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30살 조금 넘은 여자입니다.
얼마전 지하철에서 너무너무 열받는 일이 있어서 처음으로 글을 올려 봅니다.
저는 지하철에서 자주 화장을 합니다.
좀 심할 때는 프라이머(색조 메이크업 전에 기초 마지막 다지기ㅋ)부터 할 때도 있습니다.
20대 초반에는 지하철에서 화장을 한다는 건 상상조차 할 수 없었지만
20대 중반부터는 수정 메이크업 수줍게 시작하여
30대에 접어드니 풀 메이크업도 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아예 시선을 의식하지 않는 건 아닙니다.
간혹가다 빤히 쳐다보는 분들이 간혹 계시지만 이내 몇 번 보다가 마십니다.
바쁜 일정에 쫓겨서 어쩔 수 없이 시작하던 지하철 내에서의 풀 메이크업,
이젠 그 시간을 활용하는 게 너무 효율적이라 멈출수가 없네요. ㅠ_ㅠ
한 일주일 전.
그날도 부랴부랴 집에서 씻고 옷만 꿰어 입고 기초 화장(스킨, 로션, 프라이머)만
간단히 한 다음 버스를 타고 지하철역까지 헐레벌떡 뛰어가
시원한 지하철 속으로 골인 한다음
잠시 숨을 돌려 주변을 보니 도통 자리가 날 것 같지 않아 서서 화장을 시작했습니다.
(자리는 없고 지하철에서 내려야할 시간이 가까워지면 종종 서서도 다 합니다.)
먼저 파우더를 꺼내서 얼굴에 톡톡, 바르기 시작하는데
제 바로 앞에 앉은 50대 후반? 정도의 아주머니가 저를 빤히 보시는 겁니다.
정말, 빤- 히.
저도 자존심이 센 편이라 누가 그렇게 빤히 쳐다보면
바로 아이 컨텍을 해서 '뭘 봐? 뭔데?' 하는 눈으로 같이 쳐다봅니다.
그날도 바로 잠시 그 아주머니와 아이 컨텍을 했습니다.
뭔가 표정이... 빙글, 빙글 웃는 느낌?
그냥 그렇게 느껴졌습니다.
전 그 눈빛을 '호의'로 생각했습니다.
왜냐면 사실 그날 옷차림도 괜찮았고 제 생김새가 나쁘지 않다고 생각을 해서
그 아주머니의 표정을 '이쁜 아가씨가 화장하는 모습이 예쁘네' 라는
감탄 어린 눈빛이라고 착각을 했던 것이었습니다. -_-;;;;;;; 왜 그랬는지.
그래서 바로 경계의 눈빛을 풀고 다시 거울을 바라보며 화장에 몰입하기로 했습니다.
그 아주머니가 계속 쳐다보시건 말건.
그런데.
너무 빤히 보시는 겁니다.
정말 빤-히.
슬슬 기분이 나빠지면서...
저쪽 건너편 좌석에 빈 자리가 나기 시작했습니다.
가서 앉을까.. 생각을 하던 찰나,
저를 빤히 보시던 아주머니의 바로 옆자리에도 자리가 났습니다.
짧은 시간 동안 잠깐 고민을 했습니다.
왠지 계속 쳐다보는게 기분이 좀 그런데... 저쪽으로 가서 앉을까?
아니면 그냥 상관하지 말고 아주머니 옆에 앉을까?
그런데 저쪽에 가서 앉을까.. 생각하자 왠지 자존심이 상했습니다. ㅋㅋ
아주머니를 피하는 것만 같았고 내가 뭔 잘못을 했다고 피하지? 생각이 들면서...
자존심이 대체 뭔지! 결국 저는 그 아주머니의 옆자리에 당당히!! 엉덩이를 붙였습니다.
아, 근데 그게 화를 부를 줄이야.
제가 자리에 앉자마자
그 아주머니가 기다렸다는 듯이 몸을 제게로 틀면서 물으셨습니다.
"아니, 왜 여기서 화장을 해?"
까랑까랑한 목소리.
그리고 반말.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질문을 받은 저는
급당황했습니다.
"0_0;; 네?"
"아니~~ 왜 지하철에서 화장을 하고 있냐고."
