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종이 병으로 일찍 세상을 떠난후 그의 아들인 단종이 11살 어린나이에 즉위하게됩니다
훗날 단종의 자리를 빼앗아 왕이된 수양대군(문종의 동생)은 조선 7대왕인 세조가 되지요
그럼 단종에 대해서부터 먼저 얘기하겠습니다
문종이 세상을 떠나기전 영의정 황보인, 좌의정 남지, 우의정 김종서에게 단종을 잘 보필해달라는 유언을 남깁니다
하지만 즉위 1년만에 계유정난(1453)이 일어납니다
세조와 그 측근들은 김종서와 황보인을 제거하고 권력을 장악합니다
단종은 그저 이름만 왕인 꼭두각시에 불과했던거죠
결국 3년 남짓 왕위에 있었던 어린왕 단종은 숙부인 세조에게 왕위를 물려주게 됩니다
그럼 여기서 문종이 아주 귀하게 여기고 아꼈던 충신 김종서에대해 잠깐 알아보고 갑시다
김종서는 과거에 급제한 출신입니다
6진 개척을 통한 북방경영이 김종서의 커다란 업적이기도 하지요
김종서는 집현전 학자들에게는 존경을사고 문종의 아버지였던 세종에게는 각별한 총애를 받습니다
이후 문종이 즉위되고 모두가 수양대군에게 서있을때 김종서는 문종의 옆자리를 지킵니다
그로인해 문종도 김종서를 충신으로 받아들이게 되지요
문종이 죽고 단종이 즉위한후 문종에 유언에따라 최선을다해 단종을 보필합니다
하지만 수양대군이 정권을 장악하기 위해선 김종서가 크나큰 걸림돌이었지요
그렇게 계유정난이 일어나고 큰 부상을입은 김종서는 자신의 며느리집에 피신했지만
결국 목이 잘리는 비참한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그의 측근들은 수양대군이 모조리 파헤쳐 죽였지만 후대인 숙종때 김종서의 후손들이 채용되기도 합니다
너무 오랜시간이 걸렸죠..
그후 단종은 명나라 사신이 세조 즉위후 고명을위해 방문할때를 노려 세조를 제거할 계획을 세웁니다
하지만 이 계획을 같이 도모했던 김질이 계유정난의 공신이자 자신의 장인인 정창손의 설득으로 모든것을 고발하게되고
이 계획은 결국 실패로 돌아가게 됩니다 이사건을 사육신 사건이라고 합니다
이때 일을 도모했던 유응부,성삼문,박팽년,이개,하위지,유성원은 고문을 당한뒤 모두 사망하게됩니다
이 사건으로 단종은 목숨은 부지 하였으나 세조는 단종의 존재자체를 위협으로 생각하게되어
단종은 노산군으로 강등되어 강원도 영월로 유배를 가게됩니다
(이곳은 삼면이 강이고 뒤는 절벽이여서 천혜감옥이라 불리었다네요)
한순간도 순탄치 못했던 단종의 일생이 여기서 끝나는듯 하지만
유배뒤 금성대군과 또 다시 복위를 계획하던것이 들통나 단종은 결국 사약을 받게됩니다
(여기서 단종의 죽음에는 여러가지 설이 있습니다 유배뒤 단종의 기록은 없다네요 여러가지 추측만이 난무할뿐..)
어린나이에 즉위하여 무엇하나 역사의 흐름을 바꿔놓지 못했던 비극적인 왕이라고 기억됩니다
어렸을적부터 총명하고 재주가많은 아이였으나
너무 어린나이에 왕위에 올라 매일 압박감과 괴로움에 시달렸다고 하네요
만약 어린나이에 즉위하지 않았다면 훗날 존경받는 왕으로 기억이 되었을텐데.. 개인적으로 참 안타깝습니다
이렇게 조카의 자리를 뻇어 왕이된 세조는 누구보다 강력한 왕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조선 역대왕중 가장 야망이 불타올랐던 사나이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세조를 보면 또 떠오르는 왕이 있지요 세조의 할아버지 태종
태종의 아버지가 귀하게 여기던 젊은 부인과 그 아들을 살해합니다
비록 세조보단 태종의 사건이 더 잔인한 상황이었지만 목표를 얻기위해 무섭도록 거침없이 달려가는 모습이 닮았네요
무력으로 왕자리를 빼앗은 세조는 밤마다 악몽에 시달립니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을 죽이고 왕이 되었으니 그럴만도 하지요..
하루는 단종의 어머니인 현덕왕후가 세조의 꿈에나와선
"너는 내아들의 왕위를 빼앗았으니 나는 그보다 더한 너의 아들의 목숨을 빼앗겠다"라고 말하여
꿈임에도 불구하고 세조는 현덕왕후의 무릉을 파헤치라고 명령합니다
그 부근에 사는 사람들을 밤마다 여인의 울음소리를 들었다고 하네요..
관을 꺼내려고해도 심한 냄새가 진동하고 다른 관과는 다르게 어찌나 무거운지 군사들이 제대로 들지를 못했답니다
그대로 불을 지르려하니 갑자기 비가와 불은 자꾸만 꺼지고 물위로 던져도 계속 떠올랐다합니다 그 무거웠던 관이..
이때부터 세조는 피부병으로 고생하게됩니다
현덕왕후의 잠든순간까지도 편치 못하게했던것에 대한 벌이 아닐까싶네요..
이리도 잔인왕이였던 세조를 정치적인 입장에서 바라보면 어떨까요
비록 지금은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고 비난을 피하진 못하지만 세조가 즉위한후 조선은 이때 최고의 전성기를 누립니다
역사상 가장 강한 군대와 넓은 영토를 차지하게되죠
이때 기록으론 중무장한 군사가 43만명이 넘고 유사시 1백만명까지 동원할수있다고 기록되있습니다
세조는 재상 중심의 의정부서세자를 지지하고 집현전을 중시하는 예술적 기질을 가졌고
병약했던 형인 문종과는 다르게 세조는 무예도 출중하고 격구,활쏘기등 사냥도 즐겼다고합니다
세조는 여러다른 어진에선 그의 인상은 강렬하고 무서운 군주였으나 백성들한테만큼은 따뜻하고 최선을 다했습니다
두얼굴의 왕이었던 걸까요 유언으로 그의 아들에게 자신이 죽인 후손들을 잘 보살펴달라는 말을 남겼다네요
하지만 비합리적인 방법으로 왕위에 오른 세조의 정통성은 비난을 피할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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