔음
남은 접이식 구명보트 두 척은 파도갑판 위를 떠다녔는데 접이식 보트 B는 뒤집힌
상태에서 여러명이 메달려 있었고, 접이식 보트 A는 뜨긴 했으나 물이 반쯤 찼음
이때 몇몇 사람들(아치발드 그레이시, 2등 항해사 라이톨러, 잭 테일러 등)이 환기구 때문에 빨려들어갔지만,
다시 보일러실에서 발생한 뜨거운 공기가 올라오면서 물속으로 빠져나와 뒤집어진 구명보트에 도달할 수 있었음
그러던 중 굴뚝 1이 선교루 쪽으로 쓰러지면서 (아마도 존 제이콥 애스터를 포함한) 몇몇 사람들을 덮쳐버렸고,
그 여파로 생긴 파도가 접이식 보트에 타고 있던 사람들을 쓸어내림
잠시 후 중앙계단의 유리 돔과 창문이 파도에 의해 깨져 물이 쏟아져 내렸음
그리고 배가 급속도로 기울면서 가라앉기 시작하자 온갖 종류의
배 내부 물체들(가구, 그릇, 보일러 엔진 등)이 떨어지면서 생기는 굉음이 발생했고 이는 배의 침몰을 가속시킴.
배가 더 기울어지자 잡을 것을 찾지 못한 많은 사람들 또한 균형을 잡지 못하고 넘어지거나 갑판을 타고 미끄지게 됨
2시 18분, 물체들이 떨어지면서 생기는 굉음이 더 커짐.
그러던 중 보일러실이 침수하면서 잠깐 깜박거리다가 완전히 정전되었음
잠시 후, 바닷물의 무게를 견디지 못한 선체는 3번째와 4번째 굴뚝(환기구) 사이의 신축 이음을 중심으로
금이 가면서 굉음과 함께 두 동강으로 쪼개짐. 동시에 굴뚝 3과 환기구인 4가 부러졌음
영화에서는 엄청 스펙타클하게 묘사됐지만, 사실 이걸 본 사람은 소수인데다가(폭발은 약간 보였다고 한다.)
그나마 생존자 중 가장 등급이 높은 항해사인 2등 항해사 라이톨러가 회사가 망해
동료들과 부하들이 일자리를 잃고 흩어지는 것을 염려해서인지 제대로 보지 못해서인지
"절대 동강나지 않았다"고 말했기 때문에 영국 상무성은 "동강나지 않고 침몰"이라고 결정내렸음
1985년 로버트 발라드에 의해서 비로소 진실이 밝혀지지만, 바다 속에서는 3개로 갈라져 있었음
이윽고 뱃머리 부분은 잠기고 배 뒤쪽은 바다로 다시 일직선이 되었으나, 곧바로 다시 기울어 점차 수직에 가까워졌음
마침내 운명의 시각 2시 20분, 배와 해수면 사이의 내부 압력이 같아지자
타이타닉호는 물을 뿜어내며 수직으로 서서 서서히 물속으로 들어가다가 완전히 침몰함
이때 구명보트들은 빨려들어갈 것을 염려하여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선미는 꽤 느리게 침몰했고 빨아들이는 것 같은건 없었다고 함
(후술하듯이 배 조리장 찰스 조그힌은 머리도 젖지 않았다.)
배에 남아 있던 1500여명의 사람들은 차가운 북대서양 한복판에 버려졌음
배가 침몰한 곳에서 울려퍼지는 온갖 비명과 아우성이 구명보트 안에 타고 있던 사람들에게 트라우마를 주었음..
가장 적은 탑승수인 12명을 태운 1번 보트에 탑승한 화부 헨더릭슨은 현장에 돌아가자고 요구했으나
, 더프-고든 부부와 배를 맡은 선원 시몬스가 반대했고, 나머지는 말이 없었으며 결국 무산
5번 보트의 3등 항해사 허버트 피트만 또한 현장에 돌아가려 했으나 몇몇 사람들이 이에 반대해서 무산
6번 보트에서는 마가렛 몰리 브라운 또한 현장에 돌아가서 사람들을 구하자고 요구했고
사람들도 이에 동의했으나 배를 맡은 조타수 로버트 히친스는 사람들이 배를 끌어당길 것이라며 거절
한편 현장에서 비교적 가까이 있었던 (약 50m) 4번 구명보트에서는 완전히 침몰 전 헤엄쳐온 3명이,
침몰 후에는 5명이 헤엄쳐와 구조되었고 (1명 사망) 접이식 보트 D에서는 마지막 순간에 헤엄쳐온 한명을 구조한 상태
현장에 바로 있었던 뒤집어진 접이식 보트 B에서는 30명이 넘는 사람들
(2등 항해사 찰스 라이톨러, 아치발드 그레이시, 잭 테일러 등)이
메달리고 있었는데, 주위에 너무 많은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에 어쩔수 없이 현장에서 노를 저으며 느리게 벗어나야 했음
이 중 구출되지 않은 한 남성은 "알겠소. 행운을 빌고 하느님의 축복이 있길 빌지요"라고 했다고 함
사람들의 비명소리는 사람들이 죽어가면서 점점 줄어들면서 흐려지기 시작
결국 14번 보트의 5등 항해사 해롤드 로우가 구명 보트들을 재편성한 뒤 지원자는 남기고(선원 7명, 승객 1명)
다른 사람들을 다른 구명보트로 옮겨 구조에 나섰으나, 영하 2도의 차가운 바다에 있던 사람들은
저체온증으로 대부분이 30분 안에 죽었고 4명만이 그곳에서 살아남았음
(여담으로 첫번째로 구조된 사람은 중국인이었다. 5등 항해사 로우는 구해주자는 의견에 이 사람이 대충 죽은줄 알고,
"저런 구해서 뭐하게?"식으로 말하다가 말이 심한걸 알았는지 금방 마음을 바꾸고
구명보트를 돌려 구해줬고 이 사람은 열심히 노를 저었음. 본인도 구명보트 위에서 괜한 소리를 했다고 인정했다고)
저체온증 이전에 심장마비로 몇 분 이내에 사망했다고 하는 의견도 있음
사망자 중에는 갓난아기를 안은 여성도 있었다고 함....
한편 배가 침몰될때 제대로 내려지지 못하고 파도 위를 떠다니던 접이식 보트
A와 B에 타고 있던 사람들은 거의 지옥같은 경험을 겪고 있었음
뒤집어진 접이식 보트 B는 보트 안에 있는 공기가 불안정해지고 파도까지 일어서
모두가 서서 구명보트의 균형을 맞춰야 했고 몇명은 이 전에 얼어죽거나 이 과정에서 힘이 빠져 물에 빠져 죽었음
물이 찬 접이식 보트 A에서는 반이 얼어죽음. 이 두 접이식 보트에 남은 생존자들도 다른 구명보트에게 구조됨
이때 바닷물에 있었던 사람 중 가장 오래 버틴 사람은 조리장인 찰스 조그힌이었는데,
뒤집어진 접이식 보트 B에 매달렸다가 자리가 다 찼다며 거절당했지만,
위에서 누군가가 먼저 죽어서 자리가 남자 끌어올려져 살아남았음
그렇게 오래 버티며 살아남은 이유는 침몰 중 술을 잔뜩 마셨기 때문무려 세 시간을 버티고 있었다고 함
선미 끝에 매달려 있다가 배가 완전히 침몰함과 동시에 그냥 물 위로 떠올랐는데, 머리가 물에 들어가지 않았다고(...)
