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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m 얕은 바다에 육지에서 가까웠던 세월호 구조율은
100년전 머나먼 북대서양 빙하떠다니는 차가운 망망대해 생존률보다 고작 5%높았다.
에드워드 존 스미스 선장은 구명보트에 탈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승객들을 지도하다가 끝까지 배에 남아 죽었다. 참고로 스미스 선장은 낮은 계층 출신이었으나 그 기품과 카리스마 덕분에 화이트 스타 라인의 고객 중에도 오로지 스미스 선장의 배만을 타는 사람도 많았다고 한다. 그는 원래 1911년에 은퇴할 예정이었지만 회사측의 설득으로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출항하기로 한 것이 바로 타이타닉호의 첫 항해였다. 항해사 절반 또한 죽었다.
배의 설계자인 토머스 앤드루스는 승객들의 구명보트 탑선과 뜰 만한 물건들을 던지는 것을 돕다가 1등실 흡연실에 조용히 들어가서 배와 함께 최후를 맞이했다. 이때 흡연실에 고귀하게 남기로 한 사람은 앤드루스 뿐만이 아니라 다른 (1등실) 승객들도 있었다. 어떤 승객들은 카드 게임을 계속했으며 당대 저명한 언론인이었던 윌리엄 T. 스티드는 조용히 독서를 하고 있었다. 참고로 윌리엄 스티드는 과거에 헤이그 특사를 도와준 유일한 외국인 이었다. 이들 또한 모두 배와 함께 죽었다.
기관장인 조지프 G. 벨을 포함한 많은 기관사/기관부들과 화부들이 배가 완전히 침몰하기 2분 전, 그러니까 배의 불이 완전히 꺼질 때까지 자리를 계속 지키면서 배의 전기를 작동시키는 작업을 하며 배와 함께 최후를 맞이했다. 상선사관들 중 항해사들과 달리 기관사들은 전원 순직했다.
월리스 하틀리가 지휘를 맡은 8명의 악단은 배가 침몰하기 고작 10분 전까지 곡을 연주하고 서로에게 행운을 빈 후 헤어졌으나, 비극적이게도 모두 죽었다. 왈리스 하틀리의 시신은 바이올린이 몸을 묶여진 채로 발견되었다. 이 바이올린은 2013년 10월 19일 영국에서 진행된 경매에서 90만 파운드(약 15억 5,000만원)에 판매되었다.
영국이 신사의 나라 맞긴 한가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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