속으로 저는 '이게 아닌데..'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솔직히말하기 좀 부끄럽지만 '아유 이쁘네' 라든가 '무슨 화장품으로 하는거야' 라는
그런 질문을 받을 줄 알았거든요... ㅠㅠㅠㅠㅠㅠㅠㅠ
그리고 그 아주머니는 심장이 벌렁거릴 정도로 당혹스러운 질문과 말을 계속 하셨습니다.
"여기서 이렇게 화장하는 거 아니야~!"
"남들 안보이는 데에서 화장해야지."
"내려서 하라구, 내려서."
"화장실 같은데서 해야지 어떻게 이렇게 남들 다 보는 데서 화장을 해?"
사실 저 화가 나면 금방 최고점을 향해 분노가 끓어오르는 O형 여자입니다.
꼭지 돌면 얼굴 완전 돌변해서 상대방 후벼파는 독설 장난 아니게 하는 다혈질입니다.
하지만 상대는 저희 어머니같은 나이대의 50대 후반 혹은 60대 초반으로 보이는
아주머니였고 그 상황은 너무너무 당황스러워서
간신히 한 마디밖에 입 밖으로 나올 수가 없었습니다.
"괜찮아요."
너무 제 자신이 비참해 보였지만 그 아주머니와 시비 붙기 싫었습니다.
일단 지하철을 내리기 전에 화장을 끝마쳐야만 했고
중요한 일정이 있어서 기분을 잡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괜찮긴 뭐가 괜찮아~! 이런 데서 화장하면 뭐같이 보이는 줄 알아? 술집 나가거나 몸 파는 여자들이나 화장하는 거라고. 아가씨 몸 파는 여자야?!"
!!!!!!!!!!!!!!!!!!!!!!!!!!!!!!!!!!!!!!!!!!!!!!!!!!!!!!!!!!!!!!!!!!!!!!!!!!!!!!!!!!!!!!!!!!!!!!!!!!!!!!!!!!!!!!!!!!!!!!!!!!!!!!!!!!!!!!!!!!!!!!!!!!!!!!!!!!!!!!!!!!!!
몸. 파. 는. 여. 자.
몸. 파. 는. 여 자.
몸. 파. 는. 여 자.
!!!!!!!!!!!!!!!!!!!!!!!!!!!!!!!!!!!!!!!!!!!!!!!!!!!!!!!!!!!!!!!!!!!!!!!!!!!!!!!!!!!!!!!!!!!!!!!!!!!!!!!!!!!!!!!!!!!!!!!!!!!!!!!!!!!!!!!!!!!!!!!!!!!!!!!!!!!!!!!!!!!!
정말 미쳐버릴 뻔 했습니다.
아이섀도 브러쉬를 잡은 손가락 끝에 피가 쫘-악 빠져나가면서
차가워지기 시작했고
심장이 마구 벌떡대며 요동을 쳐대고
안면 근육이 바르르 떨려왔습니다.
그리고 눈에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습니다.
(열받는 일이 생기면 전 눈물부터 납니다.)
울면 지는 건데!
나 이제 서른인데!!!
제길 이딴 아줌마한테 내가 지면 안되는데!!!!!!!!!!
온 몸과 마음에 독처럼 분노가 쫘악 퍼져나가는 걸 느끼면서
정말 혼신의 힘을 다해 마음을 가라앉혔습니다.
그리고는 짧은 시간동안 죽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 아줌나 대체 뭔데 나한테 이딴 소리를 할까?
내가 하는 일이 뭔지도 모르고 어떻게 나한테 몸파는 여자라고 할 수가 있지?
내 사회적 위치와 나이가 있는데 어떻게 이런 말을 들을 수가 있지?
내가 난동을 피웠나 이 아줌마한테 대놓도 피해를 줬나?
왜 내가 이딴 소리를 들은거지? 왜? 왜? 왜?
그냥 씹고 다른 칸으로 갈까... 하다가
역시 왠지 그렇게 하면 이 아줌마한테 지는 것 같아서 ㅠㅠ 그놈의 자존심!
초연한 얼음공주가 되어 씹고 태연하게 화장하기로 했습니다.
브러쉬로 아이섀도를 바르고
워터프루프 아이라이너로 속눈썹 사이사이와 눈 아래 점막을 칠하고
마스카라까지 꼼꼼하게 발랐습니다.