몰한 뒤 약 1시간 30분 후인 새벽 3시 55분에 신호를 받고 도착한 카르파시아 호(선장 아서 로스톤)는
약 4시간 30분 동안에 20개의 구명보트에 타고 있는 생존자들을 구조함(5명은 구명보트에서 죽음)
배는 생존자들을 위해 따뜻한 커피, 담요, 의료 서비스를 곳곳에 제공
8시 30분에 마지막 생존자를 구조한 후, 속도를 줄이고 현장으로 돌아가 다른 생존자들을 찾았으나,
시신들은 파도에 쓸려가서 거의 보이질 않았고 흩어진 잔해들과 시신 1구밖에 보이질 않았으며,
이때까지 물 속에 살아있을 사람이 있을 리 없었음
결국 더 이상의 수색은 포기하고 뒤늦게 사고 해역에 도착한 캘리포니안 호에게
생존자를 더 찾아달라고 한 뒤에, 3일 후 뉴욕에 도착했음
타이타닉 호의 생존자와 사망자 비율
분류 탑승자 생존률 사망률 생존자 사망자 1등실, 어린이 6 83% 17% 5 1 2등실, 어린이 24 100% 0% 24 0 3등실, 어린이 79 34% 66% 27 52 1등실, 여성 144 97% 3% 140 4 2등실, 여성 93 86% 14% 80 13 3등실, 여성 165 46% 54% 76 89 1등실, 남성 175 33% 67% 57 118 2등실, 남성 168 8% 92% 14 154 3등실, 남성 462 16% 84% 75 387 승무원, 여성 23 87% 13% 20 3 승무원, 남성 885 22% 78% 192 693 어린이 총합 109 51% 49% 56 53 여성 총합 425 74% 26% 316 109 남성 총합 1690 20% 80% 338 1352 전체 총합 2224 32% 68% 710 1514
여자와 아이들 먼저 규칙에 의해 남자들은 생존률이 여성과 아이들보다 훨씬 낮음
3등실의 사망률이 월등하게 높음. 이때문에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예시가 되기도 하는데
물론 일부 승무원들이 3등실 승객들을 제한하기는 했었지만 일단 3등실 선실이 구명보트에서
가장 떨어져 있는 구조이기도 하고...어쨌든 승무원들의 잘못만은 아님
그러나 1등실이라고 마냥 다 살아난것은 아님
1등실에서는 헬렌 알리슨이라는 당시 2살짜리 여자아기가 구조되지 못했는데
(구조되지 못한 이유가 엄마를 찾아서라고...)
이는 1등실과 2등실에서 구조되지 못한 유일한 어린이였음
그녀의 오빠인 당시 11살의 허드슨 알리슨은 구조되었음
2등실에서 어린이 구조율은 100%. 반면 3등실에서 구조되지 못한 어린이는 거의 절반에 가까웠음
사망 원인의 대다수는 영하 2도의 수온으로 인한 저체온증
물 속에서는 공기 중보다 체온 저하 속도가 훨씬 더 빠르며, 영상 20도의 해수에서도 저체온증으로 사망할 수 있음
사고가 발생한 북대서양 바다는 여객선이 통행하는 바다 가운데 가장 수온이 낮은 바다로,
영하의 바닷물에서는 10분 내외로 목숨을 잃음
남성과 2등실, 3등실 승객의 사망비율이 상대적으로 높았는데, 2등실 남성 승객 중 92퍼센트가 사망함
타이타닉 사건의 생존자들 중 현재까지 살아있는 사람은 없음
마지막 생존자는 밀리비나 딘(Millivina Dean) 여사로 타이타닉의 최연소 승객이기도 함
침몰 당시 9주밖에 안 된 아기. 그녀는 2009년 5월 31일 세상을 떠났으며, 사우햄프턴에 거주했다고 함
(그녀와 그녀의 어머니, 오빠는 아버지의 침착한 대처로 살아남을 수 있었지만 아버지는 끝내 배에서 빠져나오지 못했음
노년에는 경제적 어려움에 시달리며 타이타닉 침몰 당시 갖고있었던 가족의 유품을 경매에 내놓기도 했음
97년판 영화의 제작진들과 타이타닉 탐사협회가 생활비를 지원해준 적도 있음)
여담으로 타이타닉의 생존자 중에는 자매함인 올림픽에 승무원으로 탑승했었고
이후에 브리타닉에도 탑승하게 되는 간호사
바이올렛 제솝(Violet Jessop)도 있었는데, 올림픽에서는 영국 군함 HMS 호크와 충돌하는 사고를 겪었고,
브리타닉이 침몰할 때도 물에 빠졌다가 간신히 구조되었음.
이런 불운에도 불구하고 건강히 살다가 83세로 1971년에 사망함
타이타닉 탑승자 중에는 동양인도 있었음. 중국인 8명
(10명이라는 기록도 있다. 앞서 언급되었듯 타이타닉 탑승자에 관한 기록은 자료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다.)과,
'호소노 마사부미'라는 이름의 일본인 공무원 1명이 있었는데
중국인 6명과 일본인 1명이 구조되어 생존률은 꽤 높았던 편
여담으로 이 일본인은 '여자와 아이를 우선으로 구한다'라는 원칙을 무시하고
구차하게 보트에 탑승하려 했다고 해서 귀국하고도 갖은 욕을 먹었고, 다니던 직장에서도 해고되어 불운하게 죽었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그가 탑승한 보트 근처에 더 이상 여자와 어린이가 없어서 탑승한 것이었다는 것이 밝혀졌다고 함
참사의 원인을 요약하자면 이와 같음
* 빙산 경고 메세지가 선장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않아 항로를 바꾸지 못했음. 게다가 배는 당시 전속력으로 가는 중
* 망원경 열쇠도 항구에 두고 왔고, 달빛도 없었는 데다가 파도까지 잔잔해서
견시 당직자들이 맨눈으로 식별하기 매우 어려웠음
게다가 빙산의 대부분은 바다 밑에 있기 때문에 알아냈을 때는 늦음
* 조타수가 갑작스러운 상황에 잠깐동안 우현 전타와 좌현 전타를 헷갈려했음
* 리벳 또한 불량 게다가 충돌 사실을 인지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전진하는 실수를 저질름
그나마 가장 가까웠던 배인 캘리포니안 호의 유일한 전파사는 타이타닉호의
전파사에게 일침을 들은 후 침몰 당시 자고 있었음
* 3등객 승객들이 탈출에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었음.
일단 후에는 대부분 나오긴 했지만 이미 많은 구명보트가 떠난 상태
* 구명보트의 정원이 탑승객들의 절반 밖에 안됨
