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보료 한 푼 안내는 금융소득자 341만명

이자왕(가명·45·여)씨는 지난해 금융소득(이자 및 배당)으로 2000만원을 벌었다. 은행이자(연이율 3%)로만 계산하면 통장에 6억6000만원이 예금돼 있다는 의미다. 그러나 직장가입자인 남편의 피부양자로 등록돼 건강보험료를 한 푼도 내지 않았다. 정부가 추진 중인 ‘건강보험료 부과체계 개편 방안’에 따르더라도 분리과세 금융소득이 2000만원을 초과하지 않아 건강보험료를 낼 필요가 없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새정치민주연합 안철수 의원은 12일 이씨처럼 건강보험료를 면제받는 100만원 이상 2000만원 이하 금융소득자가 2012년 국세청 자료를 기준으로 무려 341만5310명이라고 밝혔다. 이들이 한 해 번 금융소득은 13조7783억1600만원에 달했다.

‘직장가입자 보수 외 소득기준 보험료율(2.995%)’을 이들에게 적용할 경우 연간 4127억원의 건보료가 더 걷히고, 장기요양보험료도 매년 270억원이 늘어난다.

정부가 지난 9월 내놓은 건보료 부과체계 개편 방안에서도 2000만원 초과 금융소득에 대해서만 보험료가 부과된다. 약 14조원의 금융소득이 건보료 면제 대상이 된 셈이다. 이처럼 정부 방침이 결정된 것은 ‘금융실명거래 및 비밀보장에 관한 법’ 때문이다. 법에 따르면 2000만원 초과 금융소득은 당사자가 신고해야 하지만, 그 이하는 신고할 필요가 없다. 국세청이 국민건강보험공단으로 관련 자료를 제공하도록 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금융소득 건보료 부과 체계는 이처럼 느슨한 반면 서민들에 대한 보험료 징수는 매우 빡빡하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이 건강보험 지역가입자 가운데 전세 5400만원 이하 주택에 사는 186만2351가구에 부과한 건보료는 지난 9월 기준으로 858억6700만원이었다. 또 직장가입자 중 최저임금(약 108만원) 이하 가입자 168만7797명이 낸 보험료도 총 428억1300만원이나 됐다. 안 의원은 “14조원에 이르는 (금융)소득에 대해선 한 푼도 건보료를 안 걷으면서 서민들에겐 꼬박꼬박 받는 것은 공정하지 않다”며 “빨리 법 개정이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엄기영 기자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