이 모든 행동을 지켜보기 위해 몸을 아예 내 쪽으로 돌린 그 아주머니는 계속 입을 놀리시더군요.
"화장 하지 말라니까?"
"아니, 계속 하네?"
"허허! 어이가 없어서!!"
"저쪽 노약자석에 있는 할머니도 어이가 없어서 쳐다보네!!"
"하지 말라고!"
"하! 그래도 계속 하네?"
노약자석에 있는 할머니는 아주머니가 하도 시끄럽게 쫑알대니까
뭔일인가 싶은 얼굴로 우리쪽을 쳐다본건데,
그 아주머니는 마치 모든 이들이 다 저에게 손가락 질을 하면서 절 비난한다는 것 처럼
상황을 분석해서 말씀하시더군요.
전 싸늘하게 식어 바르르 떨리는 손가락으로 블러셔(볼에 살짝 홍조를 띄게 해주는 색조화장)까지 마무리 했습니다.
초연한 얼음공주, 초연한 얼음공주를 되뇌이며
나름 차분하고 도도하고 시크한 표정으로.
아주머니는 계속 사람들을 봤다가 절 봤다가
바르르 했다가 어이없어 했다가 "하! 하!" 소리를 냈다가 하셨고요.
메이크업을 마무리한 저는 핸드폰을 꺼내서
문자를 확인하고 문자를 보내고
전화를 했습니다.
이미 다 화장이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그 아주머니는 대꾸 한번 없이
철저히 자신의 말을 무시하고 자신을 투명인간 취급하는 제 태도가 못마땅한지
수시로 대놓고 제 쪽으로 고개를 돌리시면서 위 아래를 훑으시더군요.
지랄같은 십여분이 흐르고 제가 내릴 역이 되자
발딱, 하지만 초.연.하.게. 자리에 일어나 나름 도도하게 출입문 쪽으로 다가가
문이 열린 후 최대한 태연하게 지하철에서 내렸습니다.
그리곤 눈물이 왈칵.
후.
정말 그 때의 그 억울한 마음은 어떻게 하질 못하겠더군요.
일주일간의 시간이 흐른 지금도 글을 쓰다보니 또 심장이 벌렁대고 있어요.
가장 분한건 그 아주머니의 폭언과 막말과 그 모욕적인 말에 내가 한 마디도 안했다는 거.
물론, 하고 난 후에 더 후회했을지도 몰라요.
원래 좀 제가 겁이 많고 감정이 여린 성격이라 싸우거나 잠시 열받아 이성을 상실한 후 막말했을 때 지나고 나면 엄청 후회하고 더 미안해 하는 편이거든요.
그래도. 그 말을 쉽게 용납이 안돼요.
지하철에서 화장을 했다고
몸 파는 여자라뇨?
정말 사회생활 열심히 하는 커리어 우먼으로써
어디가서나 당당하고 우호적인 인간관계 쌓으며 건실하고 좋은 이미지로 사는 사람인데.
나름 스케쥴이 바쁘고 이동시간을 활용하기 위해 지하철에서 화장을 한 것 뿐인데...
지하철에서 지켜야할 에티켓 중에
'화장하지 맙시다' 는 없잖아요.
제가 다리를 쩍벌리고 신문을 펼쳐 본 것도 아니고,
큰 소리로 통화를 하거나 음악을 들은 것도 아니고,
남 보기 민망한 노출 의상을 입거나 애정 행각을 한 것도 아닌데.
지하철에서의 이동시간을 효율적으로 보내기 위해
독서를 하거나 음악을 듣거나 TV를 보거나 영어단어를 외우는 다른 사람들처럼
저도 제게 필요한, 남에게 피해되지 않다고 생각되는 제 개인적인 행동을 한 것 뿐인데.
그 후로 지하철에서 화장을 할 때면
약간 노이로제에 걸려 주변에서 쳐다보는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곤 합니다.
심지어 립그로스 살짝 덧바를 때도 절 쳐다보는 사람이 있으면
괜히 또 심장이 뜁니다.
과연, 지하철에서 화장하는 게 그렇게 보기 불편한 것일까요?
그냥 하나 보다. 생각하고 힐끔 보고 신경 끌 수 없는 일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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