정원을 초과해도 모자를 판에 많은 수의 구명보트가 꽉 채우지 않은 상태로 보내짐
그야말로 악조건의 연속
며칠 후, 시신 인수를 위해 맥케니 베넷 호를 포함한 몇몇 배들이 보내졌음
총 328구의 시신이 바다에서 인수되었는데, 그중 119구의 신원 확인이 불가능하거나 연고자가 없는 시신,
그리고 선원들의 시신(바다에서 죽은 선원은 자신의 고향인 바다에 묻힌다는 전통에 따라)은
영국에서 바다에 장사지냈음
그런데 시체를 넣을 공간이 모잘랐기 때문에,
선원들과 3등실 승객들까지 바다에 장사지내지기도 했음
건진 시신들은 핼리팩스에 묻음
최신 과학기술로 만든 타이타닉호의 침몰은 문명의 진보에 낙관적인 희망을 갖고 있던 당시의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음
물론 이 낙관은 2년 후 발생한 제1차 세계대전에 의해 확실하게 확인사살 됨
타이타닉호의 희생자 수에 대해서는 다양한 설이 있지만 영국 상무성의 조사에 따르면
1,513명에 달해, 현재까지도 "세계 최대의 해난사고". 생존자는 711명에 불과
이 사고를 계기로 선박의 안전성 확보를 국제 조약의 형태로 규정하려는
움직임이 일어나 1914년 13개 주요 해운국 회의에서
"해상에서 인명의 안전을 위한 국제 조약(International Convention for the Safety of Life at Sea, 통칭 SOLAS)"
을 채택하기에 이름
당시 선박에 적용되는 안전규정이 얼마나 엉터리였냐면 지금까지도 해상법에 있어 가장 공신력을 인정받고 있는
영국법에서도 구명보트의 설치 기준은 선박의 정원이 아닌 배수톤수에 맞춰져 있었을 정도
화물선은 몰라도 여객선에서는 구명보트가 부족할 수 밖에 없었던 것
또, 미국에서는 일정 규모 이상의 선박에 무선 통신 장비가 의무화, 무선 통신이 널리 보급되는 계기가 됨
긴급 상황을 의미하는 통신용어 메이데이(mayday)가 이때 등장한 표현
"구해 달라"는 의미의 프랑스어인 'venez m'aider'에서 뒷부분만을 몬데그린 현상이 일어나면서 생긴 단어
또 하나의 같은 의미인 통신부호 SOS도 타이타닉에서 유래됐다 하는데 실은 떡밥
하지만 타이타닉호가 최초로 SOS를 쓴 선박 중 하나인 건 맞음 항
참고로 타이타닉은 영국의 로이드 보험사에 손해보험을 들었는데,
배가 침몰하면서 로이드는 보험금으로 140만 파운드를 지급했음
원화로 환산하면 25억원 정도인데, 1912년 당시 화폐가치를 적용하면 그야말로 어마어마한 금액이 지급된 것
어마어마한 보험금 때문에 타이타닉 침몰 사고가 보험사기라는 음모론이 나오기도 함
1985년 미국 심해탐험가 로버트 발라드(Robert Ballad)는 뉴펀들랜드 680킬로미터 지점에서
최초로 타이타닉호 잔해를 심해카메라로 촬영했으며,
미국과 영국 학자들의 노력으로 심해 잠수정을 이용한 선체 파편 인양 작업이 성사되었음
수심 약 4000미터에서 발견된 두 동강난 선체는 각각 600미터 떨어져 있었으며,
약 20% 정도가 침몰 과정과 그 후의 과정에서 유실됨
배의 앞쪽 부분은 비교적 그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으나, 뒷쪽 부분은 선체가 여기저기 찢어져 있어서
훼손이 심했으며, 잔해들이 이리저리 흩어져 있었음
배의 모든 기둥은 침몰 과정에서 유실되었고, 망루는 선교루를 향해 쓰러져 있었음
신기하게도 옷은 발견되었으나 유해는 한구도 발견되지 않았는데,
아마 조류로 인해 흩어졌거나 바닷물의 유기물에 녹아 없어진 듯 하였음
처음에는 모두 다 기뻐했지만 누군가 시계를 보고서
"그러고 보니까 침몰했던 시각 20분 전인데" 라고 하자 분위기가 싹 바뀌어 하나같이 침묵했다고 함..
발라드는 배를 발견하고 한동안은 그 사실을 언론에 알리지 않았으며,
참사에서 죽은 사람들을 기리기 위해 추모비를 세웠음
또 배에서 단 한개의 유물도 건지지 않았음
사실 타이타닉을 찾기 위해서는 미군의 원조가 필요했었는데 당시 관련자들은 미군의 원조를 얻기 위해
미군이 조건으로 내건 1960년대 바다에서 감쪽같이 증발한 두 척의 핵잠수함을 찾아내야만 했음
결국 찾아냈고 짧은 시일이나마 미군의 원조를 받아 타이타닉의 잔해를 찾아낸 것.
NGC에서 관련 다큐를 방영해준 적도 있음
1993년 9월에는 미국 조선 전문가 윌리엄 가츠케(William Gartzke)가 당시 기록을 근거로
타이타닉 호 침몰 참사를 미리 막을 수 있었던 인재(人災)로 해석하는 연구결과를 발표했음
당시 생존자들은 배가 빙하와 충돌하는 순간 엄청나게 크게 부서지는 소리가 들렸고 순식간에
가라앉았다고 증언했는데, 그 소리는 저급 강철판이 만들어낸 대재앙의 신호였다는 것
윌리엄은 건져올린 선체 파편을 연구한 결과 충돌시 휘지 않고
부서지는 질이 낮은 강철판을 사용한 것으로 판명되었으며,
고급 강철판을 사용했다면 침몰을 막았거나 침몰시간이 지연되어 인명피해를 줄일 수 있었을 것이라고 주장했음
그러나 사실 타이타닉은 당시 사용되던 최고급 강철판을 사용했음
그러나 당시 제조기술이 너무 낮아 최고급 강철판 역시 황의 함유량이 너무 많았고
덕분에 낮은 온도에선 휘어지기보단 부셔저버리게 된 것
승객들을 구하거나 품위있게 죽은 영웅들도 있었음. 이들 중 일부는 영화 타이타닉에도 등장함
* 에드워드 존 스미스 선장은 구명보트에 탈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승객들을 지도하다가 끝까지 배에 남아 죽었음.
참고로 스미스 선장은 낮은 계층 출신이었으나 그 기품과 카리스마 덕분에
화이트 스타 라인의 고객 중에도 오로지 스미스 선장의 배만을 타는 사람도 많았다고 함.
그는 원래 1911년에 은퇴할 예정이었지만 회사측의 설득으로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출항하기로 한 것이 바로 타이타닉호의 첫 항해. 항해사 절반 또한 죽었음
* 배의 설계자인 토머스 앤드루스는 승객들의 구명보트 탑선과
