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아, 밤새 기적을 꿈꾸며 뒤척거리다 호숫가로 나왔다.
여긴 바다가 없으니, 며칠새 사나와진 호수로 왔단다.
거센 바람에 호수가 맨몸을 드러내고 아프게 날린다. 꼭 너희들처럼.
더이상 “희망”의 가식을 믿질 못하겠다.
아이들아, 그래서, 어쩜 이제 너희들을 떠나 보내야 할 지 모르겠구나.
아니, 이리도 형편없는 어른들의 세상을 너희들이 먼저 버렸을 지도 모르겠다.
너희들이 아는 학교도 어른들의 세상 아니더냐.
경쟁으로 피말리고 숨쉴 틈도 주지 않고,
그들이 만든 세상의 냉혹한 질서를 빨리 배우라고 성화만 부렸지.
그나마 수학여행이 숨쉴 기회였겠다. 얼마나 신났을까.
우리들도 수학여행에서 음주와 흡연과 같은 어른세계의 어두운 면을 배우면서,
그들에게 쨉을 한방 날리곤 했단다.
그래서 세월호가 너희들에겐 “해방구"였겠다.
하지만 그 해방구도 이미 어른들이 점령했었다는 걸
너희들에게 아무도 알려 주질 않았구나. 너희들의 해방구는 어른들에겐 쉬운 돈벌이였다.
배를 제대로 살피지도 않고 너희들을 태웠다. 돌보는 이들도 마찬가지였단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분리된 일터였고, 제대로 된 훈련도 직업윤리도 없었다.
너희들이 버리고, 제 몸 챙기기에만 바빴단다.
너희들은 너무 착해서 그런 어른들을 말을 마지막까지 믿었구나.
훌륭한 분들도 있었지만, 그분들은 모두 지금 너희들과 같이 있으니,
어른들의 세상은 이리 매일처럼 사악해지고 있구나.
너희들이 보지 못한 세상도 알려 줘야겠지. 너희들이 사투를 벌릴 때,
어른들은 처음엔 너희들이 다 살아난 줄 알았다.
손 놓고 어른들이 좋아하는 방송과 신문에 나와서 자랑했었지.
너희들이 없다는 걸 알았을 땐, 이미 너희들을 찾기 어렵게 되었다.
아니, 어른들이 그랬단다. 너무 너무 어려운 작업이라고, 최선은 다하지만 어렵다고 했단다.
너희 부모님들은 온 몸으로 싸우셨다. 쓰러져 병원에 실려가면,
다시 현장으로 찾아와서 너희들과 같이 싸우셨다.
부모님들은 너희들을 위한 전사이자 영웅이었단다.
그런데도, 부모님들은 너희들의 상황을 알기 어려웠단다.
너희들이 모두 몇명인지도 모르더구나.
나라를 이끄시는 어른들은 횡설수설, 우왕좌왕했었다.
너희들이 그랬었으면 호되게 단체기합 받을 일이었지.
쓰러져가며 호소하는 너희 부모님들을 위한 변변한 상황판도 없는데도,
그 어른들은 까만 의자들을 체육관에 옮겨다가,
더 높으신 분들이 편히 머물러 갈 수 있도록 했다고 하더구나.
어른 세상에서 제일 힘쎄신 분은 와서,
너희들 못 구하면 담당자들을 모조리 혼내 주겠다고 했다 하는데
별 다른 소식이 없었단다.
몇 부모님들은 그녀 앞에서 무릎을 꿂고 너희들 살려달라고 호소를 했다는데,
누구 하나 부모님들을 일으켜 대통령과 같은 눈높이해서 얘기하도록 해 준 사람이 없었다.
그녀도 선 채로 듣기만 했단다. 부모님들은 너희들을 위해 무릎을 꿇었다. 너희들이 세상의 전부였단다.
이젠 알겠지. 너희들이 열심히 배우려고 했던 어른들의 세상은 무능하단다.
눈 앞에 너희들을 두고서도 아무것도 하질 못하는구나. 천안함 사태 때 너희들도 성금을 내었겠지.
해난 구조 잘 하자고, 큰 돈 들여서 최첨단 군함도 사들였는데, 거기에 대단한 구조 장비들이 있다고 한단다.
그런데, 한번도 사용해 본적도, 사용할 수 있는 사람도 없어, 너희들에게 가질 못했구나.
어른들 세상에서는 꽃단장하고 난리법석을 부리며 시작한 일들이 대개 이렇단다.
예수님이 부활한 날이라고 한다. 이제 예수의 부활을 믿지 않으련다.
너희들이 부활해서 돌아오렴. 날선 회초리를 들고 와서, 너희들이 본 어른들의 세상을 사정없이 후려쳐라.
그 세상에 지옥의 불벼락을 내려다오. 너희들이 앉아있던 교실 책상에서 우리 모두 무릎꿇고 기다리마.
가는 길에 너무 울지 말거라. 친구 손 꼭 쥐고, 어깨 두들겨 주면서 잘 가거라….
우리가, 많이, 정말 많이 미안하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