뜰 만한 물건들을 던지는 것을 돕다가 1등실 흡연실에 조용히 들어가서 배와 함께 최후를 맞이했음.
이때 흡연실에 고귀하게 남기로 한 사람은 앤드루스 뿐만이 아니라 다른 (1등실) 승객들도 있었음.
어떤 승객들은 카드 게임을 계속했으며 당대 저명한 언론인이었던 윌리엄 T. 스티드는 조용히 독서를 하고 있었다고.
참고로 윌리엄 스티드는 과거에 헤이그 특사를 도와준 유일한 외국인 이었음. 이들 또한 모두 배와 함께 죽음
* 기관장인 조지프 G. 벨을 포함한 많은 기관사/기관부들과 화부들이 배가 완전히 침몰하기 2분 전,
그러니까 배의 불이 완전히 꺼질 때까지 자리를 계속 지키면서 배의 전기를 작동시키는 작업을 하며
배와 함께 최후를 맞이함. 배의 간부들 중 항해사들과 달리 기관사들은 전원 순직했음
* 월리스 하틀리가 지휘를 맡은 8명의 연주대는 배가 침몰하기 고작 10분 전까지 곡을 연주하고 서로에게 행운을 빈 후 헤어졌으나, 비극적이게도 모두 죽었음. 왈리스 하틀리의 시신은 바이올린이 몸을 묶여진 채로 발견됨
* 토머스 바일스 신부는 구명보트 승선을 거절하고 사람들의 구명보트 승선을 돕고
구명보트를 타지 못하고 죽을 운명만을 기달리는 사람들에게
고해성사를 보고 갑판 위에서 많은 사람들과 함께 미사를 드리다가 죽었음
* 백만장자인 철강업자 벤저민 구겐하임은 자신은 살 수 없음을 직감하고
현지처와 하녀를 보트에 태우고 선원의 구명조끼를 거절하고 턱시도로 갈아입은 뒤,
자신을 따르는 하인과 함께 "우리는 가장 어울리는 복장을 입고 신사답게 갈 것이다"고 하며
마지막까지 시가와 브랜디를 즐기며 배와 함께 최후를 맞함.
그의 딸 페기 구겐하임이 여기서 물려받은 유산으로 콜렉션한 예술작품들이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 설립의 초석이 됨
* 뉴욕에서 유명한 메이시 백화점을 소유하고 있는 노부부 스트라우스 부부는 금슬이 좋은 노부부.
아이다 스트라우스가 구명보트 승선을 거절하자 그의 부인인 아이다 스트라우스도
선원의 구명보트 승선 제안을 거절하고 하녀 엘렌 버드에게 모피 코트를 건네주고
자기 대신 구명보트에 태운 뒤 남편과 함께 죽었음.
영화에서는 물이 들어오는 선실 침대에 둘이 함께 껴안고 누워 있는 장면으로 등장.
참고로 이 때는 아직 배의 운명을 깨닫지 못하고 구명보트에 타기보다
배에 남으려고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을 때였지만,
아이다 스트라우스는 엘렌에게 모피 코트를 건네며 "나에게는 더이상 필요하지 않을 테니까."라고 말했으므로
상황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었던 것이 확실함.
이지도르 스트라우스는 죽기 전에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는데,
주변에 있던 지인이 노부부가 함께 승선하는 것에 대해서는 별다른 말을 하지 않을 것이기에
함께 승선하라고 권유했지만 이시도르는 "나는 다른 이가 누리지 못하는 특권을 누리고 싶지 않네"
라고 말하며 승선을 거부하였음
* 두명의 무선사들도 선장이 이만 물러나가도 좋다고
한 후에도 끝까지 남아 전파를 보냈음. 이 중 해럴드 브리드는 살아남았지만 잭 필립스는 죽음
* 남편이 금광을 발견해 하루아침에 떼부자가 된 1등실 승객 마가렛 몰리 브라운은
구명보트에서 가장 앞장서서 노를 저었으며 생존자를 구조하자고 요청했으나
거절당했지만 보트를 맡고 있던 조타수 히친스의 기를 죽여놓았음
* 젊은 로테스 백작부인은 신분에도 불구하고 노를 앞장서 열심히 저었으며,
3등실 승객들에게도 따뜻하게 대해 보트에 타고 있던 승객들과 선원들에게 모범이 되었음
이밖에 수많은 사람들이 배에 끝까지 남아 운명을 함께하거나 구명보트에 탑승해 열심히 생존자들을 도왔음
여담으로 우연인지 운명인지 많은 사람들이 출항하기 전 불길함을 느꼈다고 함
어떤 선원은 자기 아내가 화이트라인사 로고가 새겨진 뜨개질을 하다가 엉켜버렸는데,
이에 아내가 불행한 징조라면서 말려 가지 않았다고 함
수석 항해사 헨리 와일드는 출항 전 가족에게 뭔가 불길하다는 편지를 남겼는데, 이후 배와 함께 죽었음
그리고 침몰 전 배와 한참 떨어진 스코틀랜드에서 병에 걸려 죽어가던 제시라는 여자아이가
꿈에서 큰 배가 침몰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죽어가고 월리라는 사람이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것을 봤다고 함
소녀가 꿈에서 보았던 일은 실제로 일어났고, 월리 하틀리가 이끄는 악단은 끝까지 연주를 계속하다 배와 함께 죽었음
또 출항하던 날 갈매기가 단체로 배를 쫓아왔다고 하던데, 이는 뱃사람들에게 안좋은 징조로 여겨지기도 했음
그리고 앞서 말했듯이 다른 배와 아슬아슬하게 충돌할 뻔한 일도 있었고
항해 와중에 석탄 저장고에 원인불명의 화재가 나기도 했음
또 특이할 만한 것은...타이타닉호 침몰 사고(1912년)가
일어나기 14년 전인 1898년 모건 로버트슨(Morgan Robertson)이란
작가가 쓴 단편 소설 <무용지물(Futility)>이 이 배의 침몰을 예언했다는 사실
로버트슨의 그 소설 내용이 '타이탄'이란 초호화 여객선이 대서양으로
처녀항해에 나섰다가 빙하와 충돌하여 대형 인명 사고를 낸다'는 것이었는데,
이 소설에 나오는 탑승객 숫자와 구명 보트 수, 출발 항구, 사고 원인과 사고 지점,
배의 규모와 사고 시기가 14년 뒤에 실제로 일어난 타이타닉호 사건의 그것과 매우 유사했음
그리고 로버트슨은 '타이탄 침몰'에 관한 소설 뿐 아니라 '비행기가 한 도시를 폭격한다'는 내용의 단편 소설도 썼는데,
그로부터 30년 후인 제 2차 세계 대전 때 진주만 습격 사건이 발생하여
그의 '소설 속 내용이 현실에서 실현되는 일'이 벌어지기도 함
타이타닉 실제 사진


실제 구조사진

구조된 사람들

침몰된 사진

건진 물건들

타이타닉 영화 (1997)
실제 타이타닉 호의 침몰이라는 사건을 배경으로 잭과 로즈라는 연인이 이루는 짧고 비극적인 사랑을 그리
정밀한 고증과 재연으로 타이타닉 호의 침몰을 다루는 다큐멘터리 영화의 측면을 가지면서도,
동시에 가공인물인 잭과 로즈의 러브 스토리를 절묘하게 사이에 끼워넣었음
다큐멘터리와 러브 스토리라는 언듯 전혀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 조합이지만 극적으로는 굉장한 시너지를 일으켰음
일반 관객에게 지루하기 쉬운 다큐멘터리 영화 요소는 극영화 요소와 결합함으로서
흥미진진하게 정보를 전달할 수 있었으며 그냥 그 자체로는 통속적인 이야기로 끝날 수 있는
잭과 로즈의 러브 스토리는 타이타닉의 침몰이라는
장대한 역사적 배경을 안은 덕분에 강렬한 무게감을 가질 수 있었던 것
침몰하는 타이타닉호에서 잭과 로즈가 분노한 칼의 추격을 피해서 도망치는 장면이 대표적인 예시
미국 십대 청소년들, 특히 여학생들이 이례적으로 많이 관람한 할리우드 영화
그만큼 당시 미국 학생들이 진정한 사랑에 굶주린 것이라는 해석이 있었음
흥행은 그야말로 초대박 중의 초대박
미국내 흥행성적 600,788,188 달러/월드와이드 흥행성적 12억 4천 5백만 달러
총합 18억 4천 5백만달러로 10년 넘게 세계 1위 타이틀을 고수하고 있었으며,
그 동안 숱한 블록버스터들이 타이타닉의 아성에 도전했지만 모두 실패로 돌아갔음
지금의 물가를 고려하여 계산한다면 대략 30억 달러의 흥행성적을 낸 셈
공유 크리로 극장 관객수가 급감한 지금은 이룰 수 없는 불멸의 기록이라고 생각되었으나...
아바타가 마침내 그 기록을 깨고 1위로 올라섬
3위의 어벤져스(영화)는 15억 달러에 조금 못 미치는 성적으로 타이타닉과 3억 달러 이상 차이가 남
게다가 어벤져스는 2012년 작품으로 물가 상승과 3D, 아이맥스 상영으로 티켓 값이 타이타닉 개봉 당시보다 훨씬 높음
그래도 이 영화가 달성한 북미 박스오피스 15주 연속 1위의 기록은 누구도 깨지 못하고 있음
주연이었던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를 단숨에 세계 정상급의 배우로 올려놓은 작품
다만 케이트 윈슬렛이 맡은 로즈가 설정상 17세라는 건 좀 지나치게 조숙한 것이 아닐는지
촬영 당시 윈슬렛은 21세라 로즈와 그렇게 차이났던 것은 아니지만,
당시의 윈슬렛 자체가 나이보다 성숙해보였기에 17세역은…
한살 연상이었던 디카프리오보다 훨씬 원숙한 매력을 뽐냈음
여담으로 영화의 명대사인 "나는 세상의 왕이다!"는 대본에 없었는데 만든 애드리브
제임스 카메론 또한 아카데미 수상 소감으로 이 대사를 쳤음
그리고 명장면으로 꼽히는, 잭이 로즈의 누드화를 그리는 장면에서
잭이 로즈에게 "침대...아니 카우치에 누워" 라고 하는 장면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실수인데 카메론이 마음에 들어하여 편집하지 않았다고 함
그리고 작중에서 잭의 그림들은 모두 카메론 본인이 직접 그린 그림들
누드화를 그리는 잭의 손도 디카프리오가 아니라 카메론의 손
여기에 가사를 집어넣어서 엔딩 크레딧 테마로 쓰면 어떻겠냐고
카메론에게 제안했더니 상업적으로 보인다는 이유로 기각했음
그러나 호너는 이에 굴하지 않고 윌 제닝스에게 가사를 의뢰한 후,
토니 브랙스턴, 휘트니 휴스턴, 셀린 디옹 중 하나를 가수로 기용하려고 했음
브랙스턴과 휴스턴은 스케줄이 맞지 않아 셀린 디옹에게 곡이 가게 되었는데,
디옹도 처음에는 부를 생각이 없어서 매니저와 남편이 설득해야 했다고
이후 카메론이 기분 좋은 타이밍을 타서 노래를 들려줘서 이후 오랫동안 사랑받는 영화 주제가가 탄생할 수 있었고
셀린은 원래도 세계적 디바였지만 이 곡으로 인해 확고한 자리매김을 하게 됨
이 곡은 전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곡이고,
우리나라에서도 가장 좋아하는 영화 주제가를 뽑으라면 항상 1위를 다툴 수 있는 곡이기도 함
셀린 디옹 항목에도 나와있지만,
여러모로 사랑받은 곡이고, 특히 리코더로 연주한 영상도 유명함

에드워드 존 스미스(Edward John Smith)
배우 : 버나드 힐(Bernard Hill)
타이타닉호의 선장이며 침몰 때 승객들을 돕다가 선교루에 들어가서 조용히 최후를 맞이함 사실 그의 죽음은 논쟁거리
선장이 어떻게 죽었는지는 말이 많은데 선교에 조용히 서있다가 파도와 함께 사라졌다는 설도 있고
총으로 자살했다는 설도 있고, 뒤집힌 구명보트에 아기를 전해주고 유유히 헤엄쳤다는 설도 있음
스미스 선장은 항해 후 바로 은퇴할 생각이었다고 함(사망)
(이 배우분 반지의 제왕 세오덴 그 분임)

윌리엄 맥마스터 머독(William McMaster Murdoch)
배우 : 이완 스튜어트(Ewan Stewart)
1등 항해사로 영화에서는 침몰시 승객들을 제지하기 위해 총을 쏘다가 죄책감으로 자신도 총으로 자살함
그런데 실제로는 배에 끝까지 남아서 승객들을 살리다가 얼어죽은, 영웅적인 최후를 맞은 인물
그래서 그가 졸업한 학교에는 그를 기리는 공덕비까지 세워져 있으며 고향 마을에선 영웅으로 찬양하고 있었는데
영화를 보고 당연히 분노했으며, 그 덕분에 이 영화가 흥행할 때 국내 뉴스에까지
이 관련 사실이 보도되었고 후손들이 인터뷰로 비난하는 모습까지 나왔음
결국 영화사는 그의 유족과 학교에 사과와 손해배상을 함(소송당한 건 아니고 알아서 보상했다고)
다만 이건 감독이 일부러 역사를 왜곡했다기보다는 자료를 잘못 찾았다고 봐야됨
확실하지는 않지만 실제로 항해사가 자살했다는 증언이 있었음 (사망)

조지프 브루스 이스메이(Joseph Bruce Ismay)
배우 : 조너선 하이드(Jonathan Hyde)
화이트스타라인의 회장이자 배의 선주로 영화에서처럼 몰래 보트에 뛰어내려 탔으며, 이 때문에 죽을 때까지 까임
다만 영화에서처럼 선장에게 배의 속도를 높이라고 압력을 주지는 않았을 가능성이 큼
후에 처벌받지는 않았지만 책임을 지고 회장직을 사퇴한 후 안습한 인생을 살았음
천하의 나쁜놈인지 불쌍한 사람이었는지 평가가 갈리는데, 참사에 직간접적인 책임이 있는 건 사실이지만
이 아저씨 하나 때문에 배가 침몰했다고 하기에는 좀그렇고 이때 보트가 떠난 시간은 2시 5분,
그러니까 침몰 15분 전이고 여자와 아이들이 없는 걸 대충 확인하고
탔기에 품위없다고는 말할 수 있어도 인간말종이라고 부르기는 뭐함
아마 살아있었다는게 가장 큰 죄였을듯.
침몰 중에는 찔렸는지 여자와 아이들을 부르면서 선원들에게 이것저것 지시를 내렸는데
항해사들은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그냥 쓸데없이 나서서 방해만 준다고 생각했던 모양
구명보트를 나중에 타이타닉 호의 침몰에 대한 책임을 묻는 청문회에서
"나는 승객일 뿐이었습니다. 운항에 대해서는 선장에게 어떤 압력도 주지 않았습니다."라고 주장했지만
당시 질문자로 나온 이삭스 경의 "그러면 당신은 돈 내고 탔나요?"라는 질문에 대답 못했다고 함 (생존)

마거릿 브라운(Margaret Brown)
배우 : 캐시 베이츠(Kathy Bates)
남편이 금광을 발견한 덕에 순식간에 떼부자가 됨
부자가 된 이유 때문에 러스 버케이터에겐 은근히 무시를 당함
잭 도슨에게 파티복을 빌려주는 등 잭에게도 호의를 보인 인심좋은 아주머니
침몰 당시 배 안에 타고 있던 승객들과 선원들을 열심히 도왔고 6번 보트에서 보트를 돌리자고 주장한 여인이 바로 그녀
이후 '가라앉지 않는(Unsinkable)' 몰리 브라운이라고 불리며 사교계에서 활약 (생존)

토머스 앤드루스(Thomas Andrews)
배우 : 빅터 가버(Victor Garber)
타이타닉호의 설계자로 영화에서 로즈에게 구명조끼를 주면서
튼튼한 배를 만들지 못해 미안하다는 말을 남기고 흡연실에 남음
실제로도 그는 승객들을 돕다가 흡연실에 남아 그림을 응시하고 있는 것이 마지막으로 목격되었으며 배와 함께 죽었음
이때 흡연실에 고귀하게 남기로 한 사람은 앤드루스뿐만이 아니라 다른 (1등실) 승객들도 있었는데,
어떤 승객들은 카드 게임을 계속했으며 당대 저명한 언론인이었던 윌리엄 T. 스티드는
조용히 독서를 하고 있었음. 이들 또한 모두 배와 함께 죽음 (사망)

윌리스 하틀리(Wallace Hartley)
배우 : 조너선 에번스존스(Jonathan Evans-Jones)
타이타닉 호의 음악가. 승객들을 진정시키기 위해 자신을 포함한 8명의 악단과 함께
배가 침몰하기 전까지 끝까지 남아 음악을 연주했고 고결하게 최후를 맞이함
안타깝게도 이 악단 중 살아남은 사람은 한 명도 없음
배에 끝까지 남아 음악을 연주하는 와중에 삶을 덤덤하게 포기하는 사람들과
끝까지 살아남으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스쳐지나가는 장면은 그야말로 명장면
여담으로 죽을 때까지 무려 70여개 호화선박에서 연주를 했다고 함
사실 타이타닉호 승선은 약혼녀의 곁을 떠나기 싫어 꺼렸지만, 고객들과의 약속을 무시할 수 없어
마음을 고고 탔는데 그만... 하틀리의 시신은 고향에 묻혔으며, 4만 명에 달하는 인파가 몰렸다고 함 (사망)

찰스 라이톨러(Charles Lightoller)
배우 : 조너선 필립스(Jonathan Phillips)
2등 항해사. "여자와 어린이 먼저" 규칙을 가장 우선시했음
빙산 충돌 후 우왕좌왕하는 승객에게 빈총을 겨누며 로우에게 보트를 부탁
후에 침몰하는 배에 끝까지 남아있었고, 환기구에 빨려들어갔다가 뜨거운 열기로 인해 빠져나와
뒤집어진 접이식 보트 B에 매달려 생존했는데 침몰 당시 가장 지위가 높았던 선원이었음
청문회에서 배가 두 동강나지 않았다고 증언하였는데, 생존한 선원 중 최선임자였으므로
훗날 탐사선이 발견할 때 까지 이 주장이 정설로 받아들여졌음
제2차 세계대전 때는 덩케르크에 고립된 원정군 병력을 구출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자신의 아들과 함께 요트를 몰고 작전에 참가함.
1958년판 영화에서는 주인공으로 등장하며 케네스 모어가 연기함 (생존)

해럴드 로(Harold Lowe)
배우 : 요안 그리피스(Ioan Gruffudd)
5등 항해사. 실제로 배가 침몰한 뒤 유일하게 지원자들을 모아
혹시나 있을지 모르는 생존자들을 구하러 간 영웅 중의 영웅
그리고 4명을 구조. 영화에서는 로즈가 그 4명 중 한명
이 일로 인해 해럴드 로는 조국에서 훈장을 수여받고 정치인들로부터 극찬을 받았음
영화에서 표현된 것과 마찬가지로 상당히 불같이 열혈한 성격을 갖고 있었다고 하니
그 불같은 성격과 용기로 4명의 목숨을 구한셈
이후 제1차 세계대전에 해군 장교로 참전하여 해군 중령까지 진급했음 (생존)

제임스 무디(James Moody)
배우 : 에드워드 플레처(Edward Fletcher)
6등 항해사이자 타이타닉 호의 최연소 항해사.
출항 직전 급히 들어오는 잭 일행을 받아주고 영화와 마찬가지로 보초들이 빙산을 발견했을 때 제일 처음 전보를 받았음
실제에서는 빙산 발견을 머독에게 보고하고 끝까지 승객들을 돕다가 최후를 맞이했다고 함 (사망)

아치발드 그레이시 4세(Archibald Gracie IV)
배우 : 버나드 폭스(Bernard Fox)
1등실에 타고 있던 예비역 육군 대령이자 소설가 및 아마추어 역사학자로, 로즈를 구한 잭을 칭찬해줌
이후 접이식 보트 B에 매달려 생존했으며 후에 소설가 및 집필가의 경력을 살려
자신의 경험과 생존자들의 증언을 바탕으로 타이타닉호에서 일어난 일들에 대한 책을 썼다가
타이타닉호에서 겪은 후유증이 겹쳐 얼마 후 사망
여담으로 이 역할을 맡은 배우는 1958년 영화에서 빙산을 발견한 보초 프레드릭 플리트를 맡은 적이 있음 (생존)

헨리 와일드(Henry Wilde)
배우 : 마크 린제이 챔프먼(Mark Lindsay Chapman)
항해장(Chief Officer)으로 여자아이를 들고 있던 칼이 구명보트에 타는 것을 허락함
후에 로즈가 이 사람의 시체에서 호루라기를 집어들고 불어 생존
여담으로 배에 타기 전 여동생에게 "왠지 배가 기분나뻐"라는 편지를 보냈다고(...)
접이식 보트를 두고 애쓰는 장면이 마지막으로 목격되었으며 배와 함께 최후를 맞이함 (사망)

이시도어 & 아이다 스트라우스(Isidor & Ida Straus)
배우 : 루 폴터(Lew Palter), 엘자 레이븐(Elsa Raven)
뉴욕 맨해튼에 백화점을 소유하고 있던 금실 좋은 노부부로 실제로
스트라우스 부인은 보트 승선을 거절하고 남편 이시도어와 함께 최후의 순간을 함께 맞이했다고 함
영화에서는 물이 들어오는 선실에서 침대에 같이 껴안고 누워 있는 장면으로 나옴
그야말로 '영원한 사랑'이란 말이 어울리는 아름답고 슬픈 최후
물론 영화적 과장이 약간 섞여 있긴 함. 마지막으로 목격되었을 때는 벤치에 같이 앉아았었다고 함 (사망)

벤저민 구겐하임(Benjamin Guggenheim)
배우 : 마이클 인자인(Michael Ensign)
억만장자 철강업자로 극중에서 일등실 식사에서 잭과 몇 가지 대화를 나눔
실제로 그는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인 현지처와 하인을 보트에 태운 것을 확인하고
"우리는 가장 어울리는 예복을 입고 신사답게 갈 것이다."라는 말을 남기고
마지막까지 시가와 브랜디를 즐기며, 기품있고 우아하게 최후를 맞이함
여담이지만 그의 딸 페기 구겐하임이 여기서 물려받은 유산으로
컬렉션한 예술작품들이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 설립의 초석이 됨 (사망)

존 제이컵 애스터 4세(John Jacob Astor IV)
배우 : 에릭 브래든(Eric Braeden)
배에서 가장 부자였던 승객으로, 자신과 30세나 차이나는 17살의 임신한 두 번째 아내
(자기 아들보다도 나이가 적었다고 함)와 함께 신혼여행으로 배에 타고 있었음
후에 승객들의 구명보트 탑승을 돕고 아내를 태우지만 자신은 타지 못하고 배에 조용히 남아 죽었고,
시신은 일주일 뒤 심하게 손상된 채 발견됨 (주머니에 있던 시계 때문에 신원파악을 할 수 있었음
영화에서는 중앙계단과 돔이 침수될 때 마지막으로 등장하지만 실제로는 굴뚝에 깔려 죽었다고 함 (사망)

매들린 애스터(Madeleine Astor)
배우 : 샬럿 채튼(Charlotte Chatton)
존 제이컵 애스터 4세의 부인.
위에서 언급했듯이 17살의 나이에 30살이나 차이나는 남편과 결혼하여 임신한 것 때문에 상당한 스캔들을 불러왔음
침몰에서 생존한 후 낳은 아들에게 남편의 이름을 따서 존 제이컵 애스터 5세라 이름음
4년 후인 1916년에 어린 시절 친구인 윌리엄 칼 딕과 재혼하여 윌리엄 칼 딕 주니어와 존 헨리 딕이라는
두 아들을 낳았지만 1933년에 이혼하고 같은 해에 엔조 피에몬테와 재혼했다가 1938년에 이혼(생존)

조지프 G. 벨(Joseph G. Bell)
배우 : 테리 포리스털(Terry Forrestal)
기관장. 정전 직전에 기관실에서 마지막으로 등장하며 침몰 당시 그와 기관실에 남아있던 기관사
(배의 간부들 중 항해사들과 달리 기관사들은 전원 순직)
및 기관부 선원들은 대부분 끝까지 배의 전력을 유지하다가 모두 배와 함께 죽었음 (사망)

조지프 G. 벨(Joseph G. Bell)
배우 : 테리 포리스털(Terry Forrestal)
기관장. 정전 직전에 기관실에서 마지막으로 등장하며 침몰 당시 그와 기관실에 남아있던 기관사
(배의 간부들 중 항해사들과 달리 기관사들은 전원 순직)
및 기관부 선원들은 대부분 끝까지 배의 전력을 유지하다가 모두 배와 함께 죽었음 (사망)

로버트 히친스(Robert Hichens)
배우 : 폴 브라이트웰(Paul Brightwell)
배의 조타수로 빙산에 부딪힐 때 조타 당직을 서고 있었음
6번 구명보트가 배에서 떠난 후 몰리 브라운과 다른 탑승자들이 배로 돌아가자고 하자 거칠게 거절
영화에서는 몰리에게 던져버린다고 협박하지만 사실 실제로는
정반대로 히친스가 너무 쌀쌀맞고 이기적으로 굴자 몰리가 이 말을 했다고 함
약 한 세기 후인 2010년경 2등 항해사 찰스 라이톨러의 손녀(소설가)의 증언에 의하면
우현 전타와 좌현 전타를 잠시 동안 헷갈렸기에 이런 결과가 나왔다고 함
. 뭐 그거 하나가지고 배가 침몰한 건 아니지만 (생존)

프레드릭 플리트(Frederick Fleet)
배우 : 스콧 G. 앤더슨(Scott G. Anderson)
실제 빙산을 맨 처음으로 발견한 갑판선원. 6번 구명보트에 탑승해 살아남음. 후에 부인이 죽자 자살함 (생존)

리지널드 리(Reginald Lee)
배우 : 마틴 이스트(Martin East)
플리트와 함께 견시 당직을 서던 갑판선원. 플리트와 마찬가지로 살아남음 (생존)

잭 필립스(Jack Phillips) & 해럴드 브라이드(Harold Bride)
배우 : 그레고리 쿡(Gregory Cooke), 크레이그 켈리(Craig Kelly)
타이타닉 호의 통신사로 카르파티아호에 무전을 보냈음
침몰하기 직전까지 두 사람 모두 구조 요청 신호를 보냈음
필립스는 저체온증으로 사망했지만 브라이드는 뒤집어진 접이식 보트 B에 메달려 구조됨
삭제 장면에서는 실제와 마찬가지로 캘리포니아호가 보낸 빙산 경고를 받자 닥치라고 메시지를 보내는(...) 모습이 나옴

로테스 백작부인 노엘 레슬리(Noël Leslie, Countess of Rothes)
배우 : 로셸 로즈(Rochelle Rose)
성우젊은 백작부인으로 칼과 로즈와도 친한 듯
침몰 당시 여성임에도 불구하고 노를 열심히 저었고 이 동안 선원들과 3등실 승객들에게도 친절하게 대했으며
구조된 후에도 가난한 승객들을 보살펴 모범이 되었다고 함 (생존)

코스모 더프고든 경
배우 : 마틴 저비스(Martin Jarvis)
더프고든 경은 영국의 준남작으로, 삭제 장면에서는 아내와 함께 구명보트 1호
(탑승한 승객이 가장 적었다)에 탑승했으며 후에 화부 헨드릭슨이 현장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하자 거절했음
선원들에게 5파운드씩 지급해서 뇌물을 준것이 아닌가 하는 혐의도 받았는데
당사자들의 주장에 따르면 팁이라고 함. 이후 부인과 함께 온갖 루머에 흽싸였음 (생존)

더프고든 부인 루시 크리스티나(Lucy Christiana, Lady Duff-Gordon)
배우 : 로절린드 에어스(Rosalind Ayres)
더프고든 경의 아내로 애칭은 '루실'이며 세계적인 의류 디자이너
남편과 함께 구명보트 1호에 탑승해 생존함
증언에 따르면 배가 침몰하자 자기 비서한테
"저기 네 아름다운 잠옷이 있었는데.."라는 말을 했다가 당연히 선원들로부터
어짜피 소유물은 다시 구하면 되는데 배에 있던 소유물을 잃은 우리들은 뭐냐면서 불평을 들었고,
이에 더프-고든경이 선원들에게 재산을 어느정도 떼워줄 팁을 약속했다고 함
그리고 현장으로 돌아가자는 의견에 반대. 이것이
"생존자들이 있는 현장으로 돌아지 않기 위해 뇌물을 줬다"는 소문으로 퍼진 것 (생존)
사실 제임스 카메론 감독은 영화판 결말에 대해 흡족해하지 않았음
그는 새로 나온 타이타닉 블루레이 디스크에 그가 생각했던 진짜 결말을 실어놨는데 여러모로 충격
우선 결말 직전까지는 똑같으나 회상이 끝나고 다시 늙은 로즈로 돌아오는 장면부터는 매우 판이함
로즈가 과거의 이야기를 말했음에도 불구하고 보물 사냥꾼 양반들은 잭 도슨에는 조금도 관심이 없었고
"닥치고 대양의 심장 어딨어. 이 망할 할망구야?"라고 로즈를 위협함
로즈의 손녀는 어떻게는 상황을 무마해보려하지만 대양의 심장의 가격을 듣고는
"그런 비싼 보석을 가지고 지금껏 우리를 이렇게 고생하게 만들었단 말이야?"라고 격노함
로즈는 정신이상 징후를 보이며 횡설수설하고
사실 잭 도슨이란 남자는 존재하지 않고 자신은 타이타닉 따위를 탄 적도 없다고 폭로함
보물 사냥꾼들은 그럴 줄 알았다며 비웃으며 흩어지고 손녀도 그녀를 버림
그녀는 그 와중에도 꿋꿋하게 "그래도 내 첫 남자는 태프트 대통령이었다!"라고 주장하며 영화는 끝남....
카메론 감독은 "여러분은 이 결말이야 말로 제가 원한 진정한 결말이었다는 걸 아실겁니다
여자의 가슴이 바단지 뭔지 횡설수설하는 미친 할망구 따위보다야 얼마나 좋은 결말입니까?"라는 말을 남김 그리고...
는 훼이크
사실 블루레이 디스크에 추가된 이스터 에그로 그냥 장난으로 찍어서 넣은 장면
배우들도 타이타닉에 등장한 배우들도 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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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혼 이혼